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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부탄의 동부 지역에 위치한 왐롱(wamrong)으로 가기 위해 두 번째 경유지인 몽갈(mongar)까지 이동했습니다.
아침 기도가 끝난 후 6시에 숙소 주변을 산책했습니다.
“어제 머물렀던 팀푸가 수도이긴 하나 봐요. 붐탕에 오니 시골에 온 것 같네요.”
작은 시내를 한 바퀴 돌아보았는데 전통 양식으로 지은 신축 건물과 나무로 지은 낡은 전통 가옥이 섞여 있었지만 시내는 쓰레기가 없는 깔끔한 모습이었습니다.
40분가량 산책을 하고 숙소로 돌아와 짐을 챙기고 7시에 아침 식사를 했습니다. 숙소 주인은 스님이 한국 사람인 것을 알고 양배추를 한국 김치처럼 만든 음식을 준비해 주었습니다. 오랜만에 따뜻한 밥과 김치를 먹으니 입맛이 산뜻했습니다. 스님은 숙소 주인에게 책을 선물하며 감사 인사를 드리고 차를 타고 몽갈로 출발했습니다.
차를 타고 가다가 타시 님이 말했습니다.
“스님, 이것 보세요.”
타시 님이 가리킨 곳에는 고사리가 가득했습니다.
“이야, 부탄에도 고사리가 많이 자라고 있네요. 어제 시장에도 고비와 고사리가 있었어요. 저는 한국에서 매년 봄이면 산나물을 채취하곤 하는데 올해는 해외 일정이 있어서 두릅도, 머위도, 엄나무순도 채취를 못했네요.” (웃음)
차는 도로를 따라 높이 올라가기 시작했습니다. 구름이 산을 타고 올라가는 모습이 바로 눈앞에서 보였습니다. 히말라야 계곡 사이로 눈이 쌓인 모습도 볼 수 있었습니다.
일행은 잠깐 차를 세워서 휴식을 했습니다. 스님은 운문사 학장 운산스님께서 입적하셨다는 소식을 한국으로부터 전해받았습니다. 소식을 듣고 일행은 잠시 애도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다시 차를 달려 고도가 가장 높은 고개에 도착했습니다. 이 탑을 기준으로 한쪽은 붐탕, 한쪽은 몽갈입니다. 이곳을 기준으로 부탄은 크게 동부와 서부로 나뉜다고 합니다.
차는 서서히 도로를 따라 내려가기 시작했습니다. 해발고도에 따라 식생이 조금씩 달라졌습니다. 이제 산의 모습은 절벽 같은 칼산으로 바뀌었습니다. 공사 중인 도로라 차가 계속 덜컹거렸습니다.
일행은 풍경을 보다가 잠이 들다가 다시 풍경을 보다가 잠이 들다가를 반복했습니다. 조금 더 내려가니 폭포가 나타났습니다. 히말라야에서 내려온 물이라 물이 매우 깨끗했습니다. 잠깐 차를 세워 폭포 아래에서 사진을 찍었습니다.
휴게소에서 점심 식사를 하고 계속해서 도로를 따라 내려갔습니다. 식사비가 인도에 비해서는 꽤 비싼 편이었습니다. 곧 야자수 나무가 보이기 시작하더니 날이 더워졌습니다. 마치 아열대 지방 같았습니다.
산을 넘고 또 산을 넘어 몽갈에 도착하니 4시였습니다. 스님은 오늘도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운전해 준 쌍게 님에게 감사 인사를 드렸습니다. 숙소에 짐을 풀고 몽갈 시내를 산책했습니다.
“종일 차 안에만 있다가 이렇게 산책을 하니 이제야 부탄에 온 것 같네요.”
각양각색의 건물을 보니 부탄에 온 것이 실감 났습니다. 골목골목도 단정했습니다.
시장도 구경했습니다. 시장에는 아침에 본 고사리와 고비가 있었습니다. 스님이 고사리 이야기를 하니 타시 님이 내일 절에 가면 고사리 요리를 해주겠다고 했습니다.
시장을 나와 길에서 공놀이를 하는 아이들도 만났습니다.
“무슨 놀이를 좋아하니?”
“축구요.”
“배드민턴은?
“좋아해요.”
“다른 것은?”
“게임이요.”
스님은 타시 님에게 놀이 기구를 보내면 학교에 나누어 줄 수 있는지 물어보며 놀이 기구를 좀 보내주면 좋겠다고 제안했습니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스님이 타시 님에게 물었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본 부탄은 딱히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없는 것 같아요. 밥을 못 먹거나, 아픈데 치료를 못 받거나, 배우지 못하는 어린아이들이 있는 것은 아닌 것 같아요. 일반 주민들은 무엇이 제일 필요합니까?”
“시골 사람들이 생필품을 수급하는 데 어려움이 있어요. 시골에서 식량은 생산해서 먹지만 외부에 이 생산물을 판매해야 다른 생필품을 구할 현금을 마련할 수 있는데요. 지금 이동해 보셔서 알겠지만 고산 지대를 며칠씩 넘어가서 판매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또 초등학교까지는 의무 교육이라 교육을 받지만 서민들은 고등 교육까지는 잘 못 시키는 편입니다.”
“네, 내일 왐롱에 도착해서 주민 생활을 한번 살펴봅시다.”
스님은 숙소에 돌아와서 한국과 연락하며 업무를 보고 회의를 했습니다.
내일은 부탄에서 최종 목적지인 왐롱으로 이동합니다. 왐롱에 도착해 비구니 스님들이 사는 절을 둘러보고, 저녁에는 즉문즉설 생방송을 할 예정입니다.
오늘은 법문이 없었기 때문에 지난 수행법회에서 있었던 내용을 전하며 글을 마칩니다.
“화내지 않고, 방긋 웃고, 미워하지 않고, 사랑하고, 이해하며 살아가는 것이 어떤 것인지 궁금합니다. 저는 직장에서 대표직을 오랫동안 했습니다. 한 달 전에 후임자에게 17년을 해온 대표직을 인계해 주었습니다. 저는 법과 절차에 따라 하등의 하자 없이 꾸준히 일해왔습니다. 새로 대표가 되신 분은 제가 데리고 있던 직원이었습니다. 평소에 애정을 주었던 사람이라서 제가 출마하지 않고 그 사람을 밀어줬는데, 한 달 사이에 제가 이루었던 공과 적법하게 했던 일들을 전부 부정하고 틀렸다고 말합니다. 전임자가 했던 것을 거부함으로써 본인이 두각을 나타내려고 하고 있습니다. 이것도 하나의 인연으로 생각해서 미워하지 말고 사랑해야 할까요? 지금 그 사람이 보기도 싫고 상대하기도 싫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제가 어떻게 하면 될까요?”
“이것을 사회에서는 ‘배신’이라고 표현합니다. 질문자는 지금 배신을 당한 거예요. (웃음)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 이렇게도 말하죠. 그러나 인간의 심리를 분석해 보면 이 상황은 너무나 당연합니다. 우리 사회에서 상부의 명령에 무조건 따라야 하는 곳이 어디입니까?”
“군대입니다.”
“상하 관계가 명확해서 명령과 복종으로 운영되는 곳이 군대입니다. 그런데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쳐내는 쿠데타는 어디에서 많이 일어납니까?”
“군대입니다.”
“쿠데타는 군대에서 가장 많이 일어납니다. 명령과 복종이 있는 곳에는 인간의 심리가 억압이 되기 때문입니다. 북한 같은 나라에서 정권 교체가 일어난다면 쿠데타로 인한 가능성이 가장 높습니다. 쿠데타는 가장 가까운 심복 중에서 일으킵니다. 박정희 대통령이 죽을 때도 심복한테 죽지 않았습니까? 쿠데타를 일으킨 사람을 향해 많은 사람들이 ‘나쁜 놈이다’라고 비난하는데 그것이 일반적인 인간의 심리입니다. 가까이 있으면서 심리가 억압되면 저항을 하게 됩니다.
내 말을 가장 잘 듣고 따라서 믿고 일을 맡겼는데 갑자기 배신을 했다면, 나에게 잘 보이려고 ‘아니다’ 싶은 것까지 무조건 ‘예’ 하고 살다가 그 불만이 터진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나로서는 그 사람의 잘못이라고 생각이 될 수밖에 없고, 세상 윤리로 보면 나쁜 놈이라고 볼 수밖에 없지만, 그러나 심리적으로 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저 사람이 나하고 있을 때 심리가 좀 억압이 됐구나’ 이렇게 봐야 합니다.
옛날에도 새로 왕이 되면 전 왕인 아버지가 한 일에 대해 전부 부정하고 신하도 싹 바꿔버리곤 했습니다. 전 왕을 따르던 신하들은 새 왕을 아이 때부터 봐왔기 때문에 왕으로서 추앙을 안 합니다. 같이 맞먹으려고 하거나 어린애로 봅니다. 그래서 전 왕의 신하 중에서 자기를 도와줄 한두 사람을 제외하고 모두 숙청을 합니다. 대부분의 나라에서 역사가 그랬습니다.
질문자의 입장에서는 억울하고 배신을 당한 것 같겠지만, 대표직을 17년 동안 했다면 너무 오래 한 거예요. (웃음) 새로 대표가 된 사람이 전임자가 했던 일을 계속 따라 하면 그 사람은 전임자의 아바타 또는 대리인에 불과해지는 겁니다. 전임자의 그늘을 먼저 걷어내야 실질적인 대표가 되는 거예요. 이것이 권력의 속성입니다. 이런 심리를 알면 하나도 억울할 게 없어요. 이것이 인간 세상의 당연한 이치입니다.
과거의 흔적을 지워야 자신의 입지를 굳힐 수 있습니다. 지금 정치도 한번 보세요. 과거 정부의 성과를 모두 부정해 버리기가 쉽습니다. 굳이 정쟁으로 싸워서 앙숙이 된 사람들이 아니라고 해도 과거 정부의 성과를 쳐내야 자신의 당 내에 지지 기반을 확보할 수가 있거든요. 인간적으로 보면 문제라고 볼 수 있지만 권력의 속성이라는 게 그렇습니다.
보통 친구지간에는 친구가 시장을 하다가 다음 선거에서 떨어졌다 해도 친구 아들의 결혼식에 참석하고 부조도 합니다. 그런데 내가 경찰서장으로 있을 때 복종했던 사람들은 내가 경찰서장을 그만두게 되면 내 아들이 결혼할 때 아무도 안 옵니다. 그러면 엄청난 배신감을 느끼게 되죠. 그런데 그게 당연한 것입니다. 그들이 나에게 복종한 것은 내가 아니라 직위였기 때문에 직위가 없으니 당연히 따르지 않지요.
그러니 질문자의 상황은 하나도 억울한 일이 아니에요. 그렇다고 잘했다는 것도 아닙니다. 그게 세상이 돌아가는 방식인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사람도 자기가 대표가 됐으니까 자신의 자리를 잡으려고 저러는구나’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좋아요.
또한 그 사람의 입장에서는 자기가 대표가 됐으니까 그 사람 마음대로 할 권리가 있습니다. 법에 어긋나지 않으면 됩니다. 질문자는 대표직을 떠났으니까 그가 어떻게 하든 관여를 하지 말아야 해요. ‘내가 일군 성과를 다 부정해 버리네’ 이렇게 생각하면 질문자만 잠을 못 자게 되는 겁니다.
정토회도 마찬가지예요. 스님이 죽고 다른 사람이 대표가 되면, 그 사람이 스님의 성과를 이어갈 수도 있고, 많은 부분을 바꿔버릴 수도 있습니다. 그동안의 성과가 자신한테 유리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이어갈 것이고, 그동안의 성과를 바꿔버리는 게 자신한테 유리하다고 생각하면 바꿉니다. 자신의 아버지가 했던 일이라도 마찬가지예요. 그러니까 신임 대표는 예전에 질문자가 이룩한 그늘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겁니다. 17년을 하셨으면 정말 많이 했어요. 그 울타리를 벗어나는 것이 자신의 성과를 내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런 것이지 특별히 질문자를 미워하거나 나쁘게 생각해서 그런 게 아니에요.
첫째, 질문자는 ‘내가 너무 오래 했구나’ 이렇게 생각해야 합니다. 둘째, ‘내가 대표를 할 때 저 친구가 내 눈치를 보고 일을 했구나’ 하고 생각해야 합니다.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뭐든지 의논하고 친구처럼 합의해서 일을 했으면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항상 명령하고 복종하는 식으로 일을 하면 이런 일이 생깁니다. 그런데 지금 억울해하면 질문자만 손해입니다. 질문자만 잠 못 자고 괴롭습니다. 그것은 아무런 해결책도 안 되고 도움도 안 됩니다. 오히려 ‘인간 심리의 속성이 그렇구나’, ‘내가 너무 오래 했구나’ 이렇게 이해해야 합니다.
어떤 일도 오래 하면 항상 이런 일이 생깁니다. 질문자가 4년을 하다가 그만뒀으면 이런 일이 안 생깁니다. 새로운 사람은 전임자의 그늘을 걷어낼 필요가 별로 없으니까요. 권력이라는 게 원래 그렇습니다. 그러니 섭섭해하지 마시고 ‘인간 세상이 이렇구나’ 하고 이해하는 경험으로 삼으시면 좋겠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꾸준히 정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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