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3.1.7 정토경전대학 즉문즉설, 전법활동가 공청회, 평화리더십아카데미 동문회
“상을 짓지 말라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요?”

안녕하세요. 오늘은 하루 종일 회의, 강의, 공청회가 있는 날입니다.

스님은 새벽 기도와 명상을 마친 후 오전 8시부터 상임 천일준비위원회와 온라인으로 회의를 하며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2차 만일결사 시작을 앞두고 각 단위의 조직 개편을 어떻게 할지 2시간 동안 논의를 한 후 회의를 마쳤습니다.

곧이어 오전 10시에는 정토경전대학 학생들과 생방송으로 즉문즉설을 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지난 시간까지 육조단경과 선불교에 대한 공부를 모두 마쳤습니다. 오늘은 그동안 배운 내용 중에서 궁금한 점을 스님에게 묻는 시간입니다.

각 교실별로 실천활동을 어떻게 했는지 영상을 함께 보고, 각자 수행연습을 해 본 소감도 들어보는 시간을 가진 후 스님과의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사전에 많은 질문이 제출되었는데요. 그중 다섯 명이 최종 선택이 되어 스님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그중 한 명은 상을 짓지 말라는 가르침이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 궁금함을 이야기했습니다.

상을 짓지 말라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요?

“저는 상을 짓지 말라는 것이 정확히 어떤 의미인지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어려운 사람을 도울 때 어려운 사람을 보고 ‘저 사람은 불쌍한 사람이다’, ‘저 사람은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다’라는 상을 지어야 돕는 마음이 생기고, 법륜 스님을 보고도 ‘존경할 사람이다’라는 상을 지어야 스님을 배우고 따르는 마음이 생기는 것 아닌가요? 상을 짓지 않고도 이런 마음이 나올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현실적으로 보면 질문자의 말에 일리가 있어요. 어려운 사람을 보고 ‘아이고, 불쌍하구나’ 하는 마음을 내야 도와주려고 하고, 또 마음이 아파야 아까운 돈도 기꺼이 내게 되는 게 사실입니다. 또, 어떤 사람을 보고 ‘저 사람은 참 훌륭하구나’ 하는 상을 지어야 존경하는 마음을 내게 되는 것도 맞습니다.

그런데 가장 좋은 공부는 그 사람은 본래 불쌍한 사람도 아니고, 존경할 만한 사람도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 거예요. 그냥 사람일 뿐입니다. 이 사람도 사람일 뿐이고, 저 사람도 사람일 뿐이에요. 이렇게 상을 짓지 않는 게 가장 좋은 공부입니다.

그다음으로 좋은 공부는 설령 상을 지어서 ‘이 사람은 불쌍하구나’, ‘저 사람은 존경할 만하구나’ 하고 상을 지었더라도 그 상에 집착을 하지 않는 겁니다. 집착하지 않는다는 것을 두고 생각에 머무르지 않는다고 하여 ‘무주(無住)’라고 표현합니다.

가장 좋은 공부는 ‘무념(無念)’입니다. 즉 아무 생각도 일어나지 않는 것이에요. 그다음 공부는 생각이 일어나더라도 상을 짓지 않는 ‘무상(無相)’입니다. 그다음 공부는 상을 짓더라도 그 상에 머무르거나 집착하지 않는 ‘무주(無住)’예요. 우리가 경전을 통해 계속 배우는 것이 바로 무념, 무상, 무주입니다. 금강경의 가르침도 무념(無念)으로 종(宗)을 삼고, 무상(無相)으로 체(體)를 삼고, 무주(無住)로 본(本)을 삼는다고 요약할 수 있어요.

이것을 실제 생활에 적용하면 한마디로 좋고 싫음에 끌려 다니지 않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가장 좋은 수행은 ‘좋다’, ‘싫다’ 하는 마음 자체를 내지 않는 거예요. 그렇지만 현실적으로는 느낌이 이미 일어나 버리기 때문에 설령 그런 느낌이 일어나더라도 ‘기분이 좋다’, ‘기분이 나쁘다’ 하는 상을 짓지 않아야 합니다. 상을 짓지 않는다는 것은 마음을 일으키지 않는 것을 뜻해요. 즉, 수(受)라는 느낌은 일어나지만 그것에 대해 마음을 일으키지 않는 거죠. 느낌이 일어나더라도 그것을 바로 알아차려서 감정까지 확대가 되지 않도록 하는 겁니다. 그런데 만약 그것도 놓쳐서 감정까지 일어났다고 하더라도 그 감정을 따라서 행동을 하지는 말아야 합니다. 만약 행동도 해버렸다면, 그때는 참회를 해야 합니다. 화나는 감정이 일어났다고 하더라도 말과 행동으로 옮기지는 말아야 하는데, 만약 화를 내버렸다면 ‘아, 내가 놓쳤구나’하고 참회를 해야 해요.

이처럼 수행은 어느 한 단계에서 끝나는 게 아닙니다. 가장 앞 단계인 수(受), 즉 느낌이 일어날 때 막는 게 가장 좋겠지만, 만약 그 단계에서 놓쳤다면 그다음 단계에서 막아야 하고, 거기서 또 놓쳤다면 그다음 단계에서라도 막아야 하고, 만약 그것마저도 놓쳤다면 마지막에 반성하고 참회라도 해야 하는 거예요.

가장 핵심은 생각이 일어나지 않는 경지에 이르는 것입니다. 명상을 할 때도 이런저런 생각이 일어나지만 오직 알아차리기만 할 뿐 일어나는 생각에 의미를 두지 말아야 해요. 만약 생각을 이미 일으켰다면 그 생각으로 인한 상을 짓지는 말아야 합니다. 만약 상을 이미 짓고 말았다면 그 상에 집착하지는 말아야 합니다.

상에 집착하면 괴로움이 생깁니다. 질문자는 지금 법륜 스님이 훌륭하다는 상을 짓고 있는데, 만약 내일 신문에 법륜 스님이 다른 사람의 물건을 훔쳤다거나, 어디 가서 사기를 쳤다거나, 어떤 여자를 성추행했다는 기사가 나왔다고 해봐요. 그러면 질문자는 어떨 것 같아요?”

“실망할 것 같아요.”

“그렇다면 오늘은 훌륭한 사람인데, 내일은 나쁜 사람이 되는 거잖아요. 하지만 법륜 스님은 오늘도 내일도 같은 사람일까요, 오늘까지는 좋았다가 내일 갑자기 나쁜 사람이 되는 걸까요?”

“같은 사람입니다.”

“오늘은 내가 그 사람의 좋은 면만 보고, 내일은 나쁜 면만 볼 뿐인 거예요. 이것은 마치 오늘은 화장한 얼굴을 보고 내일은 화장을 지운 얼굴을 보는 것과 같습니다. 화장을 한 때나 안 한 때나 똑같은 사람입니다.

내가 그 사람의 오늘 모습을 보고 아름답다고 생각하더라도 그 사람 자체가 아름답다고 할 수가 없고, 내가 내일의 모습을 보고 추하다고 생각하더라도 그 사람 자체가 추한 것은 아닙니다. 다만, 내가 오늘의 모습을 보고 ‘저 사람은 아름답다’ 하고 상을 지을 뿐이고, 내일의 모습을 보고 ‘저 사람은 추하다’ 하고 상을 지을 뿐인 거죠.

설령 아름답다는 상을 지었다고 하더라도 거기에 집착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 말은 ‘저 사람은 아름다운 사람이다’ 하고 정하지는 말라는 뜻입니다.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순간 이미 상은 지은 거예요. 그렇지만 상에 집착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 말은 내가 생각한 게 맞다고 정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상을 짓더라도 집착은 하지 않는 건 어찌 보면 가장 늦게라도 괴로움을 막을 수 있는 방법입니다. 그것보다 앞 단계에서 해결하려면 ‘지금 좋은 일을 하시는구나’ 이렇게만 볼 뿐이지 ‘저 사람은 훌륭한 사람이다’ 이렇게 상을 짓지 않는 거예요.

꽃을 봤을 때 ‘나한테 아름답게 보이는구나’ 하고 말아야지 ‘이 꽃은 아름다운 거야’라고 정하지 말라는 겁니다. 그러다가 꽃이 시들면 부정적인 감정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부정적인 감정은 시드는 꽃 때문이 아니라 내가 지은 상으로 인해 생기는 겁니다. 그러니 지금 꽃이 아름답다고 느껴지는 건 내가 꽃을 아름답게 보기 때문이고, 누군가 훌륭하게 느껴지는 것도 내가 그 사람을 훌륭하다고 느끼기 때문이고, 누군가 불쌍하게 느끼는 것도 내가 그 사람이 불쌍하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그 사람이 훌륭한지 아닌지, 불쌍한지 아닌지는 알 수가 없어요. 다만 지금 내가 그렇게 느낄 뿐이죠.

남편이 뭐라고 해서 기분이 나빠지는 것도 남편의 어떤 행동을 보고 내가 기분 나빠하는 것이지 그걸 갖고 ‘남편이 나쁜 사람이다’ 이렇게 정하지는 말아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상을 짓지 않는 거예요.

다만 내가 그렇게 인지할 뿐입니다. 그 사람이 진짜 나쁜 사람인지 좋은 사람인지, 무언가가 진짜로 아름다운 건지 추한 건지, 그건 알 수가 없어요. 상을 짓는다는 건 나에게 인식되는 걸 논하는 게 아니라 ‘내가 이렇게 인식했으니 이건 이런 거야’라고 객관화 하는 걸 말합니다.

태양을 볼 때도 ‘내 눈에 태양이 동쪽에서 뜨고 서쪽에서 지는 것처럼 보인다’ 이렇게 말을 해야지, ‘태양은 동쪽에서 뜨고 서쪽에서 지는 거야’라고 객관화 시키면 그게 바로 상을 짓는 거예요. 실제로 태양은 지는 것도 아니고 뜨는 것도 아니잖아요. 지구가 자전을 하는데 내가 지구 위에 서있으니까 내 눈에 태양이 보이기 시작하면 태양이 뜬다고 말하고, 태양이 안 보이기 시작하면 태양이 진다고 말하는 거예요. 나에게 그렇게 인식될 뿐이기 때문에 실제인 것으로 객관화시키면 안 된다는 겁니다. 나에게 인지되는 것을 객관화시키는 것을 두고 상을 짓는다고 하는 겁니다.

내가 인지하는 걸 객관적인 것으로 착각을 하면 그것에 집착하게 됩니다. 내가 그렇게 느끼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마치 사실인 것처럼 착각하니까 집착을 하게 되는 거예요. ‘내 말이 사실이잖아’라고 할 때는 이미 집착을 하고 있는 거죠. 그러니 단정하지 말고 ‘나는 이렇게 봤어’, ‘나는 그렇게 느꼈어’, ‘나는 이렇게 생각했어’ 이렇게 말하는 연습이 필요해요.

상대방에 대해서도 ‘당신이 그렇게 말하니까 내가 기분이 나빠’ 이렇게 말하기가 쉬운데, 상대방이 원인이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당신이 나쁜 짓을 해서 나를 기분 나쁘게 했다’ 하고 말할 게 아니라 ‘당신의 어떤 말을 듣거나 행동을 볼 때 내 마음이 기분 나쁘게 반응하더라’ 이렇게 말하는 것이 사실 그대로 말하는 것입니다.

상을 지으면 집착하는 부작용이 생기고, 집착하게 되면 반드시 괴로움이 생기게 됩니다. 그래서 상을 짓는 것까지는 막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집착하지는 않아야 합니다. 지금 누군가가 훌륭하다는 생각이 들더라도 제행무상(諸行無常)이기 때문에 늘 바뀔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내가 지은 생각에 집착하게 되면 그 사람이 나쁜 짓을 했다고 하는데도 ‘아니야, 그 사람은 착한 사람이야’ 이렇게 고집하게 될 수 있고, 또는 그 이야기를 듣고 금방 ‘그 사람은 나쁜 사람이구나’ 하고 다른 상을 지을 수 있어요. 그런데 상에 집착하지 않으면 나는 좋게 생각했는데 나쁘다는 이야기가 들리니까 ‘내가 조금 더 알아봐야겠다’ 이렇게 볼 수 있게 됩니다. 즉, 누가 좋다더라 하는 이야기를 들어도 금방 좋다고 결정하지 말고, 누가 나쁘더라 하는 이야기를 해도 금방 나쁘다고 결정하지 말고, ‘지금까지는 내가 좋게 생각했다’, ‘지금까지는 내가 나쁘게 생각했다’ 이렇게 바라봐야 합니다. 정말 좋은지 나쁜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사람들은 남편이나 아내를 두고 ‘결혼하고 나서 사람이 변했다’ 이렇게 말하곤 하는데, 사람이 그리 쉽게 변하지 않습니다. 내가 이쪽 면만 보고 결혼을 했는데, 결혼을 하고 나서 저쪽 면도 보게 되었을 뿐입니다. 이런 이치를 알면 내 감정에 내가 덜 흔들리게 됩니다. ‘결혼하기 전에는 못 봤는데 이 사람한테 이런 면이 있었네’ 이렇게 생각을 하니까 그 사람이 나쁘다거나 그 사람이 변했다는 생각을 덜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부동산 가격이 계속 오를 것이라고 생각하고 부동산을 샀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서 가격이 떨어졌다고 합시다. 그건 내가 잘못 판단한 것이지 부동산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닙니다. 가격이 오르는 것만 생각하고 아파트를 덜컥 샀다면 ‘아, 아파트 가격이 떨어질 수도 있구나’ 하고 배울 수가 있는 거죠. 내가 선택한 것에 대해서는 손해가 나더라도 그 손해를 감수해야 합니다. 내가 산 다음에 가격이 떨어지는 건 내가 다양한 면을 생각하지 못하고 섣불리 판단한 결과이지, 그건 하늘의 벌도 아니고, 전생의 죄도 아니고, 사주팔자도 아니에요.”

“그러면 법륜 스님께서는 인도에 불가촉 천민들처럼 누가 봐도 불쌍한 사람들을 도울 때 어떤 마음으로 돕고 계시는지 궁금합니다.”

“사실 그들은 꼭 돕지 않아도 됩니다. 다들 자기 나름대로 잘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생명이라면 제대로 먹지 못할 때 죽지 않습니까? 사람이라면 병들었을 때 치료를 받아야 하고, 적어도 초등학교 수준의 교육이라도 받아야 합니다. 기초적인 셈을 할 줄 알고, 기본적인 글을 읽을 줄 알아야 사회에 나가서도 장사를 하든지 기술을 익힐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누구나 그래야 한다고 강요할 건 아니지만, 저는 기본적인 먹을거리, 기본적인 의료, 기본적인 교육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제가 인도에 가보니까 아이들이 먹는 걸 제대로 해결하지 못해서 영양실조 상태가 되어 있고, 입는 것도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있고, 병도 제대로 치료를 못하고 있고, 학교도 못 가는 상황이었어요. 그래서 우선 학교를 만들어서 공부를 시키고, 급식을 해서 음식을 먹게 하고, 교복을 줘서 옷을 입히고, 학용품을 줘서 배울 수 있게 한 겁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 아이들이 불쌍하지는 않아요. 아이들 나름대로 얼마나 행복하게 지내는데 왜 불쌍하다고 생각을 해요? 설령 불쌍하게 느껴진다고 해도 ‘저런 아이들을 보니 내 마음이 불쌍하게 일어나는구나’ 하고 알아차리는 거죠.

사람을 도울 때는 그들의 필요에 의해 도와야 합니다. 그들이 불쌍해서 돕는 게 아니라, 그들에게 음식이 필요하니까 음식을 주고, 그들에게 옷이 필요하니까 옷을 주는 것입니다. 불쌍하다고 도와주면 그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북한을 도울 때도 북한에 식량이 부족하다고 할 때 식량을 주는 건 괜찮은데, 북한 사람들이 불쌍하다고 주면 북한 정부에서는 오히려 자존심 상한다고 거부해요. ‘식량이 필요한 상황이니까 식량을 지원해 주겠다’, ‘옷이 필요하니까 옷을 지원해 주겠다’, ‘약이 필요하니까 약을 지원해 주겠다’ 이렇게 해야 북한 정부에서도 거부감 없이 받아들입니다.

불쌍한 마음이 들어도 괜찮아요. 다만, 불쌍한 마음이 들 때 ‘그들을 보고 내 마음에서 불쌍함이 일어나는 것이지 실제로 그 사람이 불쌍한지 아닌지는 알 수가 없다’ 이렇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 사람들을 보니 딱한 마음이 들어서 지원을 해도 되고, 그 사람들한테 이게 필요하구나 해서 지원을 해도 됩니다. 그런데 가능하면 불쌍해 보여서 돕기보다는 그들에게 필요한 도움을 주는 게 좋습니다. 불쌍함을 느끼는 건 내 문제이지만 ‘이게 필요하구나’ 해서 돕는 건 그들의 문제 해결을 돕기 위한 거예요. 그래서 그들에게 필요한 도움을 줄 때는 꼭 그들에게 물어봐야 합니다. ‘식량이 필요합니까?’ 하고 물어봐서 필요하다고 하면 지원을 하고, ‘옷이 필요합니까?’ 하고 물어봐서 필요하다고 하면 지원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내가 불쌍한 마음이 들어서 도와줄 때는 묻지도 않고 그냥 내가 주고 싶은 걸 줘버립니다. 그 사람이 필요로 하는지 안 하는지 관계없이 그냥 내 마음대로 주는 거예요.

요즘 시어머니들이 며느리한테 준다고 시골에서 김치를 담고 반찬도 만들어서 아파트 경비실에 맡기는데, 포장을 열기도 전에 쓰레기통에 그냥 갖다 버리는 일이 기사로 나올 정도로 비일비재합니다. 상대방이 필요로 하는지 먼저 물어본 후 필요하다고 하면 그걸 갖다 줘야 하는데, 상대방은 필요 없다고 하는데도 내 마음만 생각하고 갖다 주니까 벌어지는 일입니다.

상대에 대한 이해가 바탕에 깔리지 않은 사랑은 폭력이에요. 상대가 원하지 않는 말과 행동은 상대방에게 오히려 괴로움이 됩니다. 항상 이해가 바탕이 되어야 하고, 상대가 필요로 하는 걸 해줘야 합니다.”

“네, 잘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 외에도 다음과 같은 질문이 있었습니다.

  • 수업시간에는 안으로 돌이켜 마음을 살펴보라고 배웠는데, 기도할 때는 관세음보살님께 귀의하며 참회를 하라고 하니 혼란스럽습니다.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 육조단경에서 전과 후의 마음이 다름을 알면 깨달을 수 있는 기회가 온다고 하셨는데, 마음이 다른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닌가요?
  • 규칙, 질서, 에티켓과 같은 것을 안 지키는 사람에 대해 어떻게 봐야죠? 사실을 알아차리는 것과 허물이라고 인식하는 것의 차이점을 여쭙고 싶습니다.
  • 연기법이나 양자역학을 통해서 사물을 바라보면 모든 것이 하나입니다. 그렇다면 저희가 늘 외치는 생명의 소중함이나 인간의 존엄성에 대해서는 어떻게 이해하는 것이 좋을까요?

미리 신청한 질문에 대한 답변을 마친 후 추가로 질문이 있거나 강의를 듣고 난 소감을 자유롭게 말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추가 질문에 대해서 답변을 다 하고 나니 12시가 다 되었습니다. 스님은 졸업할 즈음에 다시 한번 즉문즉설 시간을 갖자고 하면서 생방송 강의를 마쳤습니다.

곧바로 점심 식사를 하고 12시 30부터는 2차 만일결사 조직 개편을 위한 전법활동가 공청회를 시작했습니다.

지난주 전법활동가 법회를 마치고 설문조사를 한 결과 수행법회와 전법활동가 법회를 통합하고, 모둠도 함께 통합하자는 의견이 60퍼센트 정도 나왔고, 별도로 하자는 의견이 40퍼센트 정도 나왔습니다. 현재 만일결사 회향 기간에는 모든 결정권이 결사행자 회의와 천일준비위원회에 있지만, 오늘은 대중들의 광범위한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 공청회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먼저 스님이 공청회를 연 취지에 대해 설명한 후 활동가들이 손들기 버튼을 누르고 다양한 의견을 발표했습니다. 모둠을 통합하는 것에 찬성하는 사람, 반대하는 사람, 양쪽 의견들이 골고루 제기가 되었습니다. 토론을 마치고 나서 스님이 정리 말씀을 해주었습니다.

“전법활동가들끼리 따로 모둠을 구성하게 되면 구성원 모두가 적극적이니까 서로 좋은 영향을 받아서 발심을 하게 되고, 전법활동가와 일반회원이 모둠을 합하게 되면 소극적인 일반회원이 결합이 되어서 분위기가 처지지 않겠나 하는 의견이 나왔는데, 그 말도 맞습니다. 반대로 일반회원들은 자기들끼리 모였을 때 분위기가 쳐져 있었는데, 전법활동가와 모둠을 합함으로 해서 오히려 힘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이런 두 가지 측면이 함께 있다는 것을 감안해 주시면 좋겠고요.

법회를 통합하면 일반회원들이 부담을 갖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었는데요. 만약 전법활동가 법회와 수행법회가 통합이 된다면 수행법회 중심으로 통합이 될 겁니다. 즉, 일반회원들이 힘을 얻도록 하는 것이 중심이 되고, 거기에 전법활동가들이 결합하게 되는 거예요. 그렇게 되면 수행법회가 일반회원 중심으로 더 업그레이드가 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는 전법활동가들이 불교대학 진행자와 돕는 이, 둘 다를 맡았는데, 모둠을 통합하게 되면 전법활동가는 진행자만 맡고, 돕는 이는 모두 일반회원들이 맡게 될 겁니다. 그러면 일반회원들도 역할을 하나씩 맡아서 모둠에 참여하는 형식을 갖추게 된다고 볼 수 있어요. 그만큼 지회 사업과 지부 사업에 대한 의결권도 갖게 되는 것이죠.

오늘 찬성과 반대에 대한 토론을 충분히 했으니까 양쪽 사이에는 이런 장단점이 있다는 것을 감안하셔서 오늘 법회가 끝나면 설문조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의견과 질문이 많아서 예정된 시간을 30분 넘겨 오후 2시 30분에 공청회를 마쳤습니다. 곧바로 설문조사가 시작되고, 전법활동가들은 각자 자신의 찬반 의견을 표시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평화리더십아카데미 동문 신년회

공청회를 마치고 오후 3시에는 평화리더십아카데미 동문 신년회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시 여성가족재단 아트홀로 출발했습니다.

평화재단을 통해 인연이 된 평화여성리더십아카데미 동문들은 매년 12월에 송년회를 개최하여 법륜 스님의 말씀을 듣고, 평화와 통일을 위한 후원금을 모으고 있습니다. 지난 연말에 송년회를 하려고 했지만, 코로나 확산을 염려하여 연기했다가 오늘 신년회를 열게 되었습니다.



4시가 다 되어 아트홀에 도착했습니다. 동문들은 지난 한 해 활동과 회계를 보고하고 감사패를 전달하고 있었습니다. 최상용 교수님의 격려사에 이어서 스님을 무대로 모시고 ‘한반도 평화’에 대한 말씀을 청했습니다.

“반갑습니다. 정말 오랜만에 뵙습니다.”

스님이 인사를 건네자 강연장 가득 박수가 쏟아졌습니다.

스님은 근황을 나눈 후 한반도를 둘러싼 국내외 정세와 과제를 짚어주었습니다.

한반도를 둘러싼 문제와 과제

“정말 오랜만에 뵙습니다. 저도 지난 3년 동안 경주 근교에 있는 시골 폐교에서 주로 농사를 짓고 살았습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는 계속 떠돌이 생활을 했는데, 덕분에 거의 오십 년 만에 등을 한 곳에 붙이고 잠을 자는 생활도 하게 되었네요. 평소에 은퇴를 하고 나면 조용히 농사를 짓고 지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일찍 은퇴한 기분이기도 했습니다.

지금 국제 정세는 상황이 좀 복잡하게 얽히고 있는 것 같습니다. 현재 가장 큰 문제는 기후 변화에 따른 기후위기라고 생각합니다. 둘째, 미중 간의 패권 경쟁이 미치는 영향입니다. 미중의 패권 경쟁은 세계 전체에도 큰 영향을 주지만, 특히 한반도에 커다란 불안정을 초래하고 있습니다. 셋째,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이 야기시키고 있는 문제들입니다.

이런 환경 속에서 물가가 오르고, 금리가 오르고, 환율이 오르다 보니 많은 국민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비록 한국은 절대 빈곤의 상태는 아니지만, 과거보다 못해졌거나 주변의 다른 사람보다 못하면 상대적으로 빈곤감을 더 크게 느낄 수 있습니다.

또 한반도에는 ‘전쟁불사’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긴장감이 다시 고조되고 있는데 여기에 대한 뚜렷한 해결 방안이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정치적으로는 여야가 크게 분열되어 있고, 국민들 사이에서도 정치적 양극화가 심각한 상황입니다. 그러다 보니 현재 어떠한 타협도 요원해 보이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어떤 길을 가야 할 것인가’가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입니다. 최 교수님께서는 전쟁의 시기에 전쟁 영웅이 나오듯이 전쟁을 막고 평화를 유지시키는 평화의 영웅들이 나와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어쩌면 평화재단에서는 이 평화의 영웅이 되고자 평화리더십아카데미를 시작했습니다. 이 평화리더십아카데미를 통해 여러분과 만날 수 있었고,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의 노력이 다소 미비했기 때문인지 우리의 뜻과는 관계없이 우리가 살고 있는 환경은 평화로 나아가기보다는 점점 더 전쟁의 위기로 나아가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이제 평화가 찾아오기를 기다리기보다는 분쟁의 위기를 완화시킬 수 있는 행동을 할 때가 점점 다가오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현재 남북은 서로 무력시위를 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저는 이런 무력시위의 시대는 거의 끝나갈 것으로 봅니다. 무력 충돌로 가거나, 대화로 가거나, 갈림길에 서 있는 것 같아요.

결국 국제적인 분쟁이 일어날 것을 각오하고 무력 충돌로 나아갈 가능성이 더 높아 보여요. 왜냐하면 남한이든 북한이든 둘 다 정치적으로 불안정하기 때문이에요. 이런 정치적 불안정을 해소하는 최고의 방법 중 하나가 분쟁입니다. 작은 분쟁이라도 일어나면 국내적으로는 오히려 정치적인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 때문에 그럴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보듯이, 러시아는 간단하게 끝날 것이라고 생각하고 전쟁을 시작했지만 지금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엄청난 인명 피해가 발생하고 있고 전 세계의 많은 나라들이 직간접적으로 전쟁에 관여하고 있어요. 이처럼 전쟁이라는 건 지도자가 계획한 대로 흘러가지 않는 복잡한 문제입니다.

한반도의 경우에는 자칫 잘못하면 민족 전체가 깊은 고통의 수렁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이런 모험을 함부로 해서는 안 됩니다. 다른 건 조금 실패해도 괜찮지만, 남북 간 전쟁의 문제는 ‘실패해도 괜찮다’ 하고 모험을 하기에는 너무나 큰 위험을 안고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감정적으로 대응하기보다는 평화를 가져올 수 있는 방향을 모색해야 합니다. 또, 지금 당장 평화까지는 아니더라도 분쟁이 완화되고 긴장이 완화되는 길을 모색해야 합니다.

현재 한국은 차츰 경제 성장의 동력이 떨어지고 있습니다. 성장 곡선에서 포물선 꼭대기를 지나려고 하는 시점입니다. 포물선 꼭대기를 지나서 내리막길을 가기 시작하면 자칫 일본의 길을 걷기가 쉽고, 한번 그렇게 되면 회복하기가 아주 어렵습니다. 지금까지 일본처럼 되지 않기 위해서 온갖 애를 썼는데, 지금 와서 보면 결국 일본의 길을 따라 걷게 될 확률이 점점 더 높아지고 있습니다.

바로 옆 나라에서 일어나는 일을 보고 배우는 게 있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에게는 ‘그리로 들어가면 안 된다’고 하면서도 우리가 똑같이 그 길로 간다면 얼마나 어리석은 일입니까. 그러니 이제는 여야, 진보와 보수, 내 편과 네 편을 떠나서 우리 모두가 새로운 길을 모색해야 합니다.

어찌 보면 천년 만에 주어진 국운의 기회인데, 어떻게든 이 기회를 잘 살려야 합니다. 외국인들은 설령 한국이 여기서 성장의 길을 멈추고 내리막길로 내려가더라도 괜찮다고 할지 모르죠. 그러나 우리는 동북아의 주인공으로서 활약한 역사를 가진 민족입니다. 여기서 만족하고 후퇴한다는 건 여러모로 아깝게 느껴집니다. 그러니 우리가 함께 뜻을 모아서 다시 성장의 길을 모색해야 합니다.

이제 코로나 시대 3년이 지나고 송년회라도 하자고 하다가 신년에라도 모이자고 회장님께서 애쓰셔서 오늘 이렇게 만남이 이뤄졌습니다. 그런 만큼 저도 여러분들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듣고 같이 대화를 나누고 싶습니다. 여기 최 교수님을 비롯하여 다른 분들도 계시니까 어떤 질문이든 자유롭게 하시기 바랍니다.”

스님의 여는 말씀에 이어 누구든지 손을 들고 질문을 하거나 소감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3년 만에 직접 얼굴을 보고 질문하는 자리라 곧바로 질문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 지금의 대의정치로는 희망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직접 민주주의를 해나가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스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는 지요?
  • 국내 정치에도 문제가 있지만, 북한의 지도자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 궁금합니다. 또 남북이 평화롭게 공존하기 위해서 어떤 준비를 해야 할까요?
  • 남북 평화를 위해 이웃국가와 교류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일본, 중국에 대한 국민 정서가 안 좋은 상황에서 이런 문제는 어떻게 해결해나가면 좋을까요?
  • 통일의 당위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과 어떻게 대화하면 좋을까요?

1시간 30분이 훌쩍 지났습니다. 아쉽지만 마칠 시간이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스님은 어떠한 경우에도 전쟁은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어떠한 이유로든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 됩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한번 보세요. 주변에서 우크라이나에 무기도 주고 하니까 잘 싸우는 것 같지만 결국 우크라이나 사람들이 죽고 있습니다. 미국 사람이 죽는 것도 아니고, 독일 사람이 죽는 것도 아니고, 영국 사람이 죽는 것도 아니에요. 러시아 사람도 군인들이 몇몇 죽을 뿐이지, 대부분 우크라이나 사람들만 죽고 있습니다. 결국 슬라브 사람만 죽고 있어요. 우리도 한반도에 전쟁이 나면 결국 한국 사람만 죽습니다. 북한 사람들이 죽는다고 해도 결국 한민족 중 누군가 죽는 거예요. 그런데 왜 그런 어리석은 짓을 하려고 합니까?

전쟁을 두려워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전쟁을 막아야 합니다. 살다 보면 전쟁을 피할 수 없는 경우도 있지만 전쟁을 부추기거나 전쟁을 정당화해서는 안 됩니다.

한반도에 전쟁이 나면 우리는 엄청난 손실을 감수해야 합니다. 주변이 다 같이 파괴되면 다 같이 복구하면 됩니다. 그런데 우리만 망하고 중국과 일본은 그대로 나아간다면 한반도만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됩니다. 왜 같은 민족인 북한과 전쟁을 하려고 합니까? 이건 어리석은 짓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북한에 대한 증오심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대화를 마치고 다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오랜만에 모인 동문들은 기수별로 스님과 사진을 찍기도 했습니다. 스님은 행사장을 나가는 동문들에게 악수를 건네며 감사한 마음을 전했습니다.


동문들은 인근 식당에서 저녁을 함께 먹으며 신년회를 이어갔습니다. 스님은 “저는 곧 많은 대중과 함께 인도성지순례를 가야 하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 하며 정중히 사양하고 정토회관으로 귀가했습니다.

행사를 마치고 돌아오니 해가 저물었습니다. 저녁에는 원고 교정과 여러 가지 업무들을 본 후 하루 일정을 마쳤습니다. 서울 밤하늘에는 보름달이 휘영청 밝았습니다.


내일 오전에 온라인으로 결사행자회의를 하고, 오후에는 2차 만일결사 공동체 구성을 위한 회의와 인도 성지순례 실무준비 회의를 한 후, 저녁에는 일요명상 생방송을 진행할 예정입니다.

전체댓글 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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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세진

한반도가 낙동강 오리알이 되지않기 위해서 우리모두
현명한 최선의 대안을 찾아야 할 절실한 시점에서 일본과 중국만의 이익이되는 동족간의 어리석은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

2023-01-15 10:36:09

최남희

즉문즉설을 듣지 못해 아쉬었는데..
상을 짓지 않는 것에 대해 이해할 수 있어서 좋습니다.
전쟁의 불안이 해소되는 우리 사회가 되길 바랍니다.

2023-01-15 07:25:15

써니야

제가 궁금했던 부분 즉문즉설을 통해 명확히 알게 되어 감사합니다
질문자님 스님 감사합니다

어떠한 경우에도 전쟁은 안됩니다

2023-01-13 07: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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