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2.12.20. 경주 남산 순례, 정토경전대학 선불교의 역사
“제 마음이 심히 불안합니다. 어떡하죠?”

안녕하세요. 두북 수련원의 아침이 밝았습니다. 오늘은 한 해를 마무리하며 두북 수련원 공동체 대중들과 함께 경주 남산 순례를 함께 하기로 한 날입니다.

새벽 기도와 명상을 마친 후 다 함께 차를 타고 경주 남산으로 향했습니다.

“한 해 동안 다들 수고 많았어요.”

포석정 입구에서 출발하여 다시 포석정 입구로 돌아오는 코스인데, 포석정 입구에는 주차비를 받고 있었습니다.

“주차비를 아껴야 하니까 삼불사 앞에 차를 세웁시다.”


주차비를 아끼기 위해 삼불사 앞에 차를 세운 후 걸어서 포석정 입구로 향했습니다.


연못에는 얼음이 꽁꽁 얼어 있고, 갈대는 찬바람에 흔들거렸습니다.


논 한가운데 우뚝 서있는 남간사지 당간지주를 지나 마을 가운데 있는 석정(우물)에 도착했습니다.

“이것은 신라시대 우물의 원래 모습을 보여주는 석정입니다. 분황사에도 이것과 비슷하게 생긴 우물이 남아 있어요.”

포석정에서 남간사지 당간지주, 석정, 상서장을 지나 드디어 산길을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서부터 해목령까지 올라가는 길이 아주 완만해서 산책하기 정말 좋아요. 천천히 올라갑시다.”


한 시간 반을 지나자 제법 높은 위치까지 올라왔습니다. 산 아래에 경주 시내가 내려다 보였습니다.


“자, 사진 한 장 찍고 내려갑시다.”

가는 길에 볕이 좋은 비탈면에 앉아서 잠시 휴식을 했습니다. 물로 목을 축인 후 담소를 나누었습니다.


“이 코스로 경주 남산 순례를 안내하면 여기가 두 번째로 휴식할 수 있는 곳이에요.”

스님은 산길을 오르고 내리며 어디에서 대중을 휴식하도록 하면 좋은지, 갈림길에서 어느 방향으로 가면 어느 길과 만나게 되는지 하나씩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해목령에 도착한 후 이제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내려가는 길은 아주 빠른 속도로 내려갔습니다.

산을 거의 다 내려와서 아주 넓은 연못을 만났습니다. 돌멩이를 던져보니 물이 꽁꽁 얼어 있었습니다. 스님이 가장 먼저 얼음 위를 미끄러지며 달려갔습니다.

“스님, 위험해요. 방금 바지락 하고 소리가 났어요.”

“괜찮아요. 이리 들어와 봐요. 겨울 초입에 바로 얼면 얼음이 이렇게 투명하게 보입니다.”

다 함께 얼음 위를 한 번씩 밟아본 후 연못을 나왔습니다.

산을 내려오는 길에 보이는 계곡물도 모두 얼어 있었습니다. 부엉골을 지나 포석정 주차장에 도착하자 오후 12시 30분이 되었습니다. 약 2시간 30분 동안 12km를 걸었습니다.

“산을 거의 다 내려오니까 다리가 아프네요.”

추운 날씨였지만 오랜만에 산책을 해서 참 좋았습니다. 두북 공동체 대중과 함께 점심식사를 한 후 오후에는 화상회의를 하고, 여러 가지 업무들을 보았습니다.

해가 저물고 저녁 8시부터 정토경전대학 생방송 수업을 시작했습니다. 지난 시간까지 법화경과 화엄경에 대한 공부를 마쳤는데요. 오늘부터는 선불교에 대해 배울 차례입니다.

경전대학 학생들이 모두 화상회의 방에 입장하자 스님이 선불교가 일어난 배경과 역사에 대해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2600년 전 인도에서 시작된 불교는 오랜 세월을 거쳐 여러 민족에게 전파되었습니다. 남쪽으로는 스리랑카로, 동남쪽으로는 미얀마, 타이,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캄보디아, 베트남, 라오스로 전해졌습니다. 이 지역에서는 소승불교가 주도적인 활동을 해나가게 되죠. 북쪽으로는 오늘날의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 그리고 중국의 서쪽인 위구르 자치구로 전해지게 됩니다.

중국에 불교가 처음 전래될 때는 대승불교와 소승불교가 동시에 왔는데 중국에 와서는 대승불교가 주류를 형성합니다. 소승불교보다는 대승불교가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을 했기 때문에 인도와 문명이 다른 중국에서는 대승불교가 호응을 얻게 됩니다. 그래서 대승불교는 중국에 와서 사상적 철학적으로 인도에 버금가거나 아니면 더 높은 단계로 발전해 갑니다. 불교가 발생한 곳은 인도지만 불교가 가장 꽃핀 곳은 중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도에서, 중국에서, 이제 서구 문명으로

인도를 최초로 통일한 마우리아 왕조의 아쇼카왕 시대가 인도 문명이 세계에서 가장 앞선 시대였고, 이때가 불교가 첫 번째로 꽃을 피웠던 시기였습니다. 그것처럼 중국이 북방민족과 서역의 문명을 받아들여서 중국을 하나로 통일한 나라가 수나라와 당나라예요. 당시 세계 최고의 문명이었던 수당 시대에 불교는 중국 문명과 결합을 해서 중국 불교를 한 단계 높은 차원으로 끌어올렸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때가 불교가 두 번째로 꽃을 피웠던 시기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오늘날 세계 최고의 문명이 서구 문명입니다. 서구 문명과 불교가 다시 만난다면 어쩌면 미래에 불교가 다시 한번 꽃 필 수도 있습니다. 꼭 지역이 서구가 된다는 뜻이 아니라 서구 문명과 불교가 융합하면 높은 정신문명을 형성할 수가 있다는 뜻입니다. 불교가 세계 문명을 주도하면서 세 번째로 꽃을 피울 수 있다고 생각해요.

선불교가 일어난 배경

오늘은 두 번째로 꽃이 핀 중국 불교에 대해서 여러분과 대화를 나눠보려고 합니다. 중국불교는 수많은 종파가 난립하고 경쟁했습니다. 수십 개의 종파 중 가장 큰 세력으로 화엄종, 천태종, 정토종이 발달했어요. 여러분들이 미국 사람이라고 생각해 보세요. 미국에 한국 불교, 일본 불교, 중국 불교, 태국 불교, 미얀마 불교, 티베트 불교와 같은 여러 개의 불교가 들어와 있잖아요. 그런데 각각의 불교 경전을 읽어보니 경전이 다 다르고, 불상 모양도 다 다르고, 부처님 오신 날도 다 다르고, 스님들 옷도 다 다릅니다. 일본 승려는 까만 옷 입고 결혼하고, 중국 스님은 고기를 안 먹는데 태국 스님은 육식을 해요. 그러면 어느 게 옳은지 그른지 어떤 것이 바른 불교인지 헷갈리겠죠. 이처럼 수십 개의 종파가 나누어져 서로 다른 주장을 했기 때문에 대중들 입장에서는 헷갈리는 거예요. 이것은 부처님 당시에 이미 겪었던 일입니다. 육사외도라는 게 있었고 62가지 견해 또는 360가지 견해가 있었다고 하잖아요. 그래서 항상 사람들이 부처님께 와서 이렇게 질문했습니다.

‘도대체 누구 말이 맞습니까? 이쪽에서는 이런 주장을 하고, 저쪽에서는 그것이 틀렸다고 합니다’

그래서 부처님이 새로운 가르침을 펼쳐서 그 모든 것들을 뛰어넘는 깨달음의 길을 열었습니다. 그런데 부처님이 돌아가시고 20 여개 부파로 벌어져서 서로 다른 주장을 하고, 같은 부처님 말씀인데 강조점이 다르고, 계율이 여기는 있고 여기는 없고, 이렇게 헷갈리게 된 겁니다. 그래서 대승불교가 새롭게 일어나죠. 중국에 불교가 전래되고 500년이 지나서야 중국에서 불교가 꽃이 피었는데, 항상 규모가 커지면 교파가 나누어지는 일이 생깁니다. 그래서 조금 의식 있는 대중들이 볼 때는 도대체 어느 게 올바른 가르침인지 헷갈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선(禪)은 부처님의 마음이다

이런 시대에 제기된 의문을 해결하고 통합하는 새로운 불교 운동이 일어나는데 이것이 바로 ‘선불교’입니다. 선불교에서는 이렇게 주장을 했어요.

‘수많은 종파와 수많은 경전은 모두 부처님의 말씀이지만, 선(禪)은 부처님의 마음이다. 교(敎)는 부처님의 말씀이고, 선(禪)은 부처님의 마음이다.’

이 말은 선종(禪宗)에서 만든 말입니다. 대승불교, 소승불교라고 하는 말을 대승불교에서 만든 것처럼 이 말도 선종에서 만든 말이에요. 문장의 의미 자체가 벌써 선불교가 우위를 점유하고 있죠. 교종 입장에서 볼 때 선종은 비주류예요. 왜냐하면 교종에서는 어릴 때 출가해서 엄청나게 공부해도 부처를 못 이루는데, 선종에서는 문자가 필요 없고 마음을 탁 깨달으면 바로 부처가 된다는 주장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사이비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잖아요. 그래서 선종에서는 ‘교는 부처님의 말씀이고 선은 부처님의 마음이다’라고 하며 교를 낮추어 버립니다. 이런 정통성의 주장은 처음부터 생긴 건 아니에요. 좀 세력이 커졌는데도 사이비 취급을 받으면 우리가 사이비가 아니고 진짜라는 주장을 하면서 정통성을 내세우게 됩니다. 사실 여부를 우리가 지금 확인할 수는 없지만, ‘부처님의 마음이 선이다’ 하는 것이 선의 주장입니다.

선불교는 어떻게 시작이 되었을까요?

6세기 초에 인도에서 보리달마대사라고 하는 분이 배를 타고 중국 남쪽으로 건너왔습니다. 보리달마대사는 남인도에 있는 나라의 왕자 출신인데 출가 후 수행을 해서 스승의 법을 계승했습니다. 그때 인도에는 불교가 쇠퇴하고 있었는데 중국에 불교가 아주 발달하고 있다고 하니까 부처님의 근본 가르침을 전하려고 일엽편주를 타고 중국 양나라에 도착한 거예요. 양나라를 창건한 사람이 양무제입니다. 양무제는 불교를 아주 옹호하는 왕이었어요. 그래서 중국 스님들은 양무제를 전륜성왕이라고 불렀습니다. 인도의 아소카왕처럼 중국의 아소카왕이라고 불렀어요. 인도에서 고승이 왔다는 소식을 듣고 양무제가 궁중으로 보리달마대사를 초대했습니다. 양무제는 외국에서 온 대사를 초대해놓고 자신이 이제까지 불교를 위해서 어떤 일을 했는지를 자랑했습니다.

‘나는 수백 개의 절을 지었고, 수만 권의 경을 번역, 출판하고, 수천 명의 스님들을 후원하고, 수만 개의 탑을 세웠는데, 이만한 불사를 했으면 나의 공덕이 어느 정도 되오?’

법화경을 보면 어린아이들이 바닷가에서 소꿉놀이로 모래를 갖고 탑을 쌓고, 모래에 부처님 얼굴을 그려도, 그 공덕으로 다음 생에 부처를 이룬다는 얘기가 있거든요. 잠시 모래로 장난을 치는 것도 공덕이 되는데 하물며 자신은 수많은 불사를 했으니 그 공덕이 엄청나게 크다는 데에 의미를 두고 양무제가 자랑을 한 겁니다. 얘기를 듣고 난 달마대사가 한 마디로 ‘무(無)’라고 대답했어요. 사실은 공덕이라 할 것이 없다는 거죠.

중국은 황제보다 더 높은 신분이 없습니다. 중국은 황제가 절대 권력을 갖고 있고, 특히 양무제는 모든 스님으로부터 전륜성왕으로 추앙받는 그런 왕이었잖아요. 양무제는 너무 화가 났지만 화를 버럭 낼 수 없어서 화를 참고 다시 물어봅니다.

‘수많은 불사를 했는데 감히 공덕이 없다고 말하는 너는 누구냐?’
‘나도 모르오’

양무제는 화를 벌컥 내면서 보리달마대사를 죽여 버리려고 칼을 뺐습니다. 그러자 스님들이 말렸어요. 불교를 옹호하는 왕이 외국의 스님을 죽였다면 큰 흠이잖아요.

얼마나 재미있습니까? 스님을 깍듯이 존경한다고 해놓고 자기 마음에 안 든다고 칼을 빼서 죽여 버리는 게 불교는 아니잖아요. 이런 사람이 절을 짓는다고 하고, 이런 사람이 탑을 세운다고 하고, 이런 사람이 경을 번역하고 인쇄한다고 하니, 공덕이 있을 리 만무하죠. 달마대사는 양무제가 그 자리에서 이런 모순을 딱 깨닫도록 했는데도 본인은 알아듣지 못합니다.

이와 비슷한 일화가 부처님 당시에도 있었습니다. 가난한 여인이 작은 등불 하나를 켜놓고 ‘다음 생에 성불하여지이다’ 하고 기도했더니 부처님께서 수기를 주시잖아요.

‘그 여인은 다음 생에 성불하리라.’

그 소식을 들은 빠세나디왕이 쫓아와서 이렇게 물었어요.

‘저는 부처님께 아름다운 큰 등불을 수천 개를 켰는데, 저는 어떻게 됩니까?’

물질의 양으로만 계산해 보면 빠세나디왕은 즉시 성불해야 합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대왕이여, 불법이라고 하는 것은 참으로 미묘합니다. 하나를 주고도 백천을 얻을 수 있고, 백천을 주고도 하나를 얻지 못하기도 합니다. 그러니 대왕이시여! 가난한 자를 돕고 외로운 자를 위로하면 당신도 언젠가는 성불할 겁니다.’

그러자 왕이 부끄러워하며 물러갑니다. 인도의 왕은 부끄러워할 줄 알았는데, 중국의 왕은 부끄러워할 줄도 몰랐죠. 실망한 보리달마대사는 ‘불교는 있는지 몰라도 불법이 없다’라고 하며 양자강을 건너서 북쪽으로 갑니다. 북위에 있는 소림사라는 절에서 면벽구년을 했는데, 말을 한 마디도 하지 않고 벽만 쳐다보고 9년 동안 앉아 있었다고 표현되어 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소림사에 찾아와서 보리달마대사에게 ‘인도말을 가르쳐달라’, ‘경전을 번역해 달라’, ‘새로운 경전을 가져온 것이 있느냐’, ‘달마권법을 알려 달라’ 이렇게 간청했습니다. 한마디로 전부 얻으러 온 거예요. 그런데 달마대사는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얻으러 온 사람들은 한 달, 두 달, 일 년을 기다리다 아무것도 얻지 못하자 전부 떨어져 나갔어요.

제 마음이 심히 불안합니다, 어떡하죠?

그런데 9년이 지났는데도 오직 한 스님이 달마대사가 참선하면 자기도 참선하고, 달마대사가 산책하면 자기도 산책하고, 아무 말 없이 그냥 함께 있는 거예요. 그래서 어느 날 물었어요.

‘넌 왜 왔느냐?’
‘안심입명의 도를 구하러 왔습니다.’

구한다는 용어는 쓰지만,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도를 얻으러 왔다는 것에서 성격이 좀 다르죠.

‘네 마음이 지금 어떠한데?’
‘제 마음이 심히 불안합니다.’
‘그래, 그러면 불안한 마음을 이리 내놔라. 내가 네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리라.’

얼마나 기쁜 날입니까? 그렇게도 마음을 안정시키지 못했는데 그 불안한 마음을 내놓기만 하면 편안하게 해 주겠다고 하잖아요. 그럼 이 마음을 내놓으려면 마음을 찾아야 할 거 아니에요. 마음을 찾으려면 경전을 뒤져야 합니까? 마음을 찾으려면 인도에 가야 합니까? 아니죠. 마음을 찾으려면 자기 마음을 살펴야 합니다. 스승은 밖을 향해 있는 제자의 눈을 안으로 향하도록 도와준 거예요. 불안한 마음을 편안하게 하려면 눈을 안으로 돌려서 자기 마음을 살펴야 합니다. 여기에는 말이 필요 없습니다. 제자가 금방 대답한 건지, 하루가 지나서 대답한 건지, 한 달이 지나서 대답한 건지, 일 년이 지나서 대답한 건지, 기록에는 없습니다. 자기 마음을 딱 살피는 동안은 시간이 사라져 버리죠. 옆에 사람이 볼 때는 며칠 지났다고 하지만 딱 집중이 되어 있을 때는 시간 개념이 없어져 버립니다. 제자가 대답했어요.

‘내놓으려야 내놓을 것이 없습니다.’

이 말은 마음이라고 할 게 없다는 뜻이죠. 그러자 대사가 말했어요.

‘내 이미 네 마음을 편안하게 했도다.’

마음이라고 할 게 없는데, 편안하고 불안할 게 없잖아요. 이게 선입니다. 학문하고는 많이 다르죠. 경을 번역하고 읽고 외우고 해석하고 요약하는 게 아닙니다.

내 마음 깨달으면 부처요, 내 마음 어리석으면 중생이다

그렇다면 선불교를 일으킨 이들이 주장하는 요지는 무엇일까요? 바로 ‘직지인심 견성성불’입니다. 손가락으로 탁 가리키듯이 자기 마음을 보는 것이 ‘직지인심’이에요. 자기 마음을 알아차려서 자신의 성품을 보는 것이 성불이라는 것이 ‘견성성불’입니다. 다겁생래로 수많은 경전을 읽고 고행을 해서 성불하는 것이 아니고, 자기 마음을 탁 보면 바로 성불이고, 그것이 부처라는 것입니다. 내 마음 깨달으면 부처요, 내 마음 어리석으면 중생입니다. 부처와 중생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에요.

이렇게 아주 명쾌하게 정리를 한 것이 선불교입니다. 그래서 기존의 불교가 볼 때는 가짜라고 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당시에 선불교는 의식 있는 사람들로부터 빠르게 전파가 되기 시작했습니다.

마침 당나리 말기에는 절도 많이 생기고, 스님도 많이 생겼습니다. 절을 짓는 데 돈이 너무 많이 들어가고, 승려가 된 사람이 많아 일 할 사람도 줄고, 군대 갈 사람도 줄었습니다. 절은 여러 가지 계율을 어기면서 부패하고, 국가 재정에도 큰 손실을 주었습니다. 그래서 왕이 더 이상 절을 못 짓게 하고, 있는 절도 없애버리고, 스님들을 전부 강제로 속퇴를 시켜버렸어요. 대부분의 절이 국가의 후원으로 이루어졌는데, 탄압을 하니까 순식간에 세력이 약해져 버렸습니다.

그런데 선은 아무런 국가의 지원을 받지 않았고, 대중을 기반으로 하고 있었기 때문에, 폐불 사건이 일어나자 세력의 양상이 바뀌어 버리게 됩니다. 송나라 시대로 들어오면서부터는 선불교가 중국의 주류로 자리 잡았습니다. 세력이 확산되기 위해서는 가르침이 바른 것도 중요하지만, 이렇게 세상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야 합니다. 변화를 통해 기존에 유리했던 것은 불리해지고, 불리했던 것은 유리해지면서, 세력이 교체되는 것입니다.

글자나 말로는 진리를 검증할 수가 없다

선불교의 핵심은 글자나 말로는 진리를 검증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에도 나오잖아요. ‘과거로부터 전승된 윤리나 도덕, 관습이나 습관, 경전이나 계율에 의해서 진리를 검증할 수가 없다’라고 말씀하셨듯이, 선불교에서 내세운 것이 ‘불립문자’입니다. 문자를 세워서 ‘이것이 진리다’라고 말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문자가 필요 없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경을 많이 공부한 것은 지식이 많은 것이고 그것은 사량분별이지, 그것을 통해서는 괴로움이 없는 경지에 이를 수가 없다는 거예요. 사량분별을 끊어야 안심입명의 도를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말로 전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하는 것, 이것을 ‘이심전심’이라고 합니다. 글자로 전해지지 않고,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마음으로 법을 전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논리로 선의 위대함을 정립해 나갔습니다. 중국 안에서 선불교가 획기적으로 발전하는 변곡점이 일어난 시기는 바로 육조 혜능 대사 때부터입니다. 육조 혜능대사의 법문집을 선불교에서는 부처님의 말씀인 경에 버금가게 여겨서 ‘법보단경’ 또는 ‘육조단경’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래서 다음 시간부터는 육조단경에 대해 공부를 해보겠습니다.”

여기까지 강의를 한 후 이번 주 수행 연습 과제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생방송 수업을 마쳤습니다. 학생들은 교실별로 화상회의 방에 입장하여 마음 나누기를 이어나가고, 스님은 방송실을 나왔습니다.

곧바로 차를 타고 두북 수련원을 출발해 서울로 향했습니다. 네 시간을 달려 새벽 1시에 서울 정토회관에 도착한 후 하루 일과를 마쳤습니다.

내일은 아침에 민족의 화해와 평화를 위한 종교인 모임을 한 후 오전에는 주간반을 위해 수행법회 생방송을 하고, 오후에는 평화재단 연구 세미나를 하고, 기획위원들과 회의를 한 후, 저녁에는 저녁반을 위해 수행법회 생방송을 할 예정입니다.

전체댓글 64

0/200

이충재

스님 감사합니다.

2023-12-27 16:34:51

최윤준

스님의 일정이 정말 대단하십니다
늘 바쁘다고 종종대는 제가 부끄럽습니다

2023-12-23 07:00:57

김종근

감사합니다

2022-12-29 15:15:27

전체 댓글 보기

스님의하루 최신글

목록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