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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서울 서초법당에서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어제 새벽 1시에 도착한 스님은 잠시 눈을 붙인 후 새벽 기도와 명상을 마치고 오전 8시부터 2차 만일결사 준비위원회와 화상으로 회의를 했습니다.
만일결사 회향식 이후 2차 만일결사 입재식까지 대행체제를 어떻게 운영할지, 온라인 불사를 추진할 조직과 인력 구성을 어떻게 할지, 회향수련의 토론 주제 등 여러 가지 현안에 대해 점검하고 의논한 후 회의를 마쳤습니다.
오늘은 한 달에 한 번 주간반 회원들을 위해 수행법회를 하는 날입니다. 오전 10시에 삼귀의 반야심경을 하며 수행법회를 시작했습니다.
지난 주말에 전국 으뜸절에서 있었던 실천활동 모습, 두북 수련원에서 나비장터와 김장축제를 했던 모습, JTS에서 파키스탄 홍수 피해 구호활동을 하고 온 모습을 차례대로 영상으로 본 후 질문자들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손들기 버튼을 누르고 다양한 주제로 스님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그중 한 명은 이태원 참사로 인해 공분과 무력감, 답답한 마음이 든다며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할지 조언을 구했습니다.
“이 사건은 앞으로 절대로 다시 일어나서는 안 될 사건입니다. 우선 경찰이 사람이 이렇게 많이 모인다는 사실을 보고 받았으면 현장에 나가서 질서를 유지해야 했습니다. 놀러 온 사람들도 ‘이럴 때 넘어지거나 하면 큰일 나겠다’ 하고 판단해서 각자가 조심을 했어야 하고요. 그런데 전부 안전 불감증이었다고 볼 수 있어요.
이야기를 들어보면 각자 다 할 말이 있는 것 같아요. 개인들은 ‘나는 놀러 갔을 뿐이다. 그런데 왜 이 피해에 대해 정부가 책임을 안 져주나’ 이렇게 얘기하고, 가게를 하는 사람들은 ‘우리는 평소대로 장사했을 뿐이다. 우리가 무슨 책임이 있느냐’ 이렇게 말합니다. 한쪽에서 사람이 죽어 가는데도 다른 한쪽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던 사람들은 ‘그런 사건이 벌어지고 있는 줄 몰랐다’ 이렇게 얘기합니다. ‘밀어, 밀어’라고 말한 사람들도 ‘그냥 장난 삼아 소리를 질렀을 뿐이다’라고 말하고요. 경찰도 ‘처음에 신고받고 가봤을 때 큰 문제가 없어서 내버려 두었더니 이렇게 됐다’라고 말합니다. ‘애초에 주체가 불분명하고, 그냥 시장통에 사람이 많이 나와서 생긴 문제다. 그러니 경찰이 처음부터 나서서 할 일은 아니었지 않았나’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요. 이렇게 다 각자의 입장만 말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상황 파악이 안 되니까 각자의 입장에서 이야기하는 거예요.
그런데 조금씩 당시 상황이 밝혀지고 있어요. 신고를 여러 번 했는데도 경찰이 늦장 대응을 했다는 것을 비롯해 진상이 앞으로 밝혀지겠죠. 우리가 생각할 때는 ‘진짜 말도 안 되는 이런 일이 왜 일어났을까’라고 생각하지만, 하나하나 진상을 밝혀나가다 보면 ‘아, 이런 일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조건이 됐구나’ 하고 알게 되겠죠. 그래서 첫째, 진상 규명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둘째, 규명된 내용을 종합적으로 판단해서 후속 조치를 취해야 해요. 조사 결과에 따라 ‘이것은 그냥 어쩔 수 없는 조건에서 생겨난 일이다’ 이렇게 볼 수도 있고, ‘명백하게 제도적 결함이 있거나 아니면 특정 인물의 실수로 일어난 일이다’ 이렇게 볼 수도 있을 겁니다. 후자의 경우라면 그게 어느 정도냐에 따라서 책임을 지고 앞으로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후속 조치가 이루어져야겠죠. 세상 사람들은 ‘진상 규명’, ‘책임자 처벌’이라고 말하지만, 수행자는 ‘처벌’이란 말을 사용하는 것은 올바르지 않습니다. 처벌이라는 것은 일종의 보복이라는 개념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징계’라고 표현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책임이 어느 정도인지 규명하고 그 책임을 져야 하는 문제라고 볼 수 있습니다.
조사를 해보면 그 책임선이 어디까지인지가 드러날 겁니다. 경찰서장까지인지, 경찰청장까지인지, 아니면 장관까지인지, 이런 식으로 규명해 나가다 보면 어떤 책임선이 나타나게 됩니다. 책임선이라는 것은 실질적인 책임이 있고 도의적 책임이 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진상 규명이 이루어진다 해도 이런 책임에 대한 문제들은 또 사람마다 견해가 다를 수밖에 없어요.
진상 규명이 좀 불충분하다면 국정조사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지금 진상조사 중이긴 하지만, 처음부터 못 믿겠으니 국정조사를 하자고 하는 것이 맞는지, 아니면 일단은 진상조사 과정을 지켜보다가 미비하면 국정조사를 하는 게 맞는지도 사람에 따라 견해가 달라집니다. 또 국민이 보기에는 야당까지 참여한 국정조사도 제대로 안 됐다고 할 수 있어요. 그렇게 되면 국민이 직접 거리로 나와서 외쳐야 되겠죠. 나라의 주인은 국민이니까요. 그런데 지금이 과연 그런 행동을 취해야 할 단계인지 여부는 조금 더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런 사건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으려면 어떤 제도가 마련되어야 하고, 국민이나 경찰은 어떤 교육과 훈련을 받아야 하는지, 재발 방지책 수립과 교육도 필요해요. 경찰을 비롯한 안전요원들의 확충도 이루어져야 합니다. 삼풍백화점 사건이나 세월호 사건을 겪었지만 행정관료든 국민이든 아직도 안전에 대해서 별 생각이 없고 그냥 다 자기 식대로만 하잖아요. 그래서 국민들을 대상으로 한 안전 교육도 이루어져야 합니다. 제도만 갖고는 안 돼요. 국민의 의식도 바뀌어야 합니다.
우리는 ‘안보’라고 하면 지금까지는 북한 문제와 관련된 국방 안보에만 신경을 썼지만, 최근에는 인간 안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개개인의 생명을 보호하는 게 중요하다는 거예요. 인간 안보라는 개념이 도입되면서 국민의 생명을 지켜나가는 일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이제는 치안 문제도 재고해야 하고, 이런 사고를 방지하기 위한 안전 교육과 제도 개선도 시행해야 하고, 자살도 예방해야 하고, 종합적인 인간 안보 개념을 더욱 적극적으로 도입해야 합니다.
재발 방지책으로 이런 내용들이 논의되어야 합니다. 인터넷에 글을 올리든, 정부에 요구를 하든, 지금은 재발 방지를 위한 행동이 필요해요. 슬퍼하고만 있는 것은 아무런 도움이 안 돼요. 그러나 사람은 아무 도움이 안 되는 행동들을 많이 하고 살아요. 이건 마음의 치유와 관련이 있습니다. 마음의 치유란 뭘까요?
인류 역사에서 보면 사람들이 수도 없이 죽었습니다. 전쟁이 나서 죽기도 하고, 중국에서는 대약진 운동 때 3천만 명이나 굶어 죽었어요. 북한에서는 300만 명이나 굶어 죽었고, 킬링필드에서는 200만 명이나 학살당했습니다. 사실 사람이 가장 많이 죽은 사건은 세계대전 같은 전쟁입니다. 2차 세계대전 때는 6천만 명이나 죽었습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서 우리가 지금에 이른 거예요. 전쟁으로 6천만 명이 죽자 그제야 사람들이 각성을 한 겁니다. 그동안은 서로 ‘내가 옳다’ 하고 싸웠지만 이제는 이렇게 해서는 안 되겠다는 인식이 생겼어요. 그래서 UN(국제연합)이 창립된 겁니다.
그런데 한동안 큰 전쟁이 없다 보니까 다들 방심하고 자기의 주장을 내세우게 되고, 그러다 보니 우크라이나 전쟁이 일어나고, 미국에서는 트럼프 같은 사람이 나타나고, 러시아에서는 푸틴 같은 사람이 나타나서 막 선동을 하게 된 겁니다. 이런 극우 성향 인물들이 나타난다는 건 국가 간의 충돌, 즉 전쟁의 위험이 높아진다는 뜻이에요. 왜 그럴까요? 지금 세대는 큰 전쟁을 겪어본 적이 없기 때문에 ‘까짓 거 한 번 전쟁해버리지 뭐!’ 이런 마음이 쉽게 들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도 휴전이라고는 하지만 사실상 전쟁이 끝난 지가 오래되다 보니까 성질나면 막 ‘까짓 거 때려버리지 뭐!’ 이런 발언이 심심찮게 나오는 거예요. 이러다가 전쟁이 나서 몇 백만 명이 죽고 엄청난 재산 피해를 보고 난민이 생기면 비로소 반성을 하겠죠. ‘성질대로 해서는 안 되겠고 서로 좀 조율을 해야겠구나’ 이렇게 반성을 하면 또 평화 시대가 와서 잠시나마 이어질 테고요.
그러니 이런 사건을 대할 때 우리는 어떻게 하면 재발 방지를 할 수 있는지, 어떻게 하면 좀 더 안전한 사회를 만들 수 있는지에 더욱 관심을 두어야 합니다. 그럴 때 허무하게 죽은 사람들이 오히려 살아나게 됩니다. 그들의 희생으로 세상이 바뀌었으니까요. 누군가의 희생으로 나라가 독립했고, 누군가의 희생으로 민주화가 이루어졌듯이, 그들의 희생으로 이 사회의 안전이 더 높아졌다면 그 희생이 헛되지 않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미 돌아가셨는데 운다고 그분들이 살아나는 건 아니잖아요. 그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우리가 어떻게 할 거냐가 중요합니다.
세월호 사건 때 그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하자고 우리가 서명운동까지 벌였어요. 하지만 그 결과는 정쟁에 휘말려 정권을 교체한 것밖에 없었잖아요. 정권 교체가 되었지만 결국은 양극화만 더 심화되었어요. 분노한 사람들은 정권을 교체했지만 거기에 동의를 안 하는 사람들은 태극기 부대를 만들어서 또 억울하다고 주장했고, 그들이 다시 권력을 잡게 되니까 또다시 보복을 벌이고 있습니다. 서로 머리를 맞대서 더 안전한 사회를 만드는 게 아니라 이런 사건이 오히려 권력을 잡는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는 겁니다.
한마디로 반성해야 할 사람이 반성을 하지 않고 방어하기에 급급하다는 뜻입니다. 그렇게 적반하장의 태도를 갖게 되는 이유도 우리가 생각해 봐야 해요. 그래서 제가 아이들 훈육도 너무 엄하게 하지 말라고 늘 말씀드리는 거예요. 잘못을 했을 때 아이가 반성할 만큼만 징벌을 해야 반성을 하지, 너무 세게 징벌을 해버리면 억울하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반성은 온데간데없고 억울하다는 생각만 하는 거예요.
일본도 마찬가지예요. 왜 독일은 반성하는데 일본은 반성을 안 하고 저렇게 큰소리를 칠까요? 우리가 생각할 때는 일본이 가해자이지만, 일본 사람들은 자기들이 피해자라고 생각해요. 원자 폭탄이 일본에 두 개나 떨어졌으니까요. 그래서 자기들은 피해자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이처럼 그 행위에 따른 처벌을 너무 강하게 해 버리면 당사자는 저항이 생기고 잘못했다고 반성하는 마음은 온데간데없어져 버려요. 그렇기 때문에 징계는 적절하게 이루어져야 합니다. 보복성 징계가 이루어지면 처벌은 되었을지 몰라도 그 사람의 변화는 오지 않게 됩니다. 그동안 우리가 시행착오를 벌써 몇 번 했기 때문에 이번에는 그러지 않아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분노해서 경솔한 말이나 행동을 하는 것은 어쩔 수 없어요. 그러나 적어도 수행자인 여러분들은 그런 데 너무 휩쓸리지 말아야 합니다. 그렇다고 이걸 방치하지도 말고, 그렇다고 너무 분노하지도 말아야 해요. 일단 진상 규명을 지켜봐야 하고, 부족하면 진상 규명을 요청해야 하고, 진상규명이 되어도 그에 따르는 징계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징계를 요구해야 하고, 후속 조치로 이런 일의 재발을 방지하는 안전장치가 마련되지 않으면 입법 운동을 벌이거나 관련 조치를 요구하는 운동을 해야 합니다.
우선 돌아가신 분에 대해서는 명복을 빌고, 그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앞으로 어떤 안전 조치를 얼마나 마련할 것인지에 대해 우리가 더욱 주안점을 두어야 합니다. 그러나 당장 나서서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는 조금 더 진행 경과를 지켜보고 결정하는 게 좋겠습니다. 아직 진상 규명도 제대로 안 되어 있으니까요.
많은 제보가 들어오면서 이제 조금씩 진상이 밝혀지는 중이에요. 우연히 일어난 게 아니라 바로 몇 시간 전부터 위험하다고 계속 신고가 이어졌는데 제대로 대응이 안 됐습니다. 왜 대응이 안 됐을까요? 우리가 볼 때는 이상하지만, 마냥 욕할 일이 아니라 경찰 입장에서도 또 생각해 봐야 돼요. 무엇 때문에, 그 시간에 무엇을 하느라 그런 일이 벌어졌을까요? 진상이 많이 밝혀졌다고는 하지만 아직 명확하게 밝혀진 것 같지는 않습니다. 아직 공식적인 발표도 없었고요.
저도 그렇고 여러분도 그렇고 슬픈 마음이 드는 것은 충분히 이해가 되지만, 우리가 부모나 자식을 잃고도 살아가듯이, 그리고 전쟁으로 6천만 명이 죽어도 우리가 살아가듯이, 이미 일어나 버린 일은 어쩔 수가 없습니다. 이미 일어나버린 일을 가지고 계속 아파하는 것은 미래에 아무런 도움이 안 되는 감정 낭비나 다름없다고 생각합니다.
“국정조사 서명 운동을 비롯해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나름 한다고 했지만, ‘이렇게 한다고 과연 뭐가 되기는 할까’ 하는 무거운 마음과 답답함이 컸어요. 스님 말씀을 들으니까 너무 감정에 휩쓸려서 에너지를 낭비하기보다는 조금 더 관심을 갖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 서로에게 치유가 될 것 같습니다.”
“네. 북한 동포들이 굶어 죽고 있을 때 정토회에서는 백만인 서명 운동을 두 번이나 했는데, ‘그게 무슨 효과가 있었나’ 이렇게 생각하면 안 되겠죠. 그런 행동은 우리의 마음을 치유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굶어 죽는 사람들을 돕기 위해 무슨 운동이라도 해야 죄의식에서 벗어날 수 있잖아요. 사람이 굶어 죽는데 나는 밥 먹고 가만히 앉아만 있는다면 얼마나 큰 고통이에요? 그래서 그때 저는 ‘저들은 굶는데 나만 어떻게 배불리 먹을 수 있느냐’라고 하면서 70일 동안 단식을 했습니다. 또 이런 행동은 국민운동 차원에서도 효과가 있었어요. 북한 동포들이 굶어 죽는다고 해도 당장 우리 눈에는 안 보이니까 일상에 빠지기 쉬워요. 저라도 굶어서 제가 비쩍 말라죽어가는 모습을 보여주니까 사람들이 비로소 실감을 했습니다. 자기 눈에 보이니까요. 그래서 당시에는 북한 동포들 때문에 돈을 낸 게 아니라 스님이 굶는 것 때문에 돈을 낸 사람들도 많이 있었다고 해요.
세월호 사고 때도 마찬가지예요. 많은 사람들이 공분을 했지만 진상규명과 재발 방지를 위한 서명에 참여한 사람은 많지 않았어요. 그 정도로 공분했으면 천만 명은 서명할 것이라고 예상하고 1000만 서명운동을 했는데 300만 명 정도밖에 못했습니다. 모든 노조, 모든 종교가 다 참여했는데도 300만 명밖에 서명을 받지 못했는데 그중에 140만 명을 정토회에서 서명받았습니다. 이처럼 사람들은 감정에는 쉽게 휩쓸리지만 정작 행동은 잘하지 않아요. 그러니 어떤 경우에도 마음의 평정심을 유지하는 가운데 개선이 필요하면 작은 실천이라도 하는 게 수행자의 자세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이어서 질문들이 계속 이어졌습니다. 정토회 운영과 관련하여 다양한 질문들이 있었습니다. 답변을 다 한 후 12시가 다 되어 법회를 마쳤습니다.
스님은 곧바로 정토사회문화회관으로 이동했습니다. 오후 1시 30분부터는 정토사회문화회관 지하 대강당에서 ‘분열의 세계, 한반도 평화의 딜레마’를 주제로 평화재단 창립 18주년 기념 심포지엄을 시작했습니다.
행사를 시작하기에 앞서 스님은 발표자들에게 양해를 구했습니다.
“객석이 텅 비어 있어서 죄송합니다. 얼마 전에 국제행사를 했는데 코로나 환자가 많이 생겨서 후유증이 컸어요. 그래서 이번 심포지엄은 온라인 생중계로 하기로 했습니다. 유튜브로 많은 사람들이 시청하니까 양해를 해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방송으로 나가는 거니까 저희들도 가급적 대중이 이해하기 쉬운 용어로 발표하고, 진행도 텀 없이 매끄럽게 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1부는 ‘세계질서 재편과 남북관계’를 주제로 전재성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님과 김형석 전 통일부 차관님의 발표로 시작했습니다.
전재성 교수님은 초국가적 위협과 지구 거버넌스의 변화, 국제질서의 변화가 미중 갈등에 주는 함의, 변화하는 세계질서 속에서 한국의 외교 전략을 제안했습니다. 김형석 전 차관님은 세계질서 개편의 핵심 변수로 우크라이나 전쟁과 미중 갈등을 이야기하며 북한의 생존 전략과 현재 남북 관계의 상황을 다각도로 분석하고, 이념 중심이 아닌 실용 중심의 통일 2.0 시대를 열어갈 것을 제안했습니다.
패널로는 위성락 전 주 러시아 대사님과 이혜정 중앙대 국제정치학과 교수님이 나와 악화 일로를 걷고 있는 북미 관계와 남북 관계를 어떻게 해결해 나가면 좋을지 대안들을 이야기했습니다.
1부가 끝나고 잠시 휴식 시간을 가졌습니다. 스님은 발표자들과 차담을 나누면서 몇 가지 연구 과제를 제안했습니다.
“안 된다고만 하지 말고 불리한 조건 속에서도 유리한 부분을 계속 찾아내면 좋겠어요. 중국이 대부분을 갖고 있는 리튬이나 희토류 계통의 광물을 사용한 제품에는 미국에서 더 이상 보조금을 안 준다고 하니까, 한국의 대기업들이 큰 타격을 받게 되거든요. 자동차 가격만 해도 천만 원 정도의 차이가 생기고, 그만큼 보조금을 받지 못하면 제품의 경쟁력도 떨어지게 됩니다. 이런 광물이 나오는 나라가 호주, 칠레, 캐나다, 중국인데, 유럽 기업들은 호주, 칠레, 캐나다와 제휴를 맺고 있었던 반면 한국 기업들은 중국에 의존하다가 지금 낭패를 보고 있습니다.
이 시점에 남북관계를 잘 풀면 새로운 물꼬가 트입니다. 리튬이나 희토류 같은 광물이 북한에 대량으로 매장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런 부분을 잘 연구해 주셔서 기회를 살려내면 좋겠어요. 북한을 핵 문제로만 보지 말고 경제적 이익을 제시해서 미국을 설득하면 설득이 가능할 것 같거든요. 그리고 대기업은 보수 정부를 설득하기가 용이하고요. 이런 방법이 아니고서는 진영 논리에 자꾸 빠지는 길밖에 없거든요.”
“네, 좋은 제안이십니다. 저희가 연구해 보겠습니다.” (웃음)
휴식 시간에도 스님은 남북 관계의 해법을 찾기 위해 연구자들에게 계속해서 아이디어를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2부에서는 범위를 조금 더 좁혀서 ‘한반도 평화의 길을 찾아서’라는 주제로 백학순 김대중 학술원장님, 홍용표 한양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님, 장달중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명예교수님, 윤건영 국회의원이 자유롭게 토론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토론자 모두 전쟁의 위험이 높아지고 있음을 우려하면서 한반도에 평화를 가져오려면 정부의 외교 전략이 무엇보다 중요함을 강조하면서 나와 반대되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도 대화하려는 열린 장을 계속 만들어가야 한다고 이야기했습니다.
4시간의 토론을 끝내며 사회를 맡은 김영수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명예교수님이 마무리 멘트를 했습니다.
“요즘 우리 사회는 확증편향이 점점 심해지는 것 같아요. 코로나 시기 3년을 거치면서 사이버 세상 속에서 자기가 원하는 정보만 찾고, 그에 맞게 정보를 해석하려는 경향이 심해진 것 같습니다. 오늘 우리가 대화를 나누다 보니 마음속에 서로에 대한 편견이 없어지는 느낌을 받았듯이 편견을 걷어내는 일부터 우리가 하면 좋겠어요.
한반도 평화를 찾으려면 마음속에 있는 편견, 선입견, 두 마리의 개를 버려야 합니다. 대신에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개를 키워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발표자들과 패널 분들이 스님에게 마무리 말씀을 청했습니다. 스님은 4시간 동안의 토론을 지켜본 소감과 더불어 학자 분들에게 몇 가지 당부의 말씀을 해주었습니다.
“방금 사회자님께서 편견과 선입견, 두 마리의 개를 버리라는 아주 재밌는 말씀을 해주셨는데요. 사람이다 보니 우리는 항상 자기가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감촉하고, 생각한 것이 전부인 줄 알고 살아갑니다. 그래서 편견인 줄 모르고 편견을 가집니다. 이것을 불교에서는 ‘상을 짓는다’라고 표현해요. 금강경에는 ‘제상비상 즉견여래(諸相非相 卽見如來)’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이 모든 상이 상이 아닌 줄 알면 부처를 본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비록 이런 편견을 버릴 수는 없더라도, 편견인 줄을 알고 그 강도를 조금 누그러뜨리기만 해도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과 대화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우리가 보기에 북한은 많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북한이 UN에 가입한 국가이기 때문에 국가로서의 북한은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북한 정부의 봉건성이나 독재와 같은 문제는 비판적으로 바라봅니다. 그러나 북한 주민들에 대해서는 우리가 같은 사람으로서 그들의 고통을 아파하고 함께하려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전 세계인과 마찬가지로 북한 주민들에게도 행복할 권리가 있습니다. 그들의 정치 체제가 어떻든, 배고프면 먹을 권리가 있고, 병들면 치료받을 권리가 있어요. 인도적 지원은 정치 체제나 이념, 종교, 피부 빛깔 등을 떠나서 이뤄져야 합니다. 이것은 유엔에서 이미 전 세계가 합의를 본 사안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쓰는 ‘북한’이라는 용어는 국가를 뜻할 때도 있고, 정부를 뜻할 때도 있고, 국민을 뜻할 때도 있습니다. 북한을 돕자고 할 때는 북한 주민을 돕자는 뜻이고, 북한을 비판할 때는 북한 정부를 비판하는 것이고, 북한을 인정하고 존중하자고 할 때는 국가로서의 북한은 존중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뜻이에요. 사우디아라비아 같은 왕정국가도 우리가 국가로서 존중하고 외교 관계를 맺어나가고 있잖습니까. 이렇게 ‘북한’이라는 하나의 표현 안에는 맥락에 따라 다양한 뜻이 있는데 우리가 용어를 다르게 구분해서 쓰지 않다 보니 오해가 많이 발생하는 것 같아요. 북한을 돕자는 말이 북한 정부를 돕자는 뜻이라는 오해를 사기도 하고, 북한을 비판하는 말이 마치 북한 국가를 비판하는 것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이런 데서 편견이 지금 큰 문제인 것 같아요. 미국에서도 북한은 별나라에서 온 이상한 사람들이라는 시각이 팽배합니다. 굳이 ‘악마’와 같은 용어를 안 쓰더라도 이런 편견을 갖고 있는 데다 오늘날의 민주주의는 여론을 중시하다 보니 북한과의 관계를 풀어나가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그런 면에서, 여론을 무시하는 트럼프 대통령은 자칫 잘못하면 전쟁을 할 위험도 있는 반면 협상할 수 있는 용기도 있는 참으로 묘한 양면성을 보여주었다고 생각합니다.
북한은 특수한 체제입니다. 문제도 많지만 우리 민족이고, 우리가 평화를 유지해야 하는 상대이자 통일을 이루어야 할 대상이기도 합니다. 우리나라에 이롭도록 하려면 이런 체제를 가진 나라와의 관계를 어떻게 함께 잘 풀어나갈지 고민이 필요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국가 안위를 지키기 위해서는 안보도 필요하지만 또한 전쟁 위험을 줄이기 위해서는 대화도 필요합니다. 이런 양쪽의 의견을 우리가 ‘강경론이다’, ‘끌려다닌다’ 이렇게만 평가할 수는 없습니다.
오늘 발표자들과 패널 분들의 말씀을 들으면서 ‘밤이 깊으면 새벽이 가깝다’라는 말이 생각납니다. 지금 놓인 현실만 보면 우리가 매우 어려운 상황에 처한 것은 사실인 것 같아요. 미중 관계나 미러 관계, 남북 관계 모두가 굉장히 어렵습니다. 그러나 이런 어려운 시기 속에서도 우리는 긍정적인 요소를 찾아볼 수 있어요. 고구려, 발해 멸망 이후 천 년 만에 대한민국이 이 정도의 능력을 갖고 있을 때도 없지 않았습니까? 경제적인 능력뿐만 아니라 군사력이든 문화적 힘이든 국민들의 재능이든 긍정적인 요소도 무척 많은데, 여기서 멈추고 포물선을 그리며 주저앉기에는 너무나 안타깝고 아깝지 않습니까?
우리가 여기서 조금만 포용성을 발휘해서 주변을 살피고, 여야가 손잡고 힘을 합쳐 어떤 방법을 연구한다면, 여기서 우리는 다시 한번 더 도약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늘 부러워하던 영국이나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에 버금가는 나라를 만드는 것이 꿈이 아니라 현실로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이 지금 열려 있어요. 가능성이 열려 있다고 해서 꼭 그렇게 된다는 보장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가능성을 향해서 희망을 가지고 아무리 어렵더라도 한번 실현해 보겠다는 원을 가져보면 좋겠습니다.
오늘 발표해 주신 학자 여러분, 정치인 여러분, 시민사회 여러분께서도 자꾸 안 된다고 생각하지 마시고, 되는 쪽으로 좀 연구를 해주시면 어떨까 해요. 항상 우리는 되고 나면 ‘될 수밖에 없었다’라고 하고, 안 되면 ‘애초에 안 될 일이었다’ 이렇게 평가하거든요. 우리 모두 평가하는 사람이 되지 말고, 희망을 현실로 만들어가는 사람이 되면 좋겠습니다.”
큰 박수와 함께 심포지엄을 마쳤습니다. 유튜브 생방송을 종료하고, 발표자, 패널, 사회자 모두가 무대 위에 서서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스님은 발표자들을 현관까지 배웅한 후 곧바로 서초법당으로 이동해 저녁 7시 30분부터 저녁반 회원들을 위해 수행법회 생방송을 시작했습니다.
저녁에도 으뜸절 실천활동, 나비장터와 김장축제, 파키스탄 홍수 피해 구호활동을 영상으로 함께 본 후 즉문즉설 시간을 가졌습니다. 개인 고민을 비롯해 수행법, 사회문제 등 다양한 질문들이 이어졌습니다.
대화를 마치고 나니 밤 9시가 넘었습니다. 스님은 원고 교정과 여러 업무들을 보고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내일은 오전에 회의를 한 후 10시에 서울을 출발해 다시 두북 수련원으로 이동하고, 저녁에는 정토경전대학 반야심경 생방송 수업을 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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