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2.8.17 무씨앗 파종, 수행법회
“만일 중 마지막 백일만 함께 해도 절반은 한 거예요, 그 이유는...”

안녕하세요. 두북 수련원의 아침이 밝았습니다. 오늘도 새벽 기도와 명상을 마친 후 농사일을 하며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오늘은 무슨 일을 할까... 8시부터 회의라서 울력 시간이 짧네. 비 예보도 있고...”

고민하던 스님은 농사팀이 무슨 일을 하는지 물어보았습니다. 농사팀은 오늘 앞밭에 무씨앗을 심는다고 했습니다. 스님도 함께 무를 심기로 하고 앞 밭으로 갔습니다. 농사팀장에게 무슨 일을 하면 좋을지 물었습니다.

“제가 무슨 일을 할까요?”

“유박 비료를 주셔도 되고, 유박을 준 곳에 무씨앗을 심으셔도 됩니다.”

“더 필요한 일이 뭐예요?”

“유박을 먼저 주시면 좋죠.”

“그래요.”

얼마 전에 단호박을 수확한 자리였습니다. 비닐을 걷어내지 않고 그대로 둔 채 단호박을 심었던 그 자리에 무씨앗을 심었습니다.

“작년에 제가 알려준 방법대로 하고 있네요. 작년에 옥수수를 수확하고 나서 그 밭에 무를 심자니까 농사팀이 힘들어했어요. 그래서 제가 비닐을 걷지 말고 바로 그 자리에 심자고 아이디어를 줬거든요.”

“네. 비닐을 재사용할 수 있어서 좋습니다.” (웃음)

스님이 파종기로 땅을 푹 찍으면 행자님이 유박을 한 줌씩 넣었습니다. 파종기는 원래 씨앗을 심을 때 쓰는 도구지만, 비료 주기에도 좋았습니다.




파종기로 땅을 찍는데 돌이 쾅 부딪혔습니다. 스님은 호미로 큰 돌을 빼내가며 계속 유박을 주었습니다.

“아니, 저번에 공동체 식구들과 함께 돌을 다 주웠는데 어떻게 이렇게 큰 돌이 남아있지?”

“아무래도 돌이 자라는 것 같습니다.” (모두 웃음)

끝쪽에 단호박 줄기가 아직 남아있었습니다. 줄기와 뿌리를 걷어내고 끝까지 무를 심었습니다.

유박을 다 주고 무씨앗을 심었습니다. 유박 위로 흙을 덮은 위에 무씨앗 두 개를 놓고 흙을 살짝 덮어주면 됩니다. 이번에도 2인 1조로, 행자님은 유박을 흙으로 덮고 스님은 무씨앗을 심었습니다,




옆줄에서 무씨앗을 심던 농사팀이 스님과 점점 거리를 좁히더니 조금 앞서기 시작했습니다.


“와, 우리가 스님보다 빠르네요.”(웃음)

어떤 일이든지 앞서 나가는 스님인데 웬일인지 행자조가 앞질러 갔습니다. 그런데 한 줄을 끝내고 보니 스님은 씨앗을 흙으로 덮는 작업까지 하고 있었고 농사팀은 씨앗만 땅에 두고 있었습니다.

“앞서가는 이유가 있었네요.”

7시 30분이 되어 울력을 마쳤습니다.

“자, 갑시다.”

아침 울력을 마치고 두북 수련원으로 돌아와 8시부터 상임 천일준비위원회(천준위)와 화상으로 회의를 했습니다. 천준위에서는 다음 3년인 2-1차 천일결사부터 정토회의 조직을 어떻게 개편할 것인지 여러 가지 방안을 마련해 와서 스님의 조언을 듣고 함께 토론을 했습니다.

회의를 마치고 10시부터는 수행법회 생방송을 시작했습니다. 오늘은 한 달에 한 번 주간반 정토회 회원들을 위해 오전에 수행법회를 하는 날입니다.

먼저 스님은 지난 주말에 수해 복구 봉사활동에 참여해 준 정토회 회원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지난주 화요일과 수요일에는 서울에 폭우가 쏟아져서 수해 피해가 많았습니다. 특히 서울 강남구에 위치한 판자촌 구룡마을에도 피해가 크게 났다고 해서 지난 목요일에는 정토회 자원봉사자들이 가서 수해 복구 작업을 했습니다. 저도 여기서 농사를 짓다가 소식을 듣고 올라가서 일손을 보탰어요. 수해 현장과 복구 작업하는 모습을 담은 영상을 SNS에 올렸더니 주말 연휴 3일 동안 매일 100명 이상이 자원봉사를 와주셨고, 총 444명이 참가해서 수해를 입은 사람들에게 많은 도움을 주셨습니다. 수해 복구 봉사활동에 이렇게 많이 참여해 주신 정토회 회원 여러분께 감사 말씀을 드립니다.”

이어서 8월 말에 열리는 정토회 1차 만일결사의 마지막 100일 기도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8월 28일에는 정토회 만일결사 중 제10차 천일결사, 그중 제일 마지막인 10차 백일기도에 입재하게 됩니다. 만일결사의 마지막 100일 기도입니다. (웃음)

마지막 백일만 함께 해도 절반은 한 거예요, 그 이유는...

지난 30년 동안 한 번이라도 만일결사에 동참해서 기도한 사람이 3만 4천 명 정도 된다고 해요. 현재 기도에 동참하고 있는 사람들이 1만 2천 명 남짓 되니까 2만 2천 명 정도는 기도하다가 중도에 그만뒀다는 뜻이죠.

그러니 이번 마지막 100일 기도에는 중간에 그만둔 분들을 포함해서 우리 주위에 도반들에게 모두 연락을 해보면 좋겠습니다. 정토회를 다니든 안 다니든, 정토회를 그만뒀든 안 그만뒀든, 현재 기도를 그만뒀든 안 그만뒀든, 모든 분들에게 연락을 해서 만일결사의 마지막 100일은 다 같이 마음을 내서 100일 기도를 한 후 지난 만일을 함께 회향하면 좋겠습니다.

입재식과 회향식에만 와도 기도의 절반은 한 것입니다. 백일 중 이틀 참가했다고 2%만 한 게 아니라 절반을 한 것과 다름없습니다. 입재식과 회향식에 참여한다는 것은 기도는 못 했지만 ‘수행을 해야 한다’ 하는 그 정신과 관점은 잊지 않고 있었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여러분도 만일결사의 마지막 회향에 꼭 참여해서 만일결사 동참자로서의 책임을 다해주시기 바랍니다.

‘마지막 100일은 우리 모두가 함께 하자’

주변에 모두 연락해서 이렇게 제안을 해 주세요.”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천일결사 또는 만일결사에 참여하면서 느낀 점이나 자기 변화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30년 전인 제1차 천일결사, 1차 백일기도부터 시작한 분이 먼저 담담하게 소감을 이야기했습니다.

“기도하다 보니까 어느 날 ‘어, 내가 당당해졌네’ 이걸 느끼게 되었어요. 남편하고의 관계에서도 네 거, 내 거 따지던 분별심이 없어졌고요. 참 부족한 사람이라고 남편 탓을 하면서 항상 자만하고 교만 부리며 살았는데 그런 제 꼬라지를 알게 되었어요.”

스님도 웃으며 이야기했습니다.

“1-1차부터 기도를 하셨으면 저랑 동기네요. 30년 동안 기도를 하시다니 대단하십니다.” (웃음)

불과 얼마 전인 제10차 천일결사, 8차 백일기도부터 시작한 청년도 소감을 이야기했습니다.

“큰오빠랑 원수 같은 사이였는데, 어느 날 기도하면서 그게 나투어지더라고요. ‘아, 오빠도 살려고 그렇게 했구나’ 이렇게 진심으로 오빠를 이해하게 되는 경험을 하고 나서 지금은 오빠랑 연락도 하며 잘 지내고 있습니다.”

스님도 웃으며 이야기했습니다.

“10-8차부터 기도를 하셨으면 정말로 막차를 타셨네요. 막차를 타도 만일결사에 동참한 겁니다. 잘하셨어요.” (웃음)

젊었을 때 기도를 시작해서 지금은 백발의 노인이 된 분도 있었고, 기도를 시작한 지 200일 밖에 되지 않은 청년도 있었습니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지난 30년의 세월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정말로 만일결사가 막바지에 이르고 있다는 것이 실감이 났습니다.

이어서 스님은 정토회가 온라인으로 전환할 수 있었던 이유를 비롯해 지금 시도별로 으뜸절을 마련한 배경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정토회가 최근에 온라인으로 전환하기 전인 30년 전부터 정토행자들은 각자 자신의 집에서 아침 기도를 해왔습니다. 그 덕분에 정토회가 온라인으로 전환이 가능했던 거예요. 다른 일반 사찰은 이렇게 온라인으로 전환하기가 어렵습니다.

정토행자들은 어차피 ‘내 법당’에서 기도한 경력이 30년이 되다 보니 오히려 온라인으로 바뀌고 나서 더 좋아졌어요. 예전에는 방에 녹음기를 틀어놓고 기도를 해야 했는데, 이제는 핸드폰에서 생방송 주소줄만 딱 누르면 기도하기 페이지가 나오잖아요. 그리고 매주 토요일 아침마다 생방송으로 스님의 법문을 들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굳이 법당까지 차 타고 오지 않아도 이제는 내 방에서 아침에 눈 뜨자마자 한 시간 기도하고, 매주 수요일에는 법문도 들을 수 있게 된 거예요. 게다가 요즘에는 온라인으로 명상도 할 수 있습니다. 한 달에 한 번은 주말 온라인 명상에 참가할 수 있고, 4박 5일 명상은 1년에 네 차례 참가할 수 있고, 6박 7일 명상은 1년에 두 차례 참가할 수 있어요. 즉 내 방이 곧 법당이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세 가지의 서로 다른 공간을 갖고 살았습니다. 집이라고 하는 생활공간, 사무실이라고 하는 일터, 절이라고 하는 수행 공간, 이렇게 따로따로 살았어요. 그래서 내가 집이라는 생활공간에서 지낼 때는 사무실이 비어 있고, 내가 사무실에 가면 집이 비어 있고, 내가 절에 가면 사무실과 집이 비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온라인으로 전환되니까 이 세 가지가 통합이 된 겁니다.

3차원의 삶에서 4차원의 삶으로

얼마나 좋아요? 같은 공간이 시간에 따라서 여러 가지 공간으로 바뀌잖아요. 기존의 차원에 한 차원이 더 생겼습니다. 1차원은 수직선, 2차원은 평면, 3차원은 공간, 4차원은 여기에 시간이 하나 더해진 거예요. 같은 공간인데 시간에 따라서 공간이 달라지는 겁니다. 아침에 기도할 때는 내 방이 법당이 됐다가, 아침 먹을 때는 생활공간이 됐다가, 재택근무하면서 회의를 할 때는 사무 공간이 됐다가, 법회를 들을 때는 다시 법당이 됐다가, 저녁에 잘 때는 다시 생활공간이 됩니다. 이렇게 공간의 활용도가 굉장히 높아졌습니다.

공간의 활용도가 높아지려면 이처럼 시간에 따른 공간의 용도가 명확하게 나눠져야 해요. 그런데 여러분은 그렇지 못하죠. 법문을 들을 때도 소파에 누워서 TV를 보듯이 편하게 듣고, 일을 할 때도 생활공간에서 그냥 잠깐 일하듯이 하기 때문에 ‘재택근무하면 효율이 안 오르고, 집중이 잘 안 된다’ 이런 문제를 제기하게 되는 겁니다.

집에서는 기도가 잘 안 되기 때문에 법당에 가서 기도해야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그것은 아직 시간에 따른 용도를 딱 구분을 못 하고 있어서 그래요. 아직도 3차원에 살고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이니까 이제는 4차원으로 이동해야 합니다. 시간에 따라서 딱 공간이 분리돼야 해요. 겉으로는 같은 공간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시간에 따라 다른 공간, 다른 차원이 될 수 있습니다.

공간은 그냥 공간일 뿐이에요. 어떤 마음을 갖고 있느냐에 따라서 성스러움과 성스럽지 않음이 결정되듯이 법당과 사무실도 내가 어떤 마음을 갖고 있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거예요. 그러니 오늘처럼 법회에 참석하거나 아침 기도를 할 때는 내 방의 편안함만 생각하지 말고 ‘지금 나는 법당에 들어왔다’ 이런 관점을 갖고 참석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마음의 고향과 같은 으뜸절

정토회가 온라인으로 바뀌면서 지난 2년간은 온라인 시스템을 마련해서 온라인으로 전법을 하는 데만 집중을 했습니다. 그래서 전법을 할 수 있고 시간도 그만큼 낼 수 있는 사람을 우선적으로 교육하고 훈련시켰습니다. 그렇게 해서 새로 탄생한 사람들이 바로 전법활동가입니다.

이제 다음 단계에서는 정토회 전체 회원들이 오프라인에서 좀 더 참여할 수 있는 공간들을 마련해 나가고자 합니다. 법문을 듣고 수행하는 것은 다 온라인으로 진행이 가능해졌어요. 그러나 온라인으로만 모든 활동이 이뤄질 수는 없고, 오프라인에서도 활동을 해야 하잖아요. 그래서 이제 다음 단계에서는 오프라인 활동을 준비해야 합니다.

예전에는 법당이 도시별로 있었지만 법당의 기능은 모두 온라인 공간에서 해결하게 되었으니까 이제는 시도별로 으뜸절이라는 공간을 마련해서 다양한 용도로 활용하려고 해요. 첫째, 종교적인 위로를 받는 공간으로 으뜸절이 활용될 수 있습니다. 사람이 죽었을 때 49재도 지내고, 직접 찾아가서 예불도 하고, 불공도 드리고, 기도도 하는 종교적인 공간으로 쓰일 수 있겠죠. 둘째, 4월 초파일 행사를 비롯한 문화 행사를 치르고, 전통문화를 이어가는 공간으로 활용하려고 합니다. 셋째, 명상하고 절도 하는 수행 공간으로도 활용하려고 합니다. 넷째, 농사를 짓는 등 생산 활동의 공간으로 활용될 수 있어요. 각자 안 쓰는 물건을 가져와서 서로 교환하는 재활용 유통 시스템도 갖추고, 특히 안전한 먹거리를 회원들이 구입할 수 있는 공간으로도 쓰일 수 있겠죠. 다섯째, 누구나 늙으면 이곳에 와서 살 수 있는 요양 공간으로도 활용하려고 합니다. 여섯째, 가족과 함께 와서 산책을 하거나 휴식을 하는 공간으로도 활용하려고 합니다. 누구나 주말에는 1박 2일로 이곳에 와서 봉사를 하고, 아침에는 발우공양도 같이 하고, 농사일도 하고, 이런 식으로 쓸 수 있도록 주말 출가 프로그램 같은 것도 마련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은퇴하신 분들 중에 자기 생활을 독립적으로 유지하겠다는 사람은 동네에 집을 하나 얻어놓고 으뜸절을 오가면서 생활할 수도 있고, 아예 으뜸절에 들어와서 살겠다는 사람은 들어와서 살 수 있도록 할 생각이에요. 이렇게 해서 으뜸절은 회원 여러분들의 마을 공동체이자 고향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가려고 합니다.

이런 뜻을 담아 으뜸절을 가꾸어가는 작업을 이제 막 시작했습니다. 온라인 공간에서 불교대학을 운영하거나 경전대학을 운영하는 일은 전법활동가들이 중심이 되어서 이끌어가고, 으뜸절을 중심으로 우리 삶의 종합적인 웰빙 공간을 마련하는 작업은 회원 여러분들이 중심이 되어서 해나가려고 해요. 나아가서는 회원 여러분들이 으뜸절 운영에 대한 결정권까지 가질 수 있도록 해나갈 생각입니다.

그러니 주말에 틈나는 대로, 혹은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으뜸절에 오셔서 봉사도 하고 쉬다 가시기 바랍니다. 앞으로는 꼭 봉사를 하지 않고 그냥 놀러 와도 됩니다. 정토회 회원이라면 누구든 차도 한 잔 마실 수 있고, 요즘은 코로나 때문에 도시락을 싸와야 하지만 앞으로는 간단한 국수 정도는 먹을 수 있도록 하려고 해요. 이렇게 자연 속에서 휴식할 수 있는 종합 웰빙 공간으로 으뜸절을 가꾸어나갈 계획입니다.”

이어서 궁금한 점에 대해 질문을 받았습니다. 천일결사의 목표, 은퇴 후의 삶, 마음 나누기 등에 대해 질문을 받고 답변을 한 후 법회를 마쳤습니다.

오후에는 무더위를 피해 실내에서 업무를 보았습니다. 언제나 도움을 주시는 사회인사분들께 보낼 쌀을 포장해서 선물로 보내는 일도 하고, 원고 교정도 보았습니다.

해가 저물고 저녁 7시 30분이 되자 스님은 다시 방송실 카메라 앞에 자리했습니다. 이번에는 저녁반 정토회 회원들이 화상회의 방에 입장한 가운데 수행법회 생방송을 시작했습니다.

오전 법회처럼 구룡마을 수해복구 모습과 주말에 으뜸절에서 있었던 활동 모습을 영상으로 함께 본 후 지난 30년 동안 만일결사 또는 천일결사에 동참한 분들의 소감을 들어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스님이 최근에 정토회가 온라인으로 전환한 것이 갖는 의미와 이후 으뜸절 가꾸기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마지막에는 궁금한 점에 대해 질문도 받았습니다.

여러 명이 손들기 버튼을 누르고 자유롭게 질문을 했습니다. 그중 한 명은 타인의 불행 위에 나의 행복을 쌓아서는 안 된다는 말과 주어진 상황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라는 말이 헷갈린다며 정확한 뜻이 무엇인지 질문했습니다.

타인의 불행 위에 나의 행복을 쌓지 마라, 어떤 뜻인가요?

“지난주 법회에서 스님이 수해 복구하는 모습을 영상으로 보니까 스님께서 자원봉사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시는 장면이 나왔습니다.

‘남의 집에 수해가 나서 청소를 돕는 게 낫습니까, 우리 집에 수해가 나서 남들이 청소해 주는 게 낫습니까? 내가 봉사를 하는 게 훨씬 더 이익입니다. 그러니 기쁜 마음으로 해야 합니다.’

그 말씀을 들으니 궁금증이 들었습니다. 스님께 불법을 배우기로는 ‘타인의 불행 위에 나의 행복을 쌓아서는 안 된다’라고 배웠잖아요. 스님께서 ‘내가 수해를 안 당한 것이 훨씬 더 이익이다. 그러니 기쁜 마음으로 봉사해야 한다’라고 말씀하신 의도는 알겠어요. 이왕 봉사를 할 바에는 기쁘고 즐겁게 봉사하라는 뜻은 알겠습니다. 그런데 저도 모르게 한편으로는 ‘우리 집에 수해 안 난 게 다행이다. 또 어제 죽은 사람도 있는데 나는 지금 이렇게 살아 있으니 참 다행이구나’ 이런 마음이 들면서, 그 사람들의 불행 위에 제 행복을 쌓고 있는 건 아닌지 의문이 들더라고요. 혼란스러운 마음에 질문드립니다.”

“남을 밟고 올라가서 승리했다고 기뻐한다면 타인의 불행 위에 자신의 행복을 쌓는 것에 해당합니다. 그런데 이미 일어나버린 일에, 다시 말해 내가 남을 밟거나 해를 끼치겠다는 의도 없이 일어나버린 일에서 내가 불행을 겪었다면 이 불행마저도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마인드를 가져야 해요. ‘우리 집이 수해를 안 당했으니 다행이다’라는 표현은 그런 관점에서 말씀드린 거예요.

우리 집이 수해를 안 당하게 하려고 내가 물꼬를 저쪽으로 터서 남의 집에 수해가 나고 나는 수해를 피했다면 이런 게 타인의 불행 위에 자신의 행복을 쌓는 예가 되겠죠. 몇 년 전에 두만강변에 큰 홍수가 났을 때 북한 쪽은 제방이 잘 안 갖추어져 있고, 중국 쪽은 그래도 제방이 좀 잘 갖추어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비가 하도 많이 와서 제방을 잘 갖추어진 중국 쪽에도 물이 막 넘치게 되었어요. 그러자 중국 쪽에서 좋은 장비를 동원해 신속하게 제방을 추가로 보강했어요. 그렇게 해서 양측이 모두 수해를 피했다면 좋았겠지만, 물의 양은 많고 중국 쪽에서만 일방적으로 제방을 튼튼하게 하다 보니 결국은 강 반대편으로 물이 모두 밀려가서 북한 쪽이 완전히 물바다가 돼 버렸습니다. 이럴 때 중국이 ‘아, 우리는 수해 안 나서 좋구나!’라고 한다면 이런 게 타인의 불행 위에 자신의 행복을 쌓는 것에 해당해요. 선거에 출마해서 상대 후보를 비방하는 흑색선전을 펼친 끝에 내가 이겼다고 좋아한다면 그것도 타인의 불행 위에 자신의 행복을 쌓는 예라고 할 수 있겠죠.

질문하신 수해 사례를 좀 더 살펴봅시다. 우리가 가서 남의 집 수해 복구 작업을 돕다 보면 이런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내가 우리 집도 청소를 제대로 안 하고 사는데 무엇 때문에 남의 집에 와서 수해 복구 작업을 도와주고 있지?’

실제로 우리가 봉사를 해보면 그런 경우가 많아요. 우리가 가서 도울 때 집주인도 함께 일하는 경우도 있지만, 집주인이 마치 우리를 노동자 부리듯이 부리는 경우도 있거든요. 이거 해라, 저거 해라, 자시를 듣다 보면 돕다가도 기분이 좀 나빠지는 거예요. (웃음) 정작 집주인은 아무것도 안 하고 떡하니 서 있고, 우리는 마치 노동자처럼 와서 일하고 있잖아요. 임금을 받는 것도 아니고 참이 나오는 것도 아닌 데 가서 일을 하다 보면 약간 언짢을 때도 있고, 일이 고되다 보니 지치기도 하거든요. 봉사자들이 마치고 나서 ‘그런데 그거 엄청나게 힘들었어요!’ 이러잖아요. 저도 그날 옷이 다 젖을 정도로 땀을 많이 흘렸어요. 그래서 제가 봉사를 마치고 둘러서서 이야기를 나눌 때 이렇게 물었습니다.

‘우리 집에 수해가 나면 그걸 치울 거예요, 안 치울 거예요?’

‘치울 겁니다.’

‘그래요. 우리 집에 수해가 났는데 그걸 남더러 치우라고 하겠어요? 마땅히 내가 치워야 해요. 그렇다면(어차피 치워야 한다면) 우리 집에 수해가 나서 내가 치우는 게 나을까요, 남의 집에 수해가 난 것을 내가 가서 치워주는 게 나을까요?’

우리는 남의 집 수해 현장을 ‘치워준다’라고 생각하지만, 이건 나는 수해를 안 입은 상태에서 수해를 당한 사람을 조금 돕는 정도잖아요. 우리 집이 수해를 당했다면 내가 손해도 보고 일도 해야 하는 상황일 텐데, 남의 집이 당했다면 나는 아무 손해를 보지 않고 일만 조금 해주면 되는 거예요.

이런 ‘긍정적 마인드’는 법문에서 여러 번 말씀드렸습니다. 중풍에 걸려 몇 년째 누워 있는 남편을 간호하다 보니 더 이상 못 하겠다, 도망가고 싶다고 하소연한 질문자가 있었어요. 간호는 질문자가 하는데 짜증은 남편이 낸다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이렇게 물었습니다.

‘그러면 내가 아파서 다른 사람이 똥을 받아내도록 그렇게 누워 있는 게 나을까요? 아니면 내가 건강해서 남의 똥을 받아내는 게 나을까요? 어느 쪽이 낫겠어요?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어느 쪽을 선택할래요?’

내가 침대에서 못 일어나고 누워 지내느라 다른 사람이 내 똥을 받아내도록 하는 것보다는 내가 건강해서 남의 똥을 받아내는 게 낫잖아요.

이처럼 두 사람 중 질문자의 처지가 낫고 남편 처지가 못하니까 남편이 짜증을 내는 것도 당연해요. 그런데 우리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내가 직장 다녀와서 피곤한데도 너를 이렇게 뒷바라지해 주었는데 왜 네가 짜증을 내냐?’

그 말도 맞기는 하지만, 그건 두 사람의 처지가 똑같다고 보는 시각이에요. 객관적으로 보면 한 사람은 환자고 한 사람은 건강한 사람이잖아요. 남편이 그리 좋아 보이면 본인이 가서 누워 있어 보라는 거예요. 남편더러 서로의 처지를 바꾸자고 해보면 금방 바꿀 겁니다. 내가 건강해서 남을 돕는 게 낫지, 내가 누워서 간호받는 게 낫겠어요? 그런데 우리는 생각을 잘못해서 불평을 늘어놓기 쉬워요.

그게 바로 ‘지금의 내 처지가 좋은 처지’라는 말의 뜻입니다. 좋은 처지를 불평하지 말라는 것은 타인의 불행에 자신의 행복을 쌓는다는 것과는 조금 다른 개념이에요. 마음을 긍정적으로 가지라는 관점에서 하는 얘기입니다.”

“그러면 ‘우리 집에 수해가 안 난 건 다행이구나’ 이렇게 받아들이는 마음이 안 생기도록 계속 수행 정진을 해야 할까요?”

“우리 집에 수해가 안 나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게 뭐가 나빠요? 내가 ‘우리 집에 수해가 안 나서 다행이다’라고 해서 남에게 해를 끼친 게 뭐가 있어요?”

“아,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 외에도 여러 질문을 받고 답변을 한 후 다음 이 시간을 기약하며 생방송을 마쳤습니다. 방송실을 나오니 밤 9시가 훌쩍 넘어 있었습니다.

내일은 아침에 농사일을 한 후 하루 종일 두북 수련원을 찾아온 손님들과 대화를 나누며 시간을 보낼 예정입니다.

전체댓글 45

0/200

엄수복

감사합니다

2022-08-24 17:29:00

보각

감사합니다 스님

2022-08-23 17:24:07

보리수

입재식과 회향식에 참여한다는 것은 기도는 못 했지만 ‘수행을 해야 한다’ 하는 그 정신과 관점은 잊지 않고 있었다는 뜻!! 불평할 것 하나 없다, 감사할 일만 있구나~ 고맙습니다!

2022-08-23 16:2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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