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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두북 수련원의 아침이 밝았습니다. 오늘은 정토회 만일결사 중 제10차 천일결사 제9차 백일기도 입재식이 있는 날입니다. 개인은 행복하고, 사회는 평화로우며, 자연은 아름다워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벌써 9,800일을 달려왔습니다.
평소와 똑같이 천일결사 기도를 한 후 농사일을 하며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해가 뜨기도 전에 대숲으로 가서 죽순을 채취해 왔습니다. 죽순을 삶기 위해 가마솥을 걸고 불을 지핀 후 논으로 나갔습니다.
어제에 이어 모내기 2일째에 접어들었습니다. 어제 300평 논을 마무리하고, 오늘은 800평 논에서 모내기를 했습니다. 묘당 법사님이 이앙기를 몰고 논으로 들어갔습니다. 어제 시행착오가 많았던 덕분인지 오늘은 한결 작업이 수월했습니다.
어제보다 모가 제법 똑바르게 심어져 나갔습니다.
“어제보다 훨씬 똑바르게 심어지고 있어요!”
스님이 큰 목소리로 응원을 해주었습니다. 이앙기가 한 번 왕복하면 스님과 행자님들이 이앙기에 새로운 모판을 가득 실었습니다.
“자, 출발~!”
옛날 같으면 사람이 손으로 줄을 맞춰서 심어야 했던 일인데 요즘은 기계가 다 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손으로 거들어야 하는 일이 많았습니다.
“저는 아랫 논에 가서 준비 작업을 미리 해둘게요.”
800평 논은 묘당 법사님과 행자님들에게 맡기고, 스님은 아랫 논으로 향했습니다.
스님은 모판에 물을 듬뿍 준 후 농업용수가 지나가는 관을 수리했습니다. 관이 하수구 바닥에 떨어져 있어서 제자리를 잡아준 후 물이 새는 곳을 발견하여 막음질을 했습니다.
“지금 몇 시예요?”
“8시 30분입니다.”
“아이고, 곧 있으면 입재식이네요. 얼른 마무리하고 내려갑시다. 저는 일이 늦어질 걸로 예상해서 어젯밤에 미리 머리를 깎았어요.”
모가 심어진 논을 뒤로하고 두북 수련원으로 돌아왔습니다.
오전 9시 30분에 정토회 만일결사 중 제10차 천일결사 제9차 백일기도 입재식 생방송을 시작했습니다. 스님은 두북 수련원의 방송실에서 행사에 참석했습니다.
전 세계의 정토행자들도 생방송으로 함께 했습니다. 먼저 국내외에서 몇 명이 함께 하고 있는지 지부별 소개 시간을 가진 후 큰 박수로 행사를 시작했습니다.
대표님 인사 말씀, 지난 백일 간의 발자취, 지난 백일의 약속 활동보고, 수행담을 차례대로 들었습니다. 가슴 뭉클한 수행담에 이어서 천일결사자 포살법회를 했습니다.
“첫째, 매일 새벽 5시에 정진한다. 이 계본에 대해서 청정합니까?”
어떤 행자라도 계본을 어기면 세 번 절하면서 참회를 했습니다. 정토행자들은 10가지 계본에 대해 참회를 한 후 스님에게 8차 백일기도 회향 법문을 청했습니다.
스님은 수행이란 무엇인지, 정토회가 지난 9800일을 이어올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 법문 했습니다.
“오늘은 제10차 천일결사 8차 백일기도 회향일입니다. 지난 100일을 돌아보면서 처음 입재해서 100일 동안 빠지지 않고 수행정진해 온 신규 입재자 여러분께 진심으로 축하를 드립니다.
옛날부터 어떤 일을 결심하면 3일을 넘기기 어렵다는 말이 있는데, 여러분들은 거뜬히 3일을 넘기고, 일주일을 넘기고, 열흘을 넘기고, 한 달을 넘기고, 두 달을 넘기고, 석 달을 넘기고, 이렇게 백일에 이르렀습니다. 백일을 지나고 보니까 자기 모습을 좀 알 것 같아요?
원래 전통적으로 ‘백일기도를 해야 내 꼬라지를 좀 안다’ 이런 말이 있어요. 백일기도를 하고 나면 ‘내가 고집이 세구나’, ‘내가 욕심이 많구나’, ‘내가 짜증이 많구나’, ‘내가 잔소리가 많구나’, ‘내가 사랑고파병이 있구나’, ‘내가 의지심이 많구나’ 이렇게 자기에 대해서 좀 알게 됩니다. 고치라는 뜻이 아니에요. ‘내가 이런 모습이네’ 하고 자각을 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이 정도만 되어도 굉장한 거예요. 소크라테스도 ‘너 자신을 알라’ 이렇게 말했잖아요. 남을 알기는 쉬운 반면 자기를 알기는 정말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실은 남도 알기가 어렵습니다. 결혼해서 30년을 같이 살아도 우리 남편, 우리 아내의 속심을 모르잖아요. 친구로 30년을 지내도 진짜 속마음이 뭔지 모르겠다고 말하잖아요.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알기 어렵다는 말도 있습니다. 그래도 남의 마음은 조금이라도 알 수가 있는 반면에 정작 자신의 마음은 자신이 전혀 모르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예수님도 ‘남의 눈의 티끌은 보면서 제 눈에 대들보는 못 본다’라고 하셨죠. 남은 좀 알면서 자기는 진짜 모른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눈이 늘 밖으로 향해 있기 때문이에요. 어떤 문제가 생겨도 ‘네가 문제다’, ‘너 때문에’, ‘일 때문에’ 이렇게 말하기가 쉽습니다. 그래서 밖으로 향하던 시선을 자기 쪽으로 돌려야 해요. ‘남편이 돌아가셔서’, ‘아이가 말을 안 들어서’, ‘아이가 학교를 안 가서’ 늘 이런 소리만 하다가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남편과 아이가 그런 상황에서 내가 어떻게 하겠는지 자신을 돌아봐야 합니다.
농사꾼 중에는 비가 안 와도 하늘을 탓하고, 비가 많이 와도 하늘을 탓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비가 적절히 와줘야 농사가 잘되는 건 맞아요. 그런데 하늘이 나를 괴롭히려고 비를 많이 오게 했다가 안 오게 했다가 할까요? 내가 전생에 지은 죄 때문에 벌을 받느라 비가 많이 왔다가 적게 왔다가 할까요? 내가 하느님을 안 믿어서 벌을 준다고 이럴까요? 태어날 때 사주팔자 때문에 삶이 이럴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밖을 보면 그런 생각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비는 원래 많이 올 때도 있고, 적게 올 때도 있어요. 사람들이란 원래 그런 겁니다. 살기도 하고, 죽기도 하고, 태어나기도 하고, 병이 나기도 합니다. 그런 상황에서 ‘나는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하는 문제죠. 이렇게 나를 봐야 됩니다. 나를 돌아보면 내 마음에 안 드는 상황이 될 때마다 늘 짜증내고, 좌절하고, 기분 나빠하고, 남 탓하고 있음을 알 수 있어요. 그럴 때 ‘아, 내가 그렇구나’ 하고 알아차려야 합니다. 이것은 좋다 나쁘다 하는 문제가 아니에요. 내가 문제라는 것도 아니에요. 일단 이런 나를 내가 알아야 돼요. 이걸 ‘자각’이라고 합니다.
우선 내 상태를 내가 알아차려야 합니다. 이대로 좋으면 이대로 살면 되고, 이게 좀 문제다고 하면 개선하면 됩니다. 변화는 오직 자각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자각이 되어야 변화가 일어나는 거예요. 여러분들은 백일기도 중에 조금 자각이 일어나셨어요?
크게 자각이 일어나 버렸으면 성인이 되었을 겁니다. 그렇지 않다면 조금이라도 자각이 일어났느냐 하는 거예요. 변화는 고사하고 자신에 대해 알긴 하느냐 하는 겁니다. 자각이 조금이라도 일어났다면 경험적으로 정진의 효과를 본 거예요. 처음에는 남이 몸에 좋다고 해서 약을 먹었는데, 먹어보니까 괜찮으면 그때부터는 이 약을 먹을지 말지 내가 선택하는 겁니다.
백일 동안 수행해보고 조금 자각이 일어나면 오늘부터 정식으로 입재자가 되는 거예요. 그러니 이제부터는 자기 힘으로 정진을 시작해야 됩니다. 자기 힘으로 정진을 해야 자각이 점점 커져 나가기 때문이에요. 그렇게 꾸준히 정진을 하면 짜증을 안 내는 수준은 아직 안 되더라도 수용하는 수준은 된다는 겁니다. 이것만 해도 큰 변화예요. 수용하는 것부터가 벌써 옛날하고 다른 변화입니다.
더 나아가 백일기도가 10회가 되어 천일이 지나면 조금씩 화내는 횟수가 줄어들든 강도가 약해지든 이런 일이 반복적으로 일어나게 되고, 그래서 주위 사람들이 나를 보고 사람이 조금 변했다고 느끼기 시작합니다. 옆에 있는 사람들로부터 ‘요새 많이 좋아졌네’, ‘얼굴이 밝아졌네’ 이런 소리를 듣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정진을 하는 겁니다.
그러나 정진을 한다고 해서 매일 일정하게 좋아지는 것은 아니에요. 어떤 때는 팍 좋아졌다가 어떤 때는 3년 동안 별로 진척이 없어요. 수행을 하나 안 하나 별 차이도 없는 것 같습니다. 이때 그만두면 변화가 안 일어나고, 그럼에도 꾸준히 정진해 나가면 어떤 계기에 폭발적인 변화가 일어나게 됩니다.
계속 조금씩 일정하게 변화가 일어나면 사람들이 계속 정진을 하겠죠. 그런데 수행이란 노력을 일정하게 해도 그 변화는 불규칙적으로 나타납니다. 이것은 마치 날씨가 겨울에서 봄으로 오면서 점점 따뜻해질 때 일정하게 매일 0.1℃씩 올라가지 않는 것과 같아요. 길게 보면 따뜻해지는 건 맞는데 푹 따뜻해졌다가 도로 추웠다가 푹 따뜻해졌다가 도로 추웠다가 이렇게 불규칙적으로 변화가 일어납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나면 점점 따뜻해지는 쪽으로 가는 것과 같습니다. 이게 자연스러운 거예요.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변화가 안 일어나고 답보 상태일 때 수행을 그만둡니다. 자연 현상과 같아요. 물을 끓일 때 열을 계속 가해도 물이 안 끓습니다. 100℃까지 올라가야 부글부글 끓는단 말이에요. 그런데 100℃까지 대부분이 못 참는 겁니다. ‘아무 변화도 없네’ 하고 그만둬버려요. 그러나 사실은 내면에서 변화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꾸준히 정진하는 것보다 더한 공덕은 없습니다. 정토회가 지난 30년을 이어올 수 있었던 이유는 빈곤퇴치도 하고 환경실천도 하고 많은 활동을 해온 것도 있지만, 가장 중심은 천일결사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천일결사가 없었으면 정토회는 여기까지 못 왔습니다.
지난 백일의 좋은 성과는 이어가고 부족한 부분은 평가해서 개선해 나갑시다. 지난 백일 간 이어온 여러분들의 정진과 활동에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우리 모두 자신들의 수행과 활동에 박수를 한 번 칩시다. 여러분들 모두 정말 장한 일을 하셨습니다.”
사홍서원으로 1부 프로그램을 마친 후 잠시 휴식 시간을 가졌습니다. 2부 프로그램은 9차 백일기도 입재식입니다. 예비 천일결사자 결의식을 하며 2부를 시작했습니다.
새롭게 입재하는 예비 천일결사자들은 스님이 이야기하는 내용을 잘 듣고 자신의 다짐을 ‘예, 하겠습니다’ 하고 크게 발원했습니다. 스님은 예비 천일결사자들에게 108 염주를 선물했습니다.
“자, 여러분들께 염주를 드리겠습니다.”
“잘 받았습니다.”
랜선으로 염주가 전달되자 기존 천일결사자들이 힘찬 박수로 환영했습니다. 스님은 예비 천일결사자들을 위해 발원 기도를 한 후 격려의 말씀을 해주었습니다.
“여러분들은 10-9차 입재식에 참여했는데, 이번에 새로 참여한 사람들은 굉장한 사람들이에요. 8월 28일에 정식 입재자가 되면 여러분들은 정토회 1차 만일결사에 참여한 사람들 명단에 올라가게 됩니다. 여러분들은 딱 백일기도만 하고 자신의 경력에 1차 만일결사 참여자라고 남기게 되는데, 이건 공짜나 마찬가지예요. 저는 30년 동안 기도하고 명단에 이름을 올릴 자격을 얻게 되거든요. (웃음)
그러니 1차 만일결사의 마지막 백일을 놓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이번 백일 정진을 잘하시면 1차 만일결사 제10차 천일결사 10차 백일기도 입재자 명단에 올라가게 되니까요. 물론 개인 정진을 위해서 기도하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앞으로 정토회가 세상에서 좋은 일을 많이 할 거예요. 그래서 정토회 회원이 된 것이 정말 자랑스러울 때가 반드시 옵니다. 그때 ‘나는 1차 만일결사부터 참여했다’ 하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날이 올 거예요. 그러니 특별히 이번에 입재하신 분들은 중간에 탈락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만일 중에 이제 200일을 앞두고 있다고 생각하니 감개무량했습니다. 이어서 정토행자들은 제10차 천일결사 제9차 백일기도 입재 법문을 청했습니다.
스님은 힘들 때일수록 정진을 해야 한다고 강조하며 만일결사의 마지막으로 갈수록 정토행자 모두가 정진에 힘써 줄 것을 당부했습니다.
“1차 만일결사 중 제10차 천일결사 9차 백일기도에 입재하신 여러분께 격려와 감사 말씀을 드립니다. 부처님 가르침의 요지가 ‘중도’ 예요. 한가하되 꾸준히 하는 것, 이게 중도의 길입니다.
여러분들이 명상을 하는 모습을 보면, 각오를 하거나 결심을 많이 합니다. ‘5일 만에 확 깨달아 버리겠다’ 하면서 기지도 못하는 사람이 목표는 날겠다고 정해 놓습니다. 그래서 기어지지가 않는다고 포기해 버려요. 명상은 휴식입니다.
정진은 편안한 가운데 자기를 살피는 것입니다. 그래서 힘들 때 정진을 해야 합니다. 힘들 때 정진해서 힘을 얻어야 되는데 여러분들은 힘들 때 정진을 그만둬버려요. ‘힘들어 죽겠는데 무슨 수행까지 하나?’ 이래요. 수행을 일로 하기 때문에 그런 생각이 드는 겁니다. 마음이 한쪽에 사로잡히거나, 몸에 무리가 있거나, 이러면 딱 정진을 해야 합니다. 배고플 때 음식을 먹는 것과 같아요. 일이 안 되고, 흐트러지고, 스트레스를 받고, 막 화가 나고, 이럴 때 약을 먹듯이 정진을 해야 합니다. 힘들 때는 이렇게 건의를 해야 해요.
‘요즘 제가 화가 많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요. 오늘 하루는 일을 멈추고 정진을 좀 하겠습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수행적 관점이 안 잡혀 있기 때문에 힘들 때 정진을 집어던져 버려요. 힘들 때 정진하고, 스트레스 받을 때 정진하고, 미워질 때 정진을 해야 합니다. 정토회가 마음에 안 든다 싶으면 염주를 던지고 나가는 게 아니라 정진을 해야 됩니다. 정진을 해서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힌 다음 그러고 나서 나가더라도 나가야 되는 거예요. 그래야 자신이 살아온 삶에 후회가 없습니다.
그런데 제가 아무리 얘기해도 여러분은 거꾸로 하죠. 옛날에 깨닫는 사람들의 일화를 한번 보세요. 난관에 부딪혀서 다 집어치워 버리고 싶을 때 늘 정진을 합니다. 솥을 걸었는데 스승이란 사람이 아홉 번이나 밟아버리니까 성질이 확 나서 가버리고 싶었어요. 그때 딱 돌이켜서 정진을 하니까 바로 깨달아 버리지 않습니까.
그러니 여러분도 백일 간 부지런히 정진하시기 바랍니다. 만일결사가 다 끝나가는 이번 백일은 정진을 중심으로 지내봅시다. 불교대학 진행하랴, 직장 다니랴, 정신없이 바쁘고 스트레스를 받고 있을수록 정진을 해야 돼요. 물론 스트레스를 안 받으면 굳이 절하고 명상하고 그런 것을 안 해도 돼요. 기본만 하면 됩니다. 건강할 때는 기본적인 운동만 하면 되고, 건강이 많이 안 좋으면 많이 걷는다든지 음식을 좀 적게 먹는다든지 몸에 뭔가 조치를 취해야 되는 것과 같습니다. 마음에 흔들림이 없으면 기본만 하고 나머지는 활동을 부지런히 하는 거예요. 그러나 마음에 번뇌가 많고 힘들면 오히려 정진 시간을 늘려야 합니다.
정토회가 여기까지 온 것도 정진의 힘이고, 불교대학 입학생 1만 명을 모집할 수 있었던 것도 정진의 힘입니다. 정진을 안 하는 사람은 이런 활동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어요. 되고 안 되고는 다 마음에서 결정하는 겁니다. 아무리 부담스러운 일도 ‘좋은 일인데 한번 해보자’ 이렇게 마음을 내면 아무 일도 아니거든요. 그러면 대화를 할 때도 상대에게 파급효과가 큽니다.
이렇게 정진에 대한 관점을 잡은 후 다음 백일 동안은 행복학교를 1만 명에게 전합니다. 누구든지 행복학교 한번 해보라고 권해 보는 거예요. 말을 잘 못하는 사람이 대화를 연습하러 와도 되고, 자기 마음을 알고 싶은 사람이 와도 괜찮습니다.
행복학교는 한 달 프로그램이어서 누구나 쉽게 참여할 수 있습니다. 한 번 해보고 좋으면 더 하고, 안 좋으면 그만둬도 돼요. 행복학교에 많은 분들이 참가해서 열등의식이 없어질 수 있게 하고, 자신이 별 문제가 없고 괜찮은 사람이라는 걸 자각하도록 합시다. 이렇게 국민행복 운동을 해나가 봅시다.”
마지막으로 9차 백일기도 백일의 약속을 함께 살펴본 후 법사단장인 무변심 법사님의 인사말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입재식을 마무리하며 산회가를 함께 불렀습니다.
입재식을 마치고 바로 1시 30분에 논으로 나갔습니다. 문경지회 소속 두북 공동체 행자들은 오늘 의결 회의가 있어서 스님과 묘당 법사님, 행자 한 명만 먼저 나갔습니다.
먼저 300평 논에 모를 심었습니다. 스님은 이앙기에 모판을 실어준 후 2400평 논으로 가서 모에 물을 주었습니다. 뙤약볕 아래 모가 시시각각 마르고 있었습니다.
곧 300평 논에 모를 다 심고 묘당 법사님이 이앙기를 타고 2400평 논으로 왔습니다. 의결 회의를 마친 행자들도 울력을 하러 나왔습니다.
이앙기가 논 끝까지 돌고 오면 반대편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모판을 실어주었습니다. 모를 심기 시작한 지 이틀 째, 어제보다 모가 가지런하게 심어졌지만 스님은 매의 눈으로 빈 곳을 찾아냈습니다.
“아이고, 저기는 쭉 비었네.”
스님은 모를 손에 쥐고 논으로 들어가 빈 곳에 모를 심고 나왔습니다.
넓은 논을 왔다 갔다 하는 사이 이앙기는 점점 더 안정적으로 나아갔습니다.
스님은 행자 두 명이 모판을 싣도록 하고 다른 논으로 갔습니다. 이 논은 며칠 전에 모심기를 해두었는데 논 한쪽에 부유물이 가득 떠 있었습니다.
모내기를 하기 전에 논에 퇴비를 섞고 써레질을 해두었는데 퇴비에서 가벼운 지푸라기 등이 떠오른 것이었습니다. 스님은 논 장화를 신고 양손에 뜰채를 쥐고 본격적으로 부유물을 걷어냈습니다. 부유물 아래에 잠긴 모를 살리기 위해서입니다.
“모가 땅에 자리를 잡는 걸 ‘사람한다’라고 해요. 살았다는 말이에요. 아침에 눈뜨면 제가 ‘살았네!’라고 하라고 하잖아요. 그 말과 같은 말이에요.”
뜨거운 햇살 아래 발을 옮기기도 힘든 질퍽한 논에서 일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바람이 세게 불어 땀을 바로 식혀주었습니다. 거기다 부유물을 논 끝으로 자꾸 보내주어 그나마 일을 하기가 한결 수월했습니다.
“바람이 도와주네!”
스님은 바람에게 고마워하며 계속 부유물을 건져냈습니다. 언제나 끝날까 싶던 일이 그래도 끝났습니다.
다시 큰 논으로 가보니 농사팀 행자님이 이앙기를 몰고, 묘당 법사님은 다음 모내기를 할 논에 써레질을 하러 갔습니다. 점점 더 실력이 좋아지고 있었습니다.
“잘하네요.”
스님은 큰 논 끝 쪽으로 가서 레기를 들고 부유물을 건져내고 땅을 평평하게 골라주었습니다.
오후 5시가 되어 농막에서 간단히 저녁을 먹고 다시 일을 시작했습니다. 이번에 스님은 길 옆에 논으로 가서 논둑을 보수하는 작업을 했습니다.
스님과 향존 법사님, 모인 행자들 중에 그래도 힘을 쓸 수 있는 행자 둘까지 네 명이서 무너진 논둑을 새로 만들었습니다. 삽질을 하고 다지고 삽질을 하고 다지는 일이 1시간 30분 동안 반복되었습니다.
고된 일 중에서도 손꼽히는 일이 삽으로 논둑을 만드는 일입니다. 오후 내내 울력을 한 데다 강도 높은 삽질을 하고 나니 온몸에 힘이 빠졌습니다. 그래도 논둑을 단단히 만들고 나오는 스님과 행자님들의 얼굴은 밝았습니다.
7시가 넘자 산 너머로 해가 뉘엿뉘엿 졌습니다.
논둑을 만들고 나오니 2400평 논도 모내기를 마쳤습니다. 이로써 오늘까지 논 7개 중 4개에 모내기를 끝냈습니다.
“밥 먹는 일이 이렇게 힘든 일인 줄 몰랐네요!”
올해 처음 농사팀이 된 행자가 웃으며 말했습니다. 내일 나머지 논 3개에 모내기를 하기로 하고 울력을 마쳤습니다.
두북 수련원으로 돌아와 씻고 8시 30분부터는 일요 명상을 했습니다. 코로나 이후 111번째 진행되는 온라인 명상 시간입니다.
먼저 스님이 인사말을 건넸습니다.
“요즘은 여름 날씨처럼 아주 무덥고 비가 오지 않아서 가뭄이 아주 심합니다. 옛날 같으면 모내기철에 물이 없어서 모내기를 못 할 텐데 요즘은 저수지나 지하수를 이용할 수 있기 때문에 저희들도 모내기를 했습니다. 옛날에는 모를 다 사람 손으로 하나하나 심었는데 요즘은 다 기계로 심고 있어요. 그래도 물에 모를 심는 작업이다 보니 사람 손도 많이 갑니다. 오늘 저희들은 천일결사 입재식 전에도 모내기를 하고, 입재식이 끝나고 나서도 모내기를 했습니다. 조금 전까지 모내기를 하다 왔는데 사진 몇 장 함께 보겠습니다.”
어제부터 방금 전까지 일하던 모습을 사진으로 보여주며 일요 명상 참가자들에게 모내기 소식을 생생하게 전했습니다.
“봄에는 농번기라 이렇게 할 일이 많습니다. 농촌에는 일손이 부족하니까 여러분도 주말에는 가까운 농촌에 가서 도움을 주시기 바랍니다.”
이어서 질문을 받았습니다. 오늘 질문자는 러시아 사람인데, 전쟁으로 인해 고통을 받고 있다며 어떻게 마음이 편안해질 수 있는지 물었습니다.
“Recently I ran away from Russia due to the war. I am now in Korea, but I guess there has been too much stress overall. Life seems to get completely ruined in each and every aspect. When I try to meditate and close my eyes, all that apparently flows on top and I cannot even sit still. I immediately get a feeling that everything is collapsing, that I cannot control my life and that I must run, run right now. And it happens every time I try to meditate. I can barely sleep also. What to do?"
(저는 최근 일어난 전쟁을 피해 러시아에서 나왔습니다. 지금은 한국에 있습니다. 그런데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고 있습니다. 제 인생이 모든 면에서 완전히 망가지는 것 같습니다. 명상을 하려고 눈을 감고 있으면 생각들이 떠올라 가만히 앉아 있을 수도 없습니다. 모든 것이 무너지고 있고, 제 삶을 제가 통제할 수 없으며, 도망쳐야 한다고 느낍니다. 이런 감정은 제가 명상을 하려고 할 때마다 일어납니다. 잠도 거의 못 자고 있습니다. 저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우크라이나 사람뿐만 아니라 러시아 사람들도 많은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먼저 위로를 드립니다. 침략을 받은 나라 사람들은 실제 피해는 크지만 생각은 비교적 단순해져요. ‘조국을 구하기 위해서 목숨을 걸고 싸우자!’ 이렇게 생각하면 되니까요. 그런데 침략한 나라의 사람이 그 침략이 부당하다고 생각할 때는 많은 어려움이 있습니다. 전쟁을 반대하면 자기 동료나 국민들로부터 많은 비난을 받게 됩니다. 또 다른 나라 사람들로부터는 침략한 나라의 사람이라고 비난을 받게 됩니다. 그래서 어쩌면 정신적으로는 더 힘들지도 몰라요.”
스님은 질문자의 어려움에 공감한 후 명상의 관점에서 대답을 해주었습니다. 그리고 인생 문제에 대한 이야기를 더 나누고 싶으면 즉문즉설에서 질문하도록 안내했습니다.
“명상의 관점에서는 단순합니다. 명상은 생각을 멈추는 거예요. 명상 중에는 생각을 멈추니까 아무런 할 일이 없습니다. 명상할 때 고통스러운 게 아니라 생각을 하기 때문에 고통스러운 거예요. 생각을 멈추어야 합니다. 생각이 떠오르더라도 호흡에 집중해야 해요. 그 생각에 의미를 두지 않습니다. 호흡만 알아차리고 있으면 아무 일도 없어요. 그런데 질문자는 명상한다고 앉아 있지만 머리로 계속 전쟁 생각을 하기 때문에 괴로움이 끝나지 않습니다. 생각을 멈추고, 다시 생각이 떠오르더라도 의미를 두지 마세요.
호흡하는 지금 이 순간 여기에서는 아무 일도 없습니다. 다만 내가 숨 쉬고 있을 뿐이에요. 이런 관점을 유지하신다면 명상할 때 편안할 수 있을 것입니다. 명상은 뭔가 일을 하는 게 아니에요. 생각하는 것도 아니고 얻는 것도 아닙니다. 육체도 쉬고 정신도 쉬는 것, 즉 멈춤입니다. 다만 호흡만 할 뿐입니다. 지금 나는 다만 숨을 쉬고 있을 뿐 이외에 아무런 할 일이 없습니다. 그렇게 잘 안 되더라도 그런 쪽으로 자꾸 나아갈 수 있도록 연습을 해야 합니다. 연습하다 보면 반드시 편안해지는 때가 올 거예요.”
여기까지 답변한 후 명상을 시작했습니다.
“관심을 콧구멍 끝에 두면 들숨과 날숨이 저절로 알아차려집니다. 지금 여기 일어나고 있는 일은 숨이 들어가고 나오는 일뿐이에요. 호흡에만 집중하고 호흡만 알아차립니다. 모든 것을 멈추고 다만 호흡할 뿐입니다. 어떤 것에도 의미를 두지 마세요. 그냥 들어오고 나가는 숨만 알아차립니다. 놓치면 다시 합니다. 편안한 가운데 꾸준히 해 봅니다.”
탁! 탁! 탁!
죽비 소리와 함께 명상을 시작했습니다.
40분 간 명상을 한 후 실시간 채팅창에 올라온 참가자들의 소감을 스님이 직접 읽어주었습니다. 일주일을 마무리하며 고요한 마음으로 생방송을 마쳤습니다.
내일은 새벽에 노무현 전 대통령 13주기 추도식을 맞이해 묘소를 참배한 후 오전에는 전법활동가 법회를 생방송하고, 오후에는 인도 성지순례 준비회의와 공동체 법사단회의에 온라인으로 참석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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