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2.5.11 공동체 법사단 수련 1일째, 수행법회
“온전한 나로 살아가는 법”

안녕하세요. 두북 수련원의 아침이 밝았습니다. 담장 위에 걸쳐진 장미꽃들이 여러 송이씩 늘어져 활짝 피었습니다.


오늘부터 3일 동안 공동체 법사단 수련이 진행됩니다. 전국 으뜸절에 상주하고 있던 법사님들은 수련을 하기 위해 어젯밤에 모두 두북 수련원에 도착했습니다. 법사님들은 오늘 새벽 기도와 명상을 한 후 아침 6시부터 농사일을 함께 하면서 수련을 시작했습니다.

농사팀장이 오늘 농사 일감을 안내했습니다.

“오늘은 산앞밭에 호박 모종을 심겠습니다. 엉덩이 방석과 북삽, 호미를 챙겨가 주시고, 비닐하우스에 있는 모종판도 함께 들고 가주세요.”

오랜만에 한자리에 모인 공동체 법사님들은 마치 명절에 가족이 모인 것처럼 얼굴에 반가움이 가득했습니다.

밭에 도착해서 스님이 법사님들에게 모종을 심는 방법을 설명한 후 시범을 보여주었습니다.

“한 사람이 파종기로 구멍을 내면, 다른 한 사람이 모종을 파종기 속으로 넣어주면 돼요. 이렇게 하면 호미로 심는 것보다 빨리 심을 수 있어요.”

2인 1조가 되어서 두둑을 한 줄씩 맡은 후 모종을 주욱 심어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간격을 60cm씩 띄워 주세요. 유수 스님은 너무 간격을 좁게 심고 있어요.” (웃음)

법사님들은 처음에 조금씩 시행착오를 겪다가 곧바로 요령을 터득하여 아주 빠른 속도로 모종을 심어나갔습니다.


검은색 비닐 위에 연둣빛 모종이 퐁퐁 심어져 나가는 모습을 보며 법사님들 모두 재미있어했습니다. 실수를 해도 웃고, 척척 손발이 맞아도 웃었습니다. 일이 놀이가 되었습니다.


모종을 다 심을 무렵 물통에 물을 가득 싣고 트럭이 도착했습니다. 모종이 심어진 구멍마다 물을 듬뿍 주었습니다. 물을 주고 있는 법사님들에게 스님이 한마디 했습니다.

“두둑에 구멍을 뚫어 놓고 비가 온 다음날 심으면 이렇게 물주는 수고를 안 해도 되는데, 시기를 못 맞추니까 이렇게 고생을 해야 하는 거예요. 항상 연구를 해야죠.” (웃음)

다른 법사님들이 모종을 심고 있는 사이 묘당 법사님은 관리기를 갖고 와서 두둑을 세 줄 더 만들고 비닐 멀칭을 했습니다. 기계를 사용하니 금방 두둑이 만들어졌습니다.

다른 법사님들은 모두 물을 흠뻑 머금은 모종마다 북삽을 들고 북을 주며 그 뒤를 따랐습니다. 잎이 덮이지 않게 모종 주위에 흙을 부었습니다.

법사님들이 모종 심기에 여념이 없을 무렵, 스님은 텃밭으로 가서 딸기를 수확했습니다.

“올해 딸기 첫 수확이에요. 빨갛게 된 것만 땁시다.”


몇 해 전에 한두 개만 열리던 딸기를 계속 이식했더니 두 평 남짓한 면적에 딸기가 주렁주렁 달렸습니다. 추운 겨울을 이겨내고 꽃을 피우더니 딸기가 막 빨갛게 익기 시작했습니다. 딸기를 한 입 베어 무니 단맛이 입안에 은은하게 퍼졌습니다.

스님은 발우공양 찬상에 내기 위해 상추도 수확했습니다.

“봄이 되니까 상추 꽃대가 빠른 속도로 올라와요. 빨리 수확을 합시다.”

상추와 꽃대를 분리한 후 상추만 바구니에 가득 담아서 먹기 좋게 깨끗이 씻었습니다.

“시간이 몇 시예요?”

“8시 10분입니다.”

“아직 일할 수 있는 시간이 더 남았네요. 국화 꺾꽂이를 좀 합시다.”


스님은 국화 줄기를 10cm 정도씩 가위로 싹둑싹둑 잘랐습니다. 잎을 2개 내지 3개 정도 남기고 아랫 잎은 제거했습니다.

며칠 전 개울에서 고운 모래를 퍼와서 모종판을 미리 만들어 두었었습니다. 모종판 위에 잘라 둔 국화 줄기를 2cm 깊이로 꽂았습니다.


꺾꽂이를 한 다음 물을 흠뻑 주어 통풍이 잘 되는 그늘에 모종판을 둔 후 울력을 마쳤습니다.

“수고했어요. 이제 발우공양을 하러 갑시다.”

가을에는 화단에 국화가 가득 핀 모습을 구경할 수 있기를 기대하며 두북 수련원으로 돌아왔습니다.

9시부터는 공동체 법사단과 두북 공동체 대중이 모두 한자리에 모인 가운데 발우공양을 시작했습니다.

“불생가비라 성도마갈다 설법바라나 입멸구시라”

소심경을 외우며 발우에 음식을 담고, 식사를 시작했습니다.

식사를 마친 후 스님에게 꽃다발을 선물했습니다.

“스승의날에 저희 법사단이 스님과 한자리에 있지 못해서 오늘 먼저 스님께 감사의 마음을 전하려고 합니다.”

대중은 ‘스승의 은혜’ 노래를 큰 목소리로 불렀습니다.

꽃다발을 받은 스님은 대중과 법사단을 위해 한 말씀을 해주었습니다.

“법사님들 그동안 활동하느라 수고들 하셨습니다. 또 실무자 여러분도 수고하셨어요. 이렇게 사는 게 요즘 같은 시대에는 좀 답답하게 느껴질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세월이 흐른 뒤에 인생을 한번 돌아보면 모든 일이 다 별거 아닙니다. 좋았던 일도 별거 아니고, 나빴던 일도 별거 아니에요. 어젯밤에 좋은 꿈을 꿨든 나쁜 꿈을 꿨든 깨고 나면 그냥 꿈일 뿐이듯 다 별거 아니에요.

별일 아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늘 그 순간에 끄달립니다. 먹는 순간, 보는 순간, 듣는 순간 등 이렇게 감각을 느끼는 순간 일어나는 좋고 싫음에 많이 끄달려요. 좋아하는 걸 못하게 하면 마음이 불편해지고 싫은 걸 하라고 하면 죽을 것 같죠. 그렇게 죽을 것 같은 일도 하루 지나고, 한 달 지나고, 일 년 지나고 돌아보면 아무 일도 아니에요. 이러든 저러든 사실은 큰 문제가 아닙니다. 그런 도리를 알아서 일상 속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별일 아닌 줄을 알아야 해요. 기분이 약간 나쁘거나 좋을 것은 징을 때리면 소리가 나는 것처럼 그냥 하나의 반응일 뿐이에요. 이런 것을 늘 잘 챙기고 살아간다면 첫째, 괴로움 없이 살 수 있습니다. 둘째, 반응이 일어나도 적어도 그 반응에 사로잡히지는 않습니다. 소리가 나기는 하지만 금방 멈출 수 있어요.

나중에 보면 우리가 하는 일들은 모두 이 세상에 의미가 있는 일들이에요. 사람들은 보통 필요 없는 일, 하찮은 일에 자기 에너지를 소모하며 살기 쉽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지금 하는 일들은 지난 뒤에 보면 세상에서 필요로 하는 일이 대부분이에요. 그런 데서 보람이나 기쁨을 발견하고 일상에서 만족을 느끼고 사는 게 매우 중요합니다.

만족하기, 찌꺼기 남기지 말기

또 불만족스러울 때가 있더라도 그걸 가슴에 쌓아놓지는 않아야 해요. 그냥 일어났다가 사라지도록 해야지 찌꺼기를 남기면 안 됩니다. ‘부처님은 흔적이 없다’ 이런 말이 있잖아요. 우리는 상황이 지나간 후에도 늘 흔적이 남아요. ‘네가 전에 이러저러했잖아!’ 이런 감정의 찌꺼기가 남아 있습니다. 좋은 것에 대해서는 미련의 찌꺼기가, 나쁜 것에 대해서는 원망의 찌꺼기가 남아서 그것이 현재와 미래를 살아가는 데 늘 장애가 됩니다. 부정적 감정이 일어난 사건이라도 경험으로 삼으면 현재와 미래에 오히려 좋은 양약이 될 수 있어요. 그런데 오히려 찌꺼기가 남으면 현재와 미래에 장애가 돼요. 그런 걸 잘 살펴서 정진을 해나가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모두 건강한 생활을 해나가시기 바랍니다.”

대중과 공동체 법사단은 그동안 잘 가르쳐준 은혜에 보답하는 마음으로 스님에게 삼배를 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스님.”

발우공양을 마친 후 10시 30분부터는 공동체 법사단 회의를 시작했습니다. 오랜만에 온라인이 아닌 오프라인에서 한 자리에 모인 법사단은 여러 가지 주제로 스님과 깊이 있게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오후 3시에 점심 식사를 한 후 4시 30분부터 다시 대화를 이어나갔습니다. 해가 저물고 저녁 6시 30분이 되어 공동체 법사단 1일째 수련을 마쳤습니다.

저녁 예불을 한 후 7시 30분부터는 수행법회 생방송을 시작했습니다. 5월 한 달 동안은 ‘정토회’를 주제로 기획 법문을 하기로 했습니다. 지난 법회에서는 ‘정토회’라고 이름을 정한 이유와 ‘정토’의 의미에 대해 법문을 하였는데, 오늘 법회 주제는 ‘수행’입니다.

정토회 회원들이 모두 화상회의 방에 입장하자 스님이 인사말을 건넸습니다.

“제가 있는 이곳은 오늘 날씨가 여름처럼 더웠습니다. 5월은 여러분에게 놀기 좋은 시기인지 몰라도 제게는 늘 농사짓기 좋은 계절입니다. 그래서 제가 즐겁게 농사짓는 모습을 보여드리겠습니다.”

지난 한 주 동안 스님이 농사짓는 모습과 농산물을 애광원과 요양병원에 나눠주는 모습을 영상으로 함께 보았습니다.

“잘 보셨어요? 이 영상을 보고 농사짓고 싶어진 사람은 각 으뜸절로 오세요. 정토회는 항상 일꾼이 부족합니다.” (웃음)

이어서 수행의 의미와 정토회의 수행 방법에 대해 한 시간 동안 법문을 해주었습니다.

“오늘 법회는 ‘정토행자들은 어떻게 살고 어떻게 수행해야 하는가’ 하는 것이 주제입니다. 수행이란 무엇이고, 왜 수행을 해 나가야 하는지 조금 더 자세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왜 수행을 해야 할까요?

인생을 살다 보면 어려움이 많죠. 세상이 내 뜻대로 안 되잖아요. 그런데 사람은 자기 뜻대로 되기를 바랍니다. 내가 원하는 걸 이루고 싶은 마음은 누구나 있어요. 저도 그렇습니다. 그런데 내 뜻대로 안 되는 일이 있으니까 괴롭단 말이에요. 그러면 첫 번째로 남한테 좀 도움을 요청합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도 다 살기 바쁘니까 나를 잘 못 도와주죠. 그리고 내가 원하는 것을 그들이 해줄 능력도 별로 없어 보입니다.

그러다 보니까 내가 원하면 그 원하는 바를 다 들어주는 어떤 존재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런 존재는 첫째, 뭐든지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해요. 전지전능해야 합니다. 둘째, 내가 원하면 나를 도와줘야 해요. 이런 존재를 사람들은 신(God), 옥황상제, 브라만, 알라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불교신자들은 부처님이라고 부르죠. 어떤 이름을 붙이든 관계없이 그분은 능력이 무한해야 하고, 내가 원하면 늘 나를 도와줄 정도로 자비심이 있어야 하는 거예요. 이런 존재를 믿는 사람을 신자라고 말합니다. ‘믿는 자’라는 뜻이에요. 이것이 종교의 발상이자 현재 종교의 형태입니다. 물론 세상에는 ‘에이, 그런 존재가 어디 있어? 믿는다고 되나?’ 이렇게 안 믿는 사람도 있어요.

그런데 이렇게 욕구를 채워서 행복해지는 길은 끝이 없어요. 부처님께서는 괴로움을 없애는 방법을 정확히 알고 계셨습니다. 내 욕구를 오히려 절제하고 만족할 줄 알 때 괴로움이 사라집니다. 내 성질을 자제할 때 오히려 괴로움이 사라집니다. 사람은 다 다릅니다. 다른 사람을 내 중심에서 바라보고 나만 옳다고 생각하면 시비 분별이 일어나죠. 그러나 ‘서로 다르구나’, ‘그 사람 입장에서는 그럴 수도 있겠구나’ 할 때 시비가 사라집니다. 이게 다 내가 어리석어서 생긴 문제이기 때문에, 내 어리석음을 깨우치면 괴로울 일이 없어요. 세상에 수많은 일이 그냥 일어날 뿐이에요. 춥기도 하고 덥기도 하고, 꽃이 피기도 하고 지기도 하고, 비가 오기도 하고 맑기도 하고, 내가 원하는 것이 되기도 하고 안 되기도 할 뿐입니다. 열 번을 원했는데 열 번이 다 될 때도 있고, 열 번을 원했는데 열 번 다 안 될 때도 있어요.

어떻게 보면 이게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인생은 운명으로 정해진 것도 아니고, 신적인 존재가 조정하는 것도 아니고, 전생에 지은 과보로 좌우되는 것도 아니에요. 그러니 살아가면서 일어나는 일을 그냥 일어난 일로 보는 거예요. 지금은 이 일이 굉장한 일 같지만 지나 놓고 보면 별일도 아니에요. 어릴 때는 대입시험에 떨어져서 재수한 게 굉장한 일이었지만, 30년이나 50년이 지난 지금 그때를 돌아보면 별일 아닙니다. 이래도 내 인생이고 저래도 내 인생입니다.

이렇게 좀 넓은 눈으로, 좀 멀리 보는 눈으로 바라보면 인생사에 별 차이가 없어요. 다람쥐가 여기 사나 저기 사나 토끼가 여기 사나 저기 사나 큰 차이가 없는 것과 같습니다. 여러분이 10년 전에 여행을 가서 여관에 묵었든, 호텔에 묵었든, 비싼 음식을 먹었든, 싼 음식을 먹었든, 지금 생각해 보면 다 한여름 밤의 꿈이에요. 그런데 그 순간에는 자기 원하는 대로 안 되면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고, 싫은 걸 하라면 죽을 것 같죠. 이처럼 순간에 집착하는 것으로부터 좀 자유로워지면 사는 게 그리 힘든 일이 아닙니다.

이런 도리를 알아서 지혜롭게 살면 크게 괴로울 일이 없어요. 그러면 내가 가진 재능과 에너지를 나도 괴롭히고 남도 괴롭히는데 쓰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필요한 일을 해주는 데 쓰게 됩니다. 나도 좋고 타인에게도 좋은 삶을 살게 되는 거예요. 이런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수행자’입니다. 부처님께서 이런 새로운 길을 제시해 주신 거예요. 괴로울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괴로울 일이 없는 목표를 향해, 지금 내가 서 있는 이곳에서 한 발 한 발 괴로움이 없는 쪽으로 나아가는 것이 수행이에요.

그런데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길에 지금까지 살아온 자기의 습관(까르마)이 앞을 딱 가리고 있습니다. 뭘 보고 뭘 생각하든 까르마가 작용을 해서 내가 보고 듣고 생각하고 판단하는 데 영향을 미쳐요. 내가 가진 관념과 지금껏 나를 둘러쌌던 껍질을 좀 벗어나야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습니다. 그래야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줄을 알 수 있어요. 이게 수행이에요. 꼭 참선을 하거나 절을 해야 수행이 아닙니다. 그러나 이런 기본 관점을 가지고 좀 더 괴로움이 없는 쪽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법문도 듣고 절도하고 명상도 하는 거예요.

나를 위해서 매일 눈뜨자마자 해야 하는 일

괴로움이 없는 삶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여러분이 매일 해야 하는 일이 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눈 뜨자마자 ‘나는 수행자다’ 이걸 확인해야 해요. 밥 먹는 것보다, 직장 생활보다, 가족이며 남을 돌보는 것보다도 먼저 나를 위한 수행부터 해야 합니다. 수행적 관점을 가지고 밥도 먹고 아이도 돌보고 가족도 돌보고 직장도 가는 거예요. 내가 괴롭다면 가족이며 직장이 무슨 의미가 있어요? 다 내가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 직장도 나가고 가족관계도 유지하는 거잖아요. 그런데 여러분은 직장 때문에 괴롭다, 가족 때문에 괴롭다, 아이 때문에 괴롭다고 하소연합니다. 괴로우려고 살아요? 그러니 본인부터 먼저 챙기라는 거예요.

매일 정진을 해야 합니다. 정진을 해도 세상 속에 살다 보면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는 것에 자꾸 물들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은 법문을 들어야 해요. 매주 수행법회에 참석하라는 것은 그 때문입니다. 매일 세수를 하듯 매일 정진을 하고, 일주일에 한 번씩은 샤워를 하듯 법회에 참석해 법문을 듣고, 1년에 한두 차례는 목욕탕에 가서 몸을 좀 불려서 때를 밀듯 수련에 참가해야 해요. 처음에는 ‘깨달음의 장’을 다녀오고, 그다음은 ‘나눔의 장’을 다녀오고, 둘 다 다녀온 사람은 1년에 한두 차례씩 명상 수련을 하는 거예요. 10분, 20분, 1시간, 이렇게 잠깐잠깐씩 명상하는 것만으로는 자기를 깊이 알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1년에 한두 차례는 4박 5일이든 일주일이든 열흘이든 딱 집중해서 자기를 알아차리는 정진을 해나가는 거예요.

먼저 수행자로서 삶의 방향이 딱 잡혀야 합니다. 그래야 뭘 하든 구애를 받지 않고 자유롭게 살 수 있어요. 월급을 적게 받아도 괜찮고 많이 받아도 괜찮고, 다른 사람들은 같이 일 못 하겠다고 하는 상사도 나는 괜찮고, 다른 사람은 못 견디겠다고 하는 부하직원도 나는 괜찮고, 시어머니가 잔소리해서 다른 형제들은 다 힘들다고 해도 나는 괜찮을 수 있습니다. 이렇게 살면 좋지 않을까요?

온전한 나로 살아가는 방법

여러분이 수행자라면 정신 차리셔야 해요. 남편, 아내, 자식, 부모, 직장에 의지해서 산다면 어리석은 겁니다. 그렇게 의지해서 사니까 배우자가 죽으면 정신을 못 차리고, 자식이 죽으면 정신을 못 차리고, 취업을 못해도 정신을 못 차리고,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져도 정신을 못 차리잖아요. 의지해 있기 때문에 그런 거예요. 내가 먼저 자립해야 합니다.

사람들은 결혼하는 상대를 보고 ‘나의 반쪽’이라고 표현합니다. 반쪽은 반원이에요. 배우자도 반원이고 나도 반원입니다. 둘을 합치면 동그란 원이 되긴 하지만 그 가운데에 금이 딱 가 있어요. 그러니 맨날 싸우는 게 당연하죠. 내가 온전한 원이 돼야 해요. 나도 온 달, 상대도 온 달인데 둘을 딱 겹치면 하나가 되는 거죠. 각자 완전한 상태에서 하나가 되었기 때문에 하나가 죽어도 다른 하나는 여전히 온전합니다. 상대가 죽든지 떠나든지 거기에 크게 영향받지 않아요. 하루쯤 섭섭할 수는 있어요. 같이 산 세월이 있으니까 약간은 섭섭하겠죠. 그렇지만 감정의 흔적은 없어야 합니다. 부처님은 흔적이 없는 분이에요. 우리는 흔적이 좀 남더라도 하루 이틀에 끝내야 합니다. 옛날부터 사람이 죽으면 3일장을 하잖아요. 그 이유가 ‘3일까지는 슬퍼하는 모습을 봐주겠다’라는 뜻이에요. 49제를 지내는 이유는 ‘그래, 좀 늦게 잡아서 49일까지는 슬퍼하는 모습을 봐주겠다’라는 뜻이고요.

자식에게 뭘 해주고 남편에게 뭘 해주고 아내에게 뭘 해주고 부모에게 뭘 해드리기 전에 우선 자기한테 잘해야 해요. 자기가 온전해야 어떤 부모, 어떤 자식, 어떤 배우자, 어떤 직장을 만나도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정작 자기가 여기 가도 못 견디고 저기 가도 못 견디면서 이 직장 탓하고 저 직장 탓하고, 이 사람 탓하고, 저 사람 탓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수행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러나 이런 수행적 관점이 잘 안 잡히는 것도 우리의 현실이에요. 그래서 이런 처방이 있는 겁니다.

‘하루 중 아침에라도 정신을 좀 차리자. 눈 뜨자마자 아침부터 헤매지 말고, 눈을 떴을 때만큼은 그래도 조금 총기를 유지해 보자.’

헤맬 때 헤매더라도 아침에 눈 떴을 때는 좀 총기가 있어야 해요. 아침부터 눈 뜨자마자 ‘아이고, 일어나기 싫어 죽겠다. 직장은 어떻게 가지?’ 이렇게 하루를 시작하면 어떻게 행복하겠어요? 아침에 눈 뜰 때 벌떡 일어나서 총기 있게 시작해도 하루를 지내면서 이거 보고 저거 듣다 보면 또 원래 내 습관대로 돌아갑니다. 하물며 아침부터 인상을 쓰고 흐리멍덩하게 하루를 시작하면 어떻겠어요? 그래서 ‘매일 아침에 눈 딱 뜨자마자 정진부터 먼저 해라. 나부터 먼저 챙겨라’라고 하는 거예요. 나부터 챙기고, 그런 다음에 아이도 챙기고 배우자도 챙기고 부모도 챙기고 직장도 챙기고 세상도 챙기는 거예요. 이걸 혼자 알아서 하면 좋지만, 혼자 못 한다니까 같이 하자는 거예요.

지금이라도 정신을 차리면 돈이 없어도 행복할 수 있고, 키가 작아도 행복할 수 있고, 혼자라도 행복할 수 있고, 결혼해도 행복할 수 있고, 배우자가 병석에 누워 있어도 행복할 수 있고, 사별을 해도 행복할 수 있습니다. 배우자가 죽었다고 해서 내가 불행해야 할 이유가 뭐 있어요? 둘이 살 때는 늘 갈등이 있어서 힘들었는데 이제 편하게 살 수 있게 됐다고 볼 수도 있어요. 그래도 누군가 같이 사는 게 더 나아 보인다면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되죠. 전에는 처음 만나서 좀 갈등이 있었지만 이제 한 번 살아본 경험도 있겠다, 욕심 안 부리면 갈등이 있을 이유가 뭐 있어요?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지 않겠어요? 젊을 때도 같이 살았는데, 늙으면 살아본 경험도 있으니 못 살 이유가 더더욱 없잖아요. 눈 좀 안 보이면 어때요? 그동안 많이 봤잖아요. 귀 좀 안 들리면 어때요? 그동안 많이 들었잖아요. 뭐 그게 대단한 일이라고 야단이에요? 이런 관점을 딱 가지면 누구나 살아있는 한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 수 있어요.

좋은 일도 자기가 할 수 있을 만큼 좋은 일을 하면 됩니다. 무슨 대단하고 좋은 일을 하겠다고 또 욕심을 내서 못한다고 죄의식을 가져요? 죄의식을 가질 필요가 없어요. 그러나 내가 부족하고 어리석다는 것은 알고 있어야 합니다. 부족한 것은 조금씩 보완해 나가면 되고, 어리석은 건 깨우치면 되는 거예요. 그러니 꾸준히 수행을 해나갑시다.”

다음 시간에는 내가 사는 세상을 조금 더 아름답게 만들기 위해서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해 대화를 나누기로 했습니다. 이어서 오늘 배운 내용 중에서 궁금한 점에 대해 자유롭게 질문을 받았습니다. 한 사람이 질문을 한 후 스님이 답변하고 생방송을 마쳤습니다.

정토회 회원들은 모둠별로 화상회의 방에 모여서 마음 나누기를 했고, 스님은 방송실을 나왔습니다.

내일은 공동체 법사단 수련 2일째 날입니다. 오전에는 농사일과 발우공양을 한 후 오후에는 산행을 함께 하고, 저녁에는 정토불교대학 실천적 불교사상 11강을 생방송할 예정입니다.

전체댓글 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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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K

감사합니다 스님

2022-05-29 09:19:06

정토회

감사합니다

2022-05-23 15:24:36

임효신

감사합니다.

2022-05-22 07:3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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