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2.4.9 천일결사 기도 생방송
“현대인들에게 불안감이 더 높아진 원인이 무엇일까요?”

안녕하세요. 두북 수련원의 아침이 밝았습니다.

오늘은 천일결사 기도를 생방송하는 날입니다. 새벽 4시 30분에 맑은 종소리와 함께 생방송을 시작했습니다.

예불, 삼귀의, 수행문, 참회, 108배, 명상, 경전 독송을 차례대로 했습니다.

우거진 숲 속을 나는 코킬라 새처럼
저는 달콤한 목소리를 가지고 있었지만,
지금은 늙어서 종종 더듬거립니다.
진리를 가르치신 붓다의 말씀에는 거짓이 없습니다.
옛날 저의 목은
잘 갈고닦은 소라고둥처럼 아름다웠지만,
지금은 늙어서 구부정합니다.
진리를 가르치신 붓다의 말씀에는 거짓이 없습니다.
저의 두 팔은
전에는 둥그런 빗장처럼 훌륭했지만,
지금은 늙어서 대추나무처럼 야위었습니다.
진리를 가르치신 붓다의 말씀에는 거짓이 없습니다.

<암바팔리 비구니>

이어서 스님이 오늘 읽은 경전의 의미에 대해 법문을 해주었습니다.

“오늘 읽은 경전은 육신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것을 경계하는 내용입니다. 우리의 삶을 돌아보면 육신에 많이 집착하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특히 젊을 때는 머릿결이 얼마나 부드러운지, 피부가 얼마나 고운지, 눈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코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치아가 얼마나 가지런하게 보이는지, 목덜미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두 팔과 두 손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등에 지나치게 신경을 씁니다. 모두 몸에 지나치게 집착하여 가꾸죠. 그것도 모자라서 연지곤지를 바르고, 머리에 장식을 하고, 몸에 보석을 두르고, 꽃을 달고, 좋은 옷을 입히고, 맛있는 것을 먹이고, 좋은 침대에 재웁니다.

늙음이 괴로움이 되는 이유

몸뚱이에 온갖 정성을 기울여도 흐르는 세월을 이겨낼 수는 없습니다. 세월이 흐르면 머릿결은 하얘지고, 눈은 점점 보이지 않고, 피부는 쭈글해지고, 치아도 빠지기 시작합니다. 이렇게 나이 들어가는 모습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그런데 젊음에 집착하면 삶의 자연스러운 과정인 늙음이 괴로움으로 다가옵니다. 또 몸뚱이를 지니고 있는 한 고장이 나지 않을 수가 없죠. 사고로 다칠 수도 있고, 병이 들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몸에 집착하면 아프거나 다쳤을 때 괴로워집니다.

물론 몸을 함부로 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세월이 흐르면 변하는 것이 당연한데, 아름다운 육신에 너무 집착하지 말라는 의미예요. 몸이 있어야 일도 할 수 있고, 몸이 있어야 전법도 할 수 있고, 몸이 있어야 수행도 할 수 있습니다. 농기구를 잘 관리해서 유용하게 써야 하지만 농기구에 집착해서 특별한 장식을 하는 건 어리석은 일입니다. 이처럼 우리 몸도 건강할 때 잘 관리하는 건 좋지만 몸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건 어리석은 일이에요.

많은 사람들이 몸에 집착하고 살아갑니다. 백 년도 살지 못하는 이 몸을 천 년, 만 년 살 것처럼 애지중지하며 살아가는 것이 현실이죠. 몸을 애지중지할수록 늙음과 병듦은 우리를 더욱 고통스럽게 합니다.

이건 조금만 생각해보면 알 수 있습니다. 젊을 때 미인, 미남이라는 소리를 듣고 지낸 사람들이 늙음을 더 한탄하겠어요, 저처럼 보통으로 생긴 사람들이 늙음을 더 한탄하겠어요? (웃음)

또, 눈이 아름답다고 칭송받던 사람이 눈을 다쳤을 때 충격이 크겠어요, 그냥 보통 눈을 가진 사람이 다쳤을 때 충격이 크겠어요? 손이 예쁘다고 칭찬을 듣고 자란 사람이 손을 다쳤을 때 충격이 크겠어요, 보통 손을 가진 사람이 다쳤을 때 충격이 크겠어요? 이런 문제를 돌아보면 집착을 할수록 그걸 잃었을 때의 괴로움이 커진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남에 따라 신체는 변하고, 시력이든 아름다움이든 잃을 수밖에 없어요. 누구도 늙음과 병듦을 피할 수 없잖아요. 그러니 집착을 하면 할수록 늙음과 병듦이 찾아왔을 때 더 괴로워지는 거예요.

이런 측면에서 붓다의 가르침인 제행무상(諸行無常)은 살면 살수록 구구절절 와닿습니다. 젊을 때는 이 말이 귀에 잘 안 들어옵니다. 젊다고 거만하고 거들먹거릴 때는 부처님의 가르침이 소극적이고, 염세적이고, 현실에 맞지 않은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러다가 나이가 들고, 세상을 살아보면, 부처님의 가르침 하나하나가 모두 진실이라는 걸 알게 됩니다. 이렇게 나이가 들어서 깨닫는 것도 좋은 일이지만, 미리 이치를 알고 늙음과 병듦을 맞이하면 법의 진가가 더욱 드러납니다.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하는가?’에 대한 법문도 아이가 없거나 아직 아이가 어린 사람은 지금 당장 내가 사는 게 힘들기 때문에 귀에 잘 들어오지 않습니다. 그러다가 아이들이 크고 자라면서 나타나는 현상들을 보면 대개 뿌린 대로 거두기 때문에 ‘내가 이 이치를 미리 알았더라면 이 고생을 안 할 텐데’ 이렇게 후회를 하죠. 시간이 흐르고 결과가 나타나면 다 알게 됩니다. 뒤늦게 후회를 한들 소용이 없어요.

사람들은 자꾸 지나간 일을 가지고 아쉬워하고 후회를 하는데, 이미 지난 과거일 뿐입니다. 그러니 이미 지나간 일로 아쉬워하지 말고, 지나간 일을 통해 교훈을 얻어야 합니다. ‘20년 전에 내가 이렇게 생각했는데 그 결과가 이렇게 나타나는구나’ 이걸 알고 나면 이제 ‘지금의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해 생각을 해봐야죠. 과거에 한 일에 대해 후회를 하면서 지금 또 그런 일을 하거나, 과거에 하지 않은 일에 대해 후회를 하면서 지금 또 그런 일을 하지 않는 것은 미래에 또 후회할 일을 만드는 것과 같습니다. 이는 짐승만큼이나 어리석은 행동을 하는 거예요. 살면서 실수는 한 번은 할 수 있지만 같은 실수를 두 번 세 번 반복하는 건 바보 같은 짓입니다.

우리는 늘 과거를 돌아보면서, 또 과거에 내가 행한 것에 대한 과보가 나타나는 현재를 보면서, 이렇게 자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때 그 원인이 지금 이러한 결과를 가져오고 있구나’
‘그때 어려움 속에서도 그런 행동을 한 것이 지금의 좋은 결과를 가져왔구나’
‘그때는 좋은 줄 알고 행한 것이 지금은 이렇게 좋지 않은 결과를 가져오는구나’

이렇게 자각하게 되면, 지금 눈앞에 보이는 좋음에 집착하면 미래에 큰 손실을 입을 것을 미리 알 수 있습니다. 지금 힘들다고 해서 눈앞에 보이는 어려움을 회피하면 미래에 큰 손실을 입을 것도 미리 알 수 있습니다. 조금 어렵더라도 기꺼이 행하는 것이 미래에 큰 복이 된다는 것도 미리 알 수 있습니다.

원인이 있기 때문에 결과가 일어난다

꼭 경전을 읽거나 남에게 배우지 않아도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과거와 현재를 살피면, 누구나 이런 지혜를 얻을 수 있어요. 내가 과거에 어떠한 인연을 지었는지 다른 사람에게 물어볼 게 아니라 지금 나에게 일어나는 일들을 보면 알 수가 있습니다. 미래에 내가 어떤 과보를 받을지 역시 다른 사람에게 물어볼 게 아니라 지금 내가 시시때때로 경계에 부딪혀서 행하는 내 말, 내 행동, 내 마음의 일어남을 살펴보면 됩니다. 지금의 말, 행동, 마음이 원인이 되어 미래의 과보가 생기는 것이지,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도 아니고, 땅에서 솟아나는 것도 아닙니다.

오늘날 정토회가 이만큼 발전할 수 있었던 것도 과거 30년 동안 정토회 회원들이 노력해 온 결과이지, 신이 준 것도 아니고, 누가 대신해준 것도 아니고, 땅에서 솟은 것도 아닙니다. 또한 정토회가 계획한 만큼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것도 그만큼 노력한 결과이지, 이는 전생의 과보도 아니고 누군가의 저주로 그렇게 된 것도 아닙니다.

모든 일에는 안 되면 안 된 이유가 있고, 되면 된 이유가 있습니다. 늘 원인이 있기 때문에 결과가 일어납니다. 그러니 결과에 대해서 불만을 가지거나 후회를 하는 건 어리석은 짓입니다. 항상 지나간 과거를 살펴서 현재의 지혜를 얻고, 지금 일어나는 일에 대해 과거처럼 어리석게 대응하지 말고 좀 더 지혜롭게 행동해야 합니다.

경험이 부족하면 붓다나 성인들의 가르침을 참고하고, 또 부모님이나 선배들의 경험을 눈여겨보면서 나의 길을 찾아가야 합니다. 또한 과거의 경험 속에서 교훈을 얻을 수 있으면 그걸 살려서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내가 과거에 잘했든 못했든, 과거는 지나간 일입니다. 나에게는 현재와 미래만 있습니다. 과거를 돌이켜보는 이유는 현재와 미래에 잘 대응하기 위해서입니다. 이미 지어버린 일은 그 결과가 어떻게 나타나든 억울해하거나 변명하거나 책임회피를 하지 말고 기꺼이 받아들여야 합니다. 동시에 그것으로부터 교훈을 얻어서 미래에는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지금 내가 어떤 말을 하고,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마음을 쓰고, 어떤 행동을 할 것인지를 살펴야 합니다.

붓다의 가르침에 귀기울여야 하는 이유

오늘 읽은 경전에 나온 이야기는 나이가 많은 비구니 스님의 이야기 같아요. 이 비구니 스님은 젊었을 때부터 부처님의 가르침을 믿고 따르긴 했지만 100% 확신이 들지는 않았는데, 시간이 지나고 나서 돌아보니 ‘부처님의 말씀이 하나도 빼놓을 것 없이 구구 절절히 옳은 말씀이구나’ 하고 깨닫게 된 겁니다. 문단 하나하나마다 ‘진리를 가르치신 붓다의 말씀에는 거짓이 없습니다’ 하고 말하는 구절이 나오거든요. 부처님의 말씀은 허황되거나 거짓되지 않고, 항상 사실을 말하고 진실을 말한다는 뜻입니다.

금강경에도 ‘여래시 진어자 실어자 여어자 불광어자 불이어자(如來是 眞語者 實語者 如語者 不狂語者 不異語者)’라는 구절이 나옵니다. 반야심경에는 같은 의미지만 이를 줄여서 ‘진실되고 허망하지 않다’는 의미로 ‘진실불허(眞實不虛)’라는 구절이 나오죠.

진어자(眞語者)는 진실된 말을 하는 사람을 뜻하고, 실어자(實語者)는 사실을 말하는 사람을 뜻합니다, 여어자(如語者)는 늘 같은 말을 하는 사람, 즉 변하지 않는 말을 하는 사람을 뜻합니다. 불광어자(不狂語者)는 헛된 말, 미치광이의 말을 하지 않는 사람을 뜻하고, 불이어자(不異語者)는 두 가지 말, 즉 다른 말을 하지 않는 사람을 뜻합니다. 여래는 이처럼 진어자, 실어자, 여어자, 불광어자, 불이어자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부처님의 가르침에 귀의하여 살아가야 합니다. 부처님을 위해서 그렇게 하라는 말이 아니에요. 내가 내 인생을 잘 살기 위해서, 어떠한 경우에도 괴로움 없이, 후회 없이, 두려움 없이 살아가기 위해서 부처님이 가르침을 잘 알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부처님이 훌륭하니까 우리는 부처님을 섬겨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에요. 부처님은 오로지 우리 모두가 각자 삶의 주인이 되어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본인이 경험하고 탐구하고 알아낸 것을 우리에게 말씀하신 겁니다. 그러니 우리는 그런 가르침을 잘 듣고 내 삶의 양식과 양약으로 삼아야 합니다.”

생방송을 마친 후 두북 공동체 대중들은 각자 맡은 구역에서 청소를 했습니다. 청소를 마치고 6시 40분에 발우공양을 시작했습니다.

“불생가비라 성도마갈다 설법바라나 입멸구시라”

소심경을 외우고 식사를 한 후 대중은 스님에게 한 말씀을 청했습니다. 스님은 오늘과 내일 일정에 대해 간단히 공유해 주었습니다.

“저는 오늘 손님이 와서 하루 종일 산행을 할 예정입니다. 내일은 서울공동체에서 대중들이 8명 정도 내려온다고 하니까 산 윗밭에 올라가서 도라지, 모란, 더덕 심는 일을 하겠습니다. 산 위에서 일하다가 점심 먹으러 학교까지 왔다 갔다 하기가 힘드니까 점심은 그냥 산에서 먹을게요.”

말씀이 끝나자 해탈주 삼독을 하고 발우공양을 마쳤습니다.

스님은 곧바로 손님들과 함께 경주 남산을 산행하러 출발하였고, 두북 공동체 대중들은 각자 자신이 소속된 부서로 가서 업무를 했습니다.

손님들과 하루 종일 시간을 보낸 후 저녁이 되어 다시 두북 수련원으로 돌아왔습니다. 해 질 녘이 되자 바람이 강하게 불더니 벚꽃이 우수수 떨어졌습니다.

해가 지고 저녁에는 여러 가지 업무들을 처리한 후 하루 일정을 마쳤습니다.

오늘은 지난 일요일 외국인을 위한 영어 즉문즉설에서 소개하지 못한 내용을 전하며 글을 마칩니다.

현대인들에게 불안감이 더 높아진 원인이 무엇일까요?

“I have just started studying Buddhism so I have a long way to go. One of the questions that have just come up for me today is, do you think that anxiety is a Western society problem? I seem to be hearing a lot of people including friends and work-colleagues often mentioning how they are suffering from anxiety. What do you think people are mis-interpreting the word for anxiety? I just feel that everyone I know has anxiety but I am not sure why.”
(저는 이제 막 불교에 대해 공부를 시작한 사람으로 아직 갈 길이 멉니다. 오늘 제게 생긴 질문 중 하나는 스님께서는 ‘불안(anxiety)’이 서구 사회의 문제라고 생각하시는지입니다. 제 주변 친구나 직장 동료를 포함하여 많은 사람들이 자기들이 겪는 불안을 이야기합니다. 혹시 스님께서는 사람들이 ‘불안’이라는 말을 잘못 받아들이고 있다고 생각하시는지, 제 주변 사람들은 하나 같이 다 불안하다고 하는데, 왜 그렇게 느끼는지 저는 그 이유를 잘 모르겠습니다.”

“현대인들이 옛날 사람에 비해 불안감이 높다면 거기에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습니다. 첫째, 부모의 영향이 있습니다. 아기를 가졌을 때나 아이가 어릴 때 엄마가 심리적인 불안을 많이 느끼면, 마치 전염병이 옮겨가듯이 그 심리가 아이에게 전이가 되어 ‘선천적인 불안’이라고 여길 수 있을 만큼 아이에게 불안한 심리가 형성됩니다. 이런 경우에 아이의 입장에서는 이걸 자기에게 주어진 조건으로 받아들이고 살아야 합니다. 마치 신체적 장애가 있는 경우 그 장애를 안고 살아가야 하듯이, 이렇게 형성된 심리적 불안은 나에게 주어진 하나의 조건으로 안고 살아가야지, 이걸 개선하기는 현실적으로 아주 어렵습니다.

둘째, 어릴 때 자기가 원하는 것이 잘 이루어지지 않거나, 부모가 야단을 너무 많이 치거나 하면, 즉, 사랑을 받지 못하거나 불안한 분위기 속에서 성장을 하게 되면, 그것 자체가 습관이 되기 때문에 심리적 불안의 한 원인이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가 아이들이 어릴 때 무엇을 먹일 것인지, 무엇을 입힐 것인지 보다는 아이들이 심리적 안정을 취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마련해주는 것이 훨씬 더 큰 사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심리적 안정이라는 측면에서는 우유병으로 먹이는 것보다는 엄마의 따뜻한 품에서 젖을 먹이는 것이 더 좋습니다. 비록 물질적으로는 똑같은 영양분이 공급되더라도 심리적 안정 측면에서는 엄마의 따뜻한 품이 더 좋은 겁니다. 아이들이 있는 집안에서 부모가 고함을 지르거나 서로 다투거나 하는 것은 아이들에게 심리적 불안을 가져오는 큰 요인입니다. 요즘 현대인들에게 불안증이 많아졌다면, 어릴 때 보는 부모의 갈등이나 집안의 불화가 예전보다 커졌다는 걸 의미합니다.

셋째, 사람의 마음이 현재에 깨어있지 않고 자꾸 미래에 대해 생각을 하면 불안함이 생겨납니다. 가령 ‘내가 산 주식이 떨어지지 않을까’, ‘집에 불이 나지는 않을까’, ‘남편이 죽으면 어떻게 살까’, ‘아내가 죽으면 어떻게 살까’ 자꾸 이런 걸 생각하면 마음이 불안해집니다. 생각이 자꾸 미래로 나아가면 불안 초조해지고 근심과 걱정이 늘어납니다. 그래서 항상 지금 여기에 깨어있는 수행을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I totally believe what you just had to say in regards to parents handing anxiety down to their children. I am a kindergarten teacher and I do see those children who suffer from anxiety. It is just really sad to see them actually because they are so young and have to live whole lives ahead of them, and it is just unfortunate that they have picked up on their parents’ anxiety. It is a big problem and one that can be talked about for a long time, I guess. Thank you, Sumin.”
(부모의 불안이 자식에게 전이된다는 스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제가 유치원 선생님인데, 어린아이들이 불안에 시달리는 모습도 많이 봅니다. 아직 살아갈 날이 많은 어린아이들이 그런 문제에 시달리는 걸 보는 건 참으로 슬픈 일이고, 그게 부모로부터 전이되었다는 것은 운이 없다고 말할 수밖에 없겠습니다. 큰 문제인 만큼 앞으로 긴 시간에 걸쳐 논의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만의 문제를 가진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자기가 가진 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할 수는 없어요. 그럼에도 지금 우리는 이렇게 살아있지 않습니까? 살아있는 것만 해도 큰 복입니다. 일단 살아있는 것 자체가 복이라는 관점 위에 개선할 점을 조금씩 개선하면 됩니다. 좋은 일도 내 능력 밖으로 과하게 하려고 하면 괴로워지고 불만이 생겨요. 그냥 할 수 있는 만큼 한 발 한 발 나아가면 돼요. 다리가 하나 없는 사람은 다리가 두 개인 것에 비해서는 불편하지만 일단 살아있다는 게 중요해요. 죽지 않고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큰 축복입니다. 잃어버린 다리만 계속 생각하면 남은 생마저 불행하게 살아가게 됩니다. ‘이미 지나간 일은 지나가게 두고, 지금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 이런 관점을 가지면 지금 보다는 조금 더 편안하고 괴롭지 않게 살 수 있습니다.”

내일은 산 윗밭으로 올라가서 도라지, 더덕, 모란을 심고, 밭 주변에 나무를 정리한 후, 저녁에는 일요 명상을 생방송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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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희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마지막 말씀을 듣고 놓칠 뻔한 제 자신을 다시 보게 됩니다. 오늘 하루도 너무 욕심 부리지 말고 제가 할 수 있는 수준에서 할 수 있는 범위의 일을 해야겠네요. 또 내일 일을 걱정하지 말고 지금 현재 깨어 있겠다는 생각을 하니 마음이 조금은 편해졌습니다. 감사합니다.

2022-04-18 12:34:50

강원상

감사합니다 스님

2022-04-15 11:11:59

임효신

감사합니다😄

2022-04-14 19:4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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