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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두북 수련원의 아침이 밝았습니다. 활짝 핀 벚꽃이 벌써 우수수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새벽 기도와 명상을 마친 후 스님은 오전 내내 필리핀정토회에서 온 활동가들과 시간을 보냈습니다. 햇살이 점점 뜨거워질 무렵 산 앞밭으로 향했습니다.
“밥값 좀 하고 가야죠. 여기가 저희가 농사짓는 밭이에요.” (웃음)
스님이 오늘 해야 할 일을 묻자 농사팀 행자님이 자세히 일감을 안내해 주었습니다.
“우엉 씨앗을 두 줄 심어주시면 됩니다. 20cm 간격으로 주욱 심어 나가시면 돼요. 한 구멍에 우엉 씨앗 3개씩 넣어주세요. 마지막에 구멍 속으로 바람이 들어가지 않게 흙으로 덮어주시면 됩니다. 바람이 들면 수분이 다 날아가게 되거든요.”
행자님의 안내에 따라 한 사람이 먼저 구멍을 파고 지나가면, 다음 사람이 우엉 씨앗을 넣고 지나가고, 다음 사람이 북삽으로 흙을 떠서 구멍을 덮어주며 뒤따라 갔습니다.
필리핀정토회 활동가들은 제대로 씨앗을 심고 있는지 불안했는지 스님에게 질문했습니다.
“저희가 잘 심고 있는지 누가 점검을 해주셔야 하지 않아요?”
“괜찮아요. 일단 심어만 놓으면 자기들이 스스로 자라요.” (웃음)
“잘 자라는지 한 번씩 점검을 하러 와야겠어요.”
“필리핀에서 여기까지 비행기 타고 점검하러 오겠다고요?”
“그냥 비행기 값을 보시하는 게 더 도움이 되겠네요.” (웃음)
다들 사업을 하시는 분들이라 농사일이 서툴었습니다. 누가 더 일을 잘하는지, 누가 더 서툰지, 서로에게 농담을 해가며 씨앗을 심는 내내 웃음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우엉 씨앗을 다 심고 나자 스님이 농사팀 행자님을 불렀습니다.
“다음에 해야 할 작업은 뭐예요?”
“봄무를 한 줄 더 심어주시면 됩니다.”
무는 30cm 간격으로 심었습니다. 우엉 씨앗을 심을 때와 마찬가지로 구멍을 뚫고, 씨앗을 넣고, 흙을 덮어주는 일을 반복했습니다.
“당근도 심어야 하지 않아요?”
“당근은 봉사자들이 와서 지금 심고 있습니다.”
“그럼 우리는 봄나물을 좀 뜯으러 갑시다.”
씨앗 심기를 끝내고 스님과 거사님들은 비닐하우스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남자들은 저랑 같이 쑥갓이랑 상추를 뜯으러 갑시다.”
비닐하우스 안에는 온갖 채소들이 쑥쑥 자라나고 있었습니다. 그중 쑥갓과 상추를 조금 뜯었습니다.
“싱싱하게 잘 자랐네요.”
“이 정도만 뜯으면 점심때 먹기에는 충분합니다.”
비닐하우스를 나와 논둑으로 올라가 보았습니다.
“여기는 머위가 많아요. 그리고 쑥도 엄청나게 많이 자랐어요. 조금만 뜯어 갑시다.”
여자들은 벌써 논둑으로 가서 쑥을 뜯고 있었습니다. 스님과 거사님들도 머위와 쑥 뜯기에 결합을 했습니다.
“쑥을 뜯는 모습이 너무 아름답네요.”
봄기운이 너무 좋다며 거사님 한 분이 노래를 불렀습니다.
“봄처녀 제 오시네 새 풀옷을 입으셨네
하얀 구름 너울 쓰고 진주 이슬 신으셨네”
봄을 물씬 느낀 후 오전 울력을 마쳤습니다.
“수고했어요. 이제 밥 먹으러 갑시다.”
수확한 채소를 한 아름 안고 점심을 먹으러 갔습니다. 산은 점점 더 연둣빛으로 물들어 가고 있었습니다.
필리핀정토회 활동가들을 떠나보낸 후 오후에는 두북 수련원에 민주당 전 대표 송영길 의원 일행이 찾아왔습니다. 손님들과 3시간 넘게 대화를 나누고 저녁 식사를 함께 했습니다.
해가 지고 저녁 7시 30분부터는 금요 즉문즉설 생방송을 시작했습니다. 오늘은 3800여 명이 생방송에 접속해 스님의 즉문즉설을 시청했습니다.
먼저 시청자들에게 봄꽃 구경을 다녀온 영상을 보여 주었습니다. 영상이 끝나자 스님이 웃으며 인사말을 건넸습니다.
“봄이 온 것 같습니까? 여러분께 보여드리려고 3시간 동안 차 타고 다니면서 찍은 거예요. 덕분에 꽃도 구경하고, 여러분에게 좋은 봄날도 보여드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웃음)
이어서 질문을 받았습니다. 오늘도 사전에 세 명이 질문을 신청하고 스님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중 한 명은 남편이 무슬림인데 이슬람식 예배와 금식 등의 문제로 자주 부딪히게 된다며 어떻게 하면 남편과의 관계를 풀 수 있는지 질문했습니다.
“제 남편은 외국인이고 무슬림입니다. 결혼 전에 남편과 연애를 하면서 이슬람을 알게 되었습니다. 교리가 마음에 와닿아서 남편을 따라 이슬람식 예배도 하곤 했습니다. 그러나 결혼을 하고 나서는 소통의 부재와 남편의 무심함에 많이 상처받고 지쳐서 지금은 서로에게 좀 냉랭합니다. 저는 여러 가지 문제로 남편에 대한 원망과 불만이 쌓여 가는데, 남편은 이런 제 마음에는 눈 감고 귀 닫은 채 이슬람 기도 시간만 되면 기도를 하라고만 합니다. 이 문제로 수년간 여러 번 싸웠지만 고쳐지지가 않습니다.
제가 얼마 전부터 108배를 시작했는데, 남편은 이슬람을 버렸다며 안 좋아합니다. 부부관계를 회복하는 게 먼저이니 대화를 하자고 제가 말해도 대꾸도 없고, 지금 라마단 기간이니 같이 금식하자면서 자꾸 딴소리를 합니다. 어떻게 하면 남편과 관계를 좋게 풀어갈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저는 108배를 하고 싶은데 그래도 이슬람식 기도를 해야 할까요? 스님께 간절히 조언을 구합니다.”
“질문자는 지금 한국에 살아요, 외국에 살아요?”
“한국에 살고 있습니다.”
“남편이랑 그렇게 안 맞는데 왜 같이 살아요? 헤어지면 되잖아요. 남편이 좋은 점은 뭐예요?”
“처음에는 다른 한국 남자와는 다르게 술도 안 마시고 신실한 게 좋아서 결혼했어요. 그런데 막상 살아보니까 사람이 너무 감정을 표현하지도 않고 잘 안 맞아요. 지금은 거의 대화가 단절됐다시피 한 지경인데도 기도 시간만 되면 자꾸 기도하라고 하니까 정말 스트레스받아요.”
“그렇게 안 맞는 데도 불구하고 같이 사는 데는 무슨 이유가 있을 거 아니에요? 도저히 같이 못 살 정도가 되면 저한테 와서 묻지 않습니다. 본인이 알아서 헤어지죠. 저한테 와서 물어보는 건 아직 미련이 남아 있다는 뜻이에요. 그러니 남편에게 어떤 좋은 점이 있느냐고 제가 묻는 거예요. 남편과 같이 살아야 할 이유 중에 몇 가지만 말해봐요.”
“일단 아이가 있어요. 또 서로 성격이 안 맞는 것뿐이지 남편이 딱히 이상하거나 나쁜 사람은 아니에요. 그리고 저는 헤어지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어요. 같이 살기는 살 거예요.”
“같이 살기는 살 거라고요? 헤어질 생각은 없고요?”
“네, 그냥 남편과 사이가 좀 좋아졌으면 좋겠어요. 그런데 그 방법을 모르겠어요. 저희는 대화가 잘 안 돼요. 남편은 부부 싸움을 하다가도 이슬람 기도 시간이 되면 그냥 기도하러 가는 사람이거든요. 그렇다 보니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질문자가 이슬람에 대해 너무 모르고 결혼해서 그래요.”
“네, 그런 것 같아요. 처음에는 제가 남편과 이슬람을 너무 좋아했어요. 저는 원래 불교를 믿었기 때문에 절도 많이 하는 편이었는데, 이슬람도 좋아서 이슬람식 기도도 남편과 같이 해왔어요. 그런데 계속 남편하고 부딪히다 보니 원망과 불만이 막 쌓였어요.”
“구체적으로 무엇 때문에 불만이 생겼어요?”
“처음에는 여느 부부처럼 남편이 집안일을 안 하는 게 불만이었어요. 그리고 제가 결혼하고 나서 고생을 좀 많이 했어요. 남편이 초기에 돈을 못 벌었거든요.”
“남편 입장에서는 한국에 온 이민자인 셈이잖아요. 이민자가 처음부터 돈을 잘 벌 수 있을까요?”
“결혼하기 전에도 남편은 돈을 거의 못 벌고 제가 벌었어요.”
“이민자니까 그렇죠. 질문자는 남편이 돈을 잘 벌어서 결혼한 건 아니지 않아요?”
“네, 그건 아니죠.”
“그러면 돈이 불만의 이유가 되는 건 맞지 않아요. 돈을 잘 벌 것이라고 생각해서 결혼을 했는데 돈을 못 번다면 불만일 수 있어요. 그러나 질문자는 처음부터 남편이 이민자라는 것을 알았고, 남편이 결혼하기 전에도 돈을 못 벌었다고 말했잖아요. 그러니 돈을 못 번다는 게 불만의 원인이 될 수는 없다는 겁니다. 그건 처음부터 내가 알고 있었던 일이니까요.
무슬림이라는 것도 불만의 원인이 될 수 없습니다. 무슬림인 줄 모르고 결혼을 했는데 알고 봤더니 무슬림이라면 불만이 생길 수 있어요. 하지만 질문자는 남편이 무슬림이라는 걸 알고 결혼했잖아요. 무슬림은 하루에 다섯 번씩 기도한다는 사실을 모르고 결혼했다면 그건 질문자가 어리석었던 겁니다.
무슬림은 어떤 사람들인지 제가 겪었던 일을 이야기해볼게요. 제가 아프가니스탄에 난민 구호를 하러 갔다가 택시를 타고 사막을 지나간 적이 있었어요. 택시를 타는 사람은 급하니까 택시를 타는 거잖아요. 그런데 기사가 갑자기 차를 세우더니 차문을 열고 나가는 겁니다. 저는 오줌이 급한 줄 알았어요. 그런데 하얀 천을 한 장 딱 깔더니 기도를 했습니다. 손님한테 양해를 구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가다가 차를 세워놓고 기도하고 오는 거죠. 무슬림은 공항에서도 기도 시간이 되면 아무 데서나 엎드려 기도를 해요. 그렇다 보니 모든 국제공항에는 무슬림을 위한 기도실이 따로 마련되어 있습니다. 저도 가끔 공항에서 기도할 때는 무슬림 기도실에 들어갑니다. 조용히 기도할 수 있는 공간이거든요.
남편이 무슬림이라서 매일 기도를 하고, 이민자이기 때문에 돈을 잘 못 번다는 사실은 결혼할 때 이미 그 사람에게 전제된 조건이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런 이유를 문제 삼는다면 그건 질문자 본인의 문제이지 남편의 문제는 아니에요. 남편이 무슬림이지만 결혼하면 기도를 그만두겠다고 약속했다든지, 당장은 돈을 못 벌지만 앞으로 돈을 잘 벌게 될 사람이라고 예측했다면 또 모르겠어요. 그런 게 아니었는데 문제를 삼는 것은 맞지 않습니다.
그리고 집안일을 안 돕고 대화가 적은 것은 이슬람이라는 종교의 문제라기보다 문화의 문제예요. 중동 지역에는 아직도 봉건적 문화가 남아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조선시대에는 봉건적 문화가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유교가 문제인 것은 아니잖아요. 하나님 앞에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는 기독교를 믿었던 중세 유럽에서도 봉건적 문화가 있었던 나라에서는 여성이 많은 어려움을 겪었어요. 봉건적 문화란 남성 중심적 문화를 말해요. 이슬람이라는 종교의 문제라기보다 중동 지역은 사회 전체에 아직 봉건적 문화가 남아 있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라고 보셔야 합니다. 기독교도 봉건 시대에는 남성 중심적이었고, 유교도 봉건 시대에는 남성 중심이었고, 불교 국가라 하더라도 봉건 시대에는 남성 중심적이었어요. 중동 지역은 아직도 왕정이 있고 봉건적 요소가 남아 있는 사회입니다. 남편은 그런 환경에서 자란 거예요. 남자가 집안일을 하고, 남자가 가정을 돌보고, 남자가 아내와 다정하게 대화하는 문화가 없는 환경에서 자란 사람입니다. 그걸 모르고 결혼했다면 질문자가 무지했던 거예요. 다 알면서 결혼해 놓고 남편이 그런 걸 못 한다며 불평을 토로한다면 그건 제가 들어도 얼토당토않은 얘기예요.”
“그러면 제가 남편을 이해하기 위해 어떻게 기도를 해야 할까요?”
“돈은 질문자가 벌어서 같이 살면 돼요. 남편이 벌면 다행이지만 못 벌어도 그만입니다. 어차피 처음부터 경제력은 내가 맡아서 하고 있었으니까요. 남편에게 한국 사람에게는 없는 다른 좋은 점이 있었기 때문에 질문자는 남편과 결혼을 했을 겁니다. 한국 사람에게 없는 좋은 면이 있지만, 이민자이기 때문에 돈을 잘 못 번다는 단점이 있을 수밖에 없어요. 그러니 돈은 질문자가 벌어서 살면 됩니다. 그리고 남편이 무슬림이니까 정해진 기도 시간마다 기도하는 것을 인정해 줘야 해요. 원래 무슬림은 무슬림끼리만 결혼하도록 되어 있어요. 천주교도 천주교인끼리만 결혼하도록 되어 있잖아요. 무슬림만 그런 게 아니에요. 그러니 결혼을 했으면 이슬람 율법에 따라서 질문자도 하루에 다섯 번씩 기도하면 됩니다.”
“그런데 남편과 사이가 안 좋아지기 시작하면서 이슬람식 기도를 할 때마다 예전과 달리 뭔가 영혼 없이 기도한다는 느낌이 들어요.”
“형식은 이슬람식으로 하되 속으로는 불교식으로 자기 참회를 하면 되죠. 그게 뭐가 어려워요?”
“아, 그래요?”
“그럼요. 남편이 질문자의 속마음까지 어떻게 알겠어요? 투시경으로 내 속을 들여다보는 것도 아니잖아요. 겉으로는 ‘알라’라고 표현해도 마음에서는 ‘부처님’이라고 생각하고 기도하면 되잖아요. 그게 뭐 어려운 일이라고 그래요? 그렇게 하루에 다섯 번 기도하면 됩니다.
또 요즘 라마단 기간이라고 했잖아요. 이슬람교에서는 라마단 기간에는 해가 떠 있을 때는 무조건 밥을 안 먹습니다. 그러니 질문자도 해가 떠 있을 때는 밥을 안 먹어야죠. 해가 떠 있을 때 밥을 안 먹는 게 뭐가 어려워요? 많이 먹고 싶을 때는 남편 몰래 화장실에 가서 초콜릿이라도 조금 먹든지 하면 되잖아요. 그게 무슨 큰일이에요?
같이 살려면 맞춰야죠. 상대에게 맞추는 게 불교 수행입니다. 절하는 게 불교 수행이 아니에요. 헤어지고 싶으면 헤어지세요. 그러나 같이 살겠다면 상대에게 맞춰야 합니다. 내가 못나서 맞춰주는 게 아니에요. 내가 상대에게 맞춰주면 내가 편안해지고 아이가 편안해지기 때문입니다.
질문자는 지금 불교와 이슬람 중에 누가 더 센지 경쟁하는 것 같아요. 불교는 그런 게 아니에요. 같이 안 살려면 헤어지고, 같이 살려면 상대에게 맞추라는 게 불교입니다. 108배하는 게 불교가 아니고, 염불 하는 게 불교가 아니에요. 나와 다른 상대를 인정하고 ‘그 사람 입장에서는 그럴 수도 있겠다’ 하고 상대를 이해하는 게 불교입니다. 그래서 제가 처음에 물어봤잖아요. 지금까지 대화를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안 맞는데 왜 살아요? 헤어지면 되잖아요.’
‘헤어지지 않을 거예요.’
‘헤어지지 않으려면 싸우면서 같이 살래요, 안 싸우면서 같이 살래요?’
‘안 싸우면서 같이 살고 싶어요. 어떻게 하면 안 싸우면서 같이 살 수 있어요?’
‘상대에게 맞추세요.’
맞추는 게 뭐 그리 어려워요? 하루 다섯 번 기도하는 건 좋은 일인데, 그게 뭐 그렇게 어려워요? 질문자는 지금 이런 생각을 갖고 있어요.
‘부부간에 뜻도 서로 못 맞추는 주제에 알라신한테 기도만 한다고 뭐가 좋아지냐? 너는 내 마음도 몰라주면서 형식적으로 기도하는 거다.’
지금 이런 식으로 남편을 평가해서 남편이 기도하는 것을 비웃고 있는 거예요.
‘나와 대화조차 안 되는 사람이 기도하면 뭐해? 너희 알라 신이 어지간히도 좋아하겠다.’
질문자는 지금 이런 식으로 생각해서 남편을 비웃고 있는 거예요. 그러니 속이 불편할 수밖에 없죠.”
“네, 맞아요.”
“그런 마음을 갖고 있으면 갈등이 해결될 수 없어요. 신앙이 서로 다른 사람이 결혼을 했을 때는 서로 다른 점을 인정하고 상대의 문화를 내가 받아들여야 해요. 그게 옳아서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같이 살려면 받아들여야 한다는 말입니다. 내 부인이나 내 남편이 될 사람이 가톨릭 신자라고 해봅시다. 그러면 내가 세례를 안 받으면 결혼을 못 해요. 속으로야 어떻게 생각하든, 일단 성당에 가서 교육받고 세례를 받아야 결혼이 허용됩니다. 가톨릭의 문화가 그래요. 그러니 아무리 좋아도 ‘난 그렇게까지 하면서 결혼하고 싶지 않아. 그냥 친구로 지내자’ 이러든지, 상대와 결혼하고 싶을 정도로 좋아한다면 그냥 성당에 가서 교육받고 세례 받은 후 결혼을 해야 합니다. 결혼은 하고 싶고 세례는 받기 싫다면 그건 자기 고집대로 하겠다는 말밖에 안 돼요.
질문자도 잔머리 굴리지 말고 같이 살려면 그냥 맞춰주세요. 남편에게는 무조건 맞추어야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같이 살려면 맞추는 게 좋다는 의미예요. 특히 애들을 키우는 엄마는 마음이 편안해야 합니다. 마음이 편안하려면 상대가 하자는 대로 하면 됩니다. 나쁜 짓을 하자는 것도 아니잖아요. 술 먹자는 것도 아니고, 남을 때리자는 것도 아니고, 도둑질을 하자는 것도 아니고, 기도하자고 하는데 그걸 왜 같이 못 해요? 앞으로는 싸우다가도 기도 시간이 되면 질문자가 먼저 이렇게 얘기하세요.
‘여보, 기도 시간이야. 기도하고 난 후에 다시 싸우자.’
밥 먹다가도 딱 기도 시간이 되면 기도부터 하고 밥을 마저 먹자고 질문자가 먼저 적극적으로 얘기해 봐요. 남편이 밥 먹으려고 하면 ‘라마단 기간이잖아. 밥 먹지 마’ 이렇게 얘기하고 질문자는 몰래 좀 먹고 오고요. (웃음)
이렇게 남편이 이슬람 율법에 따라 잘 사는지 적극적으로 감시를 해보세요. 제 말은 질문자가 주도권을 적극적으로 쥐고 생활해야 한다는 뜻이에요. 불교를 공부했다고 하니 질문자도 잘 알겠지만 이걸 불교 용어로 ‘수처작주(隨處作主)’라고 해요. 어디를 가든 내가 주인이 된다는 뜻입니다. 주어진 조건에서 내가 주인이 되어 행동하는 거예요. 이런 자세를 한번 가져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에요. 1년 정도는 그렇게 무조건 맞춰보고, 안 되면 그때 가서 살지 말지를 또 생각해 보면 됩니다. 도저히 못살겠다 싶으면 ‘안녕히 계십시오’ 하고 끝내면 되잖아요. 어떤 결정을 내리든 상대를 미워하지 말라는 겁니다.
기왕에 같이 살려면 싸우고 사는 게 낫겠어요, 안 싸우고 사는 게 낫겠어요? 안 싸우고 사는 게 낫겠다면 상대에게 맞춰 보세요.
‘작년 1년도 맞춰가며 살았는데 1년 더 맞춘다고 뭐가 문제냐?’
인생살이를 이렇게 가볍게 생각하라는 겁니다. 질문자는 인생살이를 너무 무겁게 생각하고 있어요. 여러분이 볼 때는 저렇게 서로 다른 남자와 왜 같이 사는지 궁금하죠? 여러분은 몰라서 그래요. 말을 다 안 해서 그렇지, 저분이 저렇게 얘기할 때는 남편만의 좋은 점이 있습니다. 좋은 점이 있기 때문에 비록 힘들어도 같이 사는 거예요. 100% 다 내 마음에 드는 사람은 이 세상에 없습니다. 마음에 드는 것도 있고 안 드는 것도 있는데, 마음에 드는 건 다행이고, 마음에 안 드는 건 서로 다름을 인정하면 돼요. 같이 살려면 상대에게 맞추면 됩니다. 대화를 해서 ‘너는 너, 나는 나’ 이렇게 서로를 인정하고 각자 사는 길도 있고요.
그런데 이슬람의 사고방식에서는 너는 불교 믿고 나는 이슬람을 믿겠다는 방식으로 합의가 될 수 없어요. 불교는 그런 방식의 합의가 가능하지만 이슬람은 그렇게 안 됩니다. 결혼해서 살려면 같은 신앙생활을 해야 해요. 아이들이 크면 무슬림이 되든 불교신자가 되든 자기가 선택할 수 있는 종교의 자유가 있다고 생각하죠? 이슬람은 안 그래요. 아이들도 무조건 이슬람을 믿어야 합니다. 그런 걸 잘 모르고 결혼했다면 질문자가 어리석은 거예요. 키가 큰 것만 보고 결혼했든, 코가 우뚝한 것만 보고 결혼했든, 뭔가 혼이 빠져서 결혼한 겁니다.
아직 이혼할 정도는 아니라면 먼저 상대에게 맞추는 노력을 좀 더 해보세요. 하루에 다섯 번 기도하자는 건 좋은 일입니다. 좋은 일을 여러 번 하자는데 그게 뭐 힘들어요? 그렇게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관계를 개선해 나가 보면 좋겠다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잘 알았습니다.”
질문자는 호탕하게 웃으며 스님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이 외에도 다음과 같은 질문이 있었습니다.
대화를 마치고 나서 스님이 질문자들에게 한 줄 소감을 물어보았습니다. 무슬림 남편과의 갈등에 대해 질문했던 분도 소감을 이야기했습니다.
“저는 그동안 남편에 대해 ‘옆에 있는 부인 말도 제대로 안 듣는 사람이 무슨 기도만 저렇게 열심히 하느냐’ 이렇게 생각했었어요. 그런데 스님이 제 생각을 너무 그대로 말씀하셔서 깜짝 놀랐습니다. 제가 좀 힘들겠지만, 그래도 같이 살려면 남편이 하자는 대로 이슬람 의례를 같이 하는 게 가정을 위해서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질문자는 한 가지 더 궁금한 게 있다며 추가로 질문을 했습니다. 스님은 다시 한번 질문자를 위해 답변을 해주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108배를 굉장히 하고 싶어요. 어떻게 108배를 해야 할까요?”
“108배도 하세요.”
“남편은 그걸 왜 하냐고 해요. 왜 이것저것 섞느냐는 거죠.”
“하루 다섯 번 이슬람 기도를 하면서 108배도 추가로 하면 돼요. 다섯 번 이슬람 기도를 안 하고 108배를 하니까 시비가 되죠. 이슬람식 기도를 질문자가 솔선수범해서 한 뒤에 또 108배를 하면 문제가 없어요. 왜 108배를 하냐고 남편이 따지면 이렇게 대답하면 됩니다.
‘우리가 서로 잘 지내려면 기도를 더 해야 해요. 이슬람은 다섯 번 하지만 불교는 여섯 번 합니다.’
남편이 하자는 것을 다 하고 나서 더 하는 건데 뭐라고 하겠어요? 그럴 때는 남편이 뭐라고 해도 ‘알았어. 당신이 하자는 건 다 할게. 다 하고 나서 내가 좀 더 기도하겠다는데 왜 문제야?’ 이러면서 그냥 꿋꿋이 108배를 해 나가면 돼요.”
“네, 알겠습니다.”
“상대에게 맞춰야 한다고 해서 모든 것을 포기할 필요는 없어요. 상대에게 맞춰주고 나머지 시간에 내가 더 하는 건 괜찮습니다. 예를 들어서 내가 할 일이 밥하는 일이라고 해봅시다. 밥하는 일을 마친 뒤에 나머지 시간을 자유롭게 쓰는 건 괜찮지만, 밥은 안 하고 딴짓을 한다면 시비가 생길 수밖에 없어요. 내가 남편의 노예도 아닌데 남편이 시키는 대로 100% 따라야 할 이유가 뭐 있어요? 부부가 결혼했으면 상대에게 맞춰줘야 하니까 어느 정도는 맞춰주되, 그런 다음에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추가로 더 하는 건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아니면 이렇게 얘기해도 됩니다.
‘내가 잘났다는 생각 때문에 당신에게 불만이 생기는 것 같아. 나를 반성하고 참회하는 의식이 108배야. 참회하는 절은 많이 하면 좋잖아. 이게 다 당신 잘 되라고 하는 거야.’
이 말이 사실이기도 하잖아요. 이렇게 유연하게 대처하면서 계속 기도해 나가면 됩니다.”
“그러면 108배할 때 마음에 새겨야 할 기도문을 하나만 주실 수 있을까요?”
“기도문이 굳이 필요하다면 ‘남편이 부처님입니다’ 이렇게 되뇌면서 기도하세요.”
“감사합니다.”
여기까지 대화를 나누고 생방송을 마쳤습니다. 밤 9시가 훌쩍 넘었습니다.
내일은 새벽에 천일결사 기도를 생방송한 후 하루 종일 두북 수련원을 찾아온 손님들과 경주 남산을 산행하며 대화를 나눌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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