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2.4.6 천룡사 복원을 위한 회의, 수행법회
“업식을 그대로 두고도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방법”

안녕하세요. 두북 수련원의 아침이 밝았습니다. 오늘은 손님들이 오셔서 천룡사에 대해 안내하고 경주 남산을 산행하고 내려왔습니다.

새벽 기도와 명상을 마친 후 두북 수련원을 출발해 경주 남산으로 향했습니다.

스님은 손님들이 도착하기 2시간 전인 10시에 천룡사에 미리 도착했습니다.

법당을 참배한 후 유수 스님과 천룡사 일대를 미리 둘러보았습니다. 오늘 손님들이 오시면 어떤 경로로 어떻게 설명을 할지 미리 파악했습니다.


천룡사 일대를 한 바퀴 돌고 오니 국립공원공단 이사님과 경주사무소 소장님, 과장님이 미리 도착해 있었습니다. 함께 탐방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곧이어 문화체육관광부 종무실, 문화재청, 경주시청 문화재팀, 경북도청 문화예술과, 화랑문화재 연구원 분들이 속속 도착했습니다.

점심식사를 하고 먼저 천룡사 주변을 함께 둘러보았습니다. 천룡사 유적 발굴을 진행하고 있는 화랑문화재 발굴단에서 지금까지 발견된 유적을 설명해주었습니다.

이어서 스님의 안내에 따라 천룡사 일대를 쭉 둘러보았습니다.




다시 천룡사로 돌아와 2시부터 ‘천룡사 복원을 어떻게 할 수 있을까’를 주제로 회의를 시작했습니다.

먼저 스님이 ‘천룡사의 역사와 복원의 의의’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주었습니다.

이어서 화랑문화재 발굴단 원장님이 발굴 진행 사항을 설명해 주었습니다.

천룡사의 역사와 의의, 유적 현황에 대한 보고를 받은 후 연관 부서의 실무자들이 서로 의견을 나누었습니다. 이야기를 할수록 천룡사의 복원을 가로막는 장애들이 무엇인지가 선명해졌습니다.

관계자들의 이야기를 경청하던 스님은 회의의 논의 방향에 대해 다시 한번 짚어주었습니다.

“불심도문 큰스님이 천룡사 복원을 염원하시고 많은 돈을 들여서 이 땅을 구입하고 평생 동안 정성을 기울였지만 결국 뜻대로 안 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문화재 보호와 행정상의 이유로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무조건 안 됩니다’ 이렇게만 이야기해서는 역사의 발전이 일어날 수가 없다고 생각해요. 어려운 조건을 이해하되 천룡사의 경우 역사적인 스토리가 많은 절이기 때문에 복원에 대해 긍정적으로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국가의 미래를 생각하는 스토리가 서린 곳

절마다 스토리가 다 있지만 대부분 남녀의 사랑 이야기라든지 불교에 대한 스토리가 많은데, 천룡사는 국가의 미래를 생각하는 스토리가 서려 있는 곳입니다. 이런 절은 흔치가 않아요. 어쩌면 후손들에게 중요한 교육의 장이 될 수도 있는 절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측면에서 천룡사 복원을 긍정적으로 검토하면 방법이 찾아질 수도 있는데, 불가능하다고 전제를 하면 방법을 찾을 수가 없다는 거예요.

두 가지 목표 사이에 조화를 이루는 방법

문화재 보호의 원칙을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천룡사를 복원할 수 있는 어떤 지혜를 우리가 찾았으면 해요. 무조건 복원해야 한다고 밀어붙이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불가능하니까 포기하는 것도 아닙니다. 문화재를 보호해야 한다는 취지도 올바르고, 역사와 스토리가 있는 유서 깊은 절을 복원해서 국민들에게 희망을 준다는 목표도 올바르기 때문에 이 둘 사이에 조화를 이루는 방법을 찾아보자는 거예요. 이것에 대해 여러분들이 연구를 좀 해주시고 길을 열어주었으면 합니다.

저는 단순히 종교적인 접근으로 천룡사 복원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에요. 이 일은 대한민국의 국운을 융창하게 하기 위해 독립운동가 용성조사님으로부터 4대에 걸쳐서 저에게 전해진 선대의 유훈입니다. 그래서 저도 ‘이 일에 관계된 모든 분들이 서로 상생할 수 있는 길이 무엇일까’ 하고 연구를 하고 있는 거예요. 그런 차원에서 관계된 사람들이 다 같이 모여서 대화를 나눠보고자 이런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직접 와서 보시고 확인을 하셨지만, 보시다시피 터도 넓어서 좋고, 주변에 민가가 없어서 민원이 들어올 이유도 없고, 복원할 수 있는 조건은 좋아요. 그러니 작은 규모라도 복원을 해서 이 절에 서려 있는 역사적인 스토리를 살릴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 보면 좋겠습니다.”

스님의 이야기를 듣고 관계자분들은 다시 한번 머리를 맞대어 연구를 했습니다.

2시간 동안 의논을 한 후 회의를 일단락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스님이 관계자 분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먼 길을 와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저희가 와서 도움이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용성조사님부터 불심도문 큰스님, 그리고 법륜스님에 이르기까지 오랜 시간 노력해 오신 과정을 익히 알고 있습니다. 저희도 최선을 다해 알아보겠습니다. 일단 절차상 계획안을 작성하는 게 중요할 것 같아요. 앞으로 천룡사가 어느 정도 중창이 되면 참 좋겠네요.”

“고맙습니다. 큰 도움이 됐습니다.”

회의를 마치고 스님은 바라지해준 봉사자들에게 감사 인사를 했습니다.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는 관계자분들에게 스님이 한 가지 제안을 했습니다.

“돌아가시기 전에 남산을 둘러보고 싶으신 분은 저와 함께 갑시다. 제가 진달래를 제대로 보여 드릴게요.”

문화체육관광부 종무실 관계자들이 스님을 따랐습니다. 스님이 말한 대로 백운암을 지나서 산길로 들어서자 진달래 꽃길이 펼쳐졌습니다. 관계자 분들은 감탄하며 말했습니다.

“살면서 이렇게 많은 진달래는 처음 봅니다.”





봉화대 가까이에서 경주남산 주변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바위 위로 올랐습니다.

“스님,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어 주셔서 감사해요.”

내려오는 길도 온통 진달래였습니다. 스님과 일행은 천룡사 복원에 대해 진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도 진달래 앞에 자주 멈추어 섰습니다.



내려오는 길에 열암곡 석불좌상과 엎드려 있는 마애불상도 참배했습니다. 마애불상은 5cm만 더 땅에 닿았어도 박살이 났을 것이라고 해서 5cm의 기적이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마애불상을 처음 본 관계자들은 감탄했습니다.


불상을 보고 진달래를 따라 산 아래까지 내려오니 6시가 넘었습니다.

스님은 종무실 관계자 분들을 경주 시내에 있는 숙소까지 모셔다 드렸습니다. 특별히 벚꽃이 만발한 경주의 명소들을 돌고 돌아 숙소에 도착했습니다.


관계자 분들을 내려 드리고 저녁 7시가 넘어 스님은 서둘러 두북 수련원으로 출발했습니다. 오늘은 저녁에 수행법회 생방송을 하는 날입니다. 수행법회 시간에 늦을 것 같아 방송팀에게 급히 연락을 했습니다.

“법회에 늦을 것 같아요. 어제 벚꽃 구경하고 온 영상을 먼저 틀어 주세요.”

스님이 도착하기 전에 어제 두북 공동체 대중과 함께 벚꽃 구경을 하고 온 영상을 먼저 보여주었습니다.

▼ 영상 보기

법회가 시작할 때쯤 가까스로 두북 수련원에 도착했습니다. 저녁 식사를 할 겨를도 없이 목만 축이고 방송실 카메라 앞에 앉았습니다.

화상회의 방에 입장한 정토회 회원들은 법문을 기다리며 명상을 하고 있었습니다. 명상이 끝나는 죽비 소리가 나자 스님이 인사말을 했습니다.

“영상으로나마 벚꽃 구경 잘하셨죠? 제가 있는 이곳은 벚꽃이 아주 만발했다가 벌써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서울은 벚꽃이 이제 막 피기 시작할지 모르겠습니다. 여러분도 봄을 만끽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은 도시에서 살다 보니 봄꽃 구경을 잘 못하죠? 그래서 어제 제가 특별히 여러분에게 보여줄 봄꽃을 찍으러 가자고 제안해서 공동체 사람들과 함께 나갔습니다. 마침 어제는 최제우 대신사가 득도하신 날이기도 합니다. ‘사람이 하늘이다’ 하는 큰 깨달음을 얻은 날이에요. 그래서 어제는 꽃구경도 할 겸 최제우 대신사가 깨달으신 날을 기념해서 깨달음을 얻은 장소인 용담정과 생가를 방문하고 왔습니다. 영상 잘 보셨습니까?”

이어서 오늘의 법회 주제인 지혜바라밀에 대한 법문을 시작했습니다. 지난 한 달 동안 육바라밀에 대해 법문을 해오고 있는데 오늘은 그 마지막 시간입니다.

“여섯 개의 바라밀 중에 마지막 바라밀은 ‘지혜바라밀(智慧波羅蜜)’입니다. 인도 말로는 반야바라밀(般若波羅蜜)입니다. ‘반야’를 빨리어로는 ‘빤냐(paññā)’라고 합니다. 한자로 옮겨서 우리 식으로 읽으면 ‘반야’가 됩니다. ‘반야’는 인도 원어의 발음을 따서 옮긴 음역이라고 말할 수 있고, 뜻을 새겨서 옮긴 의역은 ‘지혜바라밀’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어리석은 사람, 현명한 사람, 깨달은 사람

지혜와 반대되는 말이 무엇일까요? 어리석음입니다. 또는 무지(無知)라고 할 수 있어요. 가장 어리석은 사람을 ‘범부중생’이라고 부릅니다. 쥐가 쥐약을 먹듯이, 물고기가 낚싯밥을 물듯이, 금방 고통이 올 것을 모르고 어리석은 행동을 하는 사람이 바로 범부중생입니다.

이런 어리석은 사람에 비해서 인연 과보를 잘 아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원인을 지으면 결과가 있다는 것을 압니다. 그래서 원인을 지으면 그 결과를 기꺼이 받아들이고, 결과가 싫으면 원인을 짓지 않습니다. 이처럼 슬기로운 삶을 살아가는 사람을 ‘현인’이라고 해요.

어리석은 범부중생이 되지 말고 최소한 현인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현인은 괴로움에서 완전히 벗어났다고는 말할 수가 없어요. 주는 건 없이 받으려고만 한다면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주는 게 있어야 받을 것도 있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 이런 말들은 모두 현인의 삶을 의미해요. 그런데 이 세상은 기계론적으로 돌아가지 않습니다. 준다고 해서 반드시 받도록 되어 있지 않아요. ‘주면 받을 확률이 높다’ 이렇게 말할 수는 있지만, ‘주면 반드시 받는다’ 이렇게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주면 받을 수 있다’ 이렇게 생각하면 주지도 않고 받겠다는 어리석음에서는 벗어날 수 있지만, 주었다가 돌아오는 게 없으면 실망하고 배신감을 느끼게 됩니다. 결국 괴로움이 생겨요.

그러나 부모가 자식에게 베풀듯 그냥 베푸는 것으로 끝나고 다시 받겠다는 생각이 없는 자세일 때는 괴로움이 생겨나지 않습니다. 이런 원리를 꿰뚫어 알고 행하는 것을 ‘지혜롭다’ 이렇게 말해요. 이것을 ‘지혜바라밀’이라고 합니다. 슬기로운 것을 지혜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슬기로운 것은 지혜바라밀이라고 할 수는 없어요. 적어도 지혜바라밀이 되려면 결과에 대해서 아무런 연연함이 없어야 합니다.

사실을 사실대로 알지 못하는 이유

지혜는 사실을 사실대로 아는 것 또는 그러한 능력을 뜻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사실이 무엇인지 모르거나, 알아도 일부만 알거나, 한쪽만 알거나, 그러면서 그걸 전체라고 착각합니다. 이런 것을 ‘편견’ 또는 ‘오류’, ‘무지’라고 말해요. 편견을 깨뜨리고 전모를 보는 것이 통찰력입니다. 예를 들어 코끼리를 볼 때 눈을 감은 채 다리를 만져보고 기둥 같다고 하거나, 배를 만져보고 벽 같다고 하거나, 꼬리를 만져보고 빗자루 같다고 하는 것이 편견입니다. 그 특정한 부분에 한해서는 일리가 있지만 그것이 코끼리는 아니잖아요. 눈을 딱 뜨고 코끼리 전체를 보는 것, 전모를 파악하는 것, 사실을 사실대로 아는 것을 ‘통찰력’이라고 하고, 이것을 ‘지혜’라고 합니다.

사실을 사실대로 알지 못하게 되는 원인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째, 인간이 인식할 수 있는 시공간의 한계 때문에 오류가 발생합니다. 둘째, 인간이 가진 업식 때문에 사실을 사실대로 알지 못합니다. 그런데도 인간은 자기가 알고 있는 것을 객관적 사실이라고 착각해요. 이것을 대승불교에서는 ‘상을 짓는다’라고 표현합니다. 주관을 객관이라고 착각하는 거예요. 말하는 본인 입장에서는 객관이라고 생각하니까 당연히 자기가 옳다고 주장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을 ‘집착’ 또는 ‘고집’이라고 해요.

‘아니, 내가 그냥 고집하는 게 아니라니까. 그게 사실이잖아!’

이렇게 주장하는 이유는 상을 지었기 때문입니다. 집착을 놓으면 된다는 건 알지만 집착이 안 놓아져요. 왜냐하면 사실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집착을 안 하려야 안 하기가 어려워요. 집착이 모든 괴로움의 원인입니다.

그런데 더 깊이 들어가 보면 내가 알고 있는 것이 사실이 아닙니다. 범부중생에서 벗어났다 하더라도 꾸준한 수행과 통찰을 통해 여기까지 알아야 해요. 그럼 사실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업식을 그대로 두고도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방법

사실을 알기 전에 우선 유념할 것이 하나 있습니다. 내가 인식한 것이 객관적인 사실이라고 할 만한 아무런 근거가 없기 때문에 적어도 고집은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첫째예요. ‘내가 아는 모든 것은 사실이 아니다’ 이렇게 받아들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어떤 것은 사실일 수도 있고, 어떤 것은 사실이 아닐 수도 있어요. 그러나 아직은 사실이라고 할 확정적인 증명이 없다는 뜻입니다. 물론 현실에서는 자동적으로 그것이 사실이라고 생각이 되는 게 또한 현실이에요. 그러나 고집해서는 안 됩니다. ‘나는 옳고, 너는 그르다’ 이렇게만 보지 말라는 거예요.

‘저 사람은 저렇게 생각하는구나.’
‘저 사람은 저렇게 믿는구나.’

일단 이렇게 받아들이면 사실을 확인하지 않고도 괴로움이 확 줄어들어요. 왜 그럴까요? ‘서로 다르네!’ 이것은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이 벽의 색깔이 하얀색입니다. 그런데 붉은 안경을 끼고 보면 붉게 보이고, 푸른 안경을 끼고 보면 푸르게 보여요. 그럴 때 우리는 ‘벽 색깔이 붉다’, ‘벽 색깔이 푸르다’ 하면서 논쟁을 벌입니다. 그러나 둘 다 사실이 아닙니다. 여기서 사실은 두 가지예요. ‘안경을 벗으면 벽 색깔이 하얀색이다’ 이것이 한 가지 사실입니다. 그런데 안경을 벗지 않고도 또 하나의 사실을 확인할 수 있어요. ‘너와 나의 눈에 각기 달리 보인다’ 이것도 한 가지 사실입니다.

그래서 업식을 소멸해서 깨달음의 길에 이르기도 하지만, 이처럼 업식을 두고도 괴로움이 없는 경지에 이를 수가 있습니다. 그 방법은 업식을 그대로 두고도 ‘서로 다르네!’ 하고 인정하는 거예요. 안경을 벗지 않고도 ‘당신의 눈에는 파랗게 보이는군요. 저는 빨갛게 보이네요’라고 말할 수 있다면 갈등은 없습니다.

각자 보이는 대로 표현해도 갈등하지 않을 수 있어요. 대신에 상대가 빨갛다고 할 때 약간의 통역을 해야 합니다.

‘아, 내 눈에는 파랗게 보이는데 저 사람의 눈에는 빨갛게 보이는구나’

이렇게 약간의 통역을 할 수 있으면 갈등이 생기지 않아요. 즉문즉설에서 제가 주로 하는 역할도 여러분 사이에서 통역을 하는 겁니다. 같은 한국 사람이고 20년 동안 부부로 지낸 사람들 사이에 갈등이 생겼을 때 중간에서 제가 통역을 하는 거예요. 배우자가 어쩌고 저쩌고 하면서 하소연을 하면 제가 그 상대방의 입장에서 느끼는 것을 통역해 주는 것이 즉문즉설입니다. (웃음)

물론 우리가 끼고 있는 색깔 있는 안경, 즉 업식을 소멸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한마디로 깨닫는 겁니다. ‘눈을 뜬다’ 이렇게 표현하기도 합니다. 업식이 점점 엷어지면 비교적 사실에 가까운 모습이 무엇인지 알게 됩니다.

육바라밀 중에 가장 으뜸이 되는 바라밀

모르는 것을 무지(無知)라고 합니다. 많이 아는 것을 지혜라고 해요. 그러나 통찰력이 결여되어 있다면 그것은 진정한 지혜라고 할 수 없어요. 진정한 지혜는 무언가를 앎으로 해서 괴로움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그것을 앎으로 해서 괴로움이 사라질 때 그것을 지혜바라밀이라고 합니다.

‘그 사람이 그랬구나' 하고 알게 되었을 때 의문이 없어지고 괴로움이 없어지고 화가 없어지는 앎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그랬구나' 하고 알게 되었을 때 오히려 화가 더 나고 더 괴로워지고 더 슬퍼지는 경우도 있어요. 그렇다면 지혜가 아닙니다. 그냥 아는 것과 지혜는 달라요. 앎으로 해서 심리가 더욱 부정적이 된다면 지혜가 아니에요. 마음이 우울하거나 괴롭다가 무언가를 앎으로 해서 그 괴로움이 사라진다면 지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을 지혜바라밀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지혜바라밀은 여섯 가지 바라밀 중에 하나인 동시에, 여서 가지 바라밀을 통칭하는 의미도 갖고 있어요. 여섯 가지 바라밀이 모두 지혜를 바탕으로 해야 바라밀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깨달음이 없는 베풂은 보시는 되지만 보시바라밀은 안 돼요. 보시의 본질, 즉 본래 내 것이라고 할 것이 없다는 무소유의 원리를 깨달았을 때 베풀면서도 대가를 바라지 않는 마음을 갖게 됩니다. 그래야 베풂으로 인한 괴로움이 다시는 생겨나지 않아요. 그것이 보시바라밀입니다.

어떤 행위가 남에게 해를 끼친다면 그 행위를 멈추는 사람이 현인이에요. 하고 싶지만 억지로 참고 멈추는 거죠. 그러면 남한테 해는 안 끼치지만 내가 스트레스를 받게 됩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깨달음이 있어야 해요.

‘이렇게 하는 것이 남에게만 좋은 게 아니라 나한테도 진짜 좋은 것이구나. 지금 먹고 싶은 걸 안 먹는 이 행위가 나한테 좋은 것이구나.’

이렇게 확연히 알아버리면 계를 지키는 것에 대해 아무런 스트레스를 받지 않습니다. 그럴 때 지계바라밀이 됩니다.

인욕에 대해서도, 선정에 대해서도, 정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깨달음의 눈으로 본질을 꿰뚫어 알아서 행하면 모두 바라밀이 됩니다. 깨달음의 눈으로 보시를 행하면 보시바라밀이 되고, 깨달음의 눈으로 계를 지키면 지계바라밀이 되고, 깨달음의 눈으로 참으면 인욕바라밀이 되고, 깨달음의 눈으로 노력하면 정진바라밀이 되고, 깨달음의 눈으로 마음을 고요하게 하면 선정바라밀이 됩니다. 고요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선정바라밀이 아니에요. 부지런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정진바라밀이 아닙니다.

그런 점에서 지혜바라밀은 모든 바라밀을 총칭하는 말입니다. 모든 바라밀 중에 으뜸 바라밀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그래서 불교에서는 보시도 중요하고, 인욕도 중요하고, 지계도 중요하고, 정진도 중요하고, 선정도 중요하지만, 불교의 궁극적 목표는 지혜에 있습니다. 즉 깨달음을 얻는 데에 있어요. 괴로움이 사라지는 열반과 해탈이 불교의 궁극적 목표입니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괴롭다면, 아무리 지위가 높아도 괴롭다면, 아무리 아는 게 많아도 괴롭다면, 아무리 명예가 있어도 괴롭다면, 그 무엇도 수행자에게는 의미가 없습니다.”

여기까지 법문을 한 후 궁금한 점에 대해 자유롭게 질문을 받았습니다. 참가자들은 즉석에서 손들기 버튼을 누르고 스님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여러 명이 질문을 연이어했습니다. 그중 한 명은 인욕바라밀에 대해 추가 질문을 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인욕바라밀을 실천할 수 있나요?

“지난주에 인욕바라밀이 참을 것이 없는 경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참 요원한 경지인 것 같아요. 현실에서 인욕바라밀을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이 궁금합니다.”

“참는다는 것은 안 참는 것보다는 낫습니다. 안 참으면 타인에게 피해가 가지만, 참으면 타인에게 피해는 안 가니까요. 그런데 참으면 스트레스를 받게 되기 때문에 나한테 피해가 오게 됩니다. 수행은 내가 괴롭지 않은 거예요. 내가 괴롭더라도 남에게 피해를 안 주면 세상에서 말하는 훌륭한 사람이긴 합니다. 그러나 수행이란 훌륭한 사람이 되는 게 목적이 아니에요. 괴롭지 않은 사람이 되는 것이 수행의 목적입니다.

잘 참으면 도덕적으로 훌륭한 사람일지언정 수행자는 아닙니다. 괴로움이 없는 사람이 되는 쪽으로 나아가려면 ‘내가 옳다’ 하는 생각을 내려놓아야 해요. 참는 행위에는 ‘내가 옳고 네가 그르다. 그러니 당연히 네가 고쳐야 해’ 하는 뜻이 들어 있습니다. 상대가 안 고치니까 화가 나지만 내가 참는 거예요. ‘내가 옳지만 내가 참는다. 그래서 용서를 해준다’ 하는 뜻입니다. 참는다는 것은 결국 내가 잘했고 네가 잘못했다는 얘기예요.

서로 다를 뿐이다

그러나 내가 잘했다고 할 것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면, 참을 필요도 없고, 용서할 필요도 없어집니다. 내가 잘하고 네가 못한 게 아니라 서로 다를 뿐이에요. 잘했다는 생각이 없으면 참을 것도 없어집니다.

나도 모르게 스트레스를 받아서 참다가 화를 터뜨렸다면 범부중생입니다. 가장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어요. 여러 가지 상황을 살피거나 앞으로의 손익 계산을 해서 분란을 일으키는 행위를 참았다면 현명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더 살펴서 ‘지금 내가 잘했다고 움켜쥐고 있구나’ 하는 것을 알고 그 움켜쥠을 놓아버리면 참을 것이 없어져요. 참을 것이 없는 경지에 이르렀다면 괴롭지 않은 사람이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더 질문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마칠 시간이 되었습니다. 다음 주부터는 다시 한 달 동안 즉문즉설을 이어나가기로 하고 생방송을 마쳤습니다.

내일은 오전에 농사일을 한 후, 오후에는 두북 수련원을 찾아온 손님들과 시간을 보내고, 저녁에는 정토불교대학 실천적불교사상 4강을 생방송할 예정입니다.

전체댓글 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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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미주

꼭 천룡사 복원 불사 하고 싶습니다
!!! 저도 꼭 발원해야겠네요. 천룡사 불사에 꼭 동참하게 되기를
!! 나무 아미타불

2023-07-09 15:46:49

김선경

법륜스님!은 바보스님입니다.
왜냐?..지나간 역사는 복원하여.무엇에 씁니까?..지금도.절이 대궐처럼 크고 운장한곳이 한두군데가 아닌데.뭣땜에 복원한단 말이요..서민들은 온통 빛더미에 고통받고 있는데.다음생에 어디로 가실려고.그런 죄를 짓는단 말입니까?...하늘에서.이미 신인이 하강해서.역사를 하고.계시는데.그역사에 동참해야지!...왜.쓸데없이 돈을 낭비하는

2022-04-12 23:18:05

보각

감사합니다 상대와 나는 다르구나

2022-04-12 12:2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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