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2.3.27 정토불교대학 입학식, 청춘톡톡, 일요명상
“감정에 휘둘리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안녕하세요. 두북 수련원의 아침이 밝았습니다.


오늘은 정토불교대학 입학식이 열리는 날입니다. 정토회 역사상 처음으로 1만 명이 정토불교대학에 입학 신청을 했습니다. 그중 8500여 명이 최종적으로 반에 편성되어 오늘부터 첫 수업을 시작합니다.


도반으로 함께하는 첫날, 먼저 정토불교대학 졸업생들의 축하 영상을 함께 보았습니다. 영상의 마지막에 졸업생 중 한 명인 노희경 작가님이 축하의 메시지를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2006년 서초법당 졸업생 노희경입니다. 저는 시청률이 안 나왔을 때, 그래서 삶이 두려워졌을 때 정토불교대학에 입학했습니다. 그리고 법륜스님께 물었습니다. 글 쓰는 게 두렵다고요. 그때 스님은 이렇게 답해주셨습니다.

‘두려움은 무지에서 온다. 네가 무엇을 모르는지 알아야 한다’

그때부터 저는 글쓰기 전에, 그리고 삶에 큰 문제가 생겼을 때 제가 무엇을 모르는지 적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답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 버릇 때문에, 그 습관 때문에 저는 지금까지 글을 써오고 있습니다.

나에게 정토불교대학은 돌아가신 어머니가 살아 돌아오신 것 같은 환희입니다. 30년 회향 기념 정토불교대학 입학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이어서 성악가 메조소프라노 이지영 님이 가곡 ‘나 하나 꽃 피어’를 아름답게 불러주었습니다. 1만 명이 꽃피고 물들며 정말 행복해지기를 바라보았습니다.

정토불교대학은 1991년에 개설되어 지금까지 7만 여 명이 졸업했습니다. 지난 30년의 발자취를 영상으로 본 후 정토불교대학 학장이신 스님의 입학 법문을 청해 들었습니다.

“정토불교대학에 입학한 것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먼저 스님이 환한 웃음과 함께 입학생들을 환영했습니다.

“여러분은 왜 정토불교대학에 입학했습니까? 돈을 벌기 위해서, 지식을 얻기 위해서, 기술을 습득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정토불교대학에서는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 배웁니다. 다시 말하면 인생 대학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를 주제로 대화하고 그에 필요한 지식을 공부하는 곳이 정토불교대학입니다.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 답을 하려면 먼저 ‘지금 나는 어떻게 살고 있는가?’ 하는 것이 점검되어야 합니다. 나는 지금 편안하게 살고 있는가? 행복하게 살고 있는가? 자유롭게 살고 있는가? 그렇다면 굳이 정토불교대학에 다니지 않아도 됩니다. 그렇지 않고 나는 요즘 사는 게 좀 힘들다, 막막하다, 괴롭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다, 불안 초조하다, 근심 걱정이 많다, 두렵다, 화가 나고 짜증이 난다, 누군가를 미워하고 원망한다, 이렇게 부정적인 심리상태에 놓여 있다면, 여러분들은 정토불교대학에 다녀야 합니다.

여러분은 어떤 삶을 살고 싶나요? 만약 괴로움이 없는 삶을 살고 싶다는 바람이 있다면 여러분들은 정토불교대학을 다닐 만합니다. 왜냐하면 어떻게 하면 괴로움 없이 살 수 있을까에 대해 공부하고 체험하는 학교가 바로 정토불교대학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정토불교대학의 졸업 자격은 6개월 후에 졸업할 때 입학할 때보다 괴로움이 조금이라도 줄었는지 여부입니다. 물론 학사 일정의 70% 이상을 참여해야 한다는 여러 가지 조건이 있겠지만 그런 것은 부차적입니다. 불안, 미움, 원망, 스트레스가 줄었는지에 대한 검증이 되면 졸업할 자격이 있다고 말할 수 있어요. 만약 6개월을 다녔는데도 마찬가지라고 한다면, 첫째, 여러분들이 불교대학 공부를 제대로 안 했거나, 둘째, 불교대학의 교과 과정이 제대로 준비가 안 됐거나, 둘 중에 하나입니다.

그러니 정토불교대학을 다니면서 특별한 지식이나 기술, 믿음에 너무 집착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내가 지금 어떤 종교를 믿든, 남자든 여자든, 한국 사람이든 외국 사람이든, 어른이든 젊은이든, 경제 형편이 좋든 나쁘든, 직장이 있든 없든, 이런 것은 중요하지 않아요. 현재 주어진 조건에서 조금 더 행복해졌다면 여러분들은 정토불교대학 공부를 잘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오늘부터 배우게 되는 내용은 이미 2600년 전에 붓다라는 분이 스스로 그 길을 발견하고 체험한 후 사람들에게 전했던 내용입니다. 그 내용이 오늘날 우리들에게까지 전해졌고, 그것을 우리가 공부해 보는 겁니다.

정토불교대학에서 여러분이 배우게 되는 내용은 종교도 아니고 철학도 아니고 바로 ‘수행’입니다. 종교로서의 불교도 아니고, 철학으로서의 불교도 아니고, 수행으로서의 불교를 공부합니다. 수행이란 내가 지금 가지고 있는 괴로움, 슬픔, 불안, 스트레스 등 이런 부정적인 심리 작용의 원인을 파악해서 그 원인을 제거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육체에 병이 있는 사람이 치료를 하고 나면 건강을 회복하는 것과 같습니다. 종교가 있든 없든, 종교 중에 뭘 믿든, 그가 갖고 있는 믿음에 대해서는 관여를 하지 않습니다. 그가 어떤 철학적 사유를 하든, 어떤 이념을 가지고 있든, 그런 것도 관여하지 않아요. 살아 있고 정신 작용이 온전하다면 이 길은 누구나 다 갈 수 있는 길이에요.

지금 2600년 전 붓다를 공부해야 하는 이유

첫째, 나는 어떻게 살고 있는가, 나는 어떻게 살고 싶은가, 어떻게 하면 괴로움 없이 살 수 있는가, 이런 원리에 대해서 먼저 공부합니다. 괴로움 없이 살려면 구체적으로 어떤 관점을 가지고 어떤 실천을 해야 하는가에 대해 배웁니다. 이렇게 해서 전반부에는 인생에 대한 얘기를 하게 되는데 그 과목이 ‘실천적 불교사상’입니다.

둘째, 후반부는 이런 원리를 처음에 누가 발견하고 제시했는지에 대해 배웁니다. 그분은 바로 2600년 전 인도 북쪽에서 태어나 살았던 붓다라는 한 인간입니다.

왜 21세기에 살고 있는 우리가 과거 2600년 전 사람, 그것도 저 멀리 인도 사람에 대해서 배우고자 할까요? 시간과 지역이 떨어져 있지만 지금 우리들의 삶의 처지가 그 분과 매우 유사하기 때문입니다.

붓다라는 분은 비록 2600년 전 사람이지만 당시에 왕자로 태어나서 살았어요. 그래서 먹고 입고 자는 것에 전혀 불편이 없었습니다. 그 당시는 의식주가 매우 열악할 때잖아요. ‘저 사람은 참 좋겠다. 무슨 근심 걱정이 있을까?’ 하고 남들이 모두 부러워했습니다. 하지만 정작 본인은 온갖 걱정거리를 다 가지고 있었어요. 만약 그분도 의식주가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은 조건에서 살았다면 기존의 종교와 철학에 귀의해서 ‘이거 도와주세요’, ‘저거 도와주세요’ 이렇게 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분은 의식주가 잘 갖춰진 환경에서 살았기 때문에 누구의 도움을 받아서 자신의 괴로움을 해결할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왜 괴로울까?’ 하고 스스로 탐구하기 시작했습니다.

오늘날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100년 전 우리의 선조들이 지금 우리를 보면 우리가 괴로워하는 것에 대해 이해할 수 없을 거예요. 밥을 못 먹는 것도 아니고, 옷을 못 입는 것도 아니고, 잘 집이 없는 것도 아니고, 걸어 다니지 않고 차를 타고 다니고, 나무를 해서 밥해 먹는 것이 아니라 전기밥솥이 밥을 하고, 냇가에 가서 빨래하는 것이 아니라 세탁기가 빨래를 하고, 더운물과 찬물이 콸콸 나오고, 도대체 무엇 때문에 괴로우냐고 우리에게 질문할 겁니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어떻습니까? 사는 게 힘들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도 2600년 전 붓다처럼 ‘왜 괴로운가?’ 하고 연구해야 합니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돈을 좀 더 벌면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해요. 아파트를 한 채 더 사면, 좋은 차를 새로 사면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붓다는 2600년 전에 이미 오늘 우리들이 겪는 많은 길흉화복이 신의 뜻에 의해서 일어나는 것도 아니고, 전생의 죄 때문에 일어나는 것도 아니고, 사주팔자에 의해 일어나는 것도 아님을 깨달았습니다. 양반은 귀하고 노예는 천하다, 남자는 귀하고 여성은 천하다고 여겼던 시대에도 그분은 ‘사람은 태어남에 의해서 귀하고 천함이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계급 차별과 성차별을 모두 부정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붓다를 공부하는 것은 2600년 전의 옛이야기를 공부하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우리가 가야 할 길에 대해 공부하는 것입니다. 그분이 가졌던 문제의식, 그분이 깨달은 내용, 그분이 성차별과 계급 차별을 해결하기 위해 어떻게 행동했는지, 그분의 일생과 사상을 통해 오늘날 현대 문명의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 해답을 찾고자 하는 겁니다.

그래서 기후 위기에 대해 어떤 관점을 갖고 어떤 실천을 해야 하는지, 지구 상에는 아직도 절대 빈곤에 처한 사람들이 많은데 어떤 관점을 가지고 실천을 해야 하는지, 지금 우크라이나 사태에서 보듯이 전쟁의 위험을 어떻게 줄여나가야 하는지, 우리가 사는 한반도에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데 이럴 때 우리는 평화에 대한 관점을 어떻게 가져야 하는지, 이런 내용들도 하나씩 배워나가게 됩니다.

정토불교대학의 세 가지 수업 방식

첫째, 먼저 원리와 이치, 관점에 대해서 강의를 듣게 되고요. 그러나 강의를 듣는 것만으로는 안 돼요. 듣기만 하면 지식으로 변해 버리기가 쉽기 때문입니다.

둘째, 배운 내용을 일주일간 생활 속에서 실천해 봐야 합니다. 집에서 직접 연습을 해봐야 해요. 실제로 경험을 해보면 많은 의문점이 생길 겁니다. 왜냐하면 들은 대로 해보면 실제로는 잘 안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셋째, 도반들과 모여서 경험을 서로 나누어야 해요. 여덟 명씩 모여서 법문을 듣고 나서 내 마음이 어떠했는지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면 ‘어! 똑같은 법문을 들어도 서로 느낀 것이 다르네!’, ‘어떤 사람은 되고, 어떤 사람은 안 되네!’ 하고 알 수 있어요. 이렇게 해서 사람에 대한 이해의 폭이 점점 넓어지게 됩니다. 그동안 상대를 이해하지 못해서 가슴이 답답했는데 ‘아! 우리 남편이 저렇구나!’, ‘우리 아내가 저렇구나!’, ‘요즘 애들이 이렇구나!’ 하고 하나씩 알아가게 됩니다.

이렇게 크게 세 가지로 수업이 이루어집니다.

원리에 대해서 법문을 듣고 이해하기
실제로 내가 경험해 보고 의문을 제기하기
내 경험을 도반들과 나눠가면서 서로 다르다는 것을 체험하기

이것을 기초로 해서 다시 또 법문을 듣고 이해하기, 경험하기, 나눠보기를 합니다. 이런 식으로 수업이 진행되기 때문에 일반 학교처럼 그냥 수업만 착실히 들으면 된다고 이해하시면 안 돼요. 그건 3분의 1에 불과합니다. 그렇다고 듣는 것을 소홀히 하면 이치를 모르게 됩니다. 법문을 듣는 것도 충실히 해야 합니다.

이렇게 6개월을 공부하면 사람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좋아질 수밖에 없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기왕 시작한 것 중간에 포기하지 말라는 말씀을 드립니다. 여러분 스스로 포기하지만 않고, 결석만 하지 않고, 어떤 일이 있더라도 계속 연습하면 6개월 후에는 ‘아! 정말 좋구나!’ 이런 결론이 날 거예요.

정토불교대학은 제가 지난 30년 동안 경험하고 체험한 노하우가 담긴 프로그램이에요. 저는 책을 보고 강의하지 않습니다. 책에서 나온 얘기도 제가 직접 경험한 것만 얘기를 합니다. 또 제가 경험을 해도 경험한 것이 객관적인 원리와 맞지 않으면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제 경험이 특수한 경험일 수 있으니까요. 되기도 하고 안 되기도 하는 것은 법칙이 아니에요. 거의 99%가 확실할 때 법칙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니 이 공부는 누구나 체험이 가능한 공부입니다. 여러분 모두가 학기가 끝날 때쯤 되면 얼굴이 환하게 밝아져 있을 겁니다.”

괴로움이 없는 삶은 누구나 다 가능하다는 스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며 행복과 자유를 행해 첫걸음을 내디뎌 봅니다.

생방송을 마친 후 입학생들은 교실별 안내에 따라 자기소개 시간과 마음 나누기 시간을 가졌습니다.

점심 식사를 한 후 오후 2시부터는 청년들을 위한 즉문즉설 ‘청춘톡톡’ 생방송을 시작했습니다. 1300여 명의 청년들이 생방송에 접속한 가운데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스님은 우크라이나 국경 변에 파견한 JTS 답사팀이 보내온 영상을 보여주고 함께 평화를 발원한 후 즉문즉설을 시작했습니다. 화상회의 방에 입장한 참가자 중에 5명이 스님에게 질문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습니다. 그중 한 명은 감정에 잘 휘둘리지 않는 방법을 질문했습니다.

감정에 휘둘리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저는 감정에 휩쓸렸을 때 감정 컨트롤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궁금합니다. 기분이 안 좋은 일이 있으면 계속 그 감정에 사로잡혀서 해야 할 일을 제대로 못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너무 들어가고 싶었던 동아리에 연속으로 떨어진다거나 열심히 공부한 과목에서 성적이 안 좋은 경우에 기분이 나빴습니다. 지나고 보면 아무것도 아닌 일인데 그 당시에는 다음 해야 할 일에 제대로 집중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기분이 안 좋은 일을 잊으려고 해도 계속 생각하게 되는데 이런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질문자는 아직 젊으니까 감정에 휘둘리기가 쉽습니다. 나이가 들면 조금씩 감정에 휘둘리는 일이 적어질 거예요. 그런데 나이가 들어서도 계속 감정에 잘 휘둘리는 사람은 인생에서 많은 손실을 봅니다.

어린아이들은 쉬이 감정에 휘둘리고 또 쉬이 돌아오죠. 즐거운 일에도 빠르게 반응하고 슬프고 괴로운 일에도 빨리 반응합니다. 어른이 되면 좋아도 늦게 반응하고 나빠도 늦게 반응해요. 어린아이가 감정의 폭이 크지 않고 늦게 반응하면 좋게 말해 조숙했다고 하거나 나이에 걸맞지 않은 애늙은이 같다고 합니다. 어른이 되었는데도 어린아이같이 반응하면 철이 안 들었다고 비판을 받아요. 그런 것처럼 젊을 때는 젊은이답게 행동하고 나이가 들면 나이 든 사람답게 행동하는 게 좋습니다.

인생은 유년, 청년, 장년, 노년으로 나눠서 평가할 수 있어요. 청년이 무리해서 도전하면 욕심이 많다고 보기보다는 용기가 있다고 봐주죠. 반면 늙은 노인이 무리해서 도전하면 노욕을 부린다고 비판을 받습니다. 나이 든 사람이 신중하면 좋게 평가하는데, 청년이 너무 신중하면 용기가 없다, 젊은이답지 않다고 평가를 받아요. 그렇기 때문에 누구에게나 일률적으로 어떻게 살아야 한다고 정해진 것은 없습니다. 그 나이에 맞게끔 적절하게 살면 되는 거예요.

질문자가 중학교에 다니던 시절을 한번 떠올려 보세요. 기말고사에서 성적이 나빴다, 좋았다 하는 것은 그 당시에는 엄청나게 큰일이었잖아요? 그런데 지금 그때를 돌아보면 중학교 2학년 기말고사에서 성적이 좀 나빴으면 어떻고 좋았으면 어때요. 그때 성적이 지금 무슨 상관이겠어요. 여러분이 열아홉 살에 수능을 망치고 재수를 했다고 해봅시다. 그때는 그 일이 엄청나게 큰일 같지만 나이가 오십이나 육십이 돼서 돌아보면 별로 중요한 일이 아니에요. 삼수도 별로 중요한 일 아니에요. 옛날에는 일류대학 가려고 재수, 삼수한 사람이 많았거든요.

국무총리가 됐거나, 대통령이 된 사람들에게 한번 물어봐요. 재수, 삼수한 사람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이번에 대통령에 당선된 사람도 사법고시를 9수를 했다고 하잖아요. 남이 볼 때는 젊을 때 10년 가까이 허송세월을 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것도 지나 놓고 보면 별일 아니에요. 이렇게 살면서 지나 놓고 보면 별일 아닌 경험을 자꾸자꾸 쌓게 되면 눈앞에 닥친 작은 일에 반응이 조금씩 무뎌지고 둔해집니다. 꼭 나이가 들어서 깨달을 필요 없이 어릴 적 경험과 지금을 비교해보세요. 그때 죽고 살고 했던 일들이 지금도 여전히 중요한가요? 이렇게 살펴보면 그 순간순간에 너무 매달려서 살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제가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필리핀 민다나오의 무슬림 반군 지역 등 전 세계로 구호활동을 다니면 그날은 뭘 먹느냐, 어디에서 자느냐가 중요합니다. 그런데 지나 놓고 보면 잘 먹고 잘 잤던 날보다 오히려 움막에서 자거나 하루 종일 굶다가 고구마 하나 겨우 먹으며 고생했을 때가 훨씬 더 얘깃거리도 많고 경험도 더 쌓여요. 편안한 날들은 지나 놓고 보면 기억도 잘 안 나요. 고생한 일들이 지나 놓고 보면 더 많이 기억에 남습니다.

사람들은 편안하고 욕구가 충족될 때 즐겁다고 표현합니다. 그런데 순간의 즐거움에 빠져 살면 인생을 낭비하기 쉬워요. 작은 욕구를 충족시키려고 매달리면 시야가 좁아져서 미래에 생길 결과를 보지 못하고 지나 놓고 후회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누구나 다 지금 닥친 일이 크게 보입니다. 지금 내가 느끼는 기분에 끄달릴 수밖에 없어요. 그러나 인생을 살아보면 지금 좋은 일이 나중에 꼭 좋다는 보장도 없고, 지금 나쁜 일이 나중에도 나쁘다는 보장도 없다는 걸 점점 체득하게 됩니다. 그러면 지금 좋아도 빙긋이 웃고, 지금 나빠도 빙긋이 웃을 수 있습니다. 이게 좋은지 나쁜지는 조금 지나 봐야 알 수 있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노인들은 조금 무표정한 경우가 많아요. 성질이 나서 무표정한 게 아니라 외부 자극에 감정적인 반응이 더뎌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인생지사 새옹지마

‘인생지사 새옹지마’라는 고사가 바로 그 이야기예요. 옛날 중국 변방에 한 노인이 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그 아들이 들판에서 야생마 한 마리를 잡아왔어요. 그 당시에 야생마 한 마리가 생긴 일은 요즘 말로 복권 당첨처럼 큰 횡재를 했다고 말할 수 있는 거예요. 마을 사람들이 저 집은 이제 부자가 됐다며 부러워하는데 정작 그 영감은 별로 기쁜 기색이 없었어요. 그래서 사람들이 아들이 말을 잡아온 게 기쁘지 않으냐고 물었습니다. 영감은 ‘이 일이 어떻게 될지는 두고 봐야 알지, 지금은 알 수가 없네’라고 대답했어요. 사람들은 저놈의 영감은 좋아할 줄도 모른다고 혀를 찼죠.

그런데 아들이 잡아온 야생마를 길들이다가 말에서 떨어져서 다리를 크게 다쳤어요. 결국 다리를 못 쓰는 장애인이 되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그 집에 큰 불행이 닥쳤다며 막 위로를 했어요. 그런데 영감은 또 별로 슬픈 기색 없이 무표정한 거예요. 사람들은 저놈의 영감은 자기 집안에 불행이 생겼는데도 무표정하다 하다고 또 혀를 찼습니다.

그리고 몇 년 지나 전쟁이 나서 젊은 남자는 모조리 다 군대에 징집됐습니다. 그런데 이 집 아들은 다리를 못 쓰니까 징집에서 면제가 된 거예요. 그때 징집된 젊은 남자들은 대부분 전쟁터에서 죽어버렸어요. 결국 그 마을에서 이 집 아들만 대를 이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또 잘 됐다고 난리였어요. 이 옛날 일화에서 인생지사 새옹지마, 인생은 늙은이의 말과 같다는 말이 나온 겁니다. 좋아 보이는 일이 나중에 좋은 일이 아닐 수 있고, 나빠 보이는 일이 결코 나쁜 일이 아닐 수 있다는 거예요.

나이가 스무 살이 넘어 성인이 되고 서른이 넘어가면 순간적이고 말초적인 만족으로부터 조금씩 자유로워지는 게 좋습니다. 질문자는 아직 젊으니까 지금은 감정에 휩쓸려도 크게 잘못되는 건 아니지만 조금 더 길게 보는 눈이 필요하죠. 어떤 상황이 닥쳐도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나이가 들어서도 여전히 감정에 휩쓸리고 계속 어떤 사건이나 감정에 매여 있으면 문제일 수 있어요. 누구나 다 그럴 순 있지만 정도가 지나치면 병입니다. 감정에 휩쓸리는 정도가 지나쳐서 일상생활에 장애가 될 정도라면 신경정신과에 가서 의사와 상담을 해봐야 해요.

첫째, 질문자는 아직 젊으니까 그 정도의 감정적인 반응은 괜찮습니다. 둘째, 그러나 앞으로 조금씩 개선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스스로 자신을 돌아보니 지나치게 민감하고 일상생활이 불편할 정도라면 꼭 병원에 가서 검진을 해보세요. 그리고 감정에 빠질 때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하는 말을 떠올리고 이렇게 질문해보면 좋습니다.

‘1년이 지나서 지금을 돌아보면 그때도 이 일이 중요할까?’

지금은 크게 보이는 일도 1년 후에 보면 하등 중요하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이렇게 항상 한 발 떨어져서 보는 연습을 하면 감정을 진정하기가 수월할 거예요.”

“네, 감사합니다.”

이 외에도 다음과 같은 질문이 있었습니다.

  • 이번에 대선 토론에서 한 후보가 종전 선언을 먼저 하는 것은 미군 철수, 유엔군 해체 등의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고 했는데요. 정말 그런 부작용이 있는지, 주한 미군이 철수하는 것이 우리나라에 위협이 많이 되는 일인지 궁금합니다.
  • 우리나라에 내각제를 도입하기에는 다소 시기상조가 아닐까요?
  • 부모님과 오랜 기간 연락을 끊고 살고 있습니다. 자유로워진 것은 좋은데 죄책감과 걱정이 매일 올라옵니다.
  • 이번에 청년 역사학교를 이수하였고 동북아 역사대장정에도 참여해보았습니다. 두 가지를 참여해보면서 고려시대에 대한 스님의 말씀이 거의 없으셔서 고려시대의 민족사적 의미가 궁금했습니다. 또 민족사를 배우는 것은 청년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대화를 마치고 나니 오후 4시가 훌쩍 지났습니다.

생방송을 마치고 오후 5시부터는 결사행자회의에 온라인으로 참석했습니다. 준비된 여러 가지 안건에 대해 토론하고 의결을 한 후 회의를 마쳤습니다.

해가 지고 저녁 8시 30분부터는 일요 명상을 시작했습니다. 코로나 이후 103번째로 진행하는 온라인 명상 시간입니다. 먼저 우크라이나 국경 답사 모습을 담은 영상을 함께 본 후 평화를 기원했습니다.

오늘은 30분씩 두 타임을 연이어 명상해 보기로 한 날입니다. 스님의 안내에 따라 한 주를 마무리하며 오직 호흡에 깨어있어 보는 침묵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자세를 바로 하고, 몸과 마음을 편안하게 합니다. 아무 할 일이 없는 한가한 마음으로 동작을 멈추고, 생각도 멈춥니다. 관심을 콧구멍 끝에 두고 호흡을 알아차립니다. 숨이 들어갈 때는 들어가는 줄 알고, 숨이 나올 때는 나오는 줄 압니다. 호흡 이외에는 어떤 것에도 의미를 부여하지 않습니다. 편안한 가운데 다만 호흡에만 집중할 뿐입니다. 무엇을 하려고 하는 의도를 완전히 내려놓고 그냥 한 그루 나무처럼 가만히 있어 봅니다.”

탁, 탁, 탁!

30분 명상을 하고, 10분 포행을 한 후, 다시 30분 명상을 하고 생방송을 마쳤습니다.

내일은 오전과 저녁에 전법활동가 법회를 생방송하고, 오후에는 오랜만에 봄나물을 채취하러 들녘에 나가볼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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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언주

불교 대학을 다니고 수행을 하면서 괴로움에서 많이 벗어나고 내가 주체가 되어 주인된 삶을 살고자 노력합니다 보고 듣고 물어볼 곳이 있다는것에 늘 감사하고 내 인생에 정토회 를 만난 것 또한 감사드립니다

2023-05-11 22:39:53

송금숙

불교 대학 공부한 지는 얼마 되지 않으나 스님의 법문을 듣고 소감 나누기를 하고 이 모든 것이 내 나름대로 알고 있는 불교에 대한 내용들이 차츰 정리가 되고 자리 잡아가는 듯한 마음이 들어 절로 기쁩니다

2022-10-07 17:32:56

심수현

마음이 허전하다가도 챙겨서 볼 법문이 있다는 것에 설레기도 하는 요즘입니다. 많이 부족하지만 한걸음씩 나아가 보려고 합니다. 감사하는 마음과 열린 자세로 경청하면서 깨달을 수 있도록 정진하겠습니다.

2022-04-05 11:3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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