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2.3.23. 종교인 모임, 평화재단 연구세미나, 수행법회
“사람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은?”

안녕하세요. 오늘도 서울 정토회관에서 서울 공동체 대중과 예불을 함께 하며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예불을 마치고 곧바로 평화재단으로 이동해 종교인분들을 맞이했습니다. 목사님, 신부님, 주교님, 교령님, 교무님이 차례대로 평화재단에 도착했습니다.

반갑게 인사를 나눈 후 조찬을 함께 하며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조찬이 끝나고 한반도의 평화를 주제로 대화를 이어나갔습니다.

스님은 JTS 구호단이 우크라이나 국경을 답사 중이라고 소개하면서 난민들의 상황이 어떠한지 답사한 영상을 보여주었습니다.

지금 우크라이나 난민들의 상황

“폴란드 국경에서는 생필품을 적재해서 원하는 대로 난민들에게 나눠주고 있었어요. 난민 같지가 않고 여행을 온 사람 같았습니다. 헝가리 국경에서는 우크라이나 안으로 들어가 봤습니다. 우크라이나 서부는 아직 전쟁터와 멀리 떨어져 있어서 평온해 보였어요. 루마니아에서 다시 우크라이나 안으로 들어가 봤는데, 교회 목사님이 난민들을 돕고 있었습니다. 냉장고가 필요하다고 해서 지원을 해주었어요. 마지막으로 흑해 연안에 있는 오데사로 들어가 봤습니다.”

주교님이 영상을 보고 나서 한 마디를 했습니다.

“영상을 잘 봤습니다. 참 가슴 아프네요. 저렇게 전쟁을 하고 나면 자손 대대로 원수가 될 텐데요. 꼭 100년 전에 나치가 생겨날 때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요. 우크라이나 사태를 보니까 지정학적으로 강대국 사이에 끼인 형국이 우리나라와 참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스님도 주교님의 말을 받아서 말했습니다.

“제가 그동안 전쟁이 없어야 한다는 평화를 수없이 강조해 왔지만 사람들에게 별로 실감 있게 다가오지 않았거든요. 정토회 회원들조차 ‘스님은 왜 일어나지도 않는 전쟁 이야기를 하느냐’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우크라이나 사태를 보면서 다들 이구동성으로 ‘정말 전쟁이 일어나면 안 된다’라고 말하고 있어요.

코로나 팬데믹이 일어나면서 전통적인 안보 개념이 약해지고, 보건 안보라는 새로운 개념이 중요해지고 있었는데, 코로나 사태가 끝나가는 시점에 우크라이나 사태로 인해 다시 전통적인 안보 개념이 새로 부상하는 것 같아요.”

이어서 목사님이 모임을 시작하는 인사말을 했습니다.

“제 별명이 막가파예요. 그래서 휴전선도 넘고, 아프가니스탄도 가고, 필요한 일은 막가파식으로 해냅니다. 지금 23년째 종교인 모임을 진행해오고 있는데, 한반도의 통일도 빨리 이루어내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봅니다.”

목사님의 말을 받아서 스님이 웃으며 이야기했습니다.

“내년이 휴전 70주년입니다. 목사님 말씀처럼 내년에는 손잡고 막가파식으로 휴전선을 넘어갑시다.” (웃음)

스님은 지난달에 종교 시민사회 원로들이 연합정부 구성을 제안한 이후 현재 상황이 어떠한지 공유했습니다.

“지난달에 국민통합을 위해 연합정부를 구성하라는 제안을 원로들이 모여서 했는데, 그때 보수 쪽 원로분들이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대선에 영향을 준다는 이유 때문입니다. 이제 대선이 끝나고 다시 원로분들을 만나서 의논해 보니까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어떻게 하는지 한 달 이상 지켜봐야 한다는 의견들이 많았어요. 그래서 당분간 좀 기다려보면 좋겠습니다.”

“네, 그렇게 합시다. 한반도가 남북으로 갈라져 있는 데다가 지금은 남한이 다시 반반으로 갈라져 있어요. 주변에 아무리 ‘화해’와 ‘이해’를 이야기해도 귀에 들리지도 않는 상황 같습니다.”

“누가 누구를 지지하든 관계없이 선거 때는 경쟁하고, 선거가 끝나면 힘을 합해서 나라를 이끌어 달라는 것이 사회 원로들의 요청인데, 이런 요청도 왜곡시키는 사람들이 있거든요.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종교인분들은 나라 걱정 이야기부터 하기 시작했습니다. 남한 내 분열을 어떻게 아울러서 국민 통합으로 나아갈 수 있을지, 북한의 식량 사정은 지금 어떠한지, 대화가 계속 오갔습니다.

지금 북한 주민들의 상황

“북한의 물가는 중국에서 물건이 들어가서 그런지 환율이 6500원까지 다시 올랐습니다. 원래 8000원 정도 하다가 국경이 봉쇄되면서 4000원 정도까지 떨어졌는데, 1월에 국경이 일부 열리면서 다시 올랐어요. 그러나 중국에서 코로나가 확산되면서 다시 봉쇄하는 쪽으로 가기 때문에 북한이 국경을 열기는 당분간 좀 어려울 것 같습니다.

식량 부족으로 인해 아사자가 일부 생기기도 한다는 소식이 들리는데, 옛날처럼 대량 아사 사태는 일어나지 않고 있는 것 같아요. 자력갱생을 구호로 내걸고 자체적으로 해결해나가고 있는 상황입니다.

저도 북한동포돕기 운동을 처음 시작할 때는 이 상황이 30년 동안 계속 갈 것이라고는 예상을 못했어요. 1996년에 이 운동을 시작해서 27년째 하고 있는데 아직도 북한 주민들의 굶주림은 해결되지 않고 있습니다. 인도에 불가촉천민 마을조차도 굶어 죽는 사람이 거의 다 없어졌거든요. 결핵 환자도 많았지만 다 퇴치했고, 아기 낳다가 죽는 여성도 많았지만 지금은 없습니다. 인도 같은 나라도 이런 변화가 있는데, 북한은 그때나 지금이나 아직도 상황이 변한 게 없는 실정이에요.”

올해 나이가 86세인 목사님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운동을 계속해나가자고 힘을 주어 말했습니다.

“200년 동안 돕고, 2000년 동안 돕더라도, 우리가 살아 있는 한 죽을 때까지 도와야죠. 우리는 ‘그런가 보다’ 하고 계속 도웁시다.”

“네, 맞습니다. 세세생생 돕겠습니다. 목사님도 늘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제물이 되겠다고 기도하셨으니까 앞장을 서주세요. 돌아가시는 순간까지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활동을 해주셔야 합니다.” (웃음)

오늘도 다 함께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염원하며 종교인 모임을 마쳤습니다.

종교인분들을 배웅한 후 스님은 다시 정토회관으로 돌아와 수행법회 생방송을 시작했습니다. 오전 10시에는 주간반 회원들을 대상으로 ‘보시바라밀’에 대해 법문을 하고 질의응답 시간을 가진 후 법회를 마쳤습니다.

오후 1시부터는 평화재단 연구 세미나에 참석했습니다. ‘미래 교육과 원격 교육의 전망’을 주제로 이범 교육평론가의 발표를 듣고 대화 나누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강사님이 지금 영국에서 공부를 하고 있어서 세미나는 온라인 공간에서 화상으로 진행이 되었습니다.


이범 평론가는 한국의 입시 제도의 문제점을 진단하고 원인을 분석한 후 온라인 교육의 역사와 현재, 미래에 대해 긴 시간 동안 전문적인 소견을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발표 내용을 듣고 스님도 질문과 의견을 이야기했습니다.

교육이란 가르치는 것이 아니고 배우는 것

“저는 교육이란 가르치는 것이 아니고 배우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학생들이 무엇을 모르는지 알아 배우는 관점에서 교육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학생들이 무엇을 모르는지에 대해 주안점을 두고 ‘아, 학생들은 이것을 몰랐구나’ 하는 관점에서 가르치면 학생들이 굉장히 좋아합니다.

교육에는 보편성과 특수성이 있습니다. 보편성이란 전체 학생을 일률적으로 가르치는 것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할 것인가 하는 문제이고, 특수성이란 개개인의 조건에 맞도록 어떻게 학습을 도와줄 것인가 하는 문제예요. 그래서 온라인이라는 기술을 잘 이용한다면 보편성과 특수성이 조화를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보편성과 특수성의 조화

지금은 선생님들 전체가 보편적인 강의를 다 해야 하기 때문에 학생 개개인을 고려한 특수교육을 해줄 시간이 부족합니다. 그런데 만약 강의를 가장 잘하는 교사들 소수가 보편적인 강의를 온라인으로 담당하고, 나머지 교사들은 수업에 적응을 잘 못하는 학생들을 소수로 모아서 가르치는 데에 집중한다면, 훨씬 더 교육의 효과가 높아지지 않을까 생각해요. 학습력이 뛰어난 학생들은 한 반에 30명을 편성해도 되지만, 학습력이 부족한 학생들은 한 반에 5명, 심지어 일대일 지도를 해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보편적인 교육은 온라인으로 대규모로 진행하고, 특수한 교육은 소규모로 진행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스님의 생각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하지만 특수반을 편성하게 되면 낙인 효과 때문에 아이들이 상처를 입는 문제가 있긴 해요.” (웃음)

“공부를 잘하는 아이들은 사실 교사가 별 필요가 없지 않나요? 조금만 도와주면 스스로 잘하니까요. 그래서 제 생각에는 공부 잘하는 아이들은 한 반에 30명을 편성하고, 중간 단계에 아이들은 10명을 편성하고, 공부를 못 하는 아이들은 2명을 편성해서 공부를 못 하는 아이들에게 특혜를 주면 오히려 아이들이 상처를 덜 입지 않을까요?”

교육을 주제로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다 보니 약속한 세 시간이 금방 지나갔습니다.

“좋은 이야기 많이 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곧이어 오후 4시부터는 평화재단 기획위원들과 회의를 했습니다. 회의를 마치고 나니 해가 저물었습니다.

저녁 7시 30분부터는 저녁반 정토회 회원들을 위한 수행법회 생방송을 시작했습니다. 지난주부터 대승불교의 수행법인 '육바라밀'에 대한 강의를 하고 있습니다. 첫번째 시간에는 '보시바라밀'에 대해 배웠고, 오늘은 두 번째 시간으로 ‘지계바라밀’과 '인욕바라밀'에 대한 스님의 법문이 이어졌습니다.

“대승불교 수행자인 보살은 어떤 수행으로 부처가 될까요? 바로 육바라밀(六波羅蜜) 수행입니다. 우리는 지금 그 육바라밀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지난 시간에는 바라밀의 뜻과 여섯 가지 바라밀 중 첫 번째로 베푸는 마음을 내는 보시바라밀을 설명했습니다. 오늘은 두 번째 지계바라밀(持戒波羅蜜)과 세 번째 인욕바라밀(忍辱波羅蜜)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지킬 것이 없는 경지, 지계바라밀

‘지계’는 계(戒)를 지킨다는 뜻입니다. 지계바라밀은 계를 지키는 수행으로 모든 괴로움에서 벗어나 해탈과 열반을 성취한다는 거예요. 지계의 완성이 곧 해탈과 열반을 성취하는 것이지요.

‘계를 지킨다’라고 할 때 계가 뭘까요? 사람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행하고, 사람이라면 마땅히 행하지 않아야 할 일은 행하지 않는 것을 ‘계’라고 합니다. 양심을 가진 사람으로서 마땅히 행해야 할 것은 마땅히 행해야 하고, 마땅히 행하지 말아야 할 것은 마땅히 행하지 않는다는 뜻이에요.

그렇다면 마땅히 해야 할 일과 마땅히 하면 안 되는 일이 뭘까요?

첫째, 살아있는 생명을 죽이지 말라. 죽어가는 생명을 살려라.
둘째, 남의 물건을 빼앗거나 훔쳐서 손해 끼치지 말라.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을 도와라.
셋째, 성추행이나 성폭행 등으로 남을 괴롭히지 말라.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해 줘라.
넷째, 말로도 남을 괴롭혀서는 안 된다. 욕설을 하거나 거짓말을 하거나 모함을 하지 말라. 부드럽게 말하고 진실을 말하고 위로의 말을 하라.
다섯째, 술 먹고 취해서 다른 사람을 괴롭히지 말라. 맑은 정신으로 청정하게 살라.

이 다섯 가지는 타인에게 해를 주는 일이니까 무조건 안 해야 하는 금기사항입니다. 다음의 여섯째부터 여덟째는 권유사항이에요. 권유사항은 지키면 다른 사람의 존경을 받습니다.

여섯째, 사치하지 말고 검소하게 살라.
일곱째, 교만하지 말고 겸손하게 살라.
여덟째, 향락에 빠지지 말고 평정심을 유지하라.

이 여덟 가지는 사람이라면 마땅히 지켜야 할 일입니다. 이것을 지켜나가는 것을 지계라고 합니다. 안 지키는 사람은 범부중생이에요. 그러나 이를 악물고 억지로 참으면서 지키면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계를 지키면 좋다. 남을 때리거나 죽이는 것보다는 살리는 게 나에게 좋은 일이다. 남에게 손해 끼칠 때보다 베풀 때 내가 훨씬 더 뿌듯하다. 남을 괴롭히기보다 기쁘게 하는 것이, 거짓말하는 것보다 진실을 말하는 것이, 취해서 흐리멍텅하게 사는 것보다는 맑은 정신으로 사는 것이 더 좋은 일이다. 그러므로 무슨 복이나 칭찬을 바라고 계를 지키는 게 아니라 마땅히 내가 가야 할 길이다.’

마땅히 가야 할 길이라는 관점에서 계를 지킬 때 지계바라밀을 행하는 거예요. 계를 지키면 좋다고들 하니까 억지로 참고한다면 ‘지계’만 되지 ‘지계바라밀’은 안 됩니다. 남에게는 해는 안 끼치지만 내가 괴로워져요. 지계바라밀은 참고 억지로 계를 지키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까지 배운 육바라밀을 정리해봅시다. 수행자라면 첫째, 베푸는 마음을 내야 합니다. 이것이 보시바라밀이에요. 두 번째, 마땅히 하지 말아야 하고,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지켜야 합니다. 이것이 지계바라밀이에요.

참을 것이 없는 경지, 인욕바라밀

세 번째는 인욕바라밀입니다. 화가 난다고 화를 다 내고 성질난다고 성질을 다 내면 타인에게 고통을 주게 됩니다. 지계바라밀은 남을 해치지 않는 행을 닦는 것이고, 인욕바라밀은 성냄과 원한을 버리는 행을 닦는 것입니다. 내가 손해를 보고 내가 해를 입고 내가 어려움에 처하더라도 이런 마음을 내면 안 돼요.

‘네가 나를 해쳤으니까 나도 너를 해치겠다.’

‘네가 나한테 손해 끼쳤으니까 나도 너한테 손해 끼치겠다.’

‘네가 나를 괴롭혔으니 나도 너를 괴롭히겠다.’

‘네가 나한테 사기를 쳤으니 나도 너한테 사기를 치겠다.’

미워하고 원망하고 증오하는 마음이 곧 괴로움입니다. 그래서 미워하지 말고, 원망하지 말고, 증오하지 말라는 거예요. 증오로는 증오를 해결할 수 없어요. 원한을 원한으로 갚는다고 벗어날 수 없습니다. 화를 낸다고 상황이 좋아지는 건 아니에요. 화를 못 참아서 고난에 빠지는 사람은 범부중생입니다. 화가 나도 이를 악물고 억지로 참는 사람은 현명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이는 ‘인욕’에 해당하기는 해도 ‘인욕바라밀’은 아니에요. 남을 괴롭히지는 않지만 내가 괴롭잖아요. 해탈의 길은 나도 좋고 남도 좋고, 지금도 좋고 나중도 좋아야 해요. 남을 괴롭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나도 괴롭히지 않아야 합니다. 범부중생은 나도 괴롭히고 남도 괴롭힙니다. 현인은 남은 괴롭히지 않지만 내가 괴로워요. 보살은 남도 괴롭히지 않고 나도 괴롭지 않습니다.

‘너는 틀렸고 나는 옳다’라고 하면 범부중생입니다. 그렇다고 거꾸로 ‘너는 옳고 나는 그르다’라고 생각하라는 게 아니에요. 사람들은 용서를 할 때 ‘나는 잘했고 네가 잘못했지만 용서해 준다’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용서는 인욕은 되지만 인욕바라밀은 아닙니다. 인욕바라밀은 ‘본래 옳고 그름은 없다’는 관점에서 사물을 보는 태도를 말해요. 본래 옳고 그름이 없기 때문에 상대가 잘못했다는 생각을 갖지 않습니다. 나와 다를 뿐이지 잘못한 게 아니니까요. 그러니 참을 것이 없어요. 참을 것이 없는 것이 인욕바라밀이에요.

‘본래 내 것이라 할 것이 없기 때문에 준다고 할 것도 없다. 그저 이동할 뿐이다. 여기서 저기로, 나한테서 너한테로 이동하는 것이기에 줄 게 없다. 준다는 것도 없다. 그냥 필요에 의해서 이동하는 것뿐이다. 본래 내 것이라는 게 없기 때문이다.’

이게 보시바라밀이에요.

‘이건 마땅히 바른 길이기 때문에 지킬 것이 없다. 참고 지키는 게 아니라 그게 바른 길이기 때문에 기꺼이 간다.’

이것이 지계바라밀입니다.

‘네가 틀렸다는 생각이 없기 때문에 내가 참을 것도 없다.’

그리고 이렇게 참을 게 없는 것이 인욕바라밀입니다.

여러분은 참을 것이 있어서 참기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 거예요. 비유를 들어서 말씀드려 볼게요. 시어머니가 오랜만에 왔는데 며칠 있으면서 자꾸 며느리에게 잔소리를 해요. 그래서 며느리가 못 참고 말다툼을 합니다. 이게 범부중생이에요.

그런데 잔소리를 그냥 듣고 참는다고 해봅시다. 며칠 있으면 가실 테니까 꾹 참아요. 그러면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참으면 뒷골이 당기다가 나중에는 머리가 아프고 눈이 침침해지는 지경이 돼요. 특히 한국 여성들은 많이 참아서 화병이 생긴다잖아요. 요즘은 안 참는다고들 하지만, 옛날에는 많이 참았어요. 이렇게 참는 건 수행이 아니에요. 나를 괴롭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참을 것이 없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시어머니가 계속 뭐라고 뭐라고 합니다. ‘이 음식은 우리 아들한테 삶아줘야 좋고 이건 볶아줘야 좋다. 이 옷은 다리미로 다려야 하고, 이건 이렇게 해줘야 한다.’ 이걸 그냥 들으면 잔소리예요. 그런데 이렇게 생각해 보세요.

‘아, 그렇지. 남편에 대해서 나보다 우리 어머니가 더 많이 알지.’

시어머니는 남편을 뱃속에서부터 키우고 낳아서 키웠으니까 그 성질이든 특성이든 식성이든 잘 알 거 아니에요? 그런데 부부는 다 큰 뒤에 성인이 돼서 만났으니까 사실은 서로를 잘 몰라요. 그래서 살다 보면 ‘이런 사람이었나?’ 하고 놀라게 될 때가 많잖아요. 그런데 시어머니 얘기를 들어보니까 시어머니가 남편에 대해서는 박사예요. 모르는 게 없는 거죠.

‘아, 음식을 해줘도 잘 안 먹는 이유가 있었구나. 볶아야 하는 걸 내가 삶아서 그랬구나. 또 저건 생것으로 줘야 했구나.’

이렇게 시어머니 말을 배우는 자세로 그냥 듣는 거예요. 노하우를 그냥 듣는 겁니다. 이런 자세로 받아들이면 내가 화날 일이 없고 스트레스받을 일이 없어요. 오히려 ‘며칠 더 계시면서 좀 더 가르쳐주세요. 이거는 어떻게 해요, 저거는 어떻게 해요? 이 남자가 이러는데 이거는 왜 이래요?’ 이렇게 물어보고 싶을 정도가 됩니다. 내가 3년간 겪어야 할 일을 시어머니가 며칠 만에 다 가르쳐주잖아요. 이런 자세로 임하면 참을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런 며느리를 보고 남들은 이렇게 말해요.

‘아이고, 저 시어머니 잔소리도 참 많다. 저 집 며느리 봐라. 저 잔소리를 다 참아내네! 대단하다!’

이처럼 남은 참는다고 하지만 나는 참을 것이 없습니다. 이 정도가 돼야 인욕바라밀이라고 말하는 거예요. 그래서 인욕바라밀이 되면 영원히 참을 수도 있습니다. 참을 것이 없기 때문이에요. (웃음)

그런데 우리는 억지로 참습니다. 참으면 삼세번을 못 넘겨요. ‘보자, 보자 하니까! 한 번도 아니고, 두 번도 아니고, 이게 세 번이나 이러네!’ 이렇게 해서 터져버려요. 이것은 인욕일지언정 인욕바라밀은 아닙니다. 그래서 ‘참는 것은 수행이 아니다’ 이렇게 말하는 거예요.

그럼 참지 말아야 할까요? 그건 아니에요. 참지 못하는 사람은 범부중생이고, 참는 사람은 현명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지혜로운 사람은 참을 것이 없어야 해요. 이 단계가 인욕바라밀입니다.

생활이 그대로 수행

대승불교의 수행법은 늘 생활 속에서 해야 합니다. ‘밥을 안 먹는다, 명상을 한다, 절을 한다’ 이처럼 일상생활과 떨어진, 특별한 방법만을 수행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얻으려는 마음을 버리고 늘 생활 속에서 베푸는 마음을 내는 것이 보시바라밀입니다. 바른 길을 기꺼이 가는 것이 지계바라밀이에요. 늘 상대의 의견을 존중해서 ‘아, 그럴 수도 있지’, ‘아, 그래서 그랬구나’ 이렇게 이해를 하면 참을 것이 없습니다. 이게 인욕바라밀이에요. 이처럼 수행이 따로 있고 생활이 따로 있는 게 아니에요. 생활이 그대로 수행입니다.

‘아, 내가 또 바라는 마음을 내서 섭섭했구나.’

‘이번에 내가 욕망에 끄달려서 계를 어겼구나.’

‘아, 이번에는 내가 성질을 못 참아서 짜증을 냈구나.’

놓치면 돌이키면 됩니다. 그러면 다음엔 안 놓칠 수 있어요. 또 놓치면 돌이키고요. 이렇게 하니까 생활이 그대로 수행이 돼요. 밥 먹고, 똥 누고, 장사하고, 직장 다니는 속에서 늘 자기 마음을 편안하게 해가는 거예요.

대승 수행법은 왜 이런 형태일까요? 대승불교를 행한 주체가 재가수행자였기 때문입니다. 출가수행자는 가족을 다 버리고 자기 혼자서 수행하면 돼요. 명상하려면 명상하고, 절하려면 절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재가수행자는 직장도 다녀야 하고 돈도 벌어야 하고 애도 키워야 하고 집안일도 해야 하잖아요. 언제 따로 앉아서 명상하고 뭘 하겠어요? 그러니 일상이 그저 수행이 되도록 하는 수행법이 나온 겁니다.”

법문을 마치고 나서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습니다. 한 분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바라보며 어떻게 인욕바라밀을 실천할 수 있는지 질문했습니다.

“좀 극단적인 질문이 될까 싶어 조심스럽지만,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태를 인욕바라밀에 적용해서 볼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네. 푸틴을 악마화하고 러시아를 악마화 하고 러시아 사람을 미워한다면 그건 인욕바라밀이 아니에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역사를 보면 그럴 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화를 내거나 미워하거나 증오하거나 악마 화해서는 안 돼요. 상대가 악마라면 나중에 평화회담을 할 수가 없잖아요. 악마하고 어떻게 협상을 하겠어요?

그러나 부처님의 가르침에 입각했을 때 수많은 사람을 죽게 만든 침공을 했다는 것은 올바르다고 할 수 없습니다. 침공은 분명히 잘못됐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전쟁에 반대한다는 의사 표현을 적극적으로 해야 하고 난민을 도와야 합니다. 그러나 난민을 돕기 위해 무기를 공급하거나, 총을 들고 같이 싸우는 것은 수행적 관점에서는 맞지 않습니다. 굶주리는 사람에게는 음식을 지원하고, 다친 사람은 치료를 해주고, 난민은 보살피고, 전쟁은 반대해야 해요. 그렇다고 상대를 악마화 하면 아예 협상을 못하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상대를 미워해야만 행동할 수 있다’ 이렇게 생각하면 안 돼요.

‘상대는 나쁘고 나는 옳다. 나는 정의를 실현하고 있다.’

부처님은 이런 자세에 대해 바람직하지 않다고 보셨습니다. 마음속에 화가 있기 때문이에요.

‘상대의 입장에서는 그럴 수도 있지만, 그건 바람직한 게 아니다.’

이렇게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관점을 가져도 전쟁에 반대하는 행동을 얼마든지 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어떤 행동을 할 때는 상대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행동해야 합니다. 마음속에 미워하는 마음을 갖지 않는 것이 인욕바라밀이에요.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원한이 없으면 행동을 안 하고, 원한을 가져야 행동을 합니다. 이것은 중생의 길이에요. 수행자는 원한이 없습니다. 이게 인욕바라밀입니다. 그러나 본인이 옳다고 생각하는 게 있다면 행동해야 합니다.”

다음 주 수행법회에서는 정진바라밀을 배우기로 하고 수행법회를 마쳤습니다.

법회가 끝나자마자 스님을 뵙기 위해 손님이 찾아왔습니다. 늦은 시간까지 손님과 대화를 나눈 후 하루 일정을 마쳤습니다.

내일은 오전에 북한 전문가들과 조찬 모임을 한 후 오후에는 EBS 방송국으로 이동해 EBS 초대석에 출연하여 녹화를 한 후 저녁에는 서울 정토회관을 출발하여 두북 수련원으로 이동할 예정입니다.

전체댓글 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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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지

육바라밀이 참 쉽게 다가옵니다.
스님의 하루가 참으로 많은 분들께 평화와 행복을 가져다준다는 생각이 듭니다.
활짝 웃으시는 모습이 뵙기 좋습니다. 따라 웃어 봅니다.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소서 _((()))_

2022-09-06 22:35:11

윤선우

삶에선 작은것도 하나 버리지 못하는 저의 욕심이 부끄럽습니다 열매를 위해 꽃자리를 비우는 한 그루 나무처럼 아파도 아름답게 마음을 넓히며 삶의 열매를 맺어볼까 합니다 스님의 아름다운 법문 감사드립니다 봄날 건강하십시요^^

2022-03-31 09:12:06

홍천수행자

감사합니다. 또 배웁니다

2022-03-29 18:4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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