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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8일 출가열반 용맹 정진을 시작한 지 7일째 되는 날입니다.
새벽 4시 30분에 서울 공동체 대중과 함께 예불을 하며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지심귀명례 삼계도사 사생자부 시아본사 석가모니불”
이어서 발우공양을 함께 했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대중이 스님에게 한 말씀을 청했습니다. 스님이 절하는 자세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여러분들이 예불을 하는 모습을 보니까 절하는 모습이 제각각이에요. 절을 할 때는 두 발을 겹친 위에 엉덩이를 딱 붙이고 등을 평평하게 해야 합니다. 그런데 엉덩이를 들거나 등을 구부린 채 어정쩡한 자세로 절을 하는 것 같아요. 절을 많이 하다 보니까 절반 정도만 동작을 취합니다. 설 때도 똑바로 서기 전에 내려가고, 내려갔을 때도 머리만 땅에 댄 후 곧바로 일어나 버려요.
절하는 숫자를 줄이더라도 올바른 자세로 절을 해야 합니다. 숫자만 채우는 절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300배를 하기로 했다면 차라리 200배를 하고 여법하게 절을 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300배를 다 한다고 해서 더 좋은 게 생기는 게 아니잖아요. 절을 하는 마음가짐이 경건해야 합니다. 헐레벌떡 대강 한다면, 차라리 절을 하지 말고 산책이나 운동을 하면 되지 왜 절을 해요?”
스님은 직접 절하는 자세에 대해 시범을 보여 주었습니다.
“절하는 습관은 한 번 몸에 배면 고치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올바른 자세가 몸에 밸 때까지 의식을 해서 절을 해보면 좋겠어요.”
스님의 말씀을 명심한 후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각자의 일터로 향했습니다.
오늘은 8일 출가열반정진을 시작한 지 7일째 되는 날입니다. 스님은 오전 10시 정각에 카메라 앞에 자리했습니다.
정토회 회원들이 모두 화상회의 방에 입장하자 스님이 법문을 시작했습니다.
“부처님은 지금부터 2600여 년 전에 태어나셨습니다. 29세에 출가를 하시고 35세에 깨달음을 얻으셔서 45년 동안 전법을 하시고 80세에 열반에 드셨습니다. 부처님 말씀을 모아놓은 경전은 대부분 내용별로 분류가 되어 있는데, 한 경전만 일기 형식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바로 부처님의 마지막 한 해를 기록해 놓은 열반경입니다.”
열반경은 왕사성 영축산에서 시작합니다. 마가다국의 아자타삿투 대왕이 밧지족을 침략하기 전 전쟁의 승산이 있겠는지 부처님께 여쭤보는 장면부터 춘다가 부처님께 마지막 공양을 올리는 장면까지, 스님의 입에서는 부처님이 돌아가시기 전 마지막 1년 동안의 여정이 물 흐르듯이 흘러나왔습니다.
“부처님은 왕사성을 출발해 북쪽을 향해 한 발 한 발 옮겨가셨습니다. 날란다를 지나 여러 마을을 거쳐서 파탈리푸트라에 이르게 되고, 거기서 강을 건너 바이샬리에 도착했습니다. 부처님은 바이샬리의 외곽에 있는 망고나무 숲에 잠시 머물렀는데, 그 숲은 그 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유녀인 암라팔리의 망고 숲이었습니다.
암라팔리는 워낙 아름다워서 왕족과 장자들이 서로 결혼을 하려고 다툴 정도였습니다. 결국 왕족과 장자들이 회의해서 이 여인을 유녀로 만들기로 했습니다. 누구도 암라팔리를 독점할 수 없도록 한 거예요. 그래서 암라팔리는 큰 유곽을 운영하는 사교계의 여왕 같은 존재가 되었습니다.
당시 인도에서는 자기 소유의 동산에 수행자가 오면 주인이 가서 인사하고 공양을 올리는 풍속이 있었나 봅니다. 암라팔리는 자신의 망고동산에 부처님과 수행자들이 와 있다는 얘기를 듣고 마차를 타고 동산으로 갔습니다. 동산에 도착해서 부처님께 인사를 드리고 법을 청했어요. 부처님께서 암라팔리에게 법을 설하시니 암라팔리는 지혜의 눈이 열렸습니다. 그래서 무척 기뻐하며 부처님께 청했어요.
‘내일 아침에 저희 집에서 부처님과 상가 대중에게 공양을 올리고 싶습니다. 부디 와주십시오.’
부처님께서는 침묵으로 승낙하셨습니다. 암라팔리는 내일 아침에 수백 명의 스님들에게 공양을 접대해야 하니까 마음이 급해져서 마차를 타고 서둘러 집으로 갔어요.
그 때 바이샬리의 왕족과 귀족들도 화려하게 옷을 차려입고 부처님이 계신 곳으로 오고 있었습니다. 암라팔리에게 그 귀족들은 단골 고객이었기 때문에 마땅히 길을 비켜서서 예를 차려야 할 텐데, 바쁜 마음에 마차를 그냥 내달렸어요. 비가 온 뒤여서 흙탕물이 귀족들에게 잔뜩 튀었습니다. 일부는 마차끼리 부딪쳐서 귀족들의 마차가 부서졌어요. 귀족들은 화가 났습니다.
‘네가 도대체 무슨 일로 이러느냐?’
‘죄송합니다, 어르신들. 다름이 아니라 제가 내일 아침에 부처님을 초대했습니다. 식사 준비에 마음이 급해서 바쁘게 가다가 이런 일이 벌어졌으니 부디 양해해 주십시오.’
이 말을 듣고 귀족들이 생각했습니다.
‘우리도 지금 부처님께 식사 초대에 응해 달라고 청하러 가는 중인데, 저 여자가 먼저 청해 버렸구나. 우리가 한발 늦었다.’
귀족들은 암라팔리에게 초대권을 넘기라고 말했고 암라팔리는 안 된다고 거절했습니다. 일종의 흥정을 하는 모양새가 된 거예요. 귀족들은 돈만 주면 된다고 생각해서 천금을 줄 테니 초대할 권리를 넘기라고 했어요. 암라팔리는 이렇게 말하며 거절했습니다.
‘이 바이샬리 도시를 다 준다고 해도 저는 양보할 수가 없습니다.’
도대체 부처님의 법을 듣고 어떤 마음의 변화가 있었기에 돈을 벌기 위해서 노래와 춤을 추던 여인이 도시를 다 준다 해도 싫다고 할 정도로 당당해졌을까요? 이것이 바로 불법입니다. 얼마 전 정토불교대학 졸업 소감 발표 시간에 어떤 분이 이렇게 말했어요.
‘10억을 준다 해도 불법과 바꿀 수는 없습니다. 저에게는 불법이 더 값어치가 있습니다.’
암라팔리는 불법이 얼마나 가치 있는 것인지 체험을 한 겁니다. 그래서 귀족들의 제안을 거절을 하고 가버렸습니다. 귀족들도 부처님을 찾아가 법문을 듣고 내일 아침 공양을 대접하고 싶다고 청했어요. 그러나 부처님께서도 이 제안을 거절했습니다. 이미 암라팔리와 선약을 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여러 번 청해도 이미 선약이 되어 있다며 거절하시니까 귀족들은 탄식을 하고 돌아갔습니다.
천금을 준다 해도 부처님의 식사 초대권을 양보하지 않는 암라팔리도 대단하지만, 그 나라의 왕족들이 와서 청하는데도 일개 기생과 한 약속을 바꾸지 않은 부처님도 대단하죠. 두 사람의 이런 태도는 세상의 가치로 평가하기는 어렵습니다. 오늘날 우리들도 어떤 약속을 잡아놨다가 정부 고위 관리가 와서 ‘급하니까 좀 봅시다’ 이러면 약속을 쉽게 바꾸잖아요.
이런 일화를 통해서도 부처님께서는 아무 걸림이 없는 분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지위가 더 높다고 해서 차별하지 않고 일체중생을 평등하게 대했다는 증거라고 할 수 있겠죠.
그리고 부처님은 다시 북쪽을 향해 한 반 한 발 걸어가셨습니다. 파바 마을을 지나 하루를 더 걸어간 후 이튿날 부처님께서는 열반에 드시게 됩니다.
자, 오늘은 여기까지 말씀을 드리고 정진을 하겠습니다. 내일은 부처님께서 열반하신 날입니다. 열반일을 맞아 부처님께서 열반하기 전 마지막 날 하루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이어서 300배 정진을 시작했습니다. 네모난 모니터 속 대중들도 자리에서 일어나 쉼 없이 절을 했고, 스님도 카메라 앞에 방석을 깔고 절을 했습니다.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300배를 마치고 나서 대중들은 모둠별로 화상회의 방에 모여 마음 나누기를 했고, 스님은 곧바로 오후 일정을 이어나갔습니다.
서울정토회관에는 스님을 뵙기 위해 손님들이 연이어 찾아왔습니다. 대화를 나눈 후 오후 2시부터는 JTS 활동가들과 온라인 간담회 시간을 가졌습니다.
인도JTS, 필리핀JTS, 한국JTS에서 근무하는 활동가들이 모두 화상회의 방에 입장하자 서로 인사를 나눈 후 스님이 인사말을 했습니다.
“현재 긴급하게 해야 하는 일은 우크라이나 난민 지원과 로힝야 난민 지원입니다. 그저께 JTS 대표님 일행이 우크라이나 안으로 들어갔는데, 난민들이 지혈하는 용품을 요청했다고 합니다. 유럽에 확인하니까 물량이 없고, 헝가리에 확인해 보니 군대가 다 가져갔다고 해서, 결국 미국에 부탁했어요. 그래서 미국에 사는 국제지부장이 지혈대를 구입해서 오늘 3백 개를 보냈고, 내일 아침에 3천 개를 더 보내기로 했습니다. 답사가 끝나면 최종적으로 어떻게 지원할지 결정하려 해요. 만약 지혈대가 대량으로 필요하다고 하면 오히려 지금처럼 민간단체를 통해서 주기보다 우크라이나 대사관을 통해서 정부 차원에서 지원하는 게 더 좋을 것 같아요.
로힝야 난민들에게는 가스버너를 지원하기로 결정했지만 아직 물품 계약을 못 하고 있습니다. 보광 법사님이 방글라데시에 가서 가스버너 계약을 완료하면 지원을 시작할 예정입니다.”
이어서 나머지 일상 사업과 관련해 논의할 문제에 대해서는 JTS 활동가들이 발표했습니다. 국내에서 복지사각지대를 지원할 때 대상자 선정 기준, 동남아 여성 취약 계층 지원 사업에 대한 검토, 필리핀JTS의 현지 인력 확보 방안 등 활동가들이 각자 고민해 온 주제에 대해 발표한 후 스님의 조언을 들었습니다.
JTS가 추구하는 원칙과 실제 현실 사이에서 고민되는 지점들이 많았습니다. 마지막으로 필리핀에서 활동하는 분이 스님에게 한 가지 질문을 했습니다.
“필리핀 현지에서 활동을 하다 보면 어느 정도 융통성을 발휘해야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다가 수행자의 중심을 잃고 세속적 관점에 물들게 되는 부분이 있어요. 예를 들어서 사업을 진행하다가 관공서에서 질문을 받을 때 알면서 모른다고 하거나, 아닌 것을 맞다고 해야 하는 상황이 있었습니다. 두려운 마음은 정진을 하면서 해결이 됐는데, 문제는 저도 모르게 이런 융통성에 물들어 간다는 거예요. 자연스럽게 효율성만 앞세우고, ‘이건 어쩔 수 없다’라는 식으로 생각하는 모습이 충격적이었습니다. 이런 모습을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그냥 활동을 해나가면 될까요?”
“그래서 중도가 필요합니다. 우리는 무엇보다 수행자의 원칙을 지켜야 해요. 그러나 실제로 살아있는 사람은 딱 원칙대로만 살아지지 않는 게 현실이잖아요. 그래서 융통성이 조금은 필요하다고 말하는 겁니다.
융통성을 지나치게 발휘하면 원칙이 무너져버리는 문제가 발생합니다. 불교 변천사를 공부해보면 이런 문제가 계속 있었잖아요. 처한 현실에 맞게 유연성을 발휘하다가 세속화되는 길을 걷거나, 반대로 끝까지 원칙을 고집하다가 사회와 격리되어 결국 소수로 전락하거나, 역사 속에서도 이 두 가지 모습이 늘 번갈아 나타납니다. 그래서 이 문제는 끊임없이 현실 속에서 조정해 나가는 수밖에 없어요.
‘원칙을 지키려니 유연하지 못하고, 유연하게 대처하다 보니 원칙이 없어진다. 도대체 어떻게 하란 말인가’
이렇게 난감하게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렇게 생각해야 합니다.
‘원칙을 확고히 지킬수록 유연할 수 있다.’
원칙에 대한 입장이 분명하지 않기 때문에 유연성을 발휘할 때 자꾸 마음이 켕기게 되는 거예요. 원칙을 지키려는 입장이 분명하면 번뇌가 없습니다. ‘이 상황에서는 잠깐 이렇게 하는 것이 문제 해결에 도움 되겠구나’ 이렇게 그 상황을 잠시 받아들이는 것이기 때문에 그런 행동이 업으로 남지 않습니다. 그 한 건으로 끝나는 거예요.”
“네, 잘 알았습니다.”
마지막으로 스님이 정리 말씀을 해주었습니다.
“다들 수고가 많으십니다. 열악한 해외에서 활동하는 분들은 더욱 어려운 점이 많겠지만, 무엇보다 ‘수행자’가 가져야 할 원칙을 우선해 주시기 바랍니다. 지금 우리는 수행자로서 여러 가지 활동을 하는 것이잖아요. 일이야 아무렇게나 돼도 괜찮다는 말이 아닙니다. 일에 너무 집착을 하면 수행자의 원칙을 자꾸 어기는 생각이나 행동을 하게 되기 쉬워요. 그래서 항상 원칙을 먼저 지켜야 해요. 그렇다고 또 원칙에 너무 묶여서 아무것도 못하면 안 되겠지만, ‘수행자로서 할 만큼 한다’ 이 관점을 항상 지켜주시기 바랍니다.
또 일을 하다가 본인도 모르게 수행자의 원칙을 조금 어겼을 때 옆에서 도반이 지적을 할 수도 있어요.
‘왜 그렇게 하고 싶은지 충분히 이해하지만, 수행적 관점에서는 그렇게 해서는 안 됩니다.’
이런 지적을 받았을 때 기분 나빠하지 말고 이렇게 딱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죄송합니다. 일의 효율을 따지느라 제가 잠시 놓쳤습니다.’
이렇게 받아들여야 오히려 융통성을 좀 발휘할 수 있어요. 내가 놓쳐도 다른 도반이 또 지적해 줄 테니까요. 너무 고지식해지면 아무것도 못 해요. 그렇다고 늘 현실만 앞세워서 ‘이렇게밖에 할 수 없지 않냐?’라고 하면 수행자의 중심을 유지해 나가기가 굉장히 어려워집니다. 자꾸 ‘고생하고 있으니까 이 정도는 원칙을 어겨도 된다’ 이렇게 생각하면 나중에 일하기가 매우 어려워져요. 고생은 고생이고, 원칙은 원칙입니다. 우리가 정말 소중히 지켜나가야 할 것은 수행자로서 정체성입니다. 이런 관점을 가져주시기 바랍니다.”
사홍서원을 함께한 후 온라인 간담회를 마쳤습니다.
해가 지고 저녁에도 스님을 찾아온 손님들이 있었습니다. 늦은 시간까지 대화를 나눈 후 하루 일정을 마쳤습니다.
내일은 부처님이 돌아가신 날을 기념하는 열반재일입니다. 오전에 기념 법회를 생방송한 후 오후에는 평화재단 전문가 포럼에 참석하고, 저녁에는 평화재단을 찾아온 손님들과 미팅을 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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