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2.2.13 국제지부 세계전법 간담회, 전법행자 대회, 일요명상
“통찰력을 갖기 위한 세 가지 요소”

안녕하세요. 두북 수련원의 아침이 밝았습니다. 오늘은 정토회 역사에서 전법을 위해 모두가 마음을 모은 날입니다. 아침에는 제1차 세계전법을 위한 간담회가 처음으로 열렸고, 오전부터 오후까지 전법활동가들이 모두 참여하는 제1차 전법행자대회가 처음으로 열렸습니다.


새벽 기도와 명상을 마치고 오전 7시부터 국제지부 제1차 세계전법 간담회를 시작했습니다. 이번 간담회는 제1기 영어정토불교대학 발대식도 겸했습니다.

워싱턴은 입춘이 지나면서 봄이 완연해졌습니다. 호주 지역은 이제 가을이 깊어갑니다. 방콕은 새벽 5시, 독일은 밤 11시가 되어갑니다. 이른 새벽과 늦은 밤 시간, 시공간은 서로 다르지만 온라인에서 모두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지회 모둠별 소개를 시작으로, 지회장님들의 모둠활동 결과 발표, 영어 정토불교대학 경과보고 및 팀별 안내가 이어졌습니다. 2021년 온라인정토회 출범과 함께 세계전법을 전담하는 국제지부가 생겨 1년 만에 영어 정토불교대학 개강을 앞두게 되었습니다. 국제지부 활동가들의 세계전법을 향한 열정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어서 국제지부 활동가들은 스님에게 법문을 청했습니다. 12개의 사전 질문을 3개의 공통 주제로 분류해서 스님에게 법문 요청을 했습니다. 그중 한 개의 주제는 세계인을 향해 전법을 할 때 불교 색채를 어떻게 할지, 혹은 정체성을 무엇으로 삼아야 하는지였습니다. 스님은 정토회가 세계인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세계인들에게 불법을 전할 때 어떤 점을 고려해야 할까요?

“국제지부 활동가 여러분의 발표를 잘 들었습니다. 모둠 활동 이야기와 지난 5년간 영어불교대학을 준비한 과정도 잘 들었습니다. 수고들 많이 하셨습니다. 국제지부의 상황이 30년 전에 정토회를 처음 시작했을 때와 비슷하네요. (웃음)

불교 문화권이 아닌 지역에서 전법할 때

여러분의 과제는 외국인에게 전법을 하는 겁니다. 언어가 다르고 사물을 이해하는 바탕이 다른 타 문화권 사람들에게 불교를 전하는 일이죠. 특히 유럽이나 무슬림 지역, 북아메리카 지역 등 불교문화권이 아닌 지역에서는 전혀 새로운 문화를 전해야 하는 상황이 되기 때문에 많은 어려움이 예상됩니다.

첫째, 이미 종교가 있는 사람은 다른 종교를 받아들이기를 내켜하지 않습니다. 둘째, 반대로 어떤 종교를 믿다가 그만두고 현재 종교가 없는 사람은 종교 자체를 부정적으로 생각해요. 본인이 믿고 있던 종교도 버렸기 때문에 새로운 종교를 받아들이기를 내켜하지 않습니다. 셋째, 원래 믿던 종교에 실망해서 다른 종교를 탐구하는 사람도 있어요. 이런 사람에게는 비교적 불교를 전하기가 쉽습니다. 이런 사람은 수가 많지는 않지만 불교라는 종교색이 훨씬 호감을 줄 수 있습니다. 새로운 종교를 공부하는 셈이 되니까요.

그래서 불교라는 종교색은 세 가지 부류 중 두 부류에게는 거부감을 일으키기 쉽습니다. 종교가 있는 사람은 이미 본인의 종교가 있기 때문에 배타적일 수 있어요. 기존 종교에 실망해서 그만둔 사람은 그 종교에 대한 실망을 넘어서서 종교 자체를 거부합니다. 불교도 일단 종교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부정적으로 보게 되죠.

그렇다면 종교색을 없애고 수행으로서의 불교를 전하는 것은 어떨까요?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과 종교에 거부 반응이 있는 사람도 수행은 할 수 있기 때문에 전법할 수 있는 대상이 많아집니다. 반면 정체성을 확립하기가 굉장히 어려워요. 수행은 종교나 철학에 포함되어 있지, 독립된 영역으로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종교도 아니고 철학도 아니면서 비교적 수행에 가까운 영역이 바로 명상입니다. 명상센터라고 하면 사람들이 종교적이거나 철학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잖아요. 그래서 차라리 명상센터를 열어서 사람들에게 다가가자는 제안도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명상은 수행과 같은 것일까요? 같지 않습니다. 명상은 수행의 한 부분일 뿐이에요. 세계적으로 형성된 이미지만 놓고 보면 명상이 그래도 수행과 비교적 가까우니까 명상센터를 운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명상에 대해 생각하는 기대와 수행의 본질은 다르기 때문에 오해를 빚을 수 있어요. 사람들은 명상이 앉아서 호흡을 관찰하거나 화두를 참구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그런 명상법은 수행의 아주 일부분에 불과합니다. 수행의 본질은 어리석음을 깨우쳐서 괴로움에서 벗어나 마음에 변화가 생기는 것입니다.

명상이 수행의 일부이듯 참회도 수행의 일부이고, 계율을 지키는 것도 수행의 일부예요. 유럽을 비롯한 세계 여러 곳에서 지금 유행하고 있는 명상은 계율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먹고 입고 자는 것을 마음대로 하면서 그저 명상만 하면 된다는 관점을 갖고 있어요. 이런 명상은 약간의 휴식이지, 삶을 변화시키는 수행에 이를 수는 없습니다. 게다가 여기에 신비주의가 가미되어서 명상이 깊이 됐느니 덜 됐느니 하며 명상의 단계를 자꾸 나눕니다. 이런 여러 문제가 있어서 명상과 수행이 현재로서는 딱 일치하지 않아요. 그러나 종교, 철학, 명상, 이렇게 세 가지로 나누어서 본다면, 수행은 그중에서 명상에 가장 근접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불교라는 정체성을 내세웠을 때 받아들이기 쉬운 사람도 있고, 명상으로 접근했을 때 받아들이기 쉬운 사람도 있어요. 그런데 불교라는 정체성을 확실히 내세웠을 때 모이는 사람은 아주 소수일 겁니다. 대다수가 종교 자체나 다른 종교에 대해서 거부감이 있기 때문이에요. 그러나 명상으로 접근하면 다수가 거부감이 없이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대신 명상의 이미지가 이미 굳어있기 때문에 수행을 배우는 데 장애가 될 수 있어요. 이런 다양한 면을 감안해서 대책을 세워야 합니다.

불교 문화권에 속한 지역에서 전법할 때

그럼 불교 문화권에 있는 사람은 어떨까요? 종교로서의 불교를 믿는 사람도 역시 수행을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본인이 이미 불교를 잘 알고 있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에요. 또 새로운 불교를 공부할 이유나 필요를 못 느낍니다. 불교 문화권에서는 전법하기가 쉽지 않겠느냐고 생각하지만 여기에도 이런 어려움이 있는 거예요. 수행에 대해서는 배타성이 적지만, 사람들이 불교를 새롭게 배울 생각이 별로 없습니다. 또 자신이 알던 불교와 다르기 때문에 오히려 이상하게 생각해서 새로운 배타성이 생겨날 수 있어요.

불교 문화권에 있는 사람들에게 만약 명상으로 접근하면 어떻게 될까요? ‘명상’이라고 하면 일본이나 중국에서는 ‘참선’을 떠올리고, 동남아시아에서는 ‘위빠사나’를 떠올리기 쉽습니다. 불교인들이 실제로 참선이나 위빠사나를 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아요. 명상에 대한 지식만 가지고 있으면서 ‘내가 알고 있다’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참선을 안 하는 사람들이 참선이 뭔지는 다 알잖아요. 아니면 참선이나 위빠사나를 스님들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불교 문화권에서도 역시 복을 비는 종교가 아닌 수행으로서의 불교에 대한 설명을 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이렇게 나라마다 서로 상황이 다르다 보니 ‘불교라는 이름을 내세우지 말자’, ‘불교를 내세우자’, ‘명상을 내세우자’ 등 다양한 의견이 나오는 거예요.

한 편, 사회 일각에서는 수행이 심리상담의 범주에 들어간다고 보기도 합니다. 상담은 단기간에 효과가 있다는 장점은 있지만, 사람들의 괴로움을 근본적으로 없앨 수 없다는 문제가 있어요. 괴로울 때 상담을 하면 조금 위안을 받는 정도로만 그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수행과 종교를 비교하면

그런데 수행과 종교가 비슷한 점은 무엇일까요? 바로 마음을 다룬다는 겁니다. 종교도 마음을 다루고, 수행도 마음을 다뤄요. 원하는 것을 이루지 못할 때 괴로움이 발생한다고 본다는 점에서는 수행과 종교가 관점이 같습니다. 그런데 괴로움을 해결하는 방식이 서로 달라요. 종교는 신에게 빌든 부처님에게 빌든 어딘가에 빌어야 자신이 원하는 것이 이루어진다는 믿음을 바탕에 깔고 있습니다. 극심한 고행을 하든, 밤샘 기도를 하든, 보시를 하든, 뭔가를 하면 자기가 원하는 것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있는 것이 종교예요.

수행은 종교와 바탕은 같을지 몰라도 그 해결책이 다릅니다. 수행은 나의 어리석음을 깨우쳐서 괴로움으로부터 벗어나는 거예요. 나의 무지를 깨우쳐서 자신의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 자신의 성질로부터 좀 자유로워지는 것, 옳으니 그르니 하는 시비분별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 수행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수행에는 반드시 ‘계율’이라고 하는 실천 덕목이 따라올 수밖에 없어요.

그런데 믿음을 중요시하는 종교에서는 이런 계율이 별로 중요하지 않아요. 계율이 있더라도 그 계율을 지키는 이유가 다릅니다. 계율을 어기면 복을 못 받기 때문에, 혹은 그걸 지키면 복을 받기 때문에 계율을 지키는 거예요. 대승불교든, 소승불교든, 기독교든, 이슬람교든, 민속종교든 그 바탕은 ‘내가 이러저러한 것을 하면 원하는 게 이루어진다’라는 겁니다. 이게 종교의 영역입니다. 그런 면에서 불교 문화권에서조차 수행을 이해시키기가 쉽지 않다고 볼 수 있어요.

수행과 철학을 비교하면

그럼 수행을 철학과 비교해 보면 어떨까요? 수행은 믿음의 요소가 아닌 깨우침의 요소입니다. 즉 원리와 이치를 터득해서 실천하는 것이다 보니 철학적 사유와 비교적 유사한 영역이 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행이 철학과 다른 점은 무엇일까요? 철학은 사유하는 겁니다. 즉 이치를 생각하는 거예요. 그러나 수행은 마음의 문제입니다. 생각으로는 괴로움이 없어지지 않습니다. 괴로움은 마음 작용이지 사유 작용이 아닙니다. 그러니 아무리 이치를 많이 알고, 아무리 깊은 사유를 하고, 아무리 우주를 꿰뚫는 원리를 안다 하더라도 괴로움이 사라지지는 않아요. 수행은 무조건 믿기보다는 원리를 터득한다는 측면에서 철학과 가깝습니다. 그러나 마음의 괴로움을 없앤다는 측면에서는 철학과 다릅니다. 어리석음을 깨우쳐서 자신의 욕구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 수행입니다. 수행을 하기 위해서는 살핌이 필요합니다. 살핌은 곧 알아차림이에요. 알아차림은 믿음도 아니고, 사유도 아닙니다.

내 삶이 바뀔 때 세상도 바뀝니다

그래서 한국에서도 수행공동체 정토회가 대사회적으로 정체성을 갖기가 매우 어려웠습니다. 거의 대다수가 불교라는 종교에 너무 익숙해있기 때문입니다. 더군다나 정토회는 수행도 중요하게 여기지만, 사회적 실천도 함께 하잖아요. 그래서 처음에는 정토회를 거부하거나 사이비 취급을 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정토회가 불교의 이미지를 전체적으로 개선해 주었기 때문에 불교계에서도 이제는 정토회를 호의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정토회가 한국사회에서 호의적으로 받아들여지게 된 이유 역시 불교이기 때문이 아니라 정토행자 여러분들이 살아가는 모습이 종교를 넘어선 것 같으면서도 동시에 불교의 이미지를 개선했기 때문입니다. 불교의 사회적인 이미지를 개선했기 때문에 호의적으로 받아들여진 것이지, 불교 내에서 처음부터 호의적으로 받아들여진 게 아닙니다. 사회가 정토회를 받아들이니까 불교계도 덩달아 받아들이게 된 형국에 가깝습니다.

이런 점을 고려해서 여러분이 세계 전법을 고민하면 좋겠어요. 무엇보다 정토회의 회원이 되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수행적 관점을 분명하게 갖도록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이어서 자유롭게 손들기 버튼을 누르고 질문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국제지부 활동가들은 올바른 관점을 알려준 스님에게 감사의 마음을 담아 삼배로 인사를 했습니다.

9시에 간담회를 마친 후 잠시 휴식 시간을 가졌습니다.

곧이어 오전 9시 30분부터는 제1차 전법행자대회를 시작했습니다. 국내와 해외에서 전법활동가 2천 여 명이 화상회의 방과 유튜브에 접속했고, 곧이어 스님에게 입재 법문을 청했습니다. 스님은 전법행자대회를 하게 된 이유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전법활동가 여러분, 만나서 반갑습니다. 전법활동가 제도가 새로 생긴 이래 전체가 모여서 총회를 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인 것 같습니다. 이게 다 온라인으로 전환을 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 아닌가 싶어요. 온라인이 아니라면 2천 명이 모일 자리가 없을 테니까요.

모든 전법활동가들의 의견을 수렴하기 위한 자리

온라인으로 바뀌면서 대면을 하기가 어려워진 대신에 의견 수렴을 훨씬 더 폭넓게 해보자는 취지에서 정토행자대회가 마련되었습니다. 상부 단위에서 아무리 민주주의적으로 의사 결정하는 시스템이 도입되었다 하더라도 위에서 결정된 내용을 받아보는 회원 개개인들에게는 민주주의가 별로 실감이 안 됩니다. 어차피 위에서 결정이 돼서 내려온다는 측면에서는 예전과 크게 달라진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 문제를 보완하기 위해 지금 정토회에서는 많은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그 방법 중에 하나가 가장 아래 단위에서 초안을 제출하는 겁니다. 우선 모둠원들이 모여서 초안을 마련합니다. 그 내용을 지회가 모여서 결정하고, 지회에서 결정한 내용을 다시 지부에서 승인을 합니다. 이처럼 밑에서부터 위로 올라가는 제도를 도입해서 모둠원 개개인이 정토회 전체 사업에 대한 안건을 낼 수 있는 구조를 한번 만들어보려고 준비 중입니다. 물론 쉬운 작업은 아닐 거예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험을 계속해 나가려고 합니다.

그런 취지에서 전체가 모여서 보고도 받고 안건을 낼 수 있는 두 개의 회의를 일단 실험적으로 신설해 봤습니다. 하나는 정토회 합동회의이고, 다른 하나는 전법행자대회입니다. 현재로서는 정토회의 모든 단위가 한 자리에 모이는 회의가 없어요. 그래서 1년에 두 차례 합동회의를 하기로 했습니다. 따로따로 흩어져 있는 의사 결정 단위들이 전부 한 자리에 모여서 소통을 해보는 자리가 정토회 합동회의입니다. 그리고 전법활동가 전체가 모여서 총회와 같은 대회를 해보자고 해서 전법행자대회를 만들었어요. 전법행자대회는 이런 실험의 하나라고 이해하시면 좋겠습니다. 처음 열리는 행사라 부족한 점도 많겠지만, 행사가 마치고 여러 가지 의견을 많이 주시기 바랍니다.”

곧바로 대회를 시작했습니다. 2021년 사업보고와 2022년 사업계획, 각 위원회별 사업 보고와 사업계획이 영상으로 발표되고, 발표가 끝나면 궁금한 점, 건의할 점, 토론할 점에 대해 자유롭게 이야기가 오갔습니다.

회의는 중간에 쉬는 시간도 가져가며 5시간 동안 계속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아무말 대잔치’ 시간을 가졌습니다. 지부별로 아무말이나 자유롭게 한 후 한 명이 지부를 대표하여 그 내용을 발표했습니다.

“큰 행사가 있을 때마다 다 같이 노래를 부를 수 있는 정토송을 하나 만들면 좋겠습니다.”

“수행자의 워라밸을 만들면 좋겠습니다. 정토불교대학을 진행하거나 화상회의를 하다 보면 저녁 먹을 시간도 없을 때가 있어요. 저녁 7시부터 8시까지는 어떤 회의도 잡지 말고 식사 시간으로 정해 보면 어떨까요?”

“내려오는 공지가 너무 많은데, 내가 이 공지문을 봤는지 안 봤는지 체크할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되면 좋겠습니다.”

“검색창에서 법륜 스님을 검색했을 때 블로그와 홈페이지로 이동하여 정토불교대학을 연중 신청할 수 있게 하면 좋겠습니다.”

“조금 있으면 3.1절 기념일입니다. 이 날 24시간 릴레이 1만 명 전화 홍보를 해보면 좋겠어요. 1000명이 참여하면 1인 당 10명에게만 전화를 하면 됩니다. 밤에는 해외 활동가들이 전화 연락을 하고, 누구든 참여할 수 있게 해 보면 좋겠습니다.”

“온라인에서 제품을 구매할 때 후기가 중요합니다. 정토회에서도 정토불교대학 졸업생들에게 후기를 모아서 한 곳에서 모아서 볼 수 있게 하면 좋겠어요. 가령 ‘나에게 정토불교대학이란?’ 하는 질문을 던지고 각자 한 마디씩 적게 하고, 그 단어를 클릭했을 때 후기로 연결되는 겁니다.”

“저희 지회에서는 요일별로 전법 맛집을 특색 있게 운영하고 있습니다. 월요일에는 홍보 꿀팁을 대방출하는 시간을 마련했습니다. 화요일에는...”

1만 전법 활동을 하며 다양한 아이디어와 제안들이 쏟아졌습니다. 전법을 위한 축제의 장이 열린 것처럼 분위기가 후끈 달아올랐습니다.

더 많은 이야기를 듣고 싶었지만 마칠 시간이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스님에게 회향 법문을 청해 들었습니다.

“재미있었어요? 여러분들의 다양한 얘기를 잘 들었습니다. 조금 부족한 면도 있었지만 이것으로 정토회 제1차 전법행자대회를 마치겠습니다. 다음 대회 때는 이런저런 시간을 갖자는 제안을 좀 더 많이 해주시면 수용해서 해보겠습니다. 집행부에서는 여러분이 오늘 해주신 많은 제안 내용을 수용해서, 정토회가 대중의 뜻을 받아서 운영될 수 있도록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고대 그리스에서 시민들이 자유롭게 토론을 펼치는 장소였던 아고라가 연상되는 시간이었습니다.

오늘 전법활동가들 모두는 정토불교대학을 1만 명과 인연을 맺어보자고 마음을 모았고, 국제지부 활동가들은 영어 정토불교대학을 100명의 외국인과 인연을 맺어보자고 마음을 모았습니다.

해가 지고 저녁 8시 30분부터는 일요명상을 시작했습니다. 코로나 사태가 일어난 후 97번째 진행되는 온라인 명상 시간입니다.

먼저 스님이 일주일 만에 다시 만나는 시청자들에게 인사말을 건넸습니다.

다시 추워지는 것 같지만 결국 봄은 옵니다

“제가 있는 이곳 한국의 남부지방은 현재 포근합니다. 겨울에 계속 가뭄이었는데 오늘은 비가 와서 땅이 촉촉해요. 그런데 포근한 날씨가 계속 이어지지 않고, 이번 주 중에는 1년 중에 가장 추울 정도의 강력한 추위가 다시 찾아온다고 합니다. 길게 보면 봄으로 가는 것이 틀림없지만 이렇게 부분적으로는 오히려 되돌아가는 것 같이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우리 인생도 그와 같아요. 수행정진을 하면 계속 좋아지는 게 아니라 수행정진을 하는데도 불구하고 어떤 때는 하기 전보다 더 나빠지는 것 같이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 대부분이 ‘해봐야 별로 도움이 안 된다’ 하면서 포기해 버립니다. 그런 어려움을 이겨낼 때 우리는 비로소 편안함을 느낄 수 있게 됩니다. 그래서 정진은 꾸준히 해야 합니다. 여러분들도 좋은 일이 생기든 나쁜 일이 생기든, 하고 싶든 하기 싫든, 그런 것에 구애받지 말고 꾸준히 수행을 해나가시기 바랍니다.”

이어서 지난주에 영어로 올라온 질문에 대해 답변을 해주었습니다. 두 명이 질문을 했는데, 그중 한 명은 깨달은 사람이 드는 선정은 무엇인지 질문했습니다.

선정에 든다는 것을 무엇을 뜻하나요?

“In the Diamond Sutra, It said Buddha entered Samadhi. What is this Samadhi? I wonder what kind of Samadhi will it be for an enlightened being.”
(금강경에서 부처님이 선정해 드셨다고 했는데 이 선정이 어떤 선정인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깨달은 분이 드는 선정이 어떤 것인지 궁금합니다.)

“옛 선사들이 말하길, 깨닫기 전에도 선정을 닦아야 하고, 깨달은 후에도 선정을 닦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선정에는 세 가지 요소가 깃들어 있습니다.

첫째, 몸과 마음의 모든 긴장이 풀어진 상태가 되어 아주 편안해야 합니다.
둘째, 관심이 한 군데에 집중되어야 합니다.
셋째, 변화를 분명히 알아차려야 합니다.

편안한 가운데 집중만 되어 있으면 깨달음에 이르는 과정이 좀 더디게 됩니다. 알아차림도 뚜렷해야 이치까지 터득할 수 있습니다. 알아차림이란 일어나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하는 변화를 있는 그대로 느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항상 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고 무상하다는 것을 몸과 마음으로 체험해야 합니다. 몸과 마음에서 체험해야 집착에서 놓여날 수가 있어요. 무상한 것을 항상 하는 것으로 잘못 알고 집착하기 때문에 괴로움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이렇게 법의 이치를 분명히 알아차릴 때 통찰력이 생기고 사물의 전모를 볼 수가 있습니다.

통찰력을 갖기 위한 세 가지 요소

부처님이 드셨던 선정이 어떤 것이었다고 단정적으로 말할 수는 없어요. 학자들마다 그 상태를 다르게 설명하기도 합니다. 너무 신비주의로 설명하는 사람도 있고, 너무 현실적으로 설명하는 사람도 있어요. 그러나 방금 언급한 세 가지, 즉 몸과 마음이 편안해야 한다는 것, 마음이 한곳에 집중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 그 변화를 분명히 알아차려야 한다는 것은 반드시 포함되어 있어야 합니다.

선정이란 고요한 가운데 분명히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이것을 옛 선사들은 ‘소소영영하다’라고 표현했습니다. 아주 맑은 상태에서 환하게 비치는 것과 같이 그렇게 분명히 알아차려야 한다는 뜻입니다. 맑은 물이 고요하면 우리의 얼굴이 거울처럼 비치잖아요. 그것처럼 동작도 멈추고, 생각도 멈추고, 분명한 알아차림을 유지하는 것이 선정입니다.”

다른 한 명의 질문에도 대답을 한 후 명상을 시작했습니다.

“몸과 마음을 편안하게 갖습니다. ‘할 일을 다 마쳤다’ 하는 관점을 갖고 한가한 마음을 가집니다. 명상이 시작되면, 동작도 멈추고, 생각도 멈추고, 오직 관심을 콧구멍 끝에 둡니다. 그러면 호흡하고 있는 것이 저절로 알아차려집니다. 이 시간에는 그 어떤 것에도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다만 호흡하는 줄을 알아차릴 뿐입니다.”

탁! 탁! 탁!

죽비 소리와 함께 명상을 시작했습니다.

명상을 마치고 다시 스님의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실시간 채팅창에는 수십 개의 소감이 쏜살같이 올라왔습니다. 스님이 직접 소감을 한 줄 한 줄 읽어준 후 마무리 말씀을 해주었습니다.

“오늘도 명상을 하면서 이런저런 경험을 해보았습니다. 이런 경험들을 통해 알아차림을 지속해 나가야 합니다. 편안한 가운데 마음을 콧구멍 끝에 딱 집중해서 들숨과 날숨을 알아차리는 연습을 꾸준히 해보시기 바랍니다. 다음 주에 뵙겠습니다.”

명상으로 한 주를 마무리했습니다. 편안한 마음으로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내일은 일어나자마자 새벽 4시에 독일정토회 법인 총회를 온라인으로 진행하고, 오전에는 주간반 전법활동가 법회를 한 후, 저녁에는 저녁반 전법활동가 법회를 생방송할 예정입니다.

43기 백일출가 모집 안내

걸림 없고 자유로운 삶
내 인생의 새로운 길을 여는 100일간의 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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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43기 백일출가는 법륜스님의 봄불대 직강 수업을 포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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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자의 삶으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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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댓글 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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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계홍

수행자의 관점을 분명히 하여 괴로움이 없는 삶을 살도록 꾸준히 정진하겠습니다. 괴로움속에서 고통받는 사람에게 전법하겠습니다.

2022-02-19 20:55:13

선우

감사합니다

2022-02-19 07:59:38

굴뚝연기

[…알아차림이란 일어나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하는 변화를 있는 그대로 느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항상 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고 무상하다는 것을 몸과 마음으로 체험해야 합니다. 몸과 마음에서 체험해야 집착에서 놓여날 수가 있어요. 무상한 것을 항상 하는 것으로 잘못 알고 집착하기 때문에 괴로움이 생겨나는 것입니다.이렇게 법의 이치를 분명히 알아차릴 때 통찰력이…

2022-02-18 03:2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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