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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두북 수련원의 아침이 밝았습니다.
새벽 기도와 명상을 마친 후 발우공양을 하고 오전 7시 30분부터 농사일을 시작했습니다. 문경 수련원과 연수원에서 정토대전 회의를 하기 위해 두북 수련원에 온 공동체 법사님들도 함께 농사일을 도왔습니다.
오늘은 비닐하우스 3동에 고추 농사를 마무리 짓기 위해 빨간색 고추와 연두색 고추를 모두 수확하기로 했습니다.
먼저 스님이 일하는 방법을 안내했습니다.
“완전히 빨간색 고추는 수확을 해야 해서 따야 하고, 완전히 연두색 고추는 이제 고추 농사를 마무리해야 해서 따야 해요. 연두색 고추 중에 조금이라도 빨간색이 있는 것은 따지 말고 그대로 두세요. 왜냐하면 빨간색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뿌리를 뽑아도 햇빛에 말리면 빨갛게 변해요.”
한 명이 한 고랑씩 맡아서 고추를 따기 시작했습니다.
법사님들이 고추를 따는 동안 스님은 맨 오른쪽 줄에 심어놓은 꽈리고추를 수확했습니다. 꽈리고추는 크기가 작지만 한 나무에 개수가 많이 달려서 하나씩 따기에는 시간이 많이 걸렸습니다.
“이렇게 하나씩 따면 어느 세월에 다 따요? 그냥 줄기를 잡고 손으로 훑어서 박스에 담읍시다. 잎을 따로 분리하는 작업은 농막에 가져가서 하면 되니까요.”
스님은 빠른 속도로 줄기를 손으로 훑어서 꽈리고추를 박스에 담았습니다.
한 시간이 경과하자 모두 한 고랑씩을 다 수확했습니다.
스님은 농막에서 테이블 위에 수확한 꽈리고추를 부어 놓고 잎을 분리하는 일을 했습니다. 울력을 마칠 시간이 되어서 손놀림이 더욱더 빨라졌습니다.
고추 수확을 마친 법사님들도 합류하자 잎을 분리하는 작업이 더욱더 빨라졌습니다.
“역시 사람 손이 무섭네요.”
여러 명이 함께 하자 순식간에 작업을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빨간 꽈리고추를 컨테이너 상자에 담은 후 울력을 마쳤습니다.
“수고했어요.”
두북 수련원으로 돌아와 오전 10시부터 정토대전 사상팀 회의를 시작했습니다.
먼저 불교사상팀에서 ‘연기(緣起)’에 대해 공부하고 토론한 내용을 발표했습니다. 연기(緣起)의 사전적 해석, 경전 속 부처님 말씀, 스님의 하루에 나온 스님의 법문, 불교학자들의 해석에 대해 각자 조사해 온 내용을 발표하고 궁금한 점에 대해 스님의 답변을 듣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점심 식사를 한 후 오후에는 사회사상팀에서 ‘육화합’에 대해 공부하고 토론한 내용을 발표했습니다. 부처님이 육화합에 대해 이야기한 내용이 소승 경전과 대승 경전 속에서 각각 어떻게 표현되어 있는지 비교하고, 궁금한 점에 대해 스님의 답변을 듣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지난주에 한 주 쉬었더니 다들 많이 공부해 오셨네요. 이어서 법사단회의가 있으니까 오늘은 여기까지만 합시다.”
작년 가을부터 1년 넘게 정토대전 편찬 작업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다소 난해하게 느껴졌던 내용들도 매주 스님과의 시간을 통해 이제는 핵심이 무엇인지 조금씩 정리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오후 4시부터는 공동체 법사단 회의를 온라인으로 진행했습니다. 1차 만일결사의 목표 조정안과 만일결사 회향 기념 법문 진행 여부, 선출직 임원의 사퇴 등 여러 가지 현안들을 논의하고 토론한 후 회의를 마쳤습니다.
해가 지고 저녁 7시 30분부터는 수행법회를 시작했습니다.
400여 명의 저녁반 회원들이 화상회의 방에 입장하고 유튜브로 생중계를 하는 가운데 스님이 인사말을 건넸습니다.
“요즘 날씨 좋죠? 하늘은 높고 푸르고, 날씨는 서늘한, 완연한 가을 날씨입니다. 날씨가 10월 초에 더워서 단풍 드는 시기가 좀 늦었습니다. 그러다가 10월 중순에 겨울처럼 추워진 이후로 지금은 나뭇잎들이 노랗게 붉게 물들어가고 있습니다.
또 11월부터는 ‘위드(with) 코로나’가 시행되면서 사회적 거리두기가 조금 완화됐습니다. 올해는 단풍이 늦어 11월이지만 산에 가보면 단풍을 잘 구경할 수 있을 거예요. 시내의 식당이나 술집이나 영화관 같은 곳은 아직 코로나 감염 위험이 높습니다. 그런 쪽보다는 오히려 야외활동을 하는 게 정신건강에도 좋고 코로나 방역에도 낫지 않을까 생각해요.”
이어서 즉문즉설을 시작했습니다. 네 명이 사전에 질문을 신청하고 스님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중 한 명은 시한부 6개월 판정을 받았는데 사람들과의 언쟁 시 꼬치꼬치 따지게 된다며 어떻게 마음을 다스려야 할지 질문했습니다.
“저는 병원에서 6개월 시한부 선고를 받았지만 스님의 법문을 만나 오늘도 행복하게 살려고 하는 말기암 환자입니다. 아프기 전에는 타인에게 잘못된 말을 들어도 그냥 넘어가곤 했는데 암 선고 이후로는 잘못된 말을 들으면 못 참고 지적을 하게 됩니다. 최근에 입원을 했는데 간호사 선생님이 자꾸 저에게 ‘아버님, 아버님’ 하는 거예요. 제가 아직 ‘아버님’ 소리 듣기는 젊은 나이여서, 직접 찾아가서 ‘저는 아버님이 아니라 환자입니다’ 하고 얘기했습니다. 간호사 선생님은 무척 황당해했습니다.
죽음 앞에서 자꾸 작아지는 느낌이 들어요. 그래서 ‘꼭 이 말을 해야 하겠다’라고 생각하면 그 말을 꼭 하고야 마는 것 같습니다. ‘어차피 죽을 거 할 말은 하고 죽자’ 이런 마음이에요. 처음에는 수행하면서 상대방의 마음도 이해하고자 노력하고 법문도 여러 번 들었는데, 이제 지치는 것 같기도 하고, 거동이 불편한 정도는 아니지만 몸이 처음보다는 조금씩 기울어지고 있다 보니 더 그렇습니다.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면 좋을까요?”
“네. 우선 건강을 회복하시기 바랍니다. 이런 문제는 생각하기 나름이긴 해요. 만약 질문자가 무엇이든 바로 말을 못 하고 늘 참아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성격이라면 참지 말고 자기 할 말을 그냥 하는 게 좋습니다. 환자가 스트레스를 받으면 건강에 안 좋기 때문입니다. 마음속에 있는 것을 쌓아놓지 않고 그냥 얘기하는 것이 치료에도 좋습니다. 이런 측면에서는 할 말을 하는 게 낫습니다. 곧 죽을지도 모르는데 겁날 일이 뭐가 있겠어요? 질문자 말대로 ‘할 말은 하고 죽자’ 이렇게 접근해도 괜찮습니다. (웃음)
그런데 할 말을 하는 것도 경우에 따라 차이가 있어요. 내가 의문이 있어서 할 말을 하는 것과 항의성으로 할 말을 하는 것은 다릅니다. 항의성으로 할 말을 하는 것은 이미 스트레스를 받았다는 얘기예요. 그렇기 때문에 할 말을 하더라도 항의성으로 말하거나 신경질적으로 반응을 하는 것은 오히려 건강에 안 좋습니다.
이처럼 참는 것이 건강에 안 좋은 경우도 있고, 참지 못해서 화를 내는 게 건강에 안 좋은 경우도 있어요. 그래서 건강이 안 좋은데 화를 잘 내는 사람에게는 ‘화내지 마세요. 건강에 해롭습니다’ 이렇게 말리기도 하고, 반대로 건강이 안 좋은데 늘 참는 게 버릇인 사람에게는 ‘참지 마세요. 건강에 해롭습니다’ 이렇게 말하기도 합니다. 그 사람의 평소 성격에 따라 참는 것이 건강에 안 좋을 수도 있고, 화를 벌컥 내는 게 건강에 안 좋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질문자가 뭐든지 다 참고 속앓이를 하는 성격이라면 건강을 위해서도 이제 더 이상 속앓이를 하지 말고 그냥 자기 마음을 다 드러내는 게 좋아요. 그런데 질문자가 지금 몸이 안 좋고 하니까 짜증이 나서 신경질적으로 할 말을 다 하는 것이라면 거꾸로 그것이 건강에 더욱 안 좋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할 말을 하는 게 좋냐, 안 좋냐’ 이렇게 단정 지을 수는 없고, 할 말을 하는 방식이 어떠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참아서 스트레스를 받는 유형일 때는 편안하게 내놓는 게 건강에 좋습니다. 그러나 할 말을 아주 신경질적으로 짜증 내는 방식으로 하고 있다면 그 스트레스의 근원을 좀 살피는 게 필요해요. 그렇게 짜증을 담아 자꾸 말을 하게 되면 스트레스가 풀리기는커녕 오히려 더 쌓여 건강에도 안 좋고 인간관계도 나빠집니다.
‘아파서 곧 죽을 텐데 내가 마음속에 넣어놓고 끙끙댈 필요가 뭐 있나? 할 말은 하자!’
이것도 좋은 관점이에요. 그런데 지금 질문자가 말을 할 때 짜증을 내고 있다면 거꾸로 이렇게 생각해볼 수도 있어요.
‘어차피 얼마 있다가 죽을 텐데 무슨 소리를 듣든 뭐 어때? 죽고 나면 아무것도 아닌데 나를 아버님이라고 부르면 어떻고, 오빠라고 부르면 어떻고, 동생이라고 부르면 어때? 다 똑같은 소리일 뿐이잖아.’
건강해서 자존심 세우고 다닐 때는 ‘내가 이렇게 젊은데 말이야! 그런데 나더러 아버님이 뭐야!’ 이렇게 반응하기가 쉽습니다. 그런데 죽는 순서로 따지면 질문자는 지금 팔순 노인과 다름없잖아요. 의사가 오래 못 산다고 하니까요. 그러면 팔순 노인한테 아버님이라고 하지, 뭐라고 하겠어요. 그 간호사는 자기 나름대로 질문자를 존중한다고 조심스럽게 부른 말이 그랬는데, 정작 질문자는 그 말을 듣고 기분이 나빴던 거예요.
저도 전철에서 이런 일을 실제로 봤어요. 할머니 한 분이 타니까 한 젊은이가 자리를 양보한다고 ‘할머니, 여기 앉으세요’ 하니까 할머니가 성질을 확 내더라고요. 내가 왜 할머니이며 내가 왜 노인석에 앉아야 하느냐는 거예요. 본인은 아직 노인석에 앉을 정도로 예우받을 정도의 나이가 아니고 건강하다고 생각하는데 상대가 그렇게 말하니까 기분이 나빴던 거예요.
그런데 이런 일들은 대부분 서로 오해를 해서 빚어지는 일들입니다. 상대는 일부러 그렇게 말한 게 아니라 나름대로는 잘한다고 했는데 결과적으로 그렇게 된 거예요. 그럴 때는 짜증을 담아 항의하지 말고 웃으면서 이렇게 말해보세요.
‘그런 소리를 듣기에는 제가 아직 젊습니다. 몸은 아파도 아직 나이는 젊잖아요. 그렇게까지 배려해 주시지 않아도 되니까 그냥 제 이름을 불러주세요.’
하루를 살고 죽더라도 이렇게 생글생글 웃으면서 얘기하는 연습을 해보세요. 물론 참느라 스트레스를 받는다면 할 말을 하는 게 좋아요. 그럴 때는 웃으면서 농담처럼 부드럽게 얘기하는 연습이 좀 필요해요. 그런데 질문자는 지금 너무 진지하게 얘기를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 것을 탁 놓아버려야 해요.
마음이 편안해지면 설령 병원에서는 6개월밖에 못 산다 해도 앞으로 10년을 더 살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집착을 탁 놓아버리세요. 지금 딱 죽었다고 생각하고, 매일매일 아침 기도할 때마다 ‘오늘도 살아서 감사합니다’ 이렇게 기도하세요. 그 외에는 어떤 것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오늘 최고의 일은 내가 살아서 아침에 눈뜬 일이에요. 돈을 얼마나 많이 버느냐,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부르느냐, 나를 어떻게 예우해 주느냐, 이런 건 하등 중요한 일이 아닙니다.
‘아침에 눈 뜨니 살아 있구나. 아이고, 감사합니다.’
이렇게 감사 기도만 해야 합니다. 간호사나 가족들한테도 ‘아이고, 감사합니다’ 이런 마음을 가져보세요. 질문자는 지금 감사 기도만 해야 합니다. 눈뜬 것에 대한 감사, 살아 있는 것에 대한 감사, 일체 모든 사람들에게 항상 ‘감사합니다’라고 하세요. 상대가 뭐라고 해도 감사하는 거예요. 질문자더러 어른이라고 하면 ‘어른 예우해줘서 감사합니다’ 하고, 이름을 부르면 ‘저를 젊게 봐줘서 감사합니다’ 하고, 환자인데 함부로 대하면 ‘저 사람이 내가 건강하다고 착각했구나. 나를 건강하게 봐주니 감사합니다’ 하고, 이렇게 자꾸 감사하는 마음을 내야 내 몸에 스트레스를 안 주게 됩니다. 스트레스를 안 주면 이게 곧 건강해지는 길입니다. 암이나 종기는 대부분 스트레스를 먹고 삽니다. 스트레스는 건강의 최대 적이에요. 그렇게 감사 기도를 하면서 지내보면 어떨까요?”
“네, 그렇게 해보겠습니다.”
“그리고 할 말은 다 하세요. 그런데 그 말을 할 때 웃으면서 하세요. 감사하다고 먼저 말하고, ‘그런데 제가 이 말은 꼭 해야겠습니다. 안 하면 병이 날 것 같아요’ 이렇게 약간 유머를 섞어서 말하면 됩니다. 이런 방식으로 할 말은 다 해야 해요. 언제 죽을지 모르는데 꽁해서 있다가 죽으면 뭐하겠어요? 할 말은 해야죠. 그런데 그 할 말을 좀 유머러스하고 해 보는 연습을 하면 좋겠다 싶습니다.”
“잘 알았습니다.”
“다들 격려의 박수 한 번 부탁드립니다.” (모두 박수)
“항상 하루하루 감사한 마음으로 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화상 화면 속에서 모두 큰 박수를 쳐주자 질문자의 얼굴에도 미소가 번졌습니다.
이 외에도 다음과 같은 질문이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스님이 닫는 인사를 했습니다.
“주말에는 으뜸절이나 실천 장소에 오셔서 작은 실천이라도 함께하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생방송을 마치고 나니 밤 9시가 넘었습니다. 오늘도 긴 하루였습니다.
내일은 결사행자회의를 한 후 가메달 밭에 올라가서 콩 수확을 하고, 두북 수련원을 찾아온 손님들과 계곡을 산책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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