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1.10.25 벼 건조, 전법 활동가 법회, 서울로 이동
“절망감이 들거나 안주하는 마음이 들 때 극복 방법”

안녕하세요. 두북 수련원의 아침이 밝았습니다.

천일결사 기도와 명상을 마치자마자 새벽 5시에 스님과 두북 공동체 대중들은 동네 어귀에 있는 벼 건조장으로 향했습니다.

어제 벼를 일부 수확한 후 곧바로 건조기에 넣었습니다. 동네에 하나밖에 없는 건조기여서 어르신들이 순서를 정해 돌리기 때문에 건조가 끝나면 곧바로 빼내 주어야 합니다. 두북 수련원 재활용 창고에서 사용하는 지게차도 찬바람을 가르며 먼 길을 달려 건조기 앞에 도착했습니다.

지게차에 톤백 마대를 걸고 버튼을 누르자 원통 속에서 먼지를 풀풀 날리며 나락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순식간에 톤백 마대가 가득 찼습니다.

“금방이네요.”

옛날 어르신들은 길 위에 나락을 말리곤 했는데 건조기를 이용하니 일손을 크게 덜 수 있었습니다.

지게차로 나락이 가득 찬 톤백 마대를 트럭에 실었습니다. 무게가 많이 나가다 보니 트럭 바퀴가 쑥 내려갔습니다.

건조된 나락을 실은 트럭이 두북 수련원에 도착하자 포클레인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포클레인이 마대를 들지 못해 트럭이 미끄러지듯이 빠지면서 겨우 마대를 땅에 내릴 수 있었습니다.

마대의 윗부분을 풀고 비스듬히 눕혀서 나락을 25kg짜리 포대에 나눠서 담았습니다. 스님이 나락을 퍼서 포대에 담으면 행자님들이 포대를 들고 무게를 재었습니다.

“무게가 얼마예요?”

“24kg입니다.”

“바가지로 한 번만 더 퍼서 담아주세요.”

“딱 25kg입니다.”

나락을 포대에 담는 동안 날이 점점 밝아졌습니다. 해가 산 위로 떠오르고 완전히 날이 밝아지자 포대 담기 작업을 모두 끝마칠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 작업은 포대를 뒤주에 차곡차곡 쌓는 것입니다. 2인 1조가 되어서 “으샤” 하며 밖에서 안으로 포대를 넣어주면 뒤주 안에 있는 사람이 포대를 하나씩 쌓았습니다.

“뒤주에 보관하고 있다가 먹을 때마다 정미소에 가서 쌀을 찧어 오면 돼요.”

포대에 담다가 바닥에 떨어진 나락까지 빗자루로 샅샅이 쓸어 담아서 포대에 넣은 후 울력을 마쳤습니다.

오늘은 발우공양을 하지 않고 뒤늦게 상공양으로 아침 식사를 했습니다. 식사를 마치자마자 운동장에 트럭이 한 대 도착했습니다. 수도권에서 뒤늦게 법당 철거 작업을 하면서 나온 물품들이 가득 실려 있었습니다.

하나씩 물건을 내리고, 종류별로 팔레트 위에 쌓았습니다. 팔레트 위에 물건이 가득 쌓이면 지게차로 물건들을 창고 안으로 넣었습니다.


짐 내리는 일을 마치고, 봉화 수련원에서 수확해 온 들깨를 운동장에 널었습니다. 검게 변한 들깨가 가을 햇살에 바짝 말랐습니다.

“새벽부터 모두 다 수고했어요.”

오늘은 새벽부터 울력을 하다 보니 아침 시간이 정말 길었습니다. 11월 7일에 살리고 장터가 두북 수련원에서 열리는데 그날 재활용 물품 판매와 더불어 농산품도 일부 맛보기로 판매하기로 했습니다. 뒤주에 넣지 않은 나머지 쌀포대들은 모두 정미소로 가져가서 쌀로 찧었습니다.

오전 10시에는 전법 활동가 법회 생방송을 시작했습니다.

400여 명의 주간반 전법 활동가들이 화상회의 방에 입장하고 유튜브로 생중계를 하는 가운데 스님이 인사말을 건넸습니다.

“안녕하세요. 전법 행자 여러분. 지난 한 주 잘 보내셨습니까? 정토회에서는 지난 2주 동안 정일사 정진 기간을 보냈습니다. 오늘 정진을 회향하고 내일부터 정일사 수련에 들어갑니다. 바쁜 일정 가운데 매일 300배 정진을 하느라 수고하셨습니다.

수행이란 한가할 때 하는 게 아니라 바쁜 와중이나 어려울 때 더욱더 마음을 내서 해야 합니다. 바쁜 가운데서도 능히 해내는 것, 어려운 가운데서도 능히 해내는 것이 수행입니다.

저는 지난 3일 동안 벼 수확을 했습니다. 낫으로 논 입구와 모서리의 벼를 먼저 베어내고, 나머지는 기계로 베어냅니다. 베어진 나락은 건조기에서 말린 다음, 방아를 찧을 건 먼저 찧고, 나중에 먹을 건 뒤주에 보관을 했습니다. 오늘 새벽까지 그 일을 계속했습니다.

새벽 5시에 건조기에서 나락을 꺼내 와서 뒤주에 넣는 작업을 했고, 또 서울 근교에 있는 3개의 법당을 철거하면서 물품들이 내려와서 아침에 내리는 작업을 하느라 법회 직전까지 바쁘게 일을 하다가 왔습니다.”

스님의 하루를 간단히 소개한 후 벼를 수확하는 전 과정이 담긴 영상을 함께 보았습니다. 낫을 들고 아주 빠른 속도로 벼를 베어내는 스님의 모습을 보고 모두 다 웃음을 보였습니다.

▲ 영상 보기

이어서 정일사 정진을 마친 전법 활동가들을 위해 회향 법문을 했습니다.

“정진을 해나가는 데 있어서 좋은 도반을 만나는 일은 참으로 큰 복입니다. 좋은 도반을 ‘선우(善友)’라고 합니다. 아난존자가 부처님께 ‘좋은 도반을 만나는 것은 수행의 절반은 되겠습니다’라고 했더니 부처님께서는 ‘아난다여, 아니다. 좋은 도반을 만나는 것은 수행의 전부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만큼 좋은 도반을 만나는 것은 수행에 있어서 매우 중요합니다.

좋은 도반이란 수행의 목표를 분명히 하고, 그 수행에 도움이 되는 도반입니다. 예를 들어, 계율을 지키는 것을 수행의 목표로 한다면, 계율을 잘 지키는 도반을 만나서 ‘아, 나도 저렇게 계율을 잘 지켜야겠다’ 하고 내가 감화를 받게 되는 도반, 또는 내가 계율을 못 지킬 때 밝은 눈으로 나의 부족함을 발견해 줘서 정진의 계기를 마련해주는 도반, 이런 도반이 좋은 도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수행자와 범부 중생의 차이

술 먹는 사람과 같이 있다고 해서 술을 따라 배우고, 거짓말하는 사람과 같이 있다고 해서 거짓말을 따라 배우고, 게으른 사람과 같이 있다고 해서 같이 게을러지고, 화내는 사람과 같이 있다고 해서 같이 화를 내고, 이런 사람은 범부 중생입니다. 범부중생은 주변에 물드는 존재입니다.

술 먹는 사람과 같이 있다고 해도 나는 술을 먹지 않고, 거짓말하는 사람과 같이 있다고 해도 나는 거짓말을 하지 않고, 게으른 사람과 같이 있다고 해도 나는 같이 게을러지지 않고, 화내는 사람과 같이 있다고 해도 나는 화를 내지 않고, 이런 사람이 수행자입니다. 수행자는 주변에 물들지 않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을 진흙탕 속에서 꽃을 피우는 연꽃에 비유하기도 하죠. 연꽃은 비록 진흙탕 속에서 자라지만 그 꽃잎에는 진흙의 더러움이 물들지 않습니다. 이런 모습 때문에 연꽃이 수행자를 상징하는 꽃이 되었습니다.

수행의 길로 나아가기로 한 사람들조차 막상 현실에서는 범부 중생의 관점을 갖기가 쉽습니다. 도반이 계율을 어길 때 그걸 눈감아 주는 걸 동료의식이라고 착각합니다. 도반이 계율 어긴 것을 지적하면 그걸 겸허히 받아들이기보다 ‘그래, 니 잘났다’ 하고 반발하기 쉽고, 자자나 포살을 할 때 문제제기를 하면 고자질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이건 수행의 목표를 놓쳤을 때 일어나는 일입니다. 수행의 목표가 없기 때문에 세속적으로 같이 물 드는 것을 오히려 동료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도 이런 동료를 만나는 게 수행에 있어서 가장 나쁜 영향을 준다고 하셨습니다.

이런 도반과 함께 하는 건 홀로 수행하는 것만 못합니다. 이런 사람과 함께 하면 주변이 같이 물들기 때문에 차라리 혼자서 수행을 하는 게 낫습니다. 이런 배경에서 ‘무소의 뿔처럼 홀로 가라’ 하는 말씀이 나온 겁니다. 이는 다른 사람은 다 팽개치고 혼자서 나아가라는 말이 아니라, 주변에 물들 수 있는 환경일 때는 거기서 먼저 벗어나라는 의미입니다.

이처럼 서로 안 좋은 영향을 주는 게 아니라 도반 사이에 서로 격려하면서 내가 못 보는 것을 대신 봐주고, 내가 혹시 실수할 때 그것을 비난하기보다는 감싸주면서도 깨우쳐 주고, 항상 바른 길로 가도록 인도해줄 때 그런 사람이 바로 좋은 도반입니다.

우리는 수행자라고 하면서도 세속적인 관점을 버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세속에서처럼 잘못하는 것까지 모두 눈감아 주고 덮어 주는 것을 친구라고 생각합니다. 나쁜 길을 걷는 데도 같이 동조해 주는 걸 친구라고 착각하죠. 그렇다고 잘못하는 걸 일일이 지적하라는 뜻은 아닙니다. 물론 우리 모두가 부족한 존재니까 서로 부족한 점을 이해하고 인정할 순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 자리에 왜 모였는지 항상 자각해야 하고, 그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길에서 누군가 벗어나 있다면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알려주고 독려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려면 세속에서 살면 되지 굳이 이렇게 수행자끼리 모여 살 필요가 없습니다. 아직은 부족한 현실이지만 그러한 현실을 딛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모였기 때문에, 서로 이해하면서도 올바른 길로 이끌어 주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그래야 ‘나 혼자서는 하지 못할 일이었는데 도반이 있었기에 같이 이룰 수 있었다’ 하는 말을 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좋은 도반일까요?

아침에 일어나서 정진을 하는 것도 나 혼자만 하고 다른 사람은 아무도 안 하면 포기하기가 쉽습니다. 이런 경우는 서로 좋은 도반이 되지 못한 경우입니다. 반면 나 혼자서는 아침에 일어나기가 힘든데 다른 도반들이 다 같이 하니까 나도 덩달아 할 수 있다면 서로가 좋은 도반이 되어준 경우입니다.

한 장소에 모여서 살면 이렇게 좋은 영향을 직접 주고받을 수 있는데, 요즘 코로나로 인해 모두 떨어져서 지내다 보니까 이렇게 하기 어려운 점이 있긴 합니다. 그러나 청년들의 사례를 들어보면 혼자서 아침에 일어나기가 어려우니까 서로 전화해서 깨워주고, 온라인 공간에 모여서 같이 정진을 한다고 해요. 정진하기 싫은 날에도 같이 모여서 하다 보니 하루, 이틀 하게 되고, 점차 거기에 익숙해지고, 그러다 보면 정진의 좋음을 알게 됩니다. 이럴 때 서로가 서로에게 좋은 도반이 되는 것입니다. 그가 있어서 내가 좋고, 또 내가 있어서 그에게 도움이 되는 관계, 이렇게 서로 좋은 도반의 관계를 맺고 정진을 해나가야 합니다.

우리는 이름이 수행자이긴 하지만 아직은 자유와 행복을 목표로 하고 있을 뿐 그 목표에 도달한 것은 아닙니다. 그 방향으로 출발해서 나아가고 있는 과정에 있습니다. 아직 목표에 도달하지 못했다고 해서 ‘수행자라고 하는 사람이 이것밖에 안 되는가?’ 하고 평가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 아직은 부족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못하는 걸 인정하고 안주해서도 안 됩니다. ‘내가 출가한 스님도 아니고 이만하면 됐다’ 이렇게 생각하고 안주하는 것도 수행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두 눈은 멀리 목표를 보고, 두 발은 현실에 딛고 서서, 한 발 한 발 목표를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

절망감이 들 때

갈 길이 너무 멀어서 절망감이 들 때는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되돌아봐야 합니다.

‘아직 남편, 아내, 아이 문제에 있어서도 제대로 마음을 못 다스리는데 내가 어떻게 깨달음을 얻을 수 있겠는가’

이런 회의감이 들 때는 출발할 때 내가 어땠는지 떠올려봐야 합니다. 이 법(法)을 만나기 전의 나 자신과 비교해 보면 아직도 화를 내지만 많이 줄었고, 아직도 욕심을 내지만 많이 줄었고, 아직도 관계가 나쁘지만 많이 개선되었고, 아직도 삐치지만 옛날보다 많이 좋아졌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좌절감이 들 때는 항상 뒤돌아서서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보며 희망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면 출발할 때보다는 많이 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비록 내가 원하는 만큼은 못 갔을지 모르지만 그래도 많이 왔다는 걸 알게 되면 좌절감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해보니까 되네’, ‘그래도 많이 왔네’, ‘계속 가면 되겠다’ 이런 마음으로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안주하는 마음이 들 때

이제 마음 다스리는 게 조금 된다고 느껴지면 ‘그만하면 됐다’ 하는 생각이 들게 됩니다. 게다가 옆에서 칭찬까지 해줘서 안주하는 마음이 올라올 때는 목표점을 봐야 합니다. 목표점을 보면 아직 갈 길이 한참 멀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수행자라는 이름으로 장판 때만 묻히고 적당하게 해도 수행자라는 울타리를 지킬 수 있다는 생각으로 안주하면 안 됩니다. 그런 마음이 올라올 때는 다시 초발심으로 돌아가서 ‘내가 왜 이 길에 접어들었는가’ 하고 살펴본 후 벌떡 일어나서 목표를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모두 부족한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부족함을 서로 인정해야 합니다. 자신에 대한 부족함도 인정해야 합니다. 부족함을 인정한다는 게 서로 고만고만하니까 눈 감고 덮어주자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부족한 것에 대해 시비 분별하거나 좌절하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남을 시비하거나 나에게 좌절하지 말아야 합니다. 도달하고자 하는 목표를 향해 다시 한번 발심을 하되, 타인에 대해서는 격려를 해서 더 나아갈 수 있도록 등을 밀어주어야 합니다.

이런 관점을 가지고 앞으로 일주일 동안 법사님들과 함께 회향 수련을 잘 마치시길 바랍니다.”

좋은 도반이 무엇인지 성찰해보는 시간이었습니다. 이어서 전법 활동가들은 모둠별로 온라인 공간에 모여서 자신의 수행 과제에 대해 어떤 진전이 있었는지 서로 마음 나누기를 했습니다.

점심 식사를 한 후 오후 1시부터는 결사 행자 자자 수련을 시작했습니다. 결사행자 모두가 화상회의 방에 입장한 가운데 스님이 입재 법문을 해주었습니다.

“결사 행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은 결사 행자들이 일 년에 두 번 포살과 자자를 행하는 날입니다. 포살과 자자를 하는 이유는 결사 행자 개개인의 청정과 수행공동체 정토회의 화합을 유지하기 위해서입니다.

참회와 포살

수행자는 매일 정진하고 순간순간 깨어있어야 합니다. 만약 깨어있음을 놓쳤다면, 하루를 넘기지 말고 놓친 것을 알아차리는 자각을 하고, 다시는 놓치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원래대로 돌아와 청정성을 회복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참회’입니다. 매일 아침마다 참회 기도를 하는 이유는 어제 하루를 돌아보면서 놓친 것을 다잡고, 오늘은 놓치지 않으리라 다짐을 하기 위해서입니다.

혼자 살면 이렇게만 정진하면 되는데, 사람이 여럿이 어울려 살 때는 자각하고 참회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상대가 수행자로서 어긋나는 행동을 했을 때 본인이 그것을 자각하고 있는지 아닌지 제삼자가 알기는 어렵습니다. 그래서 마음속에 의혹이 생깁니다. 이 의혹이 쌓이고 쌓이면 갈등의 원인이 됩니다. 그래서 의혹이 쌓이지 않도록 풀어줘야 합니다. 그것이 ‘포살’입니다. 수행공동체에서는 보름마다 포살을 해서 대중에게 자신의 허물을 고백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마음에 쌓인 의혹이 최대 보름을 넘기지 않도록 해서 공동체 안에 갈등의 원인을 없앱니다.

자자를 하는 이유

참회는 개인을 청정하게 하기 위한 수행법이라면, 포살은 공동체를 투명하고 청정하게 하는 수행법입니다. 그런데 이것만으로 부족합니다.

첫째, 어떤 것이 바른길인지, 어떤 것이 수행자로서 지켜야 할 가치인지, 본인 자신이 모르고 있는 사람이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본인이 그 자체를 모르니까 자각할 가능성이 거의 없습니다. 알고 있는데 놓쳤을 때 자각이 되지, 아예 모르고 있으면 자각이 될 수가 없습니다.

둘째, 본인이 부처님의 법문을 듣고 수행자가 가져야 할 관점을 알고는 있는데, 어떤 이유로 생각에 사로잡혀서 까마득하게 잊어버릴 수가 있습니다. 아예 들어보지 못한 이야기가 아니라 정신을 차리면 ‘아, 맞아. 그게 그렇지!’ 하고 자각하는데 까마득하게 잊어버리고 지나갈 때가 있습니다.

자각이 잘되지 않는 경우에는 참회도 안 되고 포살도 되지 않습니다. 참회와 포살은 자각이 되어야 가능합니다. 자각하여 허물을 뉘우치고 다시 청정한 수행자로 돌아가는 게 참회라면, 타인의 가슴속에 있는 의혹까지도 풀어주는 게 포살입니다. 그런데 자각이 일어나지 않으면 포살도 참회도 할 수가 없습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승가에서는 ‘자자’를 행합니다. 일 년에 한 번 또는 두 번 안거가 끝나는 날에 도반에게 자자를 청합니다.

‘지난 삼 개월 동안, 혹은 지난 일주일 동안 저와 같이 살면서, 저에게 혹시 허물은 없었는지, 혹시 발견했다면 저를 위해서 좀 알려주십시오.’

이렇게 도반들에게 요청하는 겁니다. 내가 자각하지 못한 나의 허물을 도반의 눈을 빌어서 발견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수행자는 늘 자기를 보고 있어서 타인을 볼 일이 별로 없습니다. 기본적으로는 자각을 통해서 변화를 일으켜야 합니다. 하지만 도반과 같이 지내는 기간이 있을 때는 혹시 도반이 나의 말과 행동을 보고 나를 위해 깨우쳐 줄 말이 있지 않을까 해서 청하는 것이 자자입니다.

정토회의 창립 정신을 오래도록 지켜나가기 위해서

결사 행자의 주된 역할은 정토회의 순수성과 창립 정신을 오래도록 유지하고 지켜나가는 것입니다. 선불교로 말하자면 정토회의 결사 행자는 역대 전등 제대 조사님들과 같습니다. 결사 행자 여러분이 정토회의 창립 정신과 수행자의 삶을 잘 지켜나갈 때 정토회는 오래도록 지속될 수 있습니다. 그러니 포살과 자자를 번거롭게 생각하면 안 됩니다. 포살과 자자는 개개인뿐만 아니라 정토회의 순수성과 창립 정신을 유지하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의미를 되새기며 자자에 진지하게 임해주시기를 바랍니다.”

법문이 끝나고 결사 행자들은 모둠별로 모여서 포살과 자자를 했습니다. 포살과 자자를 한 후에는 결사 행자 회의를 곧바로 열어서 급히 처리해야 할 안건들에 대해 표결하고 처리했습니다.

스님은 수확한 농산물을 박스에 가득 담아 차에 싣고 서울로 향했습니다. 내일부터 3일 동안 서울에서 여러 가지 회의와 모임이 예정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서울로 가는 길에 잠시 경주 동국대 병원 장례식장에 들렀습니다. 젊은 시절에 스님과 함께 불교 포교 활동을 왕성하게 하였고, 조계종 중앙종회의원과 경주 기림사 주지를 역임한 종광스님이 입적했다는 소식을 듣고 빈소를 찾았습니다. 종광스님의 뜻을 기린 후 다시 서울로 출발했습니다.

고속도로를 달려 밤 10시에 서울 정토회관에 도착한 후 하루 일정을 마쳤습니다.

내일은 아침에 민족의 화해와 평화를 위한 종교인 모임을 한 후 하루 종일 평화재단에서 찾아온 손님들과 미팅을 이어서 할 예정입니다.

전체댓글 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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ㅎㅎ

이만하면 됐다.. 아직 한참 부족하군.. 감사합니다

2021-11-06 10:08:08

정명화

자각을하지 못하면 참회도 포살도 되지 않는다는 말씀을 읽으며 나는 무엇을 놓치고 있나 ! ㄷ두려운 마음입니다.
자신의 말과 행동에 깨어있어야하는 하는 이유익구나 연결되어집니다.

2021-11-05 06:31:13

포살과 자자

스님 감사합니다.

2021-10-31 10: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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