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검색
원하시는 검색어를 입력해 주세요
안녕하세요. 두북 수련원의 아침이 밝았습니다. 아침 날씨가 제법 쌀쌀한 걸 보니 이제 가을로 접어든 것 같습니다.
아직 어둠이 짙은 새벽 4시, 방송실에 불이 켜지고 스님은 조용히 명상을 했습니다. 4시 30분이 되자 맑은 종소리가 울려 퍼지며 생방송이 시작되었습니다.
이어서 예불, 삼귀의, 수행문, 참회, 108배, 명상, 경전 독송을 차례대로 했습니다.
사홍서원을 한 후 스님이 오늘 읽은 경전에 대해 법문을 해주었습니다. 먼저 백일기도의 고비인 70일 째를 무사히 지나고 있는 초심자들을 격려했습니다.
“아침 기도 잘하셨습니까? 오늘이 백일기도 69일째입니다. 입재 후 10주가 지나고 있습니다. 백일기도를 하다 보면 중간중간에 고비가 있는데, 오늘까지 기도를 잘해오신 분들은 현재 3분의 2 지점의 고비, 즉 70일의 고비를 넘기고 있기 때문에 남은 한 달은 잘 해 나가시리라 믿습니다.
정진이라는 건 중간에 며칠 쉬어버리면 그다음부터는 잘 안 하게 됩니다. 운동도 그렇고, 공부도 그렇습니다. 이번 추석처럼 연휴가 5일 정도 되면 정진을 놓치는 분들이 계실 거예요. 이런 연휴를 계기로 해서 정진을 아예 놓치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비록 정진을 놓쳤다고 하더라도 오늘 다시 마음을 다잡고 정진을 계속해나가시길 바랍니다.”
이어서 오늘 날짜의 경전을 다시 읽었습니다.
“몸이 고요하고, 말이 고요하고,
마음이 고요하여 적정에 들어
세상의 즐거움을 버린 비구를
평온한 사람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 구절에 대한 스님의 법문이 이어졌습니다.
“첫째, 몸이 고요하다는 건 명상할 때의 자세와 같습니다. 명상을 할 때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한가하게’ 이렇게 하라고 안내하잖아요. 그런데 한국 사람들은 대체로 바쁘게 살아갑니다. 저도 그런 편이에요. 뭐든지 빨리빨리 일을 처리하려고 하죠. 그런데 이렇게 빨리빨리 하다 보면 몸이 지치게 됩니다. 그래서 수행자들은 천천히, 그러나 꾸준히 해나가야 합니다. 그럴 때 마음이 고요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절에서는 대개 뛰어다니지 못하게 하고, 신발을 끌지 못하게 합니다. 뛰어다니면 마음의 고요를 놓치기 쉽기 때문입니다. 몸이 바쁘다 보면 마음도 덩달아 서두르게 됩니다. 그래서 우선 몸이 고요해야 합니다.
둘째, 말이 고요해야 합니다. 살다 보면 목청을 높이기가 쉽습니다. 바쁘고 서두르다 보면 목청을 높이게 되고, 화를 내거나 짜증을 내기가 쉬워집니다. 그래서 몸도 고요해야 하지만, 말도 고요해야 합니다. 말의 고요함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침묵입니다. 할 말이 별로 없어야 합니다. 설령 말을 하더라도 조용히 천천히 해야 합니다.
셋째, 마음이 고요해야 합니다. 사실은 마음의 고요함이 근본입니다. 마음이 고요하면 말이 고요해지고 몸도 고요해집니다. 마음이 바쁘거나 들뜨거나 침울하면 말도 고요하지 못하고 몸도 고요하지 못하게 됩니다. 그래서 마음을 고요하게 가지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이렇게 적정(寂靜)의 경지에 들어서 세상의 즐거움을 추구하지 않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맛있는 걸 먹었다, 좋은 걸 가졌다, 내 뜻대로 됐다, 이런 것들은 세상의 즐거움입니다. 이런 즐거움은 반드시 괴로움을 동반하게 됩니다. 즐거움과 괴로움이 항상 되풀이되는 것을 ‘윤회(輪廻)한다’라고 표현합니다. 중생은 윤회의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항상 즐거움을 추구하기 때문에 괴로움이 필연적으로 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의 몸에 그림자가 따르듯이 세상의 즐거움에는 괴로움이 필연적으로 따르게 됩니다.
완전한 고요함에 이르기 위해서는 이렇게 마음이 들뜨는 세상의 즐거움을 버려야 합니다. 세상의 즐거움을 버린 비구를 평온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몸과 말과 마음이 모두 고요한 사람을 일컬어 열반을 증득한 사람, 해탈한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오늘 읽은 경전의 내용에 비추어 보니까 제 자신이 부처님의 가르침에 조금 어긋나 보이기도 하네요. 저는 몸도 조금 빨리빨리 움직이는 편이고, 말도 조금 빠르게 하는 편이니까요. (웃음)
가장 중요한 것은 세상의 즐거움을 추구하지 않고, 마음이 들뜨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즐거움을 추구하지 않아서 마음이 고요하고, 또 그래서 몸과 말도 고요한 사람이 수행자입니다.
남방불교에서 위빠사나 수행을 하는 분들은 이 가르침을 잘 지키는 편입니다. 남방불교 스님들을 한국에 초청해서 정토회를 견학시켜 주고 그분들과 같이 생활해 볼 때가 있습니다. 저희가 그분들을 볼 때는 조금 게을러 보이는데, 또 그분들이 저희를 볼 때는 뭐든지 조금 서두른다고 느낍니다. 몇몇 장소를 구경시켜주기 위해 같이 다녀보면 그분들은 걸음도 천천히 걷고, 출발시간에도 화장실에 가는 등 시간을 지킨다는 생각을 잘하지 않습니다. 시간을 지킨다는 게 그분들에게는 없는 개념입니다. 그걸 가리켜 ‘인디언 타임’이라고 하기도 하는데, 우리도 과거 시골에서는 ‘코리안 타임’이라고 해서 시간에 맞춰서 무언가를 한다는 개념이 별로 없었습니다. 그저 되는대로 진행을 할 뿐이었죠.
인도에서 오신 분들은 전통적으로 생활을 그렇게 하다 보니 여전히 그런 문화가 남아 있습니다. 반면 우리는 서양문화를 받아들여서 요즘은 모든 일을 시간에 맞춰서 진행을 합니다. 좋게 보면 이런 문화가 우리 사회를 빠르게 발전시킨 원동력이기도 했습니다. 대신 그러다 보니 아무래도 마음이 서두르게 되고, 마음이 서두르게 되면 들뜨게 되고 불안해지죠. 말소리가 커지거나 빨라지게 되고, 또 몸이 바빠집니다. 그런 점에서 이런 문화가 괴로움의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이런 문화가 괴로움이 되지 않으면 괜찮은데, 만약 이런 문제로 인해 괴로움이 생긴다면 우리의 생활을 돌아보고 필요하다면 속도를 조금 늦추고 긴장을 내려놓고 생활을 해야 합니다.”
내일 읽게 될 경전 문구도 읽어보았습니다.
“자신만이 자신의 의지처이고
자신만이 자신의 안내자이니
자신을 잘 보살펴라.
말장수가 준마를 보살피듯.”
이 구절에 대해서도 스님이 법문을 해주었습니다.
“부처님의 말씀 중에 ‘남에게 의지하지 말고 자신에게 의지하라’ 이 말씀은 가장 중요한 가르침 중 하나입니다. 또한 ‘법 아닌 것에 의지하지 말고 법에 의지하라’ 하는 말씀도 있습니다.
'남을 등불로 삼지 말고 자신을 등불로 삼으라. 법 아닌 것을 등불로 삼지 말고 법을 등불로 삼으라.'
이 말씀을 ‘자등명 법등명(自燈明法燈明) 자귀의 법귀의(自歸依法歸依)’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자신만이 자신의 의지처이고, 법만이 우리의 의지처입니다. 그러니 남에게 의지하지 말고, 법 아닌 것에 의지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자신에게 의지하라는 자기 마음대로 살라는 의미가 아니라 남에게 의지하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남에게 의지하게 되면 결국 남 탓을 하게 됩니다. 남 탓을 하지 말고 자신의 마음을 자신이 잘 보살펴야 합니다.
자신만이 자신의 인생에 진정한 안내자입니다. 남의 안내를 따르다가 행여 그 사람이 잘못되면 나 또한 잘못됩니다. 그러면 남 탓을 하기가 쉽습니다. 그러니 말장수가 말을 잘 보살피듯이 늘 스스로 자신의 마음을 잘 보살펴야 합니다.
이 경전 문구를 읽으면서 우리의 삶을 다시 한번 돌아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삶을 물질적인 성과에 비추어 평가하기가 쉽습니다. 주로 돈을 얼마나 벌었는지, 얼마나 출세했는지로 평가를 많이 하죠. 설령 부정하게 돈을 벌었다고 하더라도 돈만 벌면 성과가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과정을 무시하는 일이 생깁니다. 또 설령 타인을 짓밟고 올라갔다 하더라도 출세만 하면 성공했다고 평가를 합니다. 그 과정에서 자신에게 상처를 입히고, 타인에게 해를 끼치더라도 결과만 달성되면 성공한 것으로 평가를 합니다.
그러나 부처님의 가르침은 그렇지 않습니다. 과정을 소중히 여깁니다. 목적지에 도달하는 과정에서 자신이 괴롭지 않았는지, 자신을 해치지 않았는지, 또 타인에게 손해를 끼치지 않았는지를 살핍니다. 타인의 불행 위에 자신의 행복을 쌓는 삶은 수행자가 가야 할 길이 아닙니다. 수행자는 매 순간의 과정을 중요시 여겨야 합니다. 결과에 대해서는 최선을 다하되 너무 연연하지 말아야 합니다.
농구 선수가 연습을 할 때는 공이 골대에 들어가든 안 들어가든 정성을 다해서 던집니다. 그렇게 30분을 연습하게 되면 일단 운동이 됩니다. 공이 골대에 몇 번 들어갔느냐를 따지기 전에 우선 그 선수는 30분 동안 운동을 하게 됩니다. 그렇게 꾸준히 운동을 하게 되면, 첫째, 본인의 건강에 좋고, 둘째, 공도 골대 안으로 들어갈 확률이 조금씩 높아집니다. 그런데 우리는 연습을 하지 않고 골대 안에 공이 많이 들어가기만을 바랍니다.
하루하루의 삶이 좋아야 합니다. 좋아야 한다는 게 들뜨는 세상의 즐거움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삶이 괴롭지 않아야 하고, 보람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것이 누적되어서 자신의 삶을 돌아봐도 좋고, 미래를 내다봐도 불안하지 않아야 합니다. 이런 삶을 사는 것에 가치를 둬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돈을 얼마나 가지고 있는지, 지위가 얼마나 높은지, 인기가 얼마나 많은지, 이런 것으로 자꾸 자신의 삶을 평가하게 되면, 그것을 이루었다고 교만해지고, 그것을 이루지 못했다고 비굴해집니다. 결국 나도 남도 괴롭히는 결과를 초래하게 됩니다.
하루하루의 삶에 만족하고, 그것이 쌓여서 결과도 좋아지면 더욱 좋은 겁니다. 다만 수행자는 최선을 다하되 결과에 연연하지 않아야 합니다. 또 최선을 다해서 살아가면 결과가 나쁠 수가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경전을 한 번 더 읽은 후 천일결사 기도 법문을 마쳤습니다.
두북 공동체 대중은 각자 맡은 구역을 청소한 후 6시 40분부터 발우공양을 했습니다.
발우공양을 마치고 스님은 곧바로 작업복을 입고 아궁이에 불을 지폈습니다. 고추를 방 안에 널어 두었는데 온기가 부족해서 고추가 잘 마르지 않고 있었습니다.
“방에 불을 뜨겁게 때어서 고추를 바짝 말려야겠어요.”
아궁이에 불이 활활 타오르자 스님은 비옷을 챙겨 입었습니다. 밖에는 가을비가 부슬부슬 내렸습니다. 행자님 두 명과 함께 산 아래 밤나무 숲으로 향했습니다.
“오늘도 밤을 주웁시다.”
비가 내려서 그런지 알밤 채로 땅에 떨어진 게 많이 보였습니다.
빗방울을 머금은 알밤의 색깔이 평소보다 고와 보였습니다.
“아이고, 어제보다 밤이 더 많이 떨어져 있네요. 이 밤나무가 제법 큰 밤나무인데 굵은 알밤이 많이 떨어졌어요.”
알밤을 집게로 집어서 바구니에 담았습니다. 알밤을 집는 스님의 손동작이 아주 빨랐습니다. 순식간에 바구니가 채워져 갔습니다.
어제처럼 스님이 밤송이를 곳곳에 모아두면 행자님들이 껍질을 까는 일을 했습니다. 스님이 군데군데 모아둔 밤송이만 껍질을 까도 두 바구니가 가득 찰 것 같았습니다.
어제 구해 놓은 평평한 돌을 그대로 활용하여 밤송이를 발로 문대고 알밤을 꺼냈습니다. 점점 노하우가 쌓여서 알밤 까는 솜씨가 일취월장하고 있습니다.
밤을 줍는 동안 비가 세차게 내리다가 멈추기를 반복했습니다. 빗물이 나뭇잎에 부딪히는 소리가 아주 크게 들렸습니다.
비가 내리든 말든 모두 밤 줍는 재미에 흠뻑 빠졌습니다.
“오늘 제일 많이 주운 것 같네요.”
보통은 바구니 하나만 채웠는데, 오늘은 바구니 세 개가 가득 찼습니다.
바구니가 너무 무거워서 어떻게 들고 갈지가 걱정이었습니다. 스님은 잠시 연구를 하더니 수레에 바구니를 쌓고 튼튼하게 끈으로 고정시킨 후 혼자서 산을 내려왔습니다.
“여러분들은 밭에 고춧잎을 좀 훑어서 와주세요.”
오늘 수확한 알밤을 커다란 고무 대야에 모두 부었습니다.
“이것 보세요. 정말 많이 주웠죠?”
고무 대야에 물을 가득 붓고 2시간 동안 알밤을 담가 두기로 하고 점심 식사를 했습니다.
식사를 한 후 오후부터는 추가로 네 명의 행자님들이 밤 줍기 지원을 나왔습니다. 스님은 행자님들을 데리고 산으로 올라갔습니다.
“자, 저를 따라오세요. 어디에 큰 밤나무가 있는지 자세히 알려줄게요.”
계곡을 오르다가 대나무 숲을 만났습니다.
“여기는 아직 밤이 많이 안 떨어져 있네요. 산 위 쪽으로 더 올라가 봅시다.”
산으로 계속 올라가다 보니 큰 밤나무가 나타났습니다.
각자 밤을 한 움큼씩 줍고, 산 옆으로 난 길을 따라 걸어가 보았습니다.
“이 나무도 정말 큰 밤나무예요. 알밤이 진짜 굵죠. 이걸 대밤이라고 해요.”
자잘한 알밤을 줍다가 큰 알밤을 보자 행자님들은 갑자기 눈이 커졌습니다.
“우와, 진짜 크네요. 밤 줍는 재미가 있어요.”
다시 비가 세차게 내렸습니다.
“고개 넘어가면 또 밤나무가 있어요. 그러나 오늘은 비가 많이 와서 그만하겠습니다.”
오늘은 가장 많이 밤을 주운 날인 것 같습니다.
각자 주머니에 담은 알밤을 한 곳으로 모은 후 선물용 알밤을 분류하는 작업을 했습니다. 먼저 생밤 중에서 벌레가 먹지 않은 큰 것만 따로 모았습니다.
다음은 벌레가 먹은 것을 모두 뜨거운 물에 삶았습니다. 화덕에 나무를 넣고 불을 지피자 물이 펄펄 끓었습니다.
삶은 밤 중에서도 다시 큰 것과 작은 것을 분류했습니다. 큰 것은 선물용으로 분류하고, 작은 것은 두북 공동체 식구들이 먹기 위해 따로 챙겼습니다.
“수고했어요.”
새벽부터 시작한 밤 줍기 울력은 해가 질 무렵 끝이 났습니다. 스님은 논으로 나가 우렁이를 풀어 주었습니다. 며칠 전 동네 어르신이 우렁이를 주었기 때문입니다. 저수지 물이 논으로 내려오기 때문에 저수지에도 우렁이를 풀어주고, 논에도 우렁이를 풀어 주었습니다.
해가 지고 저녁 8시 30분에는 통일특별위원회 운영위 회의를 했습니다. 온라인정토회 정식 출범 이후 누구를 통일특위 지회장으로 할지 후보 추천을 한 후 회의를 마쳤습니다.
내일은 땅콩을 수확하는 날입니다. 하루 종일 농사일을 하고, 저녁에는 온라인 일요 명상을 생방송할 예정입니다.
전체댓글 44
전체 댓글 보기스님의하루 최신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