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1.8.20 금요 즉문즉설 대강연, 정토대전 회의
“애정 없는 결혼생활, 결국 제가 외도를 했습니다”

안녕하세요. 두북 수련원의 아침이 밝았습니다. 오늘은 오전과 저녁, 두 번에 걸쳐서 금요 즉문즉설 온라인 강연을 하는 날입니다.


새벽 기도와 명상을 마치고 해가 막 뜨기 시작할 무렵 밭으로 나갔습니다. 스님은 제일 먼저 논둑으로 가서 낫으로 풀을 베고, 배수가 잘 되고 있는지 점검했습니다.

“논둑 안에도 물이 차 있고, 논둑 밖에도 물이 차 있으니까, 논둑이 물에 젖어서 물렁물렁해졌어요. 그래서 물꼬를 산 쪽으로 다 빼는 것으로 조정을 해야겠습니다.”

논둑에 물꼬를 조정하는 일은 해질녘에 하기로 하고 밭으로 향했습니다.

행자님들은 앞밭에 가을배추 모종을 심었습니다. 어제 밭 윗단에 모종을 다 심고 나서 모종이 더 남았습니다. 오늘은 아랫단에 남은 모종을 마저 심었습니다.



행자님들이 모종을 심는 동안 스님은 밭 주변에 자란 풀을 낫으로 베었습니다.

어제 배추 모종을 심은 윗단에는 울타리 주변에 풀이 많이 자라 있었습니다.

“여기는 예초기를 한번 돌려야겠어요.”

스님은 낫을 내려놓고 예초기를 등에 메었습니다.

그런데 넝쿨이 자꾸 예초기에 감겼습니다.

“숫제 낫으로 베는 게 더 낫겠습니다.”

다시 낫을 들고 바닥에 뻗어 있는 넝쿨과 울타리 그물망에 얽혀 있는 넝쿨을 걷어 내었습니다.


다시 예초기를 매고 산 밑밭으로 가는 길을 정비하고, 농막 주변과 비닐하우스 주변도 깨끗이 예초를 한 후 아침 울력을 마쳤습니다.


스님의 작업복은 오늘도 땀으로 흠뻑 젖었습니다.

“자, 이제 발우공양하러 갑시다.”

두북 수련원으로 돌아와 오전 9시부터 발우공양을 했습니다.

어제 스님이 제안한 대로 말석에 앉은 사람이 바쁘지 않도록 상석에서부터 청수, 밥통, 국통을 직접 떠서 내리고, 찬상을 다 먹고 내릴 때도 찬상 앞에 앉은 사람이 직접 찬상을 들고 뒷자리로 이동시켰습니다. 발우공양을 마치고 스님이 한 말씀을 해주었습니다.

“내일부터 비가 온다고 하니까 전체적으로 물건들이 안전하게 잘 놓여 있는지 한 번 살펴봐 주시기 바랍니다. 혹시 비가 많이 올 수도 있으니까 해질녘에는 논둑에 물꼬를 좀 조정합시다.”

발우공양을 마치고 오전 10시부터 금요 즉문즉설 온라인 강연을 시작했습니다. 매주 금요일에는 저녁마다 즉문즉설을 했는데, 오늘은 특별히 낮에 즉문즉설 하는 시간을 마련했습니다.

5400여 명의 시청자들이 생방송에 접속한 가운데 스님이 인사말을 했습니다.

“반갑습니다. 코로나 팬데믹 상황이 시작된 이후로 저는 일 년 반 가까이 국내와 해외 순회강연을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난 4월부터 매주 금요일 저녁마다 온라인 즉문즉설로 여러분을 만나고 있는데요. 낮 시간에도 온라인 즉문즉설이 이루어지면 좋겠다는 의견이 많았어요. 직장인들에게는 저녁 시간이 좋지만, 비교적 낮 시간에 여유가 있는 주부들과 한국의 저녁 시간이 현지 시각으로는 새벽이 되는 해외 거주자들에게는 오전 시간이 좋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낮 시간에 온라인 즉문즉설을 시작해보았습니다. 오전 시간에도 불구하고 많이 참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어서 즉문즉설은 어떤 강연인지 간단히 설명한 후 질문을 받았습니다. 네 명이 사전에 질문을 신청하여 스님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중 한 명은 애정 없는 결혼생활을 유지하다가 결국 외도를 하게 되었고 남편과는 별거 중이라며 앞으로 어떻게 살면 좋을지 질문했습니다.

애정 없는 결혼생활, 결국 제가 외도를 했습니다.

“저는 철 모를 때 아무것도 모르고 결혼을 해서 10년 동안 애정 없는 결혼 생활을 유지했습니다. 직장 때문에 주말부부 생활을 하다가 결국 제가 외도를 했습니다. 아이가 크면 이혼을 하자고 합의하고 계속 별거 상태로 지내고 있습니다. 이혼도 못하고 같이 사는 것도 아닌 어정쩡한 사이입니다. 아이는 제가 키웠고 이제 스무 살이 넘었습니다. 저는 노년인 지금에서라도 따뜻한 사람을 만나서 살아보고 싶은데, 지금이라도 이혼하는 것이 늦은 것인지, 아니면 팔자려니 하고 지금 상태로 살다가 죽어야 하는지, 스님께 여쭤보고 싶습니다.”

“그걸 스님한테 물어보면 어떡합니까. 스님은 질문자보다 나이가 더 많은데도 이렇게 혼자 사는데요. 혼자 사는 데에는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웃음)

질문자는 애정이 있든지 없든지 간에 그래도 결혼생활을 10년이라도 해서 자식도 낳아보았잖아요. 그런데 무슨 인생의 한이 되어요? 저는 한 번도 결혼생활을 못해봤고 자식이 없는데도 인생을 후회하지 않는데요. 그러니 그냥 그렇게 살아도 아무 문제가 없어요. 자꾸 남을 쳐다보면서 ‘저 부부는 평생 같이 살았는데, 나는 10년밖에 같이 못 살았다’, ‘저 사람들은 서로에게 애정을 주고받으며 살았는데, 나는 애정 없이 살았다’ 이런 생각을 하기 때문에 괴로운 겁니다. 오히려 이렇게 생각해 보세요.

‘법륜스님처럼 결혼도 못해보고 자식도 없는 사람도 있는데, 그래도 나는 결혼도 해보고, 자식도 낳아봤다. 그러니 내가 뭐가 문제냐. 나는 얼마든지 행복하게 살 수 있다.’

이렇게 관점을 잡고 살면 지금의 생활에도 만족하며 살 수가 있습니다. 질문자의 조건이 변해서가 아니라 질문자가 스스로 자신의 조건에 불만을 가지면서 자신을 불행하게 만들고 있는 거예요. 우선 질문자는 지금 이대로 살아도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과 함께 살아보고 싶다면 함께 살아도 됩니다. 남을 해치는 것도 아니고, 남의 물건을 빼앗는 것도 아니고, 강제로 남을 성추행하는 것도 아니고, 욕설하고 남을 속이는 것도 아니니까요. 자신이 원하고 또 상대도 그렇게 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면 함께 살아도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그것은 나이와도 관계가 없어요.

그런데 질문자처럼 법적으로 결혼 상태인데 다른 사람과 같이 살게 되면 소송을 당할 위험이 있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별거 상태가 오래되어서 지금 다른 사람과 연애를 한다고 해도 크게 문제가 될 것 같지는 않아요. 왜냐하면 이미 사실상 혼인관계가 아니기 때문에 간음 행위라고 판사가 판결을 내리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현재 법적으로 혼인 상태이긴 하기 때문에 소송을 당할 가능성은 있어요. 그래서 먼저 이혼을 해서 법적 관계를 정리하고 다시 결혼을 하던가 동거를 하는 게 좋습니다. 결혼을 하고 싶다면 결혼을 하고, 결혼을 안 하고 파트너와 편하게 지내고 싶다고 하면 그냥 동거를 하면 되죠.

그런데 이혼을 하기 위해서는 상대방이 동의를 해줘야 합니다. 만약 그게 어렵다면 20년 이상 별거를 했기 때문에 사실상 혼인관계는 파탄이 났다고 볼 수 있어요. 그래서 법원에 이혼 소송을 제기하면 됩니다. 일단 이혼을 한 후에 연애를 하든지 결혼을 하든지 하면 됩니다. 그런데 연애든 결혼이든 상대가 있어야 하는 거잖아요. 대화가 되는 사람이 생기면 누구나 사람을 사귀거나 결혼할 권리가 있으니까 질문자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선택을 하면 됩니다.

조선 시대에는 여성들의 재혼을 금지했잖아요. 이런 관습들은 갑오개혁 때 폐지가 되었습니다. 벌써 100년이 훨씬 넘은 일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지금은 재혼이 흉이 되지 않은 사회잖아요. 사실상 결혼 관계가 이미 깨졌다면 이혼을 하면 됩니다. 법적으로 부부 관계로 묶여있어야 한다는 발상은 시대에 뒤떨어진 생각이에요. 이혼을 하고 나서 재혼을 하거나, 혼자 살면서 좋은 사람을 만나서 연애를 하는 것은 질문자에게 주어진 권리입니다. 인생에서 늦었다는 것은 없어요. 80세에도 이런 생활을 선택할 수 있을뿐더러, 요즘같이 100세 시대에는 60대 정도밖에 안 된 질문자의 경우 앞으로 살아갈 날이 많습니다. 그러니 늦었다고 포기할 필요가 없어요. 질문자가 원하면 그렇게 살면 됩니다.

자녀가 미성년자일 때에는 자녀를 고려할 필요가 있지만, 질문자의 딸은 스무 살이 넘었으니 고려할 필요가 전혀 없는 거예요. 부모로서 자녀를 위해 해야 할 일은 끝났다고 볼 수 있기 때문에 자녀에게 질문자의 선택에 대해 의견을 물어보지 않아도 됩니다. 의논 정도는 할 수 있겠지만 그렇게 하지 않아도 윤리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물론 자식들은 그들의 필요에 의해서 어머니의 재혼을 반대할 수는 있어요. 그것은 이해관계에 해당하지 도덕적으로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자식도 성년이 되었고, 별거 생활도 오래되었기 때문에 이제 법적으로 이혼을 하고 싶다면 그렇게 하면 됩니다.

그냥 별거 상태로 놔두고 연애를 해도 되는데 이것은 현행법에서 소송을 받을 수가 있어요. 옛날 같으면 형사소송을 받았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개인 관계에 국가권력이 관여할 일이 아니라고 해서 형사소송의 대상은 아니에요. 그런데 혼인을 약속해 놓고 일방적으로 파기해서 상대가 정신적으로 고통을 겪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에 손해배상을 요구할 수 있는 민사소송의 대상이 됩니다. 이런 것을 고려해 볼 때 이혼을 하고 나서 자유롭게 연애를 하는 게 더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이대로 살아도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그런데 저것도 한번 먹고 싶다면 먹는 것도 아무 문제가 안 됩니다. 그러니 먹고 싶은 것을 드시라는 얘기예요. 만약 그게 어렵다면 지금도 아무 문제가 없어요.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아요.”

“그런데 이제 나이를 먹으니까 좋은 남자를 만나기가 어렵습니다. 좋은 남자는 다 임자가 있더라고요.”

“그걸 말이라고 해요. 그 나이에 왜 좋은 남자를 찾아요. ‘남자면 됐다’ 이렇게 생각을 해야지요.” (웃음)

“그냥 혼자 살래요. 하하.”

“남자를 만나야지 했는데 남자를 못 만나면 그게 또 괴로움이 됩니다. 이대로도 좋다고 생각해야 해요. 그렇다고 해서 ‘절대 안 만난다’ 이렇게 정할 필요도 없습니다.

‘이리저리 만나 보다가 좋은 사람 있으면 연애하고, 또 마음이 맞으면 재혼한다.’

이렇게 인생을 열어놓고 살아야지 ‘이래야 된다’, ‘저래야 된다’ 이렇게 생각하고 살면 그렇게 안 됐을 때 괴로워집니다. 그래서 제가 처음부터 이대로도 아무 문제가 없다고 말씀드렸잖아요.

연애를 해보고 싶다면 해도 됩니다. 그러나 사회적 약속이 있으니까 남편과는 혼인을 정리하는 게 좋습니다. 죽은 뒤에 복잡하지 않을까 걱정을 하는데 죽은 뒤에는 풀밭에 묻히든, 길거리에 버려지든, 화장을 하든, 죽은 시신을 어떻게 처리하든, 나와는 아무 관계가 없는 일이에요. 그건 다 산 사람들의 문제니까 죽은 사람이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이후 세 명의 질문자들과 대화를 더 나눈 후 마지막으로 스님이 한 줄 소감을 물어보았습니다. 남편과 별거 중인 상황을 질문한 분도 소감을 이야기했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이렇게 살든 저렇게 살든 아무 문제가 없다고 말씀해 주셔서 마음에 많은 위안이 됐습니다. 그동안 혼자서 계속 살아온 사람보다 결혼생활을 했다가 혼자서 사는 것이 저는 굉장히 힘들었습니다. 직업이 전문직이어서 경제적으로는 그다지 힘들지 않았는데 아이 키우는 것도 힘들고 또 많이 외로웠어요. 그런데 이제 앞으로는 남의 눈치 안 보고, 체면 같은 것도 안 따지고, 그냥 제가 살고 싶은 대로 살아 보겠습니다.”

스님은 다시 한번 질문자를 위해 한 말씀을 해주었습니다.

“살고 싶은 대로 사는 건 좋은데, 남을 때리거나, 남의 물건을 훔치거나, 싫다는 남자를 막 껴안거나, 이러면 안 돼요. 오계를 지키는 범위 안에서는 다른 사람 눈치 보지 말고 마음껏 사세요. 체면 같은 건 따질 필요가 없어요. 질문자가 지금 재혼을 하거나 다른 사람을 사귀는 것은 도덕적으로 비난받거나 범죄를 저지르는 일이 아니에요. 그러나 부인이 있는 남자를 사귄다면 그 여자에게 고통을 주고 비난도 받게 되니 그런 것만 조금 유의를 하면 나머지는 자기 권리를 충실히 지키면서 행복하게 사시면 됩니다.”

“네. 고맙습니다.”

11시 30분에 생방송을 마쳤습니다. 스님은 곧바로 복도를 이동해 수련실에서 정토대전 경전팀 법사님들과 회의를 했습니다.

오늘은 지난 회의에 이어서 법화경 중에서 정토대전에 넣으면 좋을 내용을 각자 준비해 와서 발표했습니다. 방편품, 비유품, 약초유품, 관세음보살 보문품, 화성유품, 오백 제자 수기품, 여래 수량품을 함께 읽고 스님의 점검을 받았습니다.

오후 3시에는 경전대학 학사과정 개편에 대해 공동체 법사단과 온라인 화상회의를 했습니다.

지금까지는 금강경과 반야심경을 스님이 해설해주는 내용으로 강의가 구성되어 있었는데, 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개편할지, 기존의 강의를 대폭 보완할지, 여러 가지 쟁점이 제기되었습니다. 한 시간 동안 회의를 한 후 스님이 정리 말씀을 해주었습니다.

“오늘 결론을 내기는 어렵겠어요. 다음 주부터 공동체 법사단 회의를 할 때 1시간은 경전대학 교과에 대해 논의하고, 1시간은 현안 논의를 하는 것으로 일단 진행해 봅시다.”

회의가 끝난 후 스님은 다시 논으로 나갔습니다. 아침에 이야기한 대로 물꼬를 산 쪽으로만 흐르게 하고, 수로 쪽에 물꼬는 물을 다 빼는 작업을 했습니다.

스님이 고안해 낸 농사용 물을 확보하는 방법은 전기 에너지를 사용하지 않고 저수지에 있는 물을 낙차를 이용해 논과 비닐하우스에 공급하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저수지에 있는 물이 논에 들어갈 수 있게 수로를 잘 만들어야 합니다.

스님은 먼저 저수지의 물이 논으로 흘러나오는 곳에 가서 흙으로 막혀 있는 부분을 삽으로 뚫었습니다.

“여기에 흙을 퍼내면 저수지의 물이 논으로 흘러 들어갈 수 있어요.”

산 쪽으로 나 있는 물꼬는 아랫논까지 계속 흘러갈 수 있게 그대로 두고, 수로 쪽으로 흘러가는 물꼬는 물이 빠져나가지 못하게 삽으로 둑을 쌓아서 막았습니다.


그리고 반대편으로 가서 수로 쪽으로 난 물꼬는 둑을 허물고 물이 빠져나가게 했습니다.

“여기는 물이 다 빠지고 나면, 내년에는 둑을 허물고 땅을 넓혀서 수로 바로 앞까지 벼를 심으면 좋겠어요.”

다음은 아랫논으로 내려가 보았습니다. 윗논에서 아랫논으로 물이 잘 흘려내려가고 있었습니다.

“여기도 수로 쪽으로는 둑을 쌓아서 막고, 산 쪽으로만 물이 흘러내려가게 합시다.”

행자님이 삽으로 물꼬를 막는 동안 스님은 반대편으로 가서 둑을 허무는 작업을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아랫논에서 비닐하우스로 내려가는 물꼬에 물이 잘 흐르도록 보수 공사를 했습니다.


“이렇게 하면 비닐하우스 옆으로 난 배수로에 물이 많이 내려가게 되는데, 그건 뭐 어쩔 수 없을 것 같네요.”

논둑 정비를 다 하고 나니 해가 산 너머로 지고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저수지에 물이 얼마나 많이 찼는지 올라가 보았습니다.

“며칠 비가 오더니 물이 많이 모였네요. 산에서 내려오는 물이 이곳에 모이는 겁니다. 농사지을 때 지하수를 사용하려면 전기 에너지를 사용해야 하는데, 이 물은 자연적인 물이어서 차갑지도 않고 작물에 주기에는 좋은 물이에요.”

해가 지자 금방 달이 떠올랐습니다.


저녁 7시 30분부터는 직장인들을 위한 금요 즉문즉설 온라인 강연을 시작했습니다. 저녁 강연에는 5800여 명의 시청자들이 생방송에 접속했습니다.

스님은 즉문즉설이 무엇인지 간단하게 소개했습니다.

“지식은 아무리 많다고 해도 괴로움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디다. 그것이 불교에 대한 지식이든, 기독교에 대한 지식이든, 과학에 대한 지식이든 마찬가지입니다. 집착, 즉 사로잡힘에서 벗어나야 괴로움이 사라지게 됩니다. 어떤 한 생각을 꽉 부여잡고 있는 사로잡힘에서 벗어나면 누구든지 다 번뇌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있습니다. 그가 기독교인이든 불교인이든 이것과는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기독교인도 사로잡힘에서 벗어나면 번뇌가 사라지고, 불교인도 불교라는 것에 사로잡혀 있으면 번뇌가 생겨나는 거예요. 남녀노소, 종교, 인종, 국가, 이런 것과는 아무 관계없이 누구나 다 대화 중에 내가 집착하고 있다는 것을 자각하게 되면 번뇌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 즉문즉설입니다.

자각을 통해 번뇌를 소멸시켜 나가는 대화

그래서 즉문즉설을 통해 제가 여러분을 깨닫게 해주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그저 거울과 같은 역할을 할 뿐입니다. 거울이 어떤 그림을 그리지는 않잖아요. 그러나 무엇이든지 오면 비춥니다. 아무것도 오지 않으면 아무것도 비추지 않고, 만 가지가 오면 만 가지를 다 비춥니다. 여러분이 어떤 모습이든 거울은 그 모습을 탓하지 않고 다만 비출 뿐입니다. 그리고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것도 아닙니다. 자기가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을 보고 ‘어, 여기 뭐가 묻었네’ 이렇게 자각하고 자기를 스스로 다듬어 가는 거예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저와 대화를 하다가 자각이 일어나면 번뇌가 사라지고, 대화 중에 자각이 일어나지 않으면 번뇌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또 여러분들 중에 관중으로 구경하다가 남이 얘기하는 것을 보고도 자각이 일어나면 번뇌가 사라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각이 일어나지 않으면 번뇌가 사라지지 않습니다. 좌선을 하고 있더라도 사로잡힘이 있으면 번뇌로부터 벗어날 수 없고, 길을 가더라도 자각이 일어나면 번뇌로부터 벗어날 수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대화를 할 때는 진솔하게 해야 됩니다. 어떤 지식을 논하거나, 논쟁을 하거나, 가식적으로 얘기하면, 자각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편안한 가운데 무엇이든지 있는 그대로 드러낼 때 자각이 일어날 확률이 높아집니다. 그래서 즉문즉설을 할 때는 어떤 내용으로 대화를 해야 한다는 소재에 있어서 제한이 없습니다. 대화를 하고자 하는 사람은 자기가 지금 갖고 있는 괴로움, 번뇌, 고민을 그냥 친구가 친구에게 얘기하듯이 말하면 됩니다. 그러니 편안하게 얘기해주시기 바랍니다.

진정한 복은 번뇌가 사라지는 것

또 듣는 분들도 다른 생각을 하면서 들으면 자각이 안 일어납니다. 대화에 온전히 집중을 해야 자각이 일어날 수 있어요. 그래서 다른 사람이 얘기하는 걸 듣고 자각이 일어나는 것을 두고 ‘파편이 튀어서 복을 얻는다’ 이렇게 표현하기도 하는데, 남이 하는 얘기를 옆에서 듣고 있는 중에도 깨달을 수 있다는 겁니다. 돈을 버는 것이 복이 아니고, 지위가 높아지는 것이 복이 아니고, 번뇌가 사라지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어서 사전에 질문을 신청한 네 명이 스님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한층 얼굴이 밝아진 질문자들의 한 줄 소감을 듣고, 화상회의 방에 입장한 방청객들의 소감도 함께 들어본 후 생방송을 마쳤습니다.

내일은 새벽에 천일결사 기도를 한 후 오전에 경전대학 졸업식을 온라인으로 진행하고, 오후에는 공동체 지부 공청회에 온라인으로 참석할 예정입니다.

행복한 대화에 초대합니다.

다양한 인생, 행복에 관한 대화
법륜스님 즉문즉설에 많은 참여 바랍니다.

질문접수
https://url.kr/3fboew

방청접수
https://url.kr/d1mz59

생방송시청
https://www.jungto.org/pomnyun/tal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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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댓글 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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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각

제 모습에 반성을 하게되네요
뭘 해야겠다는 생각을 내려놓고,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고, 놓아버리고 그냥 살아야겠다싶네요
정해놓기보다.. 감사합니다 스님

2021-08-26 20:31:19

이의수

사로잡혀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항상 깨어있는 연습을 하겠습니다

2021-08-24 13:28:18

성대

감사힙니다

2021-08-24 09:3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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