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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오늘 하루 종일 울산 자재요양병원, 부산 중생사, 지적장애인 거주시설 거제 애광원에 농산물을 배달하고 왔습니다.
오늘 스님은 오랜만에 법회나 회의가 없는 날이라 농산물을 배달하기로 했습니다. 얼마 전에 수확한 감자, 양파를 크고 좋은 것만 모아 포장을 해두었습니다. 새벽예불과 천일결사 기도를 마치고 짐을 싣고 7시에 막 출발하려는데 깜빡하고 나눠줄 김치를 빠트린 게 생각났습니다. 저온고에서 김치를 가져와 트럭에 싣고 8시가 다 되어 자재요양병원으로 출발했습니다.
“언양 자재요양병원에 갔다가 부산 중생사, 그리고 거제 애광원에 들러서 다시 언양으로 갑시다.”
8시 30분 즈음 정토마을 자재요양병원에 도착했습니다. 스님은 차에서 내리자마자 앞치마를 하고 짐을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감자, 양파, 야채와 김치, 미역, 쌀을 내렸습니다.
곧 요양병원에서 스님, 거사님들이 나와서 함께 짐을 옮겼습니다.
“스님, 내려오십시오. 저희가 하겠습니다.”
“괜찮습니다. 제가 하겠습니다.”
짐을 다 내리고 자재요양병원 원장 능행스님을 뵙고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스님, 더 건강해 보이시네요.”
“시골 내려와서 농사짓고 사니까요.”
“스님 같은 분이 시골에 계시면 어떡합니까. 아니, 손도 다치셨네요.”
“일하다 보니 그렇게 되네요. 깁스해서 괜찮아요.”
잠시 안부를 나누고 다시 트럭에 올랐습니다.
“스님, 정말 고맙습니다. 환자들과 잘 먹겠습니다.”
“그래요. 잘 지내요. 또 가져올게요.”
이제 트럭은 부산으로 향했습니다.
부산에 들어서니 고층건물들이 앞 다투어 하늘로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이야, 저것 보세요. 이렇게 집이 많은데 왜 집 없는 사람이 많을까요? 정말 문제예요.”
고층건물을 볼 때마다 스님은 낮은 탄식을 내뱉았습니다.
도로 옆으로 펼쳐진 파란 바다를 지나 도문 큰스님이 계신 천마산 중생사에 도착했습니다.
2층 공양간까지 여러 번 오르내리며 야채 상자를 옮기고 도문 큰스님을 친견했습니다. 삼배로 인사를 드리고 무엇을 가져왔는지 말씀드렸습니다.
“큰스님, 이번에 아도모례원에서 캔 감자와 두북에서 캔 감자 두 종류를 가져왔습니다. 드셔 보시고 어느 게 더 맛있는지 말씀해주세요. 맛있는 걸로 더 가져다 드리겠습니다. 아삭이고추와 호박도 참 맛있습니다.”
“법륜스님, 너무 고마워요. 감사해요. 누가 병들고 늙고 쓸모없는 은사를 찾아오겠습니까? 법륜스님처럼 세계적인 인물이 그 바쁜 가운데 직접 농사를 지어서 그래도 스승이라고 계속 감자도 보내고 상추도 보내주니 참으로 고마워요.”
“스님, 그럼 가보겠습니다. 다음에 또 오겠습니다.”
“고마워요.”
중생사를 나와 바로 거제도로 향했습니다. 날씨가 화창하고 햇살이 뜨거웠습니다.
“아이고, 김치가 팍 익겠어요.”
김치가 걱정되어 휴게소도 들르지 않고 거제도까지 쉼 없이 달렸습니다.
도착하기 10분 전에 미리 애광원에 연락을 드렸습니다.
“가져온 농산물은 식당으로 내려드리면 되겠지요?”
“아닙니다. 입구에 내려놓으시면 저희가 옮길게요.”
“무거워서 안 돼요. 식당에 내려드릴게요.”
거가대교를 지나자 금세 애광원에 도착했습니다.
애광원에 도착해 식당 문 앞으로 가서 짐을 내렸습니다. 곧 애광원에 계신 선생님들이 달려와 함께 짐을 내렸습니다.
이번에도 감자, 양파, 각종 야채와 쌀, 미역, 김치를 내렸습니다.
“스님, 정말 고맙습니다. 잘 먹겠습니다.”
“김치가 오전 내내 트럭에 실려있었어요. 빨리 냉장고에 넣으세요.”
식당에 짐을 다 내리고 애광원을 설립하신 김임순 원장님을 뵙기 위해 애광원에서 운영하는 찻집, 윈드밀테라스로 갔습니다. 백세가 다 되신 김임순 원장님이 찻집 앞에 나와 스님을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스님, 오셨어요.”
“잘 계셨어요? 원장님 드실 야채는 따로 포장해왔습니다.”
“아유, 고마워요.”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윈드밀테라스에서 김임순 원장님을 비롯한 애광원 선생님들과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요새는 어떻게 지내세요?”
“매일 일하면서 잘 지내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 감자랑 양파를 수확해서 좀 가져왔습니다. 김치는 먹어보고 맛이 괜찮으시면 더 가져다 드릴게요. 너무 많이 줬다가 버릴까 봐 일부만 가져왔습니다.”
“저희는 다 잘 먹습니다. 점심 식사는 어떻게 하세요?”
“다 준비해왔습니다. 점심시간 전에 오려고 했는데 김치를 빠뜨려서 다시 싣느라 늦었어요. 밥시간에 오면 밉상인데 미안해요.”
“괜찮습니다. 아니, 손은 왜 다쳤어요?”
“일하다 보니 그렇죠. 금이 좀 갔는데 고정해놓으니까 일하는 데는 아무 지장 없어요. 이 정도 다쳤다고 일 못하면 굶어 죽죠.”(웃음)
잠시 이야기를 나누고 자리에서 일어섰습니다.
“원장님, 이제 가보겠습니다. 다음에 또 수확해서 오겠습니다.”
“고마워요.”
많이 가벼워진 트럭을 타고 다시 언양으로 출발했습니다.
돌아가는 길에 잠시 차에서 내려 바다 구경을 하며 김밥을 먹었습니다.
바다 가까이로 가보니 맑은 물결마다 햇살이 스며들어 일렁이고 있었습니다.
다시 트럭에 올랐습니다. 차창 밖으로 바다가 펼쳐졌습니다.
“바다 구경 실컷 하네요.”
바다를 보다 잠이 들었다 반복하는 사이 언양에 도착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들른 곳은 언양에 있는 어르신 댁이었습니다. 어르신은 얼마 전 창고 겸 축사에 불이 나서 소 세 마리가 불타 죽고, 저장해두었던 양식이며, 농기구가 불타버렸습니다.
“얼마 전에 감자랑 양파를 수확했는데 드셔 보세요.”
“아이고, 이런 걸 다 가져왔어.”
창고까지 농산물을 옮겨드렸습니다. 창고에는 보리쌀 포대가 쌓여 있었습니다.
“보리 찧으셨어요?”
“어제 찧었지. 장에 가져다 팔려고.”
허리가 90도로 굽으신 어르신이 무거운 보리쌀을 이고 지고 장에 간다는 말을 듣고 스님은 보리쌀을 다 사겠다고 했습니다.
“저희 식구가 많으니 보리를 다 사갈게요.”
“아이고. 고마워.”
아침과 달리 텅 빈 트럭에 보리쌀을 싣고 저녁 7시가 넘어 두북수련원으로 돌아왔습니다.
“오늘은 배달만 하다가 하루가 다 갔네요. 수고 많았어요.”
저녁에는 밀린 업무와 원고 교정을 보고 하루를 마무리했습니다.
오늘은 법문이 없었기 때문에 지난 20일에 있었던 영어 통역 즉문즉설 내용 중에서 소개하지 못한 내용을 소개하며 글을 마칩니다.
“I grew up my first 10 years in Communist Poland. I happened to have reacted to malnutrition which was endemic in communist countries especially after WWII by getting high triglyceride levels which saved my intelligence. But unfortunately, 26 years later I suffered a stroke which destroyed part of my brain. I’ve been retired for the last 4 years and exploring various sources of wisdom and during those 4 years I tried many ways to try to meditate and I was not successful and eventually my neurologist told me that the part of the brain that I need to meditate is just not working because of the stroke. I wanted to ask you what is the best way to access Buddhism as a source of wisdom without the ability to meditate.”
(저는 첫 10년을 공산국 폴란드에서 자랐습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공산 국가의 풍토병으로 영양실조를 겪었고, 26년 후 뇌졸중으로 뇌 일부 손상을 받았습니다. 은퇴 후 지난 4년간 다양한 지혜의 원천을 탐구했고, 다양한 명상을 시도했지만, 성공적이지 못했습니다. 신경과 의사는 명상에 필요한 뇌 일부가 뇌졸중으로 작동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제 질문은 명상을 할 수 있는 능력 없이 지혜로써의 불교에 접근할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이 무엇인가입니다.)
“그래도 지금 건강해 보입니다.”
“Thank you. I’m generally healthy and living in California. I have access to the world’s best research physician. So I hope to stay healthy for a long time.”
(감사합니다. 저는 캘리포니아에서 비교적 건강하게 살고 있습니다. 이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의사에게 진료를 받고 있습니다.)
“질문자는 지혜를 얻고 싶다고 말하지만, 제가 보기에 질문자는 고상한 지식을 얻고 싶어 하는 것 같습니다.”
“I don’t know whether if needs to refine because looking it other sources wisdom. I see that a lot of the wisdom available from the best philosophers is really very simple. However in trying to get some wisdom from Buddhism, I find that the first step is always learn to meditate which I can’t do.”
(지혜와 지식을 구분해야 할 필요성을 못 느낍니다. 왜냐하면 위대한 철학자로부터 얻는 지혜는 매우 간단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제 생각에 불교로부터 지혜를 얻기 위한 첫걸음은 명상인 것 같은데 제가 명상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질문드립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지혜는 아무것도 구할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얻을 것이 없다는 것을 아는 것이 최고의 지혜입니다. 그러므로 뇌기능의 일부가 파손이 된 것과 깨달음을 얻는 것과는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뇌 기능의 일부 때문에 깨달음을 얻는 데 장애가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지혜라는 이름으로 지식을 얻고자 하기 때문이에요. 철학이라고 하는 것은 논리적인 지식입니다. 질문자는 철학적인 지식을 얻으려고 하는 겁니다. 붓다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무것도 얻을 바가 없다는 것을 안다면 그것이 최고의 지혜이다’
왜냐하면 그 어떤 것도 나라고 할 것이 없고, 그 어떤 것도 내 것이라고 할 것이 없고, 그 어떤 것도 내가 옳다고 할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지식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 체험을 해야 합니다. 그래야 얻을 것도 없고 구할 것도 없다는 것을 자각하게 됩니다. 이것을 자각하게 되면 괴로움이 모두 사라집니다. 화날 일도 없어지고, 슬플 일도 없어지고, 두려워하거나 불안할 일도 없어집니다. 불안하거나 두려움이 일어난다면 그 이유는 ‘나’라는 것에 집착하거나 ‘내 것’이라는 생각을 붙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불교는 이런 관점에서 공부하는 것이기 때문에 질문자처럼 뇌기능에 손상이 있는 것이 지혜를 얻는데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습니다. 뇌기능의 일부가 손상된 것을 아쉬워하거나, 뇌기능에 문제가 없기를 바라면서 괴로워한다면, 그것 역시 집착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나이가 들었으면 나이가 든 대로, 병이 들었으면 병이 든 대로, 현재 주어진 상태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지혜입니다. 왜냐하면 주어진 상태를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해서 상황이 달라지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치료할 수 있으면 치료하면 됩니다. 치료가 안 되면 병이 든 상태 그대로 받아들이면 됩니다. 이런 상황에서 불안하거나 초조하거나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 불교 가르침의 핵심입니다.
질문자는 명상을 어떤 기술적이고 지식적인 관점에서 접근하기 때문에 ‘명상을 했는데 내가 원하는 바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OK. First of all I think, thank you for wisdom of what you have just communicated to me. I live in America. Everything in American culture is consider skill that one goes about learning including meditation. So the idea that its natural of discarding whether than acquiring. It’s certainly something that this going to me helpful to me. Thank you, your venerable.”
(지혜에 대해 말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살고 있는 미국의 문화에서는 무언가를 배운다는 것은 기술을 익힌다는 것으로 간주됩니다. 명상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했습니다. 무언가를 얻는 것이 아니라 버리는 것이라는 발상은 저에게 큰 도움이 됐습니다. 감사합니다.)
“제 이야기를 받아들이는 게 쉬운 일이 아닌데, 조금이라도 받아들여줘서 감사합니다. 정말 지혜로운 사람이라면 ‘늙으니 좋구나’ 이렇게 생각해야 합니다. 늙으니까 할 일도 없으니 얼마나 좋습니까. 명상할 때 천천히 걸으면서 동작을 알아차려야 하는데 늙으면 저절로 걸음이 천천히 걸어지니 좋잖아요. 젊을 때는 저절로 빨리 걸어져서 천천히 동작을 알아차리면서 걷기가 힘듭니다. 늙으면 저절로 천천히 걸어지니까 명상에 큰 도움이 됩니다. 이렇게 지금의 나의 상태에서 있는 그대로의 좋음을 발견하는 것이 불교의 가르침입니다.
기억에 손실이 생긴다는 것도 꼭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나이가 지긋하신 분이 기억을 많이 할 필요가 있습니까? 명상은 모든 기억과 생각을 내려놓는 것입니다. 뇌 기능의 손상으로 기억을 하지 못하는 것은 이런 면에서 좋은 현상입니다.
숨이 끊어지는 순간에도 ‘아, 이제 편안하게 잠들겠구나’ 하고 죽음을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명상입니다. 질문자가 부처님의 법을 제대로 만난다면 나의 지금 상태가 아주 좋은 상태라는 것을 자각하게 됩니다. 그때 다른 사람이 질문자를 보고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평가하게 됩니다. 늙어도 편안하고, 몸이 불편해도 편안하고, 기억을 좀 못해도 편안해야 합니다.
의사가 질문자의 건강을 염려하더라도, 질문자가 오히려 의사를 위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의사가 암이라고 진단을 하더라도 놀랄 필요가 없어요. ‘선생님, 수고하셨습니다. 드디어 발견하셨네요’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렇게 하면 주변 사람들이 질문자를 보고 나이가 들어도 참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평가할 겁니다. 지혜롭다는 말은 이런 뜻입니다. 무엇을 많이 알게 되는 것은 지혜가 아니라 지식에 해당합니다.”
“I’m really grateful for pointing out that the essence is to discard the things that cause suffering rather than acquire a skill in meditation the way American culture presents it. And that’s a deep insight I’m very grateful for.”
(핵심은 고뇌의 원인을 제거하는 것이지 미국 문화가 묘사하는 것처럼 명상의 기술을 얻는 것이 아니라는 깊은 통찰을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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