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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하루 종일 비가 내렸습니다. 두북 공동체 성원들은 오랜만에 농사일과 재활용 창고 일을 내려놓고 스님과 인근 지역 역사 탐방 겸 소풍을 다녀왔습니다.
새벽 기도와 명상을 마치고 곧바로 밭으로 나갔습니다. 행자들이 참을 먹고 준비를 해서 나오는 사이 스님은 대밭으로 가서 죽순을 뽑아왔습니다.
“올해 이상하게 죽순이 늦다고 했더니, 꽃이 펴서 대나무가 전부 죽어있었네요. 다른 곳에 가서 겨우 몇 개 뽑아왔어요.”
갓 따온 죽순의 겉잎을 한 두 잎만 남겨두고 다 딴 후 솥에 넣었습니다. 장작을 패고 화덕에 불을 지폈습니다.
“이 정도면 죽순이 푹 삶길 거예요.”
불을 활활 지펴놓고 비닐하우스로 갔습니다. 행자들도 나와 있었습니다.
“오늘은 하루 종일 비가 온다고 하니까 아침에 농사일을 끝내고, 다 같이 소풍을 갑시다.”
어제 첫 수확에 이어서 오늘도 비닐하우스 안에 심어둔 감자를 조금 더 수확하기로 했습니다. 감자 줄기를 베고 감자를 캐기 시작했습니다.
감자의 위치를 가늠하며 호미로 땅을 살살 팠습니다. 굵은 감자가 줄줄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순식간에 두 상자를 캤습니다.
무게를 재어보니 22kg이었습니다.
“아차, 화덕에 죽순을 삶고 있는데 보러 가야겠네요.”
“스님, 죽순은 언제 뽑으셨어요?”
“새벽에 뽑았죠. 불에 죽순 올려놓고 감자 캐러 온 거예요. 사이사이 일을 해야죠.”
스님은 급히 화덕으로 가보았습니다. 활활 타던 장작불은 약해져 있었습니다.
“조금 더 뜸을 들이면 되겠네요.”
솥뚜껑을 닫아놓고 텃밭으로 갔습니다.
“상추를 좀 따야겠어요.”
텃밭에는 꽃밭처럼 다양한 상추가 활짝 자라 있었습니다. 종류별로 상추를 소복이 땄습니다.
상추를 씻고 화덕에 푹 삶은 죽순을 꺼내 껍질을 벗겼습니다.
농사일을 마치고 두북 수련원으로 돌아와 다 함께 발우공양을 했습니다. 스님이 아침에 직접 딴 싱싱한 상추와 죽순이 찬상에 올라왔습니다.
소심경을 외운 후 공양을 했습니다.
“계공다소량피래처(計功多小量彼來處) 촌기덕행전결응공(忖己德行全缺應供)”
(이 음식이 나에게 오기까지 그 공과의 많고 적음을 계산해 본다. 내 부족한 공덕으로 감히 받기 어렵구나.)
직접 농사지은 채소를 먹으니 소심경의 한 구절 한 구절이 더욱 가슴에 와닿았습니다.
창밖에는 비가 계속 내렸습니다. 발우공양을 마치고 대중이 스님에게 한 말씀을 청했습니다. 스님은 오늘 소풍 일정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어디를 제일 가고 싶어요?”
“바닷가요.” (웃음)
“비 오는 날 무슨 바다 구경이에요?”
땅에서 농사만 짓던 행자님들은 바다 구경을 하고 싶어 했습니다.
“그럼 바다로 갑시다. 바다로 가는 길에 문화 유적을 몇 군데 보여 드릴게요. 오늘은 국보만 보는 역사 탐방입니다. 나원리 5층 석탑에 갔다가 옥산서원에 가서 정혜사지 13층 석탑을 보고, 신광면에 있는 신라비를 보고, 칠포 해수욕장을 지나서 해변을 따라 올라가 보겠습니다.”
오늘은 국보만 보는 역사 탐방입니다. 출발하기 전 스님이 한 가지 과제를 주었습니다.
“처음 갈 곳은 나원리 5층 석탑입니다. 가는 동안 인터넷 검색해서 모두 사전 공부를 해오세요.”
“네!”
차 안에서 공부를 하는 동안 나원리 5층 석탑에 도착했습니다.
“이 탑은 국보 제39호입니다. 이곳은 탑이 이렇게 큰 규모로 세워져 있는데 바로 옆에 절이 있었다는 기록이 없어요. 탑에 이끼가 서려 있지 않고 하얗다고 해서 옛날부터 ‘백탑’이라고 불렸습니다. 제가 어릴 때는 그냥 ‘나원리 백탑’ 이렇게 불렀어요. 대부분 3층 석탑인데 이 탑은 5층 석탑입니다. 그래서 귀중한 석탑입니다. 위에는 다 통돌인데, 기초석은 돌 하나로 못 만들어서 네 개를 연결해서 만들었어요.”
비가 세차게 내리는 가운데 다음 장소로 갔습니다. 이번에도 과제가 주어졌습니다.
“다음에 갈 곳은 이언적 선생의 옥산서원, 독락당, 정혜사지 13층 석탑입니다. 차 안에서 미리 공부하세요.”
먼저 옥산서원에 도착했습니다. 옥산서원은 조선시대 성리학자인 이언적 선생의 학덕을 기리기 위해 건립된 서원입니다.
회재 이언적 선생은 관직을 그만두고 자신의 종가가 있는 경주 양동마을 근처 안강읍 옥산의 한 시냇가에 독락당(獨樂堂)을 짓고 약 6년간 성리학 연구에만 전념하였다고 합니다. 그런 연유로 회재가 세상을 떠난 후 독락당에서 가까운 곳에 옥산서원이 세워지고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유학을 공부했습니다.
스님의 설명을 들으며 옥산서원 곳곳을 둘러보았습니다.
“여기 보세요. 주춧돌을 안 깎고 그냥 사용했네요. 이 건물을 지은 사람이 게으른 사람이었나 봐요. (웃음)
발해 시대에 지은 상경용천부에 가면 주춧돌이 재미있어요. 벽 속에 숨겨진 부분은 주춧돌을 안 깎았습니다. 바깥에 드러난 부분만 깎았어요. 이에 반해 절을 짓는 사람들은 신심이 깊었나 봐요. 주춧돌을 전부다 반듯하게 깎아서 절을 짓거든요.”
옥산서원을 나와 이언적 선생이 학문을 하며 거주했다는 독락당으로 이동했습니다. 가는 길에 코스모스가 빼곡히 피어있는 곳이 나타났습니다.
“코스모스가 땅에 붙어서 나지막하게 피어있으니까 참 예쁘네요. 가을이 아닌데 벌써 코스모스가 피었어요.”
독락당에 도착해 안내 표지판을 읽어본 후 뒤쪽의 시냇가에 세워진 정자로 가 보았습니다. 자연과 조화를 이루고 있는 모습이 참 멋스러웠습니다.
독락당을 지나 더 깊이 들어가니 정혜사지 13층 석탑이 나왔습니다. 비가 더 많이 쏟아지는 가운데 스님의 설명이 이어졌습니다.
“이 탑은 국보 제40호입니다. 13층이나 되는 아주 특이한 탑이에요. 1층 탑이 거대한데 비해 2층부터는 몸돌과 지붕돌 모두가 급격히 작아져서 2층 이상은 마치 1층 탑 위에 덧붙여진 상륜부처럼 보이죠?
그래서 이 탑을 이형탑이라고 합니다. 이에 반해 석가탑은 정형탑이라고 할 수 있죠. 이곳에는 조선시대까지 절이 남아 있었나 봐요. 기록에 보면 이언적 선생과 이곳에 있던 스님이 대담을 했다는 내용이 나오거든요. 조선시대에는 승려가 천민 계급이었는데도 승려는 글을 아니까 대화가 되었던 것 같아요. 유생들과 대화가 된 부류가 하나 더 있어요. 뭘까요? 기생입니다. 기생도 글을 알았거든요.”
비가 너무 많이 내려서 서둘러 차를 타고 다음 장소로 이동했습니다. 포항시 북구 신광면 면사무소에서 차에서 내렸습니다. 면사무소 앞에는 오래된 비석 하나가 세워져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다 도착하자 스님이 이 비석에 대해 설명해 주었습니다.
“여기는 포항 신광면 냉수리 신라비입니다. 국보 제264호입니다. 자세히 보시면 돌에 글씨가 새겨져 있죠? 앞면, 뒷면에만 글자가 새겨져 있는 게 아니고 윗면에도 글자가 새겨져 있습니다. 그래서 자연석에 글자를 새겼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진흥왕 순수비는 역사책에서 공부했죠? 북한산비, 황초령비, 마운령비, 창녕비는 왕이 영토를 개척하면서 세운 첩경비인 반면 이 비석은 생활적인 내용, 즉 신라시대 재산 상속과 분쟁에 관한 내용이 적혀 있는 비석입니다. 지증왕 때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돼요.
생활에 관련된 내용이 기록된 비석은 이 근처에서 3군데 발견되었어요. 울진 봉평리, 포항 흥해읍 중성리, 그리고 여기입니다.”
드디어 역사 탐방을 모두 마치고 바다로 향했습니다.
포항 칠포 해수욕장에 도착해 차에서 내렸습니다. 매일 농사만 짓던 행자님들은 바다를 보자 곧바로 신발을 벗고 바닷속으로 뛰어들었습니다.
날이 흐리고 비가 내려서 그런지 수평선이 잘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파도 소리와 갈매기 소리가 마음을 가볍게 해 주었습니다. 모래사장을 걸으며 콧바람을 쐬고 다시 차에 올라탔습니다.
해안가에 난 도로를 따라 주욱 올라가며 바다 구경을 하고 다시 두북 수련원으로 돌아왔습니다.
“기분 전환이 좀 되었어요?”
“네!”
“오늘 저녁에는 푹 쉬세요.”
행자들이 휴식을 하는 사이 스님은 저녁에 원고 교정과 여러 업무들을 처리하고 하루 일정을 마쳤습니다.
오늘은 법문이 없었기 때문에 지난 29일에 열린 청년들과의 즉문즉설 중에서 소개하지 못한 내용을 하나 소개해 드리며 글을 마칩니다.
“저는 남의 시선을 많이 의식합니다. 특히 혼자 있을 때는 더 심해집니다. 가령 노상에서 먹고 싶은 게 있어도 선뜻 사지 못하고 주저합니다. 둘러보면 아무도 저를 보고 있지 않은데도 제 자신이 잘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불쑥 그런 제 자신을 볼 때마다 마음이 괴롭습니다.”
“자기가 먹는 걸 사러 갈 때 왜 주저하는지 살펴보면, 그 이유가 무엇인 것 같아요?”
“사람들이 또 먹는 걸 사러 간다고 비난한다거나 손가락질하는 게 두렵습니다.”
“먹는 걸 사러 가는데 그게 왜 두려워요? 만약 스님이 통닭을 사러 간다면 다른 사람이 보기에 고기를 먹는 걸로 오해할 수 있으니까 두려워할 수 있지만, 질문자는 출가한 스님도 아니고 일반인인데 먹는 걸 사러가는 게 왜 두려워요?”
“그걸 잘 모르겠어요. ‘누군가 나를 비난하면 어떡하지?’, ‘뒤에서 나에 대해서 수근 대면 어떡하지?’ 하는 마음이 있어요. 친구들하고 같이 먹는 걸 사러 갈 때는 편안한데, 혼자 먹는 걸 사러 갈 때는 더 위축돼요.”
“먹는 것에 대해 콤플렉스가 있는 것 같네요.”
“그런 것 같아요.”
“혹시 자신의 체중이 많이 나가는 것에 대해 콤플렉스가 있나요?”
“네.”
“사람이 살이 찌고 통통한 건 좋은 거잖아요. 지금 질문자는 체중이 많이 나가는 자신에 대해 콤플렉스가 있기 때문에 음식을 사러 갈 때 혹시 다른 사람이 ‘퉁퉁한 사람이 또 먹으려고 그러나?’ 하고 생각할까 봐 걱정이 되는 겁니다. 남이 그렇게 생각하는 게 아니라 질문자가 혼자서 그렇게 생각하는 거예요. 정작 다른 사람은 ‘체중이 나가니까 많이 먹겠네’ 그냥 그렇게 생각하지 ‘또 먹을 것을 사러 간다’ 이렇게 생각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질문자는 지금 자기의 몸에 대해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어요. 그게 괴로움의 원인입니다. 왜 자기 몸에 대해 콤플렉스를 가져요? 홀쭉한 게 더 좋아 보여요?”
“홀쭉한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홀쭉한 게 왜 맞아요? 하마나 코끼리가 홀쭉하면 어떡합니까? 기린은 홀쭉한 게 특성이고 하마는 퉁퉁한 게 특성인 것처럼 사람마다 체질이 다르고 신체가 다른 겁니다. 질문자는 통통한 몸을 가지고 있는데 왜 홀쭉한 몸을 부러워하느냐는 거예요. 오히려 통통한 자기 몸을 자랑스럽게 생각해야 합니다. 누가 홀쭉하다고 자랑을 하면 ‘홀쭉한 걸 몸이라고 가지고 다니나?’, ‘어디 힘으로 한번 겨뤄볼까?’ 이렇게 생각하고 자신감을 가져야죠. 지금 질문자가 괴로운 이유는 스스로 열등의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에요.
이것은 여자라고 열등의식을 갖는 것과 같고, 키가 작다고 열등의식을 갖는 것과 같고, 피부가 검다고 열등의식을 갖는 것과 같습니다. 신체 자체는 누구나 다 평등해요. 홀쭉한 게 맞다는 말은 잘못된 생각이에요. 평균 체중이라는 것도 사람들의 체중을 모두 합해서 평균값을 도출한 것이기 때문에 인구의 절반은 평균 체중보다 낮을 수밖에 없고, 절반은 평균 체중보다 높을 수밖에 없습니다.
제가 어릴 때는 사회 전체가 몸이 빼빼한 걸 안 좋아하는 분위기였어요. 오히려 살찌는 약을 먹여서 살을 찌울 정도였습니다. 요즘도 인도에서는 배가 나오는 걸 사람들이 더 좋아해요. 그래서 항상 밥을 밤 10시 정도에 먹고 바로 자서 배가 나오게끔 합니다. 그렇게 배가 나와야 지위가 있는 사람 취급을 해줘요. 최근에는 조금씩 달라지고 있기는 하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인도에서 배우라고 하는 사람들을 보면 많이들 통통했어요. 통통해야 미인이라고 했습니다. 천하 미인이라고 하는 중국의 양귀비도 몸매가 홀쭉했을까요, 통통했을까요?”
“통통했었다고 알고 있어요.”
“그래요. 양귀비도 그랬는데 질문자는 왜 자기 신체에 대해 열등의식을 가져요? 어차피 내가 체중이 나가는 사람이면 체중이 나가는 걸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자신감을 가져야죠. 남자들 중에도 체중이 나가는 사람을 선호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에 그런 사람을 만나면 연애를 하는 것이고, 그렇지 않고 사람을 몸매로 함부로 평가하는 사람이라면 굳이 그런 사람을 내가 기죽어 가면서 연애할 필요가 뭐 있어요?
만약 질문자가 정말로 홀쭉한 몸이 좋다고 생각한다면 살을 빼야죠. 자기가 정말 맞다고 생각하는 길이면 가야 하잖아요. 홀쭉한 게 정말 좋다고 생각하면 과감하게 살을 빼든 지, 그게 아니면 체중이 나가는 걸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설령 다른 사람이 놀리더라도 이렇게 생각하세요.
‘까불지 마! 너 같은 건 한주먹거리야, 바람 불면 날아갈 것들이 말이야’
이렇게 자기 자신에 대해서 당당한 자신감을 가져야죠. 어떻게 생각해요?”
“맞습니다.”
“이런 마음가짐을 가지면 뭘 먹으러 갈 때 눈치 볼 필요가 있어요, 없어요?”
“없습니다.”
“그래요. 이제부터는 자신에 대해 자랑스럽게 생각해 보세요.
‘너네들은 한 개밖에 못 먹어? 나는 세 개 먹는다’
‘너네는 국수 한 그릇밖에 못 먹어? 나는 세 그릇 먹을 수 있어’
‘너네는 닭 한 마리밖에 못 먹어? 나는 먹었다 하면 세 마리는 먹을 수 있어’
이렇게 자기중심을 갖고 당당하게 살아가면 됩니다. 그게 아니라 정말로 홀쭉한 사람이 부럽고 좋아 보이면 독한 마음을 먹고 아예 살을 빼든지요. 둘 중 하나를 확실하게 선택해야 괴롭지 않습니다. 스님이 출가해놓고는 늘 세상 사람을 부러워하면 되겠어요, 안 되겠어요?”
“안 됩니다.”
“남을 부러워하면 내 삶에 대해 열등의식을 갖게 됩니다. 여러분들 중에도 세속에 살면서 조금만 힘들면 ‘아, 나도 스님이 되면 참 좋겠다’ 하면서 스님을 부러워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러면 안 됩니다. 스님이 되었으면 스님이 된 걸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살아야 하고, 결혼을 했으면 결혼한 걸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살아야 합니다. 스님이 되었다면 결혼한 사람들을 보면서 ‘둘이 같이 살면 뭐하나 매일 싸우기나 하지. 나는 혼자 사는 게 훨씬 좋다’ 이렇게 생각하고 살아야 하고, 결혼한 사람은 ‘가끔 싸우더라도 둘이 사는 게 재밌지. 혼자 사는 게 뭐가 좋으냐?’ 이렇게 자기 처지에 대해 자신감을 갖고 살아야 해요.
신체를 갖고 차별해서는 안 된다고 법률로까지 정해서 그렇게 못하게 하는데, 하물며 신체에 대해 열등의식을 가져서는 더더욱 안 되죠. 다른 사람이 놀릴 때 내 마음이 흔들린다면 그건 내 안에 열등의식이 있기 때문입니다. 누가 저한테 ‘남자가 나이 칠십이 되어서 아직 장가도 못 갔느냐?’ 하고 비아냥거린다고 해서 제가 열등의식을 느낄까요?”
“아니요.”
“그러니 질문자도 누가 체중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이렇게 말하세요.
‘이 정도 체중이 되려면 당신보다 세 배는 먹어야 해요. 돈 없는 당신은 이렇게 될래야 될 수가 없어요’
이렇게 자신감을 갖고 살아야 합니다. 만약 뚱뚱한 것이 체질적으로 달라서 생긴 것이라면 자기 상황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야지, 체질이 다른 걸 어떡하겠어요?”
“네, 맞습니다.”
“이제부터는 눈치 보고 살지 마세요. 저도 처음부터 체중 이야기를 하면 질문자가 ‘스님도 체중 이야기를 하네’ 하면서 위축될까 봐 처음에 한 두 마디 나누면서 살피다가 체중 이야기를 한 거예요. (웃음)
지금 질문자는 자기 신체에 대해 약간 콤플렉스가 있는 상태입니다. 그래서 남의 눈치를 보는 겁니다. 좀 당당해졌으면 좋겠어요. 먹는 것, 체중, 이런 걸 갖고 사람이 눈치 보며 살아가야 할 이유가 뭐가 있어요? 먹고 싶으면 먹고, 심하다 싶으면 또 조금 빼고, 그러면 되죠. 안 그래요?”
“네, 맞습니다.”
“젊은 사람이 당당하게 살아보세요.”
“네, 감사합니다. 스님 말씀을 듣고 나니 제가 눈치를 보는 이유를 분명히 알게 되었습니다. 다른 사람이 실제로 저한테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저 스스로가 마음속으로 그런 말을 하고 있었네요. 앞으로는 당당하게 살겠습니다. 혹시 과하게 체중이 찌면 조금씩 살을 빼는 식으로 저를 사랑하며 살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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