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1.6.1. 봉림사지 방문
“나이가 드니 자꾸 기억력이 나빠져요.”

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울력을 하고 가야불교의 흔적을 찾아 봉림사지를 방문했습니다.

새벽기도를 하고 간단히 아침을 먹은 후 바로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밭으로 나갔습니다. 달이 떠 있는 하늘 반대쪽에서 이제 막 해가 뜨고 있었습니다.


비닐하우스에 도착하니 스님은 벌써 브로콜리 한 상자를 수확해 나왔습니다.

오늘은 가시오이와 피클오이 모종을 옮겨 심었습니다.

파종기로 빠르게 오이 모종을 심었습니다. 그런데 땅이 푸석푸석했습니다.


“땅이 완전 말라있네요. 물을 주고 흙을 덮어줍시다.”

가장 긴 호스를 가져와 구멍마다 물을 주었습니다.


물을 준 오이 모종에 흙을 덮어주었습니다.


모종을 심고 물을 주고 흙을 덮어주는 일을 반복해 비닐하우스 한 줄 끝까지 오이를 다 심었습니다.


울력을 마치고 옷을 갈아입고 창원 봉림사지로 출발했습니다.

두 시간을 달려 봉림사지에 도착했습니다.

오늘은 특별히 차 전문가들과 함께 봉림사지를 찾았습니다. 한 분은 한중차문화연구원 박사로 중국 원시림에서 30년 넘게 수십, 수백 년 된 차나무를 찾아 채엽하는 분이고, 한 분은 차협회 회장을 맡고 있는 교수님이었습니다.

차 전문가들과 봉림사지에서 만나 먼저 스님이 어떤 차를 찾아야 하는지, 왜 찾아야 하는지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인도 아유다국에서 장유 화상과 허황옥 공주가 배를 타고 가야로 왔는데, 허황옥 공주는 김수로왕과 결혼을 해서 아들을 열 명을 낳았다고 합니다. 첫째 아들인 거등은 김수로왕을 이어 왕이 되고, 두 명은 왕후의 성을 따서 김해 허 씨의 시조가 됐어요. 나머지 일곱 명은 출가해서 스님이 되어 이 곳에 처음으로 절을 짓고 ‘가야정사’라고 불렀습니다.

가야 불교의 첫 출발지

여기서 출가한 일곱 명의 왕자는 지금의 가야산으로 가서 수행을 하다가 나중에는 지리산으로 가서 결국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지리산 칠불암이 그렇게 유래한 겁니다.

이 봉림사지는 가야 불교의 첫 출발지입니다. 용성조사님의 열 가지 유훈 중 첫 번째가 ‘가야초전법륜성지를 잘 가꾸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가야는 나중에 신라와 합병을 하게 되면서 시간이 흐를수록 경주가 나라의 중심이 되었고, 이곳 김해는 점점 세력이 약해졌어요. 자연스럽게 김해에 있던 이 절도 세력이 약해져서 폐허가 되어버렸어요.

신라 말에 구산선문 중의 하나인 봉림산문이 여기서 개산을 했습니다. 현욱 선사(787~868)라는 분이 중국에 유학을 다녀와서 고승이 되어 돌아왔는데 그때 김해 출신 호족들이 그 선사를 김해 쪽으로 모셨다고 합니다. 선사가 말하길 ‘여기가 원래 절터이다’ 하면서 이곳에 절을 지었는데, 한 때는 수행자가 5백 명이 되었다고 합니다. 기록으로는 봉황이 알을 품은 곳이다고 해서 ‘봉림산문’이라고 불렸다고 해요.

구산선문 가운데 제8산 선문으로도 유명하지만 이곳은 가야에 불교가 전래된 첫 번째 절이라는 것이 더 큰 의미가 있는 곳입니다. 그러나 이 절이 가야에 불교가 전래된 첫 번째 절이라는 유물적인 증거가 아직 안 나왔습니다. 폐허가 된 절터에 새로 절을 지었기 때문에 가야 시대의 유물을 찾기가 어렵고요. 가야와 신라가 문화가 다르면 쉽게 구분이 가능한데 가야의 문화를 신라가 계승했기 때문에 더욱 어렵다고 합니다.

인도에서 가야로 불교가 전래되었다는 세 가지 증거

가야 불교가 인도로부터 들어왔다는 증거가 현재로서는 세 가지 정도 있어요. 첫째, 제일 확실한 증거가 파사 석탑이에요. 김해 허황후릉에 가면 아유다 공주가 가져왔던 돌 5개를 쌓아 놓은 탑이 있습니다. 한국에서 나는 돌이 아니에요. 인도에는 흔하게 있는 돌이지만요.

둘째, 김수로왕의 무덤에 그려져 있는 두 마리의 물고기입니다. 두 마리의 물고기가 마주 보는 형상을 하고 있는데, 우리나라 어디에도 없고 김수로 왕릉에만 있는 그림입니다. 인도에 ‘아유다이’라는 도시에 가면 모든 힌두교 템플에 두 마리 물고기가 마주 보는 문양이 있습니다.

셋째, ‘장유’라는 지명이 아직도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장유면, 장유폭포, 장유사 등 이런 이름들이 곳곳에 남아 있다는 것은 장유 화상이 실제로 다녀갔다는 중요한 증거라고 할 수 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자들은 증거가 불충분하다고 해서 제가 도문 큰스님에게 ‘가야정사라는 증거가 불충분하다고 합니다’라고 말씀을 드리니 호통을 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그게 언제 시대인데! 가야가 망했는데 증거가 있을 수 있나? 그 산에 가봐라. 차나무가 많다. 인도에서 건너올 때 장유 화상이 차를 가져왔지. 그게 증거야.’

그 때 저도 인도에서 가야에 차를 가져왔다는 이야기는 처음 들었어요. 몇 년 지나서 어느 날 차를 즐겨 마시는 분과 이야기를 하다가 김해에서 유명한 토산물이 장군차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김해에서 많이 난다고 ‘김해차’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사실은 허황후가 수로왕에게 시집올 때 차의 씨앗을 가져와 심었다고 볼 수 있는 거죠.

저는 차에 대해서는 잘 모르잖아요. 그래서 자연산 차나무를 찾으면 확실한 증거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여러분을 모시고 오늘 찾아와 본 거예요.” (웃음)

봉림사지는 정토회 실천장소이기도 합니다. 실천장소에 봉사를 왔다가 차나무를 발견했다는 정토행자도 함께 모였습니다.

“보살님께서 차나무를 보셨다고 했죠?”

“예. 입구에서 봤습니다. 하나 꺾어와 보겠습니다.”

곧 차 전문가와 함께 가서 보고 차 줄기를 하나 꺾어왔습니다.

전문가들이 보고 이구동성으로 말했습니다.

“장군차가 맞습니다. 고수차(古樹茶)고 야생차예요. 잎이 톱니바퀴로 되어 있고, 꽃봉오리가 있어요. 11월이면 하얀 꽃을 피웁니다. 우리나라에서 나지 않는 대엽종이예요. 잎을 따 먹어보세요.”


“잎이 떫지 않고 씹을수록 향이 좋네요.”

“맞습니다. 새 순으로 차를 만들면 좋겠네요.”

주변 환경을 둘러보고 차 전문가가 감탄하며 말했습니다.

“늪지가 있어서 차가 자라기에 아주 좋은 환경이네요. 땅이 정말 봉황이 알을 품은 모양이에요.”

“고목을 발견하면 그 자체로 가야초전법륜성지의 증거가 될 수 있어요. 그럼 보물 찾기를 하러 가봅시다.”

장군차의 모양을 머릿속에 여러 차례 그려놓고 산 속으로 차를 찾아 들어가 보았습니다.

푸르른 숲 속에서 똑같이 푸른 잎의 차나무를 찾는 일은 쉽지 않았습니다. 스님이 지나가고 뒤따르던 전문가가 사람이 다니는 길 아래로 차나무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여기 차나무가 있네요.”

“역시 전문가는 전문가네요.”


“나무줄기를 보니 3-40년은 된 나무입니다.”

“이런 곳에 누가 차나무를 심지는 않았겠지요?”

“그럼요. 야생입니다. 씨앗이 떨어져서 저절로 난 겁니다. 주변에 큰 나무가 어디 있을 거 같아요.”

둘씩 나눠서 사람이 다니지 않는 길까지 산을 헤집고 다녔지만 그 뒤로 더 큰 차나무는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대나무 숲에는 차나무는 보이지 않고 죽순만 많이 솟아올라있었습니다.

“죽순이나 따 가야겠네요.”

스님은 죽순을 가득 안고 봉림사지 발굴터로 돌아왔습니다.

“점심 먹고 다시 찾아봅시다.”

도시락으로 점심을 먹고 잠깐 쉰 후 다시 산속으로 들어갔습니다.

“밥값은 해야 하니까 다시 가봅시다.”

그러나 이번에도 새로운 차나무를 발견하지는 못했습니다. 스님은 초겨울에 다시 오기를 기약했습니다.

“그래도 큰스님 말씀처럼 차나무가 있었네요. 왕거니는 못 건져도 국물은 마셨어요. 여름에는 찾기가 너무 어렵네요. 오늘은 그만하고 꽃 피는 11월 말이나 12월 초에 다시 와서 찾아봅시다.”

봉림사지를 떠나기 전에 정토행자님이 최근 봉림사지 발굴 결과를 정리해와 간략히 알려주었습니다.

봉림사지를 내려오는데 올라갈 때는 보이지 않았던 차나무가 눈에 쏙쏙 들어왔습니다. 땅에서 차나무 새싹도 많이 올라오고 있었습니다.


스님은 지금은 사람이 다니지 않는 옛길로 산 아래까지 내려와 차를 타고 다시 두북으로 돌아왔습니다.

5시 30분이 되어 두북수련원에 도착했습니다.

바로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저수지로 올라갔습니다.

“오늘 오디를 따기로 했어요.”

봄인가 싶더니 어느덧 오디가 검게 익었습니다. 저수지에 있는 뽕나무 아래 토실토실한 오디가 우수수 떨어져 있었습니다.

행자들은 뽕나무 아래에 천막을 사방으로 깔아놓고 스님은 나무를 타고 올라가 가지를 흔들었습니다.


곧 잘 익은 오디가 후두둑후두둑 떨어졌습니다. 크기가 커서 머리에 맞으면 꽤 충격이 있었습니다.

떨어진 오디를 모아 상자에 담았습니다. 총 25kg을 수확했습니다.


계속 떨어질 오디를 모으기 위해 나무 아래 천막을 깔아 두고 내려왔습니다.


산 너머로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습니다. 오늘부터 하절기 일정을 시작해 저녁예불이 8시로 늦어졌습니다. 스님은 낮에 따온 죽순을 손질해 삶았습니다.

껍질을 벗긴 죽순을 넣고 솥에 물을 자작하게 부은 다음 소금을 쳤습니다.


솥뚜껑을 닫고 잘 마른 땔감을 가져와 화덕에 불을 붙였습니다. 버려진 종이를 구겨 불을 지피고 잔가지를 넣어 불을 붙인 다음 조금 더 굵은 가지를 넣었습니다. 불이 활활 타기를 기다려 굵은 소나무 장작을 넣어주었습니다.

“단을 높이고 밑에 망을 하나 해 놓으니까 불이 잘 붙네요. 예전에는 장작 사이를 파서 바람을 넣어줘야 했는데 이제 공기가 알아서 들어가니까 그럴 필요가 없어졌어요.”

날이 어둑해질수록 불길은 더욱 환하게 타올랐습니다. 죽순을 푹 삶는 동안 스님은 원고 교정을 보고 하루를 마무리했습니다.

오늘은 법문이 없었기 때문에 지난 27일 화엄반 행자님들과의 즉문즉설 내용 중에서 미처 소개하지 못한 내용을 하나 소개해 드리며 글을 마칩니다.

기억력이 자꾸 없어지는 것이 걱정입니다

“저는 나이 들어서 불교 공부를 하다 보니 체력의 한계와 기억력의 한계에 봉착하게 됩니다. 특히 기억력이 자꾸 없어져서 걱정이에요. 절을 할 때는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는데 기도가 끝나고 나면 기억이 사라져 버립니다.”

“질문자만 그런 게 아니라 누구나 다 그렇습니다. 저도 그래요. 명상할 때 좋은 아이디어가 엄청나게 떠올라서 종이가 있으면 써놓고 싶을 정도인데, 막상 명상이 끝나면 무슨 생각이 떠올랐는지 기억이 안 납니다. 그렇게 중요하다고 여겨졌던 아이디어도 기억하려고 하면 막상 생각이 안 나요. 원래 우리의 사고가 그렇습니다.”

“대화를 할 때 말이 머릿속에 빙빙 도는 데 적절한 단어가 생각이 안 납니다. 예전에는 안 그랬는데 요즘은 자주 그럽니다.”

“옛날에도 그랬어요. 좀 심해졌겠죠. (웃음) 늙음으로 인해 어떤 변화가 생기더라도 늙음을 받아들여야 됩니다. ‘왜 이런 변화가 생겼는지 모르겠어요’ 이런 얘기는 해봐야 아무 의미가 없어요. 누구나 자기가 생각한 것을 다 표현하지 못합니다. 질문자만 그런 게 아니에요.

명상을 할 때 아주 중요한 일이 생각이 나서 ‘지금 해결 안 하면 큰일이다. 빨리 연락해야 된다’ 이래도 명상이 끝나고 나면 그 생각이 안 날 때가 있습니다. 방금 전까지는 그렇게 중요했는데 막상 생각이 안 나는 거예요. 이런 정도가 아니라 직접 얘기하려고 전화까지 걸어놓고 상대가 전화를 받고 나면 갑자기 생각이 안 날 때도 있어요. 그래서 뭐라 뭐라 말을 하다가 ‘다음에 전화할게’ 이러거나, 안 그러면 다른 얘기를 실컷 합니다. ‘내가 전화하다 할 말을 잊어버렸다’ 이 말을 하기 싫어서 다른 얘기만 실컷 하다가 전화를 끊는 거죠. 그러다 한참 있다 보면 다시 생각나기도 하고, 자고 일어나서 이튿날 생각나기도 하고, 전화 끊고 나서 바로 생각나기도 합니다.

질문자만 그런 게 아니라 누구나 다 그렇습니다. 이런 증상이 젊을 때보다 심해졌다면 ‘내가 나이를 먹는구나’ 이렇게 받아들이면 됩니다.

질문자는 옛날부터 법문을 깨알같이 꼼꼼하게 적으면서 공부했던 분이잖아요. 원래부터 기억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었는데 지금은 기억력이 안 좋아지니까 타격을 받는 겁니다. 저처럼 처음부터 기록을 안 했던 사람은 늙어도 아무 불편을 안 느낍니다.” (웃음)

“기록을 많이 하는 이유는 잊어버리지 않으려고 그러는 겁니다.”

“잊어버릴 내용을 왜 굳이 적어서 기억까지 하려고 해요. 기억나는 건 기억하고, 잊어버리는 건 잊어버리면 되죠. 잊어버린다는 것은 사실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얘기입니다. 잠시 후에 금덩어리를 준다는 얘기를 잊어버릴까요? 절대로 안 잊어버립니다.

만약 제가 ‘좀 있다가 밥 먹고 나서 내 방에 오너라. 내가 백만 원씩 줄게’ 이렇게 말하면 잊어버리고 안 오는 사람이 있을까요? 없습니다. 명상할 때 중요한 아이디어가 떠올랐지만 잠시 후에 잊어버린 것처럼, 법문을 들을 때는 중요하다 싶었는데 잠시 후에 아무 생각이 안 난다면 그 법문은 사실 나에게 별로 중요하지 않은 내용이라는 겁니다. 그 순간에만 중요하게 느껴졌을 뿐이에요. 그게 죽고 사는 문제이거나, 이익에 관계되는 것이라면 절대로 잊어버리지 않습니다. 특히 지식 같은 것은 기억을 못 해도 사는 데 아무 지장이 없어요.”

“제가 지금 당장 당면한 문제는 법문 나누기를 할 때입니다. 법문을 들을 때는 엄청 감명 깊게 들었는데, 마음 나누기를 하려고 하면 그 내용이 머릿속에서 싹 없어집니다.”

“그럼 이렇게 마음 나누기를 하면 됩니다.

‘방금 들을 때는 좋았는데, 마음 나누기를 하려고 하니깐 기억이 싹 없어졌습니다.’

모르면 모른다고 말하고 사실대로 이야기하면 되는데, 자꾸 마음 나누기를 통해 남을 감동시키려고 하기 때문에 그런 고민이 생기는 겁니다. 마음 나누기는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거예요.”

“제가 잘난 척하려는 마음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요. 이제 사실대로 아네요. (웃음) 잘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이 꼭 나쁜 것은 아니에요. 인간은 누구나 잘나고 싶어 합니다. 문제는 잘나고 싶다고 잘나지지 않는다는 겁니다. 잘나고 싶다는 생각이 일어나는 게 잘못된 것은 아니에요. 잘나고 싶다는 마음이 일어난다고 해서 잘나지는 건 아니기 때문에 잘나고 싶다는 마음에 집착을 하지 말라는 겁니다. 이해하시겠어요?

잘나고 싶은 생각이 일어난 것 자체를 잘못됐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모든 사람은 욕구가 있듯이, 모든 사람은 잘나고 싶은 생각이 일어납니다. 그런데 조금만 깊이 살펴보면 잘나고 싶다고 잘나지는 게 아닙니다. 이걸 잘 알아서 잘나야 된다는 생각에 집착을 하지 말아야 해요. 집착하면 괴로움이 생깁니다.

욕망이 일어나는 게 잘못된 게 아니라 집착하지 말라는 것이 핵심입니다. 누구나 다 욕망이 일어납니다. 이때 ‘그 행위를 반드시 해야 된다’ 이렇게 집착하지 말라는 겁니다.

‘지금 이런 마음이 일어나구나.’

‘지금 이런 욕망이 일어나구나.’

이렇게 알아차리고 넘어가면 됩니다. 그걸 붙잡지 마세요.”

“네. 잘 알겠습니다.”

“직장 상사에게 매어 있는 사람, 남자나 여자한테 매어 있는 사람, 부모한테 매어 있는 사람, 이런 사람들은 수행자라고 할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 부처님 당시에 주인을 섬기던 종이 출가해서 부처님 제자가 되어 출가수행자가 되었다고 합시다. 출가수행자가 되고 나서도 계속 주인한테 매어 있다면 그 사람을 어떻게 수행자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도 수행자가 되었다면 종속적인 삶을 딱 끊어야 됩니다.

그러나 법사는 중생을 교화하는 역할도 해야 됩니다. 남도 교화하는데, 나와 20년, 30년 함께 살아온 배우자나, 40년, 50년 나를 키워준 부모님에게 맞추지 못할 이유가 없잖아요. 굳이 그분들을 가슴 아프게 할 필요가 뭐 있습니까. 종처럼 상대에게 매어 있어서 비위를 맞추거나, 반대로 저항을 한다거나 하는 것은 모두 수행이 부족하다는 반증입니다.”

“네. 스님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동안 내가 종속적인 삶을 살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을 처음 하게 되었습니다. 지혜롭게 대처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만약 질문자가 부처님의 제자라면 재산의 상속자가 아니라 법의 상속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 당당함이 있어야 해요. 잘못하거나 부족한 게 있으면 진솔하게 ‘제가 어리석어서 그랬습니다’ 이렇게 바로 사과하고 탁 터는 맛이 있어야 됩니다. 꽁해 있으면 수행자라고 할 수 없어요.”

전체댓글 49

0/200

황난실

스님 말씀이 많네요
마음나누기 할때마다 무엇을 말해야하나 고민했고 잘난척하느라 좀더잘할라고 그런연도있어 부담스러웠는데 있는그대로 맘가는데로 모르면 모른데로 알연 아는것까지만 하먼되는데 그럿케 하질못했는데ㅣ 스님 알흠 듣고나니 풀렀네요
감사합니다~~^^

2021-08-29 11:17:53

김순복

스님말씀 에 또 깨닫습니다
저또한 법문들을땐 넘 감동을 받고 나누기할
생각에 제느낌을 적어보기도 나와 비슷한것들을 응용해 보기도 합니다
잘하려는 집착에 사로잡혀 있었음 을 알아차림 합니다.
어릴때 많이 따 먹었는데 오디..
어릴적도 생각납니다
감사합니다 스님

2021-06-08 07:02:17

청정화

봉림사지 다녀온 얘기를 읽으면서 갑자기 몇년 전 김해 예술원에서 선물 받은 차를 찾아내어 보니 허황후가 아유다국에서 차씨앗을 가져와 전파한 것이라는 전단을 보면서 맛나게 우려 마셨습니다. 역시 내가 인지하는 것이 진리임을 새겨봅니다. 봉림사지에 장군차가 군락지가 발견되길 발원합니다. 감사합니다.

2021-06-06 16:03:10

전체 댓글 보기

스님의하루 최신글

목록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