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1.6.2 첫 감자 수확, 정토대전 회의, 수행법회
“누가 뭘 시키면 짜증이 나요”

안녕하세요. 두북 수련원의 아침이 밝았습니다. 6월부터 두북 수련원의 하루 일정이 바뀌었습니다. 뙤약볕이 내리쬐는 낮을 피해 아침 일찍 농사일을 시작하기로 했습니다.

새벽 예불과 기도를 마치자마자 스님은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비닐하우스로 나갔습니다. 행자들이 도착하기 전, 스님은 열무를 한 소쿠리 수확했습니다.

새벽 6시가 지나자 행자들이 도착했습니다. 농사 담당자가 스님에게 비닐하우스 4동에 근대 모종을 심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지난주에 화엄반 행자들과 뽑았던 풀은 바싹 말라 있었습니다. 두둑 위에 놓여 있던 풀 더미를 비닐하우스 가장자리로 치우는데 두둑 비닐 아래 깔아놓은 점적호스가 삐뚤빼뚤한 것이 보였습니다.

두둑의 처음부터 끝까지 호스를 바로잡았습니다.

모종이 새로운 땅에서 자리를 잘 잡을 수 있도록 먼저 물을 충분히 주었습니다. 비닐에 구멍을 내고, 물을 주어야 하는데 스님은 한 번에 해결할 방법을 찾았습니다. 호스 끝에 달린 분무기 머리를 때어내고 호스로 바로 구멍을 뚫으며 동시에 물을 주었습니다.

“스님, 정말 좋은 방법이네요.”

“제가 게으른 사람이라 그래요.”(웃음)

스님이 물을 주고 난 자리에 행자들이 뒤따라오며 근대 모종을 심었습니다.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는가 싶더니 이번에는 점적호스 연결 부품이 빠져서 물이 새어 나왔습니다. 분해해서 보니 고무로 된 부분이 말려들어가 있었습니다. 고무를 펴고 다시 잘 꽂아주었습니다.

비닐하우스 왼쪽 가장자리에는 상추를 심어놓고 하얀 부직포를 덮어 두었습니다. 부직포를 걷어보니 공들여 심은 상추보다 풀이 더 많이 자라 있었습니다.

특히 민들레가 많았습니다.

“일부러 누가 민들레를 심은 건 아니겠죠?”(웃음)


풀을 다 뽑고 상추에도 물을 흠뻑 주었습니다.

오른쪽 제일 첫 줄에는 감자를 심어두었습니다. 감자 줄기가 노랗게 변해 수확할 때를 알리고 있었습니다.

“오늘은 시범 삼아 조금만 캐봅시다.”

줄기를 베어 내고 땅을 파 보았습니다. 작년에도 비닐하우스에 감자를 키웠는데, 땅이 딱딱해서 수확하기 무척 어려운 데다 감자 알도 작았었습니다. 큰 기대 없이 땅을 조심스레 파 보았습니다.

그런데 예상과 달리 한 줄기 아래 알이 굵은 감자가 4-5알씩 주렁주렁 달려 나왔습니다. 올해는 땅에 쌀겨를 섞고 농사를 지었더니 땅이 포슬포슬해서 감자를 캐기도 좋았습니다.

“이야!”

감자가 크고 예뻐서 계속 탄성이 나왔습니다.


좁은 면적을 수확했는데도 한 대야 가득 찼습니다. 무게를 재어보니 10kg이 넘었습니다.


“아직 땅이 좀 딱딱한 부분이 있네요. 논이었던 땅이라 물을 줬다 마르면 딱딱해져요. 이제 물을 주지 말고 며칠 말렸다가 캐면 좋겠어요.”

감자 두둑에 물을 주지 않고 며칠 기다렸다 캐기로 하고 울력을 마쳤습니다. 농사일을 마치고 9시에 발우공양을 시작했습니다.

아침에 첫 수확한 감자가 나왔습니다.

맛있게 식사를 한 후 대중이 스님에게 한 말씀을 청했습니다. 스님은 대중이 봉사하러 왔을 때 편리하도록 수도 시설을 정비해주면 좋겠다고 제안했습니다.

“대중들이 이곳에 계속 봉사를 하러 오기 때문에 손도 씻고 도구도 씻고 해야 하니까 수돗가에 싱크대를 설치해서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게 해 주면 좋겠어요.”

발우공양을 마치고 10시 30분부터 정토대전 사상팀 회의를 시작했습니다. 문경 수련원과 연수원에서 온 공동체 법사님들도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두북 수련원에 도착했습니다.

법사님들이 스님에게 여는 말씀을 청했습니다.

“다음부터는 회의 직전에 도착하지 말고 하루 전날 와서 하룻밤 자고, 아침에는 울력을 두 시간 같이 한 후 회의를 하면 어떨까요? 여기 밥을 얻어먹으려면 두 시간은 일을 해야죠. (웃음)

일을 시켜 먹으려고 그러는 게 아니라 자연 속에서 함께 땀 흘려 일하면 건강에도 좋고 기분 전환도 되고 좋잖아요.”

“네, 다음 주부터는 그렇게 하겠습니다.”

먼저 불교사상팀에서 12처, 18계, 촉의 개념이 무엇인지, 불교의 교리를 뇌의 작용에 견주었을 때 어떻게 해석할 수 있는지에 대해 발표했습니다.

참석한 법사님들도 내용을 읽고 나서 어렵다는 반응이 나왔습니다. 다들 이해하기 어려워하자 스님이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다시 설명해주었습니다.

사회사상팀에서는 ‘불교와 평화’를 주제로 소극적 평화와 적극적 평화의 개념, 평화를 실천하는 방법인 중도 등에 대해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분쟁의 사례와 접목시켜 발표했습니다.

발표를 마치고 나서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습니다. 불교와 평화에 대해 발표한 법사님이 중도적 사상을 통해 정말로 분쟁을 해결할 수 있는지 의문점을 이야기했습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분쟁, 남한과 북한의 갈등만 봐도 너무나 해결하기 어려워 보였기 때문입니다.

불교의 가르침이 정말로 분쟁을 해결할 수 있을까요?

"중도적 사상을 실천하면 정말로 평화가 올까요? 갈등이 너무 복잡해서 과연 해결할 수 있을지 막막한 기분이 듭니다. "

“워낙 해결이 안 되니 그렇게 볼 수도 있지만, 해결책이 없는 건 아닙니다. 해결책은 있지만, 다만 그 해결책이 그 문제를 해결할 사람의 이해관계와 맞지 않을 뿐입니다.

해결책이 있지만 해결이 안 되는 이유

예를 들어 지금의 북한 핵문제를 해결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미국 대통령이 ‘미국에서 북한을 탁 수용해서 정상 국가로 인정해주는 등 이런저런 것을 해주는 대신 북한은 핵 동결을 한다’ 이렇게 입장을 가지면 금방 해결될 수 있는 문제입니다. 그러나 현실은 미국 대통령이 ‘북한 핵을 없애야 한다’ 하는 입장을 가져야 미국 안에서 정치적으로 유리합니다.

북한의 입장은 미국과 반대입니다. 북한 입장에서는 핵을 없애는 일을 할 수가 없어요. 북한은 자신들이 유리하게 협상해야 젊은 지도자가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북한에 유리하도록 협상하면 반대로 미국 대통령이 미국 내에서 정치적으로 불리해지죠. 그래서 해결이 안 되는 거예요. 해결 방안이 없는 게 아니라 다들 자신의 정치적 입지가 걸려 있기 때문에 해결이 안 되는 겁니다.

한국 정부의 경우도 마찬가지예요. 한국 정부가 남북 간에 협상을 이루어내려면 북한한테 양보를 좀 해야 합니다. 양보를 조금이라도 해서 결과적으로는 우리가 절대적으로 유리해지게끔 남북 간에 협상을 타결한다면 그걸 누가 반대하겠어요? 야당이 반대하겠지요.

문제를 해결하려면 남한이 약간 양보를 해서 북한 지도자가 주민들에게 선전할 만한 게 있어야 북한도 협상에 응하겠죠? 그런데 정부가 북한에게 양보하는 것에 대해 야당은 결사반대를 합니다. 남북 협상이 성공하면 야당은 다음 정치지형에서 불리해지기 때문입니다. 한국 내에서는 늘 여론이 반반으로 나뉘어 대립하고 있으니까 야당 입장에서는 남북문제에 대해 계속 강경해야 하는 거예요.

이런 반대를 막으려면 남한 안에서의 정치적 이익을 야당한테 좀 양보해줘야 합니다. 적대적 관계에 놓여 있는 북한도 포용을 하는데, 왜 남한 내에서 포용을 못 하겠어요? 북한은 전쟁까지 한 상대이고, 남한 내에서의 야당은 인권 탄압을 한 정도잖아요. 그러니 일반 국민이 볼 때는 ‘북한은 껴안으면서 왜 야당은 못 껴안느냐?’ 하는 생각이 드는 겁니다.

남북 문제를 해결하려면 남한 내의 야당 하고도 테이블을 마련해서 머리 맞대고 의논하고 정치적인 양보를 많이 해야 합니다. 그 대신 북한 문제에 대한 협조를 얻어내는 거죠. 현 정부는 남북관계는 풀고 싶은데 야당에 양보는 안 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야당과는 국내 정치 문제로 원한이 있는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북한과는 원한이 더 깊지만, 그건 보수 세력과 북한 사이의 원한에 더 가까워요. 그러니 남북 관계가 평화로워지려면 남한의 보수세력과 북한이 서로 화해해야 진정한 남북협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남한의 진보세력과 북한이 손을 맞잡는 것은 남한의 보수세력이 보기에 자기들끼리 노는 것처럼 보일 뿐이에요. 그래서 보수세력에서는 ‘나라를 팔아먹는다’ 이렇게 말하는 겁니다.

남한의 보수세력과 북한은 대화가 잘 안 되고, 남한의 진보세력과 북한은 대화는 되지만 남한 내 반대세력 때문에 협상을 성사시키지 못합니다. 협상을 성사시키려면 남한의 보수세력이 북한을 좀 포용하고 적극적으로 문제를 풀어나가야 하는데, 늘 북한을 비판하는 방식으로 정권을 유지하고 있다 보니 그렇게 못 하는 겁니다. 남한의 진보세력은 북한 문제를 풀려면 보수세력한테 양보를 해야 하는데 그걸 못 하고 있고요.

해결책이 없는 건 아니에요. 결국은 정치적인 유불리 때문에 해결이 안 되는 겁니다. 다시 말해 자기의 이익을 못 버리기 때문이에요.

우리가 바보짓을 하고 있구나

여기서 길은 두 가지가 있어요. 첫째, 합리적인 사람들이 이성적으로 서로 대화를 나누어서 문제를 푸는 방법이에요. 둘째, 양쪽 다 엄청나게 손해를 보고 누군가 어부지리를 얻을 때 뒤늦게 뉘우치는 방법입니다. 싸우는 양쪽이 서로 손해를 보기만 해서는 끝이 안 나요. 그 덕택에 옆에 있던 누군가가 엄청난 이익을 봐버리면 싸우던 사람들도 ‘우리가 바보짓을 하고 있구나’ 하고 알게 됩니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유럽입니다. 유럽 안에서 자기들끼리 싸울 때는 전혀 몰랐는데,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결국 패권을 미국과 소련이 쥐게 되니까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격이 되었어요. 그래서 ‘이건 바보 같은 짓이다’ 하고 깨닫자 원한을 풀고 서로 화해를 하게 되었죠. 그래서 유럽에 평화가 오게 된 겁니다. 2차 세계 대전의 피해가 어마어마했거든요. 뒤늦게라도 깨달으면 해결은 되는데, 남북은 6.25 전쟁을 겪고도 아직 정신을 못 차리고 있다는 겁니다.

이처럼 모든 문제는 잘 들여다보면 해결되지 못하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어요. 상호 손해가 발생하니까 옆에서 싸움을 말리긴 하지만, 끝까지 말을 안 듣고 싸우면 내버려 두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부처님도 그러셨어요. 코삼비 비구들의 다툼이 그런 예잖아요. 부처님이 코삼비 비구들을 불러서 얘기해도 말을 안 듣고, 부처님이 직접 찾아가서 얘기해도 말을 안 들으니까 홀로 숲으로 들어가 버리셨어요. 신자들의 공양 거부로 밥을 굶게 되니까 그때서야 비로소 코삼비 비구들이 정신을 차린 겁니다.”

이 외에도 스님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분쟁의 해결책에 대해서도 함께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합시다.”

법사님들은 스님에게 삼배를 한 후 사홍서원으로 회의를 마쳤습니다.

해가 지고 저녁 7시 30분에는 수행법회를 시작했습니다. 오늘도 800여 명의 회원들이 생방송에 접속했습니다. 먼저 스님이 인사말을 건넸습니다.

“한 주 잘 지내셨습니까? 저는 요즘 매일 농사짓고 지냅니다. 지난 월요일은 모내기를 했고, 오늘 아침에는 감자를 일부 수확했는데 작년보다는 감자 알도 굵고 소출이 많았어요. (웃음)

요즘은 매일 이렇게 농부처럼 일하는 데 재미를 붙이고 살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지내시는지요?

6월에 접어들어 날씨가 점점 더워지고 있습니다. 여름철이죠. 6월은 또 현충일과 6.25 전쟁일 등 민족의 아픔이 서려 있는 달이기도 합니다. 6월을 맞아 나라를 생각하는 시간도 가져보았으면 합니다. 이제 여러분의 얘기를 들어보겠습니다.”

이어서 질문을 받았습니다. 오늘은 네 명이 사전에 질문 신청을 하고 스님에게 질문할 기회를 가졌습니다. 그중 한 명은 누군가가 일을 시키면 짜증이 난다며 어떻게 관점을 가져야 하는지 질문했습니다.

누가 뭘 시키면 짜증이 나요

“저는 누군가가 저에게 뭘 시키면 짜증이 납니다. 예를 들어 최근에 시누이가 ‘언니, 일 같이 하자’라고 몇 번이나 얘기해서 기분이 좀 언짢았습니다. ‘내가 어련히 알아서 할 텐데. 시누이는 나이도 나보다 어리고, 내가 자청해서 일손 도우러 온 건데 왜 저럴까?’라는 마음이었습니다. 이런 경우에 제가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할까요?”

“조금 더 구체적으로 얘기해 봐요. 짜증이 나면 안 하면 되잖아요. 도우러 갔는데 상대가 간섭을 해서 싫으면 ‘그래, 너 혼자 많이 해라. 나는 갈게’ 이러고 와버리면 되지, 그게 뭐 질문거리가 돼요? (웃음)”

“그건 하나의 예를 든 것이고요. 제가 알아서 할 수 있는 일도 뒤에서 ‘이거 좀 해라, 저거 좀 해라’ 하면 평소에 짜증이 나더라고요. 그래서 저에게 무슨 다른 문제가 있는 건 아닐까 생각해 봤는데, 생각한다고 답이 나오는 것도 아니어서 스님께 여쭤봅니다.”

“나야 내가 알아서 한다고 하지만, 사람이 같이 모여서 살다 보면 간섭을 하거나 받을 수밖에 없어요. 아이들은 다 자기가 알아서 잘한다고 하는데, 부모가 보기에 ‘저래서는 안 될 것 같다. 이래야 하지 않을까’는 생각이 들까요, 안 들까요?”

“듭니다.”

“질문자는 아이들한테 절대로 잔소리 안 하고 다 자기 알아서 하도록 놔둬요?”

“아니요. 잔소리하고 있습니다.”

“남편한테도 알아서 하도록 그냥 놔둬요, 잔소리해요?”

“많이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게 뭐가 질문거리가 돼요? 내가 그 집에 일을 도우러 갔고, 그 사람이 일을 주관하니까 당연히 ‘언니, 이건 이렇게 해 달라. 저건 저렇게 해 달라. 나를 도와달라’ 이런 얘기를 하죠.”

“아뇨, 시누이 집에 간 건 아니고 제 손위 동서인 형님 집에 간 것이었어요. 제가 업무를 서둘러 마치고 일을 도와주러 갔는데, 회사 일로 전화통화를 더 해야 하고 작업복도 갈아입어야 하는 상황이었거든요. 그런데 시누이가 자꾸 ‘언니야, 이거 같이 하자, 빨리 와라’ 이렇게 계속 얘기를 하더라고요. 그런 얘기를 듣고 짜증이 나는 제 성격에 약간 문제가 있는 건지 모르겠어요.”

“당연히 성격에 문제가 있죠. 시누이는 질문자와 다른 사람이니까 자기 입장에서 얘기를 할 수 있어요. 저도 여기 수련원에서 같이 공동체 생활을 하다 보면 질문자의 시누이처럼 얘기할 때가 있어요. 예를 들어 외출을 했다가 차를 타고 올 때 저는 차 뒷좌석에서 자면서 왔고, 행자님이 그 차를 운전해서 왔어요. 저는 잤으니까 차에서 내리자마자 일을 할 수 있을까요, 없을까요?”

“있습니다.”

“그런데 두 시간 꼬박 운전을 한 사람은 차를 세우자마자 일을 할 수 있을까요, 없을까요?”

“없습니다.”

“그런데 어떤 때는 행자님 입장을 생각해서 ‘아이고, 좀 쉬어라’ 이렇게 얘기하게 되지만, 보통은 ‘빨리 일하러 가자!’ 이렇게 얘기하기 쉽습니다. 자기를 기준으로 해서 결정이나 판단을 하다 보니 그런 일이 생기는 거예요. 일부러 괴롭히려고 그러는 건 아니라는 거예요.

질문자가 형님 집에 일하러 갔을 때 질문자는 회사와 통화도 해야 하고 옷도 갈아입어야 하고 뭐도 해야 한다는 게 있지만, 시누이는 질문자처럼 그런 볼일이 하나도 없는 상태에서 일 도와줄 언니가 도착한 거예요. 그러니까 ‘도착했는데 왜 빨리 안 오느냐’라고 하는 거예요. 나는 지금 전화 할 일이 있지만 그 사람이 볼 때는 그 사정을 알 수 없으니까 ‘빨리 안 오고 뭐 하냐? 빨리 와라’ 이렇게 얘기할 수 있는 거죠. 나는 옷을 갈아입어야 하지만 상대방은 옷 갈아입어야 한다는 걸 생각을 안 한다는 거예요. ‘도착했으니까 가자!’ 이렇게 돼요. 그럴 땐 질문자가 말을 하면 되죠.

‘아이고, 내가 회사에 이러저러한 일이 있어서 통화도 해야 하고 옷도 갈아입어야 하니까 좀 기다려라. 30분 정도 기다려라.’

이렇게 말하고 하나하나 처리하면 되잖아요.”

“알겠습니다.” (웃음)

“자기 성질 더러운 건 생각하지 않고 남 탓만 하고 있어요. (웃음) 우리 모두가 그렇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질문자의 시누이처럼 하기가 쉽고, 또 그럴 때 질문자처럼 ‘아이, 바빠 죽겠는데! 내가 알아서 할 텐데 네가 왜 자꾸 그러냐’ 이렇게 하기도 쉬워요. 사람은 누구나 다 자기 입장에서 그렇게 말할 수가 있어요.

인간관계에서 생기는 갈등은 꼭 이해관계가 얽혀 있거나 어느 한쪽이 나빠서 싸우는 것만은 아니에요. 부부가 너무 친해도 갈등이 생기는 이유는 다 자기 마음 같이 생각해서 그래요. 내가 생각하기엔 별거 아닌 일도 상대에게는 굉장히 기분이 나쁘거나 모욕적일 수도 있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가 그걸 다 헤아리기가 어려워요. 물론 그것까지 다 헤아릴 수 있으면 제일 좋죠. 하지만 우리 수준이 다 부처님 수준이 안 되다 보니까 그렇게까지 헤아리지는 못해서 남을 짜증 나게 하기도 하고 자기도 짜증을 내면서 사는 거예요.

내가 짜증을 낼 수도 있고, 나도 모르게 남을 짜증 나게 할 수도 있어요. 그런데 질문자는 지금 짜증이 난 일로 꽁해 있는 게 문제예요. ‘짜증이 났다’라는 사실 자체가 문제가 아니에요. 짜증이 난 지 며칠이 지났는데도 아직도 그걸 가지고 질문을 할 정도로 꽁해 있으니 제가 ‘성질이 더럽다’라고 표현하는 거예요. (웃음) 짜증을 냈기 때문에 성질이 더럽다는 게 아니라, 그걸 가지고 꽁해 있으니까 성질이 더럽다는 말이에요.”

“인정합니다.” (웃음)

“내가 뭔가를 했는데 상대가 짜증을 내면 ‘왜 그만한 일에 짜증을 내나’ 하고 ‘욱’하다가도 ‘아, 그럴 수도 있겠구나’하고 내려놔야 해요. 또 상대가 뭐라고 해서 나도 짜증을 팍 냈다가도 ‘아이고, 그 사람 입장에서는 그럴 수 있겠구나’ 이해하고 그 짜증이 오래 안 가야 해요. 물론 짜증을 안 내면 제일 좋죠. 그거야 말해서 뭐하겠어요. 그러려면 찰나 찰나에 깨어있어야 짜증이 안 일어나요. 그런데 우리는 일이든 뭐든 자기 생각에 빠져 있다 보니 상대를 짜증 나게 하기도 하고 자기도 짜증을 내면서 살아요.

그러나 하루 지나고, 이틀 지나고, 사흘 지나고, 심지어 한 달 지났는데도 지난 일을 가지고 ‘네가 그때 그랬지!’하고 꽁해있으면 수행자라 할 수 없어요. 그래서 성질이 더럽다는 거예요. 적어도 꽁하는 습관은 버려야 합니다. 질문자더러 성질이 더럽다고 한 건 짜증을 내서 성질이 더럽다고 한 게 아니에요. 짜증이 난 게 며칠 전 일인데도 며칠 지난 얘기를 오늘까지 붙들고 있다가 질문까지 할 정도로 꽁해 있으니까 그 성질이 더럽다는 뜻이에요.” (웃음)

“알겠습니다.”

이 외에도 다음과 같은 질문이 있었습니다.

  • 저는 2년 동안 공황장애를 앓고 있는 고2 딸을 둔 엄마입니다. 학교에서 중요한 시험을 칠 때마다 아이는 패닉 어택이라는 호흡곤란이 오고 힘들어합니다. 아이를 편하게 해 주려고 괜찮다고 하지만 제 속에선 그래도 시험을 잘 쳐주길 바라고 있는 걸 느낍니다. 아이를 위해서 어떻게 기도해야 할까요?
  • 신자에서 수행자로서의 삶을 지향하면서 처음에 가졌던 극락왕생의 목표가 사라지면서 기도가 간절하지 않고 관점이 잘 안 잡힙니다.
  • 저는 화가 많습니다. 언젠가 스님 법문에서 화가 많은 사람은 자비관 수행을 해야 한다고 들었습니다. 자비관 수행은 어떻게 하면 되는지요?

즉문즉설을 마치고 스님이 질문자들에게 한 줄 소감을 물어보았습니다. 누군가가 일을 시키면 짜증이 난다는 질문자도 소감을 이야기했습니다.

“꽁한 걸 들켜서 좀 부끄러운 마음입니다. 꾸준히 정진하겠습니다.”

“네, 인정을 하니 다행이에요.” (웃음)

마지막으로 스님이 닫는 인사를 했습니다. 농사일이 바빠지는 시기여서 많은 분들이 자원봉사를 하러 와줄 것을 당부했습니다.

“각 지부별로 으뜸절이 있다고 들으셨죠? 대구와 경북은 아도모례원, 부산과 울산은 경주 천룡사, 경남은 장수 죽림정사, 광주와 전라는 미륵사, 대전과 충청은 문경수련원, 수도권은 정토사회문화회관이 있습니다.

으뜸절마다 일거리가 아주 많으니 많이들 오셔서 봉사를 좀 해주세요. 특히 요즘은 함께 할 수 있는 일이 정말 많아요. 으뜸절마다 농사를 짓다 보니 감자 캐는 일도 해야 하고, 19일에는 들깨 모종을 내는 일도 해야 합니다.

이곳 두북 수련원에도 일이 많아요. 저는 아침 5시부터 밭에 나가 일을 하고 있습니다. 재활용 창고에 가면 물품을 분류하는 일도 많고, 밭에는 풀도 뽑아줘야 해요. 이렇게 일거리가 많으니까 집에 그냥 있기 무료한 분은 하루에 2시간이라도 참여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굳이 바쁜 사람더러 오라는 건 아니에요. 그러나 조금만 시간을 내서 곳곳에 봉사를 해주셔야 정토회가 유지될 수 있습니다. 정토회는 월급 받고 일하는 사람이 한 명도 없습니다. 전부 여러분의 자원봉사를 통해 운영되고 있으니까 여러분도 시간을 조금씩 내서 참여해주시기 바랍니다.”

생방송을 마치니 밤 9시가 다 되었습니다.

내일은 하루 종일 비가 온다는 일기예보입니다. 스님과 두북 공동체 전체 성원들은 오랜만에 농사일과 창고 정리하는 일을 내려놓고 주위에 역사 유적지 탐방을 하며 소풍을 다녀올 예정입니다.

전체댓글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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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

좋은말씀 감사합니다~

2021-06-16 13:42:53

차지은

성질이 더럽다는 말씀이 꼭 저에게 해주시는 말씀 같습니다. 마음에 담아두고 두번째 세번째 화살을 계속 맞고 있는 저를 봅니다.
법을 알고나서는 법문으로 어리석은 마음을 밝히고 스스로를 돌아보며 꽁한 마음을 풀어낼 수 있어 참 다행입니다^^

2021-06-15 06:45:05

장영현

제 이야기인것 같아 마음에 확 와닿았습니다.

2021-06-07 23: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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