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1.5.16. 영어 통역 즉문즉설, 화엄반 주말 수련, 일요명상
“과거의 잘못을 생각하면 창피하고 화가 납니다, 어떡하죠?”

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영어 통역으로 즉문즉설을 하고, 화엄반 직장인 주말 수련에 함께 한 후 온라인 일요명상을 생방송했습니다.

새벽 기도와 명상을 마친 후 두북 수련원 방송실에서 오전 8시에 영어 통역 즉문즉설을 시작했습니다. 이번 달부터 매달 2회씩 외국인을 위한 영어 통역 즉문즉설을 진행하기로 했습니다.

도쿄, 워싱턴, 보스턴 등 전 세계에서 스님과 대화를 나누기 위해 화상회의 방에 입장했습니다. 사회자부터 스태프, 질문자까지 스님을 제외하고는 일체 영어로만 강연이 진행되었습니다.

먼저 스님이 반갑게 인사말을 했습니다. 코로나 사태가 가져다준 좋은 면과 나쁜 면을 이야기하며 좀 더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어떤 삶의 자세를 가져야 하는지 이야기했습니다.

“온라인상으로 만나서 반갑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서 우리가 온라인상으로 밖에 만날 수 없다는 것은 나쁜 일이지만, 코로나 바이러스 덕분에 온라인상으로 세계 곳곳에 있는 여러분들을 동시에 만날 수 있다는 것은 큰 복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일에는 이렇게 좋은 면과 나쁜 면, 장점과 단점, 이런 면과 저런 면이 항상 동시에 일어납니다. 그런데 우리는 주로 부정적인 측면에 집착하기 때문에 인생이 괴롭고 힘듭니다. 부정적인 측면 뒷면에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우리는 어려운 일이 닥쳤을 때도 빙긋이 웃을 수 있습니다. 또 내가 원하는 좋은 일이 일어날 때도 그 이면에 앞으로 그것으로 인해서 닥칠 재앙을 예견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좋다고 너무 들뜨지 않게 됩니다.

어떤 사람이 나를 비난한다면 그것은 일시적으로는 기분 나쁜 일이지만, 그 일로 인해 다음에 그 사람이 나를 바르게 이해하게 되었을 때 칭찬하는 것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이 나를 칭찬한다면 그 사람이 나에 대해서 지나친 기대를 갖기 쉽기 때문에 앞으로 실망해서 비난하는 것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칭찬에 들뜨지 말고 비난에 성내지 마라.’

지금까지는 한 면만 보았기 때문에 기분이 좋으면 감정이 높이 올라갔다가 기분이 나쁘면 감정이 깊게 떨어지는 진폭이 컸습니다. 그러나 이런 이치를 알고 양면을 동시에 보게 되면 감정의 기복이 잔잔한 호수처럼 완만해집니다. 오늘 여러분과의 대화도 이런 양면을 동시에 보는 연습을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럼 대화를 시작해보겠습니다.”

사전에 세 명이 질문 신청을 했습니다. 차례대로 한 명씩 자신의 괴로움을 스님에게 이야기했습니다. 그 중 한 명은 과거에 잘못했던 행동들을 생각하면 창피하고 화가 난다며 부정적인 감정으로부터 벗어나는 방법을 질문했습니다.

과거의 잘못을 생각하면 창피하고 화가 납니다, 어떡하죠?

“My question is about times in the past when I have done either thoughtless or unkind things to other people. My self-image is one that I feel like I am a good person, and yet these memories that I have these times when I made mistakes in the past challenge that notion. So I still feel sometimes ashamed or angry with myself for some of those actions that I did even if they were years ago. I was wondering if you have some advice on how to let go of those negative thoughts and negative emotions.”
(제 질문은, 과거에 다른 사람들에게 생각 없이 또는 불친절하게 한 것에 대해서입니다. 제가 생각하는 나는 좋은 사람인 것 같지만 과거에 잘못한 기억들이 제 스스로에 대한 이미지에 도전하는 것 같습니다. 비록 오래전에 있었던 일이지만 그때에 했던 나의 행동을 생각하면 나는 아직도 나 자신이 창피하고 화가 납니다. 어떻게 하면 이런 부정적인 생각과 감정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지 스님의 조언을 부탁드립니다.)

“과거나 지금이나 똑같습니다. 과거에는 잘못을 했고, 지금은 잘하고 있는 게 아니에요. 과거에는 현실의 나보다 내가 좀 잘났다고 생각하고 다른 사람을 좀 함부로 대했어요. 그러면 지금은 잘났다는 생각을 버렸느냐? 아니에요. 그래서 제가 과거나 지금이나 같다고 말하는 겁니다. 지금은 반성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왜 같다고 말할까요?

현실의 나는 잘못할 수 있는 평범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질문자는 ‘내가 너무 잘난 사람이라서 잘못할 수가 없다’ 이렇게 생각하는 거예요. 하지만 내가 잘못하는 일이 벌어진 겁니다. 잘못한 게 부끄러워서 지금 창피해 하는 거예요. 그때 실수한 게 후회스러운 겁니다. 그래서 지금 고민이 되는 거예요. 질문자는 아직도 자기가 잘난 사람이라는 것을 움켜쥐고 있습니다. 이해가 되셨나요?”

“It seems like you are talking about ego about how my ego is getting in the way and not allowing me to think of that as part of my current behavior, who I am now.”
(스님은 저의 에고에 대해서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저의 에고가 현재 있는 그대로의 나를 볼 수 없게 한다는 말씀이신 것 같습니다.)

“불교공부를 하신 분이네요. 불교공부를 많이 한 것이 지금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 큰 장애가 되고 있습니다. 현실을 직시해야지 어디서 배운 걸 갖고 대화를 하면 안 됩니다. 다시 시작하겠습니다.”

“Yes.”

“실제의 나를 보면 나라는 사람은 잘못할 수 있는 사람이에요. 어떤 것을 틀릴 수도 있는 겁니다. 모를 수도 있는 거예요. 모르면 물어서 알면 됩니다. 틀렸으면 고치면 돼요. 잘못했으면 ‘죄송합니다’ 하고 참회하면 됩니다. 아무런 문제가 안 돼요.

그런데도 질문자는 자신에 대해서 어떤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나는 다 안다’, ‘나는 틀릴 수 없다’, ‘나는 잘못할 수 없다’, 이런 생각을 자기도 모르게 하고 있는 거예요. 하나하나 따지면 잘못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냥 막연히 ‘내가 하는 일은 다 옳다’ 이런 생각을 하고 살아갑니다.

옛날에 질문자가 불친절했거나 화를 냈거나 고집을 했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가 나빠서 그런 행동을 한 게 아니에요. ‘내가 옳다’라고 생각하고 그냥 한 행동인데 다른 사람한테 많은 상처를 주게 된 거예요. 나이가 들어서 지나 놓고 보니까 ‘내가 조금 건방졌구나. 내가 잘난 척했구나’ 이걸 알게 된 겁니다. 앞으로는 그렇게 안 하면 되는 거예요. 오히려 옛날 경험을 생각해서 이렇게 생각해야 합니다.

‘앞으로는 말을 하거나 행동할 때 항상 주의해서 그런 실수를 반복을 하지 않아야 되겠다. 혹시 실수를 하더라도 금방 고쳐야 되겠다’

그런데 질문자는 옛날에 잘못한 게 계속 부끄러운 거예요. 그때를 생각하면 창피한 마음이 드는 겁니다. 왜냐하면 아직도 잘났다는 생각을 못 버렸기 때문입니다. ‘잘난 내가 어떻게 그런 바보 같은 짓을 했을까?’ 이러면서 지금 그런 행위를 한 자신이 용서가 안 되는 거예요. 잘났다는 생각이 옛날에는 남을 괴롭혔다면, 지금은 자기를 괴롭히는 겁니다. 그러니 그런 생각 속에 사로잡히지 말고 현실의 나를 있는 그대로 보세요.

우리는 다 부족합니다. 나도 부족하고 다른 사람도 부족합니다. 부족하기 때문에 겸손해야 하는 겁니다. 다른 사람들도 부족하니까 좀 잘 봐줘야 되는 거예요. 잘못된 걸 가지고 너무 따지면 안 된다는 거예요.

그리고 과거의 잘못에 대해서 그 사람이 ‘너 예전에 나를 괴롭혔잖아’라고 따진다면 ‘죄송합니다. 그때 제가 뭘 모르고 어리석어서 그런 실수를 했습니다’ 하고 사과를 해야 됩니다. 지금 질문자가 그걸 부끄러워하는 것은 지금의 자기도 괴롭힐 뿐만 아니라 그 사람들에게도 아무 도움이 안 됩니다.

내가 부족하다는 걸 알면 부끄러운 마음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습니다. 이것은 자아가 있느니 없느니 하는 문제와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영혼이 있는지 없는지, 자아가 있는지 없는지 이런 것을 따질 게 아니라 현실을 직시하라는 거예요. 신이 있는지 없는지, 천국이 있는지 없는지, 윤회를 하는지 안 하는지, 이런 것은 다 믿음의 문제이고 관념의 문제입니다. 이런 것들은 각자 자기 좋을 대로 하라고 맡겨야 합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지금을 직시하는 겁니다. 질문자는 과거 때문에 괴로워해도 안 되고, 지금 때문에 괴로워해도 안 되고, 미래 때문에 괴로워해도 안 됩니다. 과거에 잘못한 게 있다면 지금 그런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 교훈으로 삼아야 합니다. 그래야 현재와 미래의 나에게 큰 도움이 됩니다.”

“I don’t want to go too long, but I do have afollow-up question if that’s OK.”
(시간이 좀 오래 걸리는 것 같지만 괜찮으시다면 추가 질문이 있습니다.)

“네, 질문하세요.”

관념을 내려놓고 현실을 직시하라는 스님의 답변에 큰 울림이 있었는지 질문자의 얼굴 표정이 환해졌습니다. 이제 구체적인 실천 방법을 질문했습니다.

제가 구체적으로 어떤 실천을 해야 할까요?

“These behaviors I am talking about are things I have been doing my whole life, cogitating on these issues. It is very wonderful to hear you say things like ‘forgive yourself’ or ‘stop thinking in that way’. Philosophically I understand what you are saying but It would be helpful for me if you have some specifics actions or tools that I could take rather than the general ideas of ‘forgive yourself’ or ‘start thinking differently’.
(제가 말하고 있는 이런 행동들을 제 평생 계속해서 해 온 것 같습니다. 이에 대해 심사숙고해 왔습니다. ‘자신을 용서하라’ 또는 ‘그런 식으로 생각하는 것을 멈춰라’ 하는 스님의 말씀은 참 좋은 말씀이고 철학적으로는 이해가 됩니다. 그러나 ‘자신을 용서하라’ 또는 ‘관점을 바꾸어라’와 같은 보편적인 말씀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실천 방법들을 알려 주시면 도움이 되겠습니다.)

“무엇이 문제예요? 구체적으로 문제가 무엇인지 이야기해 보세요.”

“I will remember someone that I knew years ago and start having happy thoughts of the times that we shared. Then my mind will drift to a point where I start remembering this unkind thing. I did and how it damaged that relationship. Then I get angry at myself.”
(오래 전에 알던 사람을 기억하고, 우리가 함께 나누었던 행복했던 시절을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다가 나의 마음이 표류하면서 내가 불친절하게 했던 일과 그 일로 인해서 그 관계를 망쳤던 순간이 떠오르고, 나 자신에게 화를 내게 됩니다.)

“머릿속에서 과거의 일이 지금처럼 인식되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에요. 그럴 때는 다른 생각을 해보세요. 옛날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으로 돌아오는 겁니다.

예를 들어 비디오를 보면서 사람이 죽거나 헤어지는 걸 보면 눈물이 납니다. 이때 어떻게 하면 눈물을 멈출 수 있을까요? 그냥 화면을 꺼 버리면 됩니다. 그러면 아무것도 없어요. 조금 있으면 눈물이 마르고 진정이 됩니다.

질문자는 자꾸 과거를 돌이켜 생각하는 습관이 있습니다. 현재에 살고 있지만 늘 머릿속에는 과거 생각이 자꾸 떠오르고 그것 때문에 현재의 삶에 장애를 받는 거예요.

여기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명상을 하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호흡에 깨어있기, 지금 숨이 들어오고 나가는 데에 깨어있는 연습을 꾸준히 해보세요. 과거로 생각이 끌려갈 때마다 다시 호흡으로 돌아오는 연습을 자꾸 하면 생각이 과거로 돌아가는 것을 조금 막을 수 있습니다.

어쩌면 그 사람을 만나서 내가 불친절했던 것에 대해 사과하면 그 사람은 기억도 못 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질문자 혼자서 환상을 보고 괴로워했다는 것이 되잖아요. 이것은 마치 밤에 꿈을 꾸다가 꿈속에서 남을 때렸는데, 꿈에서 깨어나서도 ‘어제 내가 밤에 사람을 때렸는데 정말 미안하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과 같은 겁니다.”

이 외에도 다음과 같은 질문이 있었습니다.

  • 새로운 부서에서 일하도록 배정받았습니다. 갑작스러운 변화에 혼란스럽습니다. 그동안 함께 일했던 동료들은 가족 같고 아직 이 부서에서 해보고 싶었던 일들이 많이 남아있습니다. 단순한 부서 이동일 뿐인데 세상이 뒤집힌 것 같이 느껴집니다. 저는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 결혼 후 남편과 육체적 관계가 전혀 없고, 키스도 못 해봤습니다. 남편은 매우 일상적이지 않게 화를 냅니다. 생활비를 전혀 주지 않아서 스스로 돈을 벌고 싶지만, 남편을 창피하게 만든다고 화를 냅니다. 이런 문제점들을 어떻게 헤쳐 나가야 할까요?

즉문즉설이 끝나고 스님이 질문자에게 한 줄 소감을 물어보았습니다. 과거의 잘못을 생각하면 창피하고 화가 난다고 했던 질문자도 소감을 말했습니다.

“You have given me a lot to think about and I really appreciate this. I look forward to taking these tools you have given me and putting them to use. I’ll give you an update on how things go. Thank you very much.”
(스님은 저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였고, 그것에 대해 정말 감사드립니다. 스님이 주신 여러 가지 실천 방법들을 잘 사용하겠습니다. 나중에 제가 얼마나 잘하고 있는지 알려드리겠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스님은 질문한 분들을 다시 한번 격려해준 후 방청객 중에서도 한 두 명의 소감을 더 들어본 후 생방송을 마쳤습니다.

스님이 합장으로 인사를 하자, 사회자가 나와서 마무리 멘트를 했습니다.

“Thank you everyone for coming today. I hope you enjoyed the talk.”(오늘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시간 되셨길 바랍니다.)

참가자들이 손을 흔들자, 스님도 손을 흔들며 인사를 했습니다.

생방송을 마치고 스님은 곧바로 작업복으로 갈아입었습니다. 법사 수계를 앞두고 회향 수련을 하고 있는 화엄반 직장인 행자님들과 함께 울력을 하기 위해서입니다.

스님과 행자님들은 수련원 옆밭으로 가서 잡초를 맸습니다. 두둑과 두둑 사이에 잡초가 작물보다 더 크게 자라 있었습니다. 스님과 행자님들이 지나가자 땅이 드러났습니다.


고랑뿐만 아니라 밭 구석구석에 자란 잡초를 깨끗이 뽑았습니다.



무성한 풀 사이로 널브러져 있었던 철사, 철근도 치웠습니다.

비어 있던 두둑에 상추 모종을 심었습니다.


고랑에 잡초가 나지 않도록 잡초 매트를 깔았습니다. 여러 번 사용해서 너덜너덜해진 매트를 잘 이어 붙였습니다.



울력을 마치고 나서 팽나무 밑에 앉아서 마음 나누기를 했습니다.

“밭이 정리되니 기분도 함께 맑아졌습니다.”

“풀 뽑는 걸 좋아하는데 오랜만에 일 같은 일을 해서 참 좋았습니다. 두 시간 동안 즐겁고 행복했습니다.”

“살면서 이렇게 흙 만질 일이 없었는데 잡념 없이 풀만 뽑으니까 좋았습니다. 사람 손 무섭다는 어르신들 말이 와 닿았어요. 잡초를 다 제거하고 나니 마음이 시원합니다.”

마지막으로 스님도 마음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일을 끝내고 밭이 깨끗해진 모습을 보면서 사람 손이 무섭다는 말을 제가 했는데요. 그때 북한 사람들 생각이 났어요. 북한에서는 고난의 행군 시기에 부모들이 자식한테 ‘당을 믿지 말고 네 손을 믿어라’ 이렇게 말했다고 해요. 산에 가서 뙈기밭을 일구어야 목숨을 연명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일을 하다 보면 연장을 쓰고 난 후 뒷정리를 잘 안 해 놓아요. 철심도 뽑아서 아무 데나 던져놓고, 호미도 아무 데나 던져놓고, 나중에 풀을 베다 보면 풀숲에 연장이나 자재가 여기저기서 발견됩니다. 부직포도 걷어서 차곡차곡 개어 놓았다가 다시 사용해야 하는데 담벼락 밑에다 버려 놓는 경우가 많아요. 이런 모습을 보면 아직도 지금 하는 일만 열심히 하지 다음에 다시 사용할 것을 생각해서 뒷마무리를 잘 못하는 것 같아요.

밭을 정비했다고 하는데 모퉁이가 반듯하게 정리가 안 되어 있습니다. 가운데만 밭으로 사용하고 모퉁이는 버려두거든요. 밭을 제대로 정비하려면 돌을 싹 골라내고, 깔끔하게 정리해서 사용해야 하는데, 아마도 일손이 부족해서 그런 것 같아요. 여러분들이 오셔서 일손을 거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같이 일해서 좋았습니다.”

오전 울력을 마치자마자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점심을 먹으려고 장갑을 벗는데 파주법당에서 물품을 실은 트럭이 도착했습니다. 봉사자들이 아직 도착하지 않았는데 비가 내리기 시작해서 스님과 행자님들이 급히 달려가 짐을 내렸습니다.


창고 입구까지 짐이 가득 차 있어서 짐을 안쪽으로 밀고 바닥재부터 차곡차곡 쌓았습니다.




큰 가구들까지 거의 다 옮겼을 때 봉사자들이 도착했습니다. 뒷정리는 봉사자들이 하기로 하고 울력을 마쳤습니다.

점심을 먹고 계속 비가 내려 오후에는 재활용 창고 안에서 울력을 했습니다. 재활용 유통 담당자는 컴퓨터를 정리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창고에는 전국 법당을 정리하고 나온 컴퓨터 상자가 쌓여 있었습니다. 모두 의욕 넘치게 정리를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일 나누기를 하지 않으니 효율적이지 않았습니다. 스님이 얼른 정리를 했습니다.

“자, 상자를 뜯는 사람과 부품을 옮겨주는 사람, 포장을 하는 사람으로 나누어서 일을 합시다.”

역할을 나누니 일이 훨씬 빠르게 진행되었습니다. 상자를 열어 본체는 본체대로, 키보드는 키보드대로, 마우스는 마우스대로, 선은 선대로 하나하나 확인하고 다시 포장을 꼼꼼히 해서 따로 모았습니다.




컴퓨터 상자를 정리하고 나니 창고에 공간이 조금 생겼습니다. 재활용 유통 담당자가 기뻐하며 말했습니다.

“두 파렛트가 치워졌네요. 고맙습니다.”

창고 울력을 마치고 수련실로 돌아와 대화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어제에 이어서 각자 자신이 수행 과제로 삼고 있거나, 평소 공부하면서 궁금했던 내용을 편안하게 질문했습니다.

충분히 대화를 나누고 더 이상 질문이 없자 스님이 마무리 말씀을 해주었습니다.

“아마도 ‘법사’라는 이름이 갖는 무거움이 있을 겁니다. 똑같이 밥 먹고, 똑같이 똥 누고, 똑같이 성질내고 사는데, 주위에서 ‘법사님’ 이렇게 부르니까 부담이 될 거예요. 수행자가 아닌 사람은 그것 때문에 오히려 위축이 될 가능성이 높죠. 그러나 부족한 줄 알면서 법사 소임을 맡게 되면 그 부족함이 오히려 나를 겸손하게 만들어 줍니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얘기가 있잖아요. 법사의 역할을 하다 보면 자기 절제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평범한 사람도 머리 깎이고 먹물 옷 입혀 놓으면 억지로라도 염불을 해야 하고, 억지로라도 절제하는 척하다 보면 사람이 점점 그렇게 변해 갑니다. 똑같은 사람인데 사관학교 보내서 장교로 임명해 놓으면 당당해지는데, 사병으로 보내 놓으면 위축이 되는 것과 같아요. 그러니 부담 갖지 말고 조금 가볍게 임해 보세요.”

6시가 넘어 스님은 자리에서 일어나고, 화엄반 행자님들은 1박 2일 동안의 주말 수련을 마치며 마음 나누기를 했습니다.

해가 지고 저녁 8시 30분부터는 온라인 일요명상을 시작했습니다. 코로나 사태 이후 58번째 진행하는 온라인 명상 시간입니다.

먼저 스님이 인사말을 했습니다. 한국에 내린 봄비 소식을 전했습니다.

“한 주 동안 잘 지내셨어요? 제가 있는 이곳 한국 남부 지역은 지금 봄비가 주룩주룩 내리고 있습니다. 봄에는 비가 자주 와야 곡식이 잘 자랄 수 있어요. 올 봄에 조금 건조했었는데, 어제부터 시작한 비가 내일까지 내린다고 하니 농사짓는 사람들은 아주 기뻐할 일입니다.

촉촉이 내리는 비처럼

또 폭우가 쏟아지지 않고 내리기 때문에 땅이 아주 깊숙이까지 촉촉하게 젖고 있습니다. 비라는 것은 너무 안 와도 문제이고, 너무 많이 와도 문제이거든요. 농사짓는 사람에게 비는 사람에게 있어서 사랑과 같은 것 같아요. 사랑이 너무 많으면 간섭이 되고, 사랑이 너무 적으면 외면이 되잖아요. 사람과의 관계는 너무 외면해도 안 되고, 너무 집착해서 간섭해도 안 됩니다. 촉촉이 비가 내리는 것처럼 적당한 거리를 두고 은근하고 지속적인 관심을 갖는 것이 필요합니다.

명상도 이와 비슷합니다. 잘하려고 조급해해서도 안 되고, 안 된다고 포기해서도 안 돼요. 편안한 가운데 꾸준히 해나가야 합니다. 오늘 비가 촉촉하게 오는 것처럼 차분하게 명상을 해보겠습니다.”

이어서 지난주에 영어로 올라온 질문에 대해 답변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답변을 마치고 나서 명상을 시작했습니다.

“몸과 마음을 편안히 하고 한가한 마음을 갖습니다. 긴장하지도 말고, 조급해 하지도 말고, 잘하려고 애쓰지도 말고, 하기 싫어서 게으르지도 말고, 편안한 가운데 꾸준히 해 나갑니다.

관심을 코끝에 두면 저절로 숨이 들어가고 숨이 나오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숨이 들어갈 때 들어가는 줄 알고, 나올 때 나오는 줄을 압니다. 머릿속에서 어떤 생각이 떠오르더라도 의미를 부여하지 말고 다만 들숨과 날숨을 알아차립니다. 나도 모르게 떠오르는 생각들에 관심을 빼앗겨서 숨의 알아차림을 놓치게 되면 다시 관심을 코끝에 두고 들숨과 날숨을 알아차립니다. 호흡을 놓친 것을 후회하지도 않고, 다시 알아차리려고 애쓰지도 않고, 다만 놓치면 다시 할 뿐입니다.”

탁, 탁, 탁!

죽비 소리가 울리고 40분 간 명상을 했습니다.

명상이 끝나자 실시간 댓글창에는 수십 개의 소감이 올라왔습니다. 스님이 한 줄 한 줄 직접 읽고 피드백을 해주었습니다.

“호흡이 집중되지 않고 잡념만 가득했습니다.”
“I wasn't able to concentrate on my breath and was just distracted instead.”

“코끝에 의식을 두니 호흡이 선명해집니다”
“When I shift my attention to the tip of my nose, the breath becomes clear.”

“시작에는 호흡이 거칠었는데 눈뜰 때 쯤에는 머리도 몸도 가벼웠습니다.”
“My breath was rough to begin with by the time we ended the meditation my breath and my body and my mind were lighter.”

“마음이 편안합니다. 생각이 꿈같이 일어났지만 알아차리고 호흡으로 돌아왔습니다.”
“My mind was relaxed and peaceful. Thoughts came to me like a couple of clouds but I was able to be mindful and come back to the breath.”

“편안하게 잘할 수 있어 좋았습니다.”
“I was able to do well and in a peaceful state”.

“끝나기 10분 전부터 몸에 열이 많이 났습니다.”
“My body actually heated up about 10 minutes before the end.”

“머릿속이 시원해졌습니다.”
“Inside of my head feels refreshed.”

“호흡에 집중되니 몸이 가벼워집니다.”
“My body feels lighter than when I now focus on the breath.”

마지막으로 스님이 닫는 인사를 했습니다.

“다들 잘하셨습니다. 호흡을 알아차리기도 하고, 놓치기도 하고, 다리가 아프기도 하고, 졸기도 하고, 다 명상을 했기 때문에 일어난 현상입니다.”

다음 주에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며 생방송을 마쳤습니다.

내일도 하루 종일 비가 온다는 일기예보입니다. 오전에 전법활동가 법회를 한 후 오후에는 비닐하우스에서 농사일을 할 예정입니다.

전체댓글 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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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제가 원하던 질문을 해주시고 그리고 그 질문에 답해주셔서. 제가 지금부터 뭘 해야 할지 알게 됐네요. 저도 그 방법을 지금부터 사용해 봐야 겠네요. 정말 감사 합니다

2021-09-21 10:22:17

박재석

감사합니다 제 얘기같군요 정말 감사합니다

2021-05-25 07:48:51

금강화

스님 감사합니다 🙏

2021-05-23 08: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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