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1.5.15 천일결사 기도, 스승의 날, 화엄반 주말 수련
“올바른 수행을 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

안녕하세요. 오늘은 스승의 날입니다. 스님은 천일결사 기도 생방송을 마친 후 은사 스님이신 도문 큰스님을 찾아뵙고 인사를 드린 후 오후에는 법사교육을 받고 있는 화엄반 행자님 중 직장을 다니는 분들과 주말 수련을 했습니다.

새벽 4시 30분, 종성을 들으며 명상을 한 후 예불을 마치고 5시 정각에 제5차 백일기도 27일째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4000여 명의 천일결사자들이 생방송에 접속한 가운데 다 함께 삼귀의, 수행문, 참회, 108배를 한 후 경전 독송을 했습니다.

“꽃 향기는 바람을 거스르지 못한다.
전단향, 따가라향, 재스민향도 그러하다.
그러나 계행의 향기는 바람을 거슬러 가기도 한다.
계행을 갖춘 참사람의 향기는 모든 방향으로 퍼진다.

전단향, 따가라향, 연꽃향, 재스민향이 있지만
그 어떤 향기보다 계행의 향기가 으뜸이다.”

사홍서원으로 천일결사 기도를 마친 후 스님이 법문을 해주었습니다. 먼저 백일기도를 새로 시작한 후 한 달 간의 고비를 무사히 넘긴 초심자들을 격려해 주었습니다.

“제5차 백일기도가 시작된 지 4주가 지났습니다. 한 달 가까이 됐는데 만약 초심자들 중에 한 달 동안 빠지지 않고 아침 기도에 참여하고 지금 법문을 듣고 계시는 분들이 있다면 장하십니다. (웃음)

올바른 수행을 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

수행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방향성입니다. 무엇을 향해 정진하는가가 가장 중요합니다. 불교 교리를 많이 아는가, 지식을 많이 갖추느냐, 돈이 많으냐, 맛있는 걸 많이 먹느냐 하는 게 정진의 기준이 아닙니다.

‘일상 속에서 내가 얼마나 긴장하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고, 근심과 걱정 없이, 불안과 초조함 없이, 미움 없이, 외로움 없이, 슬픔 없이 살아가고 있는가?’

이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설령 아직 마음의 불편함이 있다 하더라도 1년 전과 비교해서, 또는 어제와 비교해서, 또는 불법(佛法)을 만나기 전과 비교해서 개선되고 완화되었다면 정진을 제대로 하고 있는 겁니다. 누군가 절에 들어와서 5년, 10년을 살았다고 해도 마음속에 미움이 늘었거나, 근심과 걱정이 늘었거나, 회의감이 늘었다면, 지금 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게 아닙니다. 가장 중요한 건 방향성입니다.

바른 방향을 잡았다면 그 다음에는 그 방향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래서 두 번째로 중요한 것이 꾸준함입니다. 하루하루를 두고 평가를 할 게 아니라 꾸준히 해야 합니다. 그래야 목표 지점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이어서 오늘 읽은 경전의 내용에 대해 법문을 해주었습니다.

“오늘 읽은 경전의 내용에는 향기는 바람을 거스르지 못한다는 말이 나옵니다. 전단향, 재스민향, 연꽃향 등 아무리 좋은 향기도 그 향기가 바람을 거슬러 가지는 못합니다. 그런데 아난존자가 바람을 거슬러 가는 향기가 있는지 부처님께 여쭈었습니다.

바람을 거스르는 인격의 향기

요즘 사람들은 과학 공부를 하니까 이런 질문을 하지 않겠지만 옛날에는 이런 의문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부처님께 질문한 겁니다.

‘바람을 거슬러 가는 향기도 있습니까?’
‘바람을 거스르지 못하는 향기도 있고, 바람을 거스르는 향기도 있다.’
‘어떤 향기가 바람을 거슬러 갈 수 있습니까?’
‘바로 인격의 향기다.’

사람의 몸과 마음에서 풍겨 나오는 인격의 향기는 바람과 관계가 없다는 말입니다. 아무리 좋은 향기도 바람의 방향으로 흘러가지만, 인격의 향기는 바람에 구애받지 않고 주변에 퍼진다는 의미죠.

인격의 향기가 뭘까요? 바로 계(戒)를 지키는 사람에게서 나오는 향기입니다. 그래서 예불을 할 때 계향(戒香)을 가장 먼저 말하는 겁니다. 부처님께 아무리 좋은 꽃의 향기를 공양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제일의 공양이 아닙니다. 부처님께 올리는 제일의 공양은 바로 계의 향기입니다. 이는 마음가짐을 바르게 하는 수행 정진의 향기입니다. 남을 미워하거나 원망하는 마음을 가져서는 안 됩니다. 바른 마음가짐을 가져야 합니다.

나아가 바른 마음가짐뿐만 아니라 바른말과 행동을 해야 합니다. 사람의 행동이 바르다는 것은 첫째, 남을 때리거나 해치지 않는 것을 뜻합니다. 둘째, 남의 물건을 훔치거나 뺏거나 손해 끼치지 않는 것을 뜻합니다. 셋째, 남을 성추행하거나 괴롭히지 않는 것을 뜻합니다. 즉, 남을 해치지 않고, 남에게 손해 끼치지 않고, 남을 괴롭히지 않아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악취를 풍기지 않는 행위입니다.

그러면 어떤 행동이 좋은 향기를 내뿜는 행위일까요? 첫째, 어려움에 처했거나 죽어가는 사람을 살리는 행위입니다. 둘째, 배고픈 사람에게 먹을 것을 주고, 병든 사람에게 약을 주고, 넘어진 자를 일으켜 세워주는 등 베푸는 행위입니다. 셋째, 두려움에 떠는 사람을 안온한 곳으로 인도하는 행위입니다. 상대방을 두려움에 떨게 하는 게 아니라 두려움에 떠는 사람을 편안하게 해 주고, 남을 괴롭히는 게 아니라 괴로워하는 사람을 안심하도록 해주는 것입니다. 이렇게 항상 바른 행동을 해야 이 좋은 향기가 주변에 퍼져나갑니다.

그러면 어떤 말이 좋은 향기를 내뿜는 말일까요? 말로는 욕을 하면서 행동으로는 잘해주는 사람들도 있고, 정작 행동은 좋게 해놓고 말로 다 까먹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말로라도 남을 해치거나 괴롭히지 말라

첫째, 욕설이나 비난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자비로운 말을 하고, 위로의 말을 하고, 부드럽게 말해야 합니다. 둘째, 거짓말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상대방을 속이거나 사기치는 말을 하지 않고, 항상 진실을 말하고 사실대로 말해야 합니다. 셋째, 남을 이간하지 말아야 합니다. 여기에서는 이 말을 하고 저기에서는 저 말을 해서 싸움을 붙이는 일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넷째, 가식적인 말이나 아양 떠는 말, 비위 맞추는 말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 역시도 크게 보면 거짓말에 들어갑니다.

종합해보면 말로라도 남을 해치거나 괴롭히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욕을 하는 건 말로 사람을 해치는 겁니다. 즉, 혀를 갖고 남을 찌르는 거예요. 거짓말은 남을 속여서 손해를 끼치는 겁니다. 이간질시키고 아양 떠는 건 말로 남을 괴롭히는 겁니다. 이런 말들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나아가 마음까지도 악한 마음을 가져서는 안 됩니다. ‘죽여버리고 싶다’, ‘뺏고 싶다’, ‘괴롭히고 싶다’ 하는 마음도 가져서는 안 됩니다.

이렇게 몸과 말과 마음으로 짓는 업을 신구의(身口意) 삼업(三業)이라고 합니다. 몸과 말과 마음으로 남을 해치는 것은 악취를 풍기는 것이고, 그런 말과 행동과 생각을 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남을 이익되게 하는 말과 행동과 생각을 하는 것은 인격의 향기를 풍기는 것입니다. 이럴 때 신구의 삼업이 청정하다고 합니다. 이런 인격에서 나오는 향기가 계율을 지키는 향기, 즉 ‘계향(戒香)’입니다. 향기 중 제일 으뜸은 계의 향기입니다.

언뜻 보면 향기에 대한 이야기 같지만 결국 수행자는 계율을 청정히 지키며 정진을 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계를 청정히 지킨다는 것은 자기를 잘 보호하고, 남에게도 이익이 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럴 때 해탈과 열반의 길로 나아가게 됩니다.

자기에게 깨어있기, 세상에 깨어있기

수행자는 교리를 많이 알고, 선정을 얼마나 닦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우선 자기의 행동, 말, 마음가짐부터 정갈하게 해야 합니다. 스님, 목사, 신부 등 겉으로 보이는 모습이나 박사학위, 높은 지위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 사람의 마음가짐과 일상적인 말과 행동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늘 상에 집착합니다. 그래서 내 가까이에 있는 부처 같은 사람을 겉모습만 보고 평가해서 하찮게 여깁니다. 말과 행동에서 악취가 나는데도 옷을 보고, 지위를 보고, 모양을 보고, 현란한 말만 듣고, 거기에 현혹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이런 관점을 분명히 가져야 하지만, 주위 사람들에 대해서도 이런 관점을 분명히 가져야 자기에게도 속지 않고, 남에게도 속지 않게 됩니다.

수행자라는 이름을 갖추지 않아도 성실하게 살아가는 주위 사람들을 소중하게 여겨야 합니다. 우리 자신의 모습을 한 번 살펴보세요. 내가 평민이면서 평민을 무시하고, 내가 여자이면서 여자를 무시하고, 내가 서민이면서 서민을 무시한 경우가 많습니다. 이렇게 살면 평생 종노릇을 하기가 쉽습니다. 물질의 종노릇을 하고, 세상에서 만들어 준 관념의 종노릇을 하면서, 껄떡거리며 살아가게 됩니다. 부처님 가르침의 위대함은 이런 허위의식을 버리고, 자기에게 깨어있고, 세상에 깨어있는 삶을 살도록 하는 것입니다. 하루를 살아도 건전한 마음가짐과 건전한 말, 건전한 행동을 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부처님께서는 이것을 깨우쳐 주셨습니다. 그 말씀만큼 따라가지 못하더라도 늘 그것을 목표로 할 수 있는 데까지 최선을 다하는 것이 수행자의 자세입니다.”

여기까지 법문을 한 후 다음 주 부처님 오신 날에 다시 만날 것을 언급하며 생방송을 마쳤습니다.

오늘은 스승의 날입니다. 스님은 스승의 날을 맞이해 은사 스님이신 도문 큰스님에게 인사를 드리기 위해 부산 중생사로 향했습니다.

출발하기 전 스님이 직접 골목길에 핀 장미꽃으로 꽃다발을 만들었습니다.

큰스님에게 드릴 상추도 한 봉지 뜯어서 정성껏 씻은 후 가방에 담았습니다.

비가 내리는 가운데 차로 1시간을 달려 중생사에 도착했습니다.

먼저 삼배로 인사를 드린 후 장미꽃을 선물로 드렸습니다.

“스승님, 감사합니다.”

큰스님은 꽃다발을 받고 무척 기뻐했습니다.

“감사합니다.”

큰스님은 용성 조사님이 일러 준 장아함대본경에 나온 석가모니 부처님의 탄생 송을 읊어 주었습니다. 스님은 무릎을 꿇고 앉아서 큰스님의 말씀을 경청했습니다.

“천상천하(天上天下) 유아위존(唯我爲尊) 요도중생(要度衆生) 생로병사(生老病死)”
(하늘 위와 하늘 아래 오직 내가 존귀하도다. 원하건대 중생의 생로병사를 제도하려 하노라.)

“법륜 스님이 이 탄생송을 초파일날에 외쳐서 가가호호 전 국민이 불도 수행을 하고 보살 국토를 이뤄야 한다 이 말입니다. 수운 최제우 선생은 백 년을 내다보는 안목을 가졌다면, 법륜 스님은 천 년을 내다보는 안목이 있으니 이 나라 이 민족이 저 사람에게 달려있다고 동헌 조사님께서 신신당부하셨어요. 그래서 이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 제가 거짓말을 하는 게 아니에요. 제 말을 허투루 듣지 마세요.”

“방금 읊어준 탄생 송을 부처님 오신 날에 법어로 낭독하겠습니다. 큰스님의 뜻을 잘 받들겠습니다.”

스님은 혼자서 큰스님 앞에 서서 ‘스승의 은혜’ 노래를 불렀습니다.

스승의 은혜는 하늘 같아서
우러러볼수록 높아만 지네
참되거라 바르거라 가르쳐 주신
스승은 마음의 어비이시다
고마워라 스승의 사랑
아아 보답하리 스승의 은혜

도문 큰스님의 눈에는 눈물이 맺혔습니다. 오늘을 기념하며 두 분이 함께 사진을 찍었습니다. 스님은 의자 아래 바닥에 앉으려고 했지만 큰스님은 옆에 앉으라고 호통을 쳤습니다.

부산 중생사에 사회 인사 한 분이 찾아와서 차담을 나눈 후 10시 40분에 다시 두북 수련원을 향해 출발했습니다. 중생사 앞마당에 달린 주름진 연등에는 빗방울이 계속 떨어졌습니다.

점심 식사를 한 후 오후 2시부터는 법사 수계식을 앞두고 회향 수련을 하러 온 화엄반 직장인 행자님들과 주말 수련을 함께 했습니다. 직장을 다녀야 해서 평일에는 회향 수련에 참석할 수 없어서 주말에 스님과 함께 일도 하고 대화도 나누기로 했습니다.

하늘을 가득 채운 구름은 물기를 잔뜩 머금었고 비를 기다리는 개구리도 우렁차게 울어댔지만 비는 내리지 않았습니다. 스님은 작업복으로 갈아입었습니다.

요리하는 행자님이 불 지피기 좋도록 화덕을 높였더니, 이번에는 솥이 너무 높아져 불편하다고 했습니다. 스님은 네모난 벽돌을 두장 더 가져와 발판으로 디딜 수 있도록 놓았습니다.

“이렇게 하면 쓰기 편하겠죠? 이제 밑밭으로 갑시다.”

산밑밭에는 법사 교육을 받고 있는 화엄반 행자님들이 울력을 하고 있었습니다.

먼저 5일 전 심었던 모종에 끈을 묶어주었습니다.

토마토와 오이는 줄을 타고 올라갈 수 있도록 모종마다 긴 끈을 내려주었습니다. 작년에 비닐하우스에서 썼던 끈이라 토마토를 다 수확하고 밭을 정리할 때 풀기 쉽도록 끈을 묶었습니다.




고추와 가지는 비바람에 쓰러지지 않도록 지지대에 끈을 3단으로 연결해주었습니다.


스님과 행자님들은 말없이 일에 집중했습니다. 어느덧 끈을 다 묶었습니다.

“이제 산아랫밭으로 갑시다.”

아랫밭에서 일을 시작하기 전에 화엄반 행자님들은 스승의 날을 맞아 스님에게 들꽃을 꺾어 만든 꽃다발을 건넸습니다.

“스승님, 감사합니다.”

“고마워요.”

산아랫밭에서는 고구마 두둑 사이에 잡초가 자라지 않도록 부직포를 깔았습니다.

작년에 쓰고 둘둘 말아두었던 부직포를 펼치며 두둑 사이로 나아가니 먼지가 풀풀 날렸습니다.




부직포를 깔고 바람에 날아가지 않도록 철심을 듬성듬성 박아 고정시켜주었습니다.


축축한 구름 사이로 뜨거운 햇살이 비춰 날이 몹시 더웠습니다.

길이가 짧은 부직포들은 이어 붙여 한 두둑에 깔고 길이가 긴 부직포는 자르지 않고 꺾어서 밭 앞쪽을 깔았습니다.

쉴 새 없이 움직여 여덟 두둑 사이를 다 메웠습니다.

“수고했어요. 간단히 씻고 30분 뒤에 법당에서 이야기 나눕시다.”

스님은 바로 내려가지 않고 다시 산밑밭에 들렀습니다. 아까 고추 끈을 묶어줄 때 꺾인 고추가 있었는데, 마침 고추 모종 하나가 트럭에 떨어져 있어서 주워다 심고 밭을 내려왔습니다.


5시 30분에 법복으로 갈아입고 법당에 모였습니다. 행자님들은 스님에게 삼배의 예로 법을 청했습니다.

“지난 1년 동안 직장을 다니는 가운데 법사 교육까지 받으시느라고 수고들 하셨습니다.”

스님은 재가 수행자도 왜 상가의 일원이 될 수 있는지, 직장인에게도 법사가 될 수 있는 길을 연 이유에 대해 법문을 해주었습니다.

“어제 법사님들과 정토대전 회의를 하면서 부처님께서 우바새의 경을 설하신 내용을 읽었어요. 그 경전에는 어떤 사람을 우바새라고 하는지에 대한 부처님의 말씀이 나옵니다. 우리는 우바새가 남자 신도를 의미한다고 생각하지만 경전에는 그 의미가 조금 다르게 나옵니다.

재가 수행자가 상가의 일원이 될 수 있는 이유

우바새 중에서도 수다원과를 증득한 사람, 사다함과를 증득한 사람, 아나함과를 증득한 사람이 각각 등장합니다. 성문 4과 중 3과까지 증득한 사람이 나온다는 것은 이들 모두가 상가의 구성원이라는 의미입니다.

부처님 당시에는 출가한다는 것 자체가 법문을 듣고 깨달음을 얻은 다음이니까 수다원과를 증득하고 나서 출가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어요. 왜냐하면 출가는 엄청난 자기 결단이 필요한 과정인 만큼 남을 따라서 출가한다는 것이 가능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출가한 스님들만 성인이 되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경전에는 그렇게 기록되어 있지 않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즉, 우바새는 신자가 아니라 재가에 있으면서 수행하는 수행자를 의미합니다. 그래서 우바새는 반드시 계율을 지켜야 하고, 신구의(身口意) 삼업(三業)을 청정히 해야 합니다. 그리고 ‘사제(四諦)를 성취한다’는 말이 나옵니다. 즉, 고집멸도에 대한 법을 체득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일반인들에게 고집멸도의 법을 설하지는 않았습니다. 일반인들에게는 좋은 일을 하면 하늘나라에 태어나고, 계를 청정히 지키면 많은 복이 오게 된다는 말씀을 주로 하셨어요. 어느 정도 수행의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판단이 드는 사람에 한해서만 사성제(四聖諦)를 이야기했습니다. 사성제의 법문을 듣고 이해를 했다면 수다원과를 성취한 수행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인의 첫 번째 단계에 들었다는 의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바새는 단순히 재가신자를 의미하는 게 아니라 삼보에 귀의하고, 계를 청정히 지키고, 법을 이해해서 성인의 류(流)에 든 사람을 뜻합니다. 부처님께서는 자기 인생의 모든 것을 정리하고 출가한 수행자들을 상가의 중심에 두었지만, 재가 수행자도 상가의 일부로 인정하신 겁니다.

직장인에게 법사가 될 수 있는 길을 연 이유

정토회도 이런 정신을 계승했습니다. 신자들의 모임이 아니라 수행자들의 모임입니다. 법사의 역할도 마찬가지예요. 이런 원(願)을 성취해 나가기 위해서 법사의 역할이 있는 겁니다. 물론 법사도 전법활동가로서의 의무는 똑같이 가집니다. 그러나 행정적인 일보다는 사람들의 마음공부를 도와주고 격려해주는 일을 주로 하게 됩니다. 법사의 역할은 내가 책임을 맡아서 하기보다는 다른 사람들이 그런 일을 잘할 수 있도록 수행을 지도해주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로 정토회에서는 법사의 길을 연 거예요.

물론 정토회에서는 재가 수행자를 상가의 중요한 부분으로 인정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직장을 다니면서 법사의 역할을 수행하기는 어렵지 않겠는가’ 하는 문제 제기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가족을 버리고 출가하지는 않더라도 적어도 전적으로 이 일에 집중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법사가 될 수 있다는 기준을 두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앞으로의 미래를 생각하면 직장에 다니는 사람도 법사가 될 수 있어야 이 길이 보편적인 길이 됩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은퇴를 하지 않은 이상 직장에 다니지 않고 정토회 활동에만 전념할 수 있는 사람은 극히 소수에 불과해질 거예요. 그래서 정토회에서는 직장에 다니는 사람에게도 법사가 될 수 있는 길을 연 겁니다.

전법활동가들조차도 직장 다니면서 정토회 활동까지 하는 것이 어렵다고 아우성입니다. 그러니 직장에 다니면서 법사의 역할까지 한다는 건 보통 사람의 마음가짐이라면 힘겨운 길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분은 이 길을 가겠다고 마음을 내셨으니까 직장일과 법사의 역할 두 가지 사이에서 조화와 균형을 잘 이루어야 합니다.

앞으로는 직장에 다니는 분들 중에서 더 많은 법사가 배출될 겁니다. 그러나 실제로 직장을 다니면서 법사 역할까지 함께 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니 직장에는 다니되 중심을 잘 잡고 임해주시기 바랍니다.”

이어서 스님이 울력을 해 본 소감을 물어보았습니다.

“울력을 하며 어땠나요?”

한 명씩 소감을 이야기했습니다.

“오랜만에 농사일을 하니까 상쾌하고 좋았습니다. 평소보다 많이 움직이니 피곤하긴 합니다.”

“배는 고프지만 기분은 좋습니다.”

“어릴 때 농사일을 많이 해서 익숙하고 재밌었습니다.”

스님은 한 명 한 명 어떤 직장에서 어떤 일을 하는지도 자세히 이야기 나누었습니다.

“저는 NGO에서 사무장으로 24년째 근무하고 있습니다. 불교대학을 다니고부터는 직장에 월급을 적게 받는 대신 자유롭게 일하겠다고 하고 정토회 활동을 하며 살았습니다. 월급을 적게 받아도 아들도 다 키우고 저축하며 살 수 있었습니다. 이제 퇴직할 나이가 넘었는데, 저만큼 적게 받고 일할 사람이 없으니 자꾸 붙잡아요.”(웃음)

“저는 명예퇴직하고 장애인을 돌보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장애인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법사 교육을 받는 동안 어떤 점이 어려웠는지 수행 과제가 무엇인지도 점검했습니다.

“숫자가 적으니 자세히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 좋네요. 저는 통도사에 인도 대사를 만나러 가야 합니다. 오늘은 이만 마치고 내일도 함께 일하고 못다 한 이야기를 나눕시다.”

스님은 수련을 마치자마자 곧바로 통도사로 갔습니다.

저녁에는 통도사로 이동해 인도 쉬라바스티에 천축선원 주지 대인 스님을 비롯해 리프리야 랑가나탄 주한 인도 대사와 이야기를 나누고 저녁 8시가 넘어 두북수련원으로 돌아왔습니다.


내일은 외국인을 위한 영어 통역 즉문즉설을 하고, 화엄반 행자님들과 울력과 수련을 한 후 저녁에는 온라인 일요명상을 할 예정입니다.

전체댓글 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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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연주

큰스님을 향한 스님의 마음이 느껴져 순간 울컥하였습니다
부처님 법 만나고, 스님을 알게되고
정토회를 만났습니다
말로 표현할수없는 인연임을 알고
수행자로 살겠습니다.🙏🏻

2024-12-15 08:55:50

김남수

도문큰스님 께서 법륜스님을 가르껴 서운 최제우 선생이 백년을 내다보는 안목을 가졌다면" 법륜스님은 천 년을 내다보는 안목을 가졌다고 하신 부분이 마음에 크게 와'닿았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 와 우리민족이 법륜스님께 달려 있다고' 동헌 조사님께서 신신당부 하셨다는 말씀도 공감 했습니다.'
"세상에 법륜스님 같은 스님은 없습니다"
감사합니다. 😌 🙏

2024-12-14 09:11:55

정보현화

법륜스님을 저희에게 보내 주신 동헌 조사님과, 불심 도문 스님께 합장 올립니다()()

2021-06-08 18:3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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