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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공동체 법사단과 스승의 날 행사를 가진 후 하루 종일 정토대전 편찬 회의를 하고, 저녁에는 금요 즉문즉설 강연을 생방송했습니다.
새벽 3시에 일어나 조용히 서울 정토회관을 나와 두북 수련원으로 향했습니다.
차에서 단잠을 자는 사이 해가 뜨고 두북 수련원에 도착했습니다. 정토대전 경전팀을 맡고 있는 법사님들도 두북 수련원에 속속 도착했습니다. 그리고 공동체 법사단 모두가 화상회의 방에 들어온 가운데, 오전 8시에 스승의날 행사를 시작했습니다.
삼귀의와 반야심경을 하고 먼저 향덕 법사님이 스님에게 올리는 편지를 낭독했습니다. 공동체 법사단 전원이 한 줄씩 감사의 마음을 표현한 내용이었습니다.
옆에 서 있던 두북 공동체 행자님들도 한 줄 한 줄에 공감하며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전체 대중을 대표해서 농사팀 담당 행자님이 수련원에서 자란 장미꽃과 고수 꽃으로 만든 꽃다발을 스님에게 선물하며 한마디 했습니다.
“앞으로는 힘들다고 울지 않겠습니다.” (웃음)
우리가 부처님의 은혜를 갚는 길은 내가 행복하게 사는 것이라고 했던 스님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스님도 함박웃음을 머금으며 꽃다발을 받았습니다.
이어서 공동체 법사단과 두북 공동체 모두가 ‘스승의 은혜’ 노래를 함께 불렀습니다.
뜨거워진 눈시울을 뒤로하고 삼배로 스님에게 감사의 마음을 표현했습니다. 스님도 감사의 마음을 표현했습니다.
“이런 자리를 마련해 주어서 감사합니다.”
법사님들은 스님에게 한 말씀을 청했습니다.
“어제 서울에서 발우공양 마치고 다 이야기했어요. 스님의 하루를 읽어보세요.” (웃음)
대신 스님은 행복시민들을 위해 새로 마련한 ‘행복수행문’을 읽어 주었습니다. 곧이어 8시 20분부터 공동체 법사단회의를 시작했습니다.
법사 수계식을 앞두고 있는 화엄반 행자님들의 회향 수련 프로그램을 어떻게 진행할지, 5월부터 다시 시작하는 온라인 명상수련 준비 상황, 다음 주 초파일 행사 계획 등 여러 가지 현안들을 함께 점검한 후 10시 10분에 회의를 마쳤습니다.
잠시 휴식했다가 10시 30분부터는 정토대전 경전팀 법사님들과 회의를 시작했습니다. 지난주에 이어서 부처님의 다양한 교화 사례를 경전 속에서 발췌해 와서 다 함께 읽고, 스님의 점검을 받았습니다.
점심을 먹고 나서 오후에도 2시간 가량 교화 사례에 대한 발표와 스님의 점검이 계속되었습니다. 점검을 마치고 나서 경전팀을 이끌고 있는 덕생 법사님이 향후 정토대전의 편집 방향에 대해 스님에게 조언을 구했습니다.
“일단 전체를 다 훑어보면서 속도를 내어 봅시다. 나중에 제가 장기간 결합을 못할 때 그때 완성본 만드는 작업을 하면 어떨까요?”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조금 더 속도를 내어서 작업을 해보기로 하고 회의를 마쳤습니다.
“오늘은 회의가 일찍 끝났으니까 농사일 좀 하고 돌아가세요. 고구마순을 심을 건데 고랑이 8개밖에 안 돼요. 한 시간이면 다 심을 수 있을 겁니다.” (웃음)
스님의 제안에 농사일을 한 시간하고 각자의 처소로 돌아가기로 하고 다 함께 산아랫밭으로 갔습니다. 밭에 도착하니 농사 담당자가 싱싱한 고구마 순을 많이 준비해두었습니다. 밭에 비해 많아 보이는 고구마순을 보고 곧바로 스님이 한마디 했습니다.
“요즘 고구마순이 얼마나 비싼데, 왜 이렇게 많이 샀어요?” (웃음)
“잘 키워 보겠습니다”
농사 담당자는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고구마순을 심는 기구가 5개라 다섯 명은 순을 심고, 나머지는 흙을 덮어주는 역할을 했습니다.
스님은 가장 긴 두둑 앞에 앉아서 고구마순을 심기 시작했습니다. 고구마순 끝을 기구로 잡고 30도 정도 기울여서 멀칭 속으로 쑥 밀어 넣은 후 30%가 들어간 상태에서 15도 정도로 들어 올려 지표면에 수평이 되도록 정식을 했습니다. 고구마순은 수평으로 심는 게 중요합니다. 마디 아래로 뿌리가 나와 고구마가 달리기 때문입니다. 기구를 뺄 때는 줄기가 다시 딸려 나올 수 있기 때문에 한 손으로 흙을 눌러주면서 기구를 살짝 뺏습니다.
스님은 속도를 내며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스님이 지나간 자리에 고구마 순이 나란히 누워 있었습니다.
줄줄이 누워 있는 고구마순은 흙을 잘 덮어 주었습니다. 북삽으로 이랑에 흙을 긁어서 북돋아주니 옆으로 쓰러져 있던 고구마 줄기가 하늘을 향해 일어섰습니다. 이렇게 흙을 덮어주면 멀칭 안에 온도가 유지될 뿐만 아니라 수분이 날아가는 것도 막을 수 있다고 합니다.
스님은 가장 빨리 두둑의 끝에 다다랐습니다. 같이 시작을 해도 빠른 사람도 있고, 느린 사람도 있었습니다. 스님은 일하는 방식에는 두 가지가 있다고 알려주었습니다.
“돈내기 알아요? 제가 어릴 때는 이런 일을 할 때 돈내기를 많이 했어요. 똑같은 양을 배정받고 빨리 끝내면 먼저 가는 겁니다. 돈내기를 하면 속도는 빠른데 건강을 해쳐요. 반면에 일당제로 하면 능력이 좋은 사람이나 능력이 부족한 사람이나 똑같이 일당을 받죠.”
일하는 속도가 가장 느린 법사님을 보고 스님이 웃으며 말했습니다.
“법사님은 사회주의 사회에 살면 딱 좋아요. 일을 빨리 하든 늦게 하든 필요에 따라 일당을 받으니까요.” (웃음)
그러나 느린 사람을 탓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모두 자기 속도에 맞춰 고구마순을 심을 뿐이었습니다. 어느새 스님은 다음 두둑으로 가서 계속 모종을 심었습니다. 밭에 비해 고구마 순이 많아서 한 두둑에 이제 두 줄씩 심었습니다. 5초에 하나씩 심던 스님은 숙련이 되어 3초에 하나씩 심으며 앞으로 나갔습니다.
두둑의 끝에 도착해서야 허리를 쭉 폈습니다.
“아이구. 허리야.”
계속 쪼그려서 고구마순을 심다 보니 허리가 찌뿌둥했습니다. 잠깐 허리를 펴고 스님은 또 다음 두둑으로 가서 고구마순을 심었습니다. 고구마순을 다 심고는 다 함께 북삽을 들고 흙을 덮어주었습니다.
한 시간이면 될 거라고 했던 울력은 두 시간이 지나 끝이 났습니다. 모두 스님과 같은 속도로 일을 했다면 한 시간 만에 끝났을지도 모릅니다.
“내가 한 시간이면 될 거라고 했는데 미안해요. 수고했어요.”
오후 6시가 되어 고구마 심기를 마쳤습니다.
스님은 간단히 씻고 원고 교정을 보다가 저녁 7시 30분에 두북 수련원 방송실로 들어갔습니다. 오늘은 금요 즉문즉설 강연이 온라인으로 열리는 날입니다.
오늘도 2천 여 명이 동시 접속한 가운데 스님이 인사말을 건넸습니다.
“지난 한 주 동안 잘 지내셨습니까? 오늘도 ‘어떻게 하면 주어진 조건 속에서 조금 더 괴로움 없이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이런 주제를 갖고 대화를 시작해 보겠습니다.”
1시간 30분 동안 5명이 손들기 버튼을 누르고 스님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그중 한 명은 아기를 갖고 싶은 마음에 여러 가지 노력을 했지만 실패했다며 어떻게 마음을 가져야 하는지 질문했습니다.
“저는 늦은 나이에 결혼했지만, 결혼 후 3개월 만에 임신이 되었습니다. 임신과 동시에 유방암 2기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남편은 아이를 포기하자고 했지만 저는 그럴 수 없었습니다. 의술이 발달해 임신한 채 수술이 가능하다고 해서 수술을 받게 되었습니다. 수술 후 2개월 뒤 자연 유산이 되었고, 그 몸을 추스르고 여러 번 시험관 시술을 시도했지만 실패했습니다. 시험관 시술에 지쳐 포기할 무렵 자연 임신이 두 번 되었으나 모두 유산되었습니다.
이제는 임신을 하기 위해 할 수 있는 게 없습니다. 속상하고 때로는 서럽습니다. 나이와 건강을 생각하면 포기해야 하지만 잘 안 됩니다. 어떻게 해야 아기를 갖고 싶은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을까요?”
“여러 번의 유산으로 인해 마음이 많이 아프시리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제가 질문을 드리고 싶어요. 아이를 위해서 부모가 있을까요? 부모를 위해서 아이가 있어야 할까요?”
“아이를 위해서 부모가 있어야 될 것 같아요.”
“그런데 지금 질문자는 자신이 아이가 필요해서 아이를 원하고 있잖아요. ‘아이가 있는데 돌볼 사람이 없다, 그래서 내가 아이를 돌보아야 되겠다’ 이런 관점이 아니고, ‘내가 외롭기 때문에 아이가 있어야 된다’ 하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처음 유산했을 때 제 탓 같아서 그 미안한 마음이 아직도 남아 있어요. 만약에 아이가 다시 오면 잘해 줄 수 있을 것 같은데, 기회가 안 주어지니까 안타깝습니다.”
“아이를 위해서 부모가 있어야 된다고 생각한다면, 내 몸이 아이가 성장하는 데 도움이 안 된다면 오는 아이도 오지 말라고 해야 될 것 아닙니까. 질문자가 자연 유산을 계속했다는 것은 질문자의 몸이 아기가 들어와서 살기에는 부적당한 집이라는 얘기예요. 그렇다면 아기가 오겠다고 해도 아기를 위해서 ‘여기는 네가 살기에 부적당한 집이니까 다른 집에 가라’ 이렇게 입장을 가져야 합니다. 아기가 안 오겠다고 하는데도 자기 몸에 들어오라고 억지로 끌어들이니까 자꾸 유산이 되는 거예요.
자연 유산이 된다는 것은 아이가 살기 어렵다는 얘기인데, 그걸 반복하는 게 어떻게 부모의 자세입니까? 그것은 굉장히 이기적인 마음입니다. 부모는 자기를 희생해서라도 아이를 살리는 존재예요. ‘아이가 죽게 되더라도 나는 상관없다’, ‘나만 만족하면 된다’ 이런 생각은 굉장히 이기적이라는 겁니다. 그런 부모를 누가 원하겠어요? 질문자가 생각을 바꿨으면 좋겠다 싶어요.
아기가 성장하기에 부적당한 집에 그렇게 억지로 아기를 불러들인다면, 아기는 그곳에서 성장하다가 유산이 되거나 설령 유산이 안 되었더라도 어떤 신체장애를 가지게 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질문자는 후회를 하게 될 가능성이 높아요. 그런데도 억지로 아기를 불러들이려고 몸부림을 친다면, 질문자는 바람직한 가치관을 가지고 있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오히려 이미 태어났는데 부모가 가난하거나 돌볼 조건이 못 되어서 돌보지 못하는 아기를 정성을 기울여 돌보는 게 참된 부모의 자세라고 생각하지 않으세요?
예전에 뉴스에 나왔던 얘기인데요. 어떤 아이가 학교에서 혈액형 검사를 했는데 부모로부터 나올 수 없는 혈액형이라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이런 경우 아내와 남편 중에 누가 더 의아해하고 답답해할까요?
아내는 자신이 아이를 낳은 것이 확실한데, 남편이 아내를 의심하게 됩니다. 그러면 아내가 억울해 합니다. 아내가 다른 남자를 만났다는 사실을 인정하면 모르지만, 다른 남자를 전혀 만난 적도 없는데 이런 일이 벌어지면 세상 사람들은 아내에 대해서 의아하게 생각하게 됩니다. 그래서 아내가 알아보니 같은 날짜에 그 병원에서 태어난 아이가 한 명 더 있었습니다. 그 집에 찾아가서 아이의 혈액 검사를 해 보자고 하니 그 부모들이 펄쩍 뛰었어요. 우여곡절 끝에 그 아이의 혈액 검사를 해보니 아이가 병원에서 바뀐 것이었어요. 이런 일은 병원에서 아이를 같은 날짜에 낳았을 경우 전 세계적으로도 자주 일어나는 일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내 아이’라고 말할 때 그 아이가 자신이 낳은 아이를 뜻하는 것일까요? 아니면 자신이 내 아이라고 생각하는 아이를 뜻하는 것일까요? 만약 혈액 검사 같은 게 없다면 그런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을 겁니다.
또 다른 사례는 프랑스에서 있었습니다. 아이가 대학생이 되고 나서 아이가 서로 바뀌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해요. 그래서 두 부부는 아이를 바꾸었다고 합니다. 각각의 생물학적 부모를 찾아간 거죠. 그런데 1년 후에 두 부부와 두 아이가 회의를 한 후 원래의 집으로 다시 돌아갔다고 합니다. 이 사례는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는 생물학적 조건보다는 서로의 마음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대개 ‘내가 낳았으니까 내 아이다’ 이렇게 생각하는데, 엄격하게 살펴보면 내 아이라고 믿기 때문에 내 아이입니다. 동물이라면 생물학적인 요인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사람은 생물학적인 것보다 정신적인 것이 더 중요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만약에 어릴 때 입양된 아이가 자신이 입양되었다는 사실을 모른다면 그 아이는 평생 자신을 입양한 부모를 생모와 생부로 생각할 겁니다. 아이를 입양한 부모는 자신이 입양한 사실을 알고 있으니까 나는 양부모라는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만약 누군가가 병원에서 아이를 살짝 바꾸어 버리면 자신이 생모나 생부가 아니라는 것을 모르고 평생 살아갈 겁니다.
그러니 질문자가 억지로 아이를 가지려고 애쓰는 것은 너무 생물학적 조건에 집착하고 있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또 질문자가 건강하면 괜찮지만 그렇지 않잖아요. 생물학적으로 생모가 될 수 없는 조건에 있다면 입양을 하는 것도 괜찮습니다. 아이를 입양해 와서 내 아이라고 딱 믿어 버리면 내 아이가 되는 거예요.
‘엄마’라는 말은 ‘기른 자’라는 뜻입니다. 만약에 아이를 할머니가 길렀다고 하면 이름은 할머니지만 아이의 무의식 세계에서는 할머니가 엄마가 되는 거예요. 젊은 여자를 엄마로 부르고 늙은 여자를 할머니라고 부르지만 무의식의 세계에서 엄마는 항상 자신을 기른 할머니가 되는 거예요. 그러니 너무 고민하지 마시고 남편이 말하듯이 ‘인연이 안 되나 보다’ 생각하고 아이 없이 둘이 행복하게 살든지, 아이가 한 명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면 입양을 해도 좋다는 겁니다.
요즘 미혼모가 아이를 낳았는데 키울 형편이 못 되는 경우 많잖아요. 이미 이 세상에 온 아이인데 돌볼 사람이 없다면 우리가 돌봐야 합니다. 질문자는 건강 상태가 위험한데도 억지로 아이를 낳으려고 하는데, 지금 키울 수 없는 아이를 키우는 게 진짜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미 낳아 놓은 아이는 버리고, 태어나기 어려운 아이를 억지로 낳으려고 하는 것은 거꾸로 된 잘못된 생각입니다. 그러니 아예 아이가 없이 살든지, 아이를 정말 갖고 싶다면 입양해서 키우면 됩니다.
한국은 경제 수준이 비교적 높은 데도 불구하고 이런 생물학적 의식을 못 벗어나고 있어서 지금도 한국의 많은 아이들이 외국으로 입양이 되고 있다고 합니다. 외국에서는 생물학적 조건을 많이 안 따지니까 잘 성장하는 경우도 있지만, 부모와 외모가 확연히 다르기 때문에 자신이 입양아라는 사실을 금방 알게 되는 문제점도 있어요.
하지만 국내에서 입양이 많이 이루어지면 일부러 사실을 밝히지 않는 이상 그 아이는 평생 자신이 입양된 사실을 모르고 살 수가 있습니다. 사실대로 얘기해줘도 되지만 안 해 줘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겁니다. 입양해서 내가 아이를 기르고 키우면 그 아이가 곧 내 아이가 되는 거죠. 내가 낳아서 내 아이라고 생각하시면 안 돼요. 기룬 자가 엄마입니다. 대리모를 통해 아이를 낳으면 자기가 낳지 않았지만 자기 아이가 되잖아요.”
“대리모는 내 유전자가 아이 속에 들어갔고, 입양은 내 유전자가 들어가지 않았잖아요.”
“그렇게 생각한다면 질문자는 동물 수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부디 동물적 사고를 버리고 인류적 사고를 가지시기 바랍니다.”
“네, 감사합니다.”
이 외에도 다음과 같은 질문이 있었습니다.
질문에 대한 답변을 마친 후 스님이 한 줄 소감을 물어보았습니다. 아기를 가지 못해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는 질문자도 소감을 말했습니다.
“저는 스님이 욕심이라고 말씀하셨을 때 사실 좀 당황했습니다. 지금까지 저는 제 자신만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입양은 솔직히 자신이 없습니다. 스님 말씀처럼 세상에 이미 나왔는데 돌봄을 받지 못하는 아이들이 있으면 돌볼 수 있는 다른 방법을 찾아보겠습니다.”
고개를 갸우뚱하는 질문자에게 스님이 다시 한번 물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질문자에게 한 가지 물어볼게요. 내가 낳았든지 남이 낳았든지 간에 똑같은 아이를 키우는 것인데, 내가 낳은 아이는 키울 자신이 있는데 남이 낳은 아이는 키울 자신이 없다는 말이 무슨 뜻이에요? 남이 낳은 아이를 키우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면 이해가 되는데, 입양해서는 키울 자신이 없다는 말은 이치에 맞지 않습니다.”
“제가 처음 유산을 했을 때가 임신 5개월이 되었을 때입니다. 그때 제 몸이 아파서 아이가 유산되었다는 생각에 너무 아이에게 미안했어요. 그 미안함에서 아직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이가 유산이 되었다는 것은 내 몸이 아이가 살 수 있는 환경이 안 되었다는 거잖아요. 너무나 자연스러운 현상인데도 불구하고 그래도 ‘아이가 내 뱃속에 계속 있었으면 좋겠다’ 하고 바라는 것은 질문자의 욕심입니다. 질문자의 뱃속에서 살 환경이 안 되어서 유산이 된 것은 질문자의 잘못이 아니에요. 만약 질문자가 죽어서라도 아기를 낳을 수 있었다면 그런 선택을 하는 것도 가능했겠지만, 질문자가 죽는다고 해서 아이가 살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잖아요. 물론 산모가 죽든지 아기가 죽든지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어서 결국 엄마가 죽고 아기를 살리는 경우도 있긴 합니다. 그러나 질문자의 경우는 자연 유산이기 때문에 죄책감을 가질 필요가 하나도 없다는 거예요.”
“그런데 그때 제가 조금만 더 강하게 버텼으면 그 아이가 더 있어 주지 않았을까 계속 생각하게 돼요.”
“그게 바로 집착입니다. 지나간 일을 붙들어봐야 괴롭기만 하지, 그렇다고 아이가 살아오는 것도 아니고, 다시 돌이킬 수도 없잖아요. 그건 정신질환에 속합니다. 미련이고 집착이에요. 그러니 죽은 아이에 대한 미련은 내려놓고, 지금 살아 있는 아이들을 돌보는 일에 적극적으로 나서 보세요. 질문자가 그런 아이를 직접 못 돌보면 그런 아이들을 키우는 일에 후원이라도 적극적으로 해보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문답이 계속 이어지는 끝에 질문자도 환한 웃음을 보였습니다.
마지막으로 다음 강연에 대한 안내가 나간 후 즉문즉설 생방송을 마쳤습니다.
내일은 스승의 날입니다. 스님은 새벽 일찍 은사 스님이신 도문 큰스님을 찾아뵙고 인사를 한 후 오후에는 화엄반 법사 교육을 받고 있는 저녁반 행자님들과 농사일 및 수련을 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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