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1.4.27 농사일
“학벌이 좋은 친구를 만나면 위축이 됩니다”

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오전에 농사일을 하고, 오후에 경주 남산을 다녀왔습니다.

아침 햇살을 받으며 꽃송이 상추와 적치마 상추, 고수를 땄습니다.

꽃송이 상추는 얼굴보다 큰 꽃다발로 자랐습니다.

세 소쿠리를 수확해서 깨끗이 씻었습니다.




야채를 씻은 물은 텃밭에 뿌려주고, 야채는 한 번 먹을 만큼씩 담아서 냉장고에 넣어두었습니다.

“이제 호박 심으러 산 윗밭으로 갑시다.”

씨앗과 연장을 챙겨 산 윗밭으로 갔습니다.

“이야, 고사리가 많이 올라오네요.”

사면에는 고사리가 여기저기 올라오고 있었습니다. 작년에 덩굴이 우거져 있을 때는 잘 자라지도 못했고, 보이지도 않던 고사리들이었습니다. 투명한 연둣빛 고사리손들이 바람에 흔들려 인사를 하는 듯했습니다. 지난달에 직접 심은 고사리는 아직 땅 속에서 나올 기미가 없었습니다.

“먼저 모란을 살펴볼까?”

스님은 초록빛 성큼성큼 밭으로 걸어 들어갔습니다.

모란도 키가 더 자랐고 도라지도 빽빽이 자라고 있었습니다.


고수는 아직 땅바닥에 붙어 있었습니다.

“고수는 물이 없어서 잘 자라지 못했네요. 고수는 다 정리하고 모란과 도라지를 더 심어야겠어요.”

한 해 한 해 지날수록, 그 땅에 맞는 작물을 알아갑니다. 산 윗밭은 오르기 어렵고, 물을 주기 어려워 모란과 도라지를 키우기가 좋습니다.

산 윗밭에서 더 위에 있는 나무 심은 땅으로 갔습니다. 지난 3월 중순에 심은 나무를 둘러보았습니다. 60여 그루를 심었는데 한 그루만 마르고 있었고, 나머지는 땅에 뿌리를 잘 내리고 잎사귀를 피우고 있었습니다.


“한 그루 빼고 다 잘 살았네요.”

마른 나무의 가지를 잘라주고 나무만큼 쑥쑥 자라고 있는 주변의 풀을 슥슥 벴습니다. 풀을 베던 스님이 무언가 발견했습니다.


“이야, 오늘 운이 좋네요!”

스님이 기쁜 얼굴로 양손 가득 가져온 것은 찔레순이었습니다.

“찔레순이에요. 한번 먹어보세요.”

껍질을 벗겨 여린 줄기를 씹어보니 아삭아삭 했습니다. 봄이 키운 귀한 간식을 먹고 호박을 심기 시작했습니다.

나무를 심은 땅 윗 사면에 동네 어르신에게 얻은 맷돌호박 씨앗을 심었습니다.

“사면 아래쪽으로 심어 보세요. 아래쪽으로 올수록 물기가 있을 거예요.”

스님 말대로 아래쪽을 파보니 땅이 꽤 촉촉했습니다.

호박을 심다 스님은 옛 추억을 들려주었습니다.

“어릴 때 친구들하고 호박을 심어서 돈을 벌겠다고 산에 호박을 심었는데 거름을 안 줘서 호박이 잘 자라지 못했어요. 60년이 지나서 똑같은 일을 하고 있네요.”(웃음)

“60년 전이면 9살인데요?”

“그 땐 가난했으니까 그런 궁리를 많이 했죠. 덕분에 평생 자립해서 살 수 있었어요.”

호박을 심은 곳에는 나중에 알아볼 수 있도록 큰 돌을 하나씩 놓았습니다.

아래쪽 사면에도 호박을 심었습니다.

“이제 더 심을 곳이 없네요. 못둑으로 가봅시다.”

내려와서 도라지 밭을 다시 한번 살펴보고 풀도 뽑아주었습니다.

산 윗밭을 내려오는데 스님의 눈에 대나무 숲 사이로 죽은 대나무가 보였습니다. 스님은 그 나무를 잘라 곁까지를 다듬어 금세 지팡이를 만들었습니다.


못으로 올라가 보니 며칠 사이에 물이 말라서 설치해 둔 호스 입구가 드러나 있었습니다. 장화를 신고 오지 않아 다른 날 다시 오기로 하고 호박 심을 땅을 살펴보았습니다,

먼저 못둑에 뒹굴고 있던 나뭇가지를 치우고 땅을 파보았습니다.


“아이고, 여긴 안 되겠어요. 물이 바짝 말라있네요. 논둑으로 가봅시다.”

논으로 내려와 적당한 땅을 찾아보았습니다.

“그런데 논둑은 여름이 되면 예초기로 풀을 싹 베야 해요. 호박까지 잘려나갈 수 있어요. 산 아랫밭으로 가봅시다.”


밭 아래 사면 땅을 파 보았습니다.

“여기도 습기가 많진 않네요. 그래도 여기 좀 심읍시다.”

사면 기슭에 붙어 호박을 심었습니다.

“우리 모습이 꼭 화전민 같네요. 그래도 올해는 호박죽을 꽤 먹을 수 있겠어요.”(웃음)

씨앗이 남았지만 점심시간이 다 되어 울력을 마쳤습니다. 울력을 마치고 점심 이후에는 찾아온 손님과 오후 내내 경주 남산을 다녀왔습니다. 내일도 울력을 하고 저녁에는 수행법회 생방송이 있을 예정입니다.

오늘은 법문이 없었으므로 지난 4월 23일 행복학교 특강에서 있었던 즉문즉설 한 편을 소개해드리며 글을 마치겠습니다.

학벌이 좋은 친구를 만나면 위축이 됩니다

“저는 지금 대학생인데요. 저보다 좋은 대학교에 다니고 있는 친구들을 만났을 때 위축이 됩니다. 저보다 못났다고 생각되는 친구들은 무시하는 경향이 있고요. 이것이 좋지 않은 행동인 줄 알지만, 저도 모르게 그런 태도가 나와요. 이런 태도를 어떻게 하면 고칠 수 있을까요?”

“이런 태도가 옳지 않다고 생각되면 질문자 스스로가 고쳐야 합니다. 또 잘못된 줄 알지만 안 고쳐지면 안 고쳐지는 대로 살아야지 어떻게 하겠어요. 스님이 보기에는 큰 걱정은 아니에요. 만약 내가 돈을 굉장히 좋아하고 돈에 집착한다면 나보다 돈이 많은 사람을 만나면 위축될 것 같아요? 당당할 거 같아요?”

“위축될 것 같아요.”

“만약 내가 돈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한다면 나보다 돈이 훨씬 적은 사람을 만나면 교만해질 것 같아요? 겸손해질 것 같아요?”

“교만해질 것 같아요.”

“만약 내가 지위가 높은 사람을 선망한다면 나보다 지위가 높은 사람을 만났을 때 당당해질 것 같아요? 비굴해질 것 같아요?”

“비굴해질 것 같아요.”

“만약 내가 지위를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나보다 지위가 낮은 사람을 만나면 교만해질 것 같아요? 겸손해질 것 같아요?”

“교만해질 것 같아요.”

“만약 내가 얼굴이 잘생긴 사람을 부러워하는데 배우를 만나게 되면 당당해질 것 같아요? 비굴해질 것 같아요?”

“비굴해질 것 같아요.”

“만약 내가 봤을 때 나보다 못생긴 사람을 만나면 교만해질 것 같아요? 겸손해질 것 같아요?”

“교만해질 것 같아요.”

“돈에 집착하기 때문에 돈이 많은 사람에게 비굴해지고, 돈이 적은 사람에게 교만해지는 거예요. 권력에 집착하기 때문에 지위가 높은 사람에게 비굴해지고, 지위가 낮은 사람에게 교만해지는 겁니다. 인기에 연연하기 때문에 인기가 많은 사람을 보면 비굴해지고, 인기가 없는 사람을 보면 교만해지는 거예요. 얼굴 생김새에 집착하기 때문에 잘생긴 사람을 보면 기가 죽고, 못생긴 사람을 보면 잘난 체하게 되는 겁니다.

그것처럼 질문자는 성적에 집착하기 때문에 공부 잘하는 친구를 만나면 기가 죽게 되는 거예요. 그런데 학교 성적이라는 건 수천 가지 세상에 존재하는 인간의 특성 중에 몇 가지만 뽑아 매긴 거예요. 계산 잘하는 것을, 미국 가면 거지도 하는 영어 좀 잘하는 것을, 검색하면 요즘 누구나 다 알 수 있는 사회 상식을 잘 외워서 답안지 작성을 잘하는 것 등 몇 가지만을 평가 기준으로 삼는 거잖아요. 그런 것으로 기가 죽는다는 것은 현명한 것이 아니에요.”

“맞아요.”

“조선 시대에는 양반과 평민으로 신분을 나누어서 태어남에 의해서 귀천을 결정했잖아요. 그것처럼 현재의 학교 교육은 성적표를 만들고 성적이 높으면 양반처럼 취급을 하고, 성적이 낮으면 하인처럼 취급해요. 그렇기 때문에 성적에 의해서 젊은이들이 교만해지거나 기가 죽는 현상이 나타나는 거예요.

만약 어떤 사회에서 등수를 정할 때 머리카락이 긴 사람 순으로 등수를 정한다면, 그 사회에서는 머리카락 길다고 잘난 체하고, 머리카락 짧다고 기가 죽을 거 아니겠어요? 그러니 등수라는 건 하등 중요한 게 아니에요. 우리 사회가 초등학교 때부터 성적으로 사람을 평가하기 때문에 성적이 낮으면 열등의식이 생기는 거예요. 원래 열등한 존재가 아니라 열등의식이 생긴 겁니다. 노비의 자녀로 태어나 노비가 되면 존재 자체가 열등한 것이 아니듯이 열등의식이 생긴 거예요.

과거에는 전생에 죄가 많아서 여자로 태어났다고 하면서 여성을 차별했기 때문에 여자가 남자한테 기가 죽는 열등의식이 생긴 겁니다. 평민이 양반한테 기가 죽듯이, 공부 못하는 학생은 공부 잘하는 학생한테 기가 죽고, 돈이 적은 사람은 돈이 많은 사람한테 기가 죽고, 지위가 낮은 사람은 지위가 높은 사람한테 기가 죽고, 인기가 없는 사람은 인기가 많은 사람한테 기가 죽고, 못생긴 사람은 잘생긴 사람한테 기가 죽고, 흑인은 백인한테 기가 죽고, 동양인은 서양인한테 기가 죽는 거예요.

그런데 이런 열등의식은 불평등으로 인해서 생긴 거예요. 모든 존재는 서로 다를 뿐이지 우월한 존재도 열등한 존재도 없습니다. 다만 피부색이 다르고, 민족이 다르고, 종교가 다르고, 성별이 다를 뿐이에요. 이런 이치를 탁 꿰뚫어 알면 기죽을 이유가 없습니다. 키가 크면 큰 것이고, 피부색이 하야면 하얀 것이고, 수학을 잘하면 잘하는 것이고, 인물이 잘생기면 잘생긴 것이고, 돈이 많으면 많은 것이지, 나와 다른 상대를 부러워할 필요도 없고 욕할 필요도 없어요.

여러분들은 큰 집에 가면 어떤 생각이 들어요? ‘와, 집이 크고 좋다’ 하면서 부러워하죠. 그런데 저는 큰 집을 보면 이런 생각이 들어요.

‘아이고, 청소하려면 고생 좀 하겠다.’

집이란 잠잘 공간만 있으면 되지, 커봐야 청소하기만 힘들잖아요. 생각의 전환을 좀 해보면 어떨까요?

학교 교육에서 성적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것에 길들여져서 그것이 갖는 폐해로 인해 질문자도 열등의식을 갖고 살아가는 거예요. 이런 결과를 빚은 주범은 부모입니다. 학교에서 교사들이 아이들을 공부로 차별하듯이 집에서 부모들이 제 자식을 옆집 아이와 공부로 비교하잖아요. 누구는 어느 대학에 합격했느니 비교하고, 취직을 했느니 못했느니 하고 비교합니다. 그래서 열등의식이 생긴 거예요. 질문자한테는 아무런 문제도 없습니다. 앞으로는 기죽지도 말고, 교만하지도 마세요. 한쪽으로는 기가 죽고, 한쪽으로는 잘난 체하게 되는 이유는 내가 열등하다고 생각하는 오류 때문입니다. 열등의식도 갖지 말고, 우월의식도 갖지 말고, 다만 이렇게 생각하세요.

‘존재는 열등한 것도 없고, 우월한 것도 없다. 다만 서로 다를 뿐이다’

이런 관점을 갖고 살아 보세요. 알아도 잘 안 될 수가 있기 때문에 딱 깨우쳐야 해요.

‘나는 아무런 잘난 것도 없고, 못난 것도 없다.’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의 제자 수행자들아, 교만하지 말고 겸손해라. 비굴하지 말고 당당해라’

이해가 되셨어요? 소감을 한 번 이야기해 보세요.”

“감사합니다. 나도 모르게 열등의식을 갖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앞으로는 교만하거나 위축되지 않고 당당하게 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누구에게나 바꾸고 싶은 모습이 있지만
왜! 작심삼일로 끝나고 쉽게 바꾸지 못할까요?
우리의 마음 작용은 과학적으로 접근할 수 있다는 사실,
아시나요?

법륜스님의 즉문즉설을 통해
2030 청년들과 함께 이야기 나눠요 :)

➡️ 오늘(4월 30일) 오후 8시-10시

⬇️ 아래 주소에서 생방송을 보실 수 있습니다.
[클릭] https://youtu.be/cvlP4f-WWZ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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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튜브 시청은 전 연령대 누구나 가능합니다.

전체댓글 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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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동준

잘난 것도 없고 못난 것도 없다

2021-05-06 20:56:44

박인자

다만서로 다를뿐입니다
서로다르듯이 생각 관점도 다릅니다
관점을잘잡아 실천하겠습니다

2021-05-02 22:01:10

자운영

저도 친구가 큰집으로 이사를 가는데
부러움보다는 내가 누울자리가 있으니
그걸로 난 행복하다생각했지요
스님의 말씀을 듣고 더더욱
지금의 삶에 만족함으로 ~
살아야겠다 다짐해봅니다



2021-05-02 15:2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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