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1.4.24 천일결사 기도 생방송, 경전대학 즉문즉설, 지회장 간담회
“내가 행복하지 않은데 어떻게 남을 구제한다는 마음을 내죠?”

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하루 종일 온라인 방송을 하는 가운데 틈틈이 노동을 하며 선농 일치의 하루를 보냈습니다.

새벽 4시 30분, 맑은 종송 소리가 랜선을 타고 전 세계를 향해 울려 퍼졌습니다. 스님은 두북수련원 방송실에서 명상과 예불을 한 후 새벽 5시 정각에 천일결사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삼귀의, 수행문, 참회, 108배, 명상을 차례대로 한 후 경전 독송을 했습니다.

“청정하지 않고
절제와 진실이 없는 자는
가사를 입을 자격이 없다.

청정하고
계행을 잘 지키고
절제와 진실이 있는 자는
가사를 입을 자격이 있다.”

사홍서원으로 천일결사 기도를 마친 후 스님의 법문이 이어졌습니다. 먼저 지난주에 백일기도에 처음 입재한 초심자들을 위해 수행하는 목표와 방법에 대해 자세히 안내를 한 후 오늘 읽은 경전에 대해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오늘 함께 읽은 경전은 수행자가 가져야 할 삶의 자세에 대한 것입니다. 수행자가 입는 옷을 가사라고 합니다. 인도에서 시체를 화장하기 전에 황색 천으로 시체를 덮어놓습니다. 화장할 때 황색 천은 벗겨서 던져 버리고 시신을 태워요. 그래서 화장장에 가면 시체를 덮은 천이 많이 버려져 있습니다. 이 천을 분소의라고 합니다. 그걸 주워서 수행자가 입었습니다. 가사란 누구도 입지 않는 버려진 옷인 분소의라는 뜻입니다. 거지도 시체를 덮었다 해서 손을 안 댑니다. 아무도 사용하지 않는 그 옷을 수행자가 입었습니다. 요즘 식으로 말하면 쓰레기장에 버려진 옷을 주워서 입은 거예요. 음식은 사람들이 먹다가 남겨서 버려지는 것을 먹었고, 옷은 입다가 필요 없어서 버려진 옷을 입었고, 잠은 나무 밑이나 숲 속 또는 빈 집 처마밑에서 잤습니다.

그렇게 사는 사람에게 무슨 탐욕이 있고 성냄이 있겠어요? 그러니 아직도 먹는 것, 입는 것, 자는 것에 집착해서 욕망을 버리지 못한 사람이라면 이런 가사를 입을 자격이 없다는 것입니다.

수행자가 될 자격

그런데도 가사를 입고서 마음속에 탐욕을 가지고 살고, 가사를 입고서 마음속에 성냄을 가지고 살고, 가사를 입고서 온갖 시비 분별을 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오늘 읽은 경전에서 부처님이 하신 말씀은 이런 사람은 가사를 입을 자격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수행자라고 할 수 없다는 거예요.

부처님이 이 말씀을 하시게 된 유래가 있습니다. 부처님의 제자 중에 재주가 많은 ‘데바닷타’라는 사람이 있었어요. 똑똑하고 신통력이 있고 인물도 잘 생겨서 일반 대중은 그 사람을 많이 따랐습니다. 데바닷타에게 공양물도 많이 올렸습니다. 한 때는 그 나라의 황태자, 즉 다음 왕이 될 사람이 데바닷타를 스승으로 모시니까 거기서도 보시물이 많이 들어왔어요. 그 황태자에게 잘 보이려고 많은 사람들이 데바닷타에게 보시를 했습니다. 버려진 옷을 입어야 수행자인데 금실로 만든 좋은 가사를 데바닷타에게 선물했습니다. 데바닷타는 금실 가사를 있고 옷 자랑을 했습니다. 부처님이 그 모습을 보시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음속에 욕망을 가지고 있는 사람, 감정에 휘둘리는 사람, 시비 분별을 하는 사람은 가사를 입을 자격이 없다.’

이런 유래로 어떤 사람이 가사를 입을 자격이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 거예요. 여러분도 부처님 당시의 수행자들처럼 다 떨어진 옷을 입고, 버려진 음식을 먹고, 빈집 처마밑에 자라는 얘기는 아니에요. 적어도 여러분이 수행자가 되려면 먹는 음식에 너무 집착해서는 안 된다는 얘기입니다. 먹는 음식은 그저 몸을 건강하게 하면 되지 입맛을 따져서 몇 십만 원짜리 음식에 집착하는 사람은 수행자라고 할 수 없습니다.

입는 옷에 너무 집착해서는 안 된다는 얘기입니다. 그저 활동하기 좋고 더위를 피하고 추위를 피하고 몸을 가릴 정도의 옷을 입으면 되지 몇 백만 원 하는 명품에 집착하는 것은 수행자가 아닙니다.

사람마다 견해가 다르고 믿음이 다르기 때문에 ‘저 사람은 저렇게 믿구나’, ‘이 사람은 이렇게 생각하는구나’ 이렇게 받아들여야지 옳으니 그르니 따지고 논쟁하고 시비하면 수행자라고 할 수 없습니다.

수행자와 다른 사람의 차이점

수행자라면 최소한 이것은 지켜야 됩니다. 생활을 좀 검소하게 해야 합니다. 잘났다고 목에 힘을 주거나 교만하면 안 됩니다. 비굴해서 기죽고 살아도 수행자라고 할 수 없습니다. 부처가 되겠다는 사람이라면 당당해야 합니다. 수행자는 당당하되 교만하지 않아야 되고, 겸손하되 비굴하지 않아야 됩니다. 검소하되 깔끔해야 합니다. 지저분해서는 안 됩니다. 자유롭되 질서는 지켜야 됩니다.

만약 부모가 되었으면 아이들이 볼 때 ‘이런 부모 밑에서 자란 게 참 자랑스럽다’ 하고 여겨지고, 자식이 되었으면 부모가 볼 때 ‘자식 덕분에 내가 큰 고생은 안 했다’ 이렇게 여겨지는 자식이 되어야 합니다. 어떤 회사의 직원이 되었으면 그 회사에 도움이 되어야 하고, 회사의 사장이 되었으면 직원들이 ‘내가 그 회사에 일할 수 있어서 참 고맙다’ 이런 마음이 들도록 해야 됩니다.

수행자라면 다 버리고 집을 나오지는 않더라도 이런 마음을 갖고 살아야 합니다. 그런 사람이 되려고 우리가 수행을 하는 겁니다. 수행자라는 이름을 쓰려면 검소해야 되고, 겸손하되 당당한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방송을 마치고 스님은 공양을 한 후 곧바로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재활용 창고로 향했습니다.

주말마다 전국 법당을 철거하면서 나오는 재활용 물품들이 계속 들어오고 있습니다. 오늘 해야 할 일은 가득 쌓인 물건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서울 정토사회문화회관에 보낼 책상과 의자를 창고 밖으로 꺼내는 것입니다.

창고 깊숙한 곳에 책상과 의자가 쌓여 있어서 먼저 가구들이 밖으로 나갈 수 있게 길을 확보했습니다.

스님이 맨 안쪽에서 책상과 의자를 꺼내 주면, 행자님들과 봉사자들이 하나씩 통로를 따라 창고 밖으로 꺼냈습니다.


의자가 밖으로 술술 잘 나가고 있는 와중에 몇몇 의자가 다시 안으로 돌아왔습니다.

“스님, 이 의자는 곰팡이가 생겨서 서울로 가져가지 말자고 해서 다시 가져왔어요.”

스님은 곰팡이가 생긴 의자를 곧바로 밖으로 다시 내보냈습니다.

“괜찮아요. 서울로 가져가서 사용합시다. 곰팡이 제거제를 뿌리면 충분히 쓸 수 있는 의자예요. 멀쩡한 의자를 왜 안 쓰려고 해요.”

무거운 짐을 계속 나르다 보니 땀이 많이 났습니다.

“저는 9시부터 강의를 해야 해서 먼저 가보겠습니다.”

스님은 봉사자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8시 50분에 창고를 나왔습니다.

작업복을 벗고 가사와 장삼을 수한 후 9시 정각에 두북 수련원 방송실에 자리했습니다. 오늘은 경전대학 학생을 대상으로 온라인 즉문즉설을 하는 날입니다. 지난 3월에 입학한 경전대학 학생들은 금강경 공부를 하는 중입니다. 이번 시간은 금강경 공부를 하면서 궁금했던 점을 스님에게 질문하는 시간입니다.

사전에 많은 질문들이 올라왔지만, 총 8명이 스님에게 질문할 기회를 가졌습니다. 그중 한 명은 금강경에서 ‘일체 중생을 구제하는 마음을 먼저 내라’는 말의 뜻에 대해 다시 질문했습니다.

내가 행복하지 않은데 중생을 구제한다는 마음을 어떻게 내죠?

“금강경 전체에서 ‘해탈을 하기 위해서는 중생을 구제한다는 마음을 먼저 먹어야 한다’라는 메시지가 있는 것 같습니다. 스님 법문을 들을 때는 알 것 같다가도, 다시 돌아서면 ‘내가 행복하지 않은데 어떻게 다른 중생을 먼저 구원할 수 있을까? 내가 제일 먼저 구제되어야 하는 중생이 아닌가’라는 생각으로 자꾸 돌아갑니다. 다시 한번 설명을 해주실 수 있을까요?”

“제 앞에 꽃이 있죠? 꽃이 지금 예뻐요, 미워요?”

“예뻐요.”

“다시 물어볼게요. ‘그 꽃 참 예쁘다’ 이러면 꽃이 기분 좋아요, 내가 기분 좋아요?”

“제가 기분 좋아요.”

“다시 물어볼게요. ‘꽃이 뭐 이렇게 생겼어?’ 이렇게 짜증을 내면 꽃이 기분 나쁠까요, 내가 기분 나쁠까요?”

“제가 기분 나빠요.”

“이게 마음의 원리입니다. 내가 꽃을 미워하면 내가 기분이 나쁘고, 내가 꽃을 좋아하면 내가 기분이 좋은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내가 기분 좋으려면 꽃을 예뻐하라는 겁니다. 그게 뭐가 어려워요?

네가 행복하고 싶으면 남을 사랑하라는 뜻입니다. 내가 행복하니까 남을 사랑하는 게 아니고, 남을 사랑하면 내가 행복해지는 거예요. ‘우리 아이 너무 좋다’, ‘우리 남편 너무 좋아!’ 이러면 남편이 좋을까요, 내가 좋을까요?”

“...”

“질문자는 그러면 남편이 좋다고 생각하고 있죠? 그건 잘못된 생각이에요. 남편을 두고 ‘바람이나 피우는 저게 사람이야?’ 이러면 내 기분이 나빠집니다. 그렇게 기분이 나쁘고 싶으면 남편을 미워하면 됩니다. 그게 아니라 기분이 좋고 싶으면 남편을 사랑하면 됩니다. ‘제가 행복하고 싶으면 어떻게 하면 됩니까?’라고 질문하니까 ‘남을 사랑해라’ 이렇게 대답하는 거예요.

쉽게 비유하면 이런 뜻입니다. ‘저 인간이 왜 저렇게 행동하는지 정말 모르겠다. 이해가 안 돼!’ 이러면 내 마음이 답답해요, 시원해요?”

“답답해요.”

“그게 아니라 ‘아, 그래서 그랬구나!’ 이렇게 상대를 이해하면 누구 마음이 시원해져요?”

“제 마음이요.”

“하나도 어렵지 않습니다. 그런데 중생은 ‘남이 나를 사랑해야 내가 행복하다’ 이렇게 거꾸로 생각하고 있을 뿐이에요. 그래서 사랑 안 해준다고 늘 괴로워합니다. 남편이 나를 사랑해주면 내가 행복할 텐데. 남편이 나를 사랑해주지 않으니까 행복하지 못하다는 거예요.

‘부처님, 어떻게 하면 제가 행복할 수 있을까요?’ 이렇게 묻지만 사실은 ‘어떻게 하면 남편이 나를 사랑해 줄까요?’ 이런 질문입니다. 그러나 부처님의 대답은 그 반대입니다. ‘이러저러하게 하면 남편이 너를 사랑해줘서 네가 행복할 거야’ 이렇게 얘기하지 않고 ‘네가 남편을 사랑하면 네가 행복하단다’ 이렇게 대답한 겁니다.

일체중생을 구제한다는 게 무슨 뜻일까요? 남편을 사랑하고, 남편을 이해하고, 아이를 사랑하고, 아이를 이해하고, 이웃집을 사랑하고, 이웃집 사람을 이해하면, 상대의 괴로움이 아니라 내 괴로움이 없어집니다. 이것은 마음작용의 이치이자 과학이에요. 실제로 해보면 다 그렇게 되는 거예요. 내가 남편을 사랑하고 이해하는 데 부처님이며 하느님이 왜 필요해요? 내가 행복하기 위해서는 내가 그냥 남편을 사랑하고 이해하면 되는 겁니다.

그런데 아무리 나를 사랑해달라고 해도 남편이 나를 사랑해주지 않으니까, 부처님이며 하느님한테 ‘저 인간 나 좀 사랑하게 해 주세요’, ‘아이가 공부 좀 하게 해주세요’ 이렇게 빌어야 하는 거예요. 남을 내 마음대로 하려고 하니까 힘 있는 자에게 빌어야 하는 겁니다.

반면에 내가 먼저 사랑하는 건 내가 그냥 하면 되니까 남에게 빌 일이 없어요. 내가 사랑하면 내가 행복합니다. 내가 행복하기 싫으면 미워하면 돼요. 부처님은 ‘사랑해라’, ‘미워하지 마라’ 이렇게 윤리를 가르치지 않아요. ‘네가 행복하고 싶으면 사랑해라’라고 할 뿐입니다. 괴롭고 싶으면 미워하라는 거예요. ‘미워하면 나쁘다’, ‘사랑하면 좋다’ 이런 윤리를 말하는 게 아니에요.

‘제가 지금 괴롭습니다.’

‘왜 괴로울까? 네가 남을 미워하니까 괴롭잖아.’

‘안 괴로우려면 어떻게 합니까?’

‘미움을 버려라.’

불덩어리를 쥐고서는 ‘아이고, 뜨겁습니다!’ 하고 있으니까 ‘놓아라’ 이렇게 얘기하는 거예요. ‘따끈따끈하니 좋은데요’ 이렇게 말하는데 왜 놓으라고 하겠어요? 뜨겁다고 아우성을 치니까 ‘놓아라’ 하고 말하는 거예요.

내가 행복하고 싶으면 남을 사랑하고, 남을 도와주고, 남을 이해하라는 겁니다. 그러면 나에게 아무런 괴로울 일이 없어요. 여러분이 지금 괴로운 건 사랑을 못 받아서 괴로운 거예요. 사랑을 받고 싶은데 안 해주니까 괴롭고, 도움을 받고 싶은데 못 받으니까 괴로운 겁니다. 결국 내가 원하는 대로 안 되기 때문에 괴로운 거예요.

이 괴로움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하면 될까요? 상대를 내가 원하는 대로 강제로라도 끼워 맞추면 될까요? 내 힘으로 안 되니까 ‘부처님, 도와주세요’ 이렇게 빌지만 그건 부처님도 해줄 수가 없어요.

괴로움에서 벗어나려면 내 마음대로 하겠다는 생각을 놓아버리면 됩니다. 도움을 받고 싶은 마음에서 벗어나 거꾸로 내가 도와주겠다는 마음을 내면 됩니다. 사랑을 받고 싶은 마음에서 벗어나 내가 먼저 사랑해주면 됩니다. 이해해 달라고 하던 마음에서 벗어나 내가 이해해 주면 괴로움이 싹 사라져 버립니다. 얼마나 쉬워요?

그런데도 질문자가 거꾸로 생각하는 이유는 오랜 습관 때문이에요. 담배를 안 피우는 사람에게는 담배 피우는 것보다 안 피우는 게 쉽습니다. 그런데 담배를 피우는 사람은 담배 피우는 게 더 쉽습니다. 원래는 안 피우는 게 피우는 것보다 훨씬 쉬운 거잖아요. 안 피우는 건 아무것도 안 해도 되니까요. 돈도 필요 없고, 노력도 필요 없어요. 그런데 담배를 피우는 건 돈도 있어야 하고, 담배도 사 와야 하고, 빼 물어야 하고, 불 붙여야 하고, 빨아야 해요. 재떨이에 재도 털어야 하고, 청소도 해야 하고 일이 많습니다. 그러니 담배를 안 피우는 게 훨씬 쉽고, 건강에도 좋아요. 그런데도 담배에 중독이 되면 담배 피우는 게 더 쉬워요. 담배 피우는 것이 습관화되어서 그렇습니다. 다시 말해 중독이 되었기 때문이에요.

마찬가지로 화내는 게 쉬울까요? 화를 안 내는 게 쉬울까요? 화를 안 내는 게 쉬워요. 그런데도 화내는 게 쉬운 건 화내는 것에 중독이 돼서 그래요.

행복하기가 쉬울까요? 괴로운 게 쉬울까요? 행복하기가 훨씬 쉬워요. 내가 행복해지고 싶으면 행복하면 돼요. 사랑하고 이해하면 행복해지니까요. 행복해지는 건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어요.

우리가 괴로워하는 것은 상대를 내 마음대로 하겠다는 욕심 때문입니다. 그 욕심이 습관이 되어버렸어요. 태어나서 그렇게밖에 살아본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담배 피우는 사람에게 담배 피우지 말라고 하면 오히려 ‘아이고, 나는 담배 안 피우면 못 사는데요’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과 같아요.

부처님 법은 굉장히 쉬워요. 사실 딱히 무엇을 할 것도 없어요. 그런데 다 어려워하는 이유는 담배 중독 환자나 아편 중독 환자처럼 탐, 진, 치 삼독에 중독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부처님은 ‘담배 피우면 네 건강에 나쁘다’ 이렇게 자비롭게 얘기하지만, 저는 이렇게 말합니다.

‘담배 피우면 여러 모로 좋지 않다.’

‘그래도 피우고 싶은데요.’

‘그래? 그럼 담배 피우고 일찍 죽어라.’

피우고 싶으면 피우라는 거예요. 본인이 피우고 싶다는데 누가 뭐라고 그러겠어요? 여러분은 ‘스님이 말을 왜 저렇게 하나’ 하지만, 본인이 하겠다는데 제가 어떡하겠어요? 담배 안 피우면 건강에도 좋고 돈도 안 들고 방도 깨끗하고 다 좋은데도 죽어라고 피우겠다는데, 그걸 어떡해요? 억지로 못 피우게 하면 인권침해라고 하거나 사생활 간섭이라고까지 하니까요. 그래서 저는 인권을 존중해서 ‘그래, 피우고 죽어라’ 이렇게 얘기하는 겁니다. (웃음)

금강경을 비롯한 모든 불경을 읽어봐도 사실은 모두 상식적인 얘기예요. 담배를 너무 피워서 목이 따갑다고 하면 담배 끊으라고 말하고, 밥을 너무 많이 먹어서 소화가 안 되어 힘들다고 하면 앞으로는 조금 먹으라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경전을 읽어보면 다 이런 얘기들이에요. 그런데도 담배를 못 끊겠다고 하는 겁니다.

‘담배를 끊는 게 좋다.’

‘조금만 피우면 안 될까요?’

‘조금만 피우는 것도 나쁘다.’

‘그래도 조금만 피우면 안 될까요?’

‘그래도 건강에 나쁘다.’

이렇게 해서 대화가 자꾸 길어지는 거예요. 원래는 금강경도 1장에 모든 내용이 다 담겨 있는데, 이해를 못해서 계속 설명을 하느라 32장까지 간 거예요. 이해가 됐어요?”

“네.”

“일체 중생을 구제할 마음을 내라는 말은 도움받으려 하지 말고 도움 주려는 마음을 내라는 뜻이에요. 그러지 않고 ‘남편이 나를 이해 안 해주네!’ 이러니까 괴로운 거예요. 내가 남편을 이해하면 됩니다. ‘꽃이 왜 나를 사랑해 주지 않을까’ 이러지 말고 내가 꽃을 예뻐해 주면 돼요. 내가 바다를 보고 ‘바다 참 좋다!’ 이러면 내가 기분이 좋지 바다가 좋을 게 뭐가 있어요? ‘산 좋다!’ 이러면 내가 좋지 산이 좋을 게 뭐가 있어요?

‘우리 남편 훌륭하다’ 이러면 내가 좋아요. 훌륭한 사람하고 같이 사니 다른 사람도 나를 존중할 거예요. 그런데 ‘우리 남편은 짐승보다 못해!’라고 하면 다른 사람들이 이렇게 보게 돼요.

‘웃기네. 그럼 저 여자는 짐승보다도 못한 남자와 한 집에 같이 사는 걸 보니 짐승보다 못한 것보다도 못한 존재네.’

이런 게 자기 얼굴에 침 뱉기예요. 자기가 자기를 괴롭히는 겁니다. 지금 우리가 그렇게 살고 있어요. 솔직하게 얘기하면 훨씬 더 적나라하게 얘기해줄 수 있는데, 그러면 여러분이 다 도망가 버릴까 싶어서 그래도 조금 조심스럽게 얘기해 주는 거예요. 오늘은 질문자가 먼저 물었으니까 제가 솔직하게 얘기하는 것이고요. 그런데 부처님은 딱 직설적으로 얘기하셨습니다.

‘제가 어떻게 하면 괴롭지 않게 살 수 있습니까?’

‘도움 받으려 하지 말고 도움 주겠다는 마음을 내라.’

부처님한테 ‘구제해 주세요’ 하지 말고 본인이 중생을 구제하겠다고 마음을 내라는 말이에요. 구제한다는 게 무슨 뜻일까요? 내가 상대를 사랑하고, 이해하고, 도와주라는 뜻이에요. 남편을 이해하고, 아내를 이해하고, 아이를 이해하고, 사랑하고, 도움을 주라는 겁니다. 그런 마음을 지금 여러분이 내보세요. 그러면 괴로울 일이 하나도 없어요.

그런데 여러분은 ‘사랑 안 해줘서’, ‘이해 못 받아서’, ‘도움 못 받아서’ 이런 이유로 상대를 미워하고 괴로워하면서 살아요. 사실은 누군가에게 빌 일도 없어요. 한 생각 딱 바꾸면 끝이에요. 부처님이 금강경 1장에서 말없는 일상으로 이것을 보여주신 거예요. 그런데 못 알아들으니까 수보리가 말로 표현해서 질문을 한 거죠. 부처님은 딱 한 마디로 얘기했어요. 그래도 못 알아들으니까 다시 두 마디를 해서 다음 장으로 넘어가요. 그래도 못 알아들으니까 또 두 마디를 하고요. 이렇게 해서 금강경이 점점 길어진 거예요.

다시 질문해 보겠습니다. 내가 꽃을 좋아하면 꽃이 좋을까요, 내가 좋을까요?”

“제가 좋습니다.”

“그래요. ‘부처님, 제가 좋으려면 어떻게 할까요?’ 이렇게 물으니까 부처님이 ‘꽃을 보고 예뻐해 줘라’ 이렇게 답하신 거예요. 이게 틀린 말이에요, 맞는 말이에요?”

“맞는 말입니다.”

“어려운 얘기예요, 쉬운 얘기예요?”

“쉬운 얘깁니다.”

“노력해야 하는 거예요, 이게 사실이에요?”

“사실입니다.”

“직접 해보면 바로 체험할 수 있어요, ‘아, 꽃 예쁘네!’ 이러면 내 기분이 좋잖아요. 바로 체험되는 거예요. 그래서 부처님이 이렇게 말씀하신 거예요.

‘눈 있는 자 와서 보라!’

나의 가르침은 눈 있는 자라면 누구나 와서 볼 수 있는 가르침이라는 뜻입니다. 눈만 뜨면 알 수 있는 것이지, 부처님 손에 숨겨진 어떤 비밀 같은 건 없어요. 본인이 눈을 감아서 못 볼뿐입니다. 눈만 딱 뜨면 보이는 거예요. 그런데 막상 해보면 잘 안 되죠? 왜 그럴까요? 어려워서 잘 안 되는 걸까요, 담배처럼 중독이 돼서 잘 안 되는 걸까요?”

“중독이 돼서요.”

“그래요, 중독된 상태라서 잘 안 되는 거예요. 그러니 잘 안 되더라도 안 되는 자기를 탓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냥 자기를 보면 돼요.

‘내가 담배에 중독이 됐구나.’

‘내가 미워하는 게 습관이 됐구나.’

‘내가 화를 내는 게 습관이 됐구나.’

습관이 돼서 나도 모르게 미워하고, 나도 모르게 화를 내고, 나도 모르게 죽겠다는 소리가 나오는 거예요. 습관이 돼서 지금 이렇게 살고 있는 겁니다. 그러면 이런 습관은 좀 버려야겠죠. 몸에 해로운 줄 알았으면 아무리 좋은 음식도 안 먹어야 해요.

이런 중독된 삶에서 벗어나세요. 여러분은 지금 중독된 게 한두 개가 아니에요. 음식에 중독돼, 옷에 중독돼, 명품에 중독돼, 향수에 중독돼, 술에 중독돼, 담배에 중독돼, 차에 중독돼, 집에 중독돼, 사람에 중독돼, 얼굴 모양에 중독돼, 이렇게 중독된 상태에서 미쳐서 살아가기 때문에 끝이 안 나는 거예요. 그래서 그 중독된 것을 한 번 놓아보라는 겁니다. 놓아야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정신 좀 차려라’ 이렇게 얘기해도 여러분은 ‘스님은 세상 물정을 모른다. 혼자 사니까 저런 소리를 하지’ 이런 얘기나 하죠. 그래서 저도 물어보는 것만 대답하지 일체 간섭을 안 해요. 여러분이 물어보면 그때만 얘기해요. 오늘도 물으니까 할 수 없이 얘기하는 거예요. 그래서 이런 멍청한 물음이 법문이 되는 겁니다.

부처님 주위에 똑똑한 사람만 있었으면 부처님이 설법할 일이 없었겠죠. 다 못 알아들으니까 또 묻고, 그래도 못 알아들어서 또 물으니까 금강경이라는 경전도 나올 수 있었던 거예요. 부처님이 첫번째 장에서 보여주신 행동을 보고 바로 알아차려 버렸으면 경이 성립하지 않습니다. 질문자가 그렇게 물어준 덕분에 오늘 많은 사람이 법문을 듣는 거예요.”

“감사합니다. 잘 알았습니다.”

이 외에도 7명의 질문이 이어졌습니다.

질문에 대한 대답을 다 마친 후 스님이 질문자들에게 한 줄 소감을 물어보았습니다. 중생을 구제하는 마음을 내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질문한 분도 소감을 이야기했습니다.

“머리를 얻어맞은 기분이었어요. 요즘 매일 회사에 가면서 수행하는 마음을 가지려 하지만 계속 상처를 받는 마음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스님께서 ‘중독이 너무 심해서 어렵게 느껴진다’라는 말씀을 해주셨을 때 마음이 찡했습니다. 일상생활에서 수행을 열심히 해서 중독에서 벗어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즉문즉설이 3시간 동안 진행되면서 11시가 넘어서 방송을 마쳤습니다.

점심 식사를 한 후 스님은 작업복으로 갈아 입고 비닐하우스로 나갔습니다. 오늘은 직접 키운 방울토마토, 꽈리고추, 청양고추, 홍고추 모종을 심었습니다.

먼저 1동 비닐하우스에 방울토마토 모종을 심었습니다. 먼저 파종기로 비닐에 구멍을 뚫으며 유박 퇴비를 넣어주었습니다.

모종을 심으려고 보니 땅이 무척 메말라 있었습니다. 어린 모종이 새로운 땅에서 뿌리를 튼튼히 내리려면 물이 충분히 있어야 합니다.

“땅이 너무 말라서 물을 먼저 줘야겠어요.”

비닐하우스 입구에서 물뿌리개에 물을 담아 나르던 스님은 긴 호스를 가져와 연결했습니다.

“몸이 힘들면 머리를 써야지요.”

물을 주고 구멍마다 모종을 착착 놓고 차례로 잘 심어주었습니다.


방울토마토 모종을 다 심고 3동으로 갔습니다,

지난번에 고추 모종을 심을 때 아직 심기 어린 고추 모종은 남겨두었습니다. 이번에도 긴 호스를 가져와 비닐하우스 끝에서부터 앞으로 나오며 구멍마다 물을 충분히 주었습니다.

물을 다 주고 파종기를 이용해 구멍마다 모종을 심어주었습니다. 행자들이 흙을 북돋도록 하고 스님은 4동 비닐하우스로 갔습니다.

4동에도 고추를 심어야 해서 먼저 구멍을 뚫고 물을 주었습니다.

물을 다 주고 3동으로 와서 함께 흙을 덮어주었습니다.


3동에서 일을 끝내고 4동에 심을 청양고추 모종은 아직 작아서 직접 손으로 심어주었습니다.


모종을 심다 스님은 마을 할머니의 어려움이 생각났습니다.

“할머니 밭에 물을 좀 옮겨드려야겠어요. 모종을 심으려고 하는데 물이 없어서 못 심으신다고 했거든요.”

행자들에게 뒷마무리를 맡기고 스님은 여기저기 놓여 있던 빨간색, 파란색, 하늘색 호스 세 개를 연결해서 비닐하우스에서부터 마을 할머니 밭까지 겨우 닿도록 했습니다.




“물을 틀어보세요.”

그런데 물이 아주 조금씩 졸졸졸 흘러나왔습니다. 비닐하우스에서 할머니 밭까지 오르막길이라 물이 잘 올라가지를 못했습니다.

“아이고, 안 되겠네요. 오늘은 7시부터 법회가 있으니 여기서 울력을 마칩시다.”

다시 원래 있던 자리에 호스를 정리해놓고 울력을 마쳤습니다.

저녁 7시부터는 전국 지회장 간담회가 온라인으로 열렸습니다. 지난번 정토회 온라인선거를 통해 선출된 전국의 지회장 70여 명과 통일특별위원회 모둠장 60여 명, 총 130여 명이 화상회의 방에 입장한 가운데 먼저 지회장을 대상으로 한 사전 설문 조사 결과를 나누었습니다. 현재 지회장들이 겪는 어려운 점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습니다.

선출 후 인수인계 기간에 업무 파악이 안 된 상황에서 입재식을 준비하느라 지쳐있는 지회장들도 있습니다. 스님은 먼저 지회장 전체를 격려한 후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오늘은 특별히 제가 이야기를 많이 하기보다 여러분이 궁금하거나 제안하고 싶은 점을 많이 이야기하시기 바랍니다.”

첫번째 질문자는 직장을 다니는 저녁반 활동가인데 이번에 지회장으로 선출되어 주간반과 소통이 어렵고, 여러모로 시간이 부족하다며 어려움을 토로했습니다. 계속해서 온라인 정토회 출범 이후 생겨나고 있는 다양한 어려움에 대한 질문이 3시간 동안 이어졌습니다. 스님은 지회장들의 어려움과 제안을 기록해가며 듣고 답변해주었습니다.

회의가 길어져서 중간에 쉬는 시간이 15분 주어졌습니다. 해외에서 참석하고 있는 한 분은 현지 시간으로 새벽 2시에 시작했다고 하며 쉬는 시간에 단잠을 자고 다시 입장했다고 해서 모두의 격려를 받았습니다.

질문에 대한 답변을 다 한 후 마지막으로 스님이 닫는 말씀을 해주었습니다.

건물의 골격을 세웠으니 다음에 할 일

“많은 제안들이 있었는데요. 현재 온라인 정토회의 상황은 건물의 골격만 세운 것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인테리어는 앞으로 우리가 의논해서 만들어가야 합니다. 앞으로 모둠장, 지회장, 지부장들이 올리는 많은 제안들이 올라올 겁니다. 이에 대해 여러분들이 의논해서 결정해 나가면 됩니다.

전국사업이면 지부장들이 의논해서 결정하면 되고, 지부사업이면 지회장들이 의논해서 결정하면 되고, 지회사업이면 전체 회원들이 의논해서 결정하면 됩니다. 그중에 법사단이 보기에 수행 원칙에 안 맞는 결정이 있는지 점검을 하게 됩니다. 큰 틀에서 원칙을 지키면 그 아래에서 다양한 변화들은 여러분들이 의견을 모아서 결정하면 됩니다. 이렇게 이해하시고 무엇이든지 좋은 아이디어를 내고 갖가지 실험을 해보시기 바랍니다.”

간담회를 마치고 나니 밤 10시가 넘었습니다.

내일은 정토회에서 이번에 새롭게 정한 가정의 날입니다. 행사나 회의를 일절 잡지 않고 가족과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 지정한 날입니다. 스님도 내일은 하루 종일 두북 공동체 성원들과 산책과 휴식을 한 후 저녁에는 일요명상을 할 예정입니다.

전체댓글 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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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나은

경전반에서 배우고도 금강경의 가르침을 깜빡잊고사네요. 다시 마음판에 새기겠습니다 감사드립니다^^

2021-05-05 08:00:30

법보

법륜스님 존경합니다.
말씀을 잘 들었어요 ㅎㅎ

2021-05-02 16:14:17

보각

꽃을 보고 예쁘다 하면 내가 좋다는 말씀에서 짠한 눈물이 났습니다. 감사합니다 스님.. 금강경의 1장에서 물음이 이어지니 길어진다는 말씀 중독에 걸린거라는 말씀 행복은 쉽다는 말씀이 조금은 와닿았습니다 감사합니다

2021-04-30 11: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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