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1.4.20. 못자리 모판 만들기
“짜증내고 욕하는 고객들 때문에 너무 화가 납니다”

안녕하세요. 오늘은 일 년 농사의 절반이라고 하는 못자리 모판을 만드는 날입니다.

새벽 기도와 명상을 마치고 스님은 두북 수련원을 찾아온 손님과 백운산 주변을 산책한 후 경주 남산 천룡사를 참배하고 돌아왔습니다. 해발 700미터가 넘는 고지대에는 아직도 연달래가 피어 있었습니다.

연달래 꽃구경을 실컷 하고 산을 내려왔습니다. 오후에는 못자리 모판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볍씨 파종을 하기 전에 미리 흙을 육묘상자에 절반 정도 넣고 평평하게 골라 두었습니다. 옛날 같으면 가래질을 하고, 누렁이 암소로 써레질을 해야 하지만, 요즘은 포대에 담긴 흙을 모판에 담고 밀대로 평평하게 밀기만 하면 됩니다.

오늘은 흙이 평평하게 담긴 모판 위에 발아한 볍씨를 파종하는 일을 다 함께 하기로 했습니다. 먼저 땅바닥에 흙이 담긴 모판을 층층이 쟁여 놓았습니다.

볍씨를 통에 넣은 후 통을 바퀴로 굴리니 볍씨가 모판 위에 골고루 뿌려졌습니다. 반복하면 할수록 속도가 붙었습니다.





먼저 물뿌리개로 물을 듬뿍 뿌리고 난 후 스님이 볍씨를 골고루 뿌리고 지나가면, 뒤이어 행자님이 혹시 빈자리가 생긴 부분에 손으로 볍씨를 더 뿌려 주었습니다. 이어서 다른 행자님이 골고루 뿌려진 볍씨 위에 상토를 살포시 덮어 주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물뿌리개로 물을 흠뻑 뿌려주면 끝입니다.

“손이 보여요. 점점 요령이 생기면 손이 안 보여야죠.”

스님은 작업 속도가 점점 더 빨라졌습니다. 한참 시간이 걸릴 줄 알았는데, 예상보다 빨리 모판 만들기 작업이 끝났습니다.

“시간이 많이 걸릴 줄 알았는데 금방 끝났네요.”

모판 20개면 한 마지기(200평) 벼농사를 할 수 있다고 합니다. 파종을 끝낸 모판 2백여 개는 모두 경운기에 싣고 보온이 되도록 천막을 잘 덮어준 후 울력을 마쳤습니다.

“수고했어요.”

3일 정도 지나면 새싹들이 뾰족뾰족 올라올 것입니다.

저녁에는 원고 교정과 여러 가지 업무들을 처리한 후 하루 일정을 마쳤습니다.

오늘은 법문이 없었기 때문에 지난달 25일에 열린 행복한 대화 즉문즉설 중에서 소개해 드리지 못한 내용 중 하나를 소개하며 글을 마칩니다.

짜증내고 욕하는 고객들 때문에 너무 화가 납니다

“저는 고객센터에서 상담 업무를 10년 정도 하고 있습니다. 남편도 직장에 다니고 있고 맞벌이 부부입니다. 감정 노동을 하는 업무이다 보니 일을 하면서 화가 많이 나고 상처도 많이 받습니다. 이유 없이 저에게 짜증을 내고 화풀이를 하거나 욕을 하고 무리한 요구를 하는 고객들을 자주 만납니다. 그럴 때마다 화가 너무 많이 납니다. 이 업무를 10년째 하고 있는데도 화를 다스리기가 힘들어요.

게다가 회사는 통화 처리 실적이나 친절을 엄청나게 강요합니다. 친절 정도에 따라 매일 등수를 매겨서 급여를 차등 지급하고, 요즘은 영업까지 하라고 강요해서 또 화가 납니다. 어떻게 해야 화를 안 내고 일을 할 수 있을까요?”

“직장을 그만두면 되죠. 직장을 그만두면 고객의 그런 부당한 언사를 안 들어도 되고, 집에서 남편이 벌어다 주는 돈 갖고 살림을 꾸리면 되잖아요. 다만 지금보다는 좀 소박한 생활을 해야 합니다. 자꾸 더 잘 먹으려고 하지 말고, 그저 밥만 안 굶으면 된다고 생각하세요. 입는 것도 절약해서 살면 돼요. 요즘 한국에는 중고 옷 물량이 엄청납니다. 조금 적게 먹고, 조금 적게 쓰고 산다는 각오만 하면, 그런 욕을 안 먹고 편안하게 살 수 있는 길이 있지 않느냐는 거예요.

돈 몇 푼 더 받으려고 그런 욕까지 얻어먹어가며 고생해서 일할 이유가 없잖아요. 직장을 그만두세요. 질문자가 그만둬도 그 일을 하려는 사람들이 지금 줄을 서 있어요.

‘욕해도 좋다! 욕을 얻어먹어도 좋다. 직장만 있으면 된다. 무슨 직장이든 좋다.’

이렇게 생각하고 취업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지금 줄을 서 있어요. 그 직장이 필요하다는 사람들한테 일을 넘겨주고, 질문자는 그런 직장 없어도 살 수 있으니까 집에서 살림을 꾸리면 돼요. 화가 안 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질문했으니까 드리는 말씀이에요. 그렇게 하면 화가 안 납니다.

“네, 알겠습니다.” (웃음)

“어떻게 할래요? 내일 당장 그만두겠어요?”

“아... (한숨) 그런데 저희 부부가 정말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맞벌이를 한 덕분에 차도 사고 집도 새로 분양받은 아파트로 가게 됐어요. 아파트에 당첨되지 않고 그냥 이 집에서 계속 산다면 저도 미련 없이 그만두겠는데, 이사를 가야 하는 상황에서 남편한테 혼자 그 짐을 다 짊어지라고 하기는 너무 미안해요. 그래서 제가 이 일을 못 놓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면 질문자에게는 그 직장이 꼭 필요하다는 거네요. 여기서 받는 월급으로 내가 꿈꾸는 집을 살 수 있다면 욕 좀 얻어먹는 게 그리 큰일일까요?”

“그건 그렇죠.”

“질문자는 관점이 분명치 않아요. 이 사람들이 욕을 하기 때문에 내가 이 직장을 가질 수 있는 거예요. 이 사람들이 이렇게 욕을 하지 않으면 누구나 다 이 직장을 가지려고 할 테니 경쟁이 치열할 겁니다. 그런데 욕도 막 들어야 하고 업무가 너무 힘드니까 이 일을 하다가 질문자처럼 그만둬 버리는 사람이 생긴 것이고, 그래서 질문자가 이 직장을 얻게 된 겁니다. 굳이 따지자면 그렇게 욕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질문자가 지금 밥을 벌어먹고 산다는 말입니다. 이 업무가 쉬우면 서로 하려고 하지, 질문자에게 차례가 돌아오겠어요?”

“차례가 안 돌아오죠.”

“저 사람이 욕을 하기 때문에 내가 집을 살 수 있다, 이렇게 생각해야 합니다.”

“아... 네, 감사합니다.” (웃음)

“그러면 욕하는 사람에게 감사하다고 말할 수 있어요, 없어요?”

“감사하다고 말할 수 있어요.”

“그래요. 이렇게 생각하세요.

‘당신이 욕을 해줘서 제가 이번에 집을 샀습니다.’

항의를 하고 욕을 하는 민원이 많이 들어오니까 사람들이 이 일을 힘들어하는 것이고, 힘들어하니까 월급도 최저임금 수준이 아니라 어느 정도 높게 받을 수 있는 겁니다. 만약에 욕도 안 하고 다들 그저 좋은 소리나 하는 편한 업무라면 서로 하겠다고 나서서 경쟁이 치열할 거예요. 그러면 나한테 돌아올 자리가 없습니다. 욕을 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에 내가 지금 이 자리에 있을 수 있는 거예요.

이 사실을 정말로 딱 꿰뚫어 알면 상대가 욕을 하는 정도는 아무 문제가 안 돼요. 욕을 좀 얻어먹으면 하루 일당이 생기는데 꼭 다른 곳에 가서 더 힘든 일을 해야 하겠어요?

이런 직업이 왜 생겼는지를 살펴봐야 합니다. 질문자도 민원을 넣는 경험을 한 번쯤은 해보셨을 거예요. 내가 민원을 제기할 땐 화가 나 있게 마련이에요. 한두 번 얘기해도 안 되니까 직접 찾아가거나 전화를 하는 겁니다. 그럴 때는 이미 성질이 나서 전화를 할까요? 편안한 마음으로 전화를 할까요?”

“성질이 나서 하겠죠.”

“그래요. ‘민원이란 원래 성질을 내면서 얘기하는 것이다’ 이렇게 이해하셔야 해요. 민원을 제기하면서 공손하게 상냥하게 말하는 사람은 없어요. 대부분이 욕부터 먼저 나오는 거예요. ‘여기 고쳐달라고 했는데 왜 아직도 안 고쳐져 있어!’ 이렇게 말하는 게 보통입니다. 그런 이야기를 받아주고 민원을 처리해 주기 때문에 질문자가 지금 밥도 벌어먹고 살고 집도 사는 거예요.

물론 고객들이 안 그랬으면 좋겠다는 마음은 이해가 돼요. 고객들이 말을 상냥하게 해 주면 얼마나 좋겠어요. 그런데 이 세상이 그렇게 안 되어 있는 게 현실이잖아요. 그걸 내가 어떻게 하겠어요? 그런 거친 언사를 안 들으려면 사표를 내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사표를 낼 형편이 못 된다면 이것이 내 밥그릇이라고 딱 알아야 해요. 이런 것을 처리해줘서 내가 밥을 먹고사는 거예요. 어떤 사람은 큰 톱으로 나무를 베어서 밥을 먹고살고, 어떤 사람은 하수구에 들어가 오물을 치워서 밥을 먹고살고, 어떤 사람은 관 속에 들어가 전기통신을 연결해 주고 밥을 먹고살고, 어떤 사람은 이렇게 거친 언사를 들으면서 밥을 먹고사는 겁니다.

따지고 보면 고마운 일이에요. 질문자는 세상의 고마움을 모르고 내 마음에 안 드는 것만 갖고 자꾸 시비하는 거예요. 즉문즉설에서 사람들이 하는 질문을 주욱 들어보세요. 전부 다 내 마음에 안 든다는 내용들이잖아요. 장모가 내 마음에 안 든다, 형이 교회에 가자고 해서 내 마음에 안 든다, 대화 좀 하자는데 아이가 말을 안 해서 내 마음에 안 든다, 전부 내 마음에 안 들어서 괴로운 겁니다. 질문자도 고객들이 말을 좀 상냥하게 안 해서 내 마음에 안 든다는 거잖아요.

세상은 내 마음대로 안 됩니다. 내 마음대로 되는 일도 있지만, 안 되는 일이 더 많습니다. 그러니 내 마음대로 안 된다고 때려치우면 누구 손해일까요?”

“제 손해요.”

“그래요. 그러니 이렇게 알아야 해요.

‘아, 세상이 이렇구나. 고객이 문제인 게 아니라 내가 원하는 만큼 안 되는 거구나.’

세상은 원래 내가 원하는 만큼 될 수가 없어요. 부부지간에도 남편이 내가 원하는 만큼 될 수 없고, 아내가 내가 원하는 만큼 될 수 없고, 자녀들도 내가 원하는 만큼 될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상대방이 문제가 있는 사람인 것은 아니에요. 내가 원하는 만큼 안 될 뿐이죠. 그런데도 내가 원하는 만큼 되어야 한다는 것에 집착하게 되면 결국 이혼을 해야 하고, 가족 간에 헤어져야 하고, 친구 간에 헤어져야 해요.

그러니 관점을 분명히 가져야 해요. 사람은 견해가 서로 다르기 마련이니까 갈등이 생기는 건 당연한 현상입니다. 민원을 넣는 사람은 전화해서 성질내는 게 당연하고요. 그러니 상대가 욕을 해도 상냥하게 받아주세요.

‘아이고, 성질나셨네요. 몇 번 전화하셨나 보죠. 제가 처리해 드릴게요. 얘기해 보세요.’

혹시 내가 처리할 수 없는 일은 이렇게 말해 보세요.

‘정말 처리해 드리고 싶지만 그건 좀 안 되겠는데요.’

상대가 욕을 하면 좀 능글능글하게 대응하고요.

‘죄송합니다. 그건 법규상 안 돼요. 제가 어지간하면 해드리려고 했는데, 죄송합니다.’

하루 8시간을 근무한다면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고 질문자 인생의 절반이 직장생활이잖아요. 그 시간을 행복하게 보낸다는 자세를 가져야 해요. 공연히 다리 아프게 절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에요. 왜 죄 없는 다리만 자꾸 고생시켜요? 관점을 바르게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 이게 내 밥그릇이구나!’

이 관점만 딱 갖고 있으면 아무 문제가 안 돼요. 상대가 욕을 해도 ‘당신이 그렇게 욕을 해주니까 오늘 내 일당이 생기는구나’ 이렇게 생각하고 가볍게 받으세요.”

“네, 감사합니다.” (웃음)

“그래도 못 견디겠거든 사표를 내세요. ‘욕 얻어먹어도 좋으니 제가 그 일을 하겠습니다’ 하는 사람들이 뒤에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어요.”

“네, 고민이 말끔하게 해결되었습니다.”

전체댓글 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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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영

아 맞습니다.
다리가 아프고, 호객행위를 해도 이게 내밥줄이었어요.
그러니..
지금이라도..제일을 아끼고 사랑하고싶네요.
저도 지금이힘든 식당일때문에 집도사고적금도 들었으니..
사장님이 욕해도..
참을수있어요.
제가 일잘못하고 멍해서..그렇게 혼내신거니깐..

행복하게 일하겠습니다.
내밥줄..내직장

2021-04-28 23:12:45

보각

관점이 잡히네요 스님 감사합니다

2021-04-27 11:21:53

박인자

관점이 이렇게 중요하군요
녜 그사람들때문에 잘살고있습니다
어려운시기 감사합니다
직장이 있어서 감사합니다 덕분입니다

2021-04-26 21:2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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