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1.3.26 정토대전 회의, 금요 정기법회
"불교에서도 죄를 사하는 방법이 있나요?"

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하루 종일 공동체 법사단과 정토대전 편찬을 위한 회의를 한 후 저녁에는 금요 정기법회를 생방송했습니다.

문경 수련원이 있는 뇌정산은 곳곳이 연둣빛으로 물들고 있습니다. 하룻밤을 자고 나면 누군가가 색연필로 색칠을 한 것처럼 연둣빛이 더 많이 번져 있습니다.


새벽 기도와 명상을 마치고 오전 8시에 공동체 법사단회의를 먼저 시작했습니다. 4월 10일 정토회 온라인 선거를 앞두고 법사단은 어떻게 인사 배치를 하고, 어떤 역할을 주로 하는 게 좋을지 함께 검토했습니다. 서울과 다른 지역에 머물고 있는 법사님들은 온라인으로 회의에 참석했습니다.

법사단회의를 마치고 잠시 휴식했다가 10시부터는 정토대전 편찬 회의를 했습니다. 오늘은 경전 모음집을 만드는 법사님들이 각자 준비해 온 내용을 발표했습니다. 부처님 당시에 설법을 듣고 깨달음을 얻은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경전 속에서 발췌해 왔습니다.

프라세나짓 왕, 목갈리나, 마하가섭, 아난다 등 평소 스님의 법문 속에서 자주 등장했던 인물들의 이야기가 경전 속에서는 어떻게 기록되어 있는지 함께 읽어본 후 각각의 이야기를 어떻게 정토 대전 속에 넣을지 스님이 관점을 잡아 주었습니다.

“경전의 내용이 게송도 좋고 모두 좋은데 정토대전 속에 그대로 싣기는 무리가 있어요. 가난해서 보시하기 어려운 여인이 보시하겠다는 마음을 냈다는 구절은 교훈적으로는 참 좋은 내용입니다. 하지만 오해를 불러일으킬 소지도 있어요. 부처님의 인격에 비추어보면 자기 옷도 없는 가난한 여인이 옷을 보시했더라도 받지 않으시고 ‘네가 입어라’ 이렇게 말씀하셨을 거예요. 그런데 ‘보시를 더 일찍 했으면 공덕이 더 많다’ 이런 말씀을 하셨다고 기록되어 있거든요. 이런 표현은 적절치 못한 것 같아요.

수행적 관점에서 경전을 다시 봐야 하는 이유

수행적 관점에서는 망설이지 않고 마음이 났을 때 바로 보시하는 것이 올바른 공부의 자세인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재물과 관계된 것에는 항상 신중할 필요가 있어요. 부처님이 아닌 오히려 가난한 사람에게 보시했다고 하면 반론이 없을 겁니다. 그러나 부처님께 보시했다고 하니까 대중들은 ‘네가 먹을 양식이 없더라도 절에 보시를 많이 해라’ 이렇게 해석할 수도 있거든요.

사실 수행적 관점에서는 뺄 것도 고칠 것도 없는 바른 자세를 이야기한 거예요. 그러나 종교적 관점에서는 악용될 위험이 매우 농후하다고 봅니다. 그래서 경전의 내용을 그대로 정토대전에 수록하기에는 어려운 점이 있습니다. ‘나쁜 짓을 하면 가난해진다’, ‘나쁜 짓을 하면 신체장애가 생긴다’ 이런 구절은 극빈자나 장애우에 대해 잘못된 인식을 하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오류를 논리적으로 합리화하는 데 이용할 수 있어요.

‘네가 나쁜 짓을 하면 다음 생애에 고통을 받으니 나쁜 짓을 하지 마라’ 이렇게 교훈을 주기 위해 이런 구절을 인용할 때는 좋은 예시가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구절을 진실을 규명하는 명제로 다루면 얘기가 달라집니다. 명제가 성립하려면 ‘A면 B이다’라고 할 때 ‘B면 A이다’ 하는 것도 역으로 성립해야 합니다. 그래서 이 구절은 ‘가난하고 신체장애를 가진 사람은 전생에 죄를 많이 지었기 때문이다’ 이런 표현을 합리화시키는 결과를 빚습니다. 즉 세상의 부조리를 용인하는 것에 악용이 될 소지가 있어요. 부처님이 하신 말씀의 뜻을 제대로 해석한다면 문제가 없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을 때 이런 표현은 굉장히 위험한 요소를 안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세상에는 네 종류의 사람이 있다. 어둠에서 어둠으로, 어둠에서 밝음으로, 밝음에서 어둠으로, 밝음에서 밝음으로 가는 자이다. 어둠에서 어둠으로 가는 자는 어떤 자인가? 현재의 삶이 괴롭다는 이유로 막말을 하고 함부로 행동해서 더 큰 괴로움으로 나아가는 자이다.’

이런 식으로 부처님이 하신 말씀의 뜻을 잘 살려서 편집을 해야 합니다. ‘지옥에 간다’, ‘천당에 간다’ 하는 표현은 수행의 관점과 맞지 않아요. 이런 표현은 부처님의 말씀을 후대 사람들이 인과응보의 개념으로 해석을 했다는 증거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수행자는 어제도 생각하지 말고, 내일도 생각하지 말고, 지금에 깨어있어라’

그렇기 때문에 과거 전생을 이야기하거나 내생을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부처님 말씀과 맞지 않습니다. 수타니파타를 읽어보면 ‘수행자는 미래의 희망도 갖지 마라’ 이렇게 말씀하신 내용이 나옵니다. 미래의 희망을 갖는다는 것은 현재에 불만을 품고 있다는 거잖아요. 어떤 조건이든 항상 지금이 좋은 상태가 되는 것이 수행자가 가져야 할 삶의 자세입니다. ‘어떤 행위를 하면 다음 생에 조건이 좋아진다’ 이런 내용은 수행적 원칙과는 거리가 멀어요. 해탈을 향한 법문이 될 수 없고, ‘나쁜 일 하지 말고 좋은 일 해라’ 하는 교훈을 주는 법문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 가지 교화 사례를 함께 읽는 가운데, 공동체에서 안온하게 살기 위한 방법을 담은 경전도 있었습니다.

공동체에서 안온하게 사는 법

“세존이시여, 참모임에 살면서 어떻게 안온하게 살 수 있습니까?”

“아난다여, 수행승이 스스로 계행을 갖추고 다른 사람을 보다 높은 계행을 기준으로 흠잡지 않는 것과, 스스로를 살피지만 남을 살피지 않는 것과, 알려지지 않았는데 알려지지 않은 것 때문에 두려워하지 않는 것과, 보다 높은 마음이자 현세에서의 행복한 삶인 네 가지 선정을 원하는 대로 얻고 어렵지 않게 얻고 곤란 없이 얻는 것과, 번뇌를 부수고 번뇌를 여읜 마음에 의한 해탈과 지혜에 의한 해탈을 현세에서 스스로 곧바로 알고 깨달아 성취한다면, 아난다여, 그러한 한 참모임에 살면서 안온하게 살 수 있다.”

<앙굿따라 니까야> 제5권 11. 안온한 삶의 품. 아난다의 경

함께 독송한 후 스님은 이 내용이 의미하는 바를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공동체에 전달해서 매일 읽게 하면 좋겠네요.(웃음) 쉽게 이야기하면 이렇게 말할 수 있어요.

첫째, 자신은 계율을 지키되 남이 계율을 안 지키는 것을 시비하지 마라.
둘째, 자신을 늘 돌아보고 뉘우치되 남에게 돌아보고 뉘우치라고 말하지 마라.
셋째, 모르는 것에 대해서 두려워하지 마라.
넷째, 항상 선정을 닦아라.
다섯째, 지혜로 번뇌를 부수고 항상 지혜에 의해서 해탈한 상태로 살아라.

이 내용은 결국 계정혜(戒定慧) 삼학을 닦아야 한다는 내용입니다. 첫째와 둘째는 계(戒)에 대한 내용인데, 계(戒)는 나한테 적용해야지 남한테 적용하지 말라는 것이 핵심입니다. 네 번째는 정(定)에 대한 내용이고, 다섯 번째는 혜(慧)에 대한 내용이니까 결국 공동체에서 안온하게 살려면 계정혜 삼학을 닦아야 안온하게 살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경전을 함께 읽다 보니 부처님 당시의 모습이 마치 영화를 보듯이 주욱 그려졌습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합시다. 나머지는 다음 주에 또 공부합시다.”

하루 종일 경전을 읽다 보니 벌써 해가지고 있었습니다. 회의를 마친 후 잠시 휴식을 하며 원고 교정 업무를 보았습니다.

저녁 7시 30분에는 금요 정기법회 생방송을 시작했습니다. 오늘은 700여 명의 저녁반 회원들이 생방송에 접속했습니다.

스님은 문경과 두북에 찾아온 봄소식을 전하며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지난주에 경주 남산과 두북 수련원에 찍은 꽃 사진을 보여주자 채팅창에는 설레는 마음을 표현하는 댓글이 올라왔습니다. 오늘 스님의 책상 위에는 노란 개나리꽃이 올라왔습니다.

오늘은 8일 출가열반 특별정진 기간 중 7일째 날입니다. 정토회는 부처님의 출가 기념일부터 열반 기념일까지 일주일 기간을 집중 정진 기간으로 정하고 함께 정진을 하고 있습니다. 법회 후 300배 정진을 해야 하기 때문에 오늘은 4명의 질문만 받았습니다. 그중 한 명은 불교에서도 기독교와 천주교처럼 죄를 사해주는 것이 있는지 질문했습니다.

불교에서도 죄를 사하는 방법이 있나요?

“정토불교대학을 다닌 후 108배도 하면서 마음 알아차림을 연습하고 있습니다. 기독교나 천주교에서는 죄를 사해준다고 하는데 불교에서도 그런가요? 제가 과거에 누군가에게 실수하거나 상처를 주었는데 지금은 연락도 안 되어 사과를 못하고 있고, 또한 제가 상처 받은 것도 사과를 받고 싶으나 상대방이 안하무인인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생각들 때문인지 표정이 어둡다는 말을 많이 듣고 우울증까지 생겼는데 어떻게 대처하면 좋을까요?”

“불교에서는 지은 죄를 누가 대신 사해준다는 가르침이 없습니다. 그것은 진실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수행자라면 그런 거짓에 현혹되어서는 안 됩니다. 자기가 지은 죄는 자신이 깊이 뉘우치고 다시는 그런 잘못을 범하지 않아야 합니다.

또 내가 피해를 입었을 때 상대로부터 사과를 받으려 한다면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그것은 본인을 계속 괴롭히는 결과를 낳기 때문입니다. 상대가 사과를 안 하는 것 때문에 화가 나거나 원한이 맺혀 있으면 계속 나를 괴롭히게 됩니다. 부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제1의 화살은 맞을지언정 제2의 화살은 맞지 말라.’

누구의 발에 걸려 넘어졌거나 어쩌다 누구에게 한 대를 맞아 다쳤다면 그것이 제1의 화살입니다. 그것에 대해 상대가 사과나 배상을 해주지 않아서 내 마음에 원한과 미움을 가지면 결국 나만 괴롭습니다. 그것은 제2의 화살을 맞는 것과 같습니다. 원한을 원한으로 갚으려는 마음을 갖지 마세요. 그것은 상대를 위해서가 아닙니다. 진정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그래야 해요. 사과를 받고 싶은데 그 사람이 안하무인이라 사과를 안 해 준다고 내 마음이 괴롭다면, 그 사람 때문이 아니라 나의 어리석음 때문에 내가 괴로운 것입니다.

내가 잘못을 했을 때는 신속하게 사과하고 참회하는 게 좋습니다. 그래야 나도 편하고 상대도 원한이 안 맺히게 됩니다. 내가 상대에게 상처를 주었을 때는 빨리 사과해서 상대에게 원한이 덜 맺히게 하는 게 지혜로운 행동입니다. 그런데 상대가 돌아가셨거나 연락이 안 되어 사과를 할 수가 없는데도 사과를 꼭 해야겠다고 하는 것은 집착입니다. 집착은 본인을 괴롭히는 어리석은 행위입니다. 그런 행위는 결국 자기 욕구에 불과해요. 내가 사과를 꼭 받겠다는 것도 욕구이고, 사과를 꼭 하겠다는 것도 욕구예요.

내가 상대에게 실수를 했거나 손해를 끼쳤을 때 상대가 내 사과를 안 받아주면 또 괴로움이 생깁니다. 왜 사과를 했는데도 안 받아주냐고 원망하는 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상대가 받아들여줘야 사과이지 내가 사과를 하기만 한다고 사과가 아니에요. 일본에서 위안부 문제에 대해 유감을 표명한다고 해서 사과가 아니고 한국 국민들이 그것을 받아들여줘야 사과입니다. 지금 일본은 ‘몇 번 사과를 했는데도 계속 사과를 하란 말이냐’ 하면서 오히려 옛날에 사과했던 것도 취소한다고 하잖아요. 이것은 더 큰 원한을 만드는 행위입니다.

내가 잘못했다고 해서 죄의식을 가질 필요는 없어요. 누구나 잘못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과는 진솔하게 하는 것이 좋습니다. 상대와 연락이 닿을 수 없다면 나 스스로 참회 기도를 하면 되지 꼭 찾아가서 사과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도 자신의 욕망입니다. 사과를 할 수 있으면 하고, 할 대상이 없으면 참회를 하면 돼요.

내 잘못 때문에 어떤 과보가 따른다면 기꺼이 받겠다는 자세를 가지세요. 잘못을 저질러 놓고 사과 한 마디만 하고 과보를 안 받겠다는 것은 이기심입니다. 일단 잘못을 하지 말아야 하고, 잘못을 했다면 과보를 받아야 합니다. 손실이 생기거나 비난을 하면 능히 받아들이겠다는 자세를 가져야 마음에 두려움이 없어져요.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가는 방법

내가 피해를 입었을 때도 일단 제1의 화살을 맞았다는 것이 자각이 되었다면 그다음에는 제2의 화살을 맞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이렇게 마음을 놓아 버리는 것이 필요해요. 내가 입은 손실을 되찾는 정당한 대응을 하지 말라는 뜻이 아닙니다. 상대에게 사과를 받으려고 매달리게 되면 결국 상대의 태도에 의해 내 기분이 좌우되게 됩니다. 이것은 내가 상대에게 종속이 되어서 종노릇을 하는 것과 같아요. 현명한 것 같지만 사실은 바보짓입니다.

살다 보면 누구나 실수할 수 있기 때문에 잘못에 대해 죄의식은 갖지 말되 진솔하게 사과해야 합니다. 상대가 나에게 손해를 끼친 것은 가볍게 내려놓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것이 지금 내가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가는 방법이에요.”

“네, 잘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 외에도 다음과 같은 질문이 있었습니다.

  • 부동산 투자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수행과 부동산 투자가 상충된다고 느낄 때가 있는데 어떤 마음으로 공부와 수행을 해나가야 할까요?
  • 성공을 위해 목표를 정하고 매진하는 것도 욕심일까요?
  • 불행했던 유년시절을 생각하면 눈물이 나고 우울합니다. 어릴 적 부모님의 이혼이 내 잘못이 아닌 건 알지만 자존감이 바닥을 칠 때가 있어요.

질문에 대한 답변을 마치고 나서 스님은 4월부터 변화되는 법회 요일과 날짜를 공지해 주었습니다.

“4월 21일부터는 금요 정기법회가 수요 수행법회와 통합되어 진행됩니다. 4월 23일부터는 일반인 누구나 참석하는 즉문즉설이 매주 금요일마다 진행되고요. 그러니 미리 일정 조정을 헤주시기 바랍니다. 오늘 법회가 일찍 끝났다고 놀지 마시고 300배 정진까지 꼭 하세요.”

이어서 300배 정진을 시작했습니다. 정진을 마치고 각자 모둠별로 화상회의 방에 입장하여 마음 나누기를 한 후 금요 정기법회를 모두 마쳤습니다.

내일은 새벽에 천일결사 기도를 생방송한 후 오전에는 부처님의 열반일을 맞이해 기념법회를 하고, 오후에는 정토회 총무 간담회를 온라인으로 진행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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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화

기독교는 사람의 종교가 아니기에 죄를 짓고 불의를 행하면 심판자가 있어 회개 즉 용서를 구하고 우리 죄를 대신 담당하사 십자가 형벌을 받으신 예수님을 믿으면 용서가 임하고 상대든 자신을 용서할 수 있는 힘이 있게되어 기쁨으로 용서을 구하고 하게 됩니다. 이것이 진리라 합니다

2023-07-07 19:03:44

굴뚝연기

[‘수행자는 어제도 생각하지 말고, 내일도 생각하지 말고, 지금에 깨어있어라'] […내가 피해를 입었을 때도 일단 제1의 화살을 맞았다는 것이 자각이 되었다면 그다음에는 제2의 화살을 맞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이렇게 마음을 놓아 버리는 것이 필요해요.] 네~살아가며,피해를 준일도,피해를 당한일도 많은데ㆍ사과를바라는 어리석음의 제2의화살은 맞지말아야겠군요ㅠ

2021-04-18 12:59:45

김춘배이현미

스님~^^ 건강발원합니다
내가 잘못했다고 해서 죄의식을 가질 필요는 없어요. 누구나 잘못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과는 진솔하게 하는 것이 좋습니다. 상대와 연락이 닿을 수 없다면 나 스스로 참회 기도를 하면 되지 꼭 찾아가서 사과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도 자신의 욕망입니다. 사과를 할 수 있으면 하고, 할 대상이 없으면 참회를 하면 돼요.

2021-03-31 21:4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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