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1.3.15 고사리 심기, 행복학교 특강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는 무엇일까요?”

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하루 종일 농사일을 한 후 저녁에는 행복학교 참가자들을 위해 온라인 특강을 했습니다.

오늘도 두북 수련원에서 하루를 시작합니다. 새벽 기도와 명상을 마치고 농사일을 시작했습니다. 오전에는 겨울 동안 줄곧 온실에 심어놓은 상추를 텃밭에 옮겨 심었습니다. 작년에 씌워둔 비닐 구멍마다 손을 짚어 넣어서 하나씩 심어야 하다 보니 시간이 오래 걸렸습니다.

겨우내 빼곡히 자란 고수도 옆 땅으로 옮겨 심었습니다.

오전 농사일을 마치고 점심을 먹은 후 12시부터는 산 윗밭으로 올라갔습니다. 진달래가 어제보다 더 활짝 피어서 반갑게 맞이해 주었습니다.


스님은 걸어서 올라가고 있는데 행자들은 트럭을 타고 앞질러 올라갔습니다.

“트럭을 타고 가면서 스님도 태워줘야지 왜 그냥 지나가요?”

“스님은 걷는 것을 좋아하시잖아요.”

“제가 요즘 오르막길을 못 가서 내리막길만 걷는 것을 알면서도 그런 소리를 해요?” (웃음)

반갑다는 마음을 이렇게 나눈 후 일 나누기를 했습니다. 오늘은 고사리를 심는 날입니다. 먼저 어디에 심을지 위치를 정했습니다.

“제 생각에는 고사리는 양지바른 데서 잘 자라니까 여기 경사면에 최대한 심으면 좋을 것 같아요. 여러분들 의견은 어때요?”

“네, 좋습니다.”

스님이 심을 위치를 정하자 농사팀 행자님들이 괭이를 들고 땅을 먼저 팠습니다. 한 사람이 깊이를 10cm 정도로 해서 땅을 파고 지나가면, 뒤 이어서 한 사람이 고사리 뿌리를 가지런하게 놓았습니다. 스님은 마지막에 흙을 덮어주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다들 묵묵히 각자의 역할을 하고 있는 가운데, 스님이 웃으며 말했습니다.

“산 위에 있는 황무지 땅인데, 밭둑까지 고사리를 심으니 우리가 이 땅을 참 알뜰하게 쓰고 있는 것 같죠? 누가 보면 우리를 불쌍하게 여길 것 같아요. 얼마나 땅이 없었으면 이런 곳에도 작물을 심느냐고 할 겁니다.”

“맞아요. 북한에 뙈기밭 같아요.” (웃음)

전혀 활용 가치가 없어 보이던 경사면에 고사리를 가득 심었습니다. 경사면에 심다 보니 괭이로 땅을 판 모양이 마치 손가락 지문 같았습니다.

고사리 뿌리 중에는 씨눈이 안 보이는 것도 있었습니다. 행자님은 씨눈이 안 보이는 것을 버리자고 하고, 스님은 아까워했습니다.


“스님, 이건 씨눈이 안 보여요. 버리는 게 좋겠어요.”

“그것도 일단 심어 봐요.”

스님은 뿌리를 심을 때 두 줄 정도만 겹치게 놓는 게 좋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세 줄, 네 줄이 겹치게 놓인 것도 보였습니다.

“아니, 여기는 네 줄씩 겹치게 놓였네요. 빨리 일을 끝내고 싶어요?”(웃음)

“스님, 네 줄이 아니고 한 줄이에요. 뿌리가 하나인데 줄기가 여러 개 달려서 그렇게 보이는 거예요.”

“그럼 씨눈이 있는 줄기를 잘라서 넣으면 되죠. 옳은 방법이 있는데, 그렇게 하기가 싫으니까 안 들리는 거 아니에요?” (웃음)

어떻게 심어야 잘 자라는지 방법을 연구해가며 이렇게도 심어보고, 저렇게도 심어보았습니다. 밥상에 오른 고사리를 먹을 줄만 알았지 심는 것은 처음인 행자가 고사리를 심으며 연신 신기해하며 말했습니다.

“태어나서 고사리는 처음 심어 봐요.”

“고사리와 비슷한 고비는 알아요? 깨치미라고도 하죠.”

고사리도 신기한 행자에게 고비는 더욱 알 수 없는 식물이었습니다.

“주려 죽을진들 채미도 하난 것가 하는 시조 못 들어봤어요?”

행자가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습니다.

“스님과 교과 과정이 달라서 안 배웠나 봐요.”

“공부를 제대로 안 해 놓고 교과 과정 탓하는 거 아니에요?”(웃음)

스님은 차근차근 고사리에 관련한 시조와 그 배경을 들려주었습니다.

“백이숙제는 들어봤죠? 백이와 숙제는 은나라 말의 충신이었어요. 은나라 주왕이 폭정을 하니까 주나라 무왕이 혁명을 일으켰어요. 이때 백이와 숙제는 무왕의 말고삐를 잡고 말립니다. 그러나 은나라는 망하고 결국 주나라 무왕이 즉위했어요. 그러나 백이와 숙제는 수양산에 들어가 고사리를 뜯어먹으며 지내다가 굶어 죽었어요.

그런데 조선시대에 수양대군은 어린 조카인 단종의 왕위를 찬탈하고 세조로 즉위했잖아요. 이때 단종을 복위시키려고 했던 사육신 중 한 명인 성삼문이 백이와 숙제를 비판하는 시조를 썼어요.

수양산 바라보며 이제(夷齊)를 한하노라
(수양산을 바라보며 백이와 숙제를 한탄하노라)

주려 주극진들 채미(採薇)도 하난 것가
(굶어 죽을지언정 고사리를 뜯어먹어서야 되겠는가)

아모리 푸새엣 거신들 긔 뉘 따헤 낫다니
(비록 푸성귀라 할지라도 그것은 누구의 땅에서 났던고)

채미의 미는 고사리를 뜻해요. 고사리와 비슷한 고비도 깨치미라고 하죠. 굶주려 죽을지언정 무왕의 땅에 난 고사리를 캐먹었다고 비판한 거예요. 그래서 성삼문에게 너는 수양대군이 즉위한 나라의 녹을 받아먹고살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자기 집의 창고를 보라고 합니다. 창고에는 나라에서 받은 녹이 그대로 쌓여있었다고 해요. 조선 후기에 주의식이 이 시조를 보고 백이숙제를 변론하듯 지은 시조도 있어요.

주려 죽으려 하고 수양산(首陽山)에 들었거니
(굶어 죽으려고 수양산에 들어간 것이니)

설마 고사리를 먹으려 캐었으랴
(설마하니 배가 고팠어도 고사리를 먹으려고 캐었겠는가)

물성(物性)이 굽은 줄 미워 펴 보려고 캠이라
(고사리의 성질이 굽은 것을 미워하여 펴보려고 캔 것이리라)

고사리를 캔 것은 먹으려는 것이 아니라 그 굽은 물성이 싫어 바로 잡으려는 것이었다는 것이에요. 백이숙제를 옹호한 거죠.”

밭이 그대로 역사 교실이 되었습니다. 계속해서 집중해서 두 시간 작업을 하니 두 포대 가득 담겨 있던 고사리 뿌리를 모두 심을 수 있었습니다.

고사리를 다 심고 나서 시간이 남아서 모란이 심겨진 밭 주위에 잡초를 뽑았습니다. 이 모란은 2019년에 북한에 모란 씨앗 10톤을 보내고 남은 씨앗을 심어둔 것입니다. 모란밭에 풀을 다 매고 도라지밭에 자란 잡초도 뽑았습니다. 도라지밭은 작년에 꽃이 지고 줄기를 모두 잘라두어 땅속에 뿌리만 남아 있습니다. 봄이 지나 다시 뿌리 에서 싹이 트고 꽃이 피고 지는 동안 도라지는 땅속에서 영글어 갑니다. 잡초를 뽑다가 보니 1년 동안 땅에서 자란 도라지 뿌리들이 모습을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1년 된 도라지가 제법 굵네요. 큰 것은 손가락 만해요.”

빈 것처럼 보이는 땅 속에 제법 통통한 도라지를 만나니 반갑습니다. 작은 도라지 뿌리에서 짙은 도라지 향기가 풍겨 나왔습니다.

“자,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고 내려갑시다.”

산에서 내려오는 길에는 곳곳에 매화가 피어 있고, 목련이 막 꽃망울을 터뜨리려 하고 있었습니다.


오후 4시에 두북 수련원을 출발하여 문경 수련원으로 향했습니다. 가는 길에 잠깐 경주 남산에 들렀습니다. 새갓골에 진달래 군락지가 있어서 봄이면 진달래가 만발하는데, 혹시 진달래가 벌써 피었는지 확인해보기 위해서입니다.

“이야, 진달래가 벌써 다 피었네요. 주말에 손님들이 찾아오면 새갓골에 진달래 구경을 좀 시켜줘야겠어요.”

진달래가 활짝 핀 것을 확인하고 다시 차를 타고 문경 수련원으로 향했습니다.

저녁 7시 30분부터는 명상원에서 행복학교 특강을 온라인 생방송으로 진행했습니다.

행복학교 9기 마음편 참가자와 7기와 8기 관계편 참가자까지 1300여 명이 생방송에 접속했습니다.

스님을 소개하는 영상이 끝나자 스님이 인사말을 했습니다. 먼저 코로나 사태 이후 지난 1년 동안의 변화를 이야기하며 지금 이대로도 우리는 행복할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안녕하세요. 코로나19 바이러스가 확산된 지 이제 1년이 조금 넘었습니다. 1년밖에 안 지났는데, 우리 생활에는 많은 변화가 생겼습니다. 방금 저를 소개하는 영상을 보면서도 변화를 느꼈을 겁니다. 코로나19 사태 이전에 저는 매년 봄과 가을에 전국을 돌며 즉문즉설 강연을 했습니다. 1월에는 인도에 가서 성지순례를 안내하고 8월에는 중국에 가서 동북아역사기행 안내를 했어요. 1년 중 절반은 동남아시아를 비롯한 여러 나라를 다니면서 구호활동을 하고, 유럽이나 미국에 사는 한국 교민들을 만나 대화를 했습니다. 이것이 저의 일상이었습니다. 그런데 작년 1월에 인도성지순례를 다녀온 이후로는 해외로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했고, 국내 강연도 못했어요. 이렇게 한 곳에 머무르고 있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비대면 사회로 바뀌면서 가족도 자유롭게 만나기 어려운 일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지난 일 년을 돌아보면 이런 변화가 꼭 나쁜 면만 있는 것은 아니에요. 코로나19 덕분에 일 년 내내 한국에 머무르면서 30년 만에 사계절을 온전하게 다 느껴볼 수 있었습니다. 은퇴하면 농사를 지으려고 했는데 조기에 그 꿈이 이루어져서 작년 내내 농사를 지으면서 지냈어요. 전에는 강연 있으면 농사를 짓다가 씻고 옷 갈아입고 두세 시간 차를 타고 이동해야 했는데, 요즘은 강연이 있는 날도 농사일을 할 수 있게 됐습니다. 강연 30분 전에만 일을 마치고 씻고 옷 갈아입고 카메라 앞에 앉으면 여러분을 만날 수 있어요.

4월 5일이 식목일입니다만 요즘 지구 온난화로 날씨가 빨리 따뜻해져서 벌써 진달래가 피었습니다. 남부지역에는 목련도 피었습니다. 그러니 벌써 나무 심을 때가 지났어요. 그래서 어제는 두북으로 가서 종일 나무를 심었고, 오늘은 온실에서 겨울을 난 상추를 밭에 옮겨 심었습니다. 고사리도 밭 가장자리에 심어 두었어요. 두북에는 방송시설을 갖추고 있는 중이라서 오후까지 농사일을 하다가 두 시간 반 동안 차를 타고 문경수련원에 와서 여러분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지금 이대로 행복하기

여러분, 행복학교 다니면서 좀 행복해지셨나요? 지금까지 여러분은 ‘돈을 더 벌면, 남편, 아내가 내 말을 잘 들으면, 아이가 공부를 잘하면, 몸이 건강해지면’ 이렇게 내가 원하는 대로 주변 상황이 바뀌면 행복해지는 줄 알고 노력해 왔잖아요. 그러나 행복학교는 지금 내가 가진 조건 그대로 행복해지는 법을 공부하는 곳입니다. 공부 안 하는 아이, 마음에 안 드는 남편과 아내, 부족한 돈, 아픈 몸을 가지고도 지금보다 조금 더 행복하고 자유로운 삶을 살 수 있어요. 주어진 조건이 아니라 내 마음을 어떻게 바꾸느냐가 오늘의 주제입니다.”

이어서 질문을 받았습니다. 150여 명이 방청객으로 화상회의 방에 입장한 가운데 7명이 스님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그중 한 명은 스님의 가르침대로 열심히 육아를 했지만 지금은 경력 단절과 남편과의 갈등뿐이라며 후회되는 마음을 이야기했습니다.

스님 말대로 살았지만 남은 건 후회뿐이에요

“저는 스님의 가르침을 따라서 해외에서 3년 동안 직장생활을 버텼고, 그 이후에는 두 아이를 키우면서 만 세 살까지 육아에 집중했습니다. 그렇게 7년을 보냈는데, 지금 저한테 남은 것은 경력 단절과 남편과의 갈등뿐입니다. 게다가 코로나19 때문에 남편이 실직할 위기에 처해있어요. 지금까지 제 선택이 후회됩니다.”

“질문자가 직장을 계속 다니다가 아이들이 커서 문제가 생겼다면 이렇게 한탄했을 거예요.

‘그때 스님 말을 듣고 세 살 때까지 아이를 키웠으면, 지금 이 고생을 안 할 텐데, 그때 스님 말을 안 들어서 제가 이 고생을 합니다.’

이렇게 되면 저게 문제고, 저렇게 되면 이게 문제인 거예요. 질문자는 지금 ‘스님 말을 들었다가 내 인생 버렸다. 물려내라’ 이러고 있어요. (웃음)

아이가 세 살 때까지는 부모가 직접 키워야 한다고 이야기한 것은 인생에서 뭐가 가장 중요하냐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저는 인생에서 중요한 가치가 지위도 아니고, 돈도 아니고, 학벌도 아니고,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늘 사람을 중심에 놓아야 합니다.

세상에 태어난 모든 아이는 누군가 돌봐주어야 합니다. 어른에게는 돈이나 직장이 더 중요할지 몰라도, 아이 입장에서는 자기를 돌봐줄 사람이 가장 필요해요. 그중에도 엄마로부터 가장 돌봄을 받고 싶어 해요. 아이를 안 낳았으면 모르겠지만 아이를 낳았으면 돌봐야 합니다. 그런데 아이가 네 살쯤 되면 돌보아줄 사람이 아직도 필요하긴 하지만 유치원에 보내서 엄마의 역할을 조금은 나눌 수가 있어요. 그때부터는 직장을 좀 가볍게 다녀도 됩니다.

저는 늘 이렇게 이야기를 했고, 제 말대로 할지 안 할지는 본인이 선택하는 거예요. 제가 ‘돈이 없어도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얘기했다고 누군가 돈을 다 갖다 버려놓고는 저한테 와서 ‘스님이 돈은 중요하지 않다고 한 탓에 제가 지금 죽을 지경입니다’ 이렇게 얘기하면 안 되겠죠.

질문자는 아이를 중요하게 생각해서 다른 무엇보다 우선해서 아이를 돌보았습니다. 대신, 다른 손실은 좀 생기겠죠. 예를 들면, 경력에는 손실이 생겨요. 그러나 아이 마음에는 엄마에게 자기도 모르게 신뢰와 은혜가 생깁니다. 엄마가 자기를 위해서 손실을 감수하고 자기를 키워줬으니까요. 엄마가 일을 더 우선해서 아이가 세 살 때까지 돌보지 않았다면 아이는 ‘자기 일을 한다고 나를 팽개쳤다’라는 생각에 섭섭해서 언젠가 문제가 발생하게 마련이에요.

핵심은 ‘인생의 가치를 무엇에 둘 것인가’ 하는 겁니다. 저는 사람이 먼저라고 생각해요. 돈이 먼저가 아니고, 명예가 먼저가 아니고, 지위가 먼저가 아니고, 사람이 먼저라고 생각합니다. 질문자는 제 이야기를 듣고 사람이 먼저라는 가치관에 동의해서 아이를 선택한 거예요.

물론 지금 사회도 개선해야 합니다. 질문자처럼 아기가 세 살 때까지 직접 키우기로 선택한 엄마나 아빠를 위해 사회적으로도 지원을 하도록 인식이 바뀌어야 합니다. 아이를 키우는 일은 한 개인에게 중요한 일이기도 하지만 세상에도 중요한 일이에요. 아이들이 잘 자라야 세상이 잘 유지되잖아요. 저는 그 어떤 일보다 아이를 잘 키우는 일이 세상을 더 이롭게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아이를 키우는 엄마나 아빠에게는 유급휴가를 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유급휴가를 못 주면 직장에서 장기휴가를 줘서 향후에 직장 복귀가 가능하도록 해줘야 합니다. 그런 사회적 인식과 지원이 따르지 못하면 여성들이 아이를 안 낳거나, 아이를 낳고 키우더라도 불이익이 있으니 나중에 사회에 큰 재앙을 초래하게 될 거예요. 그러니 지금부터라도 우리 모두가 걱정 없이 출산과 육아를 할 수 있도록 사회적 인식을 바꾸고 실질적인 지원을 하도록 하는 운동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현실이 하루아침에 바뀌는 것은 아니잖아요. 그렇게 세상이 바뀌기 전까지 질문자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질문자가 아이를 안 키웠다면 지금 승진을 해서 과장이 되었을 텐데, 아이를 키우고 직장을 다시 구하니 평사원을 해야 해요. 아이를 안 키우고 계속 직장에 다녔으면 더 많은 월급을 받았을 텐데 월급도 작아요. 그러나 지금으로서는 그걸 감수해야 해요. 왜냐하면 아이가 가장 소중하니까요. 그런 세상이 옳다는 게 아니에요. 현실을 받아들여야 내가 괴롭지 않습니다. 그리고 개선해 나가야 해요.

부부 사이가 안 좋은 것은 당사자 두 사람 사이의 문제이지 아이와 아무 관계가 없는 일이에요. 지금이라도 정신을 차리세요. 부부 사이가 안 좋은 건 서로 협의해서 문제를 풀 일이에요. 가정 경제가 어려우면 이제 애들이 어느 정도 컸으니까 무슨 직장이든 구하면 됩니다. 지금 옛날에 다니던 직장을 계속 생각하고 후회하는 것은 어리석은 행동이에요. 인생은 늘 지금이에요. 지금에 맞게, 여기에서 내 삶을 다시 출발해야 합니다.

‘나는 지금 얼마든지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다.’

언제나 이 관점을 놓치지 말고 자신의 삶을 행복하게 가꾸시길 바랍니다.”

“네, 감사합니다.”

이 외에도 다음과 같은 질문이 있었습니다.

  • 24개월까지 걷기 말하기를 일찍 하고 똑똑했던 아이는 어느 날 말을 하지 않기 시작했고, 8살인 현재까지 말을 못 합니다. 부족한 제가 아이를 계속 키우는 게 옳은 일일까요?
  • 직장에서 직원들 간 갈등이 너무 심합니다. 다수가 한 사람을 비난하는데 제가 다수의 편을 들지 않으면 저에 대한 따가운 시선이 느껴집니다. 어떻게 하면 마음 편하게 살 수 있을까요?
  • 고1 남자아이를 키우고 있습니다. 초등 4학년부터 밤이 무서워 잠을 잘 못 자고, 손도 자주 씻고, 아침에 일어나기를 너무 힘들어합니다. 이 아이에게 어떻게 해줘야 할까요?
  • 세계사를 배울 때 왜 강대국의 역사를 주로 배워야만 했을까요? 한국을 비롯하여 많은 작은 나라들이 강대국에 맞서 스스로 나라를 지켰는데 왜 학교에서 가르치지 않았을까요?
  • 스님들은 속세를 벗어나 있어서 별로 고민이 없을 것 같아요. 그렇다면 우리도 이렇게 힘든 속세에 있지 않고, 그냥 다 절로 들어가는 게 좋지 않을까요?
  • 돌아가신 아버님에게 한 게 뭐 있냐고 소리 지르는 시누이들 때문에 힘듭니다. 유산을 균등하게 나눴음에도 그동안 마음의 상처를 많이 받았고, 시누이들 말에 너무 억울합니다.

즉문즉설을 마치고 스님이 질문자들에게 한 줄 소감을 물어보았습니다. 경력단절로 힘들어했던 질문자도 소감을 이야기했습니다.

“항상 스님 말씀에 힘을 많이 얻었는데, 제가 수준이 안 되다 보니 오늘 원망하는 말을 하게 된 것 같아 죄송합니다. (웃음) 사람이 제일 중요하다고 하신 스님 말씀에 동의하고, 제가 그 가치를 선택했던 것이니만큼, 다시 일을 시작하면서도 제 욕심을 좀 내려놓고 일을 잘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화상회의 방에 입장한 방청객들에게도 오늘 대화가 어땠는지 물어보았습니다.

“좋았어요? 좋았던 사람 손 한번 들어보세요. 내리시고요. ‘에이, 지루했다’ 이런 사람도 손 들어보세요.”

대부분이 손을 번쩍 들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스님은 참가자들이 주위 지인들에게 행복학교를 널리 알려 함께 행복한 세상을 만들자고 격려했습니다

“엎드려 절 받기네요. (웃음) 행복학교에서 공부하니까 좋아요? 우선 본인이 행복해지는 게 가장 중요해요. 마음편을 공부하신 분들은 관계편에서 더 공부하시고, 관계편을 마치신 분들은 심화과정 공부를 더 해나가세요. 남편이고 아내고 부모고 자식이고 다 놓아두고 우선 내가 행복해야 합니다. 몸이 아프면 몸이 아픈 대로 행복해야 하고, 늙으면 늙은 대로 행복해야 하고, 젊으면 젊은 대로 행복해야 하고, 혼자 살면 혼자 사는 대로 행복해야 해요.

이 행복을 이웃에게도 널리

내가 행복해지면 주위에 저절로 도움이 됩니다. ‘내가 경험해 보니 이 길이 좋더라’ 하고 이웃 사람에게 인연을 맺어주되, ‘꼭 해라!’ 이런 말은 안 좋아요. ‘내가 해보니 좋더라’ 이렇게만 얘기하면 돼요. 하고 안 하고는 본인이 결정하는 거니까요. 아무리 좋은 일도 억지로 권하면 상대에게는 강요가 됩니다.

그러나 꾸준히 행복을 전해서 우리 국민의 행복도를 위로 쭉쭉 끌어올립시다. 그래서 우리보다 잘 사는 나라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돈은 너희가 더 많고, 힘은 너희가 더 세고, 땅은 너희가 더 클지 모르지. 그래도 대한민국 사람이 이 세상에서 제일 행복해. 딴 건 몰라도 행복도는 우리가 세계 1위야!’

앞으로는 경제 순위보다도 국민의 행복도를 자랑삼아야 하지 않겠어요? ‘나는 불행하긴 하지만 돈은 너보다 많다!’ 이런 건 그리 자랑스러운 일이 아니잖아요.

여러분은 방송이 끝나면 채팅창에 ‘고맙습니다’라는 소감을 막 써서 올리는데, 그렇게 고마우면 행복학교에 한 명을 입학시켜 주세요. 여러분이 제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은 힘들어 하는 사람에게 행복학교를 알려줘서 그들도 행복하게 살아가도록 도와주는 겁니다. 그게 맛있는 음식보다, 좋은 옷보다, 현금보다도 더 제가 좋아하는 일입니다. 내가 행복해졌다면 이 행복을 우리 이웃에 전하도록 합시다.”

스님이 손을 흔들며 인사를 하자, 참가자들도 손을 흔들며 인사를 했습니다. 밤 10시가 다 되어 방송을 마쳤습니다.


내일은 문경 수련원을 출발하여 서울 정토회관으로 이동한 후 평화재단 기획위원회 회의에 참석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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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삼

고사리 심으시면서 해 주신 은나라 말기 백이 와 숙제라는 충신 얘기 재미있었습니다
리더로서 모범을 보이고자 그렇게 했을 거 같은데 요즘 정치인들이나 사회 리더들 보면 자기 이익을 위해 쟁투를 일삼고 책임 회피를 위해 말 바꾸기가 조변석개이니 한심하고 씁쓸한 마음이 듭니다

2021-03-26 11:42:12

굴뚝연기

백이숙제 시조는 얼핏 기억나는것도 같아요~아 넘 멋지신 스님! 저도 스님께서, 그 옛날 스님의 전생이 위태롭게 목숨걸며 독립운동하신 용성스님이셨다해도, 제가 그 제자였다해도, 혹여 일제에 잡혀가 제가 죽는한이 있어도,스님 배신하지않고 지킬것입니다 ㅎ 그 강직한 시조를 읊으시는 스님!스님께서두 그렇게 강직하셔,옛고문당하실때 그처참한 고문에도 굽히지않으시고ㅠㅠ

2021-03-25 02:41:37

강희란

스님 말씀 새기며
오늘도감사한마음으로
행복바이러스퍼뜨리며
살겠습니다*^^*

2021-03-21 18:5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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