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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온라인 설 명상수련 4일째 날입니다. 오늘도 국내외에서 300여 명의 참가자들이 온라인으로 연결되어 각자의 방에서 명상을 했습니다.
참가자들은 하루 종일 명상을 한 후 저녁 7시 20분에 스님과 즉문즉설을 하기 위해 화상회의 방에 입장했습니다. 서로의 얼굴을 보지 못하고 혼자 방에서 명상을 하다가 처음으로 화면을 통해 서로 얼굴을 마주했습니다.
“얼굴이 가장 잘 보일 수 있도록 화면 조절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7시 20분까지 화상회의 방에 입장하지 못한 참가자들은 유튜브 생방송으로 즉문즉설을 함께 시청했습니다.
스님이 먼저 반갑게 인사를 건네며 법문을 시작했습니다.
“4일 동안 명상 잘하셨습니까? 침묵을 하면서 편안한 가운데 다만 호흡만 알아차리는 연습을 해보았습니다. 그런데 호흡에만 집중이 잘 되지 않았죠? 몸은 이렇게 가만히 있지만 우리의 생각은, 시간적으로는 먼 과거로부터 먼 미래까지, 공간적으로는 이 세상 곳곳을 돌아다닙니다. 이 돌아다니는 마음을 코끝에 딱 잡아서 한 곳에 머무르도록 하는 것, 즉 지금 여기에 뚜렷이 깨어 있는 것이 명상입니다.
지금 여기에 깨어있으면, 괴로울 일도 없고, 화날 일도 없고, 슬퍼할 일도 없고, 초조하거나 불안할 일도 없고, 근심 걱정할 일도 없고, 미워할 일도 없고, 원망할 일도 없고, 그저 한가하고 조용합니다. 이것을 옛 선사들은 '적멸(寂滅)'이라고 말했습니다. 모든 번뇌가 다 소멸하고 고요하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그렇게 안 되죠? 명상을 하고 있으면 어쩌면 눈뜨고 생활하는 것보다 더 생각이 복잡할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제 처음 연습하는 것이니까 그렇습니다. 그러나 꾸준히 정진해 나가면 조급함과 불안함이 놓아지면서 편안함과 한가함을 유지해 나갈 수 있게 됩니다.
이번 명상수련을 통해서도 여러분 모두에게 이런저런 증상이 나타났을 겁니다. 오늘은 그런 증상이나 의문들에 대해 대화를 나눠보겠습니다.”
이어서 질문을 받았습니다. 총 15명이 스님에게 직접 질문을 했습니다. 참가자들은 졸음, 망상, 무의식, 호흡 등 갖가지 증상과 의문점을 이야기했습니다. 그 중 한 명은 명상을 할 때 심한 통증이 올라오는데 자꾸 외면하고 싶은 마음을 어떻게 다스려야 하는지 질문했습니다.
“통증을 그냥 지켜보는 평정심은 어떻게 키울 수 있나요? 명상 중 너무 심한 통증이 올라오는데 이것을 외면하는 마음을 어떻게 다스려야 할지 알고 싶습니다. 저는 명상을 하면 가슴을 쪼이는 것 같고 칼로 휘젓는 것 같은 그런 통증이 저절로 일어납니다.”
“통증이 너무 심하면 평정심을 유지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다리에 통증이 있으면 ‘다리에 통증이 있구나’ 이렇게 알 뿐이고, 가슴이 아프면 ‘가슴에 통증이 있구나’ 이렇게 알 뿐이고, 옆구리에 통증이 있으면 ‘옆구리에 통증이 있구나’ 이렇게 알 뿐이고, 머리에 열이 나면 ‘머리에 열이 나는구나’ 이렇게 알 뿐이고, 뒷골이 당기면 ‘뒷골이 당기는구나’ 이렇게 알 뿐입니다. 그렇게 알 뿐 그냥 호흡에 집중하면 돼요. 그러면 통증을 피하려고 할 때보다는 조금 더 평정심을 가질 수 있습니다.”
“스님께서 항상 평정심을 갖고 있는 그대로 보라고 하셔서 그 연습을 하고 싶거든요. 그런데 통증이 너무 심하니까 자꾸 외면하고 싶어 집니다.”
“평정심은 ‘가슴이 쪼이는 것 같구나’, '다리가 끊어질 듯 아프구나’, ‘머리에 통증이 있구나' 이렇게 통증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때 유지되는 겁니다. '아, 힘들어 죽겠어. 어떻게 하면 안 아프지?' 이러면 긴장을 하게 되기 때문에 평정심을 잃게 돼요. 다만 통증을 통증인 줄 알면 평정심이 유지가 되지만, 통증을 싫어하는 데에 끄달리면 평정심을 놓치게 됩니다.”
“네, 잘 알아들었습니다.”
“평정심이 유지되는 기술이 따로 없습니다. 어떤 통증을 좋아하거나 싫어하면 평정심을 잃은 것이고, 통증이 일어나더라도 그것을 싫어하거나 좋아하는데 집착하지 않으면 평정심은 저절로 유지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통증을 있는 그대로 지켜보지 못합니다. 통증이 오면 딱 싫어하는 감정이 앞서버리니까 마치 상대가 얘기할 때 기분이 탁 나빠 버리는 것과 같습니다. 평정심이 유지되지 않기 때문에 욕설이 나오는 거예요. 상대가 욕을 하더라도 '아, 저 사람이 화가 났구나' 이렇게 바라볼 수 있으면 부처님처럼 빙긋이 웃을 수 있습니다. 그때가 바로 평정심이 유지된 상태라고 말할 수 있어요.
어떤 물건을 보고 먹고 싶은 생각이 탁 났다면 평정심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코끝으로 냄새가 지나가서 먹고 싶은 욕망이 탁 일어났을 때 '아, 내가 냄새에 끄달리는구나' 이렇게 딱 알아차린다면 평정심이 유지된 것입니다. 그런데 통증이 너무 심하면 자동으로 그것을 싫어하게 되어 질문자처럼 대부분이 평정심을 유지하기가 어려워요. 통증이 싫으면 그냥 다리를 펴버리면 되는데, 다리를 펴지 않으려고 이를 악물고 참고 있으니까 평정심을 잃고 긴장을 하게 되는 겁니다.
이것은 과정입니다. 처음 명상을 하는 사람은 누구나 다리가 아프면 펴버리거나, 이를 악물고 참거나, 이렇게 할 수밖에 없습니다. 상대가 욕을 하면 나도 모르게 기분이 나빠지는 것이 초심자입니다. 상대가 욕을 하면 '아, 저 사람이 욕을 하네' 이렇게 보지 말고 '아, 저 사람이 화가 났구나' 이렇게 이해하고 봐야 합니다. 그것처럼 통증이 일어날 때도 '어떻게 하면 안 아프지?' 이렇게 보지 말고 '통증이 있구나' 이렇게만 봐야 합니다.
'이 통증은 자세를 평소에 이렇게 안 했기 때문에 생기는 몸의 자연스러운 증상일 뿐이다'
이렇게 신체를 이해하는 관점에서 바라보게 되면, 통증이 있더라도 점점 긴장을 덜하게 됩니다. 만약 칼로 도려내듯이 너무 아파서 도저히 못 참겠으면 다리를 좀 풀면 돼요. 다리를 푼다고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다만 연습 기간이 더 길어져야 할 뿐이에요. 다리를 풀어버렸다는 건 그 고비를 못 넘어갔다는 겁니다. 만약 그 고비만 넘어가면 마음은 훨씬 편해집니다. 또다시 통증이 일어나도 예전보다는 훨씬 덜하기 때문입니다. '예전에도 참았는데 이 정도는 뭐' 이렇게 되거든요. 그래서 마음의 긴장이 점점 완화됩니다.
단식을 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밥을 안 먹으면 현기증이 나고, 그래서 쓰러지기도 하고, 마음이 불안해지고 평정심을 잃게 되거든요. 그런데 몇 번 이것을 경험하면 '배고픈 건 맞지만 그만한 일에 죽는 건 아니다', '현기증이 일어난 건 맞지만 그만한 일에 죽는 것도 아니고 아무 문제도 없다' 이렇게 됩니다. 신체의 원리를 탐구해보면 에너지가 공급이 안 되니까 현기증이 나는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왜 3일 정도만 지나면 다시 괜찮아질까요? 이것도 신체적으로 연구해보면, 밖으로는 음식을 안 먹지만 내 몸의 고기를 먹고 에너지를 내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어요. 그래서 체중이 줄어드는 겁니다.
이렇게 신체에 대한 작용을 이해하고, 그런 현상을 몇 번 경험하게 되면, 배는 고프지만 마음의 평정심은 잃지 않게 됩니다. 절을 할 때나 등산을 할 때나 명상을 할 때 다리가 아픈 것은 신체에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현상이에요. 신체의 원리를 모르면 '이러다 다리가 부러지지 않을까?’, ‘병이 나지 않을까?’, ‘몸에 열이 나는데 괜찮을까?' 이렇게 걱정하게 되는데, 몇 번 경험하고 나면 '아, 이건 그냥 몸의 반응이구나’ 하고 알 수 있습니다. 심장이 콩닥콩닥 뛰고 몸에서 열이 난다고 해도 명상이라는 것은 육체를 움직이고 뛰는 게 아닌데 무슨 문제가 생기겠어요?
내가 가만히 앉아 있기만 하는데도 몸에 고장이 난 것이라면 원래 억제되어 있던 저항들이 일어난 겁니다. 그래서 오히려 모르던 병을 새로 발견할 수도 있어요. 내가 무감각하고 예민하지 못해서 통증을 느끼지 못했었는데, 마음이 편안해지고 긴장이 풀어지고 예민해지니까 내분비 기관에서 일어나는 통증 같은 것을 지속적으로 느낄 수 있게 된 거죠. 그래서 명상이 끝나고 검사를 해보면 몸의 이상을 새로 발견할 수도 있어요. 그래서 통증이 일어난다는 것은 신체적 측면에서 보면 굉장히 좋은 일이에요. 통증이 없으면 우리 몸이 썩어도 모르잖아요.
'여기 문제가 있다, 고장 났다, 빨리 와라.'
통증은 이렇게 몸의 병을 알려주는 작용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신고가 들어와서 막상 가보면 진짜 고장 난 것도 있고, 오류가 난 것일 수도 있는데, 다리 아픈 것 정도는 오류가 난 것에 속한다고 볼 수 있어요. 길을 새로 포장하려고 길을 뜯어서 지금 고치고 있는 중인데, 그걸 잘못 보고 어떤 사람이 차가 다니기 힘들다고 신고할 수도 있잖아요. 지금 차가 다니기는 불편한 상황이지만 고치고 있는 중이니까 신고는 받되 개선할 것은 없는 것입니다. 지금 질문자가 느끼는 통증은 그런 정도라고 이해하시면 될 것 같아요.”
이 외에도 다음과 같은 질문이 있었습니다.
15명의 질문에 모두 답을 하다 보니 2시간이 훌쩍 지나갔습니다.
“조금 늦어졌네요. 오늘은 여기까지만 법문을 하고, 내일 소감문 발표 시간에 또 궁금한 점이 있으면 대화를 나눕시다.”
마쳐야 할 시간이 되었지만 질문한 사람들에게 한 줄 소감만 들어보기로 했습니다. 15명이 소감을 한 마디씩 하는 중에 통증에 대해 질문한 분도 가볍게 소감을 이야기했습니다.
“스님 말씀 잘 들었습니다. 앞으로 명상을 할 때 통증이 일어나도 '명상하다가 설마 죽겠냐?' 그러면서 편안히 지켜보겠습니다.”
질문한 분은 머리가 희끗한 70이 넘은 노보살님이었습니다. 스님은 웃으며 한 마디 덧붙였습니다.
“나이 드셔서 너무 그렇게 무리하지 마세요. 보살님은 연세가 있으시니까 다리가 너무 아프면 다리를 펴고 편안하게 하셔도 돼요.” (웃음)
스님은 참가자들이 명상의 올바른 관점을 잡게 해 주기 위해 다소 격앙된 목소리로 애정을 담아 이야기를 하기도 했습니다. 법문을 마치며 약간 미안한 마음이 들었는지 웃으며 닫는 말씀을 했습니다.
“잘했다고 여러분에게 칭찬만 해주려고 이렇게 법문 하는 게 아니에요. 칭찬만 해줄 것이면 굳이 제가 시간을 내서 법문을 할 이유가 없죠. (웃음)
제가 괜찮다고 이야기하는데도 안 괜찮다고 자꾸 빡빡 우기면 제가 ‘그래도 괜찮다!’라고 하면서 혼을 낼 때가 있어요. 격려는 못할망정 큰 소리로 지적해서 미안해요.”
합장을 하고 방송을 마쳤습니다. 취침 안내가 나가고 참가자들은 4일째 명상수련을 끝내고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내일은 온라인 설 명상수련을 끝마치는 날입니다. 소감문 작성과 발표 시간을 가진 뒤 스님의 회향 법문이 있을 예정입니다. 이어서 오전 10시에는 정초기도 법문이, 저녁 8시 30분에는 일요명상이 진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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