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1.1.9 천일결사 기도 생방송, 온라인 회의
“매일 기도를 하면 일어나는 변화”

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생방송으로 천일결사 기도를 하고 법문을 한 후 하루 종일 온라인으로 회의를 했습니다.

아직 어두운 새벽 네 시, 겨울 밤하늘에는 고드름 사이로 별들이 총총했습니다.

스님은 새벽 예불에 앞서 명상을 했습니다.

명상을 하는 동안 4천여 명의 정토행자들이 생방송에 접속했습니다. 4시 45분이 되자 예불을 시작했습니다.

“계향, 정향, 혜향, 해탈향 해탈지견향.”

정성껏 예불을 한 후 5시 정각에 천일결사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오늘은 4차 백일기도를 시작한 지 6일째입니다. 일주일 만에 다시 만났습니다. 기도 끝나고 뵙겠습니다.”

이어서 삼귀의, 수행문, 참회, 108배, 명상, 경전 독송을 차례대로 함께 했습니다.



몸을 가지고 태어난 생물 사이에는 각기 구별이 있지만, 인간에게는 그런 구별이 없다. 인간 사이에서 구별이 있는 것은 다만 그 이름뿐이다.
...
인간 가운데서 소 치는 것으로 사는 사람이 있다면 그를 농부라 부르지 바라문이라 부르지 않음을 알아라, 바셋타여. 인간 가운데서 여러 가지 기술로 생활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를 기술자라 부르지 바라문이라 부르지 않음을 알아라, 바셋타여....(중략)

기도가 끝나고 스님은 카메라를 향해 돌아앉아 법문을 시작했습니다. 먼저 스님은 며칠 전 10-4차 백일기도 입재식을 통해 처음 기도를 시작한 초심자들을 격려하며 법문을 시작했습니다.

“기도 잘하셨습니까? 오늘은 10차 천일결사 제4차 백일기도에 입재하고 6일째 되는 날입니다. 이번에 불교대학생 천여 명이 백일기도에 새로 입재했어요. 작심삼일이라고 삼일이 지났으니 기도하는 것을 벌써 포기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웃음)

기도를 하는 이유

원래 ‘기도’의 뜻은 자기의 원하는 바를 신에게 간절히 기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나 부처님을 찬탄하고 자기가 원하는 것을 기원하는 것이죠. 그러나 정토회에서 말하는 ‘기도’는 수행의 다른 말입니다. 기도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지만 수행의 의미로 사용하고 있어요. ‘기도’는 자기가 원하는 것을 바깥의 힘 있는 존재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라면, ‘수행’은 모든 괴로움이 자신의 어리석음으로부터 일어난다는 것을 알고 그 어리석음을 깨우치는 것입니다. 괴로움은 자신의 욕망과 감정으로부터 일어나기 때문에 욕망과 감정으로부터 자유로워지면 괴로움이 없어집니다. 그래서 수행이란 자신의 어리석음, 탐욕, 성냄을 극복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종교적인 의미에서 하는 기도란 자신이 원하는 것을 힘 있는 존재에게 부탁해서 이루려는 것이기 때문에 기도와 수행은 어쩌면 정반대의 의미를 가진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도에는 ‘나의 생각, 고집, 욕망을 버리고 그저 주의 뜻대로 하옵소서’ 이런 순종의 의미도 있는데, 이것은 수행과 그 의미가 비슷합니다. 순종이라고 하면 어떤 존재에게 너무 굴복하는 것 같지만, 자신의 욕망대로 하려던 것을 내려놓고 그저 주의 뜻대로 한다는 의미입니다. 불교식으로 표현하면 인연 되는대로 거기에 임해서 살아가겠다는 의미예요. 이럴 때는 수행과 의미가 비슷합니다.

정토회에서 천일결사 ‘수행’이라는 용어도 쓰지만 ‘기도’라는 용어도 함께 쓰는 이유는 전통적으로 기도라는 용어를 많이 써왔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가 쓴 책 중 ‘수행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책의 제목 역시 ‘기도’ 예요. 비굴하게 남에게 요청하는 것이 기도가 아니라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우치고 자신의 까르마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 진짜 기도라는 의미로 그 책을 쓴 겁니다.

괴로움은 왜 생길까요? 내가 욕망의 노예로 살기 때문입니다.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워지면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또한 어리석어서 괴로움이 생긴 것이기 때문에 그 어리석음을 깨우치면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어요. 밖을 향해 있는 시선을 나에게로 돌이켜서 어리석음을 깨우치고, 욕심을 내려놓고, 내가 옳다는 생각을 내려놓는 것을 통해 진정한 자유와 행복을 추구해 나가는 것이 수행입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하루도 쉬지 않고 정진을 해야 합니다.

매일 기도를 하면 일어나는 변화

욕망의 뿌리는 까르마, 즉 습관입니다. 이 습관은 오랜 시간 동안 형성된 것이기 때문에 습관을 바꾸려면 오랫동안 노력하고 정진을 해야 합니다. 업식이 소멸되면 업식에 바탕을 둔 욕망에 속박을 받지 않게 되어서 괴로움이 없어지고 점점 행복해집니다. 내가 원하는 것이 있다면, 노력해서 이루어지면 다행이고, 만약 이루어지지 않으면 더 노력하면 되고, 그래도 안 된다면 내려놓으면 돼요. 내가 원하는 걸 무조건 포기하라는 뜻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것 때문에 괴로워하지 말라는 것이 핵심입니다.

물먹고 싶으면 가서 물먹으면 되는데, 아무런 노력도 안 하고 ‘물 주세요’ 하고 요구만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아요. 입재하고 나서 보통 3일 정도 수행하면 그만두기 쉬운데, 그만두지 말고 적어도 100일은 한번 해 봅니다. 일주일씩 15번만 기도하게 되면 100일이 금방 지나가게 됩니다. 그러니 이번에 처음 기도를 시작하신 분들은 중간에 포기하지 마시고 제가 매주 격려를 해드릴 테니 꾸준히 정진해 나가시기 바랍니다.”

이어서 오늘 읽은 경전의 의미에 대해 설명해 주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진정한 수행자인지 그 의미를 다시 새겨볼 수 있었습니다.

“오늘 읽은 경전인 ‘수타니파타’에는 바셋타가 부처님께 질문한 내용이 나왔습니다. 인도에서는 전통적으로 종교와 철학을 담당하는 계급이 브라만이었습니다. 브라만이라는 최고의 계급은 개인이 노력해서 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태생적으로 주어지는 것이었습니다. 그 다음 계급이 왕족인 크샤트리아이고, 그 다음 계급이 농사짓는 평민들인 바이샤이고, 그 다음 계급이 노예와 하인들인 수드라였습니다. 이렇게 인도에는 4개의 계급이 있었습니다. 이것을 카스트제도라고 합니다.

어떤 모양이나 형식보다 더 중요한 것

지금은 계급 차별이 잘못된 것이라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지만, 옛날에는 태어남으로 인해 계급이 주어진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부처님은 그 당시에 이미 이런 사회적 모순을 간파하시고 태어나면서부터 계급이 주어진다는 것은 진실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브라만이라는 신성한 계급으로 태어났는데도 못된 짓을 하는 사람이 많이 있고, 낮은 계급으로 태어나도 훌륭한 일을 하는 사람이 많이 있는 것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그 당시 인도에는 부처님 외에도 육사외도(六師外道)와 같은 위대한 사상가들이 있었고, 또한 62견해 또는 360견해가 있었다고 할 정도로 많은 사상가들이 출현했습니다. 마치 중국 춘추전국시대에 백가쟁명(百家爭鳴)처럼 수많은 학자나 학파가 자신들의 사상을 논하던 것과 비슷했어요.

오늘 읽은 경전에는 진정한 바라문이란 도대체 어떤 사람인가에 대해 두 젊은이가 논쟁을 벌이다가 결론을 내지 못하고 결국 부처님을 찾아가 물었고, 부처님께서 하신 대답이 잘 나와 있습니다.

한 젊은이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위로 7대에 걸쳐 그 누구도 다른 계급의 피가 섞이지 않은 순수혈통을 갖추어야 브라만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고, 바셋타라는 젊은이는 계율을 잘 지키고 덕행을 갖추고 있는 자가 진짜 브라만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진정한 수행자가 무엇인지 설명합니다. 태생이 브라만이라고 해도 그것은 종교적인 사제를 일컫는 것이지 진정한 수행자를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진정한 수행자는 욕심과 집착이 없어야 하고, 계율을 잘 지켜야 하며, 마음이 고요해야 합니다. 마음이 들뜨고 성질내는 사람, 욕심내고 집착하며 괴로워하는 사람, 계율을 지키지 않고 막행막식(莫行莫食)하는 사람은 수행자라고 할 수 없어요.

바셋타는 다른 스승으로부터 배우고 수많은 책을 찾아봐도 의문이 풀리지 않았는데 이러한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마치 감겼던 눈이 떠진 것처럼, 깜깜한 밤에 불이 켜진 것처럼 환히 볼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부처님을 찬탄하면서 출가할 것을 발원하였고, 부처님은 ‘오라, 비구여!’라고 하시며 출가를 허락하셨습니다. 바셋타는 부지런히 수행 정진하여 괴로움이 없는 경지인 최상의 경지에 이르렀습니다.

부처님이 대답한 내용의 핵심은 어떤 모양이나 형식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형식을 따져서 성별, 계급, 인종으로 사람을 차별하는 것은 사람다운 일이 아니라는 거예요. 힘이 세거나 왕족이라는 이유로 훌륭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덕행과 마음가짐에 따라 훌륭한 사람이 된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진정한 수행자인가

오늘날에도 어떤 스님이 명문대를 졸업했다고 해서 훌륭한 스님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출신 대학을 내세우는 것은 마치 2600년 전 인도 당시에 ‘나는 브라만이다’라고 내세웠던 것과 같습니다. 사실은 그가 스님인지 아닌지도 따질 필요가 없어요. 재가자라는 이유로 기죽을 필요도 없어요. 어리석음과 욕심, 성냄이 없고, 마음이 고요하고 청정한 사람, 자신을 괴롭히지 않고 행복하게 사는 사람이 진정한 수행자입니다.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을 해치거나 괴롭히지 않고,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사람이 수행자입니다. 넘어진 아이를 일으켜 세워주고, 배고픈 사람에게 음식을 나눠주며, 어리석은 사람에게 부처님 법을 전해주는 것처럼 다른 사람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행동을 하는 사람이 수행자입니다.

여러분처럼 정진하는 사람이야말로 진짜 수행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수행자가 머무르는 곳이 절이에요. 여러분들이 맑은 마음을 지니고 있다면 여러분의 방이 진짜 법당입니다. 아무리 대웅전을 잘 지어놓아도 그 안에서 성내고 욕심내고 어리석게 행동한다면 그곳은 절이 아니라 하나의 건물에 불과해요. 여러분이 비록 대웅전이 아닌 내 방에서 수행을 하고 있다 하더라도 ‘이런 부처님의 본래 가르침에 따라 정진해나가고 있다면 이곳이 법당이다’라는 것에 대해 자부심을 가져야 합니다.

날씨가 매우 춥습니다. 제가 있는 이곳 문경은 아침 기온이 영하 20도를 오르내리고 있어요. 그래서 대중들이 옷을 많이 입었는데도 덜덜 떨면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지금 제가 법문 하는 이곳 실내도 공기가 아주 차갑습니다. 오늘 같은 날씨에는 가능하면 외출을 자제하고, 일찍 귀가해서 휴식도 하면서 수행을 해나가시기 바랍니다. 건강 조심하시고, 다음 주에 또 뵙겠습니다.”

합장으로 인사를 하고 방송을 마쳤습니다.

스님이 법문을 하고 있는 사이 문경 수련원 정정당 안에는 공기가 조금씩 차가워졌습니다.

“어디서 찬 바람이 계속 들어오는 걸까요? 등 뒤가 냉기로 싸늘하네요.”

스님은 몸을 으슬으슬 떨면서 숄을 덮고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여러 업무들을 처리한 후 낮 12시에는 행복한 백일법문 추진단 콘텐츠팀과 2021년 정토불교대학과 경전반 학사 과정을 준비하기 위한 회의를 했습니다. 온라인특별위원회에서 작년 한 해 동안 운영해 본 결과를 바탕으로 개선할 점을 준비해 와서 발표했습니다.

“반별 활동과 조별 활동을 격주로 주말마다 배치해보니 학생과 담당자들이 일정을 다 소화하기가 어렵다는 평가가 많았습니다. 전체 학생의 70%가 직장인인데다, 담당자들도 활동 준비에 부담이 많았습니다. 코로나바이러스 확산으로 인해 주말 실천 활동 조차 모두 온라인으로 바뀌면서 온라인 수업이 더 늘어난 것과 다름이 없어져 버렸어요. 올해는 지금 일정을 지속하는 것이 무리입니다...” (중략)

그래서 행정처에는 주말 반별 활동을 월 1회로 조정하는 것을 제안했습니다. 이에 대해 스님이 답변했습니다.

“지금 발표하신 내용이 전체의 의견이라면, 불교대학을 6개월 과정으로 하기는 어렵겠네요. 온라인으로 불교 지식만 공부하고 졸업하는 건 불교대학의 설립 취지와 맞지 않아요. 옛날부터 온라인 불교대학을 시작하려다가 망설인 것도 실천을 검증하기가 어려워서였어요. 현재의 학사 일정상 실천 활동을 배치하기 어렵다면 학사 일정을 1년으로 바꾸는 것을 다시 검토해봐야 해요. 실천이 없는 불교 공부는 그냥 사람을 많이 모아서 졸업만 시킬 뿐이에요.”

스님의 제안에 따라 콘텐츠팀은 어떻게 하면 불교대학에서 학생들의 실천력을 키우는 동시에 참여 부담도 줄일 수 있을지 토론을 했습니다. 토론 결과 조별 활동은 수업 속에 포함시키고 반별 활동은 월 1회로 조정했습니다.

“그럼 다 해결되었지요?”

“네. 감사합니다. 다시 제안서 준비해서 보고하겠습니다.”

콘텐츠팀은 토론 결과에 대해 박수를 치며 반가워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스님은 불교대학 교과에서 개선할 점에 대해 제안했습니다.

“그리고 불교대학 교과 과정에서 실천적 불교사상은 비중을 늘리고, 불교교리는 줄여서 다시 강의계획을 짜 보면 좋겠습니다. 불교교리 학습을 마친 학생들의 질문을 받아보니까 제가 잘못 강의를 했다 싶었어요. 몰라도 되는 지식을 가르쳐 놓으니까 전부 ‘무아’가 뭐냐, ‘무상’이 뭐냐, 이렇게 용어의 뜻을 묻는 질문을 계속하거든요. 제가 처음 불교대학을 만들 때는 기존의 불교 신자들이 불교 교리를 제대로 모르고 있어서 그것을 자세히 가르친 것인데, 지금은 불교를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입학하고 있다는 거죠. 불교교리에 대한 강의도 조금 더 실천적으로, 조금 더 쉽게, 강의를 다시 해야겠어요.”

오후 2시가 되어 회의를 마쳤습니다.

3시부터는 본부관리 및 운영에 관한 보고회가 이어졌습니다. 공동체 법사단, 서초 법사단, 불사위원회, 회관인수팀, 회관운영팀, 행정처장, 공동체, 서초 총무단이 온라인으로 접속한 가운데 보고회를 시작했습니다.

먼저 본부 건물을 어떻게 자원 활동으로 관리할지, 층별 공간을 어떻게 운영할지에 대해 연구한 결과를 발표하고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습니다.


스님은 질의응답을 들으며 조언해 줄 내용을 꼼꼼하게 메모했습니다. 질의응답이 끝나고 마지막으로 스님은 보고회에 참석하고 난 소감을 이야기했습니다.

“정토회를 창립할 때 우리가 세운 목표는 2600여 년 전 부처님이 살아계실 때처럼 똑같이 살기는 어렵더라도 부처님이 지키신 원칙만큼은 지키자는 것이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여러 가지 문제들은 굉장히 해결하기가 어렵지만, 부처님의 가르침이나 부처님이 살아가신 원칙의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문제 해결이 그렇게 어려운 것도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정토행자의 서원에 이렇게 명시했습니다.

‘현대 인류가 직면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우리는 부처님의 근본 가르침 속에서 그 해답을 찾고자 한다.’

환경, 빈곤, 빈부격차, 전쟁뿐만 아니라 개인이 겪고 있는 괴로움도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서 해결해보자고 했던 겁니다.

부처님이 지키신 삶의 원칙만큼은 꼭 지키자

부처님의 가르침뿐만 아니라 부처님이 살아가신 삶의 모습에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점을 실천하려고 했습니다. 우선 나무 밑에서 사신 부처님처럼 살지는 못하더라도 한국에서는 최저 수준으로 생활을 해보기로 했어요. 한국에서는 최저 수준이라고 해도 전 세계를 기준으로 하면 중간 수준은 됩니다. 인도 둥게스와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마을 사람들을 도울 때에도 현지인처럼 살려고 했습니다.

그렇게 목표는 세웠지만 실제로는 현지인처럼 살게 되지는 않았어요. 제가 처음에 인도에 갔을 때는 현지인처럼 살 수 있었는데, 마을 사람들을 돕다 보니 학교 건물을 짓게 되었고, 나중에는 마을 사람들보다 높은 생활수준으로 살게 되었습니다. 한국 사람들의 시각으로는 지금도 정말 열악하게 살고 있다고 볼 수 있지만, 마을 사람들이 볼 때에는 풍족하게 사는 것처럼 보여서 그 균형을 잡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봉사자 개인을 생각하면 타국까지 가서 봉사하는데 생활이라도 편안해야 하지 않느냐 싶지만, 그렇게 되면 마을 사람들은 우리를 잘 사는 사람으로 보게 됩니다. 그래서 어떤 국제 NGO는 현지 사람들이 재벌 기업처럼 생각하기도 합니다.

문경에서도 처음에 빈 집을 구해 돌담을 쌓아서 살 때 전기도 없이 생활하려고 했습니다. 그래도 어둠은 밝혀야 해서 조명 기구 사용할 때만 쓰려고 전기를 끌어왔습니다. 그런데 행자들이 빨래를 하고 나면 탈수기 정도는 꼭 필요하다고 계속 제안을 해서 결국 허용을 하게 되었는데, 그때 이미 저는 ‘결국 세상 사람들처럼 살게 되겠구나’ 하고 예상을 했습니다. 지금은 정말로 세상 사람들처럼 살고 있잖아요.

절대 사람을 고용해서는 안 되는 이유

결국에는 현대문명을 누리고 살고 있는 우리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드시 지켜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사람을 고용하지는 않는 것입니다. 부처님은 왕궁에서 살 때 노비를 데리고 살았지만, 출가를 하고 나서는 일절 노비를 데리고 살지 않았어요. 그런데도 과거에 스님들은 왕이 하사한 노비를 데리고 생활을 했습니다. 그러나 정토회는 부처님이 살아가신 삶의 모습을 따라가고자 만들어진 단체입니다. 그래서 신축 건물을 지을 때 제가 이렇게 신신당부를 했습니다.

‘건물 짓는 일은 우리가 직접 할 수 없으니 건설 업체에게 맡길 수밖에 없지만, 건물을 관리하고 운영하는 일은 우리의 힘으로 해야 한다. 만약 우리의 힘으로 관리가 불가능한 건물에는 들어가지 말자.’

더 일찍 건물을 지을 수도 있었지만, 이런 원칙을 지키려다 보니 지체된 면도 있습니다. 결국 건물이 완공된 후 자원봉사자들에 의해 이 건물이 자체적으로 운영이 될 수 있는지 물었더니 가능하다는 대답을 들었어요. 저는 혹시나 해서 여러 번 강조했습니다.

‘만약 사람을 고용해서 건물을 운영해야 하는 일이 발생할 경우에 나는 그 건물에 들어가지 않겠다’

그런데 건물이 완공될 즈음되니 다시 건의가 들어왔습니다.

‘전기를 포함한 두 개 분야에서만 사람을 고용하겠다’
‘처음 일 년만 건물 관리를 전문 업체에 위탁을 맡기겠다’

저도 이런 건의가 나오는 이유가 무엇인지 이해는 합니다. 그래서 바로 대답했습니다.

‘저는 그 건물에 들어가지 않겠습니다. 법문은 새 건물이 아닌 곳에서 온라인으로 하겠습니다.’

불사위원회에서 이런 원칙을 지키려다 보니 사회에서 보면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조그마한 빌딩 하나도 청소나 관리해주는 사람을 고용하는데, 새로 지은 정토회관에는 고용된 사람이 없게 되었습니다. 정토회 회원들 중에 전기기술자를 비롯해 건물 관리를 할 수 있는 많은 전문가들이 모여서 봉사함으로 인해 우리가 세운 원칙을 지킬 수 있게 된 겁니다.

원칙을 지킬 수 있게 노력해 준 여러분에게

이것은 비단 돈 문제만이 아니라 우리가 삶의 원칙을 지켜나가는 문제라고 할 수 있어요. 처음에 문경에서도 대중이 사용하는 건물은 전문가가 짓더라도 우리가 사는 집은 우리가 짓자고 해서 판자를 뜯어서 직접 집을 지었습니다. 그러나 불법 건축물이라고 해서 결국 뜯어내어야 했습니다. 현재 봉화에 있는 건물도 목수의 도움을 조금 받기는 했지만, 대부분을 우리가 지었습니다. 그동안 우리가 이런 노력을 해왔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원칙을 못 지키게 될 것 같아서 새 건물에 안 들어가려고 했는데, 오늘 불사 위원장님이 브리핑하는 내용을 들어보니 한마디로 봉사자들이 협력을 해서 건물 관리를 할 수 있게 되었다는 발표를 한 거네요. 아마도 제가 새 건물에 들어가도 된다는 걸 전하고 싶었나 봅니다. (웃음) 여러분의 노고에 정말 감사드린다는 말씀을 전하고 싶습니다.”

스님은 감사의 마음을 담아 합장을 하고 고개 숙여 인사를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5시 30분부터는 온라인으로 행정처와 회의를 했습니다.

정토회가 온라인으로 전환되는 과도기에서 법회, 불교대학, 회원제도, 법당 정리 등 여러 가지 조정할 안건이 많았습니다. 빠르게 안건을 점검해나갔습니다.

“법당에서 나오는 물품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까요?”

“두북 수련원 창고에 분류를 해서 다 보관을 하고 바자회를 열려고 합니다. 건물 주인이 원래대로 원상 복구하라고 하면, 설치한 것을 다 뜯어서 보내주세요 쓰레기로 온갖 것을 만들 수 있거든요. 못이 박힌 나무라도 못을 빼서 다 쓸 수 있어요. 가치가 있나 없나 따지지 말고요. 건물 주인이 그대로 쓰겠다고 하면 주고 오고, 뜯어가라고 하면 다 실어 보내세요.”

두 시간 동안 안건을 다 점검하고 회의를 마쳤습니다. 이미 날은 어두워졌지만 계속되는 회의로 밥을 제대로 못 먹었습니다.

“참, 회의가 계속 있어서 저녁밥 안쳐놓는 걸 깜빡했네요.”

하루 종일 이어진 온라인 회의 끝에 스님은 저녁 식사를 준비했습니다.

내일은 온라인으로 통일특별위원회 통일의병 대회와 일요명상이 진행될 예정입니다.

전체댓글 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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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선희

욕심을 버려야하는데 ..
사람욕심이 끝이 없는거 같습니닫

2024-03-28 12:23:08

김병재

저는 어중간한 불교신자로 도바님들과 매월 1회 삼사순례를 약5년간 진행해 보았고, 보경사 지난 2004년도에 불교용품 판매점에서 구입한 도서 "여자 한의사가 쓴 108배 건강법이야기" 를 읽고 시작한 108배는 불교가 생활속에서 지속하는 좋은 개기가 되었습니다. 2018년 1월부터 시작한 새벽산행겸 10배 기도는 당시 고뇌를 극복하는 전환점이 되었슴.

2024-03-25 10:51:09

하혜진

스스로를 지켜나간다는 것이 연습이 필요한데, 자꾸 게을러지는 건 어쩔 수 없나 봅니다.
하루를 제대로 살아가다보면 그 하루가 쌓여 언젠가 흔들림 없는 수행자가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생각이 들면 행동으로 옮겨져야 한다는 걸 인지하면서도 자꾸 멈칫하게 됩니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나의 탐욕등을 잘 살피어 화내지 않고 당당해지는 그 날이 오기를 희망합니다.

2024-03-22 15: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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