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0.12.14~15 평화재단 회의
“친구가 위암 말기 판정을 받았어요.”

12월 14일

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두북 수련원에서 서울로 이동했습니다.

새벽기도와 공양을 마치자마자 서울로 출발했습니다. 어젯밤부터 전국 곳곳에 눈이 내렸습니다. 가는 길이 조심스러웠지만 눈 내린 풍경을 구경할 수 있었습니다.

서울에 도착한 스님은 평화재단으로 가서 찾아온 손님과 오찬을 하고, 평화재단 상근 활동가들과 회의를 한 후 밀린 업무를 보았습니다.

12월 15일

다음날 15일에는 민족의 화해와 평화를 위한 종교인모임, 북한 전문가들과 모임이 예정되어 있었지만 코로나19의 확산 추세로 인해 모두 취소했습니다. 오전 10시에 평화재단 기획위원들과만 한 차례 회의를 한 후 오후에는 찾아온 손님을 접견했습니다.

어제와 오늘은 법문이 없었기 때문에 지난 13일 온라인 행복시민 캠프에서 있었던 즉문즉설 중 하나를 소개해 드리며 글을 마치겠습니다.

친구가 위암 말기 판정, 제가 무엇을 도와줄 수 있을까요?

“두 달 전에 제 친한 친구가 갑자기 위암 말기 판정을 받았습니다. 가족력도 없고, 아픈 데도 없었기에 친구의 남편은 아직 완전히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고, 저도 믿기지 않고 있습니다. 하지만 병원에서는 친구 상태가 이미 전이가 너무 많이 돼서 수술도 항암치료도 안 된다고 하여 며칠 전에 호스피스 병원으로 옮겼습니다. 친구는 초등학생인 두 아이를 생각해서 여전히 치료 의지를 다지고 있지만, 병원에서는 여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합니다. 친구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좀 더 가족이랑 시간을 많이 보내고 싶을 것 같고, 지금 이 순간 가족들을 위해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지 찾을 것 같아요. 이 또한 제가 제삼자여서 하는 생각은 아닌지, 모두 제 욕심은 아닌지 궁금합니다. 스님, 제가 그 친구와 가족을 위해서 무엇을 하면 좋을까요?”

“아무것도 해줄 게 없습니다. 남편이라도 내가 해줄 게 없고, 부모라도 내가 해줄 게 없고, 자식이라도 내가 해줄 게 없어요. 인생이라는 게 본래 그래요. 죽음에 동행할 수는 없잖아요. 냉정한 소리라고 할지 모르지만 그게 인생이에요.

죽음을 해결해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래서 각자 자기 인생을 자기가 잘 살아야 하는 거예요. 세상을 살아갈 때는 경제적으로든 여러 가지 방식으로 도와줄 수 있는데, 죽음 앞에 서 있는 사람에게 죽음을 해결해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그리고 그것을 숨길 필요도 없습니다. 사실이 그렇다면 본인에게 이야기해야 합니다. 자기 인생이니까요. 그래야 본인도 남은 시간을 만족스럽게 사용할 거 아니에요?

오래오래 살 것으로 생각하고 오늘도 짜증을 내고 어제도 짜증을 냈는데, 모레 숨넘어간다고 하면 얼마나 인생을 낭비하는 겁니까? 열흘이 남았든 스무날이 남았든 5개월이 남았든 10개월이 남았든 자기 나름대로 보람 있게 살 계획이 있어야 남은 인생을 즐길 수 있잖아요.

그리고 1년 안에 죽기 때문에 인생이 불행하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1년 안에 죽는다고 계속 생각하기 때문에 불행한 거예요. 여기 계시는 분들이 다 내일 죽을지도 모르는 데도 불행하지 않은 이유는 죽는다는 생각을 안 해서 그렇습니다. 1년이라는 시간밖에 안 남았다고 생각하면 두려움이 생기고 괴로워지는 겁니다.

그러면 1년 내내 죽음을 생각하면서 슬프게 사는 게 나아요, 남은 1년이라도 행복하게 사는 게 나아요? 남은 1년이라도 행복하게 살아야 할 거 아닙니까. 앞으로 살아갈 날이 많이 남은 사람들이야 울고불고 화내며 살더라도, 시간이 유한하면 오히려 울 일이나 화낼 일이 없어야 하잖아요. 그런데 어리석은 중생들은 그 아까운 시간을 죽는다는 생각 때문에 울다가 다 보냅니다.

죽음을 앞둔 친구를 진정으로 위하는 방법

병문안 오는 사람들도 ‘아이고, 네가 이래서 어떡하니?’ 하면서 우니까 당사자도 함께 울게 되는 겁니다. 겨우 다시 정신 차리려고 하면 또 누가 병문안을 와서 울고 가고, 이것이 반복되는 것은 당사자를 더 불행하게 만드는 겁니다. 그런 병문안은 바람직하지 않아요. 병문안은 가더라도 병에 대한 얘기는 할 필요가 없어요. 초등학교 다닐 때 얘기, 재미있었던 얘기, 중학교 다닐 때 재미있었던 얘기들을 하면서 즐겁게 보내고 오면 돼요. 위로라는 말이 따로 필요가 없어요. 그러면 그 친구는 잠시라도 옛날 생각하면서 웃을 수 있게 됩니다. 섣불리 위로한다고 하면서 오히려 친구를 슬프게 만들기가 쉬워요.

그러니 위로한다는 생각을 하지 말고 그냥 평상시와 똑같이 만나서 ‘잘 지내니? 우리 그때 재미있었지?’ 하면서 얘기를 나눌 수 있으면 얘기를 나누고, 밥을 같이 먹을 수 있으면 밥을 같이 먹고 오면 되고, 만약 병원비가 모자라면 병원비 좀 내주고 오면 돼요. 이렇게 가볍게 생각을 하면 됩니다.

산모가 아기 낳다가 죽는 일도 있는데, 아이들이 초등학생이라면 많이 컸어요. 그리고 남편은 지금 부인이 아프니까 힘들겠지만 부인이 죽으면 나중에는 재혼을 하게 될 것이고, 새엄마가 아이들을 돌보게 될 겁니다. 부인을 사랑하지 않아서 그렇게 하는 게 아니고,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럽게 그렇게 됩니다. 그러니 질문자가 너무 슬퍼할 필요가 없어요. 우리 인생은 항상 우리가 원하는 대로 다 될 수가 없습니다.”

“처음 친구의 발병 소식을 들었을 때 저는 친구가 6개월에서 1년 정도는 가족들하고 시간을 보낼 줄 알았어요. 그런데 병원에서 말하기를 한두 달 남아있는 상황이라고 해요. 친구의 거동이 불편하다 보니 아이들과 일주일에 한 번씩밖에 못 만나고, 저도 병문안을 못 가는 상황이에요. 그래서 그 친구가 남은 시간을 편안하게 보냈으면 좋겠는데, 그런 메시지를 보내기도 굉장히 조심스럽습니다. 친구가 어떻게 받아들일지 모르겠어요. 친구는 통증이 너무 심해서 병원에 계속 있는 상태니까요.”

“질문자가 그렇게 속을 끓이고 눈물을 흘린다고 해서 친구가 병이 낫는 데 도움이 돼요?”

“안 됩니다.”

슬픈 감정이 생기는 이유

“도움이 되기는커녕 위로도 안 되잖아요. 그런데 뭐 때문에 아무런 도움도 안 되는데 울어요? 감정의 낭비 아니에요? 드라마나 영화 보고 우는 것과 똑같은 거예요. 우는 건 이해하는 데 그 친구를 위해서 우는 건 아니란 겁니다. 친구에게 아무 도움이 안 되잖아요. 그냥 내가 아쉬워서 우는 거예요. 그래서 이건 친구 문제가 아니라 내 문제예요. 내 문제로 봐야 해결이 되지 친구 문제라고 보면 아무 해결책이 없습니다. 이 슬픔은 내가 소중하게 여겼던 것들이 사라지는 데 따라오는 슬픔입니다. 집을 잃거나 돈을 잃었을 때 느끼는 상실감처럼 친구를 잃었을 때 오는 상실감입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에 ‘제행무상(諸行無常)’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영원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뜻입니다. 그러니 이 슬픔을 자꾸 친구 문제로 보지 말고 이렇게 알아차려야 합니다.

‘소중하게 여겼던 것이 사라지니까 내가 상실감을 느끼는 거구나. 이런 고통은 어디에서 왔을까? 친구가 영원히 살 것 같은 착각을 해서 그런 것이구나’

의식으로는 ‘아, 사람은 누구나 다 죽지!’ 이렇게 알지만, 무의식의 세계에서는 영원할 것 같은 거예요. 영원할 것 같은데 현실은 죽는 문제가 발생하니 상실감이 생기는 겁니다. 조금 더 살펴보면 친구가 죽는 것이 잘 된 일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이게 세상의 현실이에요.

가을이 되면 낙엽이 떨어집니다. 이때 낙엽이 우리를 슬프게 하지는 않잖아요? 그런데 우리는 낙엽을 보면서 슬퍼하고 쓸쓸해 합니다. 그것처럼 지금 상황은 꼭 슬퍼해야 할 일은 아닙니다. 슬퍼만 하고 있기보다는 병문안을 가서 환자와 즐겁게 시간을 보내고, 병원비라도 보태는 것이 훨씬 더 도움을 주는 길이예요. 자꾸 위로의 메시지를 보내줘야 한다고 생각하니까 오히려 메시지를 보내기가 더 어려워지는 겁니다. 곧 죽을 사람에게 몇 마디 말이 무슨 위로가 되겠어요. 이런 고민이 드는 이유는 자신을 과대평가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뭔가 큰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까 고민이 되는 거예요.

진짜 위로가 되는 메시지

그냥 ‘잘 지내니?’ 하고 메시지를 보내면 되잖아요. ‘내가 글 읽다가 재미있는 글귀가 있어 보낸다’ 이렇게 메시지를 보내면 되지 꼭 죽음이 어떻고 이런 얘기를 보내야 합니까?

‘죽음이란 본래 없어. 생과 사는 같은 거야’ 이런 얘기 보내지 말고, 그냥 재미있는 시 하나 보내주면서 이렇게 간단하게 메시지를 남기면 돼요.

‘얼마를 살더라도 네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난 너를 항상 응원한다.’

만약에 그걸 보고 친구가 기분 나빠하면서 ’뭘 이따위 내용을 보냈니?’라고 하면, ‘미안’ 하고 답장을 보내면 돼요. 친구인데 가볍게 대해야지 질문자는 친구를 너무 무겁게 대하고 있어요. 이렇게 관점을 가볍게 가지셔서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친구와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전체댓글 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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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스님 말씀 새겨 듣겠습니다. 스님 화이팅!!

2021-02-07 16:30:32

제행무상

스님 말씀 감사합니다.

2020-12-24 02:49:32

고불장

일어나는 모든 마음들은 내가 만듭니다.
사랑하는 벗 에게 지켜보고 할 수 일을 합니다.
고맙습니다_()_

2020-12-23 06:5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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