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0.11.14 김장 2일째, 천일결사 기도 생방송, 영어 통역 즉문즉설
“저에게 너무 많은 기대를 하는 사람들 때문에 힘들어요”

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새벽에 천일결사 기도 생방송을 한 후 오전에는 영어 통역으로 온라인 즉문즉설을 했습니다.

새벽 4시 30분, 종송 소리가 생방송 주소줄을 타고 전 세계로 울려 퍼지는 가운데 천일결사 기도 생방송이 시작되었습니다. 새벽 예불이 끝나자 스님은 카메라를 향해 바라보고 인사말을 건넸습니다.

“오늘은 제10차 천일결사, 제3차 백일기도가 시작된 지 55일째 되는 날입니다. 이제 반을 넘어갔습니다. 부지런히 정진하시기 바랍니다. 기도 끝나고 뵙겠습니다.”

이어서 삼귀의, 수행문, 참회, 108배, 명상, 경존 독송을 차례대로 했습니다.


경전 독송 후에는 오늘 읽은 경전의 의미에 대해 스님이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오늘 읽은 경전에서는 인생의 바른 길이 무엇인지에 대한 부처님의 말씀이 담겨 있었습니다. 어제 읽은 경전에서는 운명을 점치거나 관상을 보거나 손금을 보거나 사주를 보는 것은 옳지 않다는 말씀이 나왔습니다. 그런데도 우리 불교인들이 자꾸 사주를 보거나 관상을 보거나 손금을 보거나 전생 타령을 하는 것은 수행자의 자세가 아닙니다. 수행자는 나한테 유리한지 불리한지,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 이런 것에 구애받지 않는 사람입니다. ‘날씨가 더워야 한다’, ‘추워야 한다’ 이러지 않고, 더우면 옷 하나 벗고 나가고, 추우면 옷 하나 더 입고 나가고, 더우면 수영하고, 추우면 스케이트 타고, 이렇게 경계에 구애받지 않는 것이 수행입니다.

집착할 게 없는 이유

‘천당에 간다’, ‘지옥에 간다’, ‘좋은 일이다’, ‘나쁜 일이다’, 이렇게 분별을 하게 되면 완전한 자유를 얻기가 어렵습니다. 수행자는 자꾸 좋으니 나쁘니 구분하지 말고 주어진 대로 받아들여서 걸림이 없는 자유인이 되어야 합니다. 인생의 바른 길로 나아가려면 운명을 논하거나, 운명을 점치지 말아야 합니다.

이어서 오늘 읽은 경전의 내용은 이 세상에 살아 있는 것 가운데 영원한 것은 없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은 생겨나고 사라집니다. 이것이 ‘무상(無常)’입니다. 형성된 것은 영원하지 않다는 것이며, 형성되었다는 것은 다 사라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즉, 제행무상(諸行無常)입니다. 우리가 제행무상을 깊이 파악하게 되면 집착할 바가 없게 됩니다. ‘이것은 내 것이다’, ‘이것이 옳다’ 이렇게 집착할 바가 없어집니다. 다 인연 따라 형성되고 인연 따라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하늘의 구름이 코끼리 모양을 했다가 용 모양을 했다가 하지만 집착하지 않잖아요? 겉으로 보기에는 그런 형상을 하고 있지만 자세히 보면 아무것도 없어요. 이것을 금강경에서는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꿈같고, 아지랑이 같고, 물거품 같고, 그림자 같으며, 아침이슬 같고, 번갯불 같다.’

허무하다는 말이 아닙니다. 있는 것 같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없다는 뜻입니다. 인연 따라 형성되는 것이기 때문에 인연이 다하면 사라지고, 인연이 모이면 형성되는 것이에요. 그래서 제행이 무상하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제일 큰 부자

그런데 우리가 그것을 모르고 집착하면 괴로움이 생깁니다. 괴로워하는 인생을 갖고 ‘내 것이다’, ‘내 인생이다’라고 할 만하지 않습니다. 어떤 것도 인연 따라 형성된 것이기 때문에 그 실체가 없다는 걸 알면 '나다’, ‘내 것이다’라고 집착할 것이 없어요. 이렇게 진실을 알게 되면 괴로워할 일이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순간순간 나도 모르게 영원한 것이 있을 것 같아서 거기에 집착하게 됩니다. 실제로는 잡으려야 잡을 수가 없기 때문에 화내고 짜증내고 슬퍼하고 근심하고 걱정하고 초조하고 불안해하면서 인생을 삽니다. 한 끼의 밥, 한 벌의 옷만 입어도 얼마든지 살 수 있어요. 가진 것이 아무리 많아도 집착하게 되면 늘 헐떡거리며 가난 속에서 살아가게 됩니다. 부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만족할 줄 아는 자가 제일 큰 부자이다’

오늘 경전을 읽으면서 부처님의 이 말씀을 다시 한번 새겨보면 좋겠습니다. 이런 부처님의 가르침이 너무 극심하게 청빈한 생활을 요구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부처님은 우리의 스승이시고, 우리에게 모범을 보이신 분입니다. 부처님처럼 살아도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꼭 물질 때문에 불행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직접 보여주신 겁니다.

여러분도 꼭 그렇게 살라는 말은 아니에요. 지금 우리가 가진 것만으로도 풍요로운데 물질 때문에 괴롭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말씀드리는 겁니다. 내 마음의 집착과 무지로 인해서 괴로운 것이지 환경 때문이 아니라는 점을 자각해야 합니다.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이 조건이 생존을 위협하는 수준은 아니기 때문에 이 조건 속에서 바른 견해를 갖게 되면 내 삶은 언제나 행복하고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이러한 관점을 먼저 확고히 갖고, 그리고 우리 주위의 환경도 조금 더 정의롭고 안전하게 만들고자 하는 것이 대승 보살의 원입니다. 전전긍긍하는 삶을 살면서 경계에 휘둘리는 존재가 아니라 이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겠다는 원을 세우고 활동하고 있는 사람들이 바로 여러분이잖아요. 불교대학도 열고, 어려운 사람들에게 도움도 주고, 배고픈 사람에게 밥도 주고, 병든 사람에게 약도 주고, 이렇게 할 수 있는 데까지 우리는 세상을 좋은 방향으로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힘들어하고 괴로워하는 사람들을 향해

단순히 인생이 괴로워서 나 혼자만 전전긍긍하는 삶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진실을 깨우쳐서 괴로움에서 벗어나고, 나아가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기 위해 보살의 원을 세워 지금 활동을 해나가고 있습니다.

코로나 시대에 많은 세상 사람들이 불안해하고 있습니다. 우울증도 심해지고, 자살률도 높아지고 있다고 합니다. 내년이 되면 아마 더 심해질 것입니다. 이런 힘든 시대에 이 좋은 부처님의 법을 널리 전해야 합니다. 만약 불교라는 이름 때문에 저항감이 있다면, 그 이름도 과감히 버릴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10-3차 백일기도를 시작하면서 많은 국민을 행복학교에 참가시켜 불안과 초조에서 벗어나도록 하자고 원을 세웠는데, 벌써 50일이 지났어요. 이제 홍보할 수 있는 날이 한 달 남짓밖에 안 남았으니 조금 더 마음을 내 지인들에게 더 많은 인연을 맺어주면서 우리의 원을 성취해나갔으면 좋겠습니다.”

합장으로 인사를 하고 방송을 마쳤습니다.

방송이 끝나자마자 스님은 어제에 이어서 김장을 하기 위해 작업복으로 갈아입었습니다.

어제 배추와 무에 덮어둔 부직포를 걷어내 보니 날이 포근해서 얼지 않고 싱싱했습니다.

“먼저 사진 한 장 찍읍시다.”

스님의 제안으로 배추더미 앞에서 활짝 웃으며 다 함께 사진을 찍었습니다.

“김치!”

모아두었던 종이상자 하나와 칼 하나씩 들고 배추 주위에 둘러앉았습니다. 배추 꼭지를 따고, 상한 겉잎을 떼고, 칼집을 내어 반으로 갈랐습니다.

“배추 꼭지에서 2분의 1 정도만 칼집을 내고 손으로 갈라주세요. 칼집을 너무 많이 내면 배추가 부서져요.”

묵직한 배추를 하나 갈라보니 켜켜이 속이 노랗게 꽉 차 있었습니다.

“이야, 속이 꽉 찼네!”


배추를 다듬는 동안 한쪽에서는 배추를 절일 소금물을 준비했습니다. 해마다 배추에 소금을 뿌리고 절였는데, 올해는 소금물에 배추를 바로 절이기로 했습니다. 뜨거운 물에 소금을 진하게 녹이고 큰 통에 물을 받아 소금물을 섞었습니다.



“스님 9시가 다 되었습니다.”

“저는 잠깐 법문하고 오겠습니다.”

오전 9시부터 영어 통역 온라인 강연이 있어서 다시 법복으로 갈아입었습니다. 전 세계에서 200여 명의 외국인들이 생방송에 접속한 가운데 스님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스님이 화면에 나타나기 전 외국인들은 음악에 맞춰 손과 팔을 흔들며 댄스 타임을 가졌습니다.

스님이 가사와 장삼을 수하고 생방송 카메라 앞에 앉자, 짧은 명상으로 마음을 맑힌 후 스님이 인사말을 건넸습니다.

“즉문즉설이란 내가 의문이나 고뇌가 있을 때 그것을 숨김없이 있는 그대로 꺼내놓고 그것에 대해 대화를 하는 것입니다. 어떤 문제에 대해 정해진 답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대화를 하면서 좀 더 나은 길을 찾아가다 보면 저절로 문제가 해결이 되는 방식의 대화입니다.

저는 답을 주는 사람이라기보다는 안내자입니다. 인생살이에는 정해진 답이 없습니다. 어떤 것이든 내가 선택하는 것이고, 그 선택에 대해 책임을 질 뿐입니다. 그 선택은 누구도 대신해줄 수가 없고, 여러분들이 직접 선택하는 것입니다. 그 결과에 대해서도 여러분들이 책임을 지는 거예요. 우리가 선택을 망설이는 이유는 어떤 것이 더 좋은 선택이냐 때문이 아닙니다. 그 선택에 대한 결과를 책임지려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제 여러분들의 얘기를 들어보겠습니다. 첫 번째 질문자는 누구인가요?"

샌프란시스코, 싱가포르, 시애틀, 스웨덴 등 세계 각국에서 총 6명이 화상으로 연결되어 영어 통역으로 스님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먼저 샌프란시스코에 살고 있는 여성분이 질문을 했습니다. 코로나 사태에도 불구하고 상사가 자신에게 너무 많은 업무를 해줄 것을 계속 요구하고 있어 힘들다며 말문을 열었습니다.

저에게 너무 많은 기대를 하는 사람들 때문에 힘들어요

“How would you suggest handling people who expect too much from you? For example, despite the current pandemic and the restrictions imposed, my boss still expects us to be working like we were during pre-pandemic times and the amount of meetings we have not decreased despite us having nearly nothing to report to him about. Another example would be that even though I do as my parents ask of me, they always find a reason to not be completely satisfied with me.
나한테 너무나 많은 기대를 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스님께서 조언해 주실 수 있으신지요? 예를 들어 코로나 상황과 제한된 환경에서도 제 상사는 코로나 전과 마찬가지로 일을 하고, 보고할 것이 거의 없는데도 미팅 수를 줄이지 않고 있습니다. 또 다른 예로는 부모님이 요구하는 대로 다 하는데도, 부모님은 항상 저에게 만족하지 않은 이유를 찾습니다.”

“인생을 살면서 우리가 흔히 범하는 두 가지 착각이 있습니다. 첫째, 내가 원하는 것이 다 이루어질 수 있다는 착각이에요. 그런데 실제로 내가 원하는 것은 다 이루어질 수가 없습니다. 원하는 것이 다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 진실이라면, 괴로워할 필요는 없잖아요.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 괴로운 이유는 원하는 것이 다 이루어질 수 있다고 나도 모르게 착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 원하는 것이 다 이루어진다고 결과가 반드시 좋은 것도 아니에요.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포기하거나, 포기가 안 된다면 그걸 이루기 위해서 끊임없이 노력할 뿐인 거예요.

둘째, 남이 나에게 원하는 것을 내가 다 해줄 수 있다는 착각입니다. 남이 원하는 것을 내가 다 해 줄 수는 없어요. 그런데도 남이 원하는 것을 해줄 수 없음을 미안해하거나 괴로워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또 상대가 나한테 지나친 것을 원한다고 해서 상대를 미워하기도 합니다.

지금 질문자는 두 번째 케이스입니다. 그 사람이 그렇게 원하는 것은 그 사람의 마음입니다. 그것을 내가 이래라저래라 할 수 없어요. ‘저 사람은 이런 것을 원하는구나’ 하고 내가 알 뿐입니다. 해 줄 수 있으면 해 주면 되고, 해 주기가 싫으면 ‘싫어!’라고 표현하면 됩니다. 해주고 싶지만 내가 능력이 안 되면 ‘죄송합니다. 제가 능력이 부족합니다’ 이렇게 말하면 돼요.

만약 해주기가 싫어서 안 해주는 것이라면 당연히 상대로부터 비난이나 미움을 받습니다. 그것을 기꺼이 받아들여야 합니다. 해줄 능력이 안 돼서 못해주는 것도 상대가 비난할 수 있는데, 그것 역시 비난을 감수하면 됩니다.

지금 질문자는 해주기 싫거나, 해줄 능력이 없는데, 비난은 받고 싶지 않은 겁니다. 두 가지를 다 갖고 싶은 데서 괴로움이 발생한 겁니다. 이해하셨어요?”

“Yes.”

“이 괴로움은 그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나의 문제입니다. 상사 입장에서는 자기가 원하는 것이 안 이루어졌으니 기분이 나쁜 것이 당연하잖아요. 상사로부터 비난을 받기 싫으면 밤을 새워서라도 해주면 돼요. 밤을 새워 해주고 칭찬을 받을 것인가, 못한다고 거절하고 비난을 받을 것인가. 둘 중에 어느 것이 나은지를 질문자가 선택해야 합니다. 어느 쪽을 선택하시겠어요?”

“비난을 받겠습니다.” (웃음)

“그럼 마음 편안하게 질문자가 할 수 있는 만큼만 일하면 됩니다. 할 수 없는 부분에 대해서는 ‘죄송합니다’라고 말하면 돼요. 두려워하거나 조마조마할 필요가 없어요. 이런 관점을 가져야 인생을 편안하게 살지, 아니면 죽을 때까지 남의 눈치를 보고 끌려 다니며 살아야 합니다.”

“스님 말씀이 진리인 것 같습니다.”

“항상 거절하라는 뜻은 아닙니다. 때로는 거절하고, 때로는 밤새서 해주기도 하고, 어느 선택을 하든 내가 편안해야 한다는 뜻이에요. 보통 사람들은 밤새 일을 해주면서 그 사람을 미워하고 불평합니다. 또는 거절을 해놓고선 비난받을 것을 두려워합니다.”

“어떤 선택을 하든 두 가지 모두 결과가 만족스럽지 않은 것 같습니다.”

“핵심은 내가 편안해야 한다는 겁니다. 어느 쪽을 선택해도 ‘나는 괜찮다’ 이렇게 말할 수 있어야 해요.”

“저에게 도움이 됐습니다. 감사합니다.”

질문자가 밝게 웃자 스님도 함께 웃음을 내비쳤습니다.

이어서 질문이 계속되었습니다.

  • How to reduce my love and addiction to Korean drama?
    (어떻게 하면 한국 드라마에 대한 집착과 중독을 줄일 수 있을까요?)

  • Should I pursuit my dream or keep doing what I currently do to support myself and family?
    (저는 제 꿈을 찾아가야 할까요 아니면 지금처럼 저와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하고 있는 일을 계속해야 할까요?)

  • How to make good decisions in life? Recently I had to choose between working for two different companies. Both choices were good, but I found it difficult to make up which choice to make. How could Buddhist principles help in those situations?
    (어떻게 하면 제 인생에서 좋은 결정을 할 수 있을까요? 최근에 두 개의 회사 중에서 직장을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어떤 회사로 결정하든 괜찮은 선택이었지만 한 군데를 선택하기가 정말 힘들었습니다. 그런 상황에 놓이게 될 때 불교 원리가 어떻게 저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까요?)

  • If we see injustice, should we practice moral courage? The father of my child is a famous and rich person. My child has been taken away from me since 2009 due to perjuries, we have no contact whatsoever, not even a photo, I do not know how my son looks like, should I be quiet and do nothing about this abusive parental alienation?
    (부정함을 봤을 때 도덕적인 용기를 실천해야 할까요? 제 아이의 아빠는 돈 많고 유명한 사람입니다. 제 아이는 위증으로 2009년부터 빼앗겨서 그 후 사진 한 장 보지 못했고 연락처도 없습니다. 지금 제 아이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알 수 없는데 이 학대적인 소외에도 그냥 조용히 아무 것도 안 하고 있어야 할까요?)

  • How can I be less judgemental and more understanding to others?
    (어떻게 하면 제가 사람들에 대한 비판을 좀 줄이고 좀 더 많이 이해할 수 있을까요?)

  • What do you think of modern mindfulness practice without a clear code of ethic? I have observed the Western mindfulness practice has often been used without recommendations for moral behavior - used for example for focus, control, psychological self-help, or for plain marketing purpose.
    (명확한 윤리 규범이 없는 현대 명상 수행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서구권에서 명상 수행에 있어 도덕적 지침 없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명상 수행은 주로 집중력 향상, 마음 통제, 심리적 자가 치유, 단순 마케팅 등의 목적으로 이용되고 있습니다.)

스님은 모든 질문에 대해 답변을 한 후 질문자들에게 한 줄 소감을 물어보았습니다.

“저는 이런 경험을 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정말 좋은 경험이 된 것 같습니다.”

“저도 온라인에서 이렇게 질문한 것은 첫 경험이어서 다음번에는 스님을 직접 만나 뵈었으면 좋겠습니다.”

“스님이 답변 주신 것이 도움이 많이 됐고, 제가 제 꿈을 준비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어 감사합니다.”

“누구도 저에게 함부로 상처를 줄 수 없게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런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윤리 규범이 없이 돈벌이 수단이 되고 있는 명상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 분도 소감을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스님은 내가 먼저 이 가르침을 바르게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며 생방송을 마쳤습니다.

“감사합니다. 제가 생각했던 것을 더 명확하게 확인해 주셨습니다. 저는 수행이 상업화 되었다는 것에 대해서만 분노를 느끼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본 분들이 불교를 수행과 별개로 생각하기도 하고, 불교의 지식화 된 부분을 수행보다 우선시 하기도 하고, 또 동양을 경멸하는 태도를 느낀 적이 있어 언짢았던 적이 있었습니다.”

“네. 부처님의 법은 정말 좋은 가르침이지만,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마다 달리 쓰니 그것은 세상 사람들의 자유인데 어떡하겠습니까? 내가 바르게 ‘다르마(Dharma)’를 받아들이는 게 중요합니다.”

외국인들은 다음 달 영어 통역 강연 때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며 화면 속에서 서로에게 손을 흔들었습니다.

“Good Bye!”

방송이 끝나자마자 스님은 다시 김장 울력을 하러 가기 위해 작업복으로 갈아입었습니다. 몇몇 법사님들은 김장 울력을 하면서 이어폰을 꽂고 영어 통역 생방송을 함께 듣기도 했습니다.

두 시간 동안 울력을 하고 오니 배추가 반 이상 다듬어져 있었습니다. 스님은 웃으며 행자들에게 인사를 건넸습니다.

“아니, 다 했을 줄 알았는데, 아직도 덜 다듬었어요?”

“스님 서운하실까 봐 남겨두었습니다.” (웃음)

바로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다시 배추를 다듬고 소금물에 절였습니다.



한 시간 동안 나머지 배추를 다 다듬었습니다.

“다 했다!”

마지막으로 스님이 배추를 갈랐습니다. 떼어낸 겉잎은 동네 소들에게 주기 위해 따로 모으고 흙먼지를 깨끗이 쓸고 정리한 다음 점심을 먹었습니다.

김칫국 한 그릇에 밥을 한술 말아먹고 나니 다시 온라인 강연 시간이 다 되었습니다. 오후 1시부터는 금강경 공부를 마친 경전반 학생들을 대상으로 온라인 즉문즉설 시간을 갖기로 했습니다.

“저는 법회를 하고 나서 다시 올게요.”

“잘 다녀오셔요.”

행자들은 무를 씻고, 스님은 다시 가사와 장삼을 수하고 생방송 카메라 앞에 앉았습니다. 오후에 진행된 경전반 금강경 즉문즉설과 김장, 저녁 6시에 진행된 정토불교대학 근본불교 즉문즉설은 내일 이어서 소식을 전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전체댓글 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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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

경상도식 표현은 "머 했노?" ^^입니다.

2020-11-24 09:07:26

김현숙여래심

어느 선택이든 맘적 편안함과 안정에 두렵니다

2020-11-20 22:20:00

무소유

“아니, 다 했을 줄 알았는데, 아직도 덜 다듬었어요?”

‘아이고 고생들 하시네요’ 의
정겨운 경상도식 표현이군요 ㅎㅎ

2020-11-19 18: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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