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0.9.4. 금요정기법회
“남편이 저 몰래 돈을 숨겨놓은 걸 알게 됐어요”

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농사일을 하고 공동체 법사단과 회의를 한 후 저녁에는 금요 정기법회를 촬영했습니다.

새벽기도를 마치고 연장을 챙겨 산 윗밭으로 갔습니다. 태풍이 지나간 뒤 하늘은 더욱 맑아졌고 바람은 한결 선선해졌습니다. 농부들의 깊은 한숨과 달리 가을로 접어드는 산과 들은 아름다웠습니다. 오늘은 태풍이 남기고 간 흔적을 치웠습니다.

먼저 산 윗밭으로 오르는 길에 쓰러진 대나무를 치웠습니다. 톱으로 대나무 밑동부터 잘랐습니다.

스무 그루가 넘었습니다. 자른 대나무는 길 한쪽에 보이지 않게 가지런히 놓아두었습니다.

“대나무 빗자루는 실컷 만들 수 있겠네요.”




너무 긴 대나무는 토막을 내었습니다.

대나무 정리를 마치고 밭으로 올라갔습니다.

어제 임시로 고쳐놓았던 문을 제대로 손보았습니다. 기둥 주위에 돌을 망치로 단단히 박고, 흙을 퍼와 덮었습니다. 한 번 더 돌을 박고 흙으로 덮어준 뒤 발로 꾹꾹 밟았습니다. 이렇게 양쪽 기둥을 단단히 고정시켰습니다.



밭 가운데도 기울어진 나무가 있었습니다. 다행히 울타리 기둥에 걸쳐 있어서 울타리는 망가지지 않았습니다.

스님은 울타리 바깥으로 가서 나무를 벴습니다. 나무가 커서 톱으로 여러 도막으로 잘라서 울타리 바깥에 뒀습니다.


부러져 밭 안으로 나동그라진 오동나무도 가지별로 잘라서 울타리 바깥에 쌓아두었습니다.


“수박이 익은 게 있을까?”

큰 나무가 부러질 정도로 거센 바람 속에서도 수박은 살아남았습니다. 맑은 소리가 나는 수박 두 통을 땄습니다.



일을 마치고 밭을 내려가며 스님은 산 윗밭을 맡고 있는 행자에게 태풍이 올 때 마음을 써야 할 부분을 짚어주었습니다.

“비가 많이 올 때는 물길을 잘 내주어야 해요. 행자님이 물길을 내기는 했는데 얕아서 제가 태풍이 오기 전날 밤에 깊게 파놓았어요. 며칠 뒤에 태풍이 또 오니까 물길을 잘 살펴주세요.”

밭을 다 내려와서 스님은 예초기를 돌릴 준비를 했습니다.

“저는 이 길을 따라가면서 풀을 베려고 해요. 행자님은 쓰러진 대나무를 베서 치워주세요.”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마을 길가에 쓰러진 나무를 치우고 예초기를 꼼꼼히 돌렸습니다.




예초기 줄이 다 닳을 때까지 길을 따라 풀을 베고 울력을 마쳤습니다. 예초기를 멨던 등 아래로 땀이 흥건했습니다.

농사일을 마치고 11시부터 공동체 법사단 회의를 시작했습니다. 코로나 사태 이후 6개월 동안 깨달음의 장 수련을 진행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향후 깨달음의 장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 긴 시간 토론을 한 후 오후 내내 정토대전 편찬에 대해 논의를 했습니다.

토론 내용 중에는 왜 단체 이름을 ‘정토회’라고 정했는지, 정토회는 무엇을 추구하는 곳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도 제기되었습니다. 스님은 자세하게 답변을 해주었습니다.

“저는 우리 단체의 명칭을 왜 정토회라고 했는지 그게 늘 궁금했어요. 왜 정토회라고 이름을 지었나요?”

“불교에서 가장 큰 두 가지 원(願)은 성불과 정토입니다. 성불이 개인의 완성을 의미한다면, 정토는 사회의 완성을 뜻합니다. 내가 수행해서 깨달음을 얻어 해탈 열반을 증득하는 것을 성불이라고 하고, 이 세상에 아무런 환난이 없어서 모든 사람이 괴로움 없이 사는 세상을 정토라고 합니다. 세상 환경이 어떻든 나는 괴로움이 없는 것이 성불이고, 개인이 수행이 되었는지에 관계없이 이 세상이 사람이 살아가는 데 아무런 어려움이 없는 것이 정토입니다. 성불이 ‘상구보리’에 해당한다면, 정토는 ‘하화중생’에 해당합니다.

‘정토회’라는 이름을 지은 이유

성불과 정토는 분리하려야 분리할 수가 없습니다. 부처님의 능력에 비유한다면 성불은 ‘지혜’라고 표현할 수 있고, 정토는 ‘자비’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보살의 수행은 이 두 가지를 동시에 행하는 것이지 하나만 한다는 개념이 아닙니다. 그런데 한국불교의 선수행은 말로는 두 가지를 모두 강조하지만 현실에서는 대부분 성불에 더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정토회는 수행을 통한 개인의 완성을 지향하지만 사회의 완성에 더 비중을 두었습니다. 개인의 완성에 더 비중을 두었다면 ‘성불회’라고 이름을 지었어야 하겠죠. ‘정토회’라고 이름을 지은 이유는 사회의 완성에 더 초점을 두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모든 것의 기초는 수행입니다. 수행을 기초로 하고 사회 완성을 향해 헌신적으로 노력하자는 것이 정토회가 지향하는 바입니다. 자기 변화와 사회 변화를 따로 보지 않고 하나로 보고 활동한다는 것이 바로 ‘일과 수행의 통일’입니다. 여기서 수행이라는 것은 자기완성을 뜻하고, 일이라는 것은 농사를 짓는다는 개념이 아니라 정토 세상을 만들기 위한 활동을 뜻합니다. 즉, 일과 수행의 통일이란 정토 세상을 이루기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할 많은 일들을 수행의 과제로 삼는다는 뜻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과 수행이 분리될 수가 없는 거예요. 화엄경에서는 이것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보살에게 있어서 정토란 이미 완성된 국토가 아니라 보살이 정토를 이루기 위해 활동하고 있는 국토이다.’

원(願)을 이루기 위해 활동하고 있다면 그 원이 성취되었는가 여부에 관계없이 보살은 이미 정토 세상에 살고 있는 겁니다. 이렇게 일과 수행의 통일이라는 관점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의 모임이 정토회입니다. 다시 말해 ‘사회의 완성’이라는 목표를 놓치지 않기 위해 이름을 ‘정토회’라고 지은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 변화에는 관심이 없고 개인 수행만 하겠다는 사람에게는 ‘다른 절에 가십시오’ 이렇게 안내를 하면 됩니다. 개인 수행에는 관심이 없고 사회 운동만 하겠다는 사람에게는 ‘다른 시민단체로 가십시오’ 이렇게 안내를 하면 돼요. 정토회는 자기 변화와 사회 변화를 함께 만들어가는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정토사라고 하지 않고 정토회라고 한 이유는 구성원들의 평등성을 분명하게 표현하기 위해서입니다. 절을 뜻하는 ‘사’ 자를 사용하면 거기에는 스님이 있고 신도가 있듯이 계급이 나뉜다는 의미가 들어 있어요. 그리고 ‘회’라는 말은 불교적인 의미로는 ‘상가’라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상가는 그 구성원들이 평등한 멤버십을 갖고 참여하는 곳이지 계급이 나눠지는 곳이 아니거든요.

한 마디로 말하면 실천불교

자신이 살고 있는 사회를 정의롭게 변화시킨다는 의식이 없는 개인의 수행은 불교의 근본에 어긋날 뿐만 아니라 반쪽에 불과합니다. 테라밧다 불교는 경계를 문제 삼지 않고 어떤 상황에서도 해탈해야 한다는 목표를 분명히 하고 있다는 장점이 있는 반면에 결과적으로는 사회적 모순을 외면하는 쪽으로 흘러갔습니다. 더욱이 봉건사회에서 대부분 왕의 보호 하에 있었기 때문에 사회적 모순을 말하기가 어려웠던 겁니다. 그러나 부처님은 당시에 계급제도에 대해 비판을 하셨거든요.

오늘날 테라밧다 불교가 유럽과 미국에서 유행하는 이유는 고정관념을 타파한 측면에서 굉장한 충격과 자극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회적 정의를 외면하는 불교를 전파하고 있다는 한계를 갖고 있습니다. 달라이 라마의 평화적 저항 운동은 사회 실천적인 측면을 많이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바탕은 중국에 대한 저항 운동이기 때문에 미국의 지지를 받는 정치적인 요인도 있어요.

앞으로 개인주의적이고 신비주의적인 요소에 의한 불교의 유행이 한 풀 꺾이게 되면, 결국 사회를 이끄는 리더십은 없지 않느냐는 비판에 직면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그래서 정토회가 서구 사회로 확산이 될 때는 테라밧다 불교에 비해 사회적 실천이 더욱 강조되어야 하고, 기독교 문화에 비해 수행적 측면이 더욱 강조되어야 합니다. 즉 복을 구하기보다는 지혜를 닦는 수행이 더욱 강조되어야 하고, 개인의 수행에 머무르지 않고 사회적 실천 행동이 강조되어야 해요. 개인의 수행과 사회적 실천, 두 가지가 모두 강조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개개인은 어떤 경우에도 괴로움이 없는 자유로운 사람이 되는 수행자를 지향하고, 그런 수행자가 사회정의를 위한 실천 활동을 하는 모임이 정토회입니다. 한 마디로 말한다면 ‘실천불교’라고 말할 수가 있겠죠.”

정토회의 정체성에 대한 문답은 계속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습니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이야기합시다.”

저녁 7시에 회의를 마쳤습니다. 스님은 원고 교정을 본 후 7시 30분에 생방송 카메라 앞에 앉았습니다. 오늘도 2천여 명의 정토회 회원들이 생방송에 접속했습니다.

스님은 어젯밤에 지나간 태풍 이야기를 하며 법문을 시작했습니다.

“안녕하세요 오늘은 9월의 첫 번째 정기법회입니다. 가을이 성큼 다가왔음을 느낍니다. 날씨가 변덕을 부리는 건지 사람이 변덕을 부리는 건지 모르겠지만 지난주까지의 무더위는 온데간데 없이 오늘 아침에는 약간의 쌀쌀함마저 느껴졌습니다. 아마 지난주와 이번 주에 걸친 태풍의 영향 때문인 것 같기도 합니다.

저는 요즘 농사를 짓고 있는데 태풍이 지나가면서 이런저런 피해가 생겼습니다. 아침에 논밭을 둘러보니 벼가 쓰러지고 뚜껑이 날아가고 대나무가 쓰러지고 부러지는 등 피해를 좀 입긴 했어요. 하지만 전날 밤에 우려했던 것에 비해서는 예상보다 피해가 적었어요. 오늘 아침에는 쓰러진 나무들을 모두 베어냈는데, 일부 쓰러진 벼포기를 다 세우려면 시일이 좀 걸릴 것 같습니다.

지은 인연을 알면 괴로울 일이 없다

수행도 이와 같습니다. 내가 지은 인연을 알면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어서 과보가 몰아치더라도 기꺼이 받아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내가 지은 인연을 모르면 마치 날씨가 맑을 줄 알고 있다가 갑자기 큰 태풍이 불어 피해를 당하는 것과 같은 괴로움에 빠지게 됩니다. 그래서 나쁜 과보를 받지 않으려면 나쁜 인연을 짓지 말아야 하고, 나쁜 인연을 지었다면 과보를 기꺼이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수행이란 어떤 상황에서도 나를 온전히 보호해서 삶을 좀 더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정토행자 여러분! 이런 부처님의 법을 만나 수행을 올바르게 할 수 있는 것에 대해 기뻐하면서, 오늘도 알지만 놓쳐버렸거나 몰랐던 것에 대해 함께 대화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어서 곧바로 질문을 받았습니다. 총 7명이 화상으로 연결되어 즉문즉설이 진행되었습니다. 그중 한 분은 최근에 남편이 몰래 돈을 숨기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속상해 하며 질문했습니다.

남편이 저 몰래 돈을 숨겨둔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저는 결혼 8년 차 불임부부입니다. 아이를 가지기 위해 12년 동안 다니던 회사도 그만두고 시험관 시술을 여러 번 시도했지만 아기는 생기지 않았습니다. 남편은 사업을 하는데, 저의 전 재산과 친정에서 돈까지 끌어와 물심양면으로 도왔어요. 그런데 최근 남편이 저 몰래 큰돈을 숨겨두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너무도 믿었던 남편이기에 황망하고 억울합니다. 이 사람과 계속 살아야 할지 고민이에요. 같이 살아야 한다면 괴롭지 않게 살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될까요? 억울함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도문도 부탁드립니다.”

“남편 사업이 어렵다고 해서 물심양면으로 도와줬는데 알고 봤더니 남편이 큰돈을 숨겨놨다고 했잖아요. 그러면 남편이 빈털터리인 게 나아요, 아니면 빈털터리인 척 나를 속였더라도 몇 억 숨겨 놓은 게 나아요?”

“저는 솔직히 저한테 거짓말하는 것보다는 빈털터리가 나을 것 같습니다”

“그것은 ‘너하고 나하고 같이 굶어 죽자’는 바보 같은 생각에 불과합니다. ‘나는 굶어 죽더라도 너라도 잘 살아야지’ 이렇게 대범하게 생각을 해야 합니다. 남편이 큰돈을 숨겨 놓았으면 나중에 덕 볼 일이라도 있잖아요. 그 돈은 그냥 없었다고 생각하고 모르는 체하는 게 좋아요. 괘씸하게 생각할 게 아니라 이렇게 생각하면 좋은 일이에요.

‘빈털터리인 줄 알았더니, 숨겨놓은 돈이라도 있으니 다행이다’

질문자가 기분이 나쁜 것은 충분히 이해합니다. 기분은 나쁘겠지만, 질문자한테는 돈을 숨겨놓은 게 이익이에요. 이혼하든 안 하든 손해날 게 하나도 없습니다.”

“본인 돈을 숨겨놓은 거면 괜찮은데 제 돈을 다 가져가서 자기 것으로 만든 건 좀 억울해요.”

“기분 나쁜 건 이해해요. 그런데 남편이 돈을 가지고 가서 다 써버리는 게 나아요, 어디에 감춰놓는 게 나아요? 돈을 가져간 건 이미 일어난 일이에요. 지나가 버렸어요. 남편이 사업에 실패에서 그 돈을 다 없앤 게 나아요, 그래도 숨겨놓은 게 나아요?”

“있는 게 나은 것 같습니다.”

“그래요. 내 돈을 숨겨서 기분 나쁜 건 이해하지만 계속 기분 나쁘다면 이혼하는 수밖에 없어요. 만약 헤어지게 되더라도 그 돈이 있어야 내가 시비를 가려서 되찾을 수가 있어요. 계속 같이 살더라도 돈이 있는 게 나아요. 그러니까 ‘그래도 돈을 숨겨놔서 다행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게 좋아요.” (웃음)

“네.”

“불교대학 왜 다니는 거예요? 어리석은 생각을 탁 바꿔서 ‘사실은 좋은 일이구나! 나 몰래 감춰놓은 것은 기분 나쁘지만 실제로는 나에게 이익이네. 돈이 없는 것보다 있는 게 낫다.’ 이걸 알고 손뼉을 쳐야지요.”

“네, 알겠습니다.”

“남편이 돈을 숨겨놨는데 발견했으면 ‘돈이 없는 줄 알았는데 저기 숨겨 놓았네! 저걸 어떻게 가져올까?’하고 연구를 해야지 미워하는 데 시간을 보낼 여유가 어디 있어요? 어떻게 하면 그 돈의 반이라도 가져올까 연구를 해 보세요. (웃음)

이렇게 여러분이 좀 더 현명하게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착한 사람,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얘기가 아니에요. 자기를 괴롭히는 어리석은 행동은 멈추고, 자기 인생을 위해 조금 현명했으면 좋겠습니다. 왜 자기가 자기 발등을 찍는 거예요? 왜 자기가 좋아서 결혼해 놓고 미워하고, 아이 낳아 놓고 후회하고, 가게 열어놓고 후회하고, 취직해 놓고 다니기 싫다고 야단을 치고 그래요?

이미 일어나 버린 일을 두고 ‘이랬으면 좋겠다, 저랬으면 좋겠다’하고 아쉬워하는 마음은 이해는 되지만, 백 번 아쉬워해도 돌이킬 수는 없습니다. 백 번 얘기해 봐야 헛수고예요. 계단에서 넘어져서 한쪽 다리가 부러졌는데, ‘계단을 내려오지 않았다면, 조심했다면 다리가 부러지지 않았을 텐데’라고 만 번을 얘기해도 아무 소용이 없어요. 부러진 다리를 붙잡고 ‘이랬으면 안 부려졌을 텐데’하는 것보다 안 부러진 다리를 잡고 ‘그래도 한 다리라도 성하니 다행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게 인생에 도움이 됩니다. ‘사업하다 실패해서 빈털터리가 된 줄 알았는데 숨겨놓은 돈이라도 있으니 다행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게 좋다는 거예요. 다리를 다쳐서 기분이 안 좋은 건 이해가 되지만, 거기에 사로잡혀서 부러진 다리를 잡고 울고 있으면 치료도 못 받아요. 얼른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는 게 중요합니다.

수행은 언제나 지나간 일을 생각하지 않고 지금 여기에 깨어 있는 것입니다. 과거에 내가 ‘돈이 많았다. 공부를 잘했다. 우리 아이가 어땠다’ 이런 것은 아무 의미 없는 어젯밤 꿈같은 거예요. 지금 어떻게 할 거냐가 중요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늘 과거가 오늘을 살아가는데 장애가 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사는데 아무 지장이 없는데도 과거 생각에 사로잡혀서 슬퍼하고 짜증내고 괴로워해요. 현재의 삶을 망치고 있습니다. 지금 여기에 깨어있으면 내가 안 죽고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굉장한 일입니다. 몸이 아프고 돈을 잃어버려도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여겨야 미래에 도움이 됩니다. 이미 지난 일을 붙잡고 집착을 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이미 일어난 일은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지혜입니다.

두 번째, 아기가 안 생기는 이유가 나와 남편의 신체에 이상이 있기 때문이라면 의학적으로 접근을 하면 됩니다. 신체에 이상이 없다면 아직 아이와 인연이 없는 거예요. 만약 임신이 안 되다가 아기가 생겨서 낳았어요. 그런데 다음 날 남편이 ‘나에게 지난 5년간 다른 여자가 있었다’라고 하는 겁니다. 이때 이혼하려고 하면 아기가 장애가 됩니다. 이혼을 하려고 하면 아기가 생기지 않은 게 불행 중 다행이라고 볼 수도 있어요. 이처럼 한 치 앞도 모르면서 무조건 본인이 원하는 대로 되는 것이 좋은 줄 알아요. 신체에 이상이 있어서 안 생긴다면 시험관 시술을 하면 되고, 아직 인연이 없는 거라면 어떤 재앙을 막아 주는 것일 수도 있어요. 이럴 때는 감사기도를 해야 합니다.

또, 내가 꼭 낳아야 내 아이가 아니라 내가 키우면 내 아이라 생각하고 입양하는 방법도 있어요. 무자식 상팔자라고 아기 없이 사는 방식도 있습니다. ‘아기를 갖지 않으려고 결혼을 안 하는 사람도 있는데 결혼도 했는데 아기가 안 생기니 이보다 더 좋은 복이 어디 있겠느냐’ 이렇게 긍정적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그러다 인연이 되면 저절로 아기가 생길 수도 있습니다. 헤어질 인연이거나, 좋지 않은 일이 도래할 때에는 아기가 안 생기는 게 큰 복입니다. 복을 재앙으로 잘못 생각하면 화를 자초하게 됩니다.

기도를 할 때는 내가 그 결과를 알 수 없어요. 만약 기독교인이라면 ‘아기가 생기게 해 주세요’라고 기도하는 것은 기독교인의 정신에 맞지 않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럴 때는 이렇게 기도해야 합니다.

‘주님! 뜻대로 하옵소서. 저는 어리석어 모릅니다. 전지전능하신 주님께서 알아서 해주소서.’

불교적으로 말하면 집착을 탁 놓아버려야 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아기에 대한 태도입니다. 그래도 아기를 꼭 키우고 싶다면 입양하면 돼요.”

“네, 잘 알았습니다.”

질문자의 호탕한 대답에 스님도 환하게 웃었습니다.

이 외에도 다음과 같은 질문이 있었습니다.

  • 21살 아들이 부모와 관계가 많이 안 좋습니다. 아이가 중2 때 남편이 매로 심하게 훈육을 해서 상처가 큽니다. 아이가 화가 나면 스스로 조절이 잘 안 되는데, 엄마인 저는 어떤 마음으로 아들을 대해야 할까요?
  • 저는 64세로 박사과정을 공부하고 있는 상담사입니다. 박사학위가 필요한 것 같기도 한데, 수행자로 전념하려면 이런 것이 다 무슨 소용인가 회의도 듭니다.
  • 법문 후 나누기 때문인지, 좋은 말씀을 놓치고 싶지 않은 욕심 때문인지 법문 중에 기록을 많이 합니다. 기록을 안 하면 기억이 안 나서 나누기할 때 할 말이 없기도 합니다. 이럴 땐 어떻게 해야 될까요?
  • 의과대학 정원 확대 및 공공 의대 신설 정책으로 지역에 의사가 부족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요?
  • 저는 운전을 부주의하게 합니다. ‘운전이라도 내 맘대로 하고 싶다’라는 마음이 강해서 잘 안 고쳐집니다. 지난달에 벤츠도 들이받았습니다. 제 마음대로 하려는 성질을 내려놓으려면 어떻게 수행해야 할까요?
  • 대학교 졸업 후 바로 취업했지만 금방 일에 싫증을 느껴 그만두고 소프트웨어 개발 분야에서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평생 이 일을 하려고 하니 마음이 답답하고 전에 하던 일을 계속하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왔다 갔다 하는 저에게 따끔한 조언 부탁드립니다.

답변을 모두 끝내고, 스님은 인생을 살다가 장애를 만났을 때 어떤 관점을 가져야 하는지 이야기하며 법회를 마쳤습니다.

인생의 장애를 만났을 때 세 가지 대처법

“자기의 처지를 긍정적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인생을 살면서 장애에 부딪힐 때 가져야 할 관점은 세 가지입니다. 첫째,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 연구하는 겁니다. 둘째, 몇 번 시도해 보고 잘 안 되면 포기라는 결단을 내리는 겁니다. 셋째, 적응을 하는 겁니다. 예를 들어, 술을 많이 마시는 남편이 있다면 ‘술을 마셔도 자기가 마시고, 괴로워도 자기가 괴롭지’ 하면서 그런 남편에게 내가 적응을 하는 길이 있습니다. 남편을 거꾸로 매달아서라도 그 성질을 고쳐서 같이 사는 방법도 있고요. 도저히 같이 못 살겠다 싶으면 ‘안녕히 계십시오’ 하고 포기하는 길도 있습니다.

이렇게 여러 가지 방법이 있어요. 인생에는 한 가지 방법만 있는 게 아니에요. 어떤 것이 좋다 나쁘다 말할 수 없습니다. 작은 장애면 극복하는 게 낫고, 큰 장애면 도망가는 게 낫고, 적당한 장애면 적응하는 게 낫습니다. 적절하게 선택하면서 살아가는 거예요.

하루하루 사는 게 재미있잖아요? 재미없는 게 뭐가 있어요? 맛있는 음식이 있어 재미있지, 일거리가 있어 재미있지, 사람을 만나서 재미있지, 질문을 해주는 여러분이 있어 재미있지, 이렇게 대답을 할 수 있어 재미있지, 안 재미있는 게 뭐가 있어요? (웃음)

멀뚱히 쳐다보는 것을 보니 ‘스님은 인생이 그렇게 재미있나?’ 하는 눈치이네요. 재미있다는 말은 기분이 좋다는 뜻이 아니에요. 괴로워할 일이 뭐 그렇게 있느냐는 겁니다.

저도 힘든 일은 많이 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손도 안 펴지고 허리도 펴지지 않아서 ‘아야!’ 소리가 저절로 나는 날도 많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조금만 지나면 다시 허리가 펴져요. 밤에는 신음을 하다가 다시 아침이 되면 일어나서 일을 하러 나가게 돼요. 온갖 일이 벌어지지만 그게 괴로워할 만한 일은 아니라는 겁니다.

관점을 이렇게 잡아야 인생살이가 자유롭지 늘 끙끙대면 힘들어서 어떻게 살아요? 자기 인생도 제대로 못 살아서 남한테 매번 부탁하면 어떡해요? 자기 고민은 스스로 해결해 버리고 남을 도우며 사는 사람이 수행자입니다.”

합장을 하며 인사를 한 후 생방송을 마쳤습니다. 시계는 밤 9시가 훌쩍 지나고 있었습니다.

내일은 새벽에 천일결사 기도 생방송을 한 후 농사일을 하고 저녁에는 봄 경전반 학생들을 대상으로 금강경에 대해 즉문즉설을 할 예정입니다.

전체댓글 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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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경희

긍정적~ 관점의 전환, 대범

2020-10-24 02:34:27

이원진

정토회란 자기변화와 사회변화를 이루기 위한 모임이다.
성불과 정토, 지혜와 자비,상구보리 하와중생 등 수행을 기본으로 하되 사회변화에 무게중심을 둬 두마리 토끼를 잡기위함이지만 자기 수행이 확실히 되면 사회문제에 눈이 떠지니 일과 수행의 동시성을 맛보게 되고 '정토를 일궈나가는 모임' 즉 정토^회^다.

이와같이 들었습니다.

2020-10-23 11:25:42

신혜정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스님의 원력에 울컥합니다.
스님, 피곤하고 힘들지만 괴로워할 일은 아니다라는 말씀에 격하게 공감됩니다.
확실하게 관점 정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2020-10-22 13:3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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