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0.8.26. 농사일, 수행법회, 정토회 역사편찬 회의
“다른 사람의 고통을 보고 위안을 삼아도 되나요?”

새벽에 일어나 명상을 하는 데 빗소리가 거셌습니다. 천일결사 기도를 마치고 우비를 입고 논으로 나갔습니다. 태풍 ‘바비’를 대비해 농사 담당 행자와 함께 논을 점검했습니다.

먼저 아랫논에 가서 논둑을 다져주었습니다.

아랫논을 점검하고 윗논으로 올라갔습니다. 스님은 논둑에 난 풀을 베며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풀을 베던 스님은 벼를 보고 한마디 했습니다.

“이장님 논보다 키가 훨씬 작네요.”

“태풍이 오면 큰 벼는 다 쓰러질 거예요. 태풍에는 작은 벼가 유리합니다.”

작년에 태풍이 왔을 때 크게 자란 벼는 다 쓰러졌습니다. 농사 담당 행자의 말에 스님은 웃으며 말했습니다.

“남의 불행 위에 행복을 쌓는 거예요? (웃음) 그러고 보면 좋은 게 좋은 게 아니고 나쁜 게 나쁜 게 아니에요.”

논을 한 바퀴 돌아 저수지에서 새어 나오는 물을 막아둔 둑으로 갔습니다. 평소에는 물이 아까워 둑으로 막아두었는데 비가 많이 오면 이 물까지 논으로 넘쳐흐르기 때문에 둑을 터주기로 했습니다.

어제 막아놓은 둑은 이미 허물어져 있었습니다.

“잘 됐네요.”

논을 다 돌아보고 비닐하우스로 갔습니다. 먹구름을 비집고 햇살이 새어 나오고 있었습니다.

비닐하우스에 도착한 스님은 전체를 한번 둘러보았습니다.

“이 토마토 보세요.”

주먹만 한 토마토가 달리던 줄기에 새끼손톱보다 작은 토마토가 빨갛게 익어있었습니다. 마지막 힘을 다해 토마토를 키우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비닐하우스를 둘러보고 난 후 구석구석에 자란 풀을 맸습니다.



오늘은 농사를 자문해주고 있는 유기농 농부 조계환 님이 비닐하우스를 방문했습니다. 스님은 몇 가지 질문을 했습니다.

“참깨는 비닐하우스보다 노지에 심는 게 잘 되나요?”

“보통 비닐하우스에서도 잘 자랍니다.”

“우리 참깨가 키만 크고 알맹이는 많이 안 달렸는데 왜 그럴까요?”

“비닐하우스에 물이 잘 안 빠져서인 것 같습니다. 내년에는 배수에 좀 더 신경 써야겠어요.”

“참깨 수확한 자리에 배추를 심어도 되지요?”

“네, 괜찮습니다.”

오늘은 수행 법회 생방송이 있어 평소보다 일찍 울력을 마쳤습니다. 비는 어느새 그쳤습니다.

오전 10시가 되자 스님은 생방송 카메라 앞에 앉았습니다. 오늘은 8월 마지막 수행법회 일입니다. 스님은 날씨 이야기와 함께 법문을 시작했습니다.

“기후 변화 때문인지 비도 많이 오고 기온도 무척 높습니다. 8월 상반기는 늦은 장마로 계속 습한 날씨가 이어졌고 중반기 넘어서는 불볕더위가 계속되면서 아주 심한 더위를 겪었습니다. 오늘도 아침에 농사일을 해보니까 땀이 엄청나게 났어요. 비가 오면 날이 조금 선선해지게 마련인데, 요즘은 비가 오는 가운데 오히려 더위가 계속되어서 꼭 인도의 우기 같은 느낌이에요. 어쩌면 이번 주에 태풍이 지나가면 더위가 한풀 꺾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지난주는 너무 더웠어요. 가을배추와 무를 심었는데, 무를 심으면 보통 3~4일째에는 싹이 트기 마련인데 이번에는 싹이 안 텄어요. 날씨가 너무 더워서 그런 것 같아요. 그래서 배추며 무를 심었던 자리에다가 다시 심는 일도 생겼습니다.” (웃음)

여섯 명이 화상으로 연결되어 스님과 대화를 했습니다. 그중 한 분은 상대의 고통을 보고 위안을 받을 때가 있는데 그래도 괜찮은지 질문했습니다.

상대의 고통을 보고 내가 위안을 받을 때가 있는데, 괜찮나요?

“집단 상담 프로그램에 참여한 적이 있습니다. 정토회의 나누기와 비슷한 형식이었는데, 제가 상대방의 이야기를 듣고 ‘누구누구 씨의 상황에 비추어 보면 저의 고민은 아무 것도 아니군요’라고 발언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랬더니 그 프로그램을 진행하시던 교수님이 ‘그런 발언은 집단의 심리적인 안정성을 깨뜨릴 수 있습니다. 상대의 이야기를 듣고 위안을 삼는 것은 상대와 본인 모두에게 위험한 방법입니다’라고 하시면서 제게 실망하시는 듯한 반응을 보이셨습니다. ‘상대적으로 다행이다’라고 위안을 삼는 것이 수행자로서 위험한 일인지 궁금합니다.”

“일시적으로는 도움이 돼요. 아침에 일어났을 때 ‘아이고, 오늘도 살았네!’ 이렇게 하루를 시작하라고 제가 그동안 법문을 많이 했잖아요. 이것은 상대적인 비교가 아니라 절대적인 비교입니다. 즉 생존에 대한 자각이지 남보다 못하거나 낫다는 개념이 아니에요.

‘살아 있다는 것만 해도 나는 만족한다’

이렇게 생각하면 이 세상에 고민할 게 하나도 없어져요. 욕을 얻어먹어도 살아 있으니까 얻어먹는 것이고, 한 대 맞아도 살아 있으니까 맞는 것이고, 병에 걸려도 살아 있으니까 병에 걸리는 것이잖아요. 죽었다면 병들 일도 없고, 욕 얻어먹을 일도 없고, 굶을 일도 없어요. 이렇게 딱 관점을 바로 잡아버리면 모든 고뇌가 사라져 버립니다. 그런데 제가 이렇게 법문을 할 때도 있잖아요.

‘즐겁고 괴로운 것은 상대적이다.’

예를 들어서 버스를 타고 가다가 전복 사고가 났다고 합시다. 정신을 차려보니 내 팔이 부러졌어요. 그런데 부러진 팔을 쥐고 주위를 돌아보니 다른 사람은 다 죽고 나만 살았어요. 그러면 우리는 ‘아이고, 부처님의 가피구나. 다행이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런데 똑같이 버스가 전복되는 사고가 나고 팔이 부러졌어도, 주위를 돌아보니 아무도 안 다치고 내 팔만 부러졌다면 어떨까요? ‘재수 없다!’ 이렇게 되잖아요.

재수 좋다, 재수 없다, 사실은 어떨까요?

이처럼 우리가 생각하고 말하는 재수 좋음과 재수 없음은 객관적인 게 아니에요. 늘 주변과 비교해서 일어나는 거예요. 그러니 재수 좋고 재수 없는 것은 믿을만한 게 못 됩니다. 무엇과 비교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니까요.

팔이 부러진 상황은 똑같은데 어떤 경우에는 ‘다행이다. 부처님의 가피다’라고 하고, 어떤 경우에는 ‘재수 없다. 나만 벌 받았다’ 이렇게 생각한다는 거예요. 양쪽 모두 팔 하나가 부러진 것뿐인데요. 이게 중생의 복과 재앙입니다.

아마 그 교수님은 이런 식으로 위안을 받는 것은 바람직한 방법이 아니라는 뜻에서 문제 제기를 하셨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그분에게 달리 특별한 기준이 있는지는 모르겠어요. 그러나 불교에서는 이런 이치에 따라서 이렇게 가르치는 겁니다.

‘어떤 상황이 벌어졌으면 그냥 상황이 벌어진 것일 뿐 그걸 갖고 재수 좋으니 재수 없느니, 좋으니 나쁘니, 옳으니 그르니 하지 마라’

팔이 부러졌으면 부처님의 가피라고도 하지 말고, 부처님을 안 믿어서 벌 받았다는 생각도 하지 말라는 거예요. 이건 상대적으로 일어난 생각일 뿐이니까요.

팔이 부러졌으면 그냥 부러진 것이니 병원에 가서 치료받으면 됩니다. 이걸 두고 재수가 좋으니 재수가 나쁘니 하지 말라는 거예요. 그러면 어떤 사건이 일어나도 마음이 널뛰기 하지 않고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어차피 한 생각 일으켰다면

그런데 마음의 평정심을 유지하지 못할 상황이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차선책도 있습니다. 어차피 마음을 일으킬 바에는 ‘재수 없다’라고 하는 것보다는 ‘재수 있다’라고 일으키는 게 낫습니다. 평정심을 유지하는 게 최선이지만, 마음을 일으키는 것을 피할 수 없다면 이왕이면 ‘재수가 좋다’, ‘가피를 입었다’ 이렇게 마음을 내는 게 낫다는 거예요.

예를 들어 대웅전에서 부처님께 삼배를 올리고 나와서 계단을 내려가다가 넘어져서 다리를 다쳤다고 합시다. 그럴 때 다친 다리를 부여잡고 ‘아이고, 부처님께 기도해도 소용이 없네!’ 이러면 자기에게 재앙이 생긴 것이 되고, 부처님도 원망하게 되잖아요. 그럴 때 이왕이면 마음을 다르게 가져보라는 거예요. 사실 부처님께 절하는 것과 계단에서 넘어진 것은 아무 관계가 없는 일입니다. 다쳤으면 그냥 치료를 하면 돼요. 그러나 이왕 마음이 일어나는 것을 어쩔 수 없다면 이렇게 마음을 일으키는 게 낫습니다.

‘아이고, 기도라도 했더니 그래도 한 다리만 부러지고 다른 다리는 안 부러졌네. 다행이다.’

마음을 이렇게 일으키는 것을 ‘긍정적’이라고 해요. ‘재수 없다!’ 이렇게 마음을 일으키는 것을 ‘부정적’이라고 합니다. 마음을 긍정적으로 일으키는 것은 나쁜 게 아니에요. 진리의 길은 애초에 이것을 좋고 나쁘게 보지 않는 것이에요.

그리고 어차피 한 생각을 일으켰으면 긍정적으로 일으키라는 거예요. 이왕에 마음을 일으킨다면 긍정적인 마음을 갖는 편이 본인에게도 좋다는 거죠.

수행의 목표는 평정심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그런 목표를 가지고 나아가되 평정심을 잃었다면 재빨리 긍정적으로 마음을 돌리는 게 낫습니다. 그런데 우리들이 일으키는 마음의 90퍼센트는 부정적으로 돌아가도록 되어 있어요. 우리의 까르마(습관)가 그렇게 형성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사회문화적인 환경도 부정적인 심리가 작동되기가 쉽게 되어 있습니다. 부모 세대나 사회 전체가 어떤 일이 생기면 늘 부정적으로 보기 때문에 우리도 어릴 때부터 보고 들으면서 그런 습관이 들어 있는 거예요. 그래서 이걸 긍정적으로 돌리려면 의식적으로 연습을 해야 합니다.

천당과 지옥을 벗어난 해탈의 길

꿈으로 비유해 볼게요. 꿈은 안 꾸는 게 제일 좋아요. 그런데 꿈을 꾸는 상황이라면 이왕 꿀 바에야 악몽을 꾸는 것보다는 좋은 꿈을 꾸는 게 낫겠죠. 그러나 수행적 관점은 ‘그것이 설령 좋은 꿈이라 하더라도 안 꾸는 것보다는 못하다’ 이렇게 보는 거예요. 설령 그게 좋은 일이라 하더라도 좋다거나 싫다거나 하는 마음을 애초에 안 내는 것보다는 못한 거죠.

세상 사람들은 천당과 지옥만을 말하지만, 부처님은 ‘천당과 지옥을 벗어난 해탈의 길이 있다’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천당에 가는 것을 좋아하고, 지옥에 가는 것을 싫어합니다. 그러나 수행의 관점에서는 지옥에 안 가고 천당에 갔다고 좋아할 게 아닙니다. 천당 역시 불안정한 세계로 보기 때문에 거기서 벗어나야 한다는 관점을 갖고 있습니다. 이해가 됐어요?”

“네, 잘 알았습니다.” (모두 웃음)

질문자는 환하게 웃으며 스님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이 외에도 다음과 같은 질문이 있었습니다.

  • 매일 술 마시고 가족들에게 폭행을 하는 남편에게도 참회의 절을 해야 할까요? 상대방에게 잘못이 있는 게 분명한 경우에도 나를 돌아보라고 하는 이유는 상대가 갑자기 죽었을 경우 나 자신은 최선을 다했다는 홀가분함을 얻기 위해서인가요?
  • 얽매이는 게 싫다면서 불교대학 입학을 거절하는 지인에게는 어떻게 안내를 하면 좋을까요?
  • 크리스천 신자인지만 한 줄의 법문을 읽고 정토행자가 된 지 10여 년이 되었습니다. 기독교인들과 진리를 논할 때면 소통에 장애가 생깁니다. 종교가 다른 사람과 어떻게 소통해야 하나요?
  • 8.15 기념식에서 광복회장은 이승만 전 대통령, 애국가 작곡가인 안익태 선생, 친일 행적이 있는 백선엽 장군의 파묘 등의 친일청산을 제기했습니다. 다른 한 편에서는 건국 역사를 부정하는 무도한 발언이라며 즉각 사퇴할 것을 주장하며 강력히 반발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사회적 합의를 이루어낼 수 있을까요?
  • 미국에서도 한국처럼 행복학교를 여는 것이 가능한지 궁금합니다. 외국인 전법도 행복학교를 열어서 진행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답변을 마친 후 스님은 온라인 불교대학을 홍보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지금 온라인 불교대학 신입생을 모집하고 있는 것에 대해 다들 알고 계시죠? 이번 불교대학은 온라인으로 수강할 수 있다는 게 좋은 점이에요. 온라인으로 들을 수 있다고 하자 해외에서 불교대학에 신청하는 사람이 굉장히 많아졌습니다. 옛날에는 전체 인원의 5퍼센트도 안 되었는데, 지금은 15퍼센트 정도가 신청했습니다. 그런데 국내는 생각보다 입학 신청이 좀 적네요. 앞으로 5일만 지나면 신청 마감이 됩니다. 오늘 수행 법회를 들으시는 분들은 모두 정회원이니까 모든 분들이 주변에 최대한 연락해서 온라인 불교대학에 입학할 수 있도록 권유해 주시기 바랍니다.

코로나 시대를 맞아 밖에도 자유롭게 나가지 못하는 이 답답한 시기에 오히려 집에서 이 좋은 불교 공부를 할 수 있다는 것은 많은 사람들에게 굉장히 좋은 경험이 될 겁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이걸 몰라서 신청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으니까 최선을 다해서 주변에 알립시다. 신청을 하고 안 하고는 그분들의 선택이에요. 그러나 최선을 다해서 알리는 것은 우리의 몫입니다.”

카메라를 향해 합장으로 인사를 한 후 생방송을 마쳤습니다.

수행법회 후 공지사항에는 온라인 불교대학 홍보 영상이 상영됨과 동시에 입학 신청 마감이 5일 남았다는 내용이 강조되었습니다. 전국의 정토회 정회원들은 모둠별로 온라인 홍보 활동을 적극적으로 하기로 했습니다.


법문이 끝나고 백중 천도재와 나누기까지 마친 후 12시부터 정토회 역사 편찬 회의를 시작했습니다.

어제 회의에서 정토회의 역사를 연도별로 기록해 놓은 사료편찬특위의 자료를 읽고 그 내용이 정확한지 파악한 후 질문 거리를 각자 준비해 오기로 했습니다. 오늘은 각자 준비해 온 내용을 발표했습니다. 역사를 어떻게 정리하면 좋을지 여러 가지 제안도 이야기했습니다.

사료편찬특위에서 제기한 1988년부터 2021년까지 33년의 역사를 어떻게 구분할 것인지에 대한 토론도 있었습니다. 1차부터 10차까지 천일결사 단위로 구분할 것인지, 준비기, 모색기, 도약기, 확산기로 구분할 것인지, 다양한 의견이 제기되었습니다. 법사님들은 특히 분기점이 되었던 사건들을 많이 언급했습니다.

스님은 법사님들의 이야기를 경청한 후 사회운동 측면에서도 분기점이 있었다고 강조했습니다.

“정토회 역사를 돌아보면 분기점이 많이 있었습니다. 정토회 내부의 조직 개편뿐만 아니라 사회운동 측면에서 돌아봤을 때도 몇 가지 분기점이 있었던 것 같아요. 특히 1997년에 북한동포 돕기 100만 인 서명운동을 한 것은 통일운동의 역사에 큰 분기점이 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2004년에 천성산에 터널이 뚫리는 것을 막기 위해 지율 스님이 무기한 단식을 할 때 정부와 타협안을 이끌어낸 것도 사회적으로 굉장히 큰 역할을 했던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2005년에 빈그릇 100만 인 서명운동을 한 것도 사회적으로 큰 영향을 주었고요.

2012년에 희망세상 만들기라는 이름으로 전국의 모든 시군구에 300회 강연을 하고, 청춘콘서트를 전국적으로 순회하며 연 것도 사회적으로 굉장히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었죠. 2017년에 전쟁을 막기 위해 한반도 평화대회를 광화문 광장에서 한 것도 아주 큰 일이었습니다. 이런 것들도 고려해서 지난 역사를 정리하는 것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저녁 8시가 되어 회의를 마쳤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다시 확산되면서 중요한 고비를 지나고 있는데요. 스님은 법사단에게 가능한 지역 간 이동을 최소화하면 좋겠다고 당부했습니다.

내일은 농사일을 하고 전국 정토회 총무들을 위한 온라인 즉문즉설을 진행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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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댓글 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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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숙여래심

남의 불행에 저의 행복을 얹지 않겠습니다

2020-09-17 20:29:24

권민영

잘되면 내탓 못되면 조상탓 이런맘으로
원망과 슬픔속에 살아가는 우리중생들
전 법륜스님 말씀처럼 누구탓도아닌
내가올바르게 누구탓도아닌 감사드리는마음
으로 살아가겠습니다 좋아서날뛰지도않고
슬퍼서 좌절하지도 않겠습니다 감사드립니다

2020-09-12 13:34:14

차나무

오늘도 정토세상을 위해 함께 합니다.

2020-08-31 09:2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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