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0.7.27 농사일, 공동체 안거 공청회
“미래를 준비하기 위한 여덟 가지 주제”

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농사일을 하고 저녁에는 공동체 수행대중과 함께 공청회를 가졌습니다.

스님은 천일결사 기도를 마치자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연장 가방을 메고 산 윗밭으로 올라갔습니다. 물기를 머금은 구름이 하늘 전체를 감싸고 있어 날이 선선했습니다.

문경에서 4박 5일간 명상수련을 하는 동안 두북에도 연일 비가 내렸습니다. 땅에 스며든 빗물은 밭에 있는 모든 것들을 쑥쑥 키워놓았습니다.

윗밭에 가지는 두 줄로 세워주었습니다. 줄기마다 주렁주렁 달린 가지의 무게를 이기지 못했는지, 비바람을 견디지 못했는지 가지 줄기는 서로를 향해 쓰러져 한 줄이 되어 있었습니다. 이런 일에 대비해 가지 사이사이 미리 지주를 세우고 줄을 쳤지만 버티기가 어려웠나 봅니다.

“오늘은 가지 줄기를 세워주고 큰 가지만 땁시다.”

망치로 지주를 조금 더 단단히 박고 줄을 한 줄 더 쳐서 가지 포기를 세워주었습니다. 그래도 가지가 일어서지 못하는 곳에는 지주를 하나 더 세워주었습니다.




차근차근 밭 입구에서부터 끝까지 줄을 쳤습니다.


그리고 낫으로 줄을 짧게 잘라서 줄기와 새로 친 줄 사이사이를 묶어 고정시켜주었습니다.


가지를 다 세워주고 다 큰 가지를 땄습니다.



무엇 하나 그냥 주어지는 것이 없습니다. 심기만 하면 끝나는 것도 없습니다. 자연과 사람의 수많은 손길로 잘 자란 보랏빛 가지가 무척 귀하게 느껴집니다.

가지를 수확하고 나자 발우공양시간이 가까워 오고 있었습니다.

“아랫밭에도 가지를 세워주어야 하는데 시간이 빠듯하겠죠?”

“스님, 할 수 있습니다.”

스님이 망설이자 행자들이 흔쾌히 나섰습니다. 재빨리 트럭에 가지를 싣고 아랫밭으로 향했습니다.

아랫밭에는 가지를 조금만 심기도 했고, 어제 스님이 임시로 가지를 세워뒀기 때문에 일이 한결 수월했습니다.



다 큰 오이도 땄습니다.

발우공양이 시작되기 전에 일을 마치고 먹거리를 가득 실어 수련원으로 돌아왔습니다.

두북 수련원에서는 안거를 시작한 공동체 수행 대중의 분과별 활동이 오후 내내 진행되었습니다. 오늘은 분과 활동 첫날이라 지난 100일 동안 두북특별위원회에서 논의했던 내용들을 각자 읽어보고 검토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내용이 워낙 방대해서 자료를 읽기만 하는 데에도 세 시간 이상 걸렸습니다.

자료 검토 시간을 마친 후 오후 5시부터 스님과 함께하는 공청회를 시작했습니다. 스님은 공동체 수행 대중에게 반갑게 인사를 건넸습니다.

“정일사 수련은 잘하셨습니까?”

“예.”

이틀 동안의 정일사 수련 덕분인지 모두들 한층 밝아진 얼굴로 대답했습니다.

이어서 스님은 지난 100일 동안 두북특별위원회에서 논의한 내용을 간략히 공유해 주었습니다.

“공동체 법사단은 코로나 사태 덕분에 백일 동안 이곳 두북 수련원에서 같이 밥 먹고 농사짓고 공부하고 토론하며 지냈습니다. 행자 생활 이후 거의 30년 만에 이렇게 오랫동안 함께 지낸 적은 없었던 것 같아요. 안 돌아가는 머리를 너무 많이 돌려서 열을 받았는지 아픈 사람도 생겨나고 있어요. (웃음)

정토회의 미래 비전을 만들기 위한 여덟 가지 주제

아직 최종 결론은 안 났지만 어느 정도 윤곽은 잡혔기 때문에 이번 안거 기간에는 단순한 공유 차원이 아니라 여러분도 적극적으로 의견을 말하고 대화하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두북특별위원회에서 연구한 내용은 크게 여덟 가지 주제입니다.

첫째, 그동안 정토회에서 진행해 온 많은 사업들을 온라인으로 전환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그에 따른 대의 민주주의는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주제입니다.

둘째, 본부 개원 기념법회를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주제입니다. 이 주제는 꼭 건물을 개원한다는 의미만 있는 게 아닌 것 같아요. 법사님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스님이 죽기 전에 갖고 있는 모든 걸 다 내놓고 죽어라’ 이런 심리가 좀 있는 것 같아요. (모두 웃음)

개원 기념법회는 크게 두 가지 방향을 두고 논쟁이 좀 있습니다. 미래 30년을 담보할 내용을 마련하는 것에 집중하자는 제안과 과거 30년 동안 못다 이룬 목표를 이번 기회에 달성해내는 것에 집중하자는 제안이 양립해서 논의가 진행되고 있는 중입니다. 여기서 핵심 연구 주제는 불교대학과 경전반, 사회사상 강의의 내용입니다. 사회사상 강의에도 논쟁이 좀 있는데, 불교적 관점에서 인공지능, 낙태 등 사회문제를 어떻게 볼 것인가를 다룰지, 불교적 관점을 빼고 그냥 사회 문제를 어떻게 볼 것인가를 다룰지 하는 문제입니다.

무엇보다 개원 기념법회를 계기로 정토회의 모든 정회원이 백일 출가를 한다는 마음으로 자신의 집을 법당으로 만들어서 온라인 강의를 통해 100일 동안 함께 정진해보자는 제안이 올라와 있는 상태입니다.

셋째, 정토 대전을 어떻게 편찬할 것인가 하는 주제입니다. 정토 대전 편찬은 제1차 천일결사를 시작할 때부터 10대 과제로 삼았지만 지금까지 아무런 진척이 없는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코로나 사태가 일어난 덕분에 이번 10차 천일결사가 끝나기 전에 드디어 정토 대전을 완성시켜 볼 수 있겠다는 희망이 생겼어요. 정토회는 종교로서의 불교나 철학으로서의 불교가 아니라 수행으로서의 불교를 실현하고자 하는데, 이 관점에 가장 부합하는 경전을 편집해 보자는 취지입니다. 경전이 너무 많다 보니까 이 책만 읽으면 수행 관점을 바로 잡을 수 있게 하려고 하고, 특별히 해석을 안 해도 핵심 내용을 파악할 수 있게 하려고 해요.

정토 대전은 경전 모음집, 불교사상집, 사회사상집, 불교의식집, 깨달음의 글모음, 이렇게 총 5권을 만들려고 기획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정회원이면 누구나 필요한 내용을 정토 대전에서 다 찾을 수 있게 하려고 해요. 원래는 정토 대전을 먼저 만들어놓고 1차 만일결사를 시작했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만큼 정토 대전 편찬 작업은 방대하고 어려운 작업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온라인, 개원 기념법회, 정토 대전, 세 가지가 가장 큰 주제입니다. 가장 어려운 작업은 정토 대전입니다.

넷째, 앞으로 불사를 어떤 원칙과 방향성을 갖고 해 나갈 것인가 하는 주제입니다.

다섯째, 정회원의 입문과정부터 서원 행자, 법사가 되는 모든 교육 연수 체계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 하는 주제입니다.

여섯째, 공동체에 들어와서 사는 수행 대중의 생활을 어떤 식으로 만들어갈 것인가 하는 주제입니다.

일곱째, 깨달음의 장과 나눔의 장, 일체의 장, 명상수련 등 정규 수련 프로그램을 어떻게 해나갈 것인가 하는 주제입니다. 특히 일체의 장은 ‘일과 수행의 통일’을 체험하는 프로그램인데, 아직 정비가 많이 되어 있지 않은 상황입니다. 여기에는 기존의 수련 프로그램을 좀 더 쉽게 접근할 수 있게 하는 문제와 더 깊이 있게 체험하게 하는 문제뿐만 아니라 전혀 다른 새로운 수련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문제도 함께 포함되어 있습니다.

여덟째, 지난 30년의 정토회 역사를 어떻게 정리할 것인가 하는 주제입니다. 정토회의 역사에는 크게 세 가지가 있습니다. 정토회가 공식적으로 출발하기 전의 역사인 전사(前史)와 공식적으로 출범하고 나서 지금까지의 역사인 총사(叢史), 정토회에서 뻗어나간 줄기에 해당하는 각 단위 사업의 역사인 소사(小史)가 있습니다.

그중에 오늘 대화는 정토 대전과 사료편찬을 중심으로 진행해 보겠습니다. 전체적인 내용이 대략으로라도 이해는 되십니까?”

“네.”

여기까지 설명을 들은 후 본격적인 토론에 들어갔습니다. 사전 질의서에 이미 많은 질문과 제안이 올라와 있었습니다. 차례대로 한 명씩 손을 들고 질문 또는 제안을 말했습니다.

그중에는 정토 대전의 내용과 관련해서 정토회의 활동을 불교 역사 속에서 어떻게 평가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이 있었습니다. 이에 대해 스님은 불교 역사 속에서 대승불교와 선불교의 사례를 언급하며 혁신과 혁명의 차이를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불교 역사 속에서 혁명이라고 볼 수 있는 사례

“불교 역사 속에서 대승불교는 혁명적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소승불교에서는 부처님의 말씀을 재해석한 것을 ‘논장’이라고 불렀어요. 그런데 대승불교는 그 시대에 맞는 새로운 경전을 세상에 내어놓으면서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라고 주장했습니다. 소승불교 입장에서 볼 때는 부처님께서 그런 말씀을 하신 적이 없다면서 대승불교를 비불설이라고 치부했습니다. 그러나 대승불교는 그 시대에 맞게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주장한 겁니다. 그 결과 엄청난 논쟁이 붙었습니다. 기존 불교의 승려들이 볼 때는 대승불교의 주장이 말도 안 되는 소리로 여겨질 수 있었지만, 일반 대중이 보기에는 어땠을까요?”

“대승불교가 훨씬 더 쉬워 보였을 것 같아요.”

“대중이 보기에는 대승불교가 훨씬 더 쉽게 다가왔기 때문에 역사 속에서는 대승불교가 더 많은 대중의 지지를 받게 됩니다. 특히 불교가 인도에서 중국으로 넘어왔을 때는 대승불교가 훨씬 더 고차원적으로 보였습니다. 인도 문화권이 아닌 지역으로 불교가 전해졌을 때는 소승불교의 경우 부처님의 가르침을 그대로 움켜쥐고 있으니까 다른 문화권에서는 대중이 받아들이기 어려웠는데, 대승불교의 경우 ‘만약 부처님이 이 시대에 이 지역에 다시 오시면 어떻게 말씀하셨을까’ 하는 관점을 갖고 있으니까 그 지역에 광범위하게 자리를 잡을 수 있었습니다.

많은 시간이 흘러 대승불교의 한계를 딛고 선(禪)이 일어났을 때도 마찬가지 과정을 겪었습니다. 대승불교는 과거 생에서부터 수없는 수행 정진을 통해서 해탈을 해야 하고, 수많은 경전을 공부해야 한다고 가르치는데, 선불교는 ‘직지인심 견성성불(直指人心見性成佛)’, ‘불립문자(不立文字)’이런 가르침을 펼쳤습니다. 문자로서 진리를 증명할 수 없으며 경전을 공부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자신의 지금 마음을 바로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하니까 기존의 불교에서는 이런 주장을 용납할 수가 없었던 겁니다. 그러나 당나라에서 송나라로 넘어오면서는 선(禪)이 널리 전파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중국에서는 선(禪)이 완전히 주류가 되지는 못했습니다. 신라 말에 한국으로 전래된 선(禪)은 고려시대를 거쳐 조선 시대로 넘어와서 불교가 정부의 탄압을 받게 되면서 주류가 되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조선왕조가 불교를 탄압해서 승려를 못하게 하고 절을 불 질러 버리니까 교종은 일시에 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선(禪)은 마음 하나 갖고 공부하는 가르침이니까 정부의 탄압에 영향을 적게 받을 수 있었던 거예요. 결국 왕조의 탄압 덕분에 선(禪)이 주류로 성장할 수 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혁신을 할 것인가, 혁명을 할 것인가

그럼 정토회는 이런 불교의 역사 속에서 어떤 위치에 자리매김할 수 있을까요? 이 질문은 정토회가 대승불교, 선불교에 이어서 실천불교라는 제3의 혁명적 영역으로 자리매김할 것인가, 선불교의 본래 정신을 계승한 하나의 영역으로 자리매김할 것인가의 문제라고 볼 수 있습니다. 즉, 혁신을 할 것인지 혁명을 할 것인지의 문제입니다. 어떤 방향을 잡느냐에 따라서 정토 대전의 편집 방향은 완전히 달라진다고 볼 수 있습니다.

현재 제안된 정토 대전의 기획 초안은 모두 혁신안에 해당한다고 보시면 됩니다. 혁명 안은 지금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로서는 논할 수가 없어요. 역사가 어느 정도 흐른 후에 우리의 후손들에 의해서 ‘이것이야말로 부처님의 본래 가르침이다’ 하는 대중의 지지를 받게 되면, 그때서야 후대 사람들에 의해서 평가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해 정말로 혁명에 해당하는지 여부는 우리가 다 죽고 나서 역사적으로 살펴봤을 때 재평가되어야 할 일입니다.

그러니 너무 욕심을 내지 마세요. 혁신안을 열심히 만들면 됩니다. 편집을 한다는 것 자체가 혁신 안이라는 것을 뜻해요. 혁명 안은 편집을 한다는 것 자체가 필요 없습니다. 가령 즉문즉설의 경우 인간의 고뇌를 단도직입으로 해결하는 것이니까 따로 해석할 필요가 없거든요. 불교 의식의 경우에도 한문을 한글로 바꾸는 건 개선안에 해당하는 것이고, 혁명적이 되려면 관점을 완전히 달리해야 합니다. ‘과연 지금과 같은 종교의식이 필요한가?’ 이런 정도의 문제의식을 가져야 혁명적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불교의 역사를 공부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부처님의 가르침이 각 시대마다 어떻게 새롭게 재현되어 왔는지를 알아야 우리도 앞으로 어떤 관점을 가져야 하는지를 배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스님들도 좋은 차 타고 좋은 집에 사는데, 왜 스님도 아닌 우리한테 자꾸 검소하게 살라고 하느냐?’

여러분이 자꾸 이런 의문을 갖는다면 그건 혁명은커녕 혁신도 안 되는 겁니다.

‘남이 무엇을 하든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가 어떻게 살 것인가?’

혁명을 하려면 이런 관점에 서야 합니다. 부처님은 기존의 바라문교에 대해 혁신을 한 게 아니라 혁명을 하셨습니다. 혈통에 의해 브라만 계급만이 정신적 지도자가 될 수 있는데, 혈통과 신분에 관계없이 누구나 다 해탈과 열반의 길을 갈 수 있다는 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길을 가기 위해서는 ‘출가’라고 하는 모든 것을 다 내려놓는 자신의 결단이 필요했습니다.”

정토 대전을 새로 만든다는 것은 결코 만만치 않은 일임을 공감하면서 다음 질문으로 넘어갔습니다. 3시간 동안 많은 질문과 제안이 있었습니다.

  • 불교사상서가 삼법인, 사섭법 등에 대한 개념 정리보다는 스님이 그동안 해오신 즉문즉설처럼 우리가 실제로 생활에서 맞닥뜨리는 이슈에 어떻게 적용되는지 그 사례를 중심으로 해석이 들어가면 좋겠습니다.
  • 사회 실천 부분에서 부처님과 승가가 살았던 생명 존중의 삶의 방식을 자세하게 다루면서 기후 변화 시대에 환경 실천 부분을 더 강조해보면 좋겠습니다.
  • 부처님이 사회적 갈등을 해결했던 사례와 오늘날 정토회가 해왔던 사회 운동을 비교하면서 미래의 사회 운동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이끌어내 보면 어떨까요?
  • 호국 호법의 정신과 비폭력 정신이 충돌하는 부분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 미래 문명의 대안으로 수행 공동체가 갖는 비전을 제시해 보면 어떨까요?
  • 코로나 사태로 인해 서구의 자유 민주주의가 갖는 한계가 드러났습니다. 자유 민주주의의 한계를 극복한 새로운 대안을 제시해보면 좋겠습니다.
  • 단순히 과거의 사회 실천 활동을 정리하는 것에 그치지 말고, 미래 사회에 예상되는 사회 문제들에 대해 대안을 제시하는 내용도 함께 들어가면 좋겠습니다.

...

스님은 모든 질문에 대해 답변을 한 후 공청회를 마쳤습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이야기합시다. 장시간 토론하느라 수고하셨어요.”

공동체 수행 대중은 삼배로 스님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저녁 8시에 예불을 한 후 조별로 모여 오늘 하루를 보내며 자신이 알아차린 마음을 함께 나누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청소하며, 밥 먹으며, 토론하며, 시시 때대로 일어났던 다양한 마음을 서로 나눈 후 오늘 일정을 마쳤습니다.

내일 스님은 서울에 다녀올 예정입니다. 오랜 시간 JTS를 꾸준히 후원해 주셨던 비구니 노 스님의 49재에 참석한 후 평화재단을 찾아온 손님들과 미팅을 연이어 갖고 밤늦게 두북 수련원으로 돌아올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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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각

사회변화에 따라서 불교도 많이 달라졌는데, 거기에 맞게 정토회도 꾸준히 하면서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는 길로 가면 되지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감사합니다 스님

2020-08-03 13:41:16

무승화

정토회의 미래를 위한 8가지 여덟가지 주제, 깊이 성찰하는 기회가 될 거 같습니다. 그 안에서 나의 수행이 이루어지니까요. 감사드립니다.

2020-07-31 23:45:21

실상

붓다의 길은 혁명적이었습니다. 그 말씀이 진리였기에 장구한 세월에도 사람들을 살리고 행복하게하는것이겠지요. 이 바른법을 알아서 세상에 휘둘리지않고 살게 되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그리고 그 법의 길에서 헤매이지 않도록 등불이되어주시는 스승님 감사합니다.

2020-07-31 08: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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