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0.6.27 종교인 모임 통영 방문 2일째
"일본이 조선을 정벌하지 못한 세 가지 이유"

안녕하세요. 오늘은 민족의 화해와 평화를 위한 종교인 모임이 통영을 방문한 지 이틀째 되는 날입니다.

어제 늦게까지 종교인분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늦게 잠든 스님은 4시에 일어났습니다. 오늘은 천일결사 기도 생방송이 있는 날입니다.

천일결사 기도 생방송은 코로나19로 인해 법당에 나오지 못하는 정토행자들의 수행을 격려하기 위해 시작했습니다. 무엇이든 한번 시작하면 꾸준히 하는 스님이기도 하지만, 코로나19사태가 아직 종결되지 않았기 때문에 매주 토요일 정기 방송이 되었습니다. 오늘은 카메라 한 대를 설치하고 5시에 방송을 시작했습니다.

“안녕하세요. 오늘은 6월 27일, 제10차 천일결사 정진 111일째입니다. 저는 오늘 종교인 모임을 위해 통영에 와있습니다. 장소가 법당이 아니라서 예불은 하지 않고, 아침 기도만 같이 하도록 하겠습니다.”


한 시간 동안 108배와 명상, 경전 독송 등 기도를 마치고 법문을 시작했습니다.

“기도 잘하셨습니까? 오늘은 제가 외출 중이어서 카메라 하나만 가져와서 세워 놓고 방송을 했습니다. 그렇지만 장소가 어디든 때가 언제든 정진할 시간이 되면 정진하는 자세가 가장 중요합니다.

저는 종교인모임에 참석하고자 어제부터 통영에 와 있습니다. 종교인 모임은 개신교, 천주교, 불교, 원불교, 천도교의 원로들과 함께 지난 20여 년 동안 매달 한 번씩 모임을 가져왔습니다.

모임에 참석하시는 분들 중 연세가 많으신 분은 84세이시고, 제가 비교적 나이가 적은 편에 들어갑니다. 누구를 대표라고 할 것도 없이 모두가 민족의 화해와 평화를 주제로 모임을 유지해왔습니다. 이번 모임은 이틀에 걸쳐 일정이 잡히는 바람에 어르신들과 같이 머무르는 숙소에서 저 혼자 일찍 일어나서 새벽 기도를 하고 지금 여러분을 뵙고 있습니다.” (웃음)

오늘 독송한 경전에는 부처님이 악마의 권청을 받고 유수행(수명을 연장하는 수행)을 그만두겠다고 말하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대중이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어서 스님은 왜 그렇게 기록이 되었는지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부처님이 열반하시고 500년이 지난 후 사람들은 부처님을 생각하면서 ‘깨달으면 영원히 살 수 있다’라고 받아들인 것 같아요. 조금만 생각해 보면 이는 부처님의 가르침과 어긋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부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은 덧없다, 부지런히 정진하라.’

부처님 가르침의 핵심은 모든 것이 무상하다는 것입니다. 깨달으면 죽지 않는 것이 아니에요. 죽음 앞에서도 아무런 두려움이 없는 것이 열반의 경지입니다.

사람은 무언가 모를 때 두려움을 느낍니다. 모르는 사람을 만날 때, 모르는 장소에 갈 때, 모르는 일을 할 때, 주변이 어두워서 뭐가 있는지 알지 못할 때 마음속에 두려움이 생깁니다. 모르는 상태에서 벗어나면 두려운 마음이 사라집니다.

우리가 가장 모르는 것, 죽음

우리가 모르는 것 중 가장 모르는 것은 바로 죽음입니다. 사람들은 죽고 난 후에 대해 관심이 많지만 죽음 이후는 아무도 모르는 영역입니다. 죽은 뒤에 어떻게 된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그것을 증명할 방법은 없어요. 그래서 가장 완벽한 사기는 바로 죽은 뒤에 어떻게 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거짓임을 증명할 길이 없기 때문이에요. 죽음은 사람들로 하여금 두려움을 불러일으킵니다. 그런데 사실 죽음 자체가 두려운 것이 아니라 죽음에 대해 모르기 때문에 두려움이 생기는 것입니다.

이 두려움을 극복하고자 사람들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여러 아이디어를 내놓았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죽은 뒤에 더 좋은 세상, 천국에 간다는 생각이에요. 비록 이 세상에서는 괴롭고 힘들었지만 죽은 뒤 천국에 가면 영원히 괴로움 없이 산다고 믿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죽음이 더 이상 두렵지 않잖아요. 두려운 마음을 극복해보려고 하다 보니 죽은 뒤 저 세상은 좋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겁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에 의하면 남을 돕고 남을 즐겁게 하면 우선 내가 좋습니다. 반대로 남에게 손해 끼치거나 남을 괴롭히면 내가 괴롭습니다. 그런데 반대로 행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옛날부터 사람들이 죽고 난 다음 세상에 대해 궁금해하니까 그것을 동기 삼아서 죽은 뒤에 좋은 세상에 가려면 살아서 좋을 일은 많이 해야 한다고 말을 했습니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나듯이 살아있을 때 좋을 일을 많이 하면 죽어서 좋은 세상에 가게 되고, 살아서 나쁜 일을 많이 하면 죽은 뒤에 나쁜 세상에 가게 된다고 생각했어요. 그러한 생각은 결과적으로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도 가능하면 좋은 일을 많이 하고, 나쁜 일은 적게 하도록 인도했습니다.

인도 사람들은 죽은 뒤에 다시 태어난다는 ‘윤회’를 생각해냈어요. 이건 이 세상에 다시 태어나니까 저 세상에 가는 것보다 더 좋습니다. 마치 헌 옷을 벗고 새 옷을 입듯이 이 세상에 다시 오는 것이니까 죽음에 대해 두려움이 없어져요. 하지만 이 발상도 애초에 죽음이 두렵기 때문에 그 두려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떠올린 생각입니다.

우리는 천국이니 윤회니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그것이 사실인가, 아닌가에 초점을 맞춥니다. 하지만 사실인지 아닌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렇게 믿고 살아가면 본인에게도 죽는 사람에게도 두려움이 줄어드니까 이익이고, 죽는 이를 보는 주변 사람들에게도 이익입니다.

죽음은 삶의 한 과정

그러나 부처님의 접근방식은 달랐습니다. 죽음은 삶의 한 과정이라고 보셨습니다. 얼음이 물이 되고, 물이 다시 얼음이 되듯이 삶과 죽음은 그저 하나의 변화과정입니다. 자연생태계에서 봐도 우리의 삶은 이렇습니다. 부처님은 이를 ‘인연이 이루어지고 유지되고 흩어지고 사라진다’고 표현하셨습니다. 그래서 우주는 성주괴공(成住壞空)하고, 인생은 생로병사(生老病死)하고, 우리의 마음은 생주이멸(生住異滅)한다고 하셨습니다. 이는 세상 모든 것이 이루어지고, 머무르고, 흩어지고, 사라지는 과정을 반복하는 걸 말합니다. 물질의 세계나 생명의 세계에 불법을 적용해보면 진실이자 과학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진실을 알지 못하고, 어떤 환상에 사로잡혀서 영원히 살겠다거나 변하지 않겠다는 헛된 생각을 해요. 이 세상 모든 것이 변하는 게 진실인데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니까 고통이 생기는 겁니다.

부처님께서는 이런 일이 일어나든 저런 일이 일어나든 일어날 만한 일이 일어나는 것이기 때문에 늘 여여(如如)하셨습니다. 그래서 부처님을 여래(如來)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부처님은 죽음 앞에서도 여여하셨어요. 열반경 마지막 부분을 보면 부처님은 죽음 직전에도 마치 잠드는 순간처럼 아무런 두려움 없이 여여하셨습니다.

그런데 경전을 기록한 인도 사람들은 육신이 영원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었나 봐요. 또 당시 성행했던 다양한 종교들이 구원을 받으면 육신을 그대로 갖고 승천한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기록하는 사람들도 ‘부처님은 왜 열반에 드셨는가?’, ‘깨달음을 얻었다면 영생해야 하지 않는가?’하는 생각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영원히 살 수 있었지만 악마의 권청에 의해서 유수행을 그만두셨다고 기록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동기가 어떠하든 이러한 이야기 속에서도 부처님의 말씀이 기록된 부분은 진리에 어긋나지 않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본인이 깨달음을 얻고 괴로움이 없는 경지에 이르렀을 뿐만 아니라, 이렇게 마음을 쓰면 누구나 다 괴로움이 없는 열반의 경지에 이를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에게 법을 설하셨습니다. ‘그들도 나처럼 괴로움 없는 경지에 이르렀으면 좋겠다’, ‘이 법을 믿고 이해하고 행동하고 체험하면 좋겠다’, ‘어떤 상황이 와도 의심이 들거나 흔들리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것이 부처님의 중생에 대한 간절한 원(願)이었습니다.

문자 그대로 해석하지 말고 뜻을 살펴보세요

그러니 글자에 너무 연연하지 마세요. 표현은 2천여 년 전 기록한 사람들의 사유방식이나 믿음이 반영된 것이니까 그 부분을 감안해야 합니다. 경전에는 당시 기록하는 사람의 사유와 믿음이 녹아있기 때문에 문자 그대로 해석하게 되면 내용을 오해하게 됩니다.

부처님의 제자라면 본인 스스로 이 법을 믿고, 이해하고, 실천하고, 체험해서 자기 것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이것을 ‘수행’이라고 해요. 또한 여기에 머무르지 말고 나아가 다른 사람들도 이 좋은 법을 믿도록, 이해할 수 있도록, 행하고 체험하도록, 그들의 이익을 위해 조리 있게 법을 설해야 합니다. 혹시라도 삿된 교설로 반론을 제기하거나 비판을 하면, 진리와 진실로 그것을 타파해야 합니다. 이것이 수행자가 가야 할 길입니다.

우리 정토회도 수행과 전법의 길로 나아가는 중입니다. 따라서 정토행자의 목표도 우선 내 인생이 자립되어야 하고, 두 번째는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이것이 수행자의 삶이에요. 이 길은 특별한 길이 아닙니다. 바로 2,600년 전 부처님께서 가신 길이고 역사 속에서 많은 대승보살들이 가신 길입니다. 다만 시간이 흐르면서 우리가 이 본질을 놓치고 세상을 헤매고 있기 때문에 다시 한번 이 길로 나아가자고 상기시켜주는 거예요. 이 길이 곧 나를 위하는 길이고, 세상을 위하는 길입니다. 이 길이 곧 사람을 위하는 길이고, 자연을 위하는 길입니다. 이러한 가르침이 경전 속에도 녹아있습니다.

오늘 경전을 읽으면서 다시 한번 발심을 하고 정진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하루도 행복한 수행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기도를 마치고 숙소를 정리하고 간단히 아침을 먹은 후 숙소를 나왔습니다. 오늘은 통영시의 후원으로 이순신 장군의 발자취를 따라 한산도와 세병관을 둘러보았습니다.

통영 역사기행

먼저 배를 타고 한산도로 향했습니다.


흔들리는 배 위에서 통영과 한산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금세 제승당 선착장에 도착했습니다.

배에서 내려 제승당까지 바다와 숲 사이로 난 길을 걸었습니다. 통영시에서 가장 해설을 잘한다는 문화해설사가 동행했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나무와 돌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게 되지요. 그런데 수학여행을 온 학생들과 함께 와보면 내리자마자 달려가기 바빠요.”

가장 나이가 많으신 김명혁 목사님이 가장 빠른 걸음으로 앞서 걷고 있었습니다.

“목사님은 이미 달려가셨네요.” (모두 웃음)

앞서간 목사님은 뒤돌아서서 일행이 웃는 모습을 사진 찍어주었습니다.

한산도 앞바다가 잘 내려다보이는 곳에 이순신 장군이 지은 한산도 시가 새겨진 바위가 있었습니다. 시를 함께 읽고 기념사진을 촬영했습니다.

초록 숲과 푸른 바다 사이에 난 길을 1km가량 걸으니 대첩문이 나왔습니다. 마스크를 낀 두 장졸이 지키고 있는 문을 지나 제승당 입구에 도착했습니다.

한산도 제승당은 이순신 함대의 사령부 역할을 했던 곳에 지어진 사당으로 승리를 만드는 집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이 곳에서 이순신 장군은 세계 4대 해전사에 빛나는 한산대첩을 이끌었습니다.

경내 입구인 충무문을 들어서니 오른쪽으로 아름다운 수루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습니다.

"한산섬 달 밝은 밤에 수루에 홀로 앉아
큰 칼 옆에 차고 깊은 시름하는 차에
어디서 일성호가는 남의 애를 끊나니."

한산섬 앞바다가 내다보이는 수루 위에 이순신 장군의 시가 걸려 있었습니다. 낮에는 적의 동태를 살피고 달밤에는 홀로 이곳에서 번민했을 이순신 장군의 모습이 그려졌습니다.

“이 시를 못 외우면 여기서 못 내려가십니다.”

"괜찮아요. 목사님은 시를 사진으로 찍어 가시면 돼요." (모두 웃음)

스님과 종교인 어르신들은 수루에 둘러앉아 이순신 장군에 대한 이야기를 꽃피웠습니다.

“지형과 조수간만을 활용한 대표적인 전쟁이 한산도 대첩이었죠.”

역사의 파도 속에 사라진 수많은 백성들

“말씀하신 것처럼 조선 수군의 최고의 전략은 지형지물을 이용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이순신 장군의 한산도 대첩을 무척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바로 그 점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놓치고 있어요.

이순신 장군은 경상도 통영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이순신 장군의 병사들도 전라 좌수영, 즉 여수에 있었던 병사들입니다. 거기에 있는 병사들은 통영의 지형지물을 제대로 알 수가 없지 않습니까. 그런데 어떻게 정확하게 알고 전술을 펼쳤을까요?

결국은 통영에 살던 어민들이 전투에 참여해서 알려주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은 이순신 장군만 기억하지 함께 했던 병사들이나 백성들의 고통은 잘 모릅니다.”

“맞아요. 우리 백성들이 정보를 안 주면 이길 수 없는 전투였죠.”

“역사의 수레바퀴를 이끌어가는 것은 위인들이지만 그 수레바퀴 밑에서 견인차 역할을 하는 것은 수많은 사람들이지요. 힘이 없는 듯 보여도 농사를 짓고, 고기를 잡고, 길쌈을 하고, 아이들을 키우는 백성들의 노력이 없다면 역사라는 큰 수레바퀴를 누가 끌어나가겠습니까. 풀이 바람에 쉽게 쓰러지는 것 같아도 바람이 지나가면 가장 먼저 일어나는 것은 풀입니다. 풀과 같은 백성들이 있었기에 역사가 있었지요.”

스님과 종교인분들은 역사의 파도 속에 소리 없이 사라진 수많은 백성들을 기억해냈습니다. 통영에 20여 년 넘게 살아온 최광수 교수님도 동행하며 역사적 설명을 보태주었습니다.

일본이 조선을 정벌하지 못한 세 가지 이유

“사실 임진왜란 당시 육지에서 전투력은 일본이 압도적이었습니다. 일본의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조선을 정벌하는데 한 달을 목표로 했지만 실패했죠. 그 이유에는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이유는 이순신 장군입니다. 일본군은 평양까지 올라갔지만, 이순신 장군이 식량 보급로를 끊어버렸기 때문에 결국은 후퇴를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일본군은 식량 보급로가 끊기리라고는 전혀 예측을 못했죠.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한산대첩에서 패한 후 일본군에게 이렇게 친서를 내립니다.

‘절대 이순신 장군과 붙지 마라.’

그 다음부터 일본군은 이순신 장군만 나타나면 계속 피해 다녔습니다. 오히려 조선군이 잡으려 다녔죠.

두 번째 이유는 일본 지휘부의 착각입니다. 임진왜란 전에 일본은 사무라이들이 백 년 동안 전쟁을 했습니다. 일본에서는 성을 장악하면 전쟁은 끝이 납니다. 성주는 항복을 하든지 자결을 했죠. 이 성주들은 자기 성 안에서만 왕 노릇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도망갈 데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일본은 조선에서도 왕인 선조만 잡으면 전쟁이 끝난다고 생각한 겁니다. 그래서 일본은 식량도 가져오지 않고 20여 일만에 한양을 점령했는데 경복궁 문을 열었더니 텅 비어 있었습니다. 임금이 도망을 가버렸죠. 그래서 일본의 장수들은 멍하게 있었다고 합니다.

‘어떻게 왕이 도망을 가지?’ (모두 웃음)

그런 면에서 선조가 도망간 걸 잘했다고 할 수도 있죠. 저항하다 잡혔으면 전쟁이 끝났겠죠. 일본은 선조를 잡아서 조선군을 통제하고, 조선군으로 명나라를 침략하려고 했는데 수포로 돌아간 겁니다.

가장 결정적인 세 번째 이유는 의병입니다. 조선 곳곳에서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의병, 승병들이 나타납니다. 지휘체계도 없는 의병들이 갑자기 나타나서 일본군을 공격했죠.”

스님은 의병의 존재에 가장 공감했습니다.

“당시 백성들이 곡괭이 들고 죽창 들고 여기저기 나타났어요. 아무리 죽여도 죽여도 끝이 안 났다고 해요. 정규 군인은 도망을 갔는데 전쟁과 관계없는 백성들이 동네마다 들고 일어섰습니다.”

“그런데 임진왜란이 끝나고 명나라는 청나라로 바뀌고, 일본은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죽고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에도 막부로 바뀌었잖아요. 정작 두 나라는 정권이 바뀌고 나라가 바뀌었는데 조선에서는 그 왕조에 그 권력자들이 그대로 유지되었으니 참 안타까운 일이에요. “

수루에서 한참 이야기를 나누고 이순신 장군의 영정을 모신 사당을 참배했습니다.

향을 올리고 잠시 묵념을 했습니다.



이순신 장군이 부하들과 활을 쏘던 활터도 있었습니다. 해설사가 활터에서 바다 건너 과녁까지 거리가 145m라고 알려주자 모두 놀랐습니다.

“200m는 되어 보이는 데요.”

“네. 바닷물이 들어올 때와 나갈 때 거리가 다 다르게 느껴진다고 해요. 바다 위에서는 거리 감각이 없어지기 때문에 일부러 과녁을 바다 건너에 설치했습니다. 항상 바다 위에서 연습을 할 수 없으니까요.”

한 시간 정도 제승당을 둘러보고 다시 천천히 걸어 나왔습니다. 이순신 장군과 수많은 백성들의 존재를 기억하는 시간이었습니다.


배를 타고 한산도를 나와 통영 시내 한복판에 있는 세병관을 찾았습니다.



세병관은 국보 제305호로 1603년에 세웠습니다. 후일에는 삼도수군통제사영(三道水軍統制使營)의 건물로 사용되었습니다. 통영이란 이름 또한 ‘삼도수군통제영’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수군통제사는 수군을 총 지휘하는 직책으로 임진왜란 당시 처음으로 만들어진 직책입니다.


세병이란 전투가 끝나고 병사들이 흐르는 물에 무기를 씻으며 평화를 기리는 마음을 뜻한다고 합니다. 너른 세병관에 걸터앉아 삼도수군통제영과 세병관에 대한 설명을 듣고 운주당까지 둘러보았습니다.




세병관 바깥에는 역대 통제사들의 비석이 줄지어 서 있었습니다.

“이순신 장군의 후손 중에 삼도수군통제사를 지내신 분이 12분이라고 합니다.”

“대를 이어서 나라를 지켜주었네요.”

점심을 먹고 오후에는 주변을 둘러보기 위해 케이블카를 타고 통영 미륵산에 올랐습니다.


케이블카에 오른 스님은 웃으며 말했습니다.

“관광을 하니 어색하네요.”

정상에 오르자 통영 앞바다가 한눈에 들어왔습니다. 아름다운 풍경에 눈을 못 떼고 있는데 최광수 교수님이 바다에 서린 아픈 역사를 들려주었습니다.

“바로 이 바다에서 학익진이 펼쳐졌습니다. 저기 저 배가 지나가는 자리예요. 왜군이 이 곳에서 최대 8천 명 정도 사망했다고 합니다. 조선 수군은 부상자가 10명, 전사자가 3명에 불과했습니다. 배는 한 척도 부서지지 않았고요.

1592년 7월 8일, 새벽 5시부터 해질 때까지 이 곳은 지옥의 바다였죠. 우리에게는 승리의 날이지만 왜군들은 몰살을 당한 날이었습니다. 이후에도 이 바다에서 수많은 목숨을 잃었어요.”

한산도대첩으로 유명한 이 바다에서 한국전쟁 전후에는 보도연맹 사건으로 무고한 사람들이 손과 발이 묶인 채 수장되었고, 1974년에는 수송정이 침몰해 해군 장병과 해경 159명이 순직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수송정 침몰사건은 유신독재정권의 서슬 아래 정확한 이유도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억울하게 목숨을 잃은 사람들을 위한 위령제가 필요하겠네요.”

지금은 경치 좋은 관광지가 되었지만 역사의 아픔이 함께 흐르는 바다였습니다.

이제 헤어질 시간이 되었습니다. 스님은 어르신들에게 가는 길에 드시라고 통영 특산물인 꿀빵을 선물했습니다.

“덕분에 좋은 시간 보냈습니다.”

인사를 나누고 종교인분들은 서울로 출발하고 스님은 두북 수련원으로 돌아왔습니다.

두북 수련원에 도착해 저녁 8시 30분부터는 해외 정토회 350여 명의 활동가들과 온라인으로 간담회를 진행했습니다.

“다들 입장하셨나요? 그럼 해외 간담회를 시작하겠습니다.”

해외 활동가들은 먼저 스님에게 기조 법문을 청했습니다. 스님은 온라인으로 만나게 된 것에 대해 양해를 구하며 법문을 시작했습니다.

“전 세계에 흩어져 있어도 이제 우리들이 온라인으로 동시에 접속할 수 있는 많은 기술적인 보완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 지구적으로 다 같이 접속할 수 있는 시간을 맞추는 건 해결하기가 어렵습니다. (웃음)

코로나로 인해 여러분을 온라인으로 뵙게 되었습니다. 만약 코로나 사태가 없었다면 3월과 4월에 여러분이 사는 지역에 제가 직접 찾아가서 대화도 나누고 악수도 했을 텐데, 전 세계적인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으로 인해 이동이 어려워졌습니다. 가고 싶어도 이동에 제약이 생겼기 때문에 온라인 방식으로 이렇게 여러분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수행은 지식과 다릅니다. 지식은 머리로 배우는 것입니다. 반면, 수행은 마음의 문제입니다. 지식 전달은 이미 온라인으로 거의 다 가능한 상황입니다. 어쩌면 직접 만나는 것보다 온라인으로 지식을 전달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수행은 마음의 문제이기 때문에 직접 자기가 해보고 경험을 통해 체득해야 합니다. 수행은 머릿속으로 사유하는 게 아니라 몸과 마음에서 체험을 해야 변화가 일어납니다. 두려움이 있을 때 ‘두려움을 없애야 된다’ 이런 생각을 한다고 해서 두려움이 없어지지 않습니다. 체험을 통해 실제로 두려움을 없애야 합니다.

그래서 온라인으로만 법문을 듣게 되면 수행이 지식화 될 위험이 있습니다. 옛날에도 문자가 발명되면서 부처님의 가르침이 기록되기 시작했고, 가르침이 기록으로 전해지면서 지식화 되는 길을 걸었습니다. 문자보다는 덜하겠지만 온라인으로만 법문을 듣다 보면 법(法)이 지식화 될 위험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적절한 보완이 필요합니다.

아직은 온라인 방식으로 전환하는 것이 완전히 결정된 바는 없지만 현재 상당 부분 준비가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준비한 내용을 바탕으로 다음 주 결사행자회의에서 공청회를 갖고, 그 후 대의원회의에서 추가 공청회를 가질 예정입니다. 실제로 실행하기 위해서는 세세한 부분까지 설계를 마쳐야 하기 때문에 그에 따른 실무적인 과제가 아직 많이 남았습니다. 그 단계가 되면 실무적인 과제들을 담당할 부서를 따로 마련할 계획입니다.

해외정토회의 경우에는 사실 코로나 이전에도 이 방향으로 나아가려고 했습니다. 국내의 경우에는 대면 접촉이 가능했지만, 해외의 경우에는 회원들이 멀리 떨어져서 지내니까 이미 코로나 이전에 온라인 불교대학, 온라인 수행법회를 실험해오고 있었습니다. 여러분들이 지난 3년 동안 이미 실험한 내용들이 이번에 온라인 시스템을 만드는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해외에 계신 여러분들, 특히 먼 곳에서 지내는 분들은 이번 변화로 인해 더 이상 멀리 떨어져 있다는 것이 큰 제약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서울 시내에 사는 사람이나 노르웨이, 핀란드에 사는 사람이나 아무런 차이 없이 모든 공부를 같이 할 수 있게 됩니다.

다만 오프라인으로 제공되는 체험 프로그램에 참여해야 하는 것에 대해서는 해외에서도 제약이 있을 겁니다. 현재 국내에 있는 사람들은 격주에 한 번씩 체험 프로그램을 계획하고 있는데, 멀리 떨어져 있거나 해외에 있는 사람들은 6개월이나 1년에 한 번 모이되 모였을 때 일주일이나 열흘 일정으로 긴 프로그램을 체험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이 있습니다. 덧붙여 혼자서라도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보완할 필요가 있습니다.”

온라인으로 전환하는 취지와 보완책에 대해 자세히 들은 후 곧바로 즉문즉설을 시작했습니다.

  • 불교대학과 경전반을 온라인으로 전환 시 주말 실천 활동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 법당에서 진행되어 온 법회와 법회 의식이 앞으로 어떻게 달라지게 될까요?
  • 일반회원의 기준은 무엇인가요?
  • 법당의 유지 기준은 무엇이고, 법당을 없앴을 경우 대안이 무엇인가요?
  • 온라인 시대 청년 법회의 활동 방향은 어떻게 되어야 할까요?

총 11개의 질문에 답을 하고 나니 벌써 마칠 시간이 되었습니다. 오늘 토론한 내용을 바탕으로 마지막으로 스님이 정리 말씀을 해주었습니다.

“이 정도의 구상을 바탕으로 여러분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보완을 해나가려고 합니다. 제 얘기를 듣고 평소 가지고 있던 의문이 많이 해결되었나요?

여러분이 제안도 많이 해주셔서 지금 같이 방송을 듣고 있는 행정처와 대의원회에서 여러분의 의견을 수렴하고, 필요한 부분에 있어서는 자세한 안내를 할 수 있게 하겠습니다. 오늘 질문이 선택되지 않았더라도 행정처에서는 올라온 질문들을 모두 다 자세히 보고, 오늘 나눈 대화에 기초해서 부족한 부분에 대해서는 따로 답변을 드리거나 총무를 통해 답변해 드리겠습니다.

‘상황이 어떻게 되든 거기에 구애받지 않고 나는 두려움 없이 행복하게 살아가겠다’

이것이 수행자의 목표입니다. 지금 우리 모두가 코로나 사태를 겪고 있지만, 코로나가 아니라 그 어떤 상황이 되더라도 우리는 두려움 없이, 구애 없이 우리의 목표를 향해 나아가야 하고, 세상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길을 가야 합니다.

좋은 아이디어가 있으면 뭐든지 수용해서 나아갈 계획입니다. 좋은 생각이 있는데 종교적인 이유로 그걸 배척하는 경우는 없습니다. 다만 ‘수행자의 모임’이라는 관점과 부합해야 합니다. 우리는 수행자라는 관점 아래서 많은 제안을 해주셔야지, 수행자의 모임에 벗어나는 이야기를 하게 되면 수용하기 어렵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등산을 하는 모임인데 여기에 와서 자꾸 축구를 하자거나 배구를 하자고 하면 수용하기 어렵잖아요. 등산 모임 안에서 어느 산을 가면 좋은지에 대해서는 얼마든지 자유롭게 토론하고 대중의 다수 의견에 따라서 운영을 할 생각입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여러분들이 현장의 경험을 공유해주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아무리 좋은 기획도 실제로 운영해보면 주어진 시간과 공간에 맞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런 부분은 현장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시정해 나가야 합니다. 그런 관점에서 위축되지 말고 의견을 나누어주시기 바랍니다. 또한 의견을 냈다고 해서 너무 자기 의견을 고집하지 말고, 서로 대화를 해서 합리적인 방법을 같이 찾아나가면 좋겠습니다.

중국의 경우 정치적인 또는 종교적인 제약으로 인해 오프라인 모임을 갖기가 어려운 실정입니다. 그런데 앞으로 온라인 방식으로 바뀌게 되면 반드시 중국에 법당이 있을 필요가 없습니다. 해외에 본부를 두고 중국에서는 온라인 전법을 할 수 있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영국이나 유럽의 경우에도 본부를 다른 곳에 두고도 얼마든지 전법이 가능해집니다. 본부가 현장에 있으면 유리한 부분도 있지만 반드시 장점만 있는 건 아닙니다. 온라인이라는 가상의 현실에서도 얼마든지 만남을 만들어 나갈 수 있기 때문에, 코로나로 인한 일시적인 전환에 그칠 것이 아니라 변화된 상황에서 유리한 점을 빠르게 수용해 나갈 필요가 있습니다. 오늘 모임만 해도 제가 해외에 나가거나 여러분들이 한국에 오려면 엄청난 비용과 시간이 필요한데, 온라인을 통해 이렇게 만남을 가지니까 손쉽게 서로의 의사를 주고받으며 대화를 나눌 수 있잖아요.

이런 장점이 있으니까 서로를 믿고 새로운 방향으로 실행해봅시다. 부족한 점이 발견되면 다시 보완해서 나아가면 됩니다. 의문이 생기거나 문제가 있으면 얼마든지 다시 이야기를 나누고 보완할 수 있습니다. 온라인 만남은 제가 해외로 나가는 비행기 시간 동안만 해도 서너 번은 가질 수 있는 장점이 있으니까, 앞으로 계속 소통을 하면서 진행해 나가도록 하겠습니다.”

사회자는 온라인 간담회에 참석한 활동가들을 대신해서 스님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오늘 법문으로 해외 온라인 정토회의 방향을 잘 잡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법문해 주신 스님께 감사드립니다.”

사홍서원으로 간담회를 마쳤습니다. 해외 활동가들은 온라인 설문 방식으로 오늘 간담회에 참석한 소감을 적었습니다.

"온라인 전환에 대한 방향이 잡히는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수행의 관점으로 보면 문제 될 것이 없고 기꺼이 할 마음을 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더 넓은 정토회가 될 것 같습니다. 이동 시간이 줄어 스님이 이런 간담회는 3-4번도 가능하다는 말씀에 기대가 됩니다."

오늘도 하루가 길었습니다. 내일은 장수 죽림정사로 이동해 용성조사 탄신 156주년 기념행사를 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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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나

어떤 상황에서도 자유롭고,행복할수있을 수 있다는것이 수행자로써 가는 길이라는 말씀
다시 새겨봅니다 감사합니다 꾸벅!!!

2020-07-11 06:41:27

대덕

고맙습니다 ♡

2020-07-05 15:24:35

법락 박찬연

_()_

2020-07-05 08:3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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