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0.5.24. 봄 경전반 온라인 특강수련, 온라인 명상수련
"남편이 내 얘기를 안 들어줘서 힘들어요"

안녕하세요. 오늘은 하루 종일 경전반 특강수련이 온라인으로 진행되는 날입니다. 스님은 특강수련을 시작하기 전 아침 일찍부터 농사일을 했습니다.

아침 기도를 마치자마자 스님은 산 아랫 밭으로 나갔습니다. 밭 한 켠에 물통 놓을 자리를 평평하게 만들어놓았습니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잘 사용하지 않는 탁자를 들고 다시 밭으로 나왔습니다. 평평한 돌을 놓고 잘 사용하지 않는 탁자 위에 물통을 올렸습니다. 땅이 단단해질 수 있도록 물을 부어주었습니다.




스님이 파놓은 연못의 물을 전기를 사용해 물통으로 옮길 수 있는지 전기선을 연결해보았습니다.




“물이 나옵니다!”


큰 고무통에 물을 받아썼는데, 밭 한 켠에 물통이 자리 잡고 있으니 든든합니다. 이제 산 아랫 밭 물 공급도 해결했습니다. 빠르게 움직여서 9시 전에 계획했던 일을 마칠 수 있었습니다. 스님은 작업복을 갈아입고 가뿐한 발걸음으로 수련원으로 향했습니다

두북수련원에 도착한 스님은 가사와 장삼을 수하고 생방송 카메라 앞에 앉았습니다.

오전 9시에 입재법문을 시작으로 오후 5시까지 온라인 생중계로 경전반 특강수련이 진행되었습니다.

스님이 생방송으로 법문을 하고, 경전반 학생들은 각 지역별로 법당에 모여서 프로그램을 진행했습니다. 전국 51개 법당에서 700여 명의 학생들이 온라인 특강수련에 참가했습니다.

스님은 입재법문을 통해 경전반 학생들이 지금 공부하고 있는 금강경의 핵심 가르침과 정토회에서 추구하는 수행, 보시, 봉사가 어떤 연관이 있는지 그 원리에 대해 자세히 설명했습니다.

“금강경의 가르침은 지금 맞닥뜨린 문제에 대해서 소극적인 자세로 피하지 말고 적극적인 자세로 일하면 마음의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겁니다. 금강경 제3분인 정종분에 그 핵심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수보리 존자가 부처님께 묻습니다.

‘어떻게 하면 이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까?’

그러자 부처님께서는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으로 오히려 ‘일체 중생을 구제하겠다고 마음을 내라’고 대답합니다. 이 말이 무슨 뜻일까요?

남편이 내 얘기를 안 들어줘서 힘들어요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우리 남편이 제 얘기를 안 들어줘서 힘들어 죽겠어요.’

이때 ‘남편을 바꾸어서 내 말을 잘 들어주도록 해주십시오.’ 하는 게 주로 종교입니다. 그런데 금강경의 가르침은 오히려 남편을 불쌍히 여기고 그의 얘기를 적극적으로 들어주라는 겁니다. 남편이 내 얘기를 안 들어줘서 힘들다는 사람에게 ‘네가 오히려 남편의 얘기를 적극적으로 들어줘라’ 이렇게 얘기하는 겁니다. 이렇게 말하면 대부분은 ‘아니, 내가 남편 때문에 괴로워 죽겠다는데 왜 도리어 남편을 도와주라고 그럽니까?’ 하면서 도무지 납득이 안 갈 겁니다.

그런데 금강경에서는 내가 남편의 얘기를 적극적으로 들어주겠다고 마음을 내는 순간 내 괴로움이 모두 사라져 버린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남편은 아내라는 주위 환경이 좋아져서 도움을 받은 사람이 되는 것이고, 그런 마음을 낸 아내는 남편이 어떻게 하든 관계없이 본인 스스로 좋아지는 겁니다.

그런데 이때도 괴로움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습니다. 좋다고 하니까 적극적으로 베푸는 마음을 내는 것은 할 수 있는데, 베푸는 마음을 내면서도 내가 베푼 것에 대해서 바라는 마음을 갖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베풀고 나서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내가 이렇게 도와줬는데 고맙다고 인사도 안 하다니!’

이것이 2차 괴로움이에요. 1차 괴로움은 준 것도 없이 바라기만 하는 겁니다. 이런 사람을 범부중생이라고 합니다. 범부중생의 단계를 넘어서 현인에 이르면 ‘베푼 것도 없이 바라는 건 논리적으로 안 맞다. 얻으려면 내가 먼저 베풀어야 한다’ 이렇게 이치를 따져서 베푸는 게 좋다는 것을 알고 행합니다. 그러나 이때도 베푸는 목적은 받는 것에 있습니다. 세상에서 ‘착한 사람’이라는 소리 듣는 사람들도 이런 이유 때문에 괴로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겁니다. 이것은 마치 농사를 열심히 지었는데 홍수가 나서 수확이 안 되면 ‘이럴 줄 알았으면 농사 안 지을 걸’ 하고 후회를 하는 것과 같습니다.

금강경의 핵심

이런 2차 괴로움을 막기 위해서 베푼 것에 대한 바라는 마음도 내려놓으라고 하는 겁니다. 내가 남편을 이해하면 나의 답답함이 없어지기 때문에 이미 공덕을 받아버린 겁니다. 이미 공덕을 받았다는 것을 모르고 ‘내가 남편을 도와주었으니까 남편도 그걸 좀 알아주겠지’ 이렇게 기대를 하는데, 이것은 세속적으로 말하면 투자를 해서 이익을 보려는 심보에 불과합니다.

괴로움의 뿌리는 주는 데 있는 게 아니라 바라는 데에 있어요. 범부중생은 준 것도 없이 바라는 것이고, 현명한 사람은 주고 나서 바라는 것인데, 둘 다 바라는 마음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괴로움을 완전히 막기 위해서는 바라는 마음을 내지 말아야 합니다. 베풀었다는 생각도 하지 말라는 것도 기억의 문제가 아니라 공덕을 바라는 마음을 내려놓으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공덕은 괴로움이 없어진 것으로 이미 받아버렸기 때문입니다.

‘베풀어라. 그런데 베풀었다는 생각도 하지 마라.’

이 말은 2차 괴로움을 없애기 위해서 하는 말입니다. 베풀었다는 상도 짓지 말라는 거예요. 사실은 그 베푼 것조차도 남을 위한 게 아니고 나를 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베푸는 행위를 통해 내가 기뻐지고, 내 수행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내가 그를 이해한 것에 대해 그를 위해서 그랬다고 생각하면 ‘내가 당신을 그렇게 많이 이해해줬는데, 당신도 나를 한 번은 이해해줘야 될 거 아니야?’ 이렇게 될 위험이 높습니다. 그래서 남편이 나를 이해 못 하면 또 괴로워지는 거예요. 사실은 남편을 이해함으로써 내 괴로움이 사라졌기 때문에 남편이 나를 이해해주고 안 해주고는 아무 관계가 없는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부처님께서도 ‘중생을 구제하라. 그렇지만 중생을 구제했다는 생각도 갖지 마라’ 이렇게 말씀하신 거예요.

이것을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한 것이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입니다. 이것을 뒷부분에서 이론적으로 다시 한번 ‘범소유상(凡所有相) 개시허망(皆是虛妄) 약견제상비상(若見諸相非相) 즉견여래(卽見如來)’라고 설명합니다. 그 뒤로는 이렇게 수행하는 자의 공덕이 한량없다는 설명이 계속 이어집니다. 그냥 돈 빌려주고 이자를 받는 그런 공덕이 아니라 해탈의 길로 나아가게 되기 때문에 그 공덕이 한량없다는 겁니다.

오늘 금강경 앞부분을 다시 이렇게 설명하는 것은 여러분들이 한 질문의 대부분이 이와 관련된 얘기이기 때문입니다.

대승 수행을 하는 방법

이런 원리에 따라 정토회에서는 우선 경계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도록 내 마음을 알아차리는 소승 수행을 가르칩니다. 그러나 더 크게는 대승 수행을 중요하게 가르칩니다. 대승 수행을 하기 위해서는 첫째, 발심을 해야 합니다. 대승 불교에서는 발심한 사람을 보디사트바, 즉 보살이라고 부릅니다. 머리 깎고 스님이 되라고 하거나, 뭐를 먹지 마라거나, 이런 얘기는 덜 하고, 마음을 크게 내라고 가르칩니다. 즉, 내가 부처가 되겠다는 마음을 내라고 가르칩니다. 그리고 이 좋은 법을 이웃에 전하겠다고 마음을 내라고 가르칩니다.

‘이 땅에 다시는 전쟁이 없었으면 좋겠다.’

‘배고픈 사람이 이 세상에 없었으면 좋겠다.’

‘사람뿐만 아니라 온 지구의 생명들이 잘 보존되면 좋겠다.’

이렇게 마음을 내는 것이 바로 부처가 되는 길입니다. 이런 마음을 낼수록 여러분들의 마음은 더 커지고, 여러분들의 삶은 더 보람 있어지고, 여러분들의 괴로움은 더 줄어듭니다.

그래서 첫째, 소극적으로는 자신의 마음 관리를 잘하는 수행을 해야 합니다. 둘째, 남으로부터 얻으려고 하지 말고 항상 베푸는 마음을 내야 합니다. 조금이라도 이웃과 세상에 보탬이 되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보시와 봉사를 해야 합니다. 오히려 받으려는 생각을 탁 내려놓는 연습을 하려면, 칭찬이나 대가를 받으려고 하지 말고 봉사를 해야 합니다. 그래서 보시와 봉사도 수행입니다.

봉사가 곧 수행

소승에서는 아침에 일어나서 절하고, 법문 듣고, 명상하는 게 수행입니다. 그러나 대승은 보시하고 봉사하는 게 다 수행이에요. 대승에서는 수행, 보시, 봉사를 합해서 수행이라고 부릅니다. 그래서 정토회에서는 봉사를 매우 중요시합니다. 보시는 그래도 많이 연습이 되어 있어요. 그런데 봉사를 하면서는 대가를 바라는 마음이 늘 생깁니다. 돈으로 대가를 받든, 칭찬으로 대가를 받든, 봉사를 하고 나면 대가를 바라는 마음이 듭니다. 그래서 금강경에서는 일체 중생을 구제하겠다고 마음을 내되, 구제했다는 생각도 내려놓으라고 가르치는 겁니다. 이것을 연습하기 위해서 봉사를 많이 해야 하는 거예요.

봉사는 법문을 듣기 위해 할 수 없이 해야 하는 게 아니에요. 봉사가 곧 수행입니다. 앉아서 명상을 하는 것은 호흡을 알아차리는 것이라면, 엎드려 절하는 것은 자신의 잘못을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모내기를 하면서는 모가 가장 잘 살 수 있는 조건을 알아차리는 겁니다. 순을 하나 따주면서도 작물이 더 살아날 수 있는 조건에 대해 딱 깨어있는 거예요. 일을 하면서 하기 싫은 마음에 사로잡혀서 꾀를 쓰고 있는 자기 모습을 알아차리고 내려놓는 겁니다.

이런 수행을 하는 게 대승 수행이에요. 즉, 중생을 구제하는 것으로 수행을 삼는 겁니다. 환경 운동하는 것을 수행으로 삼고, 빈곤 퇴치하는 것을 수행으로 삼고, 캠페인을 하는 것을 수행으로 삼고, 농사일하는 것을 수행으로 삼고, 청소하는 것을 수행으로 삼는 겁니다. 그 속에서 일어나는 마음의 작용을 알아차리고, 괴로운 마음이 기대하는 것으로부터 일어나는 것을 알아차려서, 나도 행복하고 세상에도 유용한 사람이 되는 겁니다. 나만 편안한 게 아니라 세상 사람들이 봐도 ‘아, 저 사람과 같이 있으면 우리 모두에게 좋구나’ 이렇게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거예요.

그렇게 되려면 봉사를 실제로 해보면서 무주상보시의 마음이 되도록 연습을 많이 해야 합니다. 우선 남을 돕는 마음을 낼 수 있는지 연습해 보고, 남을 돕고 나서는 그 뒤에 기대하는 마음을 내지 않는 것이 가능한지 경험을 해봐야 합니다.

그래서 정토회에서는 수행, 보시, 봉사, 세 가지를 모두 해야 합니다. 만약 여러분들 중에 ‘저는 법문만 듣겠습니다’, ‘저는 명상만 하겠습니다’, ‘저는 절만 하겠습니다’ 이런 사람이 있다면, 정토회에서는 ‘No’입니다. 정토회는 대승 수행자들의 모임이기 때문에 보시와 봉사를 함께 해야 합니다. 또 반대로 ‘저는 보시와 봉사만 하겠습니다’ 이런 사람도 정토회에서는 ‘No’입니다. 정토회는 수행자들의 모임이기 때문에 자신의 까르마를 변화시키는 연습도 해야 합니다. 즉, 남에게 이익을 주는 훈련도 하지만, 자기를 이기는 공부도 해야 합니다.”

입재 법문을 마친 후 스님은 다음 프로그램인 마음 나누기에 대해 안내했습니다.

“지금부터 마음 나누기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마음 나누기를 할 때는 자신의 경험을 얘기하면 됩니다. 막연히 책에 있는 얘기는 그만하시고, 금감경을 배우고 나니 실제로 일상에서도 실천이 되는지에 대해 자기 경험을 이야기하면 됩니다. 만약 실천이 안 된다면, 어떻게 안 되는지를 이야기하면 돼요.

가르침대로 막상 해보면 안 되는 게 현실이에요. 그러나 우리의 목표는 되는 게 목표입니다. 수행은 안 되는 현실에서 출발해서 되는 목표를 향해 조금씩 나아가는 겁니다. 되다가 안 되다가를 반복하면서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는 게 수행이에요.”

각 지역 법당에서 생방송으로 법문을 시청한 학생들은 조별로 모여서 마음 나누기 시간을 가졌습니다. 주제는 ‘금강경, 봉사 그리고 나의 삶’입니다. 각자 금강경 강의를 듣고 나서 새롭게 깨달은 점과 내 삶의 변화에 대해 솔직하게 이야기했습니다.

각자 싸온 도시락으로 점심 식사를 한 후 법당 별로 참가자 소개와 장기자랑 등 함께 어울리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경전반 학생들이 법당 별로 돈독해지는 시간을 가지는 동안 스님은 얼마 전 병문안을 다녀온 원만 스님이 입적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곧바로 장례식장을 찾아갔습니다.

“고생 많이 하셨어요. 잘 가십시오.”

원만 스님의 넋을 기린 후 운구를 운반하는 것까지 함께 했습니다.

다행히 도반 스님들이 와서 화장장까지 기도를 해준다고 해서 스님들께 감사 인사를 한 후 장례식장을 나왔습니다. 다시 두북 수련원으로 돌아와 오후 1시부터 즉문즉설 시간을 가졌습니다.

금강경 수업을 들으면서 궁금했던 점에 대해 전국에서 수십 개의 질문이 올라왔습니다. 스님은 그중에서 15명의 질문에 대해 하나하나 답을 해주었습니다.

  • 제가 다니는 회사는 이윤을 추구하는 곳이고, 경제적 위기로 인해 곧 구조조정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일체중생을 다 구제하겠노라 마음을 내라"라는 부처님의 말씀을 회사에 어떻게 적용하면 좋을까요?
  • 아상이 없어지면 다른 이를 이해하기는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주관이 없으면 어떤 일을 결정하거나 추진할 수 있을까요?
  • 상을 짓는 것과 상대를 이해하는 마음을 내는 것이 구별이 안 됩니다. 상대가 거짓말을 하는 것 같은데, 상을 짓지 말고 적절히 넘어가야 할까요? 공부를 하기 전처럼 따지는 건 안 해야 될 것 같은데 헷갈립니다.
  • 공적인 업무는 성과를 내야 하는데 무주상보시가 가능할까요?
  • 간절함과 집착의 차이점이 궁금합니다
  • 금강경을 공부하면서 해탈과 중생 구제는 둘로 나위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부처님 당시에는 어떻게 중생을 구제하셨고, 현재 이 사회에서는 어떻게 중생을 구제할 수 있을까요?
  • 수행자가 아니라도 남몰래 기부하거나 봉사하는 사람들도 중생을 구제하는 건가요?
  • 상을 짓지 않는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헷갈립니다.
  • ‘일상에서 깨어있기’란 지금 하고 있는 일에 오로지 집중하라는 의미인가요? 걸으면서 음악을 듣거나 밥을 먹으면서 티비를 보는 것은 잘못된 것인지요?
  • 상대의 말이나 행동이 다르므로 잘못되었다 할 수는 없지만 사회의 보편적인 측면에서 보면
  • 남에게 해를 끼치거나 잘 어울리지 못하는 사람에게 지적을 해주어야 할 것 같은데, 상대를 무조건 이해하고 인정해주어야 하나요? 어떻게 상대방이 올바른 관점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을까요? - 여러 곳에 정기후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몇몇 단체에서 기부금을 유용했다는 기사를 읽으면 제가 후원한 것에 대해 불안한 마음이 올라옵니다. 어떤 태도로 보시를 해야 할까요?
  • ‘일체중생을 다 구제하겠다는 마음’은 상대를 이해하고 그의 입장이 되어 생각하는 자세인가요? 일상에서 구체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싶습니다.
  • 화를 알아차리려고 하면 더 화가 납니다, 차라리 화나는 마음을 피해버리면 덜 화가 납니다. 다만 알아차리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 수행은 좋지만, 부처님의 전생과 후생 이야기를 들으면 정말 부처님이 그렇게 설했는지 의심이 듭니다.
  • 시간 날 때마다 자주 명상을 합니다. 가끔 명상 후 머리가 너무 개운해서 잠이 안 와요. 이럴 땐 어떻게 하나요?
  • 마음을 분명히 알아차리는 게 어렵습니다. 저는 어떻게 수행하면 될까요?

하루 종일 온라인으로 법문을 시청하다 보니 계속 집중력을 유지하기가 어렵다는 반응도 있었습니다. 즉문즉설을 하는 도중에 잠시 휴식 시간을 가졌습니다.

“잘 쉬었습니까? 중간에 쉬니까 좀 나아요? 제가 직접 얼굴을 대면해서 강의를 하면 3시간도 쉬지 않고 강의를 하는데, 계속 영상만 보는 것은 너무 오래 하면 힘들 것 같아서 잠시 쉬었습니다. 그러면 다시 질문에 대한 답변을 이어나가겠습니다.”

질문에 대한 답변을 모두 마치고 나서 다시 소감 나누기 시간을 가졌습니다. 소감 나누기를 마친 후 경전반에 입학 후 지금까지 수행해 오면서 삶의 변화를 맞이한 도반들의 나누기를 영상으로 만나보았습니다.

“법륜 스님은 경전 공부를 단순히 지식이 아닌 좀 더 행복해지는 법을 배우도록 해주시는 것 같아요. 늘 감사드립니다.”

“수행적 관점을 잡게 되어 뿌듯합니다. 지식이 아닌 체험을 할 수 있게 해주는 법륜 스님에게 감사드립니다.”

“금강경 공부를 하면서 내가 바라는 마음이 크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요즘은 제 마음을 솔직하게 표현해보고 있습니다.”

“짜증, 화, 원망이 많이 적어졌습니다. 감정이 올라오면 알아차리게 되고, 알아차리면 그 마음이 오래가지 않더라고요.”

“상대의 행동을 보고 불쑥불쑥 화가 치미는 정도가 많이 줄어들었어요. 이런 경험이 쌓이니까 수행이 재미있어졌습니다. 수행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는 게 가장 크게 달라진 점입니다.”

도반들의 다양한 소감을 영상으로 시청한 후 마지막으로 스님에게 회향 법문을 청해 들었습니다. 스님은 수행, 보시, 봉사를 통해 마음의 찌꺼기를 줄여나가는 삶을 살자고 강조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나를 여래라고 불러라’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여래라는 말은 여여히 오고 여여히 간다는 뜻입니다. 온 바도 없고 간 바도 없다는 뜻입니다. 한마디로 흔적이 없다는 뜻입니다. 이것을 다른 말로 ‘함이 없다’는 뜻에서 ‘무위’라고 표현합니다. 함이 없다는 것은 아무런 찌꺼기가 없다는 뜻입니다.

마음속에 찌꺼기를 줄여나가는 삶

부처님께서는 박한 음식을 먹든, 맛있는 음식을 먹든, 좋은 옷을 입든, 분소의를 걸치든, 한 군데 머무르든, 다른 데로 가든, 거기에 구애를 받지 않으셨습니다. 그냥 맛이 좀 없으면 없을 뿐이고, 맛이 있으면 맛이 있을 뿐이고, 양이 적으면 적을 뿐이고, 양이 많으면 많을 뿐이고, 헌 옷이 주어지면 헌 옷을 걸치고, 새 옷이 주어지면 새 옷을 걸치고, 갈 일이 있으면 가고, 머무를 일이 있으면 머무셨습니다. ‘머물고 싶다’, ‘가기 싫다’, ‘가고 싶다’, ‘이곳에 있는 건 답답하다’ 이런 마음의 찌꺼기가 없으셨어요. 이것을 ‘여래’라고 부른 겁니다.

그런데 우리는 마음의 찌꺼기가 많습니다. 가고 싶은데 못 가서 답답하고, 있고 싶은 데 가라 고 해서 힘들고, 하고 싶은데 하지 말라고 해서 괴롭고, 하기 싫은데 하라고 해서 힘들잖아요. 이렇게 찌꺼기가 있는 게 현실이지만, 우리의 목표는 마음에 아무런 찌꺼기가 없는 것을 향해 한 발 한 발 나아가는 것입니다.

보통 사람들은 찌꺼기를 늘 안고 산다면, 수행자는 찌꺼기를 좀 치워가면서 사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찌꺼기를 치웠다가 또 쌓았다가, 치웠다가 또 쌓았다가, 이러면서 찌꺼기의 양이 점점 줄어드는 거예요. 쌓여있던 찌꺼기는 조금씩 없어지고, 새로운 찌꺼기는 덜 쌓이고, 이렇게 하면서 갈수록 찌꺼기의 총량이 줄어드는 겁니다. 수행을 하지 않는 사람들은 총량이 점점 증가하는 것이고요.

찌꺼기가 있는 건 똑같은데 찌꺼기의 양이 조금씩 줄어드는 겁니다. 아직도 괴로움이 있지만 괴로움이 점점 줄어드는 겁니다. 아직도 화나고 짜증이 나지만, 처음 출발할 때보다는 괴로움이 일어나는 횟수가 줄어드는 겁니다. 화가 한 번 일어났을 때 지속되는 기간이 줄어들던지, 어쨌든 조금씩 그 양이 줄어들게 됩니다.

그래서 항상 출발선상을 돌아봐야 합니다. 그래야 ‘그래도 좀 왔네!’ 하면서 스스로에게 자긍심이 생기고 희망을 갖게 됩니다. 그러나 목표 지점을 보면 아직은 멀었어요. 아직도 찌꺼기가 많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안주하지 말고 부지런히 연습해야 합니다. 그 연습이 바로 보시와 봉사입니다.

수행이 따로 있고 보시와 봉사가 따로 있는 게 아니에요. 수행은 좀 소극적인 자기 방어에 해당한다면, 보시와 봉사는 적극적으로 자기를 확대하는 겁니다. 일단 밖의 공격으로부터 나를 막아내는 것이 수행이고, 적극적으로는 내가 세상을 향해 도움을 펼치는 것이 보시와 봉사입니다. 이렇게 수행, 보시, 봉사가 바로 대승 수행법입니다.

지금 있는 자리에서

외부의 공격으로부터 자기를 방어하고 지켜내는 소승 수행법에서는 머리를 깎고 세속을 떠나는 것이 굉장히 도움이 됩니다. 그러나 적극적인 대승 수행을 하기 위해서는 이미 머리를 깎은 사람도 다시 머리를 길러야 하고, 직업이 없던 사람도 다시 직업을 가져야 합니다. 대승 수행을 하기 위해서는 다시 세상 속으로 나가야 하는데, 여러분들은 이미 세상에 나와 있기 때문에 자신이 있는 그 자리에서 바로 수행을 하면 되는 겁니다. 있는 머리 그냥 놔두고, 입는 옷 그냥 입고, 다니던 직장 그대로 다니고, 결혼한 인연을 그대로 둔 채로 수행, 보시, 봉사를 하면 됩니다.

그렇다고 이미 출가한 사람이 다시 결혼을 하고 머리를 기를 필요도 없어요. 이렇게 된 사람은 이런 입장에서, 저렇게 된 사람은 저런 입장에서 수행을 하면 됩니다. 정토회는 대승 수행을 하는 곳이기 때문에 저도 여러분들에게 ‘스님이 되어라’ 이런 얘기를 일체 하지 않습니다. 자기 인연대로 하면 됩니다. 이제는 더 이상 승려인지 아닌지를 구분할 필요가 없어요.

누구나 다 이 길을 갈 수 있습니다. 여자는 여자대로, 남자는 남자대로, 피부가 검으면 검은 대로, 피부가 희면 흰 대로, 교회를 다니면 교회를 다니는 대로, 절에 다니면 절에 다니는 대로, 한국 사람들은 한국 사람대로, 일본 사람은 일본 사람대로, 혼자 살면 혼자 사는 대로, 결혼을 하면 결혼을 한 대로, 누구나 다 이 길을 갈 수 있습니다.”

처음으로 온라인 방식으로 특강수련을 진행해 보았습니다. 코로나19로 인해 일어난 변화입니다. 스님도 카메라만 보고 긴 시간 법문을 해야 했기 때문에 강연장에서보다 조금은 지친 기색이 보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님은 주어진 조건을 최대한 활용하는 것이 수행이라고 강조하며 법문을 마쳤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서 아직도 대중이 많이 모이는 자리를 가지지 못하고 있는데요. 정부가 완전히 종결 선언을 하게 되면, 그때는 문경 수련원에 모두가 모여서 서로의 얼굴을 보면서 얘기를 합시다. 그날이 안 오면 온라인으로 얘기를 계속 하고요. 이러면 되고 저러면 안 되는 게 아니라, 이러면 이렇게 하고 저러면 저렇게 하는 거예요. 그렇게 주어진 인연을 최대한 활용해서 수행정진을 해 나가시기 바랍니다.”

방송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로 사홍서원을 함께 하며 특강수련을 끝마쳤습니다. 의자에 오래 앉아 있어서 그런지 스님도 자리에서 일어나자마자 잠시 주춤거렸습니다.

저녁 예불을 한 후 7시부터 농사팀 행자님들과 마음나누기를 했습니다. 8시 30분부터 온라인 명상수련을 해야 하기 때문에 1인당 3분 이내로 마음 나누기를 하기로 했지만, 명상을 시작하는 시간이 거의 다 되어 겨우 마음 나누기를 마쳤습니다.

저녁 8시 30분이 되자 다시 수련실에서는 생방송 카메라에 불이 켜졌습니다. 일요일마다 영어 통역 봉사를 해주고 있는 제이슨의 목소리가 이제는 친숙하게 들려옵니다.

“제이슨, 일주일 동안 잘 지냈어요? 오늘도 통역을 위해 수고해 주세요.”

스님은 제이슨과 반갑게 인사를 나눈 후 온라인 명상을 시작했습니다.

“안녕하세요. 오늘은 5월 24일 일요일 저녁입니다. 5월 하순, 즉 늦봄이라서 한국은 지금 여름처럼 덥기 시작했습니다. 저도 모기에 여러 번 물릴 정도로 모기가 많아졌습니다.
Hello, to you all. Today is May 24th, Sunday night. Since we are entrance late spring in South Korea is seems like quite heading into summer temperatures already. So we already have mosquitoes they are biting me several times today.”

날씨 이야기를 가볍게 한 후 지난주에 외국인들이 남긴 질문에 대해 먼저 답변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 정신적으로 또는 육체적으로 피곤할 때 명상을 해야 하나요?
  • 다리가 저리는 것이 정상인가요? 다리가 저리지 않게 다른 자세로 명상하는 방법도 있나요?

오늘은 가벼운 질문들이 올라왔습니다. 그중 하나는 알아차림이 깊어지는 순간 다시 마음이 흐트러진다는 질문이 있었습니다. 스님은 명상이 잘 된다고 느끼는 것이 가장 큰 장애라고 알려주면서 명상을 하는 올바른 자세를 짚어 주었습니다.

“명상 도중에 가끔 마음이 깊은 평온함에 잠기는 것 같습니다. 호흡에 집중하는 것이 가벼워지고, 숨이 얕아지며 감지하기 어려워집니다. 그러다 알아차림이 일어났다는 생각과 함께 마음 챙김이 흐트러집니다. 그러나 그때 경험하게 되는 평화는 움켜쥘 것이 아닌 것 같습니다. 생각이 바쁘든 말든 평화는 사라졌다 생겼다 하는데, 평화를 구하려면 언제든지 구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제가 맞게 이해하고 있나요?
At times during meditation the mind seems to become deeply calm. The focus on the breath very light, the breath shallow, hardly noticeable. Then awareness comes again with a thought that this has occurred, and mindfulness falls away. The peace that is experienced however, seems beyond grabbing. Its fading occuring regardless of the chattering of thoughts, that it is within reach at all times. What is this? Is this a correct view?”

“죽비 소리가 나고 명상을 시작했을 때, 5분 정도까지는 호흡을 알아차리기가 매우 쉽습니다. 왜냐하면 몸을 움직이다가 앉았을 때는 숨이 거칠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5분 내지 10분이 지나면 몸과 마음이 가만히 있으니까 몸에 필요한 에너지가 적어지게 됩니다. 그러면 호흡의 필요량이 적어지니까 호흡이 굉장히 부드러워집니다. 이때는 세심하게 코끝의 감각에 집중해 있지 않으면 알아차림을 놓치게 됩니다.

그렇게 놓치게 되면 마음의 빈자리에 금방 생각이 일어나서 그곳을 채우게 됩니다. 이것은 정신작용의 특징입니다. 순식간에 과거의 생각이든 미래의 구상이든 여러 가지 생각들이 자리를 잡게 됩니다. 다시 생각이 활발해지니까 에너지 양이 많아져서 호흡이 약간 강해집니다. 그러면 다시 호흡을 감지할 수 있게 됩니다. 그때서야 ‘아! 내가 호흡을 놓쳤구나’ 하고 알게 됩니다.

그래서 다시 호흡을 알아차리고 있으면, 또 호흡이 점점 약해지고 그런데 집중을 안 하면 어느 순간 놓쳐버리게 됩니다. 그러면 또 다른 생각들이 일어나게 됩니다. 어느 순간에 다른 생각들이 자리하게 됩니다.

그래서 호흡을 놓치지 않으려고 긴장을 하게 되면 에너지가 소모되기 때문에 또 호흡이 거칠어집니다. 이런 거친 호흡을 알아차리는 것은 마음 알아차리기를 할 때 별로 도움이 안 됩니다. 호흡을 하는지 안 하는지 모를 만큼 미세한 호흡을 또렷이 알아차릴 수 있어야 나중에 마음 알아차리기를 할 때 도움이 됩니다.

몸과 마음이 편안한 상태에서 호흡을 계속 알아차리고 있으면, 질문자가 말하듯이 편안한 경지에 있으면서도 호흡이 또렷이 알아차려집니다. 이때 여러분들은 ‘야! 이래서 명상을 하는구나!’ 하면서 기분이 약간 좋아집니다. 그 좋음에 약간 집착하는 마음이 일어나는 겁니다. 그러나 이미 ‘편안하구나, 이래서 명상을 하구나’하는 생각을 일으켰기 때문에 마음이 흐트러집니다.

그다음부터는 호흡에 깨어 있는 것이 아니라 ‘방금 어떻게 하니까 그렇게 편안했지’ 하면서 지나간 일을 떠올리게 됩니다. 방금 편안했던 것을 지금도 재현해 보고 싶은 마음이 자꾸 일어나는 겁니다. 이것은 이미 명상의 원칙을 놓쳐 버린 겁니다. 지금에 깨어 있어야 하는데 지나간 과거를 생각하면서 ‘그때가 어땠더라’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지금 호흡에 깨어있는 것이 아니라 생각을 하는 중인 겁니다. 다리가 저리고, 졸리고, 망상이 일어나서 호흡을 놓치는 것보다 ‘방금 어떻게 하면 그렇게 되었지’ 하는 이것이 더 큰 명상의 장애입니다.

그래서 명상을 할 때는 ‘명상이 잘 된다’, ‘명상이 안 된다’, ‘어제는 잘했는데 오늘은 안되네’, ‘졸린다’, ‘안 졸린다’ 이런 생각을 하면 안 됩니다. 몸과 마음을 편안히 한 상태에서 마음을 콧구멍 끝에 딱 집중해서 숨이 들어가고 숨이 나가는 것을 미세한 감각으로 알아차릴 뿐입니다. 과거의 생각, 미래의 생각, 졸음, 바깥의 소리, 다리의 통증이나 이런 것들이 있든지 말든지 그건 그것대로 그대로 두고 오직 호흡만 알아차립니다. ‘어제는 잘 됐다’, ‘오늘은 안 된다’ 이런 생각이 일어나더라도 내버려 두고 다만 호흡을 알아차려야 합니다.

잘하려고 애쓰지도 말고, 코끝을 주시한다고 긴장하지도 말고, 안 된다고 좌절하지도 말고, 그냥 다만 호흡을 알아차립니다. 놓치면 다시 합니다. 방금 잘 됐든 못 됐든 이런 것들은 이미 지나간 일입니다. 지금 여기 들숨과 날숨만이 실재하는 것입니다. 놓치면 다시 알아차리고, 놓치면 다시 알아차리고, 이렇게 다만 할 뿐입니다.”

답변을 마치고 곧바로 명상에 들어갔습니다.

탁! 탁! 탁!

30분이 지나고 명상을 마치는 죽비소리가 울리자 다시 스님의 목소리가 화면에서 들려왔습니다.

“해보니 어땠습니까? 여러분들이 직접 경험해 본 소감을 한번 올려 주세요. 생각한 것을 말하지 말고, 실제로 명상하면서 느꼈던 것을 올려 주세요.”

수백 개의 소감이 소나기처럼 올라왔습니다. 그중에는 영어로 적힌 소감도 있었습니다.

‘피곤했는지 너무 졸렸습니다’
‘Might have been too tired, I was sleepy’

‘편안하게 잘했습니다’
‘It was relaxing’

‘뒷목도 통증이 있었습니다’
‘I was feeling pain in the back of my neck as well’

‘다리 감각이 없습니다’
‘I have no feelings in my legs’

‘오늘 하루 바빠서 쉬고 싶었는데 명상을 하고 피곤이 풀렸습니다’
‘I was tired so I would like to rest but after meditation I feel much better’

‘숨쉬기가 답답했습니다’
‘It's hard to breathe’

‘목을 떨구고 잤는지 목이 아픕니다’
‘I might have slept with my neck kicked up in a weird way’

‘졸음이 와서 호흡을 중간중간 놓쳤습니다’
‘I was sleepy so I lost my focus’

‘호흡에 잠깐 집중되었다가 생각에 빠졌다가를 반복했습니다’
‘I went through repetitive cycle of focusing and losing being distracted’

스님은 눈에 보이는 소감을 하나씩 읽은 후 다시 정리 말씀을 해주었습니다.

“직접 해보면 여러분들이 소감을 올린대로 많은 경험이 쌓이게 됩니다. 여기에는 정신이 맑아지고 마음이 편안해진 것 같은 호의적인 느낌도 있고, 졸리고 다리가 아픈 부정적인 느낌도 있습니다. 이것은 잘못된 것이 아니라 모두 명상을 하면서 일어나는 하나의 현상일 뿐입니다. 호의적인 느낌이든 부정적인 느낌이든 이런 가운데도 코끝에 집중해서 호흡을 알아차릴 수 있었느냐가 중요합니다.

이런 조건들 때문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면 그것이 현실입니다. 이런 현실에서 출발해서 ‘어떤 상황에서도 호흡 알아차림을 유지할 수 있다’ 이렇게 되는 것이 목표입니다. 꾸준히 연습할 뿐입니다. 그렇게 안 된다고 낙담하지도 말고, 조금 된다고 좋아하지도 말고, 알아차림이 있다면 가능한 그것을 지속해서 유지합니다. 놓쳤을 때는 ‘놓쳤구나!’ 하고 알아차리고 다시 알아차림을 유지합니다. 이렇게 편안한 마음으로 꾸준히 할 뿐입니다.

‘이렇게 하면 뭐가 좋아요?’

이런 질문을 하고 싶죠? 이렇게 자꾸 연습하면 좋은 일이 저절로 생깁니다. 일상 속에서 감정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을 지금보다 훨씬 더 또렷이 알아차릴 수가 있게 됩니다. 마치 자연스레 수분이 증발하듯이 여러분들의 까르마가 조금씩 제거되어 나갑니다.

감정이 일어나는 밑바탕에는 까르마의 찌꺼기가 가득 쌓여 있는데, 명상을 하면 수분이 증발하듯이 찌꺼기가 조금씩 사라지고 옅어져 갑니다. 감정 기복이 심한 사람은 감정이 조금씩 안정이 되어 가고, 마음도 점점 가벼워지고 맑아집니다. 이것은 제가 설명할 필요 없이 여러분들이 꾸준히 하면 저절로 결과가 그렇게 나타납니다.”

밤이 깊어가면서 창밖에서 들리는 개구리울음소리도 더 커지는 것 같습니다. 스님은 다음 주를 기약하면서 명상수련을 마쳤습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매일 이렇게 명상하시고, 다음 주 일요일에 다시 저와 함께 하겠습니다.
And then I conclude with that thought today. Please try to practice this meditation everyday. Next Sunday we'll do this again together.”

자리에서 일어난 스님은 통역을 해 준 제이슨과 생방송 촬영을 준비해 준 행자님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 후 오늘 일정을 마쳤습니다.

내일은 오전에 정토불교대학 강의를 생방송으로 한 후 하루 종일 법사단과 함께 두북 특별위원회 회의를 할 예정입니다.

전체댓글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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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준

명상은 곧 선정이다. 삼매에 들어 환상을보고, 신기루
을 보고 하는것이 아니라.고요한 마음 편안한 마음으
로 숨이 나가고 들어오는 것에 만 집중 하여 안과 밖
이 둘이 아니라 이우주와 한몸 이다는것을 깨달음에
이르는것. 감사합니다

2024-03-27 17:57:39

김대익

명상에 대해서 좀 더 알게되어 기쁨니다.
오늘도 소중한 가르침을 받아서 정말 감사한 마음입니다.

2020-06-12 13:04:31

정명

코 끝 호흡에, 걸음걸이에, 밥먹을때
설겆이할때, 빨래 널때 등등.
일상에 명상 아닌것이 없습니다.

2020-06-07 15:0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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