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0.4.22 온라인 수행법회 9주째
“명상을 통해 어떻게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나요?"

안녕하세요. 오늘은 온라인 수행법회를 시작한 지 9주째가 되는 날입니다. 두북 수련원에는 철쭉이 꽃잎을 활짝 피웠습니다.

새벽 정진을 마치고 아침을 먹기 전에 엄나무 순을 따고, 고수와 상춧잎을 솎아 주었습니다. 아침을 먹은 후 생방송 법회 시간에 맞추어 카메라 앞에 가사와 장삼을 수하고 앉았습니다.

10시 정각이 되자 2500여 명이 생방송에 접속했습니다. 스님은 오늘도 봄꽃 소식과 함께 법문을 시작했습니다.

“안녕하세요, 지난 한 주 동안 잘 지내셨어요?”

“네.”

“이제 진달래와 벚꽃은 다 지고 철쭉이 한창 피어나고 있네요. 여러분들 보시라고 예쁜 철쭉 꽃을 이렇게 탁상 위에 꽂아두었습니다. 꽃이 필 때마다 그때 피는 꽃을 꽂아서 여러분께 보여드리겠습니다. (모두 웃음)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가 이제는 조금 잠잠해져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번 주부터 사회적 거리두기가 조금 완화돼서 길에 교통량도 많아지고, 가게에는 손님도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고 하네요. 그러나 중국의 예를 보면, 거의 해결된 것 같다가도 아무런 증상이 없는 보균자가 바이러스를 전파해서 다시 문제가 되었어요. 이런 경우가 있기 때문에 아직은 조금 더 주의를 해주셔야겠습니다.

정토회는 정부 정책에 맞추어 5월 5일까지는 모든 오프라인 모임을 중단한 채 온라인으로 법회를 진행하고, 5월 6일부터는 일상생활로 돌아가려고 합니다. 그런데 그것도 5월 5일까지 가봐야 알겠죠. 외국에서 들어온 사람이나 미처 조사 안 됐던 부분에서 증상이 나타난다면 또 새로운 방침을 마련하게 될 것 같습니다. 정토회는 아직 일반회원의 출입을 허용하지 않고 있지만, 임원단은 이번 주부터 출근해서 정상적인 활동을 준비하기로 했습니다.”

여기까지 인사말을 하고 있는데, 생방송 채팅창에 스님의 목소리가 너무 작게 들린다는 민원이 계속 올라왔습니다. 오디오 세팅이 제대로 되지 않아 방송 사고가 생긴 것입니다.

잠시 방송을 중단하고 문제를 해결한 후 다시 방송을 시작했습니다. 방송 담당자와 스텝은 가슴을 쓸어내리며 진땀을 흘렸습니다. 실시간 채팅창에는 ‘이게 생방송의 묘미이죠’라며 응원하는 글이 올라왔습니다. 방송을 재개하며 스님이 인사말을 다시 했습니다.

“안녕하세요, 두 번 인사하네요. (모두 웃음) 다시 시작하겠습니다. 방송사고로 시간을 많이 잡아먹었기 때문에 앞에 인사드렸던 내용은 생략하고 바로 여러분의 질문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당황하지 않고 스님은 곧바로 질문에 대해 하나하나 답변을 시작했습니다. 총 15개의 질문이 올라왔습니다. 오늘은 그 중에서 알아차림에 대해 질문한 내용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스님이 질문을 읽고 나서 답을 이어나갔습니다.

명상을 통해 어떻게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나요?

“마음나누기는 괴로움이 있을 때 어리석은 마음이 원인임을 알아차려 어리석은 마음을 내려놓아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명상수련과 같은 호흡 알아차림은 어떤 원리로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는 건지 궁금합니다.”

“감정이 일어나는 원인을 살펴보면, 감정이 일어나기 이전에 느낌이 먼저 일어나고 그 다음에 감정으로 이어집니다. 만약 우리가 그 느낌을 알아차릴 수 있다면 감정을 일으키지 않을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마치 부싯돌에 반짝 불꽃이 튈 때 옆에 인화물질을 두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느낌을 딱 알아차리면 그 느낌이 탁 사라져버리는 거예요. 그 순간을 놓쳐서 감정으로 이어지면 감정을 제어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이 느낌을 알아차려야 해요. 느낌이 아주 미세하게 일어날 때 알아차려야 합니다. 풀을 뽑는 것에 비유해 볼게요. 잡초가 무성하게 자란 뒤에 뽑으려면 베기도 어렵고 뿌리를 뽑기도 어려워요. 그러나 싹이 아주 조금 올라왔을 때 호미로 삭삭 긁어버리면 제거하기가 쉽습니다. 그것처럼 느낌을 알아차리거나, 느낌을 놓쳤더라도 감정이 일어날 때 초기에 딱 알아차리면 이를 악물고 애쓰지 않아도 그 감정을 바로 멈출 수 있어요.

그런데 그렇게 되기가 쉽지가 않죠. 자동으로 감정으로 탁 넘어가서 흥분해버린 뒤에, 혹은 아예 흥분해서 행동까지 가버린 뒤에 ‘어!’ 하고 알아차립니다. 이때는 알아차려도 이미 제어가 잘 안 됩니다. 그래서 초기에 알아차리는 게 매우 중요합니다. 초기에 알아차림을 하기 위해서 선정(禪定)을 닦는 거예요.

명상을 한다는 것은 마음을 고요히 한 상태에서 코끝에 마음을 딱 집중해 들숨과 날숨을 알아차리는 연습을 하는 겁니다. 일상에서는 정신없이 사느라 숨이 들어오고 숨이 나가는지를 모르잖아요. 실제로 일어나는데 모르는 것이 바로 무지(無智)입니다. 그런데 눈을 딱 감고 집중하면 호흡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릴 수 있죠. 숨이 들어오고 나가는 줄을 알 수 있습니다.

한창 움직이다가 자리에 앉으면 몸의 필요에 의해 호흡도 조금 거칩니다. 그럴 때 딱 집중하면 호흡을 하는 줄 금방 알아차릴 수가 있어요. 그러다가 10분 정도 시간이 지나면 몸에 필요한 에너지가 적어져서 호흡도 자연히 부드러워집니다.

비록 몸은 자리에 앉아 있더라도 누구를 미워하거나 악을 쓰면 에너지가 많이 필요하니까 호흡이 거칠어집니다. 잠잘 때 악몽을 꾸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가만히 누워서 자고 있는데도 에너지가 드니까 호흡이 씩씩대는 겁니다. 그런데 꿈을 안 꾸고 잘 때는 ‘이 사람이 죽었나, 살았나’ 할 만큼 숨을 쉬는지 안 쉬는지 모를 정도예요. 그것처럼 명상을 할 때도 망상을 안 피우고 편안하게 있으면 숨을 쉬는지 안 쉬는지 모를 정도로 호흡이 부드러워집니다.

호흡을 알아차린다는 것은 곧 감각을 알아차린다는 뜻입니다. 숨이 들어오고 나가면서 콧구멍 속이나 콧구멍 끝이나 윗입술 부위를 자극하잖아요. 내가 호흡을 하는 줄 감각을 통해 아는 거예요. 눈으로 호흡이 보이는 것도 아니고, 귀로 소리가 들리는 것도 아니고, 냄새가 나서 아는 것도 아니고, 맛으로 아는 것도 아니고, 상상해서 생각으로 아는 것도 아니고 감촉을 통해 숨이 들어오고 나가는 것을 내가 아는 거예요.

그런데 가끔 생각으로 호흡을 알아차리는 것이라고 착각하는 사람이 있어요. 실제로 호흡을 알아차리는 것이 아니라 생각으로 호흡이 ‘들어온다, 나온다, 들어온다, 나온다’ 하는 거예요. 이건 망상에 들어갑니다. 눈을 딱 감고 감각으로 호흡을 알아차려야 해요. 호흡을 알아차린다는 말은 지금 그 감각을 내가 알아차리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거친 호흡은 통증처럼 거친 감각이니까 굳이 주의를 안 줘도 저절로 알아집니다. 그러므로 거친 호흡을 알아차리는 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아요. 미세한 호흡을 알아차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미세한 호흡을 내가 알아차린다는 말은 콧구멍 주위의 미세한 감각을 알아차린다는 뜻입니다. 우리 몸 전체에서는 미세한 감각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호흡을 늘 하고 있지만 자기가 호흡을 하는지도 모르고 살 듯이, 몸에 미세한 감각이 일어나는데도 그걸 잘 몰라요. 가끔 ‘나도 모르게 그랬다’라고 할 때가 있죠? 예를 들어 가려움이라는 감각이 있는데 잘 모르다가, 그게 심해지면 나도 모르게 손이 가거나 몸이 움직여지는 거예요. 그런 미세한 감각을 알아차리는 훈련을 자꾸 하게 되면 느낌을 알아차릴 수 있게 되고 느낌을 알아차리면 감정에 휩쓸리지 않을 수 있게 됩니다.

감각과 느낌은 아주 밀접하게 관계되어 있어요. 예를 들어, 남이 좋은 말이라고 했지만 그 말을 듣는 나는 기분이 약간 나쁠 수 있습니다. 스님이 ‘당신, 그거 잘못했어요’ 이렇게 말해줬다고 합시다. 결과로 보면 나에게 이익이 되는 말이지만, 지적을 받으면 기분은 나빠요. 따지고 보면 나한테 이익 되는 말인데도 순간적으로 불쾌감을 느끼게 됩니다. 이 불쾌감에 확 휩쓸리면 지적에 반발하게 되고 상대가 미워집니다.

그런데 불쾌감은 느끼더라도 내가 그 불쾌감에 휩쓸리지 않으면 미운 감정은 안 일어납니다. 그 얘기를 들을 때 내가 불쾌감을 탁 알아차려 버리면 거기서 멈출 수 있어요. 그 불쾌감은 칭찬해주면 좋아하고, 비판하면 싫어하는 내 까르마로 인해 자동으로 일어나는 겁니다.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업식으로 인해 그런 반응이 자동으로 일어나는 거예요. 그러니 ‘불쾌해 하면 안 된다’ 이런 얘기는 해봐야 소용없어요. 자동으로 불쾌해지도록 업식이 이미 형성돼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불쾌하다는 감정을 알아차리지 못한 채 그저 상대를 미워합니다. 그러나 불쾌함이 아주 미세하게 일어날 때 내가 그걸 딱 알아차려버리면 불쾌감이 일어날지언정 금방 사라져버립니다. 그러면 미워하는 감정은 안 일어나요.

이처럼 자신의 까르마로부터 느낌이 반응하고, 느낌에 의해 감정이 일어나고, 이 감정에 휩쓸려서 말과 행동이 거칠어지는 게 우리의 삶입니다. 조금 이성적인 지혜가 있는 사람은 감정은 있더라도 억눌러서 제어를 해요. 바깥으로 행동이 나가지 않으니까 남이 볼 때는 아주 훌륭한 사람이지만 본인은 괴로워요. 감정을 억누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명상을 해서 이런 자기의 감정 상태를 알아차리면 괴롭지가 않습니다. 감정을 억눌러서 제어하는 게 아니라, 감정을 알아차림으로 해서 감정이 해소가 되는 거예요. 그러니 거친 언행이 나오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자기 안에서도 스트레스를 받지 않게 됩니다.

여러분들은 대부분 기분 나쁠 때 참아요. 이미 생겨난 감정을 억누르고 참는 거죠. 결과를 보면 참는 것이 좋긴 합니다. 손실이 안 생기니까요. 그러나 본인은 스트레스를 받는 거예요.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것은 괴롭다는 뜻이잖아요. 그러나 느낌과 감정을 초기에 딱 알아차리면 바로 해소가 됩니다. 참는 것과는 성격이 달라요. 알아차려서 해소가 되면 스트레스가 쌓이지 않습니다. 쾌(快)하고 불쾌(不快)한 것은 늘 일어나지만, 자기 안에 어떤 찌꺼기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이런 상태로 나아가기 위해서 명상을 하는 거예요.”

환경오염을 어떻게 막을 수 있을지 묻는 질문도 있었습니다.

일회용 사용으로 인한 환경오염을 어떻게 막을 수 있을까요

“환경 문제가 심각한데 일회용 사용에 깊이 빠진 현대인들을 어찌하면 좋을까요?”

“어찌할 방법이 없습니다. 우리부터 불편하더라도 적게 소비하는 실천을 해나가야 합니다. 첫째, 가장 먼저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적게 구입하고, 적게 소비하는 것입니다. 둘째, 만약 구입을 했다면 두 번, 세 번, 수명이 완전히 다할 때까지 사용해야 합니다. 셋째, 더 이상 사용을 못하겠으면 분리수거를 잘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렇게 해도 해결이 안 되는 것이 있으면, 과학 기술이 필요합니다. 분해가 되도록 생산을 하는 겁니다. 비닐 같은 것이 필요하다면, 분해되는 비닐을 생산하든지, 폐비닐을 다시 환원시키는 기술을 개발해야 합니다.

이런 것들이 종합적으로 실천되어야 합니다. 소비자가 지구 환경을 파괴하는 문제는 적게 쓰는 방식으로 해결해야 합니다. 그래서 정토회의 환경 운동 모토가 ‘적게 먹고, 적게 쓰고, 적게 자는 삶’이잖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게 사용할 뿐이지 사용하긴 해야 하잖아요. 그래서 일단 구입한 물건은 한 번 쓰고 버리지 말고, 두 번, 세 번, 끝까지 사용해야 합니다.

지난번에 선거할 때 일회용 비닐장갑을 하나씩 받았잖아요. 여러분들 대부분은 투표하고 나서 비닐장갑을 쓰레기통에 다 버렸을 거예요. 그런데 저는 그 비닐장갑을 가져와서 농사지을 때 계속 사용하고 있어요. 아침에 상추 딸 때 사용하고 나서 씻어서 말렸다가 또 쓰고, 이러고 있습니다. 선거가 끝나고 나서 지금까지 열 번도 더 사용했는데 아직도 사용 할만 해요. (모두 웃음)

첫째, 적게 구입하고, 둘째, 기왕에 구입했으면 더 이상 사용하지 못할 때까지 사용하고, 셋째, 더 이상 사용할 수 없으면 분리수거하고, 넷째, 그래도 남는 것은 다시 자연으로 환원되도록 기술 개발을 한다.

이렇게 '쓰레기 제로'를 목표로 하면 완전히 쓰레기가 없도록 하지는 못하지만, 쓰레기의 양을 많이 줄여나갈 수가 있습니다. 이렇게 실천활동을 해나가는 게 중요합니다. 나 하나 실천한다고 무슨 도움이 되느냐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이 세상에 모든 것들은 아주 작은 것 하나가 모이고 모여서 이루어지는 겁니다.”

투표 날에 받은 비닐장갑을 아직도 사용하고 있다는 스님의 말에 생방송 현장에 앉아 있던 법사님들도 크게 웃었습니다.

이 외에도 다양한 질문이 있었습니다.

  • 딸이 3살 때 남편과 이혼하고, 딸을 남편에게 보냈습니다. 딸은 새엄마를 친엄마로 알다가 24살에 친모가 있는 것을 알게되었고, 올해 1월부터 저와 살게되었는데 생활 습관이 많이 다릅니다. 딸과 친구처럼 지내려고 하지만 분별심도 일어나고 미래가 걱정됩니다. 어떤 자세로 아이를 지켜보고 돌봐주어야 할까요?
  • 10차 천일결사의 명심문이 '나는 행복은 전하는 수행자 입니다' 입니다. 명심문을 접할 때마다 '내가 지금 안 행복한데 누구한테 행복을 전하란 말인가?' 하는 생각이 올라옵니다. 마음은 없는데 입만 뻥긋거리고 있습니다. 어떤 마음을 가지고 명심문을 대해야 할까요?
  • 정토회가 앞으로 나아갈 방향과 취지는 충분히 인지하고 그것을 따를 것입니다. 그러나 법당의 상황, 지역의 특성, 정회원 일반회원의 수준 등을 고려하여 모둠활성화를 우선으로 모둠을 짰는데, 모둠을 구성할 때 무조건 지역별로 주간과 저녁을 통합해야 한다고 강요하니까 정토회에 반감이 생깁니다. 의욕이 상실되어 갈팡질팡하는 저는 어떤 마음으로 부총무 소임을 행해야 하겠습니까?
  • 코로나로 인한 사회거리두기로 모임이 운영되지 않은 상태가 오래 지속되니 온라인으로만 소통하는데 어려움이 있습니다. 두달 여 동안 3분의1 정도의 참가자들이 앞으로 함께하기 어렵다고 카톡방에서 빠져나간 상황입니다. 어떤 마음으로 이 상황에 임해야할까요?
  • 모둠에 편성되지 못한 일반회원 중에도 개인사정에 좋아지면 언제든 모둠 편성이 가능한 회원들이 많습니다. 따라서 일반회원을 관리하는 담당자도 법당의 일들을 잘 알고 있어야 적절한 곳에 일반회원들을 배치할수 있습니다. 법당 운영회의에 모둠장뿐아니라 일반회원을 관리하는 담당자도 참여하도록 하는건 어떨까요?
  • 이번 코로나19를 계기로 한 시대의 문화적 패러다임이 바뀌는 그 출발선에 저희가 살고 있는 듯합니다. 스님께서는 어떻게 미래를 예견하시는지 궁금합니다.
  • 저희 법당은 현재 비싼 렌트비를 충당하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코로나 사태로 온라인 법회 참가자는 늘었지만 재정이나 활동가가 늘어난 것은 아닙니다. 기존 법당을 폐쇄하고 온라인 법당으로 전환하면 어떨까요?
    ...

모든 질문에 대해 답변을 마치고 나니 1시간 30분이 훌쩍 지나 있었습니다. 조금 늦어지긴 했지만 스님은 생방송을 시청한 사람들과 소통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러면 오늘 법문을 들은 소감을 실시간 채팅창에 한 번 올려보세요. 어떤 얘기들을 하는지 제가 한 번 보겠습니다. 자, 올라오기 시작하네요.”

순식간에 수백 개의 소감이 올라왔습니다. 스님은 그 중 눈에 띄는 몇 가지를 읽어 주었습니다.

‘생방송의 묘미죠.’
‘스님의 법문을 듣고 나면 대청소한 기분입니다.’
‘스님, 사랑해요.’
‘선거용 비닐장갑 이야기 재미있었습니다. 수행자적 관점을 다시금 점검합니다.’
‘건강하세요.’
...

앞부분에 소리가 안 들린 부분을 속기로 올려달라는 제안도 올라왔습니다. 스님은 집착을 놓으라고 말했습니다.

“별 얘기 없었어요. 봄이 왔다. 꽃이 예쁘다. 꽃 한 송이 꽂았다. 이런 얘기만 했지 아무 중요한 내용도 없습니다. 집착을 놓으세요. 스님의 하루팀에서 내일 홈페이지에 올려준다고 합니다.”

생방송을 마치자 스님은 지난주에 이어 농사일을 도와주러 온 김제동씨와 함께 점심 식사를 했습니다.

오후에 김제동씨가 행자님들과 함께 농사일을 하고 있는 사이 스님은 찾아온 손님들과 연이어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오후 내내 손님들을 연이어 만난 후 저녁 무렵에는 김제동씨와 함께 엄나무 순을 땄습니다.

지난 번에 엄나무 가지를 자르다 말았던 수련원 옆 담장으로 갔습니다. 여전히 잘라야 할 가지들이 많았습니다. 스님이 수레에 가득 엄나무 가지를 담아오자, 법사님들은 곧바로 엄나무순을 따는 울력을 시작했습니다.

찬 바람이 강하게 불기 시작하더니 하루해가 저물었습니다. 저녁 7시가 되자 어김없이 마음나누기를 시작했습니다.

“오늘 어떤 일을 했는지, 일해 본 소감은 어땠는지, 무엇을 알아차렸는지, 내일은 어떤 일을 할 계획인지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오늘은 생방송을 하다가 방송 사고가 난 일을 함께 겪으며 서로가 서로에게 느낀 점이 많았습니다.

“제가 오디오 세팅을 실수해서 방송 사고가 났는데, 마음이 너무 무거웠습니다. 지난주 스님의 법문을 떠올리며 나는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하면 괴롭지 않을 수 있을까 돌이켜 보았습니다. 그래도 시청자들에게 생방송이 주는 묘미를 보여주었다는 것에 위안을 삼으면서, 곧바로 대책회의를 하면서 마음이 가벼워졌습니다.”

김제동씨도 함께 마음 나누기에 참석했습니다. 행자님들이 돌아가며 오늘 일해 본 소감을 말한 후 마지막으로 김제동씨도 하루를 함께 보낸 소감을 이야기했습니다. 특히 방송에 대해서도 한 마디를 해주었습니다.

“리허설을 철저히 하는 것도 좋지만, 역사가 70년 된 방송에서도 그런 방송사고는 생기거든요. 그래서 저는 ‘이런 건 큰 문제 아닌데, 방송국에서도 다 그런데 뭐’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늘처럼 오디오가 잘 안 들리는 사고가 생겼을 때는 그냥 스케치북에 글을 써서 한 장 한 장 넘겨가며 보여줘도 괜찮아요. 그러는 동안 스님도 물 좀 드시고, 여러분도 물 좀 드시고요. 대체 영상을 빨리 올리는 것도 방법입니다. 일단 대체 영상을 내보내고, 한쪽으로 ‘스님, 지금 방송 중단 했습니다’ 이렇게 알려주면 됩니다.

그런 사고가 일어났을 때 방송국에서 제일 먼저 하는 일은 진행자의 화면을 가려주는 거예요. 라디오의 경우에는 진행자의 마이크를 제일 먼저 내립니다. 그래야 ‘아이 씨, 왜 이래!’ 이런 말이 안 나가거든요.” (모두 웃음)

두북 수련원에는 주말마다 봉사자들이 계속 찾아오고 있는데, 봉사자 관리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나왔습니다. 소감 나누기를 마친 후 스님은 봉사자와 함께 일하는 자세에 대해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지금 두북 수련원에서 여러분이 해야 할 일은 농사를 얼마나 잘 짓느냐가 핵심이 아니에요. ‘일과 수행의 통일’을 체험하는 수련 프로그램을 이곳에 정착시키는 게 지금 여기에서 제일 큰 과제입니다. 설령 농사를 짓다가 사람이 부족해서 농사를 망친다 하더라도 그건 부차적인 거예요. '일과 수행의 통일'을 위한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이 점을 법사님과 여러분이 명심하셔야 해요.

정의의 핵심은 공평입니다

우선 사람들이 여기에 봉사를 왔을 때는 일감 안배를 잘 해야 해요. 예를 들어 비닐하우스에 일거리가 오전 오후로 나누어 7명이 일할 만한 양이라고 합시다. 그런데 봉사자를 15명이나 데려가면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 생깁니다. 아예 놀 수는 없으니까 그 중 몇 명은 밭둑에서 쑥을 뜯거나 위쪽에 올라가서 머위를 뜯어오거나 하게 돼요. 그러면 나중에 집에 돌아갈 때 문제가 생깁니다. 학교에서 돌을 운반한 사람들은 빈손으로 돌아가는데, 비닐하우스 쪽에서 여유 있게 일한 사람들은 일도 수월했을 뿐 아니라 돌아갈 때 양손에 산나물을 들고 가게 돼요. 상추라도 뜯었으면 그 상추 일부를 얻어가게 마련이잖아요. 이러면 균형이 맞지 않습니다. 정의의 핵심은 평등이에요. 이렇게 봉사자를 운영하는 것은 평등하지 못한 겁니다.

여러분이 앞으로 수행 차원에서 이 문제를 풀려면, 봉사자가 10명이 필요하다고 요청을 받았다고 해서 무조건 10명을 보내주면 안 돼요. 어떤 일인지를 살펴보고 점검해서 ‘이 정도 일이라면 자원봉사자가 몇 명 정도 가서 어떻게 하면 되겠다’, ‘오전만 딱 하고 오면 되겠다’, ‘오후까지 하고 오면 되겠다’ 이런 걸 먼저 파악해야 합니다. 이렇게 일의 종류와 인원을 정한 후에 대중부에 요청을 해야 합니다. 그냥 오는 대로 받으면 안 돼요. 계획을 잘 세워서 요청한 만큼 봉사자를 받고, 못 오거나 적게 오는 건 할 수 없지만 초과해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봉사자들이 왔을 때 일감이 딱 맞게 돌아가도록 해야 합니다. 이렇게 균형을 잡아줘야 합니다.

그리고 수확한 채소를 나눌 때도 공평성을 지켜야 해요. 만약에 상추가 남아서 봉사자들이 가져가도 된다고 할 때, 상추밭에 가서 수확하는 일을 한 사람만 상추를 주고, 다른 곳에서 일한 사람에게는 안 주면 안 돼요. 예를 들어 오늘 30명이 왔다면 한 사람에게 조금씩 주더라도 30봉지를 딱 마련해서 다 한 봉지씩 가져가도록 해야 합니다. 공사를 했든, 돌을 주웠든, 무슨 일을 했든, 다 똑같이 나눠줘야 한다는 거예요.

봉사자와 함께 일하는 자세

공적인 일을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공평이에요. 평등한 입장을 유지해야 합니다. 저도 지금까지 살아오면서도 그걸 지키려고 얼마나 노력했는지 몰라요.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섭섭하다는 사람이 수도 없이 많습니다. 그러나 이 원칙을 지켜줘야 수행 단체가 말썽 없이 오랫동안 유지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너무 원칙과 효율만 내세워도 안 됩니다. 지금은 오히려 일부 임원들이 너무 효율을 중시해서 문제가 되기도 합니다. 업무 효율이라는 측면에서만 일을 추진하다 보니 수행자가 아니라 회사 직원을 관리하듯이 태도를 취하는 거예요. 이렇게 되면 또 안 돼요. 우리는 수행 공동체이기 때문입니다.

그 사이에서 균형을 잘 잡아야 합니다. 아주 편안하게 하되 자칫 잘못하면 사적으로 흐를 위험이 있으니 조심해야 하고, 공적으로 한다고 너무 엄격하게 굴어서 그냥 회사 직원 관리하듯이 해도 안 돼요. 효과적으로 일하는 방법을 자꾸 얘기하는 걸 보니, 여러분은 자칫하면 봉사자들을 회사 직원 관리하듯이 관리할 소질이 좀 있어요.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봉사자들이니까 편안하게 해주되 항상 공공성을 지켜줘야 해요. 그래서 봉사자들이 찾아오면 항상 입재식과 회향식을 해야 하는 겁니다. 그래야 찾아오는 봉사자들이 공공성에 대해 인식을 하게 됩니다.

일과 수행의 통일을 실현할 수 있는 시스템을 정착시키는 게 지금 가장 큰 과제입니다. 이렇게 운영하면 참여하는 사람들은 좀 섭섭할 수가 있어요. 섭섭해도 이건 어쩔 수가 없어요. 이곳 두북 수련원은 앞으로 자원봉사자가 주말마다 수백 명이 오게 될 수도 있습니다. 법회가 대부분 온라인으로 전환되고 법당 관리 업무가 적어지게 되면, 문경 수련원이나 두북 수련원에 많은 사람들이 봉사를 하러 오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금은 이곳에 찾아오는 봉사자들을 모두 수행을 중심으로 운영해 나갈 수 있게 공공성을 확보하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스님, 감사합니다.”

행자님들은 봉사자와 함께 일하는 방법에 대해 자세하게 안내해준 스님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두북 수련원의 당면 과제에 대해 구체적으로 이야기를 해주시니 행자님들에게는 스님의 이야기기가 더욱더 귀에 쏙쏙 들어왔습니다.

의논할 내용이 많다보니 평소보다 1시간 더 늦게 밤 9시에 모임을 마쳤습니다.

내일부터는 4박 5일 동안 법사단수련이 진행됩니다. 매일 울력을 2시간씩 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하루 종일 정토회가 장기적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토론을 할 예정입니다.

전체댓글 47

0/200

혜당

감사합니다 ~~♡

2021-01-13 12:16:30

선수연

감사합니다~^^

2020-04-30 10:38:21

정미영

스님의 글에 많은 감동과 배움을 느낍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2020-04-29 15: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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