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0.4.20 정토불교대학 제2강, 두릅 따기
"인색한 남편 때문에 못 살겠어요"

안녕하세요. 오늘은 정토불교대학 제2강이 두북 수련원에서 생방송으로 열렸습니다.

생방송을 시작하기 전 스님은 찾아온 손님과 차담을 나누었습니다. 오전 10시가 가까워지자 가사와 장삼을 수하고 카메라 앞에 앉았습니다.

코로나19로 인해 4월 한 달 동안은 스님이 직접 생방송으로 정토불교대학 강의를 하기로 했습니다. 오늘은 두 번째 시간으로 강의 주제는 ‘불교의 목표’입니다.

먼저 스님은 지난 1강에서 배운 불교란 무엇인지에 대해 다시 한번 요약해서 설명한 후 2강 주제에 대해 설명을 이어갔습니다.

“불교의 궁극적인 목표는 내가 지금 여기에서 열반과 해탈의 상태에 이르는 것입니다. 즉, 지금 여기에서 내가 자유와 행복의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궁극적 목표라 할 수 있어요. 죽어서 좋은 데 간다, 돈을 많이 번다, 지위가 높아진다, 오래 산다는 것 등은 나중에 부차적으로 따라올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여기에서 내 마음을 고요 적정한 상태로 유지하는 것이 불교 수행의 궁극적인 목표예요. 이런 상태를 유지하려면 무지의 상태로부터 깨어나야 합니다.”

스님은 무지를 깨뜨리는 법에 대해 부처님 제자 이야기부터 최근 즉문즉설, 어제 있었던 일을 예시로 들어주며 자세히 설명해주었습니다.

인색한 남편 때문에 못 살겠어요

“즉문즉설 강연에서 어떤 60대 중반의 여성이 질문했어요.

‘스님, 남편 때문에 못 살겠어요.’

‘왜요?’

‘남편이 너무 인색합니다.’

‘어떻게 인색해요?’

‘돈을 다 자기가 가지고 저에게는 딱 생활비만 줍니다.’

‘그것 말고 남편에게 또 어떤 문제가 있어요?’

‘그것 빼고는 나무랄 데가 없어요.’

‘그렇게 못 살겠으면 이혼하면 되잖아요?’

‘안 그래도 이혼을 하려고 했는데, 유튜브로 스님 말씀을 듣고 조금 망설이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다시 물어봤어요.

‘생활비를 얼마 줍니까?’

‘조금 줘요.’

‘그러지 말고 구체적으로 이야기해봐요. 한 달에 생활비를 얼마나 줘요?’

‘아휴, 창피해서 말 못 해요. 조금밖에 안 줘요.’

‘자꾸 그러지 말고 얼마 주는지 말해 봐요.’

‘한 달에 삼백만 원밖에 안 줘요.’ (모두 웃음)

그 대답을 듣고 강연장에 있던 모든 사람이 웃었습니다. 매달 생활비로 삼백만 원을 주는데 그게 조금이라면 남편이 부자라는 얘기잖아요. 질문자는 남편이 돈이 많은데 나한테 조금밖에 안 줘서 불만인 거예요. 그런데 다른 사람들은 다 웃어도 이 분은 자기 문제가 해결이 안 된 눈치였어요. 제가 다시 물었습니다.

‘남편이 돈이 없어 어려운 상태인데도 매달 삼백만 원씩 준다면, 인색한 사람이에요, 좋은 사람이에요?’

‘어려운데 삼백만 원을 주면 좋은 사람이지요.’

‘그러면 남편이 돈이 많은데 삼백만 원을 주면 어때요?’

‘나쁜 사람이지요.’

‘그럼 질문자의 남편이 좋은 사람이 되려면 사업이 망해서 재산이 다 없어지면 되겠네요?’

‘... 네?’

‘질문자는 남편이 부자인 게 나아요, 가난한 게 나아요?’

‘아, 그야 부자인 게 낫죠.’

‘질문자는 남편과 나이 차이가 얼마나 나요?’

‘일곱 살 차이예요.’

‘우리나라 남녀 수명이 평균적으로 일곱 살 정도 차이가 납니다. 그러면 일반적으로 가정할 때 남편이 질문자보다 14년은 먼저 사망할 수 있다는 이야기 아니에요?’

‘네.’

‘그런데 남편은 질문자한테만 인색해요, 다른 사람한테도 그래요?’

‘다른 사람한테도 그래요.’

‘그럼 남편이 떠나면 그 재산은 모두 질문자 거잖아요. 그러니 ‘당신, 그거 아껴봐야 결국 다 내 거야’ 이렇게 생각하면 되잖아요.’ (모두 웃음)

‘스님, 잘 알겠습니다.’

결국 질문자도 얼굴이 환해져서 웃었어요. 그런데 이 대화에서 ‘어떻다’라고 결론이 난 건 없습니다. 남편이 변한 것도 아니에요. 질문자가 ‘남편이 돈을 많이 안 준다’라는 한 생각에 사로잡히니까 질문자에게는 남편이 나쁜 사람이 되는 겁니다. 그렇지만 이렇게 대화를 하는 과정에서 ‘남편이 괜찮은 사람이네’라고 생각이 바뀐 거예요.

통찰력이 생기면 괴로움이 없어진다

우리는 어떤 사물을 볼 때 한 면만 봅니다. 윗면은 정사각형이고 옆면은 직사각형인 직육면체를 서로 다른 각도에서 본다고 해봅시다. 앞면만 보면 직사각형으로 보이고, 윗면만 보면 정사각형으로 보이겠지요? 그런데 우리는 그 한 면만 보고 ‘정사각형이다’, ‘직사각형이다’라고 이야기합니다. 잘못 본 건 아니에요. 한 면만을 보고 물체의 모양 전체라고 단정을 지은 겁니다. 이걸 편견, 또는 착각이라고 합니다.

방금 소개해드린 질문자와 대화는 앞만 보고 있으면 ‘뒷면은 어때요?’ 하고 뒤를 보게 하고, 윗면만 보고 있으면 ‘아랫면은 어때요?’ 하고 아랫면을 보게 하고, 왼쪽 면만 보고 있으면 ‘오른쪽 면은 어때요?’라고 물어서 오른쪽을 보게 하는 거예요. 그렇게 해서 위도 보고 아래도 보고 앞도 보고 뒤도 보고 왼쪽도 보고 오른쪽도 보게 한다는 것은 이 물체의 전모를 보게 한다는 것입니다.

전체를 보는 것을 ‘통찰력’이라고 합니다. 이 통찰력을 다른 말로 ‘지혜’라고 합니다. 한 면만 보고 단정하면, 자기는 사실인 것 같은데 실제로는 사실이 아니에요. 이것이 오류입니다. 그런데 전체를 다 보는 통찰력이 생기면 이 편견이 사라지게 되죠. 편견을 가졌을 때는 괴롭다가 통찰력을 가지게 되면 괴로움이 사라져 버립니다.

우리의 모든 괴로움은 나의 무지로부터 일어납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것만 무지가 아니에요. 잘 못 알고 있는 것도 무지예요. 이런 무지의 상태에서 깨어나게 되면 괴로움이 사라집니다.

어떤 사실을 내가 모르거나 잘못 알고 있으면 부정적인 마음이 일어납니다. 상대가 미워지거나 화가 나거나 짜증이 나거나 불안해져요. 그 사람이 잘못해서 내가 괴로워진 게 아니라 그 사람이 잘못한 것처럼 생각되기 때문에 괴로운 거예요. 그런데 내가 사실을 사실대로 알게 되면 부정적인 마음이 사라집니다. 상대가 잘못했다고 생각해서 미워했다가 ‘아니다, 내가 잘못했다’ 하고 나의 잘못을 뉘우쳐야 된다는 뜻이 아니에요.

다른 예를 또 들어볼게요. 제가 어떤 분에게 ‘이 물건이 필요해요?’라고 물어보니까 필요하다고 했어요. 그래서 제가 ‘알았어요’ 하고 물건을 놓고 문을 닫았는데, 갑자기 문이 세게 닫혔어요. 나중에 만나서 그 이야기를 하는데, 이 분이 오해를 하고 있었어요. 본인은 필요하다고 이야기했을 뿐이고, 스님이 필요하시면 가져가셔도 된다는 입장이었는데, 스님이 기분이 나빠서 문을 쾅 닫고 가버렸다고 오해를 한 것이었습니다.

우리의 일상이 이렇습니다. 같은 현상을 봐도 사람들이 생각하거나 느끼는 것이 서로 달라요. 정말 내가 화가 나서 문을 쾅 닫을 수도 있지만, 그것과 상관없이 바람이 불어 문 자체가 세게 닫힐 수도 있는 거죠. 살다 보면 이런 일이 계속 벌어집니다.

제가 실례를 하나하나 드는 이유는 깨달음이 무엇인지 알려드리기 위해서예요. 깨달음이라는 것을 너무 추상적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많은 오해가 발생합니다. 괴로움은 다 무지로부터 일어납니다. 그런데 무지를 깨우친다고 해서 어떤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에요. 홍수가 났는데 깨달으면 내리던 비가 멈춘다든가, 가뭄이 들었는데 깨달으면 오지 않던 비가 내리는 게 아닙니다. 그런 일이 있을 때 불안하고 두렵고 짜증이 난다면, 그 괴로움은 나의 무지로부터 온다는 것입니다. 깨달으면 그 괴로움은 사라집니다. 괴로움이 사라지면 심리적으로 편안한 상태에서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대책을 세울 수 있습니다. 가뭄이 들었다면 지하수를 판다든지, 냇물을 끌어 올 수 있겠죠. 홍수가 났다면 일단 피하고, 예방을 하기 위해서 둑을 쌓는다든지 댐을 막을 수도 있겠죠. 이렇게 우리에게 주어진 문제들을 해결해 나가면 됩니다.

깨달음이란 일상생활 속에서 내가 이해하고 실천하고 경험하는 겁니다. 일상 속에서 괴롭다. 슬프다, 불안하다, 초조하다, 미워한다, 원망한다, 답답하다, 이렇게 부정적인 심리가 일어나면, 그 마음을 알아차리고, 그런 부정적인 마음이 일어나는 원인이 무엇인지 살펴봐야 합니다.

‘내가 이걸 잘못 알았구나.’
‘내가 집착을 했구나.’
‘내가 오해를 했구나.’

이렇게 원인을 발견하게 되면 현재의 부정적 심리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됩니다. 그런데 알아차리면 그 마음이 바로 없어지기도 하지만, 오랫동안 마음이 부정적으로 작용하는 게 습관화되어 있을 경우, 상황에 부딪혔을 때 화가 저절로 나고, 짜증이 저절로 납니다. 부정적인 심리를 알아차려도 잘 안 됩니다.

깨달음이란 무엇인가

그래서 연습을 좀 해야 합니다. 화가 딱 일어나면 ‘내가 또 놓쳤구나’, ‘내가 또 집착을 했구나’ 이렇게 연습을 계속하면 점점 좋아집니다. 반복하면 나쁜 습관이 들기도 하지만, 나쁜 습관이 없어지기도 합니다. 이것을 불교에서는 ‘업장소멸’이라고 말합니다. 기도를 많이 하면 업장이 소멸된다는 뜻이 아니에요.

항상 먼저 이치를 깨우쳐야 합니다. 그러나 몸과 마음에 습관이 배어 있기 때문에 이치를 깨쳐도 무의식적으로 반응을 하게 되어있습니다. 그래서 반복해서 연습을 해야 해요. ‘놓쳤구나’ 하고 알아차리고, 넘어지면 일어나고, 이렇게 연습을 자꾸 하다 보면 어느 순간 깨어있음이 유지가 됩니다.

이 모든 게 한꺼번에 되는 것이 아니라, 연습을 꾸준히 하게 되면 출발할 때보다 조금씩 나아지는 겁니다. 예전에는 불안했던 것이 이제는 덜 불안하고, 예전에는 화를 잘 냈는데 이제는 적게 내게 되고, 예전에는 화가 머리끝까지 났는데 이제는 덜 나게 되고, 이렇게 자기 변화가 일어나게 됩니다. 이렇게 공부하는 것이 불교예요.

내가 옳다고 생각하고 집착을 했는데, 이쪽도 보고, 저쪽도 보고, 위에도 보고, 아래도 보니, ‘어? 그게 아니네’ 하고 알게 되는 것이 깨달음입니다. 깨달음은 사실을 사실대로 보는 것입니다. 새로운 걸 보는 게 아니에요. 검은 것을 희다고 알고 있었는데 ‘사실은 검은 것이구나’ 이렇게 사실을 아는 게 깨달음입니다.

화를 내는 사람에게 ‘당신 지금 화났어요?’ 하고 물어보면 ‘내가 왜 화났어?’ 이렇게 정색을 하잖아요. 화를 안 내야 한다는 게 아니라 화가 났으면 ‘내가 화가 났구나’ 이렇게 아는 게 깨어있는 겁니다. 그런데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나는 화가 안 났어!’ 이렇게 말하면 화가 난 상태에 깨어있지 못한 거예요. 여러분은 자꾸 화를 내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니까 화가 안 났다고 주장을 하는 겁니다. 상대가 ‘당신 화났어’ 그러면 ‘내가 화가 났구나’ 이렇게 알아차리는 것이 깨어있는 겁니다. 깨달음은 ‘어떻게 해야 한다’, ‘하지 말아야 한다’ 하는 식의 어떤 의무나 책임의 문제가 아니에요.

‘내가 몰랐구나.’
‘내가 틀렸구나.’
‘내가 화가 났구나.’
‘그걸 내가 놓쳤구나.’

이렇게 깨달음이란 지금 있는 그대로의 상태를 알아차리는 겁니다. 모르면 물어서 알면 되고, 잘못했으면 뉘우치면 되고, 틀렸으면 고치면 됩니다. 그런데 자꾸 ‘안 틀려야 된다’ ‘알아야 된다’ ‘잘해야 된다’ 이런 생각을 하기 때문에 늘 후회하거나 잘난 척하게 되는 겁니다.

수행은 아주 쉽습니다. 여러분의 지금 상태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출발하면 돼요. 당장 짜증을 내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예전에는 몰랐지만 내가 짜증을 잘 낸다는 걸 알아나가는 겁니다. 고집을 당장 버리라는 것이 아니라 ‘내가 고집이 세구나’ 이렇게 자신을 알아나가는 겁니다. 당장 욕심 버리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욕심을 내니깐 이런 괴로움이 생기는구나’ 하고 알게 되는 겁니다. 지금 당장 자기를 고치는 게 아니라 지금 내가 어떤 상태라는 것을 알아가는 것이 수행입니다.

그래서 오늘부터 일주일 동안 여러분이 실천해봐야 할 과제는 이겁니다.

‘나의 상태를 있는 그대로 알기.’

다시 말해 사실을 사실대로 알기입니다. 모르면 ‘내가 모르는구나’, 틀렸으면 ‘내가 틀렸구나’, 짜증을 냈을 땐 ‘내가 짜증을 냈구나’, 내가 누군가를 미워하면 ‘내가 남을 원망하고 있구나’, 내가 무언가를 싫어하면 ‘내가 싫어하는구나’ 하고 아는 겁니다. ‘싫어하면 안 된다’, ‘미워하면 안 된다’ 이런 생각을 하지 말고, 내 상태를 있는 그대로 알아차려 보는 겁니다. 지금 일어나는 상태를 아는 게 진실이에요.

지금 여기 깨어있기

어떤 새로운 것을 배우라는 게 아니에요. 우주의 근본이 무엇이다 하는 식으로 어떤 새로운 것을 알아야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거짓된 ‘나’를 벗어던지면 그 속에 참된 ‘나’가 있다는 뜻도 아닙니다. 진실은 지금 일어나는 나의 상태를 아는 거예요. 쉽죠?”

“네!”

“오늘 여러분들에게 주어진 과제는 나에 대해서 알아차리기입니다.

‘내가 욕심이 많구나.’
‘짜증을 많이 내구나.’
‘내가 누구를 미워하는구나.’

이렇게 알아차려 보세요. 화를 벌컥 내놓고도 자신이 화난 줄을 몰라요. 그것은 앎이 없는 무지상태에 있는 겁니다. 우선 나의 상태 알아차리기를 해봅니다. 원인 규명은 안 해도 됩니다. 왜 화가 일어났는지 따질 필요가 없어요. 우선 지금 상태를 알아차려 보는 겁니다. 넘어졌으면, ‘넘어졌구나’, 앉았으면 ‘앉았구나’, 길을 가면 ‘길을 가구나’, 화가 나면 ‘화가 나는구나’, 욕심이 나면 ‘욕심이 나는구나’, 이렇게 나에 대해서 알아차려 봅니다.

법문이 끝나고 나서 도반들과 마음 나누기를 하게 되면, 똑같은 법문을 들었는데 서로 느낀 점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럴 때 나와 다른 것에 대해 짜증이 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것이 정상이에요. ‘다른 것이 정상인데 왜 짜증이 날까’ 하고 탐구를 해보면, 그것은 우리가 잘못 생각하고 있어서 그렇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세상은 조금씩 다른 게 진실인데. 같아야 된다고 잘못 생각하고 있었던 겁니다. 같아야 된다는 생각을 움켜쥐고 있으니, 다른 걸 보면 부정적으로 마음이 작용하는 거예요.

누구나 다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다

이렇게 공부를 해나가면, 살아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점점 좋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소나 말이 아닌 이상 좋아질 수밖에 없어요. (웃음)

누구나 다 이렇게 연습해 나가면 부정적인 마음의 상태로부터 벗어날 수 있습니다. 이를 부처님께서는 ‘그 어떤 괴로워하는 사람도 모두 그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다’라고 하셨어요. 본래 괴롭게 될 수밖에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누구나 이것을 탁 깨우치면 괴로움이 없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괴로움이 없는 사람을 부처라고 말하는 겁니다. 모든 사람은 다 부처가 될 수가 있습니다.

그러니 여러분들이 그런 희망을 가지셔야 합니다. 비록 지금은 내가 나에 대해서 깨어있지 못하여 내 상태를 정확하게 모르고 있고, 설령 알았다 하더라도 지금까지 살아온 습관 때문에 나도 모르게 화를 내지만, 조금만 이 원리에 따라 연습을 하면 누구나 다 좋아질 수 있습니다.”

생방송을 마치자마자 스님은 곧바로 봉화 정토수련원으로 출발했습니다.

지난주에 두릅을 따러 봉화에 갔는데 두릅이 덜 자라 있었습니다. 일주일이 지나서 다시 가보았습니다. 봉화 수련원에 도착하자마자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장비를 챙겨 뒷산을 올랐습니다.

일주일 만에 두릅이 얼마나 자랐을지 기대하며 한 걸음 한 걸음 옮겼습니다. 키가 큰 두릅나무 끝에 제법 새순이 자라 있었습니다.


스님은 톱을 단 긴 장대로 두릅나무 줄기를 아래로 당겨주었습니다. 그러면 나무 끝에서 한 사람이 두릅을 톡 땄습니다. 두릅나무는 날카로운 잔가시로 무장하고 있었습니다. 경사진 산비탈에서 두 사람이 손발을 잘 맞춰야 가시 몽둥이에 두드려 맞지 않을 수 있습니다. 호흡을 맞춰 두릅나무를 아래로 당기고, 두릅 순을 따고, 조심스레 나무를 원 상태로 돌려놓았습니다.


날씨가 아직 쌀쌀해서 두릅이 많이 자라지는 않았지만, 다 따고 보니 소쿠리에 절반 이상이 담겼습니다.

“자, 이제 밭 옆으로 가봅시다.”

뒷산을 내려와 다시 산을 넘어 밭으로 갔습니다. 이 곳에는 키가 작은 두릅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습니다. 밭에 도착하자 활짝 핀 복사꽃이 먼저 반겨주었습니다.

더 많은 두릅을 딸 생각에 설레는 마음으로 두릅나무를 둘러보았더니, 이 쪽에 햇볕이 덜 드는지 아직 새순이 하나도 올라오지 않았습니다.

“두릅도 못 땄는데 머위라도 뜯어갈까요?”

스님은 빈 손에 머위 몇 포기를 들고 수련원으로 돌아왔습니다.

“두릅 따러 다시 봄소풍이라도 와야겠어요.”

수련원으로 돌아와 스님은 원고 교정을 보고 서울로 출발했습니다.

서울에 도착하니 밤 8시가 넘었습니다.

내일은 평화재단에서 아침 7시 30분에 종교인 모임을 시작으로 저녁까지 하루 종일 회의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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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량광

저도 평소 짠돌이남편 때문에 불만이 많았는데 이 글보고 많이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스님

2022-03-20 23:01:52

김정숙ㅡ

공감이 되는 말씀에 많이 느끼고 배우게 됩니다ㆍ
스님! 좋은가르침에 감사 드립니다^^

2020-12-23 09:06:00

연화정

정말 제 남편 살아 있을때 모돈 주권 꽉 틀켜 쥐고 인색한 짠돌이라고 불평을 하면서 살았습니다. 세상
떠나고 전 재산 나 혼자 차지하고 편히 살고 있으니 이젠 미안함에 팍팍 쓸 수가 없습니다.

2020-12-18 10: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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