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0.3.18 용성조사 열반 80주기
“어렵다고 누구를 탓하고만 있지 말고, 우리가 작은 노력이라도..”

안녕하세요. 오늘은 용성조사 열반 80주기 기념일입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대중이 참석하는 모든 기념행사는 취소하고, 스님과 공동체 법사단 일부만 참석해 간소하게 다례제를 지냈습니다.

용성조사님이 열반에 든 음력 2월 24일이면 해마다 참배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지만, 오늘은 죽림정사 앞마당에 활짝 핀 매화만이 홀로 그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습니다.

오전 10시가 되자 다례제가 시작되었습니다.

다례제는 부처님의 가르침이 오늘 우리들에게 전해지기까지 과거 7 여래불, 69 조사, 7 대사 한 분 한 분을 기억하고 헌공하는 의식입니다. 큰 강당이 휑 하니 비었지만, 마음은 정성을 다했습니다.

“지심귀명례 서건동진 급아해동 역대전등 제대조사 천하종사 일체미진수 제대선지식”
(至心歸命禮 西乾東震 及我海東 歷代傳燈 諸大祖師 天下宗師 一切微塵數 諸大善知識)

인도에서부터 중국을 거쳐 한국에 이르기까지 역대로 법을 전해 받으신 조사님과 선지식님께 지극한 마음으로 한 배 한 배 절을 했습니다.

다례제가 끝날 무렵 장영수 장수군수님이 죽림정사를 찾았습니다. 스님은 반갑게 악수를 나눈 후 차담을 나누었습니다.

“차 한 잔 같이 하시죠.” (웃음)

마주 앉은 스님과 군수님은 코로나 이야기로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습니다.

“코로나 사태로 장수군은 상황이 어떻습니까?”

“저희 장수군은 코로나19로 인해 처음으로 인구수가 조금 늘었습니다. 청정 지역으로 이사 와서 건강하게 살겠다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새로운 마을 만들기 사업을 열심히 해보려고 해요. 귀촌하시는 분들에게 상하수도, 전기, 통신, 인프라 공사는 군에서 지원해 줄 생각입니다.”

“앞으로 코로나19와 같은 사태가 자주 찾아올 겁니다. 이런 사태는 결국 도시에서 밀집해서 살기 때문에 생긴 문제라고도 볼 수 있거든요. 이제 사람들의 삶의 방식이 이번 사태를 계기로 바뀌어 나갈 겁니다.”

곧이어 대화 주제는 용성조사님의 행적을 어떻게 기릴 것인가 하는 사업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갔습니다. 스님은 왜 용성조사님이 돌아가신 지 80년이 흘렀지만 세상에 제대로 알려지지 못했는지 그 이유를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용성조사님의 행적을 놓고 보면 사실은 국가에서 추앙해야 할 인물인데, 독립운동을 하다 보니 모든 활동을 숨겨서 하셨어요. 거기다가 신분이 스님이니까 더 숨겨야 했습니다. 원래는 해방이 되자마자 그 행적이 다 밝혀졌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어요. 용성조사님과 독립운동을 같이 했던 제자들은 대부분 탄압을 받아서 속퇴를 해버렸기 때문에, 그 정신을 이어받은 제자들이 소수였습니다.

일제에 부역하거나 침묵함으로써 탄압으로부터 살아남은 제자들은 대부분 불교계 종단의 중요 직책을 맡을 수가 있었지만, 일제 식민지 지배 시기 동안 이분들은 용성조사님과의 관계를 멀리 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불교계 스승으로서는 모두가 용성조사님을 존경했지만, 독립운동을 했던 공적은 제자들조차도 제대로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조사님의 독립운동에 대해 이야기하게 되면 ‘그럼 너는 그때 무슨 일을 했느냐?’ 하고 문제 제기를 받게 되니까요.

거기다가 종교인이다 보니 역사학자들조차 조사님에 대해 연구 활동을 하지 않았어요. 반면 한용운 스님은 시인이다 보니까 불교계가 아닌 문학인들에 의해서 그분에 대해 많은 연구 활동이 이루어졌죠. 그래서 외부에 알려지기로는 한용운 스님이 독립운동의 중요한 역할을 했고, 용성조사님은 그저 도장이나 빌려준 사람처럼 비치게 된 거예요. 특히 해방이 되고 나서 남북이 분단되니까 더욱더 독립운동의 흔적을 밝혀내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민주화가 되었으니까 저희들도 용성조사님의 업적을 더 많이 연구해서 세상에 알리는 일을 본격적으로 해나갈 계획입니다. 그래서 용성조사님은 단순히 종교인을 넘어서서 민족지도자로서 큰 역할을 하신 분이라는 것에 대해 재평가가 이뤄질 수 있게 하려고 합니다. 장수군 입장에서도 장수의 큰 자랑으로 여길 수 있는 분이에요.”

군수님은 스님의 설명에 공감하면서 한 가지 부탁드릴 일이 있다며 제안했습니다. 중고등 학생들을 위한 역사교육에 대한 내용이었습니다.

“우리 장수군에서 이렇게 큰 독립운동가가 태어났기 때문에, 새로 준비한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장수군에서는 올해부터 매년 중고등 학생들을 대상으로 ‘용성조사의 발자취를 찾아서’라는 주제로 수학여행을 다녀올 수 있게 하는 프로그램을 준비했습니다. 3.1 운동 100주년을 기념해서 학생들이 용성조사님의 독립운동 자금이 어떻게 쓰였는지 찾아가 보는 역사기행입니다. 정토회에서도 많은 도움을 주시면 좋겠습니다. 나라의 독립을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이 있었는지 학생들이 알게 되면 정말 좋을 것 같습니다.”

“네. 필요하면 저희가 교육청에 가서 직접 브리핑을 해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용성조사님이 마련한 독립운동 자금이 어떻게 쓰여졌는지 간단하게만 설명해 주었습니다.

“국내에서 모은 독립운동 자금은 주로 화과원을 거쳐 독립군들에게 전달되었습니다. 그리고 상해 임시정부로도 많은 자금을 보냈어요. 상해에 가면 홍커우공원에 윤봉길 의사 기념관이 있는데, 윤봉길 의사를 상해로 보낸 분이 용성조사님이에요. 연변에는 용성조사님이 세운 대각교당터가 있어요. 물론 지금은 백화점이 들어서 있긴 합니다만, 대신 저희가 설명은 잘해드릴 수 있습니다.

백두산 올라가는 길목에 ‘안도현’이 있는데, 그곳에는 용성조사님이 독립군과 그 가족들을 지원했던 대단위 농장이 있었습니다. 당시에 조사님은 명월촌에 700 정보, 봉년촌에 700 정보의 농장을 운영했습니다. 만약 학생들이 역사기행을 온다고 연락을 주시면, 저희 쪽에서 전문가를 파견해서 자세히 안내를 해드리겠습니다.

해방이 되고 나서 김구 선생이 귀국했을 때 상해 임정 요원 30여 명을 데리고 용성조사님이 입적한 대각사를 찾아왔습니다. 그때 김구 선생이 ‘스님께서 보내주신 자금으로 독립운동을 할 수 있었습니다’ 하고 인사하는 기록이 있는데, 당시 대각사 앞에서 찍은 사진이 최근에 공개가 되었어요. 사진 속에는 상해 임정의 핵심 요원 대부분의 얼굴이 나와 있습니다.

군수님께서 아주 좋은 프로그램을 마련하셨네요. 역사기행의 내용은 저희가 적극 지원을 해드리겠습니다.”

스님은 장수군과 적극적으로 협력할 것을 약속했습니다. 그리고 죽림정사 앞에 물빛공원에 장수군과 죽림정사가 협력해서 용성연수원을 건립하는 것도 의논했습니다.

“용성연수원이 지어지면, 청소년들이 이곳에서 용성조사님의 독립운동 정신을 배우는 곳으로 잘 사용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차담을 마치고 스님은 군수님과 함께 온 공무원 분들에게 신간 <지금 이대로 좋다>를 사인해서 선물했습니다.

군수님이 자리를 떠나고 스님은 곧바로 도문 큰스님에게 전화를 걸어 오늘 진행된 상황을 보고하고 안부 인사를 했습니다.

“큰스님, 법륜입니다. 오늘 장수군수 님을 만나서 죽림정사 앞 물빛 공원에 용성연수원을 건립하기로 합의를 마쳤습니다. 그래서 청소년들이 독립운동 정신에 대해 배울 수 있는 교육 공간으로 잘 사용하기로 했습니다.”

도문 큰스님은 용성조사님의 업적을 기리는 일을 평생을 바쳐 해오고 있습니다. 큰스님은 아주 기쁜 목소리로 대답했습니다.

“잘했어요. 잘했어. 감사해요.”

스님은 전화기 앞이지만 무릎을 꿇고 앉아 큰스님의 이야기를 경청했습니다.

“불심 도문 법사는 이제 몸뚱이를 바꿀 때가 된 것 같아요. 용성조사님이 오늘날 다시 온다고 해도 법륜 스님처럼 활동할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니 이제 불심 도문 법사는 법륜 스님에게 모든 걸 넘길게요.”

“제가 큰스님을 직접 찾아뵙고 보고를 드려야 하는데, 지금 코로나 때문에 일부러 안 찾아갔습니다. 저는 전국을 돌아다니기 때문에 혹시나 문제가 생겨서 큰스님에게 해가 되면 안 되잖아요. 코로나 사태가 조금 진정이 되면 직접 찾아뵙고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래요. 감사합니다.”

도문 큰스님은 몸이 아프시다고 하시면서도 목소리가 여전히 쟁쟁하셨습니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나이 육십이 넘은 지금까지도 큰스님이 호통을 치면 언제나 무릎을 꿇고 이야기를 경청하는 스님의 모습에서 스승의 뜻을 기리는 마음이 느껴졌습니다.

한편 BTN에서도 용성조사 열반 80주기를 맞이해 인터뷰 촬영을 하기 위해 죽림정사를 찾아왔습니다. 코로나19로 어려움에 처한 국민들을 위해 한 말씀을 해달라는 기자의 질문에 스님은 짧은 메시지를 남겨 주었습니다.

어렵다고 누구를 탓하고만 있지 말고, 작은 노력이라도 해나갑시다

“용성조사께서는 그 암울했던 시기에도 오늘날 우리들을 위해서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불교를 새롭게 하기 위해서도 많은 노력을 하셨습니다. 그것처럼 오늘날 우리들도 어려움에 대해 누구를 탓하고 있지만 말고, 우리 후손들이 이 좋은 법을 더 쉽고 바르게 배울 수 있도록 작은 노력이라도 조금씩 해나가면 좋겠습니다.”

인터뷰가 끝나고, 백용성조사기념사업회 신봉수 이사님과 함께 용성연수원을 짓게 되면 어느 장소에 지으면 좋을지 답사를 가보았습니다.

“지금 조성해 놓은 물빛공원을 가능한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자리를 정하는 게 좋을 거 같아요. 여기 유휴지에 건물을 지으면, 길도 그대로 두면 되고, 공원도 그대로 두면 되거든요.”

“네, 전문가들과 상의해서 잘 검토해 보겠습니다.”

죽림정사를 출발해 서울로 향했습니다. 차 안에서 스님은 도문 큰스님이 구술로 집필한 용성조사님의 행적에 대한 책을 읽었습니다. 부지런히 차로 달려 병원에 들렀다가 오후 4시에 서울에 도착했습니다.


코로나 사태로 모둠장 교육이 최소가 된 대신에 오후 5시부터 영상법문을 녹화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행정처와 법사단 관계자들과 논의한 결과 아직 조금 더 토론할 사안들이 남아 있어서 영상법문 녹화는 다음으로 연기했습니다.

그리고 어제 조계사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용성조사 열반 80주기 기념 심포지엄도 5월 15일로 연기했습니다.

내일은 하루 종일 행정처, 법사단과 함께 모둠 중심의 법당 운영에 대해 간담회를 가질 예정입니다.

전체댓글 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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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순

스승님을 대하는 스님의
모습에 눈물이 시큰 합니다.

2020-03-27 11:28:37

김복이

용성조사님의 업적 과 유훈을 위한 스님의
행보에 감사한 마음입니다 _()_

2020-03-26 07:46:11

밝은미소

전화기 넘어로 통화 하시면서도 무릎
꿇고 통화하시는 스님 자세?
스승님께 많이 배웁니다

감사합니다
훌륭하신 스님의 제자라고 하기에 아직도 턱없이
부족하고 부끄럽지만 훌륭하신
스승님을 가슴에 품고 살면서
많이 배우도록 하겠습니다

건강하십시요

2020-03-25 16: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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