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0.2.29 농사일, 경주 남산 산책
"흙담 위로 갖가지 봄꽃들이 피었습니다"

안녕하세요. 오전에 농사일을 한 후 오후에는 경주 남산을 산책했습니다.

두북 정토수련원의 아침이 밝았습니다. 추위가 누그러들고 어제보다 한결 따뜻한 날씨입니다.

어제 시금치, 열무, 쑥갓, 비타민채, 청경채를 심었는데, 오늘은 심은 자리에 물을 듬뿍 주었습니다.

“겉 표면에만 물을 주면 안 돼요. 속까지 스며들게 충분히 물을 줘야 해요.”


물통에 물을 받아 수차례 왔다 갔다 하며 물을 듬뿍 주었습니다. 땅을 충분히 적셔준 후 물탱크에서 물을 틀어 점적 호스에 물을 공급했습니다. 호스에서 물이 방울방울 떨어지며 다시 한 번 두둑에 물이 스며들게 했습니다.

날이 따뜻해지면 조만간 싹이 나 있는 모습을 볼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비닐하우스 측면에는 한랭사를 씌웠습니다. 나방이나 벌레가 들어오면 작물이 상할 수가 있는데, 농약을 치지 않고 유기농으로 작물을 키우기 위해서는 한랭사를 씌워두면 도움이 됩니다.

행자님들이 한랭사를 설치하는 동안 스님은 비닐하우스 아랫부분에 잡초를 뽑았습니다.

“비닐하우스 안에는 온도가 높으니까 벌써 잡초가 많이 자랐네요.”

행자님 한 분은 찢어진 비닐을 보수하는 일을 했습니다. 특히 아랫부분은 예초기를 돌리다가 찢어진 부분이 많았습니다. 투명 테이프로 하나 하나 구멍을 막았습니다.

어제보다 날이 많이 따뜻해졌습니다. 몸을 움직이니 이마에 땀이 나기 시작합니다. 비닐하우스 뒤쪽은 뒷산에서 내려온 물이 스며들어 땅이 질퍽하고 울퉁불퉁 했습니다. 이 곳은 모종을 키우는 공간으로 쓰기 위해 평지로 만드는 작업을 했습니다.

중간에 다시 물탱크를 확인해보니 점적 호스로 들어가던 물이 다 떨어졌습니다. 엊그제 빗물을 받아서 물탱크에 가득 담아 두었는데, 벌써 물이 다 떨어진 겁니다.

아직 동네에서는 농업용수를 공급해주지 않기 때문에 물을 자체적으로 마련해야 합니다. 스님은 빗물을 받을 때 사용했던 수중펌프를 가져와서 냇가에 담그고, 수중펌프에서 물탱크까지 호스를 연결하기 시작했습니다.




차가 지나다니는 데 불편하지 않도록 농업용 호스를 하수구 밑으로 넣어야 했습니다. 하수구 안이 너무 지저분해서 다들 긴 막대기를 가져와서 호스를 밀어 넣으려고 궁리하고 있는 사이 하수구에서 스님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연결했어요!”

스님이 하수구로 들어가서 호스를 연결한 겁니다. 어렵게 호스를 연결했지만, 수중펌프를 작동시키자 물이 호스에서 거의 다 새어나가 버렸습니다. 호스가 너무 낡은 것이 원인이었습니다.

“호스를 새로 사와서 내일 다시 연결해 봅시다.”

농사를 짓기 위해서는 준비해야 할 일들이 참 많습니다. 이것저것 챙기다 보니 벌써 오전 시간이 거의 다 지나갔습니다.

“일주일 동안 다들 고생했으니까 오후에는 경주 남산으로 산책을 갑시다.”

“네!”

점심을 얼른 먹고 오랜만에 두북 수련원을 벗어나 경주 남산으로 향했습니다.

“행자들이 어디를 안 가봤을까.”

어디로 갈지 고민 끝에 삼불사 주차장에 내렸습니다. 지마왕릉을 지나고 포석정 뒤로 작은 마을을 지났습니다.

“이게 남산 둘레길이에요.”

마을 뒤로 야트막한 산길을 올랐습니다.

“봄이 되면 여기 개쑥이 많이 자라요. 개쑥떡을 먹은 지도 오십년이 다 된 거 같네요.(웃음) 청소년 때도 여기 오곤 했어요.”

곧 이어 창림사지 삼층석탑이 보였습니다.

먼저 탑을 참배하고 스님이 탑에 대해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이 탑은 3층 석탑이에요. 탑이 몇 층인지 구분하는 방법은 항상 지붕의 개수를 새면 됩니다. 이 지붕을 옥개석이라고 하는데, 지붕이 3개이면 3층 석탑입니다. 이 몸체는 탑신이라고 해요. 맨 밑을 기단이라고 하는데 기단이 2개층이에요. 용장골로 올라가면 용장사 삼층석탑이 있는데, 그 탑은 기단이 하나 밖에 없어요. 왜냐하면 산 전체를 아랫 기단으로 사용했기 때문이에요.

2층 기단석에 팔부신중이 새겨져 있는데 4개는 없어지고 4개만 남았습니다. 팔부신중이란 불법을 지키는 8종류의 신으로 천, 용, 야차, 아수라, 건달바, 긴나라, 가루라, 마후라가를 말합니다.

저기 기둥 모양의 조각이 보이죠? 목탑의 원형을 본받아서 조각을 했기 때문에 저런 기둥 모양이 있는 거예요. 기둥 사이에는 문이 있고 문 고리가 보이죠?”

“네.”

“문 모양을 돌에 새긴 거예요. 상륜부도 없어졌어요. 상륜부는 조각이 작기 때문에 누가 가져가기가 쉬워요. 이 정도로 보수를 한 것을 보니 보물로 지정이 된 것 같네요. 제가 중고등학교 다닐 때는 탑이 무너져서 돌무더기로 남아 있었거든요.

이곳 창림사지에 귀부가 하나 남아 있는데, 무열왕릉, 사천왕사지에 있는 것과 함께 신라 시대의 3대 귀부로 손꼽히고 있어요. 저 앞에 발굴하는 터에 귀부가 하나 보이죠? 거북이의 목은 잘라가고 없어요.

경주 남산의 탑을 가장 많이 파괴한 사람들은 유생들이었어요. 여기가 명당이라고 해서 탑을 허물어버리고 무덤으로 사용했고, 불상은 목을 쳐버렸습니다. 두 번째로 파괴를 많이 한 사람들은 일제 강점기 때 일본 사람들이에요. 불상이 크면 목만 떼어내어 가져갔어요. 원래 머리만 조각한 불상은 없는데, 자꾸 머리만 떼어가서 보관하다 보니까 서양 사람들이 보기에는 그게 좋아 보이니까 요즘 서양에서는 불두만 갖고 장식을 많이 해요. 처음부터 머리만 조각한 불상이 있었던 게 아니라 일본 사람들이 목을 잘라가서 장식해 놓은 것에서 유래된 겁니다.

저 밑에 절을 발굴한 터에는 쌍탑 자리가 있는데, 이 탑은 별도로 이렇게 세워져 있어요. 참 보기 드문 형태라고 볼 수 있어요.

박혁거세가 태어난 곳이 저 앞에 보이는 나정입니다. 그래서 이곳 창림사는 박혁거세가 처음 신라를 세울 때 궁궐 자리였다고 추정하고 있습니다. 나중에 석탈해 왕 때 반월성으로 궁궐을 옮겨갔죠. 석탈해 왕이 반월성이 자기 마음에 들어서 그 자리를 뺏을려고 밤에 몰래 가서 거기에 숯과 녹슨 호미를 묻어놓고 왔어요. 그 다음에 그 집 주인에게 가서 ‘이 땅은 내 땅이다’ 하고 주장하니까 땅 주인과 시비가 붙었어요. 그래서 석탈해 왕이 ‘우리 조상이 오래전부터 여기 살면서 대장간을 했는데, 멀리 갔다가 이제 돌아왔다’라고 말했어요. ‘증거가 있냐?’라고 물으니까 땅을 파보면 알 수 있다고 해서 땅을 파보니 녹슨 호미가 나온 거예요. 그래서 그 땅을 뺏었다고 해요.

반월성으로 궁궐이 옮겨 가니까 이곳은 오랫동안 폐허가 되어 있었는데, 신라시대 말기에 와서 여기에 창림사를 지었다고 해요. 이곳 주위를 다니다보면 이 탑은 어디서 봐도 잘 보여요. 남산에 남아 있는 탑 중에는 아마 제일 큰 탑일 겁니다.”

산책을 즐기러 와서 유물에 대해서도 배우니 일석이조입니다. 다시 산길을 둘러 내려와 스님을 따라 걸으니 큰 기둥이 보였습니다.

“이것은 8세기경 신라시대에 만든 남간사지 당간지주입니다. 당간지주란 사찰에서 깃대를 세우기 위해 세운 돌기둥을 말해요. 남산 지역에서 볼 수 있는 유일한 당간지주인데 꼭대기에 있는 십(十)자형 간구가 특이한 점이에요”

“스님, 돌기둥에 작은 구멍들이 있는데 혹시 총알 자국 일까요?”

“그럴 수도 있겠네요. 한국 전쟁이 났을 때 여기 이렇게 서서 총알을 피했을 지도 모르겠어요.”

당간지주가 이 곳에 서 있었던 긴 세월을 가늠해보며 다시 걸음을 옮겼습니다.

인근 마을에는 남간사지의 우물이 있었습니다.

“이 우물은 신라시대의 우물이 그대로 남아 있는 겁니다. 신라시대 때의 우물인데 지금도 사용하고 있는 우물이 3개예요. 분황사 우물, 재매정 우물, 그리고 이곳 남간사지 우물입니다.”

우물을 들여다보니 지금도 물이 찬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마을 거리에 사람들의 모습은 잘 보이지 않았습니다. 조용한 마을에 흙담 위로 갖가지 봄꽃들이 피어있습니다.



마을에서 봄꽃 구경을 실컷하고 남산으로 올랐습니다. 가팔라지는 길과 따뜻한 햇살에 외투를 하나씩 벗었습니다. 푹신한 낙엽 길 위로 봄 햇살이 겹칩니다.

산을 조금 오르다 너른 무덤 터에 둘러앉아 잠시 쉬었습니다.

“오늘이 두북 공동체 발대식이에요. 이제 세 명이서 잘 살아보세요.”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산을 내려오며 부처골 감실석불좌상을 참배했습니다.

“감실 안에 할매 부처님이 딱 앉아 있는 것 같죠.” (웃음)

돌 안쪽으로 편안한 미소를 띈 부처님이 앉아있었습니다. 인사를 드리고 산을 내려왔습니다.

도로에는 아주 가끔 차가 지나다녔습니다. 마을 앞 쉼터는 ‘코로나19바이러스로 잠정적 중단’이라는 표지판이 붙어 있었습니다. 스님은 한산한 도로를 보며 말했습니다.

“코로나19 감염이 확산되면서 참 가슴이 아프기도 하지만, 그래도 지구의 입장에서 볼 때는 모든 게 멈추니까 조금이라도 쉴 수 있게 되는 것 같아요. 지구가 몸살을 앓다가 이제 좀 쉬는 거거든요. 그리고 전부 조심을 하니까 2월부터는 독감 감염이 확 줄었다고 해요.”

날로 퍼지는 바이러스와 깊어지는 사람들의 한숨과는 반대로 하늘은 청명했습니다.

오후 5시에 스님을 찾아온 손님이 있어 산책을 마쳤습니다.

“오늘은 일찍 쉬도록 해요.”

“감사합니다.”

내일은 농사일을 하고 다시 서울로 이동할 예정입니다.

전체댓글 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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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규태

스님께 감사드리며 여러 봉사자님들께도 감사드립니다!!!^_^

2020-06-05 12:10:31

수정

덕분에 봄꽃도 보고 눈으로 남산 산책도 했습니다~ 감사합니다 :)

2020-03-06 08:32:59

이지훈

감사합니다

2020-03-04 13:4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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