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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에서 오늘 아침에 도착했습니다.”
스님은 어제 저녁 7시 40분 인도 델리에서 비행기를 타고 오늘 아침 6시 40분 인천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하늘 위에서 하룻밤을 보냈습니다. 한국에 도착해서는 전라북도 전주에서 즉문즉설 강연을 했습니다.
서울에 도착해 법당에서 원고 교정 및 업무를 본 후 오후 3시 30분에 전주로 출발했습니다. 전주 가까이 도착해 여산휴게소에서 차를 멈췄습니다. 강연 시간보다 30분 일찍 강연장에 도착할 시간이었습니다. 오늘 강연은 전북도청에서 열립니다. 관공서에는 대기할 곳이 마땅치 않아 휴게소에서 조금 쉬고 다시 출발했습니다.
전주에 들어서자 퇴근시간과 겹쳐 길이 꽉 막혔습니다. 일찍 도착할까 봐 쉬었더니 이번에는 늦게 생겼습니다. 빠른 길을 찾아 겨우 전북도청에 도착하니 6시 58분이었습니다. 차에서 내리니 어두운 하늘 아래 빗방울이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스님은 바쁘게 무대 뒤편으로 걸어갔습니다. 7시, 스님 소개 영상이 나오는 사이 잠시 숨을 돌리고 무대에 올랐습니다. 932석이 꽉 차고도 400 여명이 더 왔습니다. 뜨거운 박수 속에 스님은 숨을 가다듬고 강연을 시작했습니다.
“오늘은 빗방울이 약간 내리긴 하지만, 요즘 가을 날씨가 좋죠?”
“네.”
“우리 마음이 한국의 가을 날씨와 같다면 어떨까요? 여러분 마음이 청명한 가을 하늘처럼 맑고 밝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우리 마음이 꼭 장마철 날씨 같이 우중충하고 습할 때가 많습니다. 오늘은 ‘흐린 마음을 어떻게 하면 좀 맑고 바삭바삭하게 할 수 있을까’라는 주제에 대해 여러분과 대화를 나눠보려고 합니다. 여기 질문지에 질문을 써내신 분들은 대부분 마음이 흐리고 습한 사람들이에요. (모두 웃음)
사연을 들어보면 거의 ‘남편 때문에 마음에 비가 온다’, ‘아내 때문에 마음에 비가 온다’, ‘아이 때문에 마음에 비가 온다’ 이런 얘기들이에요. 이런 분들도 마음 날씨가 맑아질 수 있습니다. 그럼 얘기를 한 번 들어보겠습니다.”
11명이 자기 마음 날씨가 어떤지 이야기했습니다. 그중 성질을 고치고 살아야 할지 고민인 여성과 대화를 소개합니다.
“저는 주위 사람들에게서 ‘내일은 없고 오늘만 사는 사람 같다’라는 말을 많이 들었고, 저도 그 말이 맞다고 생각하며 살았습니다. 큰 결정을 별다른 어려움 없이 하고, 주위에서 반대하더라도 고집을 꺾지 않았습니다. 호기심이 많아서 일을 많이 벌린 덕분에 30대에는 다양한 경험을 했습니다. 직장생활 12년 동안 회사를 7번 옮겼지만 운 좋게도 좋은 회사들을 두루 다닐 수 있었습니다. 퇴직금으로 1년간 남편과 인도 및 유럽 배낭여행을 즐기고, 돌아와서는 각자의 길을 가자며 8년 동안의 결혼 생활을 끝내고 이혼을 했습니다. (모두 웃음)
지금까지는 어떤 선택을 하든 후회하거나 뒤를 돌아보지 않고 늘 새로 시작한 일에 집중하며 살았고, 그렇게 할 수 있는 체력도 뒷받침되었습니다. 그런데 올해 마흔 살이 되면서 조금 지치는 것 같습니다. 주위 사람들도 제가 혼자 살더니 더 거칠어지고 불안한 모습이 많이 보인다고 합니다. 얼마 전에 짧은 연애를 하고 헤어진 사람도 제가 어디로 튈지 모르겠고 어떤 사람인지 모르겠기에 힘들다고 했습니다.
이별 후 후유증이 심해서 제 삶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너무 가볍게만 산 것은 아닌지, 또 한편으로는 집착 없이 살려면 오히려 가벼워져야 하는 건 아닌지 헷갈립니다. 앞으로는 방황을 끝내고 좀 더 중심을 잡고 살고 싶습니다. 어떻게 하면 좌충우돌하지 않고 좀 안정감 있게 삶을 살 수 있을까요?”
“그냥 성질대로 사세요.” (모두 웃음)
스님의 첫마디에 웃음이 터져 나왔습니다.
“40년이나 성질대로 살았잖아요. 이혼까지 할 정도로 성질대로 살아놓고 지금 갑자기 변하려고 하면 변해지겠어요? 옛날부터 천성이 변하면 죽을 때가 다 되어간다는 말이 있잖아요. 질문하는 걸 보니 죽을 때가 다 되어가나 싶어요. (모두 웃음)
성질을 변화시키고 일찍 죽는 게 낫겠어요? 아니면 성질대로 살면서 오래 사는 게 낫겠어요?”
“오래 사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그러면 성질대로 사세요. 이제 와서 겁날 게 뭐 있어요? 예전에는 결혼을 했으니까 성질대로 살면 남편하고 부딪혀서 갈등이 생기거나 애 키우는 데 문제가 되었겠지만, 이제는 이혼까지 했겠다 뭐가 문제가 되겠습니까. 그냥 성질대로 사세요. 이런 질문은 이혼하기 전에 했어야죠. 이혼까지 해놓고 이제 와서 무슨 성질을 죽이려고 해요. 지금은 성질을 죽일 필요가 없어요. (모두 웃음)
“그런데 제가 개인적으로 고민이 돼요. 남자와의 문제는 그렇게 살아도 되는데, 일을 하다 보니까 부딪히거든요.”
“일도 그렇게 하세요. 처음부터 평생직장 같은 건 생각하지 말고, ‘나는 파트타임으로 일한다. 어떤 회사에 들어가든 내 성질이 허락될 때까지만 일한다’ 이런 마음을 딱 먹고 일하면 돼요. 그냥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사세요. 그래야 자기다워요. 질문자는 그걸 고치려고 하면 화병이 나서 죽어요.”
“지금까지 계속 그렇게 살았는데요.”
“그렇게 살아도 아무 문제없었잖아요. 성질대로 사는데 무슨 문제가 있겠어요?”
“저 때문에 힘들어하는 사람이 주위에 많다고 하니까요.”
“그 사람은 그 사람 인생이죠. 호랑이가 토끼 잡아먹고 산다고 해서 노루도 토끼 잡아먹고살려고 하면 안 되잖아요. 각자 자기 성질대로 살아야죠. 성질대로 산다고 해서 아무런 문제는 없어요.”
“정말 고민이 많이 돼서 왔는데 진짜 문제가 없나요?”
“쓸데없는 고민이에요. 자기 장점대로 그냥 사세요. 대신에 과보를 받으면 돼요. 성질대로 살면 인간관계를 오래 유지할 수 있을까요, 상대가 자주 바뀔까요?
“상대가 자주 바뀔 것 같아요.”
“네. 그러니까 ‘인간관계를 오래 유지하겠다’ 이 생각만 안 하면 아무 문제가 없어요. 예를 들어 한 남자나 한 여자를 만나서 서로 사이좋게 지내면 죽을 때까지 같이 살아볼 수 있는 사람이 한 남자 또는 한 여자밖에 없잖아요. 그런데 성질대로 살면 떠나고 만나고를 반복하면서 열 사람도 더 만나서 살아볼 수 있어요. 왜 한 사람 하고만 오래도록 사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굳이 그게 좋을 이유가 없잖아요. 이 좋은 세상에 태어나서 상대를 바꿔가며 열 번은 살아보는 게 더 낫지 않아요? (모두 웃음)
직장도 한 직장에 쭉 다니는 게 더 좋다는 보장이 없잖아요. 1년씩 옮겨 다니면서 이것도 해보고 저것도 해보는 것도 좋잖아요. 가사 도우미도 해보고, 청소부도 해보고, 사무실 근무도 해보고, 영업사원도 해보고, 내근도 해보고, 외근도 해보는 거예요. 이렇게 마음을 먹으면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월급도 500만 원도 받아보고, 100만 원도 받아보고, 무료로도 해줘 보는 거예요. 이렇게 한 생각만 버리면 아무 문제가 없어요.
그런데 자기 성질대로 하면서 ‘인간관계가 오래갔으면 좋겠다’, ‘직장이 안정됐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을 해서는 안 돼요. 직장도 안정되고 인간관계도 오래가려면 자기 성질을 죽여야 합니다.
그러니 이건 선택의 문제예요. 어떤 게 좋으냐 나쁘냐 하는 문제가 아닙니다. 성질을 죽이고 사는 사람은 질문자가 자기 성질대로 사는 걸 보고 부러워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충고를 주겠죠.
‘그렇게 성질대로 살면 늙어서 외로워진다. 그러니 성질 좀 죽여라.’
이런 조언을 들었을 때 그게 좋으면 그렇게 하면 돼요. 어떻게 살아야 된다고 정해진 건 없습니다. 그러니 어떻게 살지는 질문자가 선택하면 돼요.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을 만나서 관계를 꾸준히 맺으려면 내 성질대로 해야 해요, 내 성질을 좀 죽여야 해요?”
“죽여야 해요.”
“네, 자기 성질을 좀 죽여야 해요. 이혼 안 하고 오래 같이 사는 분들은 다 남편이나 아내가 좋아서 오래 같이 사는 걸까요? 다 성질 죽이고 사는 거예요. 질문자는 성질대로 살기 때문에 지금처럼 혼자 살게 된 겁니다. (모두 박수)
성질 죽이고 사는 것이 더 훌륭하다고 말할 수 없어요. 그렇다고 성질대로 사는 것이 나쁘다고도 말할 수 없어요. 성질대로 살면 상대를 자주 바꾸면 되고, 바꾸기 싫으면 성질 좀 죽이고 살면 돼요. 직장도 한 직장을 오래 다니고 싶으면 성질을 좀 죽여야 돼요.
그런데 이 좋은 세상에 태어나서 꼭 성질을 죽이면서까지 살 필요가 있을까요? 성질대로 살아도 괜찮아요. 한 직장에만 다니라는 법이 어디 있어요? 월급을 왜 꼭 고정되게 받아야 해요? 올해는 100만 원 받고, 내년에는 500만 원 받고, 그다음 해에는 30만 원 받고, 이렇게 왔다 갔다 하면 더 재미있잖아요. 그렇게 생각을 바꿔버리면 아무 문제가 없어요.”
“제가 요즘 참회를 해야겠다고 생각해서 108배를 하는데요.”
“참회할 게 없어요.”
“그러면 절하지 말까요?”
“질문자가 무슨 잘못을 했는데요? 사람을 때렸어요?”
“아니요.”
“남의 물건을 훔쳤어요?”
“아니요.”
“성추행을 했어요?”
“아니요.”
“그러면 사기를 쳤어요?”
“아니요.”
“그러면 술 먹고 취해서 행패를 부렸어요?”
“아니요, 술은 먹는데 행패는 안 부립니다.”
“그러면 됐어요. 방금 말한 다섯 가지 행위가 아니면 남이 뭐라 그러든 자기 성질대로 살아도 괜찮아요. 대신에 질문자도 남이 어떻게 살든 간섭하지 않아야 해요. 그런데 전에는 남편한테 그런 간섭을 많이 했죠?”
“네.”
“그것 봐요. 자기는 성질대로 살면서 왜 남편은 성질대로 사는 걸 간섭해요? 내가 성질대로 살고 싶으면 아이도 성질대로 살도록 놔둬야 하고, 남편도 성질대로 하도록 놔둬야 해요. 내가 내 상사한테 성질대로 했으면 내 부하가 나한테 성질대로 하는 걸 놔둬야 해요.
제 말은 자기는 성질대로 살면서 남이 성질대로 사는 걸 뭐라 하는 게 잘못됐다는 거예요. 저는 혼자 살지만 남더러 ‘혼자 살아라’ 이런 말을 절대 안 해요. 저는 스님이 됐지만 남더러 ‘스님이 돼라’ 이런 말을 절대 안 해요. 저는 불교를 믿지만 남더러 ‘불교 믿어라’ 이런 말을 절대 안 해요. 제 강연을 들으러 온 기독교인들이 가끔 불교로 개종하겠다고 해도 오히려 개종하지 말라고 말려요. 오히려 ‘그냥 다니던 데 다니세요. 굳이 뭘 왔다 갔다 하려고 그럽니까?’ 이렇게 얘기해 줍니다. (모두 웃음)
자기는 똑바로 하더라도 남이 서툴게 하는 걸 좀 봐줘야 해요. 그런데 질문자는 자기는 성질대로 살면서 남은 성질대로 못살게 하니 그게 좀 문제라는 겁니다. 자기 스스로에게 성질대로 살아도 괜찮다고 하듯이 다른 사람도 자기를 대하듯 대해 주라는 거예요. 제 말은 ‘이기심을 버려라!’ 이런 뜻이 아니에요. 내가 이기적으로 살면 남도 이기적인 것을 인정하라는 겁니다. 그렇게만 하면 아무 문제가 없어요.”
“네. 감사합니다.”
“인생은 어떻게 살아야 한다고 정해진 길이 없습니다. 선택에 따르는 결과가 있을 뿐이에요. 혼자 사는 것이 좋다고도 말할 수 없고, 혼자 사는 것이 나쁘다고도 말할 수 없어요. 혼자 살든 둘이 살든 그건 자기의 선택이에요. 혼자 살면 혼자 사는 데 따르는 좋은 점과 나쁜 점이 있고, 둘이 살면 둘이 사는 데 따르는 좋은 점과 나쁜 점이 있어요. 혼자 살면 상대의 성질에 맞출 필요가 없는 대신 외로울 수 있고, 둘이 살면 외로운 건 한결 덜한 대신 상대에게 어느 정도 맞춰줘야 해요. 혼자 살면 더울 때 문을 활짝 열어버리면 되고, 추울 때 히터 틀면 되지만, 같이 살면 그것부터도 안 돼요. 문 열면 ‘추운데 왜 문을 여느냐’라고 하지, 히터를 틀면 또 덥다고 난리지, 온갖 소소한 걸 가지고 시비예요. (모두 웃음)
음식을 해놔도 짜니 싱겁니 야단이고, 물건을 어디 두기만 해도 왜 어질렀냐며 야단입니다. 혼자 살면 어질렀는지 깨끗한지 구분이 없어요. 나만 좋으면 돼요. 그러나 같이 살면 ‘왜 지저분하게 하느냐’ 이런 잔소리를 자꾸 들을 수밖에 없는 거예요. 다른 사람과 같이 살려면 그런 점을 수용해야 해요.
결혼생활을 잘 영위하고 있는 사람들은 가족들이 말썽을 안 부려서 잘 사는 줄 알아요? 애가 어지르고, 말 안 듣고, 남편이 늦게 들어오고, 여러 가지가 마음에 안 들지만, 같이 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성질을 죽이고 살 수밖에 없는 거예요. 성인군자는 아니지만 그래도 혼자 사는 것보다는 둘이 사는 게 득이 되니까 성질을 죽이고 사는 겁니다.
질문자는 득 되는 것보다 자기 성질이 더 중요하니까 손해보고 살아야겠죠. 자기가 선택한 거예요. 전생의 죄도 아니고, 하느님의 미움도 아니고, 사주팔자 때문도 아니고, 그냥 자기가 선택하고 자기가 결과를 받는 거예요. 원망할 일도 없습니다. 그러니 누가 뭐라고 하면 ‘그 사람 입장에서는 그런가 보다’ 하세요. 혹시 성당에 나가요?”
“아뇨.”
“성당에 좀 나가세요. (모두 웃음) 성당에 나가면 이런 원리를 잘 가르쳐 줍니다. 외롭든 어떻든 그게 다 자기가 짓고 자기가 받는 겁니다. 이것을 불교에서는 ‘자업자득(自業自得)’이라고 합니다. 이것을 성당에서는 이렇게 표현합니다. 가슴을 치면서 따라 해 보세요.
‘내 탓이오, 내 탓이오, 내 탓이로다.’
너무 세게 두드리면 갈비뼈 부러지니까 조심하세요. (모두 웃음) 결국은 자기가 지어서 자기가 받는다는 뜻이에요. 자기가 선택하고 자기가 받는 결과입니다. 내가 돈을 빌렸으면 돈을 갚아야 해요. 갚기 싫으면 다음부터는 형편이 곤궁하더라도 안 빌려야 합니다. 이건 선택의 문제예요.
결혼도 마찬가지예요. 결혼을 하겠다면 상대에게 맞춰야 해요.
‘상대에게 좀 덜 맞추고 내 성질대로 살면서도 결혼하고 살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까?’
방법이 있긴 있어요. 만약 내가 30살이라면 60대인 상대와 결혼하면 돼요. (모두 웃음)
내가 돈이 많으면 돈 없는 사람하고 결혼을 하든지, 내가 인물이 잘났으면 인물이 못난 사람하고 결혼을 하든지, 그러면 조금 큰소리치고 살 수 있어요. 나보다 부자이거나, 인물이 잘 생겼거나, 지위가 높거나, 내가 더 좋아하는 상대를 선택하면, 잠시 기분이야 좋을지 모르지만 평생 종노릇을 해야 해요. 상대가 바람을 피워도 버리지를 못해요. 다시는 그런 사람을 못 구하니까요. 그래서 불평을 하면서도 붙어살아야 하는 거예요.
어떤 여성분이 저한테 ‘남편이 바람을 피워요’ 이렇게 질문을 하러 찾아왔다는 건, 남편이 돈을 좀 벌거나, 인물이 잘났거나, 평소에 잘해주거나, 뭔가 좋은 점이 있다는 뜻이에요. 남편의 모든 점이 나쁘면 스님한테 물어볼 것도 없이 본인이 알아서 정리할 테니까요. (모두 웃음)
그래서 ‘남편이 술을 먹고 어쩌고’ 하면서 하소연을 해도 스님은 그 나쁜 점을 상쇄할 만큼 어떤 좋은 점이 있다는 뜻인 줄 금방 알아요. 저는 한마디만 딱 들어도 벌써 아는데, 본인은 같이 살면서도 바보같이 그걸 몰라요. 질문자가 막 남편 흉을 보면 저는 벌써 ‘아, 저기에 비례하는 좋은 점이 있구나’ 하고 압니다. 나쁜 점만 있으면 애초에 스님한테 안 묻고 자기가 알아서 다 정리해버린다니까요. (모두 웃음)
저한테 묻는 질문은 대부분 다 그래요. 돈을 빌려놓고 안 갚을 방법이 없느냐는 질문이 태반입니다. 그래서 제가 굉장히 단호하게 얘기하잖아요.
‘그런 방법은 없습니다!’ (모두 박수)
그러니까 이것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의 문제예요.”
“네. 감사합니다.”
이 외에도 다음과 같은 질문이 있었습니다.
오늘도 다양한 질문이 있었습니다. 청중은 무릎을 탁 치며 혼자 깨우치기도 하고, ‘진짜 웃기다’며 고개를 젖히고 크게 웃기도 했습니다. 금세 두 시간이 흘렀습니다.
“자, 대화를 하고 난 후 현재 상태를 말해보세요. 한 문장으로 소감을 말해보세요.”
“스님 궁금한 게 있는데요.”
“다음 사람 말하세요.”(모두 웃음)
소감을 말하는 시간에 다시 질문하려고 하자 단칼에 마이크가 다음 사람에게 넘어갔습니다. 성질을 고칠까 고민했던 질문자는 웃으며 말했습니다.
“앞으로 계속 성질대로 살겠습니다.”(모두 웃음)
자기 생각을 탁 내려놓고 가벼워진 질문자들에게는 큰 박수가 쏟아졌습니다.
“아들하고 편하게 잘 살도록 하겠습니다.”
“약 먹고 사람 만나는 연습 하겠습니다.”
“젊은 사람들하고 경쟁하려고 생각하지 않고 마음 편하게 취미생활을 하겠습니다.”
전주 한옥마을에서 매일 담배꽁초를 줍는다는 어르신이 마지막으로 말했습니다.
“지구촌이 깨끗해질 수 있도록 일부러 질문을 했습니다.”(모두 박수)
“담배 피우는 사람들 손 한 번 들어봐요.” (모두 웃음)
담배 피우는 사람들이 손을 번쩍 들었습니다.
“네, 담배꽁초를 아무 데나 버리지 마세요. 이렇게 연세 드신 어르신이 그걸 매일 주우러 다니신다니까 버리지 말아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첫 번째 질문자는 고민이 해결되어서 앉은 게 아니라 ‘너하고는 말이 안 통한다’ 이러고 앉았기 때문에 뒤늦게 지금 할 말이 지금 생긴 거예요. 이건 차 지나간 뒤에 손 들기에요. 마이크를 잡았을 때 끝장을 봐야 하는데, 대화가 자기 뜻대로 안 되니까 그냥 놓아버리고 앉은 겁니다. 끝날 때 다시 질문을 하려고 하셨는데, 시간이 이미 지나가버렸어요. (모두 웃음)
여러분이 강연 시간에 저에게 질문하면 이렇게 자세하게 대답을 하지만, 대화 시간이 끝나고 나갈 때 누가 와서 소매를 잡고 ‘스님, 하나 물어봐도 돼요?’ 이러면 제가 ‘근무시간 끝났어요’라고 합니다. (모두 웃음)
이곳이 관공서라서 강연을 마치고 책 사인회를 못한다고 해요. 평소에 책 사인을 해줄 때면 사람들이 대부분 ‘제 이름도 써주세요’ 이럽니다. 그러면 제가 이렇게 말해요.
‘네 이름은 네가 쓰고 내 이름은 내가 쓰자.’ (모두 웃음)
내가 원하는 것이 다 이루어질 수 없듯이, 남이 원하는 것을 내가 다 해줄 수도 없습니다. 내가 원하는 게 다 이루어져야 한다고 잘못 생각하면 불만이 생기고 괴로워져요. 남이 원하는 걸 내가 다 해줘야 한다고 잘못 생각하면 죄책감과 후회가 들고 자꾸 죄의식을 갖게 돼요. 그러니 여러분도 남이 원하는 것이 있을 때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해주되, 못해주는 것은 ‘죄송합니다!’ 이러고 딱 끝내는 자세를 가져야 해요. 내가 원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노력해서 되면 다행이고, 안 되면 그만이고, 그래도 미련이 남으면 한 번 더 해보면 돼요.
이런 자세를 가지면 가을 하늘처럼 청명한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현재 조건이 어떤 상황에 처했든 이런 관점을 가지고 사물을 보면 누구나 다 맑은 마음으로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행복하게 사시기 바랍니다.” (모두 박수)
강연이 끝난 후에도 여전히 부슬비가 내리고 있었습니다. 선선한 저녁입니다. 마음에도 가을바람이 부는 듯합니다.
스님은 강연을 준비한 봉사자 83명과 기념사진을 촬영했습니다. 강연을 잘 마친 뿌듯함이 사진 한 장에 담겼습니다. 수고했다는 인사를 한 후 스님은 다시 두북으로 출발했습니다. 내일은 창원과 울산에서 즉문즉설 강연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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