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19.2.20 3.1운동100주년학술토론회 패널 오찬 & 민주평통 월간지 인터뷰
“요즘 스님의 최대 관심사는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회의와 인터뷰로 하루를 보냈습니다. 아침에는 안보 전문가 모임, 점심에는 3.1운동 100주년 기념 학술토론회에 패널로 참석하는 역사학자 세 분과 미팅, 오후에는 민주평통 월간지 기자와 인터뷰를 하였습니다.

오전 7시, 평화재단에서 전문가들과 함께 안보 문제에 대한 회의를 하며 하루를 시작합니다. 회의 후 곧바로 오전 11시부터는 오는 2월 27일 3.1운동 100주년 기념 학술토론회에 패널로 참석하는 역사학자 세 분과 점심식사 겸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한국의 재야 역사학자로 널리 알려진 이이화 선생님, 정통 역사학자인 최병헌 서울대 사학과 명예교수님, 최근 용성스님 평전을 집필한 김택근 작가님, 총 세 분이 함께 자리했습니다. 먼저 스님은 세 분에게 이번 3.1운동 100주년 기념 학술토론회를 열게 된 취지에 대해 설명하면서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일제 시대 때 독립운동은 비밀리에 했기 때문에 묻혀진 진실이 많습니다. 독립운동을 했지만 무명으로 잊혀져 갔던 수많은 분들을 생각한다면, 3.1운동 100주년을 맞이해 지금이라도 그 진실을 밝혀내는 것이 좋지 않겠냐 싶었습니다. 그러나 아예 묻혀진 진실들은 우리가 근거를 모르니까 지금 당장 밝힐 수는 없잖아요. 그래도 용성 스님은 조금 알려져 있는 편이고, 그 분이 한 일에 비해 많은 진실들이 묻혀져 있으니까, 그 중에 일부를 100주년을 맞이하여 한 번 드러내어 보자, 이런 취지로 이번 토론회를 열게 되었습니다.

용성 스님의 묻혀진 진실에 대해 가장 많이 알고 계신 분이 도문 큰스님입니다. 그래서 도문 큰스님의 구술 자료를 중심으로 우리가 찾을 수 있는 증거를 좀 더 찾아보았고, 그 결과를 이번 토론회에 일단 발표를 하려고 해요. 거기에 대해서 원로 학자님들의 비판적인 제안을 좀 받고 싶습니다. 어떤 부분은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있다든지, 어떤 부분은 근거가 부족하다든지, 어떤 부분은 앞으로 연구를 더 해야 한다든지, 어떤 부분은 너무 황당하다든지, 어떤 방향으로 더 연구가 되어야 고증을 할 수 있다든지, 이런 얘기들을 토론회에서 해주시면 저희들이 잘 경청하도록 하겠습니다.

어떻게 하면 이렇게 묻혀진 역사적 진실들을 찾아갈 수 있는지 방향을 제시해 주면 저희들이 좀 더 올바른 방향으로 연구를 해나갈 수 있겠다 싶습니다. 용성 스님에 관계된 것 뿐만 아니라 그동안 불교계가 제대로 연구하지 못한 근대불교사에 대한 아쉬움도 함께 말씀해 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참석자 중에는 조계종 스님들과 정치인들도 있으니까 좋은 영향을 줄 수 있지 않겠나 싶습니다.

용성 스님을 미화하려고 하거나, 없는 역사적 사실을 새로 만들려고 하는 의도는 전혀 없습니다. 다만 묻혀진 것이 있다면 사실로 드러내자는 입장이지 절대로 다른 의도는 없어요.”

이렇게 토론회의 취지를 설명한 후 용성 스님의 독립운동에 대해 간략히 설명했습니다.

“1945년 광복이 되자 김구 선생은 상해에서 귀국해 임정 핵심 요인들 30명을 데리고 대각사를 방문했습니다. 그 때 ‘용성스님께서 보내주신 자금이 조국 광복을 맞는 데 큰 기여를 했다’라고 하면서 용성스님 영전에 인사를 했다는 증언이 있어요. 지금까지는 그때 대각사에서 저녁 식사를 대접한 사진만 있다 보니까 사진에 찍힌 사람들이 김구 선생과 몇 명뿐이었어요. 그래서 대각사에 왔다는 사실은 확인했지만, 김구 선생이 용성스님의 독립운동을 얼마나 중요하게 여겼는지는 확인을 못했습니다. 그런데 2년 전에 임정 핵심 요인 30명을 대동하고 온 사진을 소장하고 있던 분이 그 사진을 공개했어요.

1945년 해방 후 대각사를 방문한 김구 선생과 30명의 임시정부 요인들. 2017년에 공개됨
▲ 1945년 해방 후 대각사를 방문한 김구 선생과 30명의 임시정부 요인들. 2017년에 공개됨

그 당시 역사를 살펴보면 김구 선생이 귀국하자마자 손병희 선생 묘소를 참배했고, 다음으로 안창호 선생 묘소를 참배했습니다. 그리고 군중집회 한두 번 참석한 게 전부이지, 누구도 찾아갔다는 기록이 없어요. 그런데 용성스님이 돌아가시고 계시지도 않는 대각사를 방문해 용성스님의 노고를 치하하고, 거기서 기념사진을 찍은 거예요. 이 사진이 이번에 저희 초대장에 표지로 쓴 사진입니다. 사진을 보면 이시영 선생부터 시작해서 임시정부 요인들이 다 들어 있어요. 김구 선생이 이런 정도의 예의를 갖춘 것을 볼 때 용성스님이 지원한 독립운동 자금이 굉장히 큰 역할을 했다고 보여집니다.”

세 학자 분은 용성스님의 활동이 아직 많이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굉장히 큰 역할을 했음은 틀림없다고 공감했습니다. 스님의 설명이 끝나자 역사학자 세 분도 스님의 이야기를 듣고 난 소감을 말했습니다. 최근 용성스님 평전을 집필하느라 오랜 시간 자료를 조사했던 김택근 작가님이 가장 먼저 말문을 열었습니다.

“3.1운동이 있기 이틀 전에 만해 한용운이 용성스님을 찾아와서 ‘여기 참여하십시오’ 라고 했다고 다들 말하는데, 그건 말이 안 된다고 제가 평전에 썼어요. 이 사실과 관련해서는 고경(古鏡) 스님과 같이 옥고를 치렀던 환경(幻鏡) 스님이 남긴 글이 있습니다. 2월 20일에 환경 스님은 오세창과 같이 용성스님 투옥 이후의 일을 논의했다고 해요. 투옥을 하시게 되면 사식도 넣고 이후에 여러 가지 돌봐야 할 일이 있을 테니 그런 것을 미리 협의했다는 증언이 있습니다. 이런 중요한 증언을 환경스님이 해주셨습니다.

그 당시 만해는 용성스님에 비하면 한참 후배나 다름없었다고 해요. 만해는 41세밖에 안 되고 용성스님은 만 56세였으니까 15살 차이가 납니다. 다만 만해가 그 당시 떠오르는 스타이다보니 용성스님이 과소평가됐다는 점을 추측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왕실에서조차 존경을 받으면서 서울 대각사에 계셨던 용성 스님을 놔두고 저 변방에 있는 산승들을 다 접촉한 뒤에야 용성스님한테 찾아갔다는 건 말이 안 되죠.

또 윤순석씨가 쓴 3.1운동 관련 책을 보면 연표에 이미 2월 20일에 불교계 대표가 백용성, 한용운으로 확정됐다고 나옵니다.

그 당시에는 모든 정신적인 구심점이 용성스님한테 있었기 때문에 용성스님이 옥에 갈 것을 다들 염려했던 겁니다. 결국 만해와 같이 투옥되긴 했지만, 용성스님이 비교적 빨리 나올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저는 그렇게 추측을 합니다. 그걸 이번 토론회의 중대한 의제로 확정해서 의논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김택근 작가님의 의견에 스님과 두 분의 학자 분도 공감했습니다. 또 다른 의견으로는 용성 스님의 독립운동이 아직 근거가 많이 부족하고, 사료로 인정되기에는 자료가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왔습니다.

또 용성스님이 돌아가실 때 일제의 탄압이 극심하다 보니 어느 제자도 큰스님이 돌아가실 방을 제공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도 나왔습니다. 해방 이후에도 많은 제자들이 스승의 독립운동을 공개적으로 말하지 못하는 분위기도 있었다고 하는데, 이 이야기를 듣고 어느 학자 분은 안타깝게 말을 이었습니다.

“용성스님이 제자는 많았는데, 제자 복은 정말 없는 것 같아요.”

그러자 스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제자 복이 없는 게 아니고, 시절 인연이 그랬던 거죠. 스승이 독립운동을 하다보니 제자들에게 피해가 오니까 피했던 거예요. 제자들에게는 자기들의 이해 관계가 걸려 있는데, 그걸 어떡합니까.”

이 외에도 스님과 세 학자 분은 허심탄회하게 서로의 생각을 나누었습니다. 오늘 서로 교감한 내용을 토대로 27일 토론회에서는 더욱더 심도 있는 대화가 오갈 수 있으리라 기대가 되었습니다.

오후 2시부터는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월간지와 인터뷰를 하였습니다. 오늘 인터뷰는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에서 매월 발간하는 잡지 <통일시대> 149호에 ‘평화 통일의 길을 묻다’는 코너에 3월 1일 발행될 예정입니다.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는 한반도의 민주적 평화통일 달성에 필요한 제반 정책수립에 관하여 대통령에게 건의하고 그 자문에 응하기 위하여 발족한 헌법기관이자 대통령직속 자문기구입니다. 인터뷰는 약 한시간 동안 진행되었습니다.

“법륜스님은 인권, 평화, 통일 관련 분야에서 오랫동안 활동을 하셨습니다. 최근에는 어떤 분야에 가장 관심을 가지고 활동하고 계신가요?”

“한반도에 다시는 전쟁은 없어야 한다는 ‘평화 문제’가 가장 큰 관심사였습니다. 그런데 평화 문제가 아직 완전히 해결된 것은 아니지만 지난 1년 동안 해결이 되어가는 과정 속에 있습니다. 이렇게 해결이 되어가고 있는 현 시점에서 저의 최대 관심사는 ‘대북 인도적 지원’입니다. 북한 주민들은 여러 상황에서 지금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북한 주민의 곤궁함을 덜어줄 수 있는 인도적 지원을 어떻게 할 것인가가 현재의 가장 큰 관심사입니다.”

“대북 지원과 관련해 구체적으로 계획을 잡거나 움직이고 계신 게 있는지요?”

“첫째, 북한 주민 가운데서도 가장 열악한 환경에 있는 사람들을 도울 계획이 있어요. 북한은 그런 말을 싫어하지만 한국식으로 말하면 취약계층이라고 할 수 있겠죠. 고아원, 양로원, 장애우 시설같은 곳에 우선 인도적 지원이 필요합니다.

둘째, 식량 증산에 관계되는 지원을 생각하고 있어요. 북한은 지금 전반적으로 식량이 부족한 상황입니다. 그래서 씨감자를 보낸다든지 식량증산에 도움이 되는 지원을 할 계획입니다.

셋째, 산림 복구 지원이에요. 북한은 주민들이 식량부족으로 산을 개간하고, 땔감으로 나무를 사용해서 산림이 많이 황폐화되어 있잖아요. 그러니까 산림을 복구할 수 있도록 여러 가지 묘목 지원이나 묘목장 건설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직 남북 관계가 확실하게 풀린 상황은 아니어서 여전히 지원에 대한 논쟁의 여지가 남아있습니다. 논쟁에 휘말리지 않으면서도 북한 주민들과 북한이 현재 필요로 하는 일을 우선 지원할 수 있는 것이 이런 영역인 것 같아요.

이런 지원에 대해 오래 전부터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인도적 지원은 이미 시작했어요. 지원을 계속하면서 다른 부분도 논의를 해나갈 생각입니다.”

“민족화해협력범국민회의회 의장님께서 2016년에 북한 두만강 지역에 수해가 났을 때도 방한용품 지원해주셔서 굉장히 고맙게 생각하신다고 하셨어요. 법륜스님께 여러번 꼭 감사하다는 말씀 전해달라고 하셨습니다.”

“오히려 그 때 정부가 반대를 했었는데 의장님께서 그런 결정을 내려주셔서 오히려 제가 감사했습니다. 인도적 지원에 대해서는 우리가 마땅히 서로 협력해서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스님은 마땅히 할 일을 했을뿐이라며 소박하게 웃음지었습니다.

작년부터 3차례의 남북정상회담과 역사상 첫 북미정삼회담에 이어 올해는 2차 북미정상회담도 열릴 예정입니다. 취재진은 이렇게 변화하고 있는 한반도의 상황을 어떻게 진단하고 무엇을 해야할 지에 대해 물었습니다.

스님은 “큰 틀에서 대결과 갈등에서 협력과 평화로 합의되었다. 그러나 넘어야할 산이 많기 때문에 그 과정이 더딜 것이다.” 라며 “소위 미소냉전이라는 구 질서는 세계적으로 종결되었지만, 한반도에는 그 잔재가 남아있다. 일반적인 역사의 과정에는 구질서가 해체되고 약간의 과도기를 거쳐 새로운 질서가 재편된다. 그러나 한반도에는 아직 구질서가 남아있는데 세계는 미중 패권경쟁이라는 신질서로 재편되어가고 있다. 구질서의 해체를 어떻게 신질서의 재편에 유리하도록 할 것인가가 중요하다.” 라고 생각을 밝혔습니다.

취재진은 남한이 어떤 역할을 하는 것이 필요할지 물은 후, 새로운 100년을 어떻게 그려야할지에 대해 물었습니다. 스님은 과거 100년을 언급한 후 미래 100년에 대해 답했습니다.

“미래 100년에는 두 가지가 필요합니다. 첫째, 과거에 해결하지 못한 것을 해결해야 하고, 또 둘째, 새로운 희망을 만들어나가야 해요.

미래 100년의 상반기에는 과거에 해결하지 못한 것을 해결해야 합니다. 한반도는 일제로부터 독립이 되었지만 남북이 분단되면서 완전한 독립을 이루었다고 할 수 없어요. 완전한 독립을 이루기 위해서 평화적 통일이 이루어져합니다. 그래서 상반기의 시대적 과제는 평화적 통일입니다.

그러나 평화적 통일이 국가의 미래 비전이 될 수는 없습니다. 평화적 통일을 이루는 것은 과거의 문제를 해결했을 뿐이지, 미래를 개척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에요. 미래 100년으로 나아가려면 평화적 통일을 한 후 일본, 중국 등 주변국과 협력해서 아시아의 평화를 만들어나가야 합니다.

근대 문명의 중심은 유럽이었다가 대서양을 건너 북미로 옮겨왔습니다. 앞으로는 문명의 중심이 태평양을 건너 아시아로 올 가능성이 있습니다. ‘꼭 그렇게 된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세계 문명의 중심이 아시아가 되는 ‘아시아 시대’를 준비해야 해요. 그러려면 자꾸 과거에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비록 과거에 적대관계였다 하더라도 일본하고도 협력하고, 중국하고도 협력해서 아시아 시대를 준비해야 해요.

그래서 미래 100년의 하반기에는 우리가 아시아 시대를 준비해서 세계 문명의 중심이 아시아가 되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면 아시아가 세계 문명의 중심이 되었을 때, 아시아의 중심이 바로 한국이 되는 거죠.”

“통일된 한국 말씀이시죠?”

“네, 통일은 그 전에 이루어야 하고요. 우리가 강대국이 되어 세계의 중심국가가 되는 게 아니라 문명적인 측면에서 중심국가가 되는 꿈을 한 번 그려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옛날 같으면 이런 건 꿈도 못 꿨는데 지금은 꿈을 꿀 수가 있잖아요. 그 꿈을 실현하는 첫 단계가 평화와 통일이고, 두 번째 단계가 아시아 주변국과의 공동 번영이고, 세 번째 단계가 문명의 중심이에요.

우리가 이런 희망을 꿈꾸면서 미래 100년을 맞이해야 하지 않을까 해요. 이 꿈이 이루어지면 천 년의 꿈이 실현되는 거예요. 고구려와 발해가 멸망한 이후 1000년을 이 반도에 갇혀서 약소국가로 살아왔잖아요. 남의 나라를 침공하는 강대국이 되자는 게 아니라 중심국가가 되자는 거예요. 작지만 강력한 자주국가이면서 주변국과 협력하는 국가를 건설한다는 건 역사적으로 보면 천 년의 꿈을 우리가 실현하는 셈입니다. 저는 한국 사람들이 그런 희망을 갖고 살았으면 좋겠어요.”

“요즘 젊은 친구들은 ‘소확행’이라는 표현을 많이 쓰는 데서도 보이듯이, 미래를 보기보다 현재의 소소한 행복이나 현재의 삶에 대한 관심들이 많아요. 멀리 내다보기가 좀 어려운 환경에 있죠. 이런 젊은 세대들이 통일에 대해서 조금 더 관심과 인식을 가지고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할 방법은 없을까요?”

“지금의 어려움을 능히 극복할 수 있으려면, 참고 견디는 것만으로는 어렵습니다. 참고 견디는 힘의 원천은 희망입니다. 지금 내가 어렵지만 10년, 혹은 20년 지난 뒤 미래에는 나아진다는 희망이 있어야 해요. 이런 희망이 있어야 소위 어려움을 극복할 수가 있어요.

그러나 오늘날 젊은이들의 가장 큰 문제는 그렇게 자기의 10년, 20년, 혹은 30년 후의 미래를 그릴 때 희망이 없다는 거예요. 희망이 없으니까 현실의 작은 행복에 자꾸 안주할 수밖에 없죠.

그러면 젊은이들에게 어떤 희망을 줄 수 있을까요? 개인에게는 각자 나름대로의 희망이 있을 수 있겠죠. 현실의 작은 행복을 누리는 것도 개인에게는 희망이니까요. 그러나 이 젊은 세대라고 하는 ‘세대’ 차원에서의 희망은 뭘까요?

우리가 나라를 빼앗겼던 일제 강점기는 굉장히 암울한 시대였지만, 그 시대 젊은이들에게는 독립이라고 하는 시대적 과제가 있었습니다. 또 독립을 향한 희망이 있으니까 수많은 희생을 거듭하면서도 독립운동을 해나갔어요.

1960년대에는 ‘우리가 비록 가난하지만 우리도 노력하면 잘 살 수 있다’라고 하는 경제발전에 대한 희망이 있었습니다. 1980년대에 들어서는 우리가 어느 정도 경제적으로 여유를 누리게 되었지만 독재는 여전했기 때문에 젊은이들에게 ‘우리도 자유롭게 살고 싶다’라는 민주화의 희망이 있었어요. 이렇게 희망이 있었기 때문에 감옥도 가고 고문도 당하는 걸 감수한 거예요.

그러면 지금 젊은 세대에게는 무엇이 희망이 될 수 있을까요? 바로 분단을 극복하고 우리 선조들이 이룩하지 못한 통일로 나아가는 길이에요. 젊은이들이 통일이 우리 시대의 과제라는 것을 인식하고 통일의 꿈을 꾼다면 저는 젊은이들의 눈이 반짝반짝해질 거라고 생각합니다.

남북간의 긴장이 너무 고조되고 막 전쟁 날듯한 분위기라면 ‘아이고, 전쟁만 안 났으면 좋겠다’ 하는 소극적인 자세가 돼요. 그런데 지금처럼 한반도 정세가 변해서 남북이 협력하면 우리가 세계적인 변화 속에서 ‘아, 우리가 통일할 수 있겠다. 통일을 이루고 주변국과 평화롭게 살면서 세계에 내세울 수 있는 나라가 될 수도 있겠다’ 하는 꿈을 꿀 수 있게 됩니다. 요즘 한류가 세계로 퍼지듯이 이런 꿈들이 자꾸 생겨야 해요. 그런 꿈들이 생기면 젊은이들이 월급 좀 받고 안주하기보다는 새로운 걸 개척하고, 도전하고, 세계를 향해 나아가는 일들을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저는 지금 시기가 위기이자 기회라고 봐요. 경제적으로 좀 잘 살게 됐고, 민주화도 과거에 비하면 어느 정도 이루어졌으니까 ‘이만하면 됐지’ 하고 안주할 위험이 있어요. 그러나 동시에 통일에 대한 희망을 갖고 꿈을 실현하려는 운동이 일어날 기회일 수도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젊은이들이 통일에 대한 희망, 또 세계로 나가서 활동하려고 하는 꿈을 가져보면 좋겠습니다.”

“남북관계가 변화하는 과정에서 많은 국민들과 젊은 세대들이 희망을 품고 있어요. 그런데 이런 희망이 좌절되면 남북간 줄다리기가 반복되는 가운데 또 냉소적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네, 그럴 수도 있죠. 그런데 어떤 일이든 자기가 원하는 게 다 이루어질 수가 없잖아요. 개인적으로든, 사회적으로든 우리가 원하는 게 다 이루어질 수는 없어요. 희망이라는 것은 원하는 게 다 이루어지는 게 아니에요. ‘원하는 게 이루어지면 다행이고, 안 이루어지면 실망이다’ 하는 자세는 희망이라기보다는 욕망이죠. 희망은 이루어질 때까지, 이루어지도록 끊임없이 도전하고 노력하는 거예요. 그럴 때 그걸 희망이라고 말합니다.”

희망과 욕망의 차이가 명쾌합니다. 스님은 지난 20년간 평화와 통일의 ‘희망’을 놓치지 않고 꾸준히 활동하셨나 봅니다.

“스님께서는 평화통일에 관련된 여러 분야를 넘나들면서 활동하셨습니다. 대북지원도 하고, 또 인권운동도 하고, 평화통일을 위한 다양한 실천과 연구, 역사 탐방 등 여러 분야를 넘나들고 계십니다. 일반적으로 인권활동과 지원활동을 병행하는 것이 쉽지 않은데요. 다양한 분야에서 평화통일 활동을 이끌 수 있었던 힘은 무엇이신지요?”

“제가 여러 가지 활동을 하고 싶어서 한 건 아니에요. 여러 가지 운동을 하게 된 건 보편성에 기초하고 있어요. 마치 UN에서 사람이 굶어죽는다면 인도적 지원을 하고, 난민이 발생하면 난민을 지원하고, 인권이 열악하면 인권 개선 운동을 하는 것과 같아요.

처음에는 북한 주민들이 인도적 위기에 처했어요. 그래서 가장 먼저 시작한 활동이 대북 인도적 지원을 하자는 운동이었습니다. 그런데 인도적 위기 상황이 아직도 해결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지금도 인도적 지원을 계속 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런데 일부 정치적 견해를 갖는 사람들은 ‘저 나쁜 놈들 굶어죽든지 말든지 내버려두지, 왜 지원하느냐?’ 라고 해요. 이건 정치이지 인도적 지원이 아니에요. 인도적 지원은 그 사람이 생존의 위기에 처했다면 남녀, 이념, 종교, 신념에 관계없이 지원을 하는 것을 뜻합니다. 여기에는 북한이라고 해서 예외를 둬서는 안 됩니다. 저는 이런 보편성의 입장에 서 있습니다. 그런데 정치적 입장을 가진 사람들은 ‘저 나쁜 놈을 왜 도와주느냐?’, ‘너도 북한 편 아니냐?’ 이렇게 접근을 하게 되죠.

이후에는 북한에 있던 사람들이 식량 위기를 못 견뎌서 압록강, 두만강을 넘어 중국으로 넘어오게 되면서 난민이 발생했습니다. 중국에서 볼 때는 불법입국자니까 체포해서 북한으로 돌려보내기도 하고, 불법체류를 하다 보니 임금도 제대로 못 받는 등 굉장히 인권 상황이 열악했습니다. 저는 보편적 입장에 서서 난민들을 도왔습니다. 그런데 북한 난민을 도우니까, 중국 정부는 ‘왜 불법체류자를 돕느냐’라고 했고, 북한 정부는 ‘민족 배신자를 왜 돕느냐’라고 했어요. 제가 볼 때는 이렇게 말하는 것이야말로 정치적인 입장이에요. 그러나 저는 그 사람들이 고향을 떠나서 떠돌기 때문에 도와야 한다는 입장이었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북한 사회를 깊이 들여다보니까 생존권의 어려움도 있지만 여러 가지 정치적인 이유로 인한 인권 상황도 굉장히 열악했습니다. 그래서 북한 정부에게 인권이 개선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또 한국 내에서도 북한 인권이 개선되어야 한다고 주장을 했습니다. 인권이 열악하지 않은데 그런 주장을 하면 정치적인 게 되지만, 인권이 열악하기 때문에 인권의 개선을 요구한다면 그걸 반대하는 게 정치적인 겁니다.

저는 늘 보편성에 기준을 두고 활동을 합니다. 산에 나무가 없다고 하면 나무 심는 걸 지원하고, 농사가 안 된다고 하면 농사를 지원하고, 난민이 생기면 난민을 돕고, 인권이 열악하면 인권을 개선하고, 굶어죽으면 식량을 지원하고, 사람들이 병들었으면 약품을 지원하자는 거예요. 어떻게 보면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는 것 같지만, 이게 다 하나라는 겁니다. 어떤 특별한 게 아니라 필요에 따라 해나갈 뿐입니다. 이게 보편성이에요.

그러면 특수성이란 뭘까요? 북한의 정치적인 입장도 있고, 남한의 일부 세력이 가지는 정치적인 입장도 있고, 중국 정부의 정치적인 입장도 있기 때문에, 정치적 입장이 없는 나라에서 지원하는 것처럼 지원할 수는 없어요. 그래서 북한에 인도적 지원을 하는 단체는 이런 정치적 입장들과 일체 관계없이 오직 인도적 지원만 해야 합니다. 난민을 돕는 단체는 오직 난민을 돕는 일만 해야 합니다. 한 단체가 인도적 지원도 하면서 난민도 돕는다면, 인도적 지원을 할 때는 북한 정부가 좋아하지만 그 다음에 난민을 도우면 ‘왜 민족배신자를 돕느냐?’라고 반발하게 되어서 갈등이 생깁니다. 이런 특수성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단체를 여러 개 만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인도적 지원을 하는 단체를 따로 만들었고, 난민을 돕는 단체를 따로 만들었고, 인권 개선을 주장하는 단체를 따로 만들었고, 환경 문제를 지원하는 단체를 따로 만들어서 각각은 자기 영역만 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여러 단체를 만들어서 접근하는 건 한반도를 둘러싼 정치적 상황을 고려해야 하는 특수성 때문이에요.

제가 이런 일, 저런 일을 하는 건 절대로 제가 그 문제들에 대한 다양한 관심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저는 오직 인류의 보편성에 입각해서 접근하기 때문이에요. 우리가 어떤 일을 할 때는 보편성과 특수성을 가져야 합니다. ‘북한이 인도적 지원을 받아야 할 정도의 위기는 아니고 먹고 살만하다. 그렇지만 우리 민족이니까 돕자’ 이런 입장이라면, 그건 인도적 지원이 아니에요. 그건 보편성이 아니라 특수성에 해당하는 겁니다. ‘아프리카는 도와도 좋지만, 북한은 돕지 마라. 북한은 나쁜 놈이다!’ 이런 입장이라면, 이것 역시 특수성으로 접근하는 것이지 보편성은 아니에요.

우리가 인권, 인도적 지원, 난민 문제를 대할 때는 보편성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그런데 북한 문제가 갖는 특수성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여러 단체를 만들어서 접근할 수밖에 없었던 겁니다.”

“오히려 그런 특수성을 고려하셨기 때문에 더 지속적으로 활동을 할 수 있으셨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얼핏 보면 이것저것 다 한다고 오해할 수도 있죠.” (웃음)

취재진은 그 외에 새로운 100년으로 나아가는데 민의 역할과 의미, 북한을 바라보는 관점에 대해 묻기도 하였습니다. 또 즉문즉설 강연에서 대중들에게 가장 중심적으로 전하고자 하는 가치에 대해서도 질문하였습니다.

“살아있는 사람은 그 출생이 어떻든, 성장과정이 어떻든, 현재 놓여진 조건이 어떻든 행복할 권리가 있고, 행복할 수 있습니다. 산을 올라갈 때도 행복하고 정상에 가서 만세를 부를때도 행복하고 내려올 때도 행복해야죠. 올라갈 때는 힘들고, 정상에서는 좋고, 내려올 때는 슬프면 안 된다는 거예요. 올라갈 때는 다리가 아프지만 행복하고, 정상에서는 멀리봐서 행복하고, 내려올 때는 집에가서 행복해야 됩니다. 저는 행복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어느덧 준비한 질문의 마지막 차례가 되었습니다.

“마지막 질문 드리겠습니다. 올해 우리 정부나 국민들이 한반도 평화를 위해서 어떤 역할을 하고, 이 상황을 어떻게 대응해나가는 게 좋을지 제언 부탁드리겠습니다.”

“첫째, 재화든 뭐든 우리가 지금 가진 것들을 잃지 말아야 해요. 그러려면 평화가 지켜져야 합니다. 어떤 이유로든 전쟁은 절대로 안 돼요. 이 문제는 진보, 보수를 떠나서 확고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다고 평화만 지켜지면 충분할까요? 사람은 희망이 있어야 하잖아요. 그런데 우리의 미래 이익을 위해서는 분단이 지속되는 게 좋을까요, 통일이 이루어지는 게 좋을까요? 여러 평가가 있지만 통일이 이루어지는 것이 훨씬 이롭습니다. 너무 전쟁 위기를 자주 겪다 보니까 ‘평화만 오면 됐다.’ 이렇게 소극적이 되기 쉽지만 통일의 희망을 놓쳐서는 안 돼요.

평화는 현재의 이익을 지키기 위함이고, 통일은 미래의 이익을 만들기 위함입니다. 따라서 평화를 기반으로 삼되 통일의 희망을 놓쳐서는 안 됩니다.

문제는 이렇게 평화를 지키고 통일로 나아가는 길에 국민의 합의가 필요하다는 거예요. 우리 국민이 5천만이고 북한까지 합하면 7천 5백만, 해외교포까지 합하면 8천만입니다. 그런데 국민은 굉장히 다양해요. 구성도 다양하고 생각도 다양하고 이해관계도 다양합니다. 그러니까 통일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100퍼센트는 아니더라도 다수 국민의 의사가 통합이 되는 합의점을 찾아가야 합니다. 평화와 통일은 궁극적으로 국민을 위하는 것이니까요. 그렇기 때문에 국민의 의견을 듣고 동의를 구하면서 나가야 해요.

국민이 평화를 원하는데 전쟁하자고 하거나, 국민이 통일을 원하는데 통일하지 말자고 해서는 안됩니다. 또 평화와 통일의 길로 가더라도, 그 방식에 있어서 국민이 좀 천천히 가자는데 너무 빨리 가거나 국민이 빨리 가자는데 천천히 가자고 해도 안 돼요. 저는 평화와 통일로 가되 과정에서 국민의 합의를 이끌어내는 것도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요약 정리하면 첫째, 한반도의 평화를 확고히 지켜야합니다. 둘째, 통일의 희망을 놓지 않아야 합니다. 셋째, 통일로 가는 과정에서 다양한 국민의 의사를 통합해 가면서 가야 합니다."

인터뷰가 끝나고 사진 기자가 잡지에 실릴 사진을 몇 장 찍겠다고 요청했습니다.

“스님, 미소가 너무 좋습니다.”

“뭐, 괴로울 일이 없으니까요.”(웃음)

취재진은 바쁜 시간을 내주어 감사하다며 인사를 나눈뒤 인터뷰를 마쳤습니다. 이후에도 스님의 바쁜 일정은 밤늦게까지 계속 되었습니다. 내일 또 소식 전해드리겠습니다.

 3.1운동 100주년 기념 토론회 안내
▲ 3.1운동 100주년 기념 토론회 안내

전체댓글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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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데오

‘"원하는 게 이루어지면 다행이고, 안 이루어지면 실망이다’ 하는 자세는 희망이라기보다는 욕망이죠. 희망은 이루어질 때까지, 이루어지도록 끊임없이 도전하고 노력하는 거예요. 그럴 때 그걸 희망이라고 말합니다.” 감사합니다.~~^^

2020-02-22 08:40:01

정지나

"별 괴로울 일이 없다~~~" 이 한마디에 가볍고 뽀송뽀송 해지내요
감사합니다 꾸벅^^

2019-02-24 09:19:05

홍예지

꾸준히,도전하고 끊임없이 노력하라...
스님 정말 대단하십니다.
고맙습니다.

2019-02-24 05:2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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