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16.9.6 해외 즉문즉설 강연(2) 프랑크푸르트(Frankfurt)
“독일 유학생인데, 수업을 쫓아가기 벅차지만 그렇다고 안주하기도 싫어요.”


 

안녕하세요? 오늘은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해외 즉문즉설 강연이 열렸습니다. 새벽 5시 30분에 베를린 중앙역에 도착한 스님 일행은 하룻밤 묵게 해주고 강연장까지 운전 봉사를 해준 장서희님의 남편인 토마스씨에게 감사 인사를 한 후 역 앞에서 작별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 베를린 기차역. 운전 봉사를 해준 토마스씨와 함께.

 

토마스씨는 우리가 생각하는 원칙적인 독일인과는 달리 유머 감각이 많아 이동하는 중에 항상 큰 웃음을 주었습니다. 

 

지평선 위로 동이 터오를 무렵, 프랑크푸르트로 출발하는 기차가 막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6시 4분에 베를린역을 출발한 기차는 9시 44분에 프랑크푸르트역에 도착했습니다. 

 


▲ 베를린에서 프랑크푸르트로 가는 기차

 

기차 안에서 스님은 독일정토회 이희정 총무님과 유럽에서 살고 있는 교민들은 주로 어떤 어려움들을 겪고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 나누기도 하고, 오후에 있을 수계식 실무 준비회의를 하기도 했습니다. 

 


▲ 기차 안에서 열린 실무회의

 

프랑크푸르트역에 도착하자 프랑크푸르트 정토법회 신재숙 부총무님과 배형옥씨 부부가 반갑게 마중을 나와 스님 일행을 반겨주었습니다. 기차역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한컷 찍고 점심 식사 장소로 향했습니다. 

 


▲ 프랑크푸르트 기차역

 

점심 식사는 프랑크푸르트에서 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이종서님의 초대로 이뤄졌습니다. 이종서님은 저가항공을 타고 다니며 세계 곳곳에서 교민들의 어려움을 들어주는 스님에게 감동한 이후 스님이 프랑크푸르트에 올 때마다 가장 먼저 나서서 식사 접대를 자청하는 분입니다. 스님은 감사히 식사 접대를 받고 새책 ‘날마다 새날’을 사인해서 선물했습니다. 

 


▲ 점심 식사를 접대해 준 이종서님과 함께.

 

이어서 오후 1시부터는 유럽지구 독일정토회 정토불교대학, 경전반 수계식 및 졸업식이 열렸습니다. 행사는 ‘Saalbau Gallus’ 라는 푯말이 적힌 대강당에서 열렸습니다. 

 


▲ 강연장 Saalbau Gallus

 

오늘 수계식 및 졸업식에는 프랑크푸르트 정토법회에서 5명, 뒤셀도르프 정토법회에서 3명, 함부르크 정토법회에서 5명, 베를린 정토법당에서 4명 등 총 17명이 자리한 가운데 차분하게 진행됐습니다. 

 


▲ 정토불교대학 경전반 수계식 및 졸업식

 

스님은 수계식 기념법문과 졸업식 기념법문에서 불교대학과 경전반의 교과 과정에 대해 다시 짚어준 후 수계를 받는 의미와 졸업 이후의 삶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그리고 수계증과 졸업증을 나눠준 후 한 분 한 분에게 불명을 정해주고 그 불명의 의미에 대해서도 자세한 해석을 들려주었습니다. 

 


▲ 졸업장 수여

 

그리고 수계를 받은 졸업생들은 스님의 질문에 하나씩 대답하며 반드시 계율을 지키겠다고 원을 다짐했습니다. 

 

“저희 수계제자들은 부처님의 가르침인 오계가 가장 올바른 삶의 길임을 믿기에 기쁜 마음으로 받아 지니며 다음과 같이 서원합니다. 

 

첫째, 산 목숨을 죽이지 말라함은 생명을 존중하라는 뜻이기에 살아있는 생명을 때리거나 죽이지 않겠습니다. 폭력, 살인, 고문, 사형을 반대하여 인권을 존중하겠으며, 전쟁과 핵무기를 반대하며 평화를 옹호하겠으며, 각종 공해를 추방하여 뭇생명을 보호하겠습니다. 

 


 

둘째, 도둑질을 하지 말라 함은 성실하게 살라는 뜻이기에 주지 않는 남의 물건을 훔치거나 뺏지 않겠습니다. 사치하거나 낭비하지 않고, 근검절약하는 청빈한 삶을 살겠으며, 매춘이나 마약판매, 도박 등 부정한 직업을 갖지 않고, 정당한 노동에 의해 생활하겠으며, 남녀, 인종, 직업, 학벌 등에 따라 차별하지 않고 평등한 분배를 실현하겠습니다. 

 

셋째, 사음하지 말라 함은 청정하게 살아가라는 뜻이기에 본인의 의사에 반하는 성추행이나 성폭행을 하지 않겠습니다. 부부간에 신의를 지킴으로써 가정을 화목하게 하겠으며, 인간을 성적 쾌락의 도구로, 노동의 도구로, 전쟁의 도구로 사용하지 않고 인격으로 대하겠으며, 성의 차별을 철폐시킴으로써 남녀평등을 실현하겠습니다. 

 

넷째, 거짓말을 하지 말라 함은 진실을 말하라는 뜻이기에 남을 속이거나 욕설하지 않겠습니다. 약속한 것은 꼭 지킴으로써 신뢰를 돈독히 하겠으며, 직업적 양심을 지킴으로써 공익 우선의 사회를 건설하겠으며, 공정한 보도를 위한 정보의 독점과 왜곡을 반대하며, 언론의 자유를 옹호하겠으며, 진실한 사회를 건설하겠습니다. 

 


 

다섯째, 술을 먹지 말라 함은 맑은 소견을 가지라는 뜻이기에 술을 과도하게 마시거나 취하지 않겠습니다. 마약이나 담배 등 습관성 물질에 중독되지 않고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이 되겠으며, 보고 즐기는 스포츠광이 되지 않고, 스스로 심신을 단련하겠으며, 향락적이고 소비적인 문화를 추방하고, 주체적이고 창조적인 문화를 꽃피우겠습니다. 

 

저희 수계자들은 오늘 이후부터 목숨을 마칠 때까지 아무리 어려운 일이 닥치더라도 이 서원을 성취하기 위해서 화합하고 단결하여 용맹 정진하겠습니다.”

 

수계 대중들의 다짐을 들은 스님은 한 분 한 분의 이름을 거명하며 오늘 세운 서원이 잘 성취될 수 있게 간절한 마음으로 축원 기도를 해주었습니다. 

 

수계식과 졸업식을 여법하게 마친 후 다함께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특히 해외는 한국처럼 가까운 거리에 정토법당이나 수련원이 없어 꾸준히 수행을 해나가기가 어려운 여건인데도 모든 과정을 잘 마친 분들입니다. 스님은 “정말 수고 많았어요” 하면서 더욱더 애정어린 눈빛으로 함께 사진을 찍었습니다. 

 


 

잠시 휴식 시간을 가진 후 저녁 7시부터는 푸랑크푸르트에 살고 있는 교민들을 위한 즉문즉설 강연이 열렸습니다. 약 200여 명이 자리를 가득 메운 가운데 스님이 연단에 오르자 뜨거운 환호와 박수갈채를 보냈습니다. 

 


 

스님은 여는 인사를 하면서 어제 베를린에서 나왔던 질문 하나를 소개했습니다. 유럽에 살고 있는 교민들은 정체성에 대해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은데, 교민들이 정체성 문제를 어떻게 바라보면 이 문제로부터 조금 더 자유로워질 수 있는지 강조했습니다. 

 

“지혜라는 것은 조금 멀리 보는 것입니다. 어제도 어떤 분이 질문하셨어요. ‘저는 한국에 돌아가도 한국 사람이 아니고 독일에 와도 독일 사람이 아니에요. 저는 어떻게 살아야할까요?’ 그래서 제가 ‘당신은 인생관이 잘못 됐다’라고 했습니다. 

 


 

한국에서 태어나서 평생 한국에서 산 사람과 질문자처럼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독일에서 평생 살아온 사람을 비교할 때, 질문자는 한국말도 한국 사람보다 잘 못 하고, 한국에 대해서도 한국 사람보다 잘 모르는 게 당연하잖아요. 반대로 독일에서 태어나서 평생 독일에 산 사람하고 한국에서 태어나 독일로 온 사람을 비교하면 그 사람은 독일 말을 아무리 해도 독일 사람만큼은 못 할 거고, 독일에 대해서도 독일 사람만큼 모르는 게 너무 당연한 것 아닙니까? 

 

그런데 그 질문자는 남에게 내 정체성의 기준을 둬요. 한국에서는 한국 사람한테 기준을 두고 나를 보니까 ‘나는 한국사람 아니다’ 그러고, 또 독일에서는 독일 사람에게 기준을 두고 나를 보니까 ‘나는 독일 사람 아니다’ 이러는 겁니다. 이렇게 남을 기준으로 두니까 자신의 정체성이 없어지는 거예요.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독일에서 살았다면 특별한 사람인 거예요. 아시겠어요? 새로운 종이 태어난 거예요. 한국에서 태어나서 한국에서 산 사람, 그리고 독일에서 태어나서 독일에서 산 사람하고는 다른 새로운 인간이 생긴 겁니다. 이렇게 자기 나름대로 제 3의 정체성을 찾아야 한다는 거예요.  

 

그렇다면 오히려 이렇게 자랑삼을 수 있는 겁니다. 한국 사람한테는 ‘당신은 한국에만 살았지, 난 독일에도 살아봤다’ 하고, 또 독일 사람한테는 ‘당신은 독일에만 살았지, 난 한국에도 살아봤다’, ‘당신은 독일어밖에 못하지, 난 한국말도 할 줄 안다’ 하고, 마찬가지로 한국 사람한테는 ‘당신은 한국말만 하지만 난 독일말도 할 줄 안다’ 하면서 자기 정체성을 따로 찾아야 합니다. 아시겠어요?”

 

“네.” (모두 웃음)

 


 

“여러분들은 자꾸 남에게 기준을 두고 있어요. 옛날에 없었던 새로운 삶을 살고 있는데 말이에요. 즉 새로운 종이 생겨난 것이나 같은 거예요. 그러니 정체성을 따로 찾아야 된다는 겁니다. 그렇게 해야 여러분의 삶이 안정될 수 있어요. 자꾸 남에게 기준을 두지 마세요.

 

한국에서 태어나서 한국에서 산 사람하고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독일에서 산 사람이 똑같이 대우 받으려 하거나 똑같이 한국을 알려고 하는 건 욕심이잖아요. 그러나 ‘나는 한국에서 태어나서 자란 사람만큼은 한국어를 못하고, 독일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만큼은 독일어를 못하지만, 독일사람 중에는 한국말을 제일 잘하고 한국사람 중에서는 독일 말을 제일 잘하는 사람에 속한다’ 이렇게 생각하면 내가 굉장한 사람이 되잖아요? 이렇게 자기 정체성을 별도로 찾아야 해요. 

 

그러니까 가치관을 이렇게 다르게 가지면 됩니다. 그러면 여기 와서 사는 게 아무 문제가 없어요. 그런데 한국 사람에 기준을 두면, 여기 와서 살다가 다시 한국 돌아가서 한국 사람과 비교하면 내가 헛고생 한 것 같아요. 여기 오신 분들 중에도 ‘헛고생했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을 겁니다. 그것은 정말로 헛고생을 해서 그런 게 아니라 기준을 잘못 잡아서 헛고생으로 생각하게 되는 겁니다. 

 

여러분이 경제적으로만 비교하면 한국이 어려워서 잘 살려고 여기 왔는데, 이젠 한국도 잘 살게 되니까 여기 온 보람이 별로 없어지잖아요. 그런데 지금은 독일 사람이나 한국 사람이나 경제적으로 잘 살아도 모두 다 행복하지 못해요. 아세요? 한국이 현재 GDP 상으로는 세계 13위에요. 물론 독일은 4위이지만요. 1인당 GDP로도 한국이 세계 28위쯤 되는데, 이에 반해서 국민 행복도는 117위에요. 물론 빈부 격차같은 여러 가지 사회적 모순도 있지만, 이것은 결국 행복은 GDP순이 아니라는 것을 말하는 겁니다. 

 

 

하나 물어볼게요. 여러분들이 독일에 살면서 보니까 독일 사람들이 행복한 축에 들어가는 것 같아요, 아닌 것 같아요?” 

 

“...글쎄요.”

 

“제가 보니까 꼭 그렇진 않은 것 같아요. 여러분이 독일 사람하고 경쟁할 때 뭘로 하면 이길 수 있겠어요? 키로 경쟁해도 안 될 거고, 몸무게도 안 될 거고, 독일말로 해도 안 될 거고, 재산으로도 경쟁에서 이기기 어렵잖아요. 그렇지만 여러분이 독일 사람한테 이길 수 있는 것이 한 가지 있어요. ‘내가 당신보다 키도 작고, 재산도 적고, 독일말도 부족해도, 난 당신보다 행복하다’ 이겁니다. ‘누구든지 나하고 행복한 걸로 비교할 사람 있으면 나와 봐라’ 이런 자신감이 있어야 해요.(청중 웃음)



 

저는 다른 것은 몰라도 행복은 자신 있어요. 초등학교 친구들을 만났을 때 저보다 더 행복한 사람 있으면 나와 봐라 이렇게 큰소리 칠 수 있고, 중학교 친구 만나도 그렇고, 고등학교 친구 만나도 그렇고, 동네 사람 모아놓고도 그래요. 여러분하고도 ‘누가 더 행복하냐’ 그러면 저는 ‘나보다 더 행복할 사람이 몇 명 있을까’ 이렇게 생각해요. 


그러니까 밥 좀 못 먹는 것, 옷 좀 못 입는 것, 집 좀 번듯하지 않은 것, 이런 건 별로 문제가 안 돼요. 아마 그런 건 여러분이 저보다 나을 거예요. 그렇지만 자유롭고 행복한 경쟁력은 제가 좀 있는 편이에요.(청중 웃음)


그래서 만약 여러분이 독일에 와서 그런 행복을 누릴 수 있다면 이렇게 생각할 수가 있어요. ‘내가 독일에 온 건 독일 사람에게 행복하게 사는 방법을 가르쳐 주려고 왔구나.’ 이렇게 말입니다. 


‘내가 처음에 여기 올 때는 잘 먹고 잘 살려고 여기 왔는데, 세월이 40년 지나서 돌아보니 한국에 있었어도 잘 먹고 잘 살 수 있지 않았겠나. 그런데 내가 이것 때문에 여기 왔나?’ 이렇게 생각하면 헛고생한 게 되잖아요. 이제는 다시 생각해보세요. 내 정체성을 다시 살펴보세요. ‘내가 왜 여기 왔나 생각해보니, 내가 이 사람들에게 행복하게 사는 비법을 알려주려고 왔구나’ 이렇게 말입니다. 이렇게 정체성을 다시 찾아보면 어떨까 합니다. 그러려면 여러분들이 독일 사람보다 어떠해야 할까요?“

 

“더 행복해야 해요.”

 

 

 

“네, 더 행복해야 되겠지요. 여러분이 행복해져서 독일 사람이 ‘당신은 어떻게 웃고 삽니까?’ 하고 물으면 ‘아, 그건 이렇게 하면 됩니다’ 하면서 행복의 길로 이끌어주면 여러분들이 독일인의 스승이 될 수 있는 거예요. 행복의 스승이 될 수 있어요.” 

 

행복의 스승이 되어보라는 스님의 권유에 청중들은 기쁜 마음이 되어 큰 박수로 호응했습니다.  

 


 

이어진 즉문즉설에서는 총 8명이 질문했습니다. 오늘은 그 중에서 독일에 유학을 온 한 청년의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 

 


 

“저는 프랑크푸르트에서 공부하고 있는 학생입니다. 여기서 학업을 시작한지 3학기 지났습니다. 수업을 쫓아가기가 벅차지만 그렇다고 목표를 낮추면 현실에 안주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그러면 발전이 없잖아요. 이런 딜레마를 어떻게 극복해야 할지 스님의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그리고 저처럼 해외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충고나 조언을 좀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질문자의 목표가 뭐에요?” 

 

“제가 배운 공부로 밥 벌어 먹고 사는 거예요.” 

 

“배우는 게 뭔가요?”

 

“역사학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학부인가요, 아니면 석사나 박사 과정인가요?”

 

“지금은 석사과정이고 박사까지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럼 무엇이 어려워요?”

 

“가장 큰 것은 언어문제죠. 인문학이다 보니 독일사람 만큼 언어를 구사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게 많이 부족해요.”

 

“질문자가 언어가 부족해서 여기서 박사학위 논문을 쓰는 게 힘들다고 하면, 노력을 하되 미리 체크해보고 아무래도 힘들다고 하면 미리 그만두는 게 나아요. 현실에 안주하는 것과는 성격이 다릅니다. 그런 어려움을 외국인으로서 극복하려면 그만큼 시간을 더 들이고 그만한 노력을 더 해야 하잖아요. 

 

인도사람이 한국에 와서 한국 역사를 배우고 한국말로 논문을 쓴다면 그 사람도 똑같이 이런 어려움을 겪겠지요. 그러니 이것은 선택의 문제라는 거예요.

 

예를 들어 제가 설악산을 가겠다고 하면, 일단 산이 높으니까 등산화도 챙기고 간식도 챙기고 비옷도 챙겨야합니다. 여러 가지가 필요하지요. 또 올라가면 다리가 아프겠지요? 그런데 설악산은 오르고 싶고 챙기는 건 싫어서 슬리퍼 신고 반바지 입고 슬슬 올라가면 어떨까요? 힘들겠지요. 그래서 막 불평을 한다고 할 때, 이게 바로 목표와 현실이 안 맞는 겁니다. 내가 슬리퍼 신고 반바지 입고 가려면 남산을 가야하고 설악산을 가려면 등산화 신고 장비를 챙겨야 하는 건 물론이고 가다가 다리 아플 것을 미리 각오해야 합니다. 시간도 그만큼 많이 잡아야 해요. 

 

그러니 그건 선택의 문제라는 거예요. 그냥 설악산을 가는 게 좋은지, 남산을 가는 게 좋은지 얘기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거예요. 간단하게 가고 싶으면 목표를 남산으로 정하고, 목표를 설악산으로 정했으면 그만큼의 시간과 각오나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해요. 만약에 준비는 슬리퍼 신고 반바지 입고 가고 싶고, 산은 설악산을 오르고 싶다고 하면 이렇게 서로 맞지 않는 것 때문에 번뇌가 생기고 고뇌가 생긴다고 말할 수 있어요. 어떤 산을 갈 것인지는 자기가 선택하는 거예요.

 

그걸 스님이 대신해 줄 수도, 남이 대신해 줄 수도 없어요. 외국인이니까 언어보다 기술적인 부분이 더 많은 자연과학 분야의 학위는 상대적으로 따기 쉬운데, 역사학의 경우는 언어적인 문제가 해결이 안 될 경우 학위를 따기 어렵다면 역사 자체보다도 언어에 대해서 극복해야하는 과제가 하나 더 생기는 것이잖아요. 거기다 역사 공부까지 해야 하니까 두 가지 부담을 안게 되겠죠. 여기서 ‘언어만 된다면 내가 할 수 있는데...’ 이런 얘기는 아무 의미가 없는 얘기에요. 

 

그러니까 언어가 약간 부족하다면 역사적인 안목이 탁월하든지, 역사적인 아이디어가 부족하다하더라도 언어가 탁월하든지, 아니면 그 중간쯤이라도 되든지, 이런 것을 선택해야 하겠지요. 해보면서 자기가 언어에 대해서 소질이 있는지, 노력하면 되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저 같으면 포기하겠어요. 저는 언어에 소질이 없으니까요.(청중 웃음) 그렇게 자기가 선택을 해야 해요.” 

 

“선택을 한다고 했을 때 선택의 기점을 알 수 있는 표시나 징후가 있을까요?” 

 

“그건 딱 석사까지를 목표로 해서 한번 해보면 되죠. 지금 3학기라고 했지요?”

 

“네.”

 


 

“그럼 앞으로 2학기나 3학기 남았잖아요. 석사 학위까지는 의문을 내지말고 박사까지 간다는 목표를 두고 향후 1년 반을 아주 집중적으로 공부해보는 거예요. 그만둬도 후회 없을 정도로 집중해보면, 나중에 ‘게을러서가 아니라 나로서는 한계가 있는 것이다.’라고 생각이 들 수도 있어요. 그러면 깔끔하게 그만두고 한국으로 돌아가거나 다른 길을 모색해야 해요. 반대로 집중적으로 하니까 문리가 터진다는 게 있거든요. 스님이 여러분에게 얘기하는 것이 지식으로 하는 게 아닌 것처럼 문리가 탁 터지면 하나로 관통하는 경지에 이르게 되는데, 그런 단계에 이르면 두려워할 필요가 없어져요. 

 

그러니 일단 일 년 반을 시한으로 해서 석사 과정을 끝내야지 이것마저 할까 말까 한다면 아예 포기하는 게 나아요. 여기에 일 년 반을 시한으로 해서 최선을 다해서 집중했더니 해 볼만하다든지 포기해야겠다든지 결론을 내릴 수 있어요. 고시를 네 차례 다섯 차례 떨어진 사람들도 그만두려니 아깝고, 하려니 막막해서 저한테 질문하는 경우가 많아요. 이럴 때도 마찬가지예요. 

 

그 때는 딱 일 년을 시한으로 정해서 최선을 다해보고 안 되면 그만두겠다고 생각하면 돼요. 문제는 그 일 년을 최선을 다하느냐 안 하느냐 입니다.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미련이 남게 돼요. ‘내가 조금만 더했다면 될 수도 있었다’라는 미련이 생기거든요. 그러면 나중에 그만둬도 늘 후회가 되는 거예요. 해도 고민, 안 해도 고민 이런 게 생겨요. 

 


 

저는 학교를 그만두고 절에 들어갔는데 세상에 대한 미련이 거의 없었어요. 그래야 자기 선택에 대한 후회를 안 하게 됩니다. 그러니 정말 집중해서 한번 해봐야 해요. 지금 그만두면 미련이 생기겠죠? 이왕 이렇게 된 거니까 일 년 반을 집중적으로 공부해서 석사를 받고 난 다음 박사 공부가 되겠다, 안 되겠다 하는 기준을 세우는 게 좋겠네요.”

  

“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청중 박수) 

 

질문자는 큰 목소리로 대답하며 자리에 앉았습니다. 한결 가벼워진 표정이었습니다. 답변이 끝난 후 질문자에게 찾아가 소감을 물어보았습니다. 질문자는 “어제까지 계속 고민한 문제였는데 스님의 답변을 듣고 나서 마음에 중심이 섰다”라며 밝게 웃었습니다. 그리고 “이왕 이렇게 된 거 스님 말씀대로 집중해서 해보기로 했다”고 하면서 한결 가벼워진 발걸음으로 돌아갔습니다. 

 

나머지 7명의 질문에 대해서도 스님은 열정적으로 답변을 해주었습니다. 강연을 마치면서 스님은 우리가 고뇌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통찰력이 필요함을 얘기했습니다. 

 

“사람들은 제가 문제를 해결해 준다고 하는데 저는 문제를 해결해 준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다만 사람들에게 묻기만 하는 거예요. 사람들이 어떤 사물을 볼 때 오직 위만 보고 ‘이렇게 생겼다’라면 제가 ‘아래도 한번 보세요.’ 합니다. 앞만 보고 이렇다 하면 ‘뒤도 한번 보세요’ 하고 얘기하는 거예요. 이것을 ‘전모를 본다’라고 합니다. 한 면만 보면 문제가 있던 게 전모를 보면 아무 문제가 안 돼요. 

 


 

지금 우리들의 지식이라는 것은 어떤 사물의 한 면만 보는 거예요. 지식 자체가 나쁜 게 아닌데 오히려 지식이 편견을 갖게 만드는 원인이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지식을 부정하자는 게 아니에요. 사물의 전모를 보는 것을 ‘통찰력’이라고 해요. 전체를 보는 이 통찰력을 다른 말로 ‘지혜’라고 해요. 

 

많은 사람이 깨달음에 대해서 묻습니다. 그런데 깨달음에 대해서 좀 다르게 상상하는 것 같아요. 어느 날 갑자기 깨달음을 얻어서 세상이 환해지고 구름타고 다니는 것 같은 환상을 갖지 마세요. 한 면이 아니라 전모를 보려는 노력을 꾸준히 하면 됩니다. 그런 통찰력을 가지려고 노력하면 됩니다. 그럴려면 많은 경험이 필요해요. ‘스님은 어떻게 해서 통찰력을 갖게 되었느냐’라고 물으면 저는 ‘고생을 많이 하면 돼요’라고 답합니다. 그냥 고생을 많이 한다고 해서 저절로 되는 건 아닙니다. 고생을 많이 하게 되면 사물을 총체적으로 볼 확률이 굉장히 높아집니다. 이 세상의 갈등은 대부분 자기만 생각해서 생기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여러분은 지식적인 것은 전문가에게 도움을 얻더라도 인생에 있어서는 통찰력을 갖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기독교인도 기독교의 그늘에만 빠져있지 말고 다른 종교도 좀 보고, 불교인도 불교만 보지 말고 다른 것도 보는 게 필요해요. 자기를 포기하라는 게 아니에요. 오히려 그럴 때 자기 정체성을 가질 수 있어요. 늘 남한의 입장에서만 보지 말고 북한의 입장에서도 보고, 한국 사람의 입장에서만 보지 말고 일본사람의 입장에서도 보세요. 이렇게 사물을 총체적으로 보게 될 때 우리들 속에 있는 괴로움과 답답함이 사라지고, 동시에 현실 속에서 실현가능한 합리성을 추구해 나갈 수도 있어요. 그렇게 해야 여러분의 얼굴이 밝아져요. 우리 인생에 심각한 얼굴로 고민할 만큼 중요한 건 없습니다.  

 


 

독일에 살면서 인생이 괴롭다 하면 인류에 절망을 가져옵니다. 제 3세계에 사는 사람은 독일에 가서 살면 행복할거라 생각하고 독일에 한 번 살아보는 게 꿈인데, 여기 사는 여러분들이 다 괴로워하고 있다면 그 사람들에게 희망이 없어지잖아요. 여러분의 인생만 힘든 게 아니라 인류에게도 절망을 주게 되는 것이니까 여러분들이 좀 가볍고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신앙은 각자 알아서 가지시되 행복한 삶을 사는 이 길을 공부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독일에 살면서 괴롭다고 하는 것은 인류에게 절망을 안겨준다는 말씀에 모두 큰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스님의 이야기를 곱씹어 듣다보니 정말 마음이 한결 가벼워져 있었습니다. 강연을 마친 후 책 사인회가 열렸는데, 많은 분들이 스님에게 다가와 ‘스님 덕분에 많이 행복해졌다’ 며 감사 인사를 했습니다. 

 


▲ 책 사인회

 

특히 오늘 참석자 중에는 10여 년 전에 스님과 인연이 닿아 독일정토회 활동을 초창기에 함께 했던 분들이 대거 찾아왔습니다. 너무나 오랜 만에 만남이 이뤄져서 스님도 무척 반가워 했습니다. 

 


▲ 독일정토회 초창기 회원들과 함께

 

마지막으로 강연을 준비한 프랑크푸르트 정토법회 회원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오랜만에 독일을 방문한 스님도 만나고, 교민들을 기쁘게 해주는 강연도 준비하고, 정토불교대학과 경전반 졸업식도 성공적으로 마쳤기에 모두들 보람과 기쁨으로 가득찬 표정이었습니다.

 


▲ 푸랑크푸르트 정토법회 회원들

 

프랑크푸르트 정토법회는 매월 첫째주와 셋째주 일요일 오전 11시에 수행법회를 열고 있습니다. 

 

강연을 총괄한 프랑크푸르트 정토법회 신재숙 부총무님의 집에서 하룻밤을 머문 스님은 내일 아침 8시에 프랑크푸르트를 출발해 뒤셀도르프로 이동합니다. 뒤셀도르프에서는 오후 6시 30분에 즉문즉설 강연이 열릴 예정입니다.

 

다음은 오늘 강연 내용을 영상으로 담아 보았습니다. 독일에서도 이방인인 것 같고, 한국에서도 이방인인 것 같고, 정체성 때문에 고민하는 교민들을 위한 법륜 스님의 답변입니다. 

 

[영상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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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복

오랜만에 스님의 메세지를 접합니다 사물의 전모를 보는 통찰력 늘 가슴에 새기겠습니다

2016-09-10 20:27:57

인생에 심각한 고민상담을 하고싶은데 방법이 없을까요?

50대 초반의 가장입니다. 여러 문제에 스님께 질의할 방법이 없는지요. 직업,부부문제,자식,노모등 복합적 질문입니다만..

2016-09-09 18:45:35

규원

행복의 스승이 되는길 스님의 인생의 최고의 조언을
주신것에 깊은감사드립니다.건강하세요스님

2016-09-09 13:4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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