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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경기도 부천에서 청년들을 위해 즉문즉설 강연이 열리는 날입니다.
어제밤 울산에서 즉문즉설 강연을 마치고 새벽 3시에 서울에 도착한 스님은 잠시 휴식을 취한 후 아침 7시부터 하루 일정을 시작했습니다. 평화재단에서 각종 회의와 미팅을 연이어 가진 후 저녁이 되자 강연을 하기 위해 부천으로 향했습니다.
저녁 7시부터는 ‘예쁜 꽃, 젊은 그대에게’라는 주제로 부천시 복사골 문화센터에서 청년들을 위한 즉문즉설 강연이 열렸습니다. 강연 시간이 가까워질수록 청년들이 하나 둘 강연장을 채웠습니다. 청년을 위한 강연이었지만, 개중에는 중년의 청중도 몇몇 보였습니다.
스님이 입장하자 모두들 뜨거운 환영의 박수를 쳤습니다. 스님의 환한 미소를 보자 청년들의 얼굴에도 순식간에 밝은 기운이 번졌습니다.
스님은 인사를 건넨 후 즉문즉설은 내가 살아가면서 겪는 인생의 고뇌를 드러내고 대화하는 것이니 아무 이야기나 해도 좋다고 하면서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총 여섯 명이 스님에게 질문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습니다. 오늘은 그 중에서 가정불화 속에서 부모님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란 것 때문에 엄마를 미워하고 있는 한 청년의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 스님은 청년이 전혀 생각해보지 못했던 새로운 점을 발견하게 해주어 청년의 마음을 환하게 만들어 주었는데, 이 모습은 청중들에게도 많은 감동을 주었습니다.
질문자는 질문 내내 울먹울먹 하였고, 감정에 복받쳐 처음에는 말문이 잘 안 열리는 듯 했습니다.
“제 고민은... 죄송합니다, 스님.”(질문자가 울먹이며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괜찮아요. 우세요...”
“어렸을 적에 좀 가정불화가 있어서 남을 쉽게 믿지 못해요.”
“가정불화의 주범이 누구예요?”
“저희 부모님이요.”
“부모님끼리 싸웠는데 질문자를 뭘 어떻게 했다는 거예요? 자기들끼리 싸우다가 기분 나쁘면 질문자를 때리기라도 했어요?”
“때리지는 않았는데, 어렸을 적에 부모님으로부터 관심과 사랑을 많이 못 받고 자랐습니다.”
“저도 부모님으로부터 관심과 사랑을 못 받았어요. 저는 7남매인데다가 부모님이 농사일 때문에 바쁘셔서 우리 남매들 중에 한 명이 밥을 먹었는지 못 먹었는지도 몰랐어요. 질문자의 형제는 몇 명이에요?”
“제 위에 오빠가 있습니다. 남매입니다.”
“오빠는 부모님의 사랑을 받았어요?”
“아니오.”
“그럼 질문자는 누구하고 비교해서 사랑을 못 받았다는 거예요? 친구하고 비교한 거예요?”
“주변 사람들과 비교하기보다는 제가 생각하기에 그런 것 같다는...”
“엄마가 질문자를 낳아줬잖아요. 그리고 질문자를 밥 먹여줬잖아요. 학교 보내줬잖아요. 옷 입혀줬잖아요. 남의 집 애를 그렇게 밥 먹여주고, 학교 보내주고, 옷 입혀주는 사람 봤어요?”
“못 봤습니다.”
“엄마가 질문자한테 그렇게 해 줬다면, 그것은 엄마가 질문자를 사랑하니까 그렇게 해 준 겁니다.”
“어려운 가정형편 속에서도 저를 거둬주시고 키워주신 것에 대해 감사하게 생각은 해요. 그런데 ‘엄마께 잘해 드려야지’, ‘감사한 마음을 가져야지’ 하면서도 마음 속으로는 엄마를 자꾸 미워하게 됩니다.”
“왜 미워하는데요?”
“제가 엄마와 같은 인생을 살까봐 두려웠던 것 같아요.”
“질문자가 보기에 엄마가 인생을 잘 못 산 것 같아요?”
“예.”
“그럼 엄마를 불쌍하게 여겨야지, 왜 두려워 해요? 엄마와 아빠가 어떻게 살았는데요?”
“아버지가 가정폭력이 좀 심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아버지를 미워하는 건 이해가 되는데, 그렇게 맞아가면서 이혼도 안 하고 그저 질문자를 껴안고 먹여주고 키워준 엄마를 미워하면 어떻게 해요?”
“그런 걸 생각하니까 제가 되게 나쁜 사람인 것 같아서 많이 괴로웠던 것 같아요.”
“이유가 있을 거 아니에요. 왜 미워하는데요? 어떤 게 미움의 대상이에요? 아까 질문자는 ‘나를 사랑 안 해 줬다’ 했는데, 보통은 남편이 때리거나 돈만 안 벌어줘도 바로 별거해 버리는데, 질문자의 엄마는 맞아가면서도 애 둘을 이렇게 껴안고 키웠잖아요? 그것보다 더 큰 사랑이 어디 있다고 사랑을 못 받았다고 그래요?
남편이 때리면 보통 여자 같으면 도망가 버릴 텐데, 엄마는 결국 질문자 때문에 도망을 못 갔을 것 아니에요? 엄마는 아빠가 좋아서 도망을 안 갔을까요? 아이 둘 때문에 도망을 못 갔을까요?”
“저희 둘 때문이에요.”
“이 세상에 그것보다 더 큰 사랑이 어디 있어요?”
“그렇습니다.”
“그런데 왜 미워해요? 질문자의 말이 모순이라서 스님이 물어보는 거예요. 스님 말에 무조건 동조하지 말고요. 방금 질문자는 ‘첫째, 엄마한테 사랑을 못 받았다. 둘째, 엄마가 밉다.’ 이렇게 말했잖아요. 그런데 스님이 보기에는 이렇게 저렇게 따져보니까 질문자는 사랑을 듬뿍 받았다는 겁니다. 그리고 엄마가 아빠한테 맞아가면서 지냈다고 하니까 아빠가 밉다는 건 이해가 되는데, 엄마가 미워진다는 것은 이해가 안 된다는 겁니다. 무슨 말인지 이해가 잘 안 돼요?”
“예.”
“스님이 너무 엉뚱하게 얘기를 하는 것 같아요? 엄마가 아빠한테 맞아가면서도 질문자를 키웠다는 생각을 못 해 봤어요? 다른 여자들 같으면 다 도망갔지요. 엄마가 질문자를 얼마나 사랑했으면 아버지의 폭행 속에서도 질문자를 키우려고 했겠어요? 그보다 더 큰 사랑이 어디 있겠어요?”
“그렇네요. 스님.”
“자, 다시 물을게요. 질문자는 사랑을 듬뿍 받았지요?”
“예.”(질문자 웃음, 청중들 큰 박수)
“남편이 돈도 벌어다 주고, 껴안아도 주고, 사랑도 듬뿍 주는 그런 엄마가 아이를 껴안아 주고, 학교도 챙겨주는 게 더 한 사랑일까요? 남편의 폭력과 술주정 속에서도 그 압박과 설움을 견디면서 두 아이를 이렇게까지 키워준 것이 더 한 사랑일까요? 스님이 보기에는 질문자가 너무너무 사랑을 많이 받았는데 왜 사랑을 못 받았다고 그래요?”
“저와 엄마 사이에 대화가 없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일상적인 대화가 많이 부족한 편이거든요.”
“아빠한테 두드려 맞는 데다가 아이 둘까지 키워내느라 정신이 없었을 텐데, 대화할 시간이 어디 있었겠어요?”
“그것까지는 생각을 못해 봤네요.”
“남편한테 두드려 맞으면 확 뛰쳐나가고 싶었을 건데, 그래도 화를 참고 억누르면서 질문자 밥도 해고, 옷도 다려주고 한 거잖아요. 그런데 질문자와 말할 정신이 어디 있었겠어요? 질문자 같으면 말하고 싶었겠어요?”
“말하기 싫을 것 같습니다.”
“그래요. ‘너희들만 없었으면 나는 벌써 집 나가버렸다. 으이그, 이것들 진짜’ 이러면서 키웠단 말이에요. 그런 상황에서 질문자와 말하고 싶었겠어요? 그리고 엄마 입장에서는 나를 두드려 팬 인간의 피를 절반이나 받은 애가 뭐가 좋다고 말을 하고 싶었겠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 자식이라고 사랑해서 키워놨더니 겨우 한다는 소리가 ‘사랑 못 받았다’는 거잖아요. 질문자는 몇 살이에요?”
“스물일곱 살입니다.”
“엄마가 질문자를 낳았을 때 몇 살이었어요?”
“저를 낳았을 때는 엄마가 스물다섯 살었답니다.”
“그럼 엄마가 질문자를 낳았을 때는 지금의 질문자보다 어렸을 때잖아요. 질문자도 엄마처럼 그 나이에 아이를 낳았다면 지금쯤 다섯 살짜리 아들 하나, 세 살짜리 딸 하나가 있겠지요. 이런 상황에서 질문자는 남편한테 두드려 맞아가면서 다섯 살짜리, 세 살짜리 애를 키울 자신이 있어요?”
“없죠.”
“그런 상황에서 애하고 노닥거릴 시간이 어디 있었겠어요? 도망 안 간 것만 해도 엄청난 일이고, 밥해 준 것 만해도 엄청난 사랑이지요. 어린 나한테는 엄마가 굉장한 존재였지만 27살이었던 엄마가 그 나이에 무엇을 알았겠어요? 뭣도 모르고 시집가서 애만 둘 낳아놓고, 거기다가 남편한테 맞기까지 했으니까요. 요즘 같으면 다 현명하니까 도망갔을 텐데 옛날에는 도망도 못 가서 붙어살아야 했단 말이에요. 그런 엄마한테 뭘 더 원해요?”
“제가 엄마한테 너무 바라기만 한 것 같네요.”
“‘같네요’가 아니라 ‘바라기만 했다’가 맞지요. 불효막심한 년이지요.(모두 웃음) ‘년’이라는 말이 듣기 싫은 사람들도 있을 테니까 ‘니은 여 니은’이지요. 그런데 뭘 잘했다고 울고 그래요?
그러니 오늘부터는 어머니께 감사 기도를 하세요. ‘어머니, 나보다 더 어린 나이에 시집 가서 애 둘 낳고, 남편이 두들겨패서 사랑도 못 받고 살면서, 그저 우리 남매 버리지 않으려고 그 압박과 설움 속에서 우리를 키우느라 얼마나 수고하셨습니까? 제가 정말 생각이 짧았습니다’ 이렇게 감사 기도를 하세요. 첫째는 키워주셨으니 ‘감사했습니다’ 하고 기도를 하고요. 둘째는 ‘내 생각만 하느라 엄마 고통을 몰랐습니다. 죄송합니다’ 이렇게 기도를 해야 합니다. 그래서 마음 속에 엄마의 사랑이 가득 차야 해요.
엄마는 그 고통 속에서도 나를 키웠으니 남편이 뭐라고 해도 나를 희망이라고 생각하셨을 것 아니에요? ‘남편에게는 기대할 게 없고, 애들이라도 크면 나도 인생에 좋은 일이 있을까?’ 이렇게 생각하고 키웠는데, 이것들마저도 이렇게 나오니까 얼마나 가슴 아프겠어요?
그러니 내가 용돈이라도 좀 드릴 수 없다면 말로라도 엄마를 위로해 주세요. 엄마가 했던 말 또 하고, 했던 말 또 하고 그래도 ‘얼마나 힘들었으면 저런 말씀을 하실까?’ 이런 마음을 가지면, 이 세상에서 제일 훌륭한 사람이 엄마가 됩니다. 아빠도 또 따져보면 성질이 급했을 것 아니에요?”
“예.”
“그때 아빠도 서른 몇 살 밖에 안 될 것 아니에요? 요즘은 마흔이나 먹었어도 제 진로도 제대로 못 찾아서 헤매는 사람이 있잖아요. 서른 몇 살 밖에 안 되는 남자가 애는 둘이지, 마누라는 꼬치꼬치 따지지, 성질은 나지, 그러니까 주먹이 먼저 나가고 그랬던 거예요. 사는 게 힘드니까 술 먹고 와서는 ‘에라, 모르겠다. 너 죽고 나 죽자’ 이랬던 겁니다. 그러니 아빠도 아빠 입장으로 돌아가서 보면 그 수준에서는 그렇게밖에 할 수 없었던 거예요. 어떻게 해야 될지 다른 방법을 몰랐던 겁니다. 그래서 일어난 일이에요. 그래도 마누라하고 안 헤어지고 산 이유는 사랑하는 애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질문자는 굉장히 사랑받고 자란 거예요. 부부가 싸운 건 자기네 문제이지 나하고는 관계가 없습니다. 그래서 엄마 아빠가 많이 싸울수록 자식 사랑이 더 커요. 왜 그럴까요? 그렇게 부부가 싸웠을 때 자식이 없으면 둘이 헤어져야 되잖아요? 그런데 안 헤어지고 살았다는 건 누구 때문일까요? 자식 때문이라는 말이에요. 그러니 자식 입장에서 보면 ‘왜 둘이 싸우나?’ 하면서 ‘양육 과정에서 사랑이 없었다’라고 하지만, 두 부부 입장에서 보면 싸워서 둘이 원수가 됐는데도 같이 살 수밖에 없었던 것은 자식 사랑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런데도 그렇게 참고 살아서 애들 키워놓으니까 겨우 하는 소리가 ‘부모가 밉다’, ‘사랑을 못 받았다’라고 하니까 배은망덕하지요. 저는 이런 꼴을 안 보려고 장가도 안 가고, 애도 안 낳았습니다.(모두 웃음)
제가 얼마나 현명합니까? 지금 생각해 봐도 참 잘했다 싶습니다. 제가 만약 자식을 낳아서 저런 얘기를 들었다면 속이 뒤집어져서 기절하고도 남았을 겁니다. 질문자는 고민이 해결됐어요?”
“예, 해결됐습니다. 감사합니다.”(모두 박수)
“제가 말한대로 기도할 수 있겠어요?”
“예.”
“오늘 얘기를 들을 때는 해결이 된 것 같았는데, 집에 가서 또 둘이 싸우는 꼬라지를 보면 또 본래대로 확 돌아가버려요. 그러니 웃으면서 ‘둘 중에 누가 이길까?’ 하면서 응원도 해 주고, ‘아, 아빠는 엄마한테 말이 딸리네?’, ‘엄마는 아빠 폭력에 못 이기네?’ 이러면서 그냥 구경하세요. 그 사람들은 그러고 몇 십 년을 살았기 때문에 그 천성을 못 고칩니다. 그러니 그것을 내가 구경할 수 있으면 상처도 안 입고, 아빠도 안 미워하고, 엄마도 안 미워할 수 있습니다.
엄마 아빠가 싸우는 걸 그냥 구경하세요. 그걸 내가 해결하려 들면 아빠도 내 말 안 듣고, 엄마도 내 말 안 들으니, 나는 아빠도 미워하게 되고, 엄마도 미워하게 돼요.
엄마, 아빠, 나 이렇게 셋을 꼭지점으로 하는 삼각형이 있다고 합시다. 엄마와 아빠만 싸우고, 나와 엄마는 좋고, 나와 아빠는 좋은, 즉 두 면이 좋고 한 면만 싸우는 게 좋아요? 말리려다가 엄마도 내 말 안 들으니까 미워하고, 아빠도 내 말 안 들으니까 미워해서 삼 면이 다 싸우는 게 좋아요?”
“한 면만 싸우는 게 좋죠.”
“엄마와 아빠가 싸우면 박수를 치면서 ‘누가 이기노?’ 이렇게 소싸움 구경하듯이 해보세요. ‘자식이 부모에게 어떻게 그래요?’ 하겠지만, 그렇게 하는 게 나한테도 이익이고, 부모한테도 이익입니다. 그런데 도저히 꼴 보기 싫어서 구경하는 것도 힘들다면, 문을 조용히 닫고 나가서 싸움 끝날 때까지 밖에서 노세요. 놀다가 들어와 보니 그릇 깨진 게 있으면 좀 치워주고, 엄마 상처난 곳에 약 좀 발라주면 됩니다.
이 때도 엄마 말 듣고 아빠를 미워하거나, 아빠 말 듣고 엄마를 미워하거나 그러면 안 돼요. 그건 자기네 문제이기 때문에 나는 어느 편도 들어서는 안 됩니다. 대다수는 엄마 편을 들기 때문에 아빠를 미워하게 되고, 아빠를 미워하게 되면 남자도 미워하게 됩니다. 그래서 결혼을 하면, 남편한테서 아빠 같은 습성이 조금만 나타나면 확 뒤집어지게 돼요. 그래서 엄마 아빠를 싫어하게 되면 나중에 커서 나도 그걸 꼭 닮게 되는 똑같은 결과가 반복되게 됩니다.
아버지가 술주정하는 걸 보고 ‘나는 절대로 저러지 않아야지’ 하는데, 그 집 아들이 크면 똑같이 술주정을 하게 됩니다. 이것을 ‘내림’이라고 그럽니다. 그래서 ‘그 부모의 그 자식이다’ 이런 소리가 나오는 거예요. 그런 아빠의 모습을 싫어했던 마음이 나의 무의식 세계에 깔려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걸 딱 끊으려면 ‘그런 속에서도 나를 낳고 키워준 부모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이렇게 절을 해야 합니다. 오히려 감사한 마음을 가져버리면 내 속에 있던 그런 업이 녹아나버려요. 그래야 내가 행복해져요.
그리고 나이 드신 분들도 잘 들으셔야 해요. 지금 젊은이들이 하는 이런 얘기를 들으면 가정의 불화가 아이들한테 얼마나 큰 상처를 주는지 알 수 있잖아요. 자식들이 부모한테 말을 안 해서 그렇죠. 제발 좀 남자들은 술 먹고 와서 주정하고 폭력하지 마세요. 제발 좀 여자들은 남자가 술먹고 들어오면 ‘한잔 드셨네요. 한잔 더 드릴 게요’ 하면서 달래서 재워야지, ‘또 술 처먹고 왔다’ 이렇게 욕하다가 두들겨 맞고, 밤새도록 울고, 애 껴안고 ‘너희 아버지 때문에 못 살겠다’ 그러지 마세요. 그러려면 왜 결혼했어요? 그냥 저처럼 중이나 되지 그랬어요.(모두 웃음)
제 얘기의 요점은 ‘이런 부모 밑에서도 나는 행복하게 살 수가 있다’ 입니다. 이 이치를 알고 내가 오히려 참회기도를 하고 감사기도를 해 버리면, 이런 부모 밑에서도 나는 행복하게 살 수가 있어요.
그런데 다른 집을 부러워하면서 ‘저 집 부모는 사이도 좋고 아이들을 위해서 사는데, 우리집은 매일 술 처먹고, 싸우고, 두들겨 패고, 살림살이 던져부시고, 우리는 그냥 온데 간데 신경도 안 쓴다’ 이렇게만 생각했기 때문에 내 인생도 꼭 그렇게 된다 이 말이에요. 오늘부터는 생각을 탁 바꾸세요. ‘아, 저 어려운 속에서도 우리를 안 버리고 키워주셨으니 사랑이 더 깊다’ 이렇게 생각해야 돼요. 따지면 실제로 그래요. 가정불화가 있는 부부가 같이 사는 이유는 남편, 아내 때문이 아니라 오직 자식 때문에 사는 겁니다. 그러니 그런 자식일수록 부모한테 더 감사기도와 참회기도를 하면, 내 속에 있는 부모의 까르마가 없어지고, 나는 그 내림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가 있어요. 그래서 제가 참회기도를 하라는 겁니다. 이런 이치를 모르는 사람들이 ‘왜 그런 사람한테 참회를 해야 되느냐?’ 이렇게 얘기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감사합니다.”(질문자 환하게 웃음)
조금 전까지만 해도 울먹이던 질문자가 거짓말처럼 환하게 웃자 청중들도 뜨거운 박수갈채로 격려의 마음을 보냈습니다. 질문자는 가정불화만 보고 힘들어 했는데, 따지고 보니 그 속에는 부모의 자식에 대한 크나큰 사랑이 있었음을 발견하게 되자 웃음이 나왔던 겁니다. 영화에서 나오는 대반전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이 외에도 다섯 명의 질문이 더 있었습니다. 스물 일곱살 여성은 아버지의 가정폭력으로 엄마가 힘들게 살았는데 엄마의 힘듦을 해결해주고 싶지만 그게 어렵고 더 이상 가족을 안 보고 살고 싶은 마음이 자꾸 들어서 고민이라고 질문했고, 두 명의 어린 자녀를 둔 여성은 남편이 가정에 소홀하고 생활비를 주지 않고 있어 이혼을 고민 중인데 아이들이 마음에 상처를 입을까 고민이라고 질문했고, 20대 여성 한 분은 강자 앞에서 약한 부모님의 모습이 싫어 집을 뛰쳐나왔지만 막상 자신도 사회생활을 하다보니 부모님과 똑같이 살고 있는 것 같아 고민이라고 질문했습니다.
마흔 살 남성은 창업을 준비 중 어려움을 겪고 포기했는데 이제는 나이가 많아 취업도 어렵고, 자신감이 많이 떨어져서 막막하다고 질문했고, 마지막으로 손을 든 한 30대 남성은 군대에서 사고로 인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앓고 있는데 취직도 하고 싶고 결혼해서 아이도 갖고 싶다며 어디까지가 욕심인지 질문했습니다.
모든 질문에 대해 답변을 마치니 어느덧 강연을 마쳐야 하는 9시가 되었습니다. 스님은 마지막으로 강연을 마무리하는 정리 말씀을 들려주었습니다. 오늘 대화에서는 청년들이 부모님을 미워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가 많았는데, 이럴 때 청년들이 무엇을 간과하고 있는 것인지 다시 한번 상기시켜 주면서 청년들의 마음을 밝게 해주었습니다.
“재밌었어요?”
“예.”
“많은 젊은이들이 부모님 때문에 힘들다고 하소연을 하고, 심지어 ‘내가 이런 집에 왜 태어났나?’ 이런 생각이 들어서 엄마한테 ‘이러려면 왜 나를 낳았느냐?’ 하고 따져 묻기도 하는데, 엄마 입장에서는 ‘그럼 너는 왜 하필 나한테 태어났느냐?’고 말할 수도 있는 거잖아요. 그러면 여러분도 할 말이 없잖아요. 가장 중요한 것은 어쨌든 부모가 낳아줬기 때문에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있다는 겁니다. 그지요?
그리고 자기네야 싸웠든 가난했든 어쨌든 그럴수록 나를 키워준 것이야말로 그들에게는 더 큰 사랑이었던 겁니다. 부잣집에서 아주 편안하게 자란 것보다 그게 사실은 더 진한 사랑이에요. 그 힘든 속에서도 나를 키워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부모에 대해서는 어떤 경우에도 원망하거나 미워해서는 안 됩니다. 부모를 원망하거나 미워하면 자기 자존감이 없어져요. 그러니 항상 ‘낳아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어려운 가운데 저를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런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가정불화가 있었다면 진작 헤어졌어야 되는데, 나 때문에 못 헤어진 거잖아요. 그러니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렇게 부모한테 감사 기도를 해야 그 업으로부터 내가 자유로워집니다.
그리고 그런 집에서 태어났다고 내가 반드시 불행해야 한다면 그건 운명론입니다. 나는 그런 집에서 태어났어도 행복하게 살 수가 있어요. 이럴 때 내 인생의 주인이 내가 되는 거예요. 어떤 핑계를 대고 불행을 합리화하면 안 돼요. 이렇게 생각을 딱 바꾸면 나도 행복할 수가 있는 거예요. 장애인이라도 행복할 수가 있고, 홀어머니 밑에서 자라도 행복할 수가 있고, 입양아로 자라도 행복할 수가 있는 겁니다. 그런 건 따질 필요가 없어요. 중요한 것은 내가 지금 살아있다는 겁니다. 내가 지금 살아있다는 것에 대해서 감사할 줄을 안다면, 이 자리에 있는 누구나 행복하게 살 수가 있습니다. 그렇게 행복하게 사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스님 말씀을 듣고 나면 정말로 어떤 경우에서도 행복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는 사실이 명확해 집니다. 다만 우리들이 보지 못하고 있던 걸 보게 해 줄 뿐인데 말이죠.
강연 종료 후 강연장 밖에서는 스님의 책 사인회가 열렸습니다. 벅찬 표정으로 나오는 청중들은 길게 줄을 선 채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며 스님의 모습을 조금이나마 더 보고자 애쓰는 모습이였습니다.
마지막으로 스님은 오늘 강연을 준비한 청년정토회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오늘 강연 타이틀이 ‘예쁜 꽃, 젊은 그대에게’인데, 봉사자들의 얼굴은 예쁜 꽃보다 더 빛나 보였습니다.
강연장을 나온 스님은 곧바로 서울 정토회관으로 향했습니다.
내일은 오전 10시 30분에 안양 평촌아트홀에서 안양 시민들을 위해 즉문즉설 강연을 한 후 저녁 7시에는 파주 시민회관에서 파주 시민들을 위해 즉문즉설 강연을 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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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월 21일 시청광장에서 국내 최대 규모의 청춘콘서트&청춘박람회가 열립니다. 법륜 스님, 김제동, 박원순 서울시장, 노희경 작가가 펼치는 행복 토크, 뮤지션들의 공연, 150여 개의 청년 단체가 참여하는 박람회 등 세상을 바꾸는 즐거운 축제가 여러분을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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