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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새벽에 있었던 정토불교대학 가을학기 특강수련 법문에 이어서 낮12시부터는 청년 정토불교대학 특강수련에 참석해 즉문즉설 강연을 해주었습니다.
새벽 특강수련 법문을 마치고 9시 30분에 문경 정토수련원을 출발한 스님은 11시 50분에 대전 정토법당에 도착해 12시부터 청년들을 위해 특강수련 법문을 해주었습니다.
전국에 새벽부터 출발해 대전 정토법당에 모인 120여 명의 청년들은 오전에 유수 스님으로부터 입재 법문을 들은 후 법당 구석 구석을 깨끗이 청소하고 스님을 기다렸습니다.
▲ 대전 정토법당
12시가 되어 스님이 법상 위에 오르자 죽비 삼성과 함께 모두 눈을 뜨고 본격적으로 스님과의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청년들은 사전에 작성한 질문지 없이 현장에서 곧바로 손을 들고 스님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먼저 스님이 환한 웃음과 함께 안부 인사를 하며 말문을 열었습니다.
“오늘은 여러분들이 하반기 불교대학에서 불교의 근본교설과 불교변천사 교과 과정을 배우면서 의문 났던 점을 물어보는 시간입니다. 물론 상반기에 배웠던 실천적 불교사상과 부처님의 일생에 대해서도 모르는 게 있으면 물어도 좋고, 그 동안 수행을 하면서 들었던 의문을 물어도 좋습니다.”
스님의 이야기가 끝나자 처음에는 망설이는 듯 하다가 곧이어 여기저기서 손을 들고 질문을 시작했습니다. 12시부터 3시까지 3시간 동안 총 6명이 스님에게 질문을 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스님의 명쾌한 답변에 연이어 웃음이 터져나왔습니다.
오늘은 그 중에서 불교의 근본교설 중에 ‘무아’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와닿지가 않는다는 여학생의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 스님의 해박한 지식에 청년들도 연신 감탄사를 연발했습니다. 오히려 청년들이 스님에게 “도대체 대학교 나온 사람들이 맞아요? 고등학교 학력 수준도 안 되는 사람들 같네요” 라고 핀잔을 들을 정도였습니다.
학생의 솔직한 답변에 스님은 이해하기 쉽게 다양한 비유를 들어가며 무아의 의미를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무아(無我)’라고 하는데 저는 내가 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방안에 혼자 있을 때도 내가 분명히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지는데 왜 자꾸 없다고 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모두 웃음)
“빗대어 설명해보겠습니다. 물은 분명히 존재합니다. 그런데 물의 실체가 있습니까? ‘이게 물이다’라고 하는 근본 알갱이가 있는지 한번 생각해봅시다. 물의 실체, 즉 물의 근본 알갱이를 조사하려면 물을 한 방울 떠서 쪼개보면 되겠죠. 쪼개고 또 쪼개서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최소의 알갱이가 수없이 결합해서 물이 된다고 할 때 그 알갱이를 물 분자라고 부릅니다. 정토 불교대학 와서 공부하려면 이렇게 고등학생 정도의 학식은 갖춰야 해요. (모두 웃음)
이건 더 이상 쪼갤 수가 없다고 했는데, 나중에 이것도 쪼갤 수 있는 방법이 나와서 쪼개 보니 더 이상은 물이 아닌 게 되어버렸어요. 물 분자의 분자식은 H₂O인데 그걸 한 번 더 쪼개버리면 H₂와 O₂가 됩니다. 이 두 가지는 물이 아니에요. 물은 아무리 분해해도 물이어야 할 텐데, 물 아닌 것으로부터 물이 된 겁니다. 이럴 때 우리가 ‘물의 실체는 없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물의 작용은 있지만 물의 실체는 없어요.
물은 있지만 물의 실체는 없고, 산소는 있지만 산소의 실체는 없어요. 산소라는 원자가 단독자인 줄 알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속에는 양성자가 있고 중성자가 있고 전자가 있었습니다 그걸 더 파고들면 소립자가 결합한 것이에요. 소립자가 지금은 이런 형태로 결합해 있지만 달리 결합해버리면 있던 양성자가 몇 개 밖으로 떨어져 나오거나 몇 개가 더 붙어서 다른 원자가 됩니다. 그것을 실험으로 증명한 게 원자량이 제일 많은 92번 우라늄을 붕괴시킨 거예요. 이게 원자탄에 쓰이는 핵분열입니다. 또 제일 작은 중수소 두 개를 융합시켜버린 게 수소폭탄에 쓰이는 핵융합에요.
고정불변한 원자가 결합하는 것은 화학법칙인데, 이 화학법칙에서는 질량 불변의 법칙이 성립합니다. 질량 불변의 법칙, 배수 비례의 법칙, 일정 성분비의 법칙 이런 거 기억나요? (청중 웃음)
그런데 이 핵의 변화에서는 질량 불변의 법칙이 성립하지 않고 질량 감소가 일어납니다. 물리변화나 화학변화와는 차원이 달라요. 그 감소된 질량은 에너지로 바뀌었습니다. 이게 아인슈타인의 ‘E=mc²’이라는 에너지-질량 등가 공식이에요. ‘작용은 하지만 그 안에 고정불변하는 실체가 없다’는 사실은 물질계에서는 이미 증명이 다 되었어요.
그걸 무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작용은 하지만 실체는 없다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는 작용을 하니까 실체가 있는 것처럼 느낍니다. 이걸 정신세계에 적용하면 이렇습니다. 결혼해 아이가 있는 여성이 아이와 있을 때는 엄마라 불리고, 남편과 있을 때는 아내라 불리고, 부모님을 만나면 딸이라고 불리고, 절에 오면 신도라고 불리고, 가게에 가면 손님이라 불립니다. 인연에 따라 이리도 불리고 저리도 불려요. 엄마의 작용, 딸의 작용, 아내의 작용, 손님의 작용, 신도의 작용은 있지만 그 사람이 그 중 하나인 ‘무엇’이라고 말할 수는 없어요. 그렇다고 아무것도 아니라는 뜻은 아닙니다.
그런데 내가 엄마 역할을 오래 하다 보면 내가 엄마라고만 생각하고, 아내 역할을 오래 하다 보면 내가 아내라고만 생각하기 쉽습니다. 남편이 죽으면 나는 더 이상 아내가 아닙니다. 그런데 우리는 아내 역할을 한 30년 하다가 남편이 죽으면 내가 계속 아내라고 생각합니다. 아내라고 생각하지 않으면 재혼해도 되는데, 자기가 아내라고 생각하니 결혼을 못 하는 거예요. 아내니 딸이니 하는 것은 모두 관계맺음에 의해서 불리는 이름입니다. 역할만 있지 ‘아내’라고 하는 실체는 없어요.
인도에서는 이런 실체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저 하늘에는 브라만(Brahman)이라는 신이 있고 내 속에는 아트만(Atman)이라는 작은 신이 있어서 이 둘이 만나 결합하는 것, 즉 범아일여(梵我一如)가 곧 해탈이라고 했습니다. 부처님은 나에게 그런 고정불변하는 실체는 없다고 했어요. ‘아트만’에 ‘un’을 붙여서 ‘UnAtman’이라고 한 걸 한자로 옮긴 게 ‘무아(無我)’입니다.
질문자가 방안에 앉아서 ‘내가 있다’고 하지만 과연 뭐가 있습니까? (청중 웃음) 몸뚱이가 있다고 대답하겠지만, 그 몸뚱이가 나입니까? 몸은 ‘내 몸’이라고 하지 ‘나’라고 하지 않습니다. 생각 역시 ‘내 생각’이라고 하지 ‘나’라고 하지 않아요. 용어를 ‘나의 몸’, ‘나의 생각’, ‘나의 느낌’, ‘나의 물건’ 이렇게 쓰니까 ‘나’라는 게 있어야 한다고 여겨요. ‘나’라는 것이 있고 나서 그것의 몸, 그것의 생각, 그것의 느낌, 그것의 소유라고 해야 말이 되잖아요. 그런데 그것이 뭐예요?”
“모르겠어요.” (청중 웃음)
“그게 뭔지 연구해보세요. 그래서 유명한 선문답에 ‘Who are you?’라는 것이 있습니다.
‘너 누구냐?’
‘아무개입니다.’
‘아무개가 너냐, 너의 이름이냐?’
‘이름입니다.’
‘이름을 물은 게 아니다. 너는 누구냐?’
‘딸입니다.’
‘딸은 네 엄마와의 관계다. 너는 누구냐?’
‘선생님입니다.’
‘그것은 너의 직업이다. 너는 누구냐?’
이렇게 우리가 추구해 들어가야 합니다.”
“인연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라고 하셨는데, 그럼 그 인연은 왜 생기는 거예요?”
“인연이 왜 생기기는요, 살다 보니 생기는 것이죠.” (청중 웃음)
“네, 감사합니다.” (청중 웃음, 박수)
스님의 쉽고 명쾌한 비유에 가슴이 뻥 뚫리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질문자도 환한 웃음을 보였습니다. 어디 가서 이렇게 좋은 강의를 들을 수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어 절로 스님께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이 외에도 스님은 모두가 이해하기 어려워하는 불교의 공(空)사상, 인연과보의 원리, 삼법인, 연기법 등 불교 교리에 대해 아주 쉬운 비유를 들어가며 재미있게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청년들이 탄성을 내지르며 기뻐하자 스님은 왜 이렇게 재미있고 유익한 불교를 공부하려고 하지 않느냐며 스님이 왜 청소년 시절부터 불교에 매료되게 되었는지 그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불교 공부 안 하는 걸 보면 안타까워요. 이것은 연구하면 과학이자 철학이고, 이것을 제대로 알면 이것이 곧 인생이고, 이것을 잘 실천하는 것이 곧 자유와 행복으로 가는 길인데 왜 안 하려는지 모르겠어요. 저는 처음부터 불교를 믿은 게 아니라 친구 따라 간 경우입니다. 경주에 역사 유적지가 많기 때문에 역사 유적지 보호반에 들어갔다가 할 수 없이 절에 다니게 된 거예요. 처음엔 불교가 싫었어요. 애가 태어나자마자 걸었다는 소리나 하잖아요. (청중 웃음)
그런데 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불법에 대해 조금씩 알게 됐어요. 처음에는 불교문화니 불교 생활 같은 걸 다루었기에 저는 별로 관심이 없었는데, 고등학교 1학년 때 처음으로 법문을 들으면서 불교의 진리에 대해서 알게 됐어요.
제가 제일 혹했던 것은 불교의 우주관이었어요. 저는 과학자가 되는 게 꿈이었으니까요. 불교를 굉장히 부정적으로 보다가 우주관을 접하고 놀랐습니다. 보통은 지구에만 사람이 산다고들 하는데, 불교는 이 우주에 사람 사는 세상이 여기만 있는 게 아니라고 해요. 온 우주에 다 있고, 그것도 갠지스강의 모래알만큼 많다고 합니다. 그러면 이게 아인슈타인의 우주론과 거의 비슷한 거예요. 태양계에서 지구 하나에만 생명이 산다고 치더라도 이 은하계에는 태양계 같은 것이 2천억 개가 있어요. 생명이 살 가능성이 있는 곳이 최소 2천억 개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대우주에는 이런 소우주, 즉 은하계 우주 같은 것이 1천억 개 이상이라는 거예요. ‘금강경’을 읽어보면 갠지스강의 모래알 수만큼 많은 수의 갠지스강이 있고 그 모든 갠지스강의 모래알 수를 합친 만큼 많은 우주, 세계가 있다고 하니 둘이 좀 비슷하잖아요.
각 세계마다 1년의 길이와 각 생명의 수명도 우리와 다르다고 합니다. 천상으로 올라갈수록 1년의 길이가 길고 수명도 길어요. 예컨대 우리 수명이 100년이라면 사왕천에서는 수명이 5백년이고 그 위의 도리천에서는 5천년이고, 그 위로 올라가면 5만년입니다. 반면 지옥 쪽으로 내려가면 수명이 짧아서 찰나에 나고 죽는다고 해요. 그런데 실제로 생명 세계를 보면 세균이나 바이러스 같은 건 나고 죽는 주기가 짧고 코끼리나 거북이 같은 것은 길잖아요. 지구만 봐도 이렇게 수명이 다양하니 저 우주로 나가면 훨씬 더 수명이 긴 생명이 있을 거예요. 하루의 길이도 다르고요.
1년과 하루의 길이도 달라요. 1년은 태양을 한 바퀴 도는 것을 기준으로 삼잖아요. 다른 별에 가면 태양을 한 바퀴 도는 기한이 우리와 달라서 지구보다 태양에 가까운 것은 1년이 짧고, 지구보다 태양에 멀리 있는 것은 1년이 길어요. 하루도 그렇습니다. 지구가 한 바퀴 자전하는 것이 하루인데, 수성이나 화성은 한 바퀴 도는 게 우리와 시간이 달라요. 그러니 하루의 길이도 다르고 1년의 날수도 다르죠.
이런 게 과학에서는 지극히 당연하지만, 어떤 종교도 그런 이야기를 한 데가 없어요. 그런데 불교에서는 수명도 다르고 길이도 다르고 하루의 길이도 다르다는 이야기를 하니까 혹한 거예요. 저는 처음에 불교 사상보다는 그 우주론 때문에 혹했어요. 그래서 공부하다 보니 철학적인 측면에서도 대단하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무아’와 ‘무상(無常)’ 같은 것은 사회과학적인 요소예요. 유물론적 변증법의 핵심 사상도 결국은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연관되어 있고 그 연관이 변한다’라는 원리예요. 그러니 이것은 철학적으로도 굉장히 심오하고 과학적으로도 모순이 없습니다.
부처님이 뭐 물질을 연구하고 생명을 연구한 건 아닙니다. 부처님은 주로 정신세계만 연구했는데, 이 정신세계의 작용 법칙이 물질세계의 법칙과 근본적으로 같았던 거예요. 아까 이야기한 ‘제행무상(諸行無常)’에도 이미 그런 내용이 나와 있어요. ‘제행’이라고 할 때의 ‘행’은 물질, 생명, 정신이라는 세 가지로 나눕니다. 물질세계, 즉 우주는 성주괴공(成住壞空)하고 생명은 생로병사(生老病死)하고 정신은 생주이멸(生住異滅)합니다. 정신작용도, 생명작용도, 물질작용도 모두 변화해요.
성주괴공을 딱 들었을 때 저는 H-R도가 생각났어요. 지구과학 배울 때 접해 봤죠? 별의 빛깔과 밝기, 크기와 거리를 조사해서 우주의 생성과 소멸을 나타낸 표 있잖아요. 우주의 성간물질이 그래프 상 아래쪽에 모여 있다가 태양과 같은 주계열성이 되고 그것이 나중에 거성이 되고 그것이 백색왜성이 돼요. 별의 수명, 즉 별의 생성과 소멸을 나타내는 표입니다. 현재 우리의 태양은 1백억 년 정도 유지되는데 다른 항성이 태양보다 크면 수명이 짧고 태양보다 작으면 수명이 길어요. 스님은 이런 공부를 고등학교 때 다 했어요. (청중 감탄, 웃음)
그때 제가 과학을 좋아했기 때문에 불교의 이런 요소를 과학과 비교해보면서 크게 놀랐어요. 처음에는 그래서 좋아하게 됐고, 그렇게 공부를 하다 보니 불교에 심취하게 되었어요. 다른 사람들처럼 믿음이 좋아서, 혹은 복을 받아서가 아니었습니다. 처음엔 우주관이 좋아서 호의적이었고, 그 다음으로 ‘너는 누구냐?’ 이런 문답을 하면서 인생에 대한 의문을 갖게 되고 파고들어서 여기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이건 젊은 사람들이 공부해볼 만한 가르침이에요. 그리고 이 공부를 하면 고뇌가 많이 없어집니다. 괴로워할 일 같지만 한 발만 떨어져서 보면 별로 괴로울 일이 아니에요. 내가 만나던 애인과 헤어지면 속상하지만, 조금만 떨어져서 보면 이 사람이 나가줘야 다른 사람이 또 들어올 수 있잖아요. (청중 웃음)
이런 것도 다 제행무상에 들어가요. 있는 사람을 일부러 내보내라는 게 아니라, 나가고 들어오는 것을 가지고 그렇게 목매달 필요는 없다는 말이에요. 이 말을 잘못 적용해서 ‘그러면 내가 이 사람 저 사람 만나도 되겠네요?’ 하는데 그건 도덕적으로 조금 안 좋아요. 그러나 상대가 알아서 떨어져 나가주는 것은 나한테 도덕적으로 아무런 하자가 없어요. 내가 이 사람 저 사람 만나며 돌아다닌 것도 아니고, 상대가 떠나 주니까 빈 자리가 생겨서 다른 사람이 또 올 수 있잖아요. 좀 섭섭한 건 있을 수 있지만 크게 보면 별 일 아니고, 오히려 좋은 일이에요. 그러니 떠난 사람에게는 고맙다고 인사하고, 자리를 비워놓다 보면 또 새로운 사람이 옵니다.
아무리 비워놔도 안 온다고요? 저도 지금 자리 비워놓고 기다리고 있어요. 하하. (모두 큰 웃음)
그런데 누가 들어와서 차지해버렸는데 나중에 진짜 좋은 사람이 나타나면 그것도 곤란하니까 항상 비워놓는 거예요. 그래서 항상 비워놔도 외롭지가 않아요. 비워놓으면 가능성이 늘 열려 있어요. 이렇게 사물을 소극적, 부정적으로 보지 말고 긍정적, 적극적으로 보세요.” (모두 웃음)
스님의 긍정적인 사고에 모두들 웃음을 터뜨리며 즐거워 했습니다. 한 생각 돌이키면 괴롭지 않을 수 있는데 예전에는 왜 그렇게 사소한 일로 죽는다고 괴로워했을까 되돌아봐졌습니다.
그리고 스님이 청소년 시절에 불교를 처음 접하면서 느꼈던 감동을 직접 전해 들으니 나도 스님처럼 정말로 불교를 열정적으로 공부해봐야 겠다는 다짐도 생겼습니다.
스님은 이 외에도 많은 질문에 대해 재미있게 설명을 해주어서 언제 시간이 지나가는지도 모르고 벌써 3시간 다 지났습니다. 마칠 시간이 되자 스님은 마무리 말씀을 해주었습니다. 배운 것을 사회 변화를 위해 실천하는 것이 잘 되지 않는다는 마지막 질문자의 물음에 답변해 주면서 행동하는 지식인이 될 것을 당부했습니다.
“중도파라는 사람들이 사고도 합리적이고 심성도 좋은데 제일 단점이 행동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행동하지 않는 지식인은 사실 별 의미가 없습니다.
그러니 여러분들은 공부를 해서 첫째로 자기를 행복하게 하고, 자기 괴롭히는 데 소모했던 에너지를 세상과 다른 사람을 위해서 좀 쓰세요. 전법도 하고, 자기 분야에서 개선을 위해 노력도 해야 합니다. 화내고 짜증내며 실천하지 말고, 방글방글 웃으면서 해야 해요. 과장님이 ‘미스 리, 커피 한 잔 끓여와’ 이러면 ‘자기는 손이 없나, 발이 없나’ 이렇게 욕하지 말고 생글생글 웃는 얼굴로 가져다주면서 다음부터는 직접 끓여 드시라고 말해야죠. (청중 웃음) 그냥 말하지 말고 커피를 가져다주면서 말해야 해요.
‘커피 끓이는 게 제 업무도 아니고, 제가 과장님 비서도 아닙니다. 오늘은 과장님을 위해서 비서 역할도 해드리지만 앞으로는 정신 좀 차리세요. 계속 그런 태도를 보이면 고발당해요.’
이렇게 웃으면서 말해요. 머리를 쓰다듬거나 희롱을 하면 성질내지 말고 생글생글 웃으면서 이렇게 말하세요.
‘아이고, 요즘 그렇게 하다가 고발당해서 망신 사는 거 못 봤어요? 우리 과장님 진짜 어리석으시네. 이러다가 망신 사고 성추행범으로 잡혀 들어가면 아이들을 어떻게 보려고 그래요? 오늘은 봐드릴 테니 다음부터는 정신 차리세요.’ (청중 웃음)
처음부터 난리 피우지 말고 한두 번은 봐줘야 해요. 사람은 살아온 습관이 있기 때문에 그 사람 입장에서 보면 다 나쁜 의도로 그런 것만은 아니고, 바로 고치기도 쉽지는 않거든요. 한두 번 웃으면서 이야기해주되, 그래도 버르장머리를 안 고치면 정당한 권리를 발휘해 고발해서 해결해야 합니다. 정에 휘둘려서 집에서는 매일 울면서 정작 출근해서는 고발도 못 하고 당하면 안 돼요. 생글생글 웃으면서 대응하되 고발은 단호하게 해야 합니다. 울어봐야 내 손해예요. 그러나 개선해야겠다, 노동의 정당한 권리가 침해당했다고 하면 권리를 단호하게 행사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평화적으로 우리 시민의 권리를 신장해나가는 방법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노력하지 않으면 우리에게 주어진 권리를 우리가 행사할 수 없어요. 수행하라니까 ‘뭐든지 내 잘못이오’라고 하는데, 수행은 그저 하인 노릇 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주인 노릇 하라고 수행하라는 거지, 하인 노릇 하라고 수행하는 게 아니에요.
부모님을 미워하면 안 돼요. 늘 감사해야 합니다. 그러나 나는 부모님의 하인이 아니니까 부모님이 시키는 말을 반드시 따라서 할 필요는 없습니다. ‘시집가라’ 하면 방글방글 웃으면서 ‘네’ 하고 안 가면 됩니다. (청중 웃음)
‘일찍 들어오너라’ 하면 ‘네’ 하고 일 다 본 뒤 늦게 들어오면 돼요. 시키는 대로 할 이유는 없습니다. 그런데 부모는 나를 해칠 의도를 갖고 있는 건 아니니까, 항상 말씀을 들어보고 참고할 만하면 참고하는 게 좋아요. 인생을 많이 살다보면 부모만큼 나를 위해주는 사람이 없어요.
그렇다고 부모 말이 다 맞는 건 아니에요. 또 부모 말이 다 나에게 이득이 되는 것은 아니에요. 나는 자유인이니까 내 인생은 내가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부모가 그런 말을 한다고 해서 그걸 갖고 화내거나 짜증낼 이유는 없습니다. 부모 입장에서는 그럴 수 있으니까 ‘알았어요, 네’ 이러면 되지, ‘그런 말 하지 마세요!’ 하고 화낼 필요가 없어요. 사람은 누구나 말할 자유가 있잖아요. 귀 기울여 듣고 대답은 깍듯이 하되 따르고 안 따르고는 내가 결정하면 됩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이 훨씬 자유롭게 자기중심적으로 살 수 있고 인간관계도 좋아집니다.”
내 인생은 내가 결정해서 주체적으로 살되, 부모님의 의견은 감사한 마음으로 경청하고, 사회적 실천도 마음껏 해나가되 즐거운 마음으로 해나가라는 말씀이었습니다. 두 가지를 함께 할 수 없을 것 같지만 스님의 말씀대로 라면 정말 모순된 두가지가 함께 이뤄지는 길로 나아갈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스님의 법문은 언제 들어도 우리들의 마음을 기쁘고 가볍게 해주는 것 같습니다. 가벼운 마음으로 충전이 된 청년들은 3시간 동안 열강을 해준 스님에게 우레와 같은 박수 갈채를 보내며 감사한 마음을 표했습니다.
이어서 스님은 청년 정토불교대학 학생들 모두와 함께 기념 사진을 찍었습니다. “정토불교대학!”을 외치는 청년들의 얼굴에는 기쁨과 웃음이 가득했습니다. 오늘 법문을 들은 청년들처럼 더 많은 청년들이 스님의 법문을 만나 조금 더 행복해지는 삶의 길을 찾아갔으면 하고 간절히 바래봅니다.
대전 정토법당을 나온 스님은 곧바로 서울로 향했습니다. 저녁 6시에 서울에 도착한 스님은 국민통합회의 모임에 참석해 여러 사회 인사 분들과 우리 사회의 갈등 통합 방안에 대해 의논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서울에서의 모임을 마치고 밤늦게 다시 울산 두북으로 내려와 새벽 2시에 도착해 오늘 일정을 마쳤습니다. 정말 오늘은 문경, 대전, 서울, 울산을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하듯이 바쁘게 움직인 하루였던 것 같습니다.
내일은 아침 일찍부터 텃밭의 배추와 무를 뽑아서 김장 울력을 할 예정입니다. 그리고 감나무에 올라가 감도 따고, 울력을 하며 날씨가 추워지면 군불을 때서 고구마와 감자도 구워 먹을 계획입니다. 저녁에는 7시부터 창원대학교에서 창원 시민들을 위해 ‘통일 이야기’를 주제로 즉문즉설 강연을 할 예정입니다.
※ 법륜 스님의 즉문즉설 강연이 전국 52개 도시를 순회하고 있습니다. 우리 동네 강연 일정을 확인한 후 가족, 이웃, 친구와 함께 강연장으로 오세요.
강연은 선착순 무료 입장이며, 질문을 하고 싶은 분들은 강연장에 직접 오셔서 사전 신청을 하셔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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