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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중앙대 약학대학 3층 대강당에서 ‘방황해도 괜찮아’ 라는 타이틀로 대학생들을 위해 즉문즉설 강연을 했습니다.
오늘도 새벽 4시에 일어나 예불과 기도로 하루를 시작한 스님은 원고 교정 업무를 보다가 아침 7시부터 평화재단에서 하루 종일 연이어 미팅과 회의를 가졌습니다.
특히 오후 2시부터는 정토회 행정처 집행위원 및 지부 사무국장들과 대중부 사업에 대해 의논했습니다.
▲ 행정처 국장단 회의
미팅을 모두 마치고 오후 6시에는 즉문즉설 강연을 하기 위해 중앙대학교로 향했습니다. 오늘 강연이 열리는 중앙대 약학대학 3층 대강당에는 200여명의 대학생들이 스님의 강연을 듣고자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 중앙대학교 약학대학 대강당
강연 30분 전에 도착한 스님은 복도에서 대기하면서 틈새 시간을 활용해 원고 교정 업무를 보았습니다.
▲ 잠시 틈을 이용해 원고 교정 업무를 하고 있는 스님
이번 강연은 대학생정토회와 수도권 지역의 대학생들이 함께 모여 한마음으로 준비했습니다. 강연 전, 강연장에 다른 행사가 있어 준비 시간이 촉박했지만 봉사자들은 모두 침착하고 신속하게 일 나누기를 하고 각자의 위치에서 역할을 잘 해내었습니다.
강연 시간이 다가올수록 자원봉사자들의 얼굴에 살짝 긴장이 서렸습니다. 그러나 입장이 시작되자 언제 그랬냐는 듯 환한 미소와 대학생 특유의 발랄함으로 청중들을 맞이하였습니다. 학생들은 물론 중앙대학교 교수님, 스님 등 약 230여명의 청중들이 자리를 채워주셨습니다.
먼저 훈훈한 훈남 가수 ‘오늘의 라디오’가 잔잔한 노래로 청중들의 마음을 녹여 주었습니다. 이어서 스님 소개 영상의 끝부분에 법륜 스님이 무대 위로 걸어나오자 청중들은 일제히 환호하며 박수를 쳤습니다.
스님은 간단한 안부 인사와 함께 “저녁은 다들 먹고 왔는지?” 물었고, 많은 청중들이 “아니요” 라고 답하자 “한끼 쯤은 안 먹어도 건강에도 좋고, 환경운동에도 좋은 것”이라고 알려주면서 강연을 시작했습니다. 특히 환경운동이나 진리를 오줌을 누는 방법에 재미있게 비유해 주면서 밝고 가볍게 강연을 열어주었습니다.
“산에 가서 볼 일을 볼 때 조그마한 새싹에 소변을 누면 죽지만 큰 풀이나 나무에 누면 거름이 돼요. 즉, 환경운동이나 생명사랑운동은 오줌 눌 때 오줌 줄기를 어느 쪽으로 향햐느냐에서부터 시작되는 셈입니다. (웃음)
똑같이 오줌을 누어도 살리는 쪽으로 눌 수도 있고, 죽이는 쪽으로 눌 수도 있어요. 진리를 너무 어렵게들 생각하지만 어렵지 않습니다. 일상의 말과 행동이 사람을 기쁘게도 하고 괴롭히기도 하고, 죽어가는 것을 살리기도 하고 살아있는 것을 죽이기도 해요. 밥을 먹고 얻은 에너지를 남을 돕는 데 쓰기도 하고 남을 때리는 데 쓰기도 해요. 이 작은 차이를 우리가 정확히 이해하는 게 중요합니다.
그런데 요즘은 진리를 너무 멀리 있는 것으로 생각하니까 젊은 사람들이 종교를 좀 멀리하는 것 같아요. 종교가 너무 권위주의적이고 형식주의적이다 보니 너무 어렵다고 생각해요. 그러나 진리의 세계는 그렇지 않습니다. 재미있고, 쉽고, 생활에 적용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오줌을 눌 때 살리도록 누면 진리의 세계, 즉 부처의 세계에 있고, 죽이도록 누면 미혹의 세계, 즉 중생의 세계에 있는 거예요. 하하하. (웃음)
그리고 성경에도 우리가 고뇌에 처했을 때 하느님의 음성이 들린다고 했습니다. 불교식으로 말하면 ‘번뇌 즉 보리’, 즉 ‘번뇌가 곧 깨달음이다’라고 해요. 우리들의 번뇌 가운데에 깨달음이 있지, 번뇌를 떠나서 깨달음이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니 여러분들이 그것이 크든 작든 생활하면서 갖는 인생의 의문을 꺼내보세요. 친구끼리 만나면 스스럼 없이 ‘야, 그거 어떻게 된 거야?’ 이렇게 물을 수 있잖아요. 그런 작은 것으로부터 우리가 시작해야 합니다. 그러니 오늘은 편안하게 친구와 찻집에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듯이 물어보면 됩니다.”
진리는 참 쉽고 재미있는 것이며 오늘 즉문즉설 강연도 찻집에 앉아서 이야기하듯 해보자는 말씀에 강연을 들으러 온 대학생들의 마음도 모두 가벼워진 듯 했습니다.
이어서 곧바로 질문을 받았습니다. 총 6명이 스님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기계공학부 22살 남학생은 대학에 들어와 술을 배우고 많이 즐기게 되었는데, 힘든 일이 생기면 술을 끼고 살아 건강과 생활이 악화될 정도지만, 술을 끊게 되면 사람도 못 만나고, 이야기가 안 될 것 같아 어떻게 해야 할지 물었고, 1년이 다 되어가는 남자친구를 사귀고 있는 여학생은 남자친구가 두 달 넘게 자기만의 시간을 가지고 있어 답답함을 호소했고, 군 휴학중인 14학번 남학생은 스펙에 사로잡혀 어찌해야할지 막막하고 마음이 바쁘다며 방황하지 않는 법과 방황해도 괜찮은 이유를 물었습니다.
창원에서 올라온 28살 여성은 아버지가 다치셔서 4개월째 병간호를 하고 있는데 기약 없이 병간호를 해야 할지, 간호인을 써야할지 물었고, 한 여학생은 가끔 예전에 있었던 일이 문득문득 떠올라 창피하거나 화가 난다며 마음을 잘 다스릴 수 있는 방법에 대해 물었고, 마지막으로 졸업을 앞둔 여대생은 세월호, 국정화 문제로 사회가 답답한데 대학생들이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 물었습니다.
질문마다 명쾌한 답변도 좋았지만 스님의 젊은 시절의 경험담을 많이 곁들어 주어서 훨씬 더 공감이 많이 되었습니다.
오늘은 그 중에서 대학에 들어와서 술 때문에 건강이 악화된 남학생의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술에 관련된 고민입니다. 대학 와서 술을 처음 접했는데, 술을 많이 마시는 기계공학부에 들어와 술을 배우다 보니까 1년 내에 주량도 많이 늘고 술을 즐기게 됐습니다. 어느샌가 고민이 있거나 사람들을 만날 땐 무조건 술을 마시게 된 것을 2학년 때부터 깨닫고 고민스럽습니다. 적당히 마시는 게 아니라 너무 많이 마셔서 기억이 잘 안 나고 다음날에도 항상 취기가 돌 정도입니다. 오후 6시까지 숙취에 시달렸다면 7시에 술이 깼을 때 또 마시러 갔습니다. (청중 웃음)
이런 메커니즘이 매일 반복됩니다. 자기 의지로 딱 끊으면 되지 않냐고 하지만 제가 동아리나 학교생활을 활발히 하다 보니 끊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다 보니 술 때문에 학업에도 지장이 있고, 항상 술이 매개가 되다 보니까 술 없이는 사람도 못 만나고 후배와 이야기도 안 됩니다. 술자리에 참석만 하고 안 마실 수도 있지만, 안 취했을 때는 조용하다가 많이 취해야 좀 이야기를 하는 술버릇이 들어서 안 마시기가 어렵습니다. 술을 안 마시고도 이런 생활을 이어갈 수 있을지 고민이어서 질문 드립니다.”
“술을 안 마시고도 재미있는 생활을 이어갈 수 있습니다.” (청중 웃음)
“저도 정말 안 마시고 싶은데 정말 습관이 무서운 게...”
“안 마시고 싶으면 안 마시면 돼요.”
“어디 있냐며 절 찾는 전화가 하루에도 수십 통이 와요. 심지어 집 비밀번호까지 알아서 자고 있을 때 찾아옵니다.”
“자고 있을 때 전화가 오면 ‘어딨냐?’ 하면 ‘자고 있다’ 하면 되잖아요.”
“심지어 어떤 친구는 집에 찾아와서 문 열어보고, 제가 자고 있으면 자기 목을 문에 끼우고 목 부러진다며 불러대니까 제가 또 안 나갈 수가 없어요.”
“그래도 안 나가면 돼요.”
“그런데 또 그렇게 되면 메커니즘이 계속 반복되고...”
“아니죠. 술을 받되 입에만 대고 옷에 주르륵 흘려버리면 돼요.” (청중 웃음)
“그런데 제 친구가 삼키나 안 삼키나 목에 손을 대고 확인해요. 친구들이 모두 그런 친구들이어서 빠져나갈 수가 없어요. 건강 문제도 정말 고민입니다. 얼마 전 건강검진을 하니 스물두 살에 간경화 수준의 수치가 나오더라고요. 그래서 위험하다고 술을 마시지 말라는데 끊을 수가 없는 환경이에요. 너무 철없는 질문인가요? 저는 정말 힘들거든요.”
“그러면 마실 때 ‘술이나 실컷 마시고 죽자’ 이러고 마셔요. 스물두 살 젊은 나이에 벌써 간경화가 있다는 건 죽을 때가 다 됐다는 소리잖아요. 계속 술을 먹으면 곧 간경화가 되고 곧 죽는 거죠. 안 죽으면 평생 골골대고 살든지요. 어떡해요? 할 수 없죠.”
“저는 아직 스물두 살인데...”
“스물두 살이면 그래도 많이 살았잖아요. (청중 웃음) 조금 오래 살려면 안 마셔야 하고, 마시고 싶으면 마시고 죽으면 돼요. 달리 길이 없어요. 돈을 빌렸으면 갚아야 하고, 갚기 싫으면 안 빌려야죠. 다른 길이란 없어요. 그런데 절이나 교회에서는 보통 거짓말을 좀 해요. 하느님이나 부처님한테 빌면 돈을 빌려놓고 안 갚아도 된다고 하죠. 그건 다 거짓말입니다. 복도 안 지어놓고 ‘빌면 복 받는다’고 해서 비는 거예요. 저축 안 했는데 어떻게 목돈을 타겠어요? 또 죄 지어놓고 벌 안 받는다고도 해요. 누구나 다 죄지어놓고도 벌은 받기 싫고, 복은 안 지어놓고도 복은 받고 싶지만, 그건 이치에 안 맞아요. 요즘 절이나 교회에서 이렇게 허황된 소리를 많이들 합니다. 그래서 교회나 절에 안 가는 젊은이들은 진짜 똑똑한 사람들이에요. (모두 웃음)
그런데 부처님과 예수님은 원래 그렇게 허황된 소리를 하신 분들이 아니에요. 이렇게 허황된 사람들을 모아놓고 ‘야, 이놈들아. 복을 안 지었는데 어떻게 복을 받니? 복 받고 싶으면 복 지어라. 복 짓기 싫으면 복 받을 생각을 하지 마라. 벌 받기 싫으면 죄 짓지 말고, 죄를 지었으면 벌을 받아라’ 이렇게 가르쳤어요.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나는 이것이 이치란 말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여기에는 아무 다른 대안이 없어요. 질문자가 술을 마시고 간경화가 심해져서 젊은 나이에 죽든지, 죽기 싫으면 마시고 싶어도 안 마시고, 옆에서 마시자 해도 안 마시든지요. 마시고 싶다거나 옆에서 누가 마시자고 강권했다는 이야기는 할 필요가 없어요. 누가 권했든, 마시고 싶었든, 마시면 간경화로 가고 더 심하면 죽는 거예요. 그렇게 죽을 때 웃으면서 ‘아이고, 그래도 술 하나는 실컷 마셔봤다’하고 죽으면 돼요. (청중 웃음)
돈을 빌렸으면 갚아야지요. 그것처럼 죽기 싫다면 마시고 싶어도 마시지 말아야 하고, 옆에서 마시자 해도 마시지 말아야 하고, 입에 넣어도 뱉어버려야 하고, 목구멍에 손을 대도 뿌리치고 뱉어버려야죠. 그렇게 마실 이유만 자꾸 대면 아무 문제도 해결되지 않아요. 이유를 댈 필요가 없어요. 마시자고 하는 친구를 나무랄 필요는 없어요. 그 친구는 마시고 싶으니까 마시자고 하는 것뿐이에요. 그러니까 같이 가주면 돼요.
저도 젊을 때 누가 옆에서 자꾸 술 마시자고 했어요. 저는 술을 그렇게 많이 못 마시니까 어떻게 이 문제를 풀었냐 하면, 술을 안 마시는 대신에 제가 술값을 내줬어요. (청중 웃음과 박수)
술도 안 마시고 술값도 안 내면 다음부터는 술자리에 오지 말라고 하잖아요. 그런데 술은 안 마셔도 술값을 내주면 어때요? 처음에는 술 안 마신다고 뭐라고 하다가 술값을 내주니까 항상 부릅니다. (청중 웃음)
항상 불러주고, 저는 술을 안 마셔도 아무 문제가 안 되고, 친구들도 저와 술 마시는 걸 너무나 좋아해요. 술 마시다 취하면 술 안 마신 제가 다 데려다주고 뒤처리도 해주니까요. 그리고 부모님이 전화해서 뭐라고 하면 항상 저랑 있다고 해요. 제가 술 안 마시는 줄 그 부모님이 아니까요. 심지어 술집에 있는데도 ‘지금 누구랑 있어요’ 하면 다 안심하고 믿어줘요. 그러니 친구관계도 유지하고 술도 안 마실 수 있었어요. 담배도 항상 주머니에 넣어 다니다가 누가 피우려 하면 탁 꺼내서 불 켜서 붙여줬어요. 그러니 그것도 아무 문제가 안 되었어요. (청중 웃음)
저더러 ‘술 안 마시고 하는 이야기는 믿을 수가 없다’고 하는 사람도 있었어요. ‘술을 마셔야 사람의 진심이 나오지, 술 안 마시고 이야기하는 거야 누가 못 하느냐?’ 이렇게 귀에 못이 박히도록 술 타령을 하는 거예요. 그래서 한번은 ‘좋다, 한 잔 하자’ 해서 술을 곤드레만드레 취하도록 마시고도 안 취했을 때와 똑같은 이야기를 하니까 다시는 제게 ‘술 안 먹고 하는 이야기 못 믿겠다’고 안 했어요.
술을 마시는 것 자체를 나쁘다고만은 할 수 없어요. 계율에 술을 아예 마시지 말라는 내용은 없어요. 마시는 것 자체를 금하는 게 아니라, ‘마시고 취하지 말라’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사람이든 축생이든 생명은 누구나 살고자 하는 욕구가 있어요. 어떤 위험이 있다면 자기 방어를 해야 해요. 그러나 내 살고자 하는 욕구가 남을 죽이거나 때리면 쪽으로 가면 안 됩니다. 이것이 자유의 한계예요. 내가 이익을 보거나 돈을 벌기 위해 무엇을 할 자유는 있지만 그렇다고 남에게 손해를 끼칠 자유는 없습니다. 즉 남의 물건을 빼앗거나 훔치지는 말아야 합니다. 내가 즐거울 자유는 있지만 남을 괴롭힐 자유는 없어요. 그래서 성추행이나 성폭행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내가 말할 자유는 있지만, 그 자유의 한계는 욕설하거나 거짓말하거나 사기치지 않는 것입니다. 즉 말로도 남을 괴롭히지 말라는 거예요.
그것처럼 술 마실 자유가 있어요. 그러나 그 한계가 ‘취하지 말라’입니다. 취하면 우선 육체를 해칩니다. 또 취하면 싸우기 쉽고, 뭘 훔치기도 쉽고, 성추행하기도 쉽습니다. 취하면 욕설하기 쉬워요. 술 마시고 취하는 게 작은 것 같지만 그러면 앞에 있는 계율을 다 어길 위험이 있어요.
그러니 안 마시는 게 제일 좋긴 하지만, 아예 마시지 말라고까지는 하지 않아요. 그런데 우리가 먹거나 마신다는 것은 건강하기 위해서잖아요. 먹거나 마셔서 몸을 해친다는 건 바보 같은 짓입니다. 질문자가 지금 건강을 해치는 행위는 어떤 변명을 해도 옳지 않습니다. 남을 때려놓고 어떤 변명이든 하는 것은 옳지 않아요. ‘죄송합니다’ 하고 사과를 해야죠. 그것처럼 술 마시는 이유를 대기 시작하면 끝이 없어요.
친구들이 술을 권하지 않으면 해결 될 거라고 하는 것은 내 책임을 남 핑계 되는 것이고 남의 인생에 간섭하는 거예요. 마시자고 하는 것은 그 친구의 요구일 뿐이에요. 마시고 안 마시고는 내가 결정하는 거예요. 그리고 술을 마실 때는 술을 마셔야만 친구가 되고 대화가 되는 것 같지만 안 마시고도 얼마든지 대화할 수 있습니다. 또 마시더라도 질문자 스스로 몸이 약간 안 좋거나 정신적으로 좀 흔들린다고 느껴지면 딱 주량만큼만 마셔야 합니다. 몇 번 시험해봐서 내 주량이 몇 잔인지 정해놓고 지키세요. 안 마시면 제일 좋지만 마시더라도 주량이 다 차면 바로 술잔을 내려놓고 자기 통제를 해야지, 질문자처럼 살면 안 돼요.
생긴 건 멀쩡하게 생겼지만 앞으로 연애해서 결혼하면 아내가 평생 남편 술 마시는 것 때문에 힘들어해요. 항상 ‘어디서 교통사고 당하지 않을까?’, ‘어느 전봇대 밑에 쓰러져 있을까?’ 내내 걱정하죠. 또 그걸 갖고 잔소리하면 질문자가 또 술 마시고 행패를 부려요. 그러면 아내가 아기를 키우면서 남편 때문에 괴로워하고, 그러면 엄마의 아픔과 안타까움이 아이에게 전이돼서 아이가 정신적으로 질환이 생겨요. 그 아이가 자라면 질문자처럼 또 술 마시고 행패 부립니다.” (질문자와 청중 모두 크게 웃음)
“이러다가 결혼 못하게 되는 건가요?”
“그게 계속 반복되면 자기 미래가 어떻게 될지 영상을 보듯 환하게 보여야 술을 딱 끊을 수 있어요.
질문자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심리적으로 조금 억압되어 있습니다. 어릴 때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심리가 좀 억압되었어요. 술을 마시고 취해서 의식세계가 약간 무의식세계로 들어가면 말이 많아져요. 평소 말이 없던 사람이 술을 약간 마시면 말이 많아지고 했던 말 또 하는 것은 심리가 조금 억압되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 자기 점검을 해보세요. 제가 상담해보면 ‘술만 안 마시면 우리 남편은 너무 좋은 사람인데, 술만 마시면 돌변해 행패를 부려서 너무 힘들어요’라고 하소연하는 부인들이 많습니다. 질문자의 아버지도 술 드시고 취하는 경우가 많았을 겁니다. 그러니 그런 것들을 질문자가 이제 끊어줘야 합니다.
우선은 자기 건강을 해치니 질문자에게 해로워요. 두 번째, 결혼해야 하잖아요. 스님 되거나 결혼 안 하고 살 거예요? 결혼할 거예요?”
“결혼 할 거예요.”
“어떤 여자 고생시키려고요? 그리고 또 자식 낳을 거예요? 안 낳을 거예요?”
“낳아야죠.” (청중 웃음)
“술 주정하고, 매일 취해서 리어카에 실려오고, 파출소에서 연락 오고, 이웃집에 잘못 들어가는, 이런 가장을 둔 부인과 아이는 얼마나 힘들겠어요? 여기서 단칼에 잘라야 해요. 잘 안 된다는 둥 하면서 합리화시키면 안 돼요. 이건 앞으로 나와 같이 살아갈 사람에게 엄청난 폐해입니다. 앞에서 말한 한 대 때리거나 훔치거나 성추행 한 것은 감옥 가고 처벌 받으면 돼요. 그러나 술 마시고 만취하는 것은 우선 질문자의 건강을 해치고 가족과 주변에 많은 악영향을 주게 됩니다. 그러니 그 문제를 두고 지금처럼 ‘이러저러 해서 잘 안 됩니다’ 하고 이야기하면 안 돼요.”
“그러면 제가 이 자리에서 딱 약속을 하겠습니다.” (청중 감탄, 박수)
“그런데 ‘술 안 마신다!’ 이렇게 결론을 내면 지키기가 오히려 어려워요. 첫째는 ‘가능하면 안 마신다. 마시더라도 딱 두 잔만 마시고 무조건 끊는다’ 이렇게 생각하세요. 그런데 술로부터 정말로 자유로워지는 것은 안 마시는 것이 아니라, 가능하면 안 마시지만 인연이 되면 또 마실 수도 있는데 두 잔에 끝내겠다면 딱 두 잔에 끝내버리는 겁니다. 주위의 상황이나 조건이 어려우면 이렇게 하면 돼요. 딱 두 잔 마시고, 눈치 봐서 더 먹일 것 같으면 ‘잠깐 화장실 좀 다녀올게’ 이러고 일어나서 술값 내고 가버리면 돼요. (청중 웃음)
처음에는 ‘네가 친구냐? 의리 없이 그러냐!’ 이러지만 한두 번 하다 보면 달라져요. 세상은 다 자기 하기 나름이라고, 딱 그렇게 하면 다른 사람도 거기에 동조를 해요. 어떤 한 가지를 딱 정해서 하면 처음에는 그걸 갖고 불평하거나 욕을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다들 적응합니다. 자기가 원칙을 정해서 조금만 계속해서 지키면 술 안 마신다고 친구가 떨어져나가는 일도 절대로 없고, 술 조금밖에 안 마신다고 친구가 안 되는 일도 절대로 없습니다.
다만 지금까지 많이 마시다가 갑자기 안 마시면 처음에 저항이 좀 있습니다. ‘이 자식, 네가 스님이냐? 부처 됐냐? 갑자기 왜 이래?’ 이러면서 온갖 소릴 하고 억지로 잡아서 들이붓습니다. 그럴 때 성질내지 말고 ‘알았다. 그런데 저거 뭐지?’ 이러면서 살짝 부어버려요. (청중 웃음)
그렇게 네댓 번, 열 번 자꾸 하면 ‘쟤는 안 되겠다’, ‘저 놈은 술 주지 마라’ 이렇게 됩니다. 옆에서 모르고 주더라도 ‘걔는 주지 마라. 안 마신다’ 이렇게 저절로 교통정리가 됩니다. 자기 삶을 자기가 딱 정해서 살면 그 다음부터는 세상이 거기에 맞춰집니다. 질문자도 자기의 길을 딱 정해서 가야 해요. 술 좀 마시는 건 괜찮습니다만 제가 들어보니 안 되겠다 싶은 것은 첫째, 벌써 건강을 해치고 있다는 거예요. 정신을 잃는다는 것도 그 정도까지 가면 안 돼요. 무슨 소리를 했는지 모른다는 건 굉장히 위험한 거예요. 부모님과 같이 살아요? 자취해요?”
“자취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렇죠. 어머니가 그걸 알면 얼마나 걱정하시겠어요?”
“예, 지금 좀 걱정이 많으십니다.”
“그러니까요. 자식으로 태어나서 부모에게 효도는 못 해도 이런 걸로 걱정끼치는 건 좋은 게 아니잖아요. 정리가 됐어요? 계속 핑계 댈래요? 확 정리했어요?”
“확 정리했습니다.” (청중 박수)
“술이 엄청 마시고 싶으면 저한테 오세요. 제가 드리겠습니다. (청중 웃음) 제가 딱 보고 더 이상 못 마시도록 해줄 테니 친구가 권한다고 같이 마시지 말고요. 그렇게 딱 자기 중심을 잡아야 해요.”
문답을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점점 질문한 청년의 얼굴도 밝아져 갔습니다. 특히 술값을 내고 나가버리면 된다, 은근슬쩍 술잔을 흘리면 된다, 원칙을 지켜나가면 저절로 그에 맞게 주위가 변한다 등 깨알 같은 술자리 대처 요령을 들으며 청중들도 모두 감탄을 했습니다. 대학에 들어오면 가장 많이 하는 고민 중에 하나가 술자리 응대인데 참석한 대학생들 모두에게 많은 도움이 된 것 같습니다.
오늘부터 술을 확 끊겠다고 바로 그 자리에서 결심하는 청년에게 청중들도 뜨거운 격려의 박수를 보내주었습니다.
이어서 또 다른 남학생은 “방황해도 괜찮은 이유가 무엇입니까?” 라고 스님에게 질문했습니다. 아마도 오늘 강연 주제가 ‘방황해도 괜찮아’ 인데 자신의 요즘 상황과 강연 주제가 오버랩이 되었나 봅니다. 스님은 농구할 때 공 던지는 연습을 비유로 들며 명쾌한 답변을 들려주었습니다.
“방황해도 괜찮은 이유가 무엇입니까?”
“젊을 때는 누구나 다 이치를 잘 모르기 때문에 욕심으로 인해 방황하게 되어 있습니다. 젊으니까 뭐든지 다 하고 싶잖아요. 놀고도 싶고, 공부도 잘 하고 싶고, 연애도 하고 싶어서 이럴까, 저럴까 왔다갔다 해요. 이걸 하면 저게 후회되고 저걸 하면 이게 후회되니까 방황하는 거예요.
제가 보기에는 그것이 바람직한 건 아니지만 인생을 살아가는 하나의 과정이라는 거예요. 겪어보면서 ‘낭비했구나’ 아는 거예요. 이런 건 후회가 아니라 경험으로 삼아야 합니다. 우리는 늘 후회해요. 놀았던 사람은 ‘그때 공부할 걸’ 하고, 공부했던 사람은 ‘그때 좀 놀 걸’ 합니다. 나이 들어 돈 벌어서 논다 해도 젊을 때 노는 것과는 재미가 다르니까요.
지나간 뒤에 이렇게 후회하는 건 의미 없어요. 돌이킬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젊을 때 노느라고 다른 걸 못한 사람은 항상 ‘그래, 그때 재미있게 놀았으니 이 정도는 각오해야지. 그래도 논 게 어디냐’ 이렇게 생각해야 해요. 자기 선택에 대해 긍정적이어야 합니다. 공부하느라 좀 못 놀았던 사람은 ‘그래, 그때 공부했으니까 내가 이 정도 됐지’ 하고요. 자기 결정을 후회하지 말아야 해요. 잘못했다면 다음엔 잘못하지 않으면 되지, 지나가버린 것을 자꾸만 이야기하는 것은 아무런 도움이 안 됩니다.
잘못했으면 반성하면 되고, 과보를 받으면 돼요. 그걸 갖고 후회할 필요는 없다는 거예요. 넘어지면 일어나면 되지, 주저앉은 채로 ‘왜 넘어졌나’ 계속 곱씹을 필요가 없어요. 넘어지면 일어나고 또 넘어지면 또 일어나면 되고, 실패하면 다시 도전하면 됩니다.
농구를 잘 하려면 연습을 좀 해야 하잖아요. 혼자 연습할 때 링에 공이 들어가면 ‘들어갔으니 됐다’ 해서 그만두고 집에 가요? 떨어진 공을 다시 받아서 또 던져요?”
“또 던지겠죠.”
“안 들어가면 ‘에이, 안 들어가네’ 하고 그만둬요? 또 던져요?”
“또 던지겠죠.”
“그래요. 공이 들어가도 받아서 다시 던지고, 안 들어가도 받아서 다시 던져요. 연습할 때는 그렇습니다. 그러니 인생은 다만 연습일 뿐입니다. 넘어지면 다시 일어나서 하면 되고, 실패하면 실패의 경험을 살려서 다시 도전하면 됩니다.
자전거를 배울 때 처음에는 넘어지거나 잘 못 타요. 자전거를 배울 때 어떤 아이는 세 번 넘어지고 어떤 아이는 열 번 넘어졌어요. 그러면 열 번 넘어진 아이가 세 번 넘어진 아이보다 빨리 타요. 열 번 넘어졌다는 건 연습을 많이 했다는 뜻이니까요. 그러니까 자꾸 넘어지는 것은 안 되는 쪽으로 가는 게 아니라 잘 타는 쪽으로 가는 겁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실패는 실패가 아니라, 성공으로 가는 지름길입니다. 그러니 실패했다고 주저앉을 필요가 없습니다.
실패와 좌절은 아무 관계가 없어요. 좌절은 실패 때문에 오는 것이 아니라 욕심 때문에 옵니다. 이걸 하려면 열 번의 실패를 거쳐야 성공하는데 세 번 하고 안 된다며 우는 게 좌절이에요. 그러니 우리는 항상 꾸준히 연습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스님의 답변을 듣고 나니 왜 스님이 청춘들을 위해 ‘방황해도 괜찮아’ 라는 책을 냈는지 절로 수긍이 갔습니다. 무엇보다 좌절은 실패 때문에 오는 것이 아니라 욕심 때문에 오는 것이라는 말씀이 가슴에 크게 남았습니다. 만약 지금 하고 있는 일이 힘들다면 ‘나는 또 어떤 욕심을 부리고 있지?’ 하고 살펴볼 일이구나 싶었습니다.
모든 질문에 대한 답변을 마치고 나니 3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습니다. 10시 넘어서 강연이 끝났는데 하반기에 진행된 강연 중에서 가장 늦은 시간에 끝난 것 같았습니다. 아마도 대학생들을 위한 강연이 하반기에는 오늘 한번 뿐이다 보니 더욱더 애정을 갖고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려다 보니 그렇게 된 것 같았습니다. 스님의 대학생들에 대한 애정을 듬뿍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스님은 강연을 마무리하면서 청춘은 서투르고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치지만 도전하는 용기로 새로운 것에 대해 탐구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며 과거에 갇히지 말고 열린 마음으로 자신의 삶을 살아가길 당부해 주었습니다.
“너무 완숙하려고 애쓰지 마세요. 노인은 완숙하지만 청년은 서투릅니다. 완숙해지는 것은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듭하면서 이루어지는 결과에요. 그러니 조금 서투른 것, 그리고 서툴러도 도전하는 용기가 청년의 장점이에요.
새로운 시도들을 많이 해보세요. 너무 현실 안주적인 직장만 선택하려 들지 말고 새로운 걸 해보세요. 새로운 것이라 하면 꼭 IT산업만 있는 게 아니에요. 진짜 맛있는 사과를 만들어보겠다고 결심하고 30년간 사과만 연구할 수도 있고, 미래의 식량위기를 극복할 방법을 찾느라 곤충만 연구할 수도 있어요. 미래 식량위기의 대안이 고단백인 곤충이란 이야기도 있잖아요. ‘어떤 새로운 것을 지속적으로 시도해서 성과를 내겠다’ 이렇게 생각해야 노벨상도 탈 수 있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는 늘 일회용 휴지 사용하듯이 공부합니다. 막 집중해서 달달 외워서는 시험 치고 나면 지식을 쓰레기통에 갖다버려요. 제가 물어보면 대학이나 대학원까지 나왔어도 실력은 중학교 실력도 안 되는 사람이 대부분이에요.
이제는 불교 신자는 불교만 믿고, 기독교 신자는 기독교만 믿는 데서 벗어나 불교와 기독교를 융합해야 합니다. 불교와 기독교만 융합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종교와 과학을 융합해야 해요. 지금은 융합의 시대예요. 생물과 화학을 나누는 게 아니라 생화학을 해야 하고, 인문학과 자연과학도 다 같이 공부해야 해요. 그래서 상대가 기독교를 믿는다면 성경을 인용해서 이야기할 수 있고, 불교를 믿는다면 불경을 인용해서 이야기할 수 있고, 중고등학교 학생들이 과학에 관심있어 하면 과학을 통해 진리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상대가 이해하는 게 중요하지, 종교적 지식이 뭐 중요해요?
이렇게 시대가 달라지고 있습니다. 남북이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로 나뉘어 대립한다지만 이건 갈등할 게 아니라 융합을 할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이 융합의 원조가 원효의 화쟁사상입니다. 내내 서양 것만 배우고 따라갈 시대가 아니에요. 우리 속에도 좋은 것이 많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우리 것만 고집해도 안 돼요. 남의 것도 좋은 게 있으면 갖다 배워야죠. 목사님들은 대부분 성경만 보고 불경을 안 보는데, 저는 불경도 보고 성경도 보니까 토론하면 제가 유리합니다. 이기는 게 꼭 좋은 것만은 아니지만,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백승이라고 하잖아요. 그런데 왜 바보같이 인류의 이 소중한 문화유산을 스스로 버리고 성경만 공부하려고 해요? 이것도 읽어보고 저것도 읽어보세요.
지금은 스님이지만 성경 읽어보고 더 좋으면 내일이라도 목사가 될 수도 있죠. 둘 다 좋으면 둘 다 가지고 살면 되죠. 그래서 제가 유럽과 미국에서 강연을 다닐 때 ‘크리스천 부디스트(Christian-Buddhist)’ 란 말을 만들었어요. 생물과 화학을 합쳐서 생화학이라 부르는 것과 똑같아요. 신앙은 어릴 때 접한 크리스트교를 가지고 있되 진리는 불교를 공부하면 되는 거예요. 어릴 때 불교 신자로 자랐는데 예수의 삶으로 헌신하고 싶다면 부디스트 크리스천(Buddhist-Christian)이고요. 이렇게 둘 다 하면 되지, 왜 하나만 해야 해요? 또 자기가 하나만 하고 싶으면 하나만 하고, 안 하고 싶으면 안 하면 돼요. 이렇게 우리의 시대는 과거와 달리 열린 시대입니다. 과거에는 폐쇄된 사회에 살았기 때문에 늘 거기에 갇혀 있었지만 이제는 인종도 섞여 살고 문화며 종교도 섞여 살잖아요.
그러니 여러분들은 이렇게 과거의 문화유산에 갇혀 사는 시대에서 벗어나서 젊은이들답게 열어놓고 사십시오. 부모님 말만 들으면 부모님의 노예지, 그게 무슨 자유인이에요? 스무 살이 넘었으면 자기의 삶을 사세요.
대신 장학금을 받으면 그 규정을 따라야 하듯이, 스무 살이 넘었어도 부모님이 경제적 지원을 해준다면 스폰서 말을 좀 들어야 해요. 부모님 집에서 밥 얻어먹고 살려면 부모님 말을 좀 들어야 해요. 듣기 싫으면 나오면 되잖아요. 붙어서 살려면 잔소리 좀 듣고,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밥도 좀 해야 해요.
너무 웅크리고 살지 말고 좀 열어놓은 삶을 사세요. 이 얼마나 좋은 세상이에요? 출가하지 않고도 불교를 마음껏 공부할 수 있는 시대, 불교 공부하면서 기독교도 공부할 수 있는 시대, 과학 하면서 종교도 할 수 있는 시대잖아요. 이 좋은 시대에 자꾸 그렇게 걱정만 하고 있지 말고, 술만 마시지 마세요. (청중 웃음)
술을 마시지 말라는 게 아니라 술만 마시지 말라는 겁니다. 마시고 싶으면 마셔도 되지만 굳이 취해서 자기의 정신을 혼탁하게 만들 필요는 없어요. 저는 여러분처럼 젊으면 참 좋겠어요. 억만금을 가진 60대 노인보다 땡전 한 푼 없는 20대 젊은이가 낫지 않아요? 젊음은 좋은 거예요. 그러니까 마음껏 즐기십시오.
즐기라는 말은 공부도 마음껏 하고, 도전도 마음껏 하고, 실패도 해보고, 연애도 해보라는 겁니다. 연애하다가 헤어졌을 때 날 배신하고 갔다며 징징대지 말고, 그 사람이 떠나줘서 다른 상대를 만날 기회가 주어진 것을 기뻐하세요. 계속 붙어 있으면 평생 한 사람밖에 못 만나는데, 그렇다고 내가 사람을 바꾸면 욕을 먹잖아요. 상대가 알아서 떠나주니까 새로운 사람을 또 만나잖아요. 얼마나 좋아요? 이렇게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살면 좋겠습니다.”
스님의 열정적인 강연에 뜨거운 박수가 쏟아졌습니다. 융합의 시대에 과거에 갇히지 말고 열린 마음으로 살아가면 좋겠다는 말씀이 큰 울림으로 남았습니다. 무엇보다 젊음 그 자체로도 긍정할 수 있는 것들이 너무나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니 마음이 가벼워지고 기뻐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어서 오늘 강연을 홍보하고 준비한 대학생 자원봉사자들이 모두 무대로 나와 ‘아름다운 세상’을 함께 노래하며 신나는 공연을 보여주었습니다. 미숙한 노래 솜씨였지만 청중들과 함께 박수치며 부를 수 있어 즐거운 마음으로 강연을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로비에서는 책 사인회가 열렸습니다. 많은 대학생들이 ‘방황해도 괜찮아’, ‘새로운 100년’, 그리고 얼마전 새로 나온 책 ‘야단법석’을 들고 와 스님에게 직접 사인을 받았습니다. 어떤 학생은 사인을 받는 페이지에 “스님, 강연 잘 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라고 메모를 해오는 센스를 보여주어서 스님으로 하여금 흐뭇한 웃음을 짓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 책 사인회
사인회가 이루어지는 동안 술에 대한 고민을 토로한 질문자에게 다가가 스님의 말씀을 듣고 어떤 생각이 들었냐고 물어보니 “짧은 시간이지만 고민을 해결 할 수 있어 감사했고, 이런 행사를 준비해준 분들께도 감사하다”고 답해주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스님은 자원봉사자들과 함께하는 기념 사진 촬영도 환한 미소로 응해주었습니다. 수고했다는 격려의 말씀과 오늘 여는 공연을 해준 ‘오늘의 라디오’ 가수에게도 고마운 마음을 전했습니다.
▲ 오늘 대학생 강연을 준비한 대학생정토회 자원봉사자들
서투르기도 했고 그만큼 자원봉사자들의 얼굴에 아쉬움도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무사히 강연을 마쳐 모두들 뿌듯해 하면서 기쁜 얼굴로 행사를 마무리 하였습니다.
스님은 곧바로 중앙대학교를 빠져나와 밤 10시 30분에 서울 정토회관에 도착해 오늘 일정을 모두 마쳤습니다.
내일도 아침 7시부터 조찬 모임을 시작으로 하루 종일 평화재단에서 미팅과 회의 시간을 가진 후 저녁 7시에는 인천 부평구청 7층 대회의실에서 ‘통일 이야기’를 주제로 즉문즉설 강연을 할 예정입니다.
※ 법륜 스님의 즉문즉설 강연이 전국 52개 도시를 순회하고 있습니다. 우리 동네 강연 일정을 확인한 후 가족, 이웃, 친구와 함께 강연장으로 오세요.
강연은 선착순 무료 입장이며, 질문을 하고 싶은 분들은 강연장에 직접 오셔서 사전 신청을 하셔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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