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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 새벽예불과 발우공양을 대중들과 함께 하신 스님께서는 몇가지 생활상의 고쳐야 할 점들을 점검해주셨습니다.
“기도할 때 물병을 지참하는 사림이 있는데, 환자라서 어쩔 수 없는 경우가 아니면 수행자로서 올바른 자세가 아닙니다. 명상할 때도 물병은 밖에 놔두고 휴식시간에 마시고 들어오듯이 예불시간에 목이 마르면 참아야 하고 기도시간에 목이 마르면 뒤에 배치해놓고 나가서 마시고 오든지 해야합니다. 그리고 법회 시간에도 물을 옆에 놔두고 마시는데 그러지 않는게 좋겠습니다.”라며 우리가 별 의미없이 놓치고 있는 것을 지적해주셨습니다.
또, 소심경 염불곡조가 좀 늘어지는 부분을 다시 지적해 주시면서 곡조 전체가 늦어지거나 빨라지는 것은 괜찮지만, 어느 한부분이 늘어지는 것은 유의해서 하라고 하셨습니다.
계율과 관련해서는 지난번에 얘기가 나왔던 저녁예불에 대해서 시간변경이나 장소가 어떻게 결정되었는지를 물으시면서 “저녁예불을 아예 6시로 옮기면 어떤지? 저녁 7시가 어중간하니까 자꾸 빠지게 되는 것 아니겠어요? 저녁예불을 6시에 하거나 6시 30분에 하든지 해서 자기가 조금 노력하면 모두가 예불할 수 있도록 하면 좋겠습니다. 만약 6시에 예불을 한다면 스님이 일정을 6시에 잡더라도 약속시간은 6시 15분으로 알아들으면 됩니다.”라며 이미 계율로 정해진 것은 꼭 지켜질 수 있도록 여러 가지 방법을 제안해주셨습니다.
발우공양후에 스님께서는 송코 탈란딕 부족과 짧은 만남을 가지셨습니다. 한국에 와서 다니는 동안 궁금한 것이 있는지 물으셨습니다.
탈란딕 부족은 “한국에 불교가 들어오기 전에는 어떤 종교가 있었는지, 한국은 몇 개 부족으로 되어 있고, 사용하는 언어는 몇 개인지, 북한과는 언어가 같은지? 한국 아이들이 춤추는 것은 못봤는데 춤도 추는지?”등에 한국의 문화에 대해 많이 궁금해 하면서 스님께 질문을 하였습니다.
스님께서는 각각의 질문에 대해 답을 해주셨습니다.
“우리 전통신앙에는 하느님이 있고, 하느님의 아들인 환웅천왕이 땅으로 내려와 6000년전 이 땅에 새로운 나라인 ‘신시’를 세웠어요. 환웅이 인간인 웅녀과 결혼해서 태어난 아들인 단군왕검이 4300년 전 조선을 세운 첫 왕이 되었어요.”하시면서 전통신앙에 대해서도 자세히 말씀해주시면서 단기, 서기, 불기에 대해서도 함께 설명해주셨습니다. 또 “한국에는 다른 민속신앙들도 있었는데 불교가 들어오면서 민속신앙을 수용했기 때문에 절에 가면 불상이 있는 큰 법당 뒤에 산신을 모시는 산신각, 일곱별신을 모시는 칠성각들도 있다”고 덧붙여주셨습니다.
탈란딕 부족들은 한국이 1개의 민족, 1개의 언어, 1개의 글을 쓴다고 하니 놀라워 했고 특히 북한과도 같은 민족이고 같은 언어를 쓴다는 말에 더욱 더 놀라워 했습니다. 필리핀은 여러 부족들이 있고 각 부족별로 각자의 언어와 문화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1개의 민족, 언어, 문화를 가진 한국이 신기했나 봅니다.
스님께서는 탈란딕 부족과 이야기 하시면서 이 분들에게 한국의 전통적인 것, 전통옷, 전통가옥, 전통신앙(굿), 전통의학(한의학)등을을 더 보여주도록 제안하셨습니다. 내일 서초법당에서 탈란딕 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이 있는데, 이때 전통악기(가야금, 대금등)도 연주하고 또 한복을 입고 와서 우리의 전통 옷을 보여주도록 제안하시기도 하셨습니다.
그리고 스님께서는 다니는 동안 아이스크림도 사먹고, 한국의 음식도 사먹으라고 용돈을 주시기도 하셨습니다. 용돈을 주는 가운데, 한 꼬마가 늦게 와서 사람들이 용돈을 못 받을거라고 놀려서 서러워하는 표정이 무척이나 재밌고 귀여웠습니다.
탈란딕 부족과의 차담이후 스님께서는 정토회관 집무실에서 원고교정업무등을 보시면서 시간을 보내셨습니다.
오후 5시에는 네팔 지진 피해 지역 지원을 준비하고 있는 JTS와 현안문제들을 논의하는 시간을 가진 후 바로 강연이 있는 안양 아트센터로 향하셨습니다.
오늘 안양 아트센터에서는 법륜스님의 즉문즉설과 JTS후원의 밤 필리핀 민다나오 송코마을 원주민 초청공연이 함께 있었습니다. 오전부터 비가 와서 대중들이 강연장 오기 불편할까봐 걱정했는데 다행히 강연이 시작될 즈음 비가 그쳤습니다. 대중들은 6시부터 입장이 가능함에도 오랫만에 안양을 찾은 스님을 뵙기 위해서 일찍 감치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정토회 불교대학생들의 기타 공연으로 대중들은 입구에 들어서면서부터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었으며, 강연장 로비에 배치된 JTS 홍보사진과 영상은 강연 기다리는 분들에게 풍부한 볼거리를 주었습니다. 강연장에 조금 일찍 도착하신 스님께서는 책 사인을 먼저 하신 후에 강연장 주변을 돌아보시며 봉사자들과 인사를 나누셨습니다.
강연이 시작되고 JTS 활동영상과 민다나오 소개 영상을 본 후 스님께서는 대중들의 박수와 환영을 받으시면서 무대에 오르셨습니다.
“오늘 비가 와서 우중충한 날씨인데도 불구하고 이렇게 많이 참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올해는 예년에 비해서 봄꽃을 더 많이 구경했는데, 벚꽃이 피자마자 날씨가 갑자기 추워져서 꽃을 오래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봄날 꽃구경도 좋은데 더 좋은 것은 말랑말랑한 흙을 밟고 농촌에서 일하는 것이예요. 밭을 갈고 씨앗을 뿌리고 모종을 심는 일은 상쾌하고 기분 좋은 일이며 노는 것과 비교가 안되는 일입니다.”라고 하시면서 또, 스님께서는 즉문즉설로 들어가기 전에 오늘 강의 취지와 함께 정토회 산하 기관인 JTS 활동이 왜 필요하신지에 대해 말씀해주시며, 오늘 초청된 필리핀 민다나오 송코마을 딸랑딕 원주민들에 대해서도 간단히 소개해주셨습니다.
“이 세상의 문제는 크게 둘로 나눌 수 있어요. 첫째는 먹고 살기 어려워서 힘든 사람이 있습니다. 지금 인류의 20%가 절대 빈곤선상에 있습니다. 절대 빈곤에 있는 사람에게 ‘마음만 잘 먹어라, 그럼 행복하다’이렇게 말하면 안됩니다. 왜냐하면 절대빈곤에 있는 사람은 짐승보다 못하게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짐승은 특별한 사건이 아니면 영양실조 걸리거나 배고파 죽는 일은 없습니다. 그런데 절대빈곤에 있는 사람들은 우리나라 사람이든 다른 나라 사람이든, 내 자식이든 남의 자식이든, 내 부모든 남의 부모든, 내 종교든 남의 종교든 관계없이 배고픈 사람은 먹어야 하고, 병든 사람은 치료받아야 하고, 어린 아이들은 제때 배워야 합니다.
이것은 이념, 사상, 종교를 초월해서 사람으로 태어나서 누구나 기본적으로 가져야 하는 권리이므로, 우리는 배고픈 사람, 병든 사람, 못 배운 사람을 위해 인도적 지원을 해야 합니다. 인도적 지원은 북한 사람이라도 도와야 하고, 무슬림이라도 도와야 합니다. 설령 적이라 하더라도 지원을 해야 됩니다.
두번째, 먹고 살만 한데 괴로운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여기 앉아 있는 사람들입니다. 부부간에, 또 부모자식간에 내가 옳으니 네가 옳으니 싸우고 괴롭다고 합니다. 혼자 살때는 외롭다고 하고, 둘이 살때는 귀찮아합니다. 그리고 종교가 다르다고 싸우고, 나라가 다르다고 싸웁니다. 또 밥을 너무 먹고 비만에 걸려 걱정합니다. 이런 사람은 치료법이 없습니다. 본인이 적게 먹는 수 밖에 없습니다. 영양실조 퇴치는 돈이 조금 들지만 비만 퇴치는 돈이 엄청나게 듭니다. 이것은 본인이 노력하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에 해결책도 없습니다.
사실 배부른 병은 치료법이 별로 없습니다. 그런데 이 치료법을 연구하신 분이 부처님입니다. 부처님은 원래 배부른 사람이었어요. 배는 불렀지만 마음은 괴로웠습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왜 마음이 괴로운가 연구했습니다. 오랜 연구 끝에 새로운 길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 새로운 길은 특정한 종교나 민족과 관계없는 것입니다. 배부른 사람이 생긴 병, 즉 인간관계의 갈등, 외로움 등은 붓다의 가르침속에서 해결할 길이 있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는 이 시대의 두 가지 문제를 모두 나눕니다. 하나는 배는 부른데 괴로운 여러분을 위해서 붓다의 가르침이 필요합니다. 다른 하나는 강의 후 필리핀 민다나오 원주민들과 함께 하는 시간을 가질 예정입니다. 이들은 배고픈 사람들로서 분쟁지역에서 전통문화를 지키며 살고 있습니다.
필리핀은 과거 스페인의 침략과 미국의 침략으로 식민지가 되면서 원주민들이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서 살고 있는데, 원주민들 중 일부는 공산 반군을 조직해서 저항하기도 하고, 무슬림은 자기 종교를 지키기 위해서 저항하다 보니 민다나오가 분쟁지역이 되었습니다.
JTS는 분쟁지역에 가서 원주민 마을과 무슬림 마을에 학교를 짓고, 그들의 어려움을 도와줌으로서 그들의 저항심을 누그려 뜨려 평화를 정착시키는 평화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부족중에 자기 전통문화를 지키는 부족이 있습니다. 전통문화를 지킨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한국에서도 불교를 제외하면 모두 전통문화를 지키지 못하고 있습니다.
가난한 원주민들은 옷과 식량을 얻기 위해서 전통을 버리기도 하는데 오늘 여러분들에게 소개해줄 탈란딕 원주민들은 가난하지만 전통문화를 지키고 보존하며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마을에는 아이들에게 전통을 계승할 수 있는 평화의 집을 지어주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 이들을 특별히 초청해서 이 부족들의 전통 옷과 연주, 노래, 춤을 여러분들께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세계화라는 추세속에서 수없이 많은 소수민족의 문화가 없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구상의 소수민족의 전통을 보존하는 것도 우리 인류문화 유산을 보존하는 중요한 일 입니다. 우리는 산업화 과정에서 전통 문화를 많이 잃어서 정체성마저 잃고 있는데, 이들이 우리와 같은 시행착오를 반복하지 않도록 전통문화를 잘 지켜갈 수 있게 도와주면 좋겠습니다.
그럼 오늘 여러분들이 가지고 있는 배부른 병은 즉문즉설로 치료를 하고, 가난한 삶들이 겪고 있는 배고픈 병은 여러분들이 기부를 통해서 치유해주시길 바랍니다.”
강의 서두에 우리 인류의 주요 과제에 대한 이야기를 마무리하고 기다렸던 즉문즉설이 시작되었습니다.
총 6명이 질문하였습니다. 미국에 살고 있는 교포인데 불교 공부를 하고 싶어서 한 달간 한국에 와 계신다는 분, 임신중인데 새로운 삶을 살고 싶어서 갈구한다는 분, 24세 아들의 음주운전과 도박으로 힘들어 하는 어머니, 사업체를 운영하면서 지방을 왔다 갔다 해보니 힘들던데 스님은 어떻게 많은 스케줄을 소화하시는지 궁금해 하는 분, 10살때부터 오빠에게 맞았으며 중 3때 아빠가 자살하는 것을 목격하고 현재 일상생활이 힘들다고 하는 분까지, 살면서 힘들고 풀기 어려웠던 이야기들을 스님과 허심탄회하게 나누고 해법을 찾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오늘은 음주운전과 도박하는 아들 때문에 힘들어하는 어머니와의 대화를 소개하겠습니다.
“스님 만나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24살 된 아들이 있는데 사춘기에 접어들면서부터 크고 작은 문제를 일으키더니 지금은 음주운전에 도박까지 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작년 7월 대부업체에 4천 5백만원의 빚까지 졌습니다. 지금은 도박전문 상담센터에서 상담하며 치유하고 있지만, 가족들은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불안해하고 있습니다.
최근 횟수만 줄였을 뿐 아직도 도박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딸에게 들었고, 딸은 동생을 집에서 내보내자고까지 합니다. 도박은 중독성이 강해서 끊기가 힘들고 평생 당뇨병 환자처럼 스스로 관리해야 한다고 합니다. 저는 현재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나마 우연히 접한 스님 책을 읽고 법문 영상을 보며 엄마인 저에게 잘못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지난 25년 결혼생활을 되돌아 보니 엄마로서 중요한 역할을 못해 준 것 같아 내 자신이 안타깝고 원망스럽습니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면 아들이 도박 중독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엄마로서 최선을 다해 보고 싶습니다. 스님, 제가 어떻게 하면 아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을 줄 수 있을까요?”
“엄마로서 참 가슴 아프겠습니다. 그런데 아들이 스무살 넘었어요? 안 넘었어요? 스무살 넘었으면 엄마로서 자식에게 해줄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옆에서 지켜보니 너무 고통스럽고 힘듭니다. 매일 술먹고 늦게 들어오고 안하던 행동을 해서 아들이 공포스럽습니다.”
“이 세상에 도박하고 술 먹는 사람이 한 두명도 아니에요. 아들을 바꿀 수 있는 능력은 다른 곳에 가서 한번 찾아보세요. 교회 가서 기도하면 낫는다, 절에 가서 기도하면 낫는다, 굿하면 낫는다 이런 방법이 있어요. 거기 가면 낫는데 돈이 많이 들어요. 저는 아들을 바꿀 수 있는 방법을 몰라요. 모르는 정도가 아니라 나는 바꾸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남을 고칠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누구라도 남을 고치려고 하면 대부분 실패합니다.”
“그럼 제가 어떻게 해야만 할까요? 스님?”
“그런 아들을 바꾸지 않고도 내가 행복하게 살 것인가? 그런 아들 때문에 나는 괴롭게 살 것인가? 이건 질문자의 선택입니다. 선택은 두가지이니 여기서 선택하세요. 아들을 고쳐서 이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제가 능력이 없어서 몰라요. 내가 그럴 정도로 능력이 있으면 꼭 고치고 싶은 사람도 있지만 능력이 없어서 못하고 있습니다. 제가 고치고 싶은 분들은 그들의 잘못된 행동으로 인한 다른사람에게 피해가 엄청납니다. 아들 도박해서 4천만원 빚지는 것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의 수준이예요. 수천 수만배의 피해가 오는데도 못 고치고 있습니다. 부처님이 사람을 고쳐줄 수 있으면 그런 사람 먼저 고쳐야지 왜 아들부터 고치겠어요. 나는 누구한테 부탁하면 고쳐진다는 말 잘 안믿습니다. 다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런 아들을 두고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길을 알려주는 겁니다.
그렇다고 아들의 병을 포기하기보다 고치는 노력을 할 필요는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행복하면서 고치는 노력을 하면, 아들이 고쳐져도 그만, 안 고쳐도 그만입니다. 그런데 괴로워 하면서 고치면 안 고쳐질 확률이 높으니 평생 괴로워하다가 죽어야 합니다. 아들이 도박을 안 하면 좋지만은 하더라도 나는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길이 있습니다.”
“아들에게 조금이라도 영향을 줄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요?”
“그런 방법은 없습니다. 닭도 새끼를 낳으면 병아리를 돌보잖아요? 강아지도 돌보죠? 그런데 영원히 돌봅니까? 어릴때만 돌봅니다. 사람은 언제까지 돌봐야 됩니까? 원시시대는 12살까지, 농경시대는 15살까지, 지금의 이 시대는 교육 기간이 길어져서 만 18살때까지 즉한국 나이로 20살때까지 자식을 최대로 돌볼 수 있는 부모의 임무예요. 이 이상은 안 돌봐도 죄가 안됩니다. 그 이상 돌보고 싶다고 하면 사랑이 아니라 내 집착입니다. 그러니 스무살이 넘었기 때문에 나하고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단지 과거에 내 아들이었고, 지금은 독립된 남이예요.
아침마다 일어나‘저 사람은 남입니다’이렇게 기도해야 합니다. 이렇게 하면 아들이 어떻게 하던지 상관이 없습니다. 남이기 때문에 집에서 내보내도 되고, 놔둬도 되지만 아들 일에 일체 관여를 안해야 합니다. 그러면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하기가 정말 힘듭니다”
“그게 안되면 그럼 죽을 때까지 괴롭게 살아야죠. 빌린 돈을 갚아준다고 해서 고쳐지는 것도 아니고 안 갚아 준다고 해서 고쳐지는 것도 아니예요. 도박은 중독이기 때문에 갚아주면 다음에 또 갚아줘야 합니다. 능력 있으면 갚아주고 능력이 없으면 내 일 끝났다 생각하고 거기에 관여하지 마세요. 아들의 도박 중독을 먼저 끊으려고 하기 보다 내가 아들에 대해 가지고 있는 집착의 중독을 먼저 끊으세요. 내 중독이 끊어지면 아들 중독도 끊어집니다. ‘그러면 아들이 아니다’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알겠습니다. 아들을 보고 고통스러워하지 않고...”
“아들을 보면서 어떻게 어미가 고통스럽지가 않아요? 아들이 아니라니까요. ‘부처님, 저사람은 내 아들이 아닙니다. 남입니다.’이렇게 기도 하시라니까요. ‘아들 아닌데 내가 착각했구나, 내가 미쳤지, 헛것이 보이네’ 이렇게 자기를 돌아보며 아들에 대한 중독성을 완전히 끊어야 합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잘 안되고 어려워요. 하지만 이렇게 하면 집착을 끊을 가능성은 있습니다. 실패할 확률이 높지만 어렵다는 것을 알고 해야 계속 꾸준히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해야 나도 살고 아들도 살고 내 가족이 삽니다. 어릴때는 돌봐주는게 사랑이고, 지금은 집착을 끊어 주는게 사랑입니다. 이게 진짜 아들을 위한 사랑입니다.
강원랜드 가면 도박하는 사람이 많죠. 그들이 도박을 하던 안하던 내가 상관없잖아요. 그것처럼 아들에 대해 아무 상관을 안해야 합니다. 핵심은 아들이라고 생각하지 않겠다입니다. 이건 스님이 정한게 아니고 원래 그런 것입니다.”
“부처님, 아들이 아니고 남입니다”
처음에 울먹이는 목소리로 질문하던 질문자가 마지막에는 경쾌하고 밝은 목소리로 스님께 답을 하는 것을 보니 듣고 있는 청중의 마음도 한결 가벼워지는 것 같았습니다. 청중들은 우렁찬 박수로 위로와 격려해 주었습니다.
6명의 질문과 답변이 모두 끝난 후 스님께서 강연 처음에 소개해줬던 민다나오 원주민의 민속공연을 볼 수 있었습니다. 공연을 들으니 울창한 숲속에 사는 동물들과 나무들의 노래소리, 사람과 자연이 어울러져서 살아가는 모습이 그림처럼 상상되었습니다. 청중들도 함께 즐길 수 있었던 공연을 마친 후 스님께서 강연장 로비에서 다시 책사인회를 하였습니다. 사람들은 스님을 가까이서 뵙수 있다는 설레임으로 줄을 서서 기다리며 스님의 사인을 받아갔습니다. 스님께서 마지막으로 봉사자들과 단체 사진을 찍으시고 지역을 한번씩 더 챙겨서 불러주셨습니다.
오늘도 좋은 법문을 들려주신 스승님께 봉사자들은 힘찬 박수로 보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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